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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돌교회
04/05/2020 - 사무엘상 3:1-21 본문
말씀: 삼상3:1-21
제목: 사무엘아! 사무엘아! 부르시는지라
여러분들이 저의 말씀의 강도를 볼 때, 제가 좀 심하다는 생각을 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심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으시다면, 심하게 하는 그 이유를 좀 생각해 보아야 됩니다. 무엇보다도 심하게 하지 않을 수 있다면, 그건 남이라고 생각할 때가 아닐까요? 그래서 남이라고 생각하니까, 아니 남이니까, 남에게 그렇게까지 심하게 할 이유가 있는가? 라는 생각이 드는 것이 당연하겠지만, 그러나 우리의 관계는 가족 관계, 부부관계라고 해도 아니 그 이상이라고 해야 맞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성도 간에는 족보가 족보정도가 아니라 우린 한 몸이기 때문입니다.
고후12:12-27, 엡1:22-23입니다.
고린도후서 12:12-27
12. | 사도의 표가 된 것은 내가 너희 가운데서 모든 참음과 표적과 기사와 능력을 행한 것이라 |
13. | 내 자신이 너희에게 폐를 끼치지 아니한 일밖에 다른 교회보다 부족하게 한 것이 무엇이 있느냐 너희는 나의 이 공평하지 못한 것을 용서하라 |
14. | 보라 내가 이제 세 번째 너희에게 가기를 준비하였으나 너희에게 폐를 끼치지 아니하리라 내가 구하는 것은 너희의 재물이 아니요 오직 너희니라 어린 아이가 부모를 위하여 재물을 저축하는 것이 아니요 부모가 어린 아이를 위하여 하느니라 |
15. | 내가 너희 영혼을 위하여 크게 기뻐하므로 재물을 사용하고 또 내 자신까지도 내어 주리니 너희를 더욱 사랑할수록 나는 사랑을 덜 받겠느냐 |
16. | 하여간 어떤 이의 말이 내가 너희에게 짐을 지우지는 아니하였을지라도 교활한 자가 되어 너희를 속임수로 취하였다 하니 |
17. | 내가 너희에게 보낸 자 중에 누구로 너희의 이득을 취하더냐 |
18. | 내가 디도를 권하고 함께 한 형제를 보내었으니 디도가 너희의 이득을 취하더냐 우리가 동일한 성령으로 행하지 아니하더냐 동일한 보조로 하지 아니하더냐 |
19. | 너희는 이 때까지 우리가 자기 변명을 하는 줄로 생각하는구나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 앞에 말하노라 사랑하는 자들아 이 모든 것은 너희의 덕을 세우기 위함이니라 |
20. | 내가 갈 때에 너희를 내가 원하는 것과 같이 보지 못하고 또 내가 너희에게 너희가 원하지 않는 것과 같이 보일까 두려워하며 또 다툼과 시기와 분냄과 당 짓는 것과 비방과 수군거림과 거만함과 혼란이 있을까 두려워하고 |
21. | 또 내가 다시 갈 때에 내 하나님이 나를 너희 앞에서 낮추실까 두려워하고 또 내가 전에 죄를 지은 여러 사람의 그 행한 바 더러움과 음란함과 호색함을 회개하지 아니함 때문에 슬퍼할까 두려워하노라 |
에베소서 1:22-23
22. | 또 만물을 그의 발 아래에 복종하게 하시고 그를 만물 위에 교회의 머리로 삼으셨느니라 |
23. | 교회는 그의 몸이니 만물 안에서 만물을 충만하게 하시는 이의 충만함이니라 |
우린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스도를 머리로 한, 한 지체로써의 한 몸이기에 그래서 내 손가락에 작은 가시 한 개만 박혀도 불편하고 온 몸이 다 아파하는데, 저기의 몸인 손목의 뼈가 깨지고 발목이 뒤틀리고 신장의 역할을 못하여 뚱뚱 붓고 있고 심장이 제대로 뛰지 않아 호흡이 불가능한데, 아무렇지 않을 수 있다고요? 아무렇지 않은 것이 아니라 아파서 미쳐버릴 것입니다.
기절하고 쓰러질 것입니다. 신장에 뾰족한 돌이 있으면 얼마나 아픈지 아시는 분은 아십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죄는 그 이상의 아픔이요 해결되지 않으면 안 되는 세력입니다. 죄는 전혀 용납할 수 없어야 합니다. 그런데 몸의 그 아픔보다 더 아픈, 죄를 세상의 더러움보다 더 더러운, 그 죄를 보았는데, 보고도 놔두는 그런 자신이 있을 수 있을까요? 그냥 내버려두는 이유는 자기가, 자기인데도 자기가 아니라는 뜻입니다. 죄는 자기도 자기를 무시하여 영원한 저주로 버려지게 하는 세력입니다. 자기도 자기를 포기하는데 그런 사람들이 거룩함을 위하여 같이 아파할 수 있을까요?
당연히 아파할 이유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니 서로 지체들이 위의 것을 향하여 가야 하는데 갈 필요가 없다고 생각할까요? 하지 않을 것입니다. 같이 갈 이유가 없는데, 하나님께서 하시는 말씀, “너는 내 것이야!” 하실 때, 그 말씀에 그런 사람들이 동의할까요? ~ 동의하지 않습니다. 즉 나는 하나님의 자녀가 아니다! 나는 세상의 즐거움과 성공을 위하여 내 영혼까지도 포기하는 그런 자다! 그러니 희생과 섬김을 요구하는 교회가 그런 사람들에게 교회가 얼마나 소중할까요?
전혀 상관하고 싶지 않을 것입니다. 결국 그런 사람은 교회 안에서는 불필요한 존재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 결과는 정죄차원이 아니라 헛된 세상이 좋아서 스스로 내린 결정입니다. 복과 생명을 택할 것인가? 저주와 사망을 택할 것인가? 에서 그들은 후자를 원했기에 그건 스스로 자신을 버린 것이지, 남이 자기를 실족하게 했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오늘 말씀도 보세요! 왜 하나님께서 잠자리에 누운, 어린 아이 사무엘을 그렇게 부르시는 것일까요?
타락한 이스라엘 때문에 하나님의 마음이 심히 아프시기에, 회복되지 않으면 버려지기에 그래서 어린 사무엘을 계속해서 부르셨던 것입니다. 그런데 잘 보세요? 부르시는 이유가 참 이상합니다. 하나님께서 어떻게 사무엘에게 현현하셔서 하신다는 말씀이 좋은 말씀도 아닌 엘리 대 제사장에게 어떤 끔찍한 심판이 앞으로 생길지 보라고 하십니다. 그 말씀이 얼마나 살벌하였으면, 사무엘도 15절에서 알게 하시를 두려워했다고까지 합니다. 여기서 확인해야 되는 중요한 점이 있습니다. 그 당시 사무엘의 나이가 몇 살 정도 되었을까요? 12살 정도가 되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풍습은 12세가 되어야 성전 출입을 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도 눅2:42에서 말씀하시듯이 12세가 되셨을 때에 저희가 절기의 전례를 따라 좇아 올라갔다고 기록하고 있지 않습니까?
42. | 예수께서 열두 살 되었을 때에 그들이 이 절기의 관례를 따라 올라갔다가 |
그러나 12살이면 얼마나 어린 나이입니까? 삼상3:7에서 말씀하시지만, 사무엘도 하나님과의 어떤 만남과 교제가 전혀 그동안에 없었다가 그날 처음으로 하나님의 음성을 듣게 된 날이었습니다.
7. | 사무엘이 아직 여호와를 알지 못하고 여호와의 말씀도 아직 그에게 나타나지 아니한 때라 |
전혀 경험이 없는 어린 나이였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시는 말씀이, 두렵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뜻을 배울 수 있는 나이가 구약에서는 그때부터이었기에, 그 나이가 되자, 하나님께서는 그 찬스를 놓치지 아니하시고 사무엘에게 임하셨는데, 그런데 그 어린 사무엘에게 하나님께서 엘리 대제사장에 대하여 하신 그 말씀이, 무서운 저주가 아닙니까? ~ 그리고 엘리와 두 아들의 죄가 얼마나 심했으면 삼상3:14에서 속함까지도 불가하다고까지 하셨으니 두려워 떨지 않을 수가 없었을 것입니다.
14. | 그러므로 내가 엘리의 집에 대하여 맹세하기를 엘리 집의 죄악은 제물로나 예물로나 영원히 속죄함을 받지 못하리라 하였노라 하셨더라 |
우리는 오늘의 말씀을 통하여 함께 생각해 볼 말씀은 첫째로, 왜 하나님께서는 사무엘에게 처음으로 나타나시면서 이런 무서운 저주와 재앙에 대한 말씀을 하셨는가? 입니다. 왜 그렇게 하셨을까? 좋으신 하나님이신데, 얼마든지 좋은 말씀으로 사무엘을 지도하시고 인도하실 수가 있으십니다. 그런데 몇 번도 아닌 처음으로 오셔서 어떻게 그렇게 끔찍한 말씀을 그 어린 사무엘에게 하셨는가? 이 점에 대하여 심각하게 생각을 하지 않을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생각해 보세요! 만약에 나의 아이에게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셨다면,
그렇게 말씀을 하실 때에 우리는 무슨 생각을 하게 될까요? 정말 꼭 그럴 수밖에 없으셨는가? 하면서 그렇게 말씀을 하시는 하나님에게 반기를 들고 불평을 하지 않을 수가 없을 것입니다. 처음 만나는 사람이 처음부터 “너의 스승 누구누구를 아는데, 그가 한 죄악으로 어떻게 될 것인지 봐라, 얼마나 심한지 두 귀가 울릴 것이야”라고 말씀(11절)하십니다. 하나님의 심판을 듣기만 하여도 그 충격으로 벗어날 수가 없게 된다는 뜻입니다. 이런 이야기를 처음 만나는 사람에게 내가 듣게 된다면, 기분이 어떨까요? 끔찍해서 두 번 다시 만날 용기가 나지 않을 것입니다. 친한 친구가 그랬어도 정이 뚝 떨어지고 말 것입니다. 삼상3:15의 말씀도 보세요!
15. | 사무엘이 아침까지 누웠다가 여호와의 집의 문을 열었으나 그 이상을 엘리에게 알게 하기를 두려워하더니 |
“사무엘이 아침까지 누웠다가 여호와의 집 문을 열었으나 그 이상을 엘리에게 알게 하기를 두려워하더니” 얼마나 두려워했는지 밤새 잠을 잘 수 없었던 사무엘입니다. 사무엘이 아침까지 누웠다. 라고 하시지 않습니까? 그러나 어떻습니까? 정말 그런 저주의 말씀을 하는 그 사람을 보면, 겁을 먹고 질릴 수밖에 없는데 그 이유는, 다름이 아니라 하고많은 좋은 말들을 놔두고 하필이면, 그런 저주의 말을 해야만 하는가?
그래서 싫어할 것입니다. 좋은 것이 좋다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아도 살기 어렵고 힘이 들어 죽을 지경인데, 좋은 말을 들어도 쉽지 않은데, 어려운 상황에서 꼭 그런 말을 교회까지 와서~ 특히 교회도 억지로 가는데 그런 사람들이 그런 저주를 듣고 좋아할 이유가 없습니다. 그 누구도 원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래서 거짓 선지자들이 노리는 것이 무엇입니까? 듣기 좋은 소리로 사람을 미혹케 하고 속여서 결국 망국의 길로 빠뜨리지 않던가요? 렘6:13-15, 14:13-18, 23:16-22입니다.
예레미야 6:13-15
13. | 여호와의 말씀이 다시 내게 임하니라 이르시되 네가 무엇을 보느냐 대답하되 끓는 가마를 보나이다 그 윗면이 북에서부터 기울어졌나이다 하니 |
14. |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재앙이 북방에서 일어나 이 땅의 모든 주민들에게 부어지리라 |
15. | 내가 북방 왕국들의 모든 족속들을 부를 것인즉 그들이 와서 예루살렘 성문 어귀에 각기 자리를 정하고 그 사방 모든 성벽과 유다 모든 성읍들을 치리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
예레미야 14:13-18
13. | 이에 내가 말하되 슬프도소이다 주 여호와여 보시옵소서 선지자들이 그들에게 이르기를 너희가 칼을 보지 아니하겠고 기근은 너희에게 이르지 아니할 것이라 내가 이 곳에서 너희에게 확실한 평강을 주리라 하나이다 |
14. |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선지자들이 내 이름으로 거짓 예언을 하도다 나는 그들을 보내지 아니하였고 그들에게 명령하거나 이르지 아니하였거늘 그들이 거짓 계시와 점술과 헛된 것과 자기 마음의 거짓으로 너희에게 예언하는도다 |
15. | 그러므로 내가 보내지 아니하였어도 내 이름으로 예언하여 이르기를 칼과 기근이 이 땅에 이르지 아니하리라 하는 선지자들에 대하여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셨노라 그 선지자들은 칼과 기근에 멸망할 것이요 |
16. | 그들의 예언을 받은 백성은 기근과 칼로 말미암아 예루살렘 거리에 던짐을 당할 것인즉 그들을 장사할 자가 없을 것이요 그들의 아내와 아들과 딸이 그렇게 되리니 이는 내가 그들의 악을 그 위에 부음이니라 |
17. | 너는 이 말로 그들에게 이르라 내 눈이 밤낮으로 그치지 아니하고 눈물을 흘리리니 이는 처녀 딸 내 백성이 큰 파멸, 중한 상처로 말미암아 망함이라 |
18. | 내가 들에 나간즉 칼에 죽은 자요 내가 성읍에 들어간즉 기근으로 병든 자며 선지자나 제사장이나 알지 못하는 땅으로 두루 다니도다 |
예레미야 23:16-22
16. | 만군의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너희에게 예언하는 선지자들의 말을 듣지 말라 그들은 너희에게 헛된 것을 가르치나니 그들이 말한 묵시는 자기 마음으로 말미암은 것이요 여호와의 입에서 나온 것이 아니니라 |
17. | 항상 그들이 나를 멸시하는 자에게 이르기를 너희가 평안하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하며 또 자기 마음이 완악한 대로 행하는 모든 사람에게 이르기를 재앙이 너희에게 임하지 아니하리라 하였느니라 |
18. | 누가 여호와의 회의에 참여하여 그 말을 알아들었으며 누가 귀를 기울여 그 말을 들었느냐 |
19. | 보라 여호와의 노여움이 일어나 폭풍과 회오리바람처럼 악인의 머리를 칠 것이라 |
20. | 여호와의 진노가 내 마음의 뜻하는 바를 행하여 이루기까지는 그치지 아니하나니 너희가 끝날에 그것을 완전히 깨달으리라 |
21. | 이 선지자들은 내가 보내지 아니하였어도 달음질하며 내가 그들에게 이르지 아니하였어도 예언하였은즉 |
22. | 그들이 만일 나의 회의에 참여하였더라면 내 백성에게 내 말을 들려서 그들을 악한 길과 악한 행위에서 돌이키게 하였으리라 |
그래서 우린 깊이 생각을 하셔야 할 것입니다. 이렇게 거짓말 때문에 당장 죽어 가는데, 또는 당장 피하지 않으면, 치어 죽는 판국에, 당장 모르고 마시는 독물을 마시고 있는데 그래서 곧 당장 막지 않으면 안 되는데, 그런 상황에서 어떤 부모가, 가족이, 친구가 좋은 말로, 편한 말로, 천천히, 느긋한 자세로 “하지 마~, 피해 봐~, 먹지 마~” 생판 모르는 남일지라도, 아니 원수의 자식일지라도 결코 절대로 그렇게 말할 수 없을 것입니다. 누구든지 그런 상황을 보면, 알면, 나타나는 반응은, 야! 야! 미쳤어~ 안 된다고, 빨리 피하라고~, 몸부림을 치고, 고함 고함을 치면서 난리법석을 떨지 않을 수가 없을 것입니다. 성경 말씀은 사랑과 위로의 말씀 이전에 죄에 대하여 기록한 말씀입니다. 죄로 당장 죽으면 지옥을 가는데, 죄로 말할 수 없는 재앙을 받게 되는데, 정말 독을 마시는 것과 전혀 다르지 않은 급박(急迫)한 처절한 상황이 당장, right now에 닥칠 수 있는데, 어떻게 사랑과 위로의 말씀이 우선 될 수 있단 말입니까? 죄가 지독스런 독물인지도 모르고 마냥 즐거워하면서 마시고 있는데, 일단은 막기 위하여 어떻게 해야 할까요?
하나님의 책망까지도 듣지 못하고 있는 엘리와 두 아들을 위하여, 아니 전혀 다르지 않는 우리들을 위하여 사무엘까지 동원하시고 사무엘을 통하여 그 저주를 전하시므로 다들 회개케 하시려는 하나님이셨습니다. 잠자리에 누운, 아이 사무엘까지 동원하여 그 저주와 재앙을 막게 하시려는 것이었습니다. 문제는 그런 상황에서 좋은 소리가 어떻게 나올 수가 있단 말입니까? 오늘의 말씀도 상황을 보면, 그런 형편에 놓인 엘리와 두 아들이 회개하여 복을 받게 하시려는 하나님께서 듣지도 못하는 잠자리에 누었던 어린 아이 사무엘에게까지 계속해서 나타나셔서, 부르시면서 하나님께서 그 기막힌 뜻을 전하셨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렇게 하신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그렇습니다. 회개를 하여 용서를 받으라는 하나님의 간곡하고 간절하신 사랑의 마음이셨던 것입니다. 그러나 엘리 대제사장과 제사장 두 아들인 홉니와 비느하스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떤 반응을 보이던가요? 회개를 하던가요? 안 했습니다. 삼상3:18의 말씀도 보세요!
18. | 사무엘이 그것을 그에게 자세히 말하고 조금도 숨기지 아니하니 그가 이르되 이는 여호와이시니 선하신 대로 하실 것이니라 하니라 |
중요한 것은 이렇게까지 간섭하시는 하나님에 감사하지 않을 수가 없어야 했습니다. 그리고 곧 금식하고 재를 뿌리면서 회개를 했어야 했지만 그렇지 못했던 것입니다. 그런 무서운 저주를 사무엘을 통하여 듣고서도 제사장 엘리가, 그냥 뭐라고 반응하던가요? “그가 가로되 이는 여호와시니 선하신 소견대로 하실 것이니라” 아니! 이럴 수가! 어떻게 이런 반응이 말이 됩니까?~ 결국 삼상4:11, 18에서 사건이 터지고 말았습니다. 삼상4:11, 18입니다.
11. | 하나님의 궤는 빼앗겼고 엘리의 두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는 죽임을 당하였더라 |
18. | 하나님의 궤를 말할 때에 엘리가 자기 의자에서 뒤로 넘어져 문 곁에서 목이 부러져 죽었으니 나이가 많고 비대한 까닭이라 그가 이스라엘의 사사가 된 지 사십 년이었더라 |
아비 엘리는 목이 부러져 죽고, 두 아들도 한날, 한시에 전쟁에서 죽고 맙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사무엘에게 현현하셔서 급하게, 급하시니까, 끔찍했지만, 끔찍한 주의 말씀을 하실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이해가 되십니까? 만약에 하나님께서 엘리와 두 아들에 대한 죄의 대가에 대한 말씀을 전혀 하지 않으시고 좋은 말만 사무엘에게 하시다가, 나중에 엘리에 대하여 이야기를 해 주마하시고 돌아가셨다면, 그 임재하심이 무슨 의미가 있고 가치가 있겠습니까? 그러나 그런 저주가 눈앞에 왔기에 그래서 그 상황을 알려서 회개케 하시려 했습니다. 그래서 사무엘에게도, 아하! 하나님에 대하여 더 알게 되고 무엇보다도 하나님께서는 회개하시기를 얼마나 원하시는 분이신지를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성경은 사랑, 위로, 평강, 승리 이전에 죄에 대한 책망과 심판에 대하여 말씀을 정확하게 분명하게 해 주십니다. 왜요? 인간이 지은 죄로 인하여 무서운 심판이 기다라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런 식으로 급하게 자려는 어린 사무엘을 깨워서 경고의 말씀을 하실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그것은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그런 하나님의 뜻을 알았다면, 어떤 목회자가 나긋나긋한 목회, 느긋한 목회가 가능할까요?~ 결코 안 됩니다. 그 절박함과 위험을 난리법석을 부려서라도 전해야 합니다. 너희들! 결코 그래서는 안 돼! 제발! 그러지 말라고, 애타하며, 부르짖는 목회를 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딤후3:16-17도 보세요!
16. |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
17. |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하게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할 능력을 갖추게 하려 함이라 |
보세요! 온전케 하시려고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하신다고 하지 않습니까? 세상에 빠져서 방황하는 자들에게는 사랑, 위로, 승리, 평강 이전에 듣기 싫은 교훈, 책망, 바르게 함, 의로 시작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이런 원리도 모르고 “제발 좀, 좋은 소리로 따뜻한 소리로 하라”고 부탁을 하는데, 그것은 아닙니다. 우리는 성도는 세상에 빠진 자들 때문에 고난을 받아야 되는 복된 자들입니다. 딤후4:1-8입니다.
1. | 하나님 앞과 살아 있는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실 그리스도 예수 앞에서 그가 나타나실 것과 그의 나라를 두고 엄히 명하노니 |
2. |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 범사에 오래 참음과 가르침으로 경책하며 경계하며 권하라 |
3. | 때가 이르리니 사람이 바른 교훈을 받지 아니하며 귀가 가려워서 자기의 사욕을 따를 스승을 많이 두고 |
4. | 또 그 귀를 진리에서 돌이켜 허탄한 이야기를 따르리라 |
5. | 그러나 너는 모든 일에 신중하여 고난을 받으며 전도자의 일을 하며 네 직무를 다하라 |
6. | 전제와 같이 내가 벌써 부어지고 나의 떠날 시각이 가까웠도다 |
7. | 나는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
8. |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며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도니라 |
그의 나라를 두고 엄히 명하오니,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 범사에 인내와 가르침으로 경책하며 경계하며 권하라!
왜요? 대부분의 교인들이 바른 말씀을 받지 않고, 자기 사욕을 따르고, 허탄한 이야기를 따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참 성도는 딤후4:5입니다.
5. | 그러나 너는 모든 일에 신중하여 고난을 받으며 전도자의 일을 하며 네 직무를 다하라 |
모든 일에 근신하며 고난을 받으라! 입니다. 제멋대로 하는 자들에게 교육도 없이 경책도 없이 권함도 없이 그런 자들에게 그냥 좋은 소리를 하면 될 것 같지만, 되지 않습니다. 우리 기도도 저에게 그랬습니다. 좋은 소리를 하면 잘 할 텐데, 왜 때리고 소리를 지르는지 모르겠다는 식으로 말을 하기에 그래서 좋은 소리로 하니까? 어떤지 아십니까?
인간은 좋은 말로 안 됩니다. 엘리 제사장도 보세요! 삼상2:22-25입니다.
22. | 엘리가 매우 늙었더니 그의 아들들이 온 이스라엘에게 행한 모든 일과 회막 문에서 수종 드는 여인들과 동침하였음을 듣고 |
23. |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가 어찌하여 이런 일을 하느냐 내가 너희의 악행을 이 모든 백성에게서 듣노라 |
24. | 내 아들들아 그리하지 말라 내게 들리는 소문이 좋지 아니하니라 너희가 여호와의 백성으로 범죄하게 하는도다 |
25. | 사람이 사람에게 범죄하면 하나님이 심판하시려니와 만일 사람이 여호와께 범죄하면 누가 그를 위하여 간구하겠느냐 하되 그들이 자기 아버지의 말을 듣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그들을 죽이기로 뜻하셨음이더라 |
타락한 두 아들 홉니와 바느하스에게 좋은 소리를 했지만, 그 결과는 동시에 한날에 죽고 말았던 것입니다. 교육은 때려야 합니다. 잠13:24, 20:30, 22:15, 23:13-14, 29:15입니다.
잠언 13:24
24. | 매를 아끼는 자는 그의 자식을 미워함이라 자식을 사랑하는 자는 근실히 징계하느니라 |
잠언 20:30
30. | 상하게 때리는 것이 악을 없이하나니 매는 사람 속에 깊이 들어가느니라 |
잠언 22:15
15. | 아이의 마음에는 미련한 것이 얽혔으나 징계하는 채찍이 이를 멀리 쫓아내리라 |
잠언 23:13-14
13. | 아이를 훈계하지 아니하려고 하지 말라 채찍으로 그를 때릴지라도 그가 죽지 아니하리라 |
14. | 네가 그를 채찍으로 때리면 그의 영혼을 스올에서 구원하리라 |
잠언 29:15
15. | 채찍과 꾸지람이 지혜를 주거늘 임의로 행하게 버려 둔 자식은 어미를 욕되게 하느니라 |
그러나 미련한 자들을 볼까요? 잠12:1입니다.
1. | 훈계를 좋아하는 자는 지식을 좋아하거니와 징계를 싫어하는 자는 짐승과 같으니라 |
가르침을 듣지 않으므로 사람이 짐승이 됩니다. 그러나 짐승이 되는 것만이 아니라 훈계를 싫어하다가 죽게 됩니다. 잠5:23입니다.
23. | 그는 훈계를 받지 아니함으로 말미암아 죽겠고 심히 미련함으로 말미암아 혼미하게 되느니라 |
그럼 책망의 말씀은 무엇인지 아십니까? 잠6:23입니다.
23. | 대저 명령은 등불이요 법은 빛이요 훈계의 책망은 곧 생명의 길이라 |
잠10:17입니다.
17. | 훈계를 지키는 자는 생명 길로 행하여도 징계를 버리는 자는 그릇 가느니라 |
그래서 훈계를 지려는 지혜로운 자들은 잠11:19입니다.
19. | 공의를 굳게 지키는 자는 생명에 이르고 악을 따르는 자는 사망에 이르느니라 |
잔소리, 책망, 권면을 싫어하면 안 됩니다. 싫어도 전심으로 들어야 합니다. 그것이 복입니다. 그리고 결국 자랑이 됩니다. 잠10:24-25, 28-32의 말씀을 보세요!
24. | 악인에게는 그의 두려워하는 것이 임하거니와 의인은 그 원하는 것이 이루어지느니라 |
25. | 회오리바람이 지나가면 악인은 없어져도 의인은 영원한 기초 같으니라 |
28. | 의인의 소망은 즐거움을 이루어도 악인의 소망은 끊어지느니라 |
29. | 여호와의 도가 정직한 자에게는 산성이요 행악하는 자에게는 멸망이니라 |
30. | 의인은 영영히 이동되지 아니하여도 악인은 땅에 거하지 못하게 되느니라 |
31. | 의인의 입은 지혜를 내어도 패역한 혀는 베임을 당할 것이니라 |
32. | 의인의 입술은 기쁘게 할 것을 알거늘 악인의 입은 패역을 말하느니라 |
엘리와 홉니와 비느하스가 하나님의 징계를 책망을 감사하게 인정하고 회개를 했다면, 그런 저주는 피해 갔을 것입니다. 이런 저주의 말씀이 아닌 칭찬의 말씀이 기록되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 모두는, 지난 금요일 시간에도 박 집사님께서도 한국의 이 찬수 목사님이라는 분의 설교에서 자신이 옥 한음 목사님에게 책망을 받았을 때가 좋았고 지금도 그분에게 감사하다는 그런 설교를 하셨는데, 그 설교를 우리 박 집사님이 듣고 나서, 자신도 산돌교회에서 그 복된 책망을 듣고 있어 자신이 복된 자라고 고백하신 것을 기억하실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린, 주시는 책망의 말씀, 하나님 아버지의 끊임없는 잔소리를 깊이 감사할 수 있고 사랑할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자신의 죄가 밝혀지면 도망치지 말고 그 자리에서 공개적으로 회개하는 믿음을 드러내야 할 것입니다. 죄를 미워합시다! 그리고 미운 자라도 그를 세우는 선한 일에 함께 힘과 정성과 마음을 다하여 수고를 합시다!
둘째로, 드릴 말씀은 하나님의 음성에 대한 말씀입니다. 누가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가 있을 까요? 즉 누가 하나님의 말씀을 이해하여 순종할 수가 있을까요? 엘리와 그의 두 아들은 듣지 못하여 멋대로 하고 말았지만, 그러나 어린 초등학생이었던 사무엘은 들을 수가 있었습니다. 우린 그 점에 대하여 주의 깊게 살펴보지 않으면 안 될 것입니다. 왜 사무엘은 주님의 음성을 들었고, 사무엘을 부르시는 그 음성을 이해하고, 어떻게 대답하라고까지 했던, 제사장 엘리는 결국 저주를 받았고, 주변의 충고와 경고 속에서도 제사장 엘리의 두 아들은 왜 듣지 못했을까요? 생각해 보세요! 엘리와 두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는 이미 배가 부른 자들이 된 것입니다. 삼상4:18입니다.
18. | 하나님의 궤를 말할 때에 엘리가 자기 의자에서 뒤로 넘어져 문 곁에서 목이 부러져 죽었으니 나이가 많고 비대한 까닭이라 그가 이스라엘의 사사가 된 지 사십 년이었더라 |
패배한 전쟁, 빼앗긴 언약궤, 두 아들의 죽음으로 자빠져 죽은 엘리 제사장은 목이 부러져 죽었는데 나이 많고 비둔한 연고라 즉 경제적으로 전혀 부족함이 없었다는 것을 알게 하는 말씀입니다. 삶 자체가 편했던 것입니다. 삶 자체가 넉넉했던 것입니다.
세상적으로 부족함이 전혀 없는 세상의 힘과 권력으로 살고 있었던 자들이었기에 그들은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사무엘을 보세요! 어떤 삶이었습니까? 사랑하는 부모로부터 떨어져서 가족의 사랑을 얼마나 배고파하던 환경이었습니까? 가정을 떠난 삶이 얼마나 힘든지 집을 떠나본 사람들은 알지 않습니까? 게다가 성전에서의 삶을 살고 있습니다. 세상의 원리로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인 율법이 사무엘의 삶의 원리요 내용입니다. 그리고 대제사장 엘리를 섬기고 있던 삶이니 얼마나 긴장이 되었겠습니까?
제가 무슨 말씀을 드리려고 하는지 아십니까? 신앙은 편하고 넉넉할수록 하나님과 멀어집니다. 이것이 지금까지의 역사가 말해 주고 있습니다. 신8:11-20입니다. 결국 말씀대로입니다.
11. | 내가 오늘 네게 명하는 여호와의 명령과 법도와 규례를 지키지 아니하고 네 하나님 여호와를 잊어버리지 않도록 삼갈지어다 |
12. | 네가 먹어서 배부르고 아름다운 집을 짓고 거주하게 되며 |
13. | 또 네 소와 양이 번성하며 네 은금이 증식되며 네 소유가 다 풍부하게 될 때에 |
14. | 네 마음이 교만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잊어버릴까 염려하노라 여호와는 너를 애굽 땅 종 되었던 집에서 이끌어 내시고 |
15. | 너를 인도하여 그 광대하고 위험한 광야 곧 불뱀과 전갈이 있고 물이 없는 간조한 땅을 지나게 하셨으며 또 너를 위하여 단단한 반석에서 물을 내셨으며 |
16. | 네 조상들도 알지 못하던 만나를 광야에서 네게 먹이셨나니 이는 다 너를 낮추시며 너를 시험하사 마침내 네게 복을 주려 하심이었느니라 |
17. | 그러나 네가 마음에 이르기를 내 능력과 내 손의 힘으로 내가 이 재물을 얻었다 말할 것이라 |
18. | 네 하나님 여호와를 기억하라 그가 네게 재물 얻을 능력을 주셨음이라 이같이 하심은 네 조상들에게 맹세하신 언약을 오늘과 같이 이루려 하심이니라 |
19. | 네가 만일 네 하나님 여호와를 잊어버리고 다른 신들을 따라 그들을 섬기며 그들에게 절하면 내가 너희에게 증거하노니 너희가 반드시 멸망할 것이라 |
20. | 여호와께서 너희 앞에서 멸망시키신 민족들 같이 너희도 멸망하리니 이는 너희가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의 소리를 청종하지 아니함이니라 |
이스라엘도, 엘리도, 두 아들도, 넉넉하고 부족함이 없게 되자,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도 회개하지 못하고 저주를 받아 죽습니다. 예화: (1) 제가 여러분들에게 늘 하던 말씀인데, 주후3~5세기 때, 수도사들이 깨달은 그 가르침이 그대로 기록되어 있어서 주 안에서는 이렇게 동일하다는 것을 확인하면서 기쁜 마음으로 당시 수도사가 느낀 깨달음에 대하여 말씀을 드립니다.
-깨달음-p.187-
실바누스의 제자 나디라에 관한 이야기이다. 그는 시내산에서 혼자 기거하며 엄격한 절제를 통해 삶을 규제했고 자신의 육신이 필요로 하는 것만 스스로에게 허락했다. 하지만 그는 파란 (Pharan)의 감독이 되고 나서 엄격한 금욕생활에 고통을 느끼기 시작했다. 그의 제자 한 명이 물었다.
"스승님, 사막에 계실 때에는 이런 생활에 고통을 느끼지 않으셨는데 무슨 까닭입니까?"
나디라가 대답했다.
"아들아, 사막에 있을 때에 우리는 고독했고, 가난했고, 평온했다. 그래서 병들어 눕지 않을 정도로 혹독하게 육신을 단련하기를 원했다. 병들어 누우면 아무도 보살펴줄 사람이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은 자리보전을 한다 해도 수도자의 삶을 지속하도록 도와 줄 친구들이 많이 있는데, 우리가 죄를 지을 기회가 많은 세상에 살고 있는 까닭에 이렇게 나태해졌구나!"
(2)‘하나님을 즐거워하라 -레리 크랩’의 171페이지-
하나님을 즐거워 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것을 믿고 그를 실제로 만나고 싶은 갈망이 생기면, 우리는 두 갈래 길을 만나게 될 것이다. 인생을 편안하게 하기 위해 열심히 올바르게 살려고 노력하는 옛 생활의 길이 여전히 앞에 있다. 그 유혹은 매우 강렬하다. 우리 힘으로 축복을 주관하는 것이, 하나님께 나아가면 하나님이 가까이 하신다는 약속보다 더 매력적으로 보인다.
그러나 또 다른 길을 보게 된다. 그 길을 가는 표지판에는 십자가 모양의 입구가 그려져 있고 '성령의 새로운 길'이라고 쓰여 있다. 이제 선택을 해야 한다. 선택을 할 때 우리 마음에 어떤 생각이 지나갈 지 생각해 보자.
당신은 오랫동안 겪어 온 인생의 무거운 짐과 표면적인 즐거움에 싫증을 느끼고 있을 수도 있다. 당신은 쾌락이 영혼 깊은 데까지 채워주지 못한다는 것을 경험해 왔다. 그 쾌락은 당신을 오히려 더 공허하게 만들고 더 큰 쾌락을 찾으려는 부담감만 갖게 했다. 그래서 넓지도 않은 어깨 위에 무거운 짐을 잔뜩 지게 되었다.
인생은 실망을 가져다준다. 물론 즐겁고 의미 있는 일에 몰두할 때는 실망하지 않지만 말이다. 그래서 어떤 그리스도인 지도자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가 원하는 대로 인생이 이루어지고 즐거울 때는 영적 순례에 관심을 갖기 어렵다. 그러나 인생이 힘들거나 또는 편안한 삶이 내면에 깊은 만족을 가져다 주지 못함을 깨달을 때, 새로운 길을 살고자 하는 마음이 급속도로 커진다."
어쩌면 당신이 그 상태에 있을지도 모르겠다. '인생에서 당신이 원하는 것을 얻는 기술' 이라든지 '하나님의 능력을 받는 방법' 등과 같은 세미나에 더 흥미가 없어졌을 수도 있다. 당신이 정말 원하는 것은 '자신을 알고 하나님을 알고 연합되는 능력' 일 수도 있다. 당신은 지금 하나님을 즐거워하기를 갈망하고 있기 때문이다.
분주한 삶과 겉으로 잘 치장한 모습 뒤에 거짓, 허무, 외로움, 지루함이 숨겨져 있음을 인정한다. 당신은 이러한 당신 영혼이 달라질 수 있고 또 달라져야 한다고 알고 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형상' 이란 단어에 어떤 의미를 부여하기 시작한다. 그래서 당신의 정체성, 기쁨, 목적을 온전히 하나님과의 관계 안에서 찾는다. 하나님이 모든 것의 근원이며 즐거움의 원천이다. 더 많은 돈, 멋진 결혼, 좋은 자녀, 친구, 훌륭한 사역, 그 무엇도 하나님을 대신할 수 없다. 이미 이런 것들을 얻기 위해 수고해 왔지만 이것들은 잠깐의 즐거움을 줄 뿐 공허함은 더 깊어졌다. 그래서 더 집착하는 악순환을 했다. 그러나 이제는 모든 것이 헛되며 , 거짓된 즐거움에 속아 왔음을 깨닫기 시작했다.
(3)프랑스의 수학자 블레이즈 파스칼은 “병에 걸리자 고쳐달라는 기도는 고사하고 통증을 줄여달라는 간구조차 해야 할지 말지 무척 망설였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고통이 주는 깨달음 때문입니다. 시119:67입니다. “고난당하기 전에는 내가 그릇 행하더니 이제는 주의 말씀을 지키나이다” 71절입니다. “고난당한 것이 내게는 유익이라 이로 인하여 내가 주의 율례를 배우게 되었나이다”
그래서 자기중심, 자기 편한 쪽으로 살아가려고 하는 세상에 빠진 자들은 하나님의 눈을 찌르면 찔렀지, 들으려고도 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잔소리를 싫어합니다. 그러나 믿음도, 말씀을 들음에서 난다고 하지 않습니까? 그러니 세상을 따라가는 자들은 깨닫고 싶어도 안 될 것입니다. 그러나 자기중심에서 벗어난 것만큼, 비례하여 깨달음을 허락해 주십니다. 깨달음을 받고 싶으시다면, 누구든지 세상의 편함과 잘못된 습관에서 벗어나서 하나님의 방법과 원리로 가셔야지만, 깨닫게 될 것입니다.
때문에 지혜로운 자들은 어떤 처지에서도 하나님의 말씀을 놓지를 못합니다. 그래서 시119:51, 61, 83, 109, 161입니다.
51. | 교만한 자들이 나를 심히 조롱하였어도 나는 주의 법을 떠나지 아니하였나이다 |
61. | 악인들의 줄이 내게 두루 얽혔을지라도 나는 주의 법을 잊지 아니하였나이다 |
83. | 내가 연기 속의 가죽 부대 같이 되었으나 주의 율례들을 잊지 아니하나이다 |
109. | 나의 생명이 항상 위기에 있사오나 나는 주의 법을 잊지 아니하나이다 |
161. | 고관들이 거짓으로 나를 핍박하오나 나의 마음은 주의 말씀만 경외하나이다 |
왜요? 시119:9, 11, 50, 105, 142, 165입니다.
9. | 청년이 무엇으로 그의 행실을 깨끗하게 하리이까 주의 말씀만 지킬 따름이니이다 |
11. | 내가 주께 범죄하지 아니하려 하여 주의 말씀을 내 마음에 두었나이다 |
50. | 이 말씀은 나의 고난 중의 위로라 주의 말씀이 나를 살리셨기 때문이니이다 |
105. |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 |
142. | 주의 의는 영원한 의요 주의 율법은 진리로소이다 |
165. | 주의 법을 사랑하는 자에게는 큰 평안이 있으니 그들에게 장애물이 없으리이다 |
그래서 그들은 시119:97, 127, 164입니다.
97. | 내가 주의 법을 어찌 그리 사랑하는지요 내가 그것을 종일 작은 소리로 읊조리나이다 |
127. | 그러므로 내가 주의 계명들을 금 곧 순금보다 더 사랑하나이다 |
164. | 주의 의로운 규례들로 말미암아 내가 하루 일곱 번씩 주를 찬양하나이다 |
편한 자들과 게으른 자들과 넉넉한 자들과 세상의 성공을 포기하지 못하는 자들은 생명의 말씀, 능력의 말씀을 죽기 살기로 붙잡지 못할 것입니다. 누가 하나님의 말씀을 죽기 살기로 붙잡던가요? 가난한 심령을 가진 자와 절대자의 능력을 아는 자, 특히 그들이 위기와 절망 중에 있을 때, 목숨을 걸고 의지할 것입니다. 성도가 망하는 길은 편하려는데 있고, 게으름에 있고, 자기 자랑하려는데 있고, 잘 살려는 욕심에 있습니다.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싶고, 말씀을 이해하시고 싶으신 분들은 쉽게 살면 안 됩니다. 세상의 일 때문에 성도로서 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경건의 준비를 피하면 안 됩니다. 성도는 그리스도와 동행해야 하기에 세상을 따르려는 순간 시험에 걸릴 것입니다. 그래서 편하려고 하면 안 됩니다.
그래서 성경에서도 그날의 괴로움과 고통을 피하면 안 된다고 합니다. 그래서 질문합니다. 받아야 되는 성도들의 그날의 그 괴로움과 고통이 무슨 뜻인지 알기는 아세요? ~ 당장 아프고 손해를 본다는 자기 판단과 세상 기준 때문에 하나님과 이웃에게 드릴 것을 드리지 않거나 포기하지 말 것을 포기하는 짓을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과 이웃에게 드릴 것을 드리지 않거나 포기하지 말 것을 포기하면 안 되는데 그것이 싫어서 쉬운 길로 갑니다.
손해 같아서 당장만을 위하여 세상의 길을 따라갑니다. 순종하면 받아야 되는 그 고통과 괴로움이 싫어서, 가면 안 되는 망하는 길인 세상의 달콤한 뜻을 따르고 있습니다. 때문에 거룩한 복인 순종을 외면하게 됩니다. 그것은 저주요 가문이 망할 수 있게 됩니다. 그래서 그날의 괴로움과 고통을 피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성도는 믿음 때문에 현실의 실패와 손해를 당연시 여겨야 할 것입니다.
현실의 성공과 손해를 보지 않고 믿음도 지켜내겠다는 것은 스스로 속이고 있는 것입니다. 두 임금을 섬길 수 없다고 하셨기 때문입니다. 믿음을 가지고 손해를 보지 않겠다는 그 길, 그 선택은 지혜가 아니요 잘하고 있는 짓이 아니고 망하는 길입니다. 그래서 사무엘을 부르셨고 이제 우리들을 사무엘처럼 하나님의 그 뜻을 전하는 그 증인으로 세워 주셨습니다.
그런데 증인들이 어떻게 엘리의 제사장과 그의 후손의 그 저주를 받지 못하여 안달할 수 있고, 다 같이 망하자고, 버려지도록 하나님의 나라의 문을 막고 있을 수 있는지요? 우린 지금까지 그 은혜에 감사하여 무엇을 위한 삶이었는지 자신을 깊이 성찰해 보시고, 주신 새로운 길을 찾아나서는 자녀들로써 살길을 전할 수 있는 남은 인생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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