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돌교회

04/12/2020 - 사무엘상 4:1-22 본문

주일 설교 말씀

04/12/2020 - 사무엘상 4:1-22

PastorYK 2020. 4. 13. 14:37

말씀: 삼상4:1-22

제목: 언약궤를 빼앗긴 전쟁

오늘은 부활절입니다. 무슨 날입니까? 죽음이 끝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누구에게요? 성도에게는 죽음의 권세가 미치지 못합니다. 그런데 이해할 수 없는 권세, 이해할 수 없는 복의 복, 상상할 수 없는 능력을 받았지만, 죽음의 권세를 제압한 그런 엄청난 권세와 능력을 우리들이 예수님 때문에 받았는데, 그 큰 능력이 무엇을 위한 것입니까? 현실에서의 성공? 현실의 즐거움? 현실의 만족? 그래서 주신 구원이요 부활의 소망입니까? 아닙니다. 만약에 자기의 삶의 중심이 현실이라면 그건 스스로 자신을 저주하는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부활의 주님을 믿는 자신이라면 그래서 죽음의 권세를 제압하는 대단한 그런 자신이 되었다면, 무엇이 가장 필요할까요? 세상과 죄와 싸울 수 있는 생명의 말씀이 가장 중요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말씀을 모르면 무기 없이 싸우는 군사가 될 뿐입니다. 그래서 성경 말씀은 무엇과 같다고 합니까? 시149:5-9입니다.

 

5. 성도들은 영광 중에 즐거워하며 그들의 침상에서 기쁨으로 노래할지어다
6. 그들의 입에는 하나님에 대한 찬양이 있고 그들의 손에는 두 날 가진 칼이 있도다
7. 이것으로 뭇 나라에 보수하며 민족들을 벌하며
8. 그들의 왕들은 사슬로, 그들의 귀인은 철고랑으로 결박하고
9. 기록한 판결대로 그들에게 시행할지로다 이런 영광은 그의 모든 성도에게 있도다 할렐루야 

말씀이 두 날 가진 칼이기에 그 말씀으로 더러운 자신을 비롯하여 악한 세상을 정복하라고 하십니다그러나 그 칼은 세상에서 말하는 그런 힘의 차원이 아닙니다. 성도들의 강력한 무기인 생명의 말씀희생으로 섬김으로 나눔으로 양보함으로 싸워서 하나님의 사랑의 능력을 드러내라고 하십니다. 즉 주님의 제자로서 부르심의 합당한 자로 살아가라고 합니다. 모든 것을 다 동원하여 내일 오실 주님의 심판을 준비하는 현실이 되라고 하십니다. 그런데 어떤가요? 무엇 때문에 우린 즐거워하고 괴로워하던가요? ~ 만약에 그 즐거움과 괴로움의 차원이 다르다면 그것이 어떤 결과를 가져오는지 우린 오늘 말씀에 알 수 있습니다. 삼상4장을 보세요! 이스라엘이 왜 언약궤까지 블레셋과 전쟁에서 빼앗긴 것입니까? 왜 엘리 두 아들이 한 날에 동시에 죽어야 했고 전쟁에서 패배해야 했습니까? 그들의 삶의 중심이 세상에 놓여 있었기 때문입니다. 

 

렘6:16-19도 봅니다.

 

16.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너희는 길에 서서 보며 옛적 길 곧 선한 길이 어디인지 알아보고 그리로 가라 너희 심령이 평강을 얻으리라 하나 그들의 대답이 우리는 그리로 가지 않겠노라 하였으며
17. 내가 또 너희 위에 파수꾼을 세웠으니 나팔 소리를 들으라 하나 그들의 대답이 우리는 듣지 않겠노라 하였도다
18. 그러므로 너희 나라들아 들으라 무리들아 그들이 당할 일을 알라
19. 땅이여 들으라 내가 이 백성에게 재앙을 내리리니 이것이 그들의 생각의 결과라 그들이 내 말을 듣지 아니하며 내 율법을 거절하였음이니라

하나님을 믿는다는 그들의 믿음이 하늘이 아니라 오직 세상의 즐거움과 성공에 있었던 것입니다. 당시 이스라엘 모든 사람들의 믿음의 중심이 하나님의 뜻이 아니라 거룩함이 아니라, 오직 현실의 성공, 현실에서의 만족만을 위한 현실우선주의자들이었습니다. 그 결과는 그렇습니다. 절망입니다. 저주만이 남습니다. 그런데 그러지 말라고 이렇게 정답인 생명의 말씀을 주시는데 어떻게 여전히 망국의 길로 향할 수 있습니까? 1. 망국으로 가지 말아야 되기에 그래서 먼저 살펴볼 말씀이 시113편입니다. 무슨 뜻입니까? 하나님에 대한 정확한 예언과 계시를 시편기자를 통하여 알려주시고 계십니다.

 

1. 할렐루야, 여호와의 종들아 찬양하라 여호와의 이름을 찬양하라
2. 이제부터 영원까지 여호와의 이름을 찬송할지로다
3. 해 돋는 데에서부터 해 지는 데에까지 여호와의 이름이 찬양을 받으시리로다
4. 여호와는 모든 나라보다 높으시며 그의 영광은 하늘보다 높으시도다
5. 여호와 우리 하나님과 같은 이가 누구리요 높은 곳에 앉으셨으나
6. 스스로 낮추사 천지를 살피시고
7. 가난한 자를 먼지 더미에서 일으키시며 궁핍한 자를 거름 더미에서 들어 세워
8. 지도자들 곧 그의 백성의 지도자들과 함께 세우시며
9. 또 임신하지 못하던 여자를 집에 살게 하사 자녀들을 즐겁게 하는 어머니가 되게 하시는도다 할렐루야

시113편만 보더라도 하나님의 마음을 알 수 있고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알 수 있습니다. 가난하고 어려운 자들을 친히 내려오셔서 보살피시는 힘의 하나님이 아니십니다. 나의 욕심과 세상의 성공을 이루어 주시는 하나님이 아닙니다. 그런데 삼상4장의 당시 이스라엘을 보면그들에게 하나님은 어떤 분으로 나타나고 있어요? 시113편하고는 전혀 다른 하나님입니다. 자기의 성공과 승리만을 이루려는 차원에서 하나님을 원하고 있습니다

 

자신의 욕심을 이루려는 차원이었습니다. 결국 전쟁에서 패배하면서 하나님의 언약궤까지도 빼앗기고 맙니다. 왜요? 거룩하신 하나님, 자비하신 하나님을 믿고 만족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욕심만을 채우려고 했습니다. 물론 그들도 하나님을 찾았습니다. 하나님에게 도움까지도 간절하게 간구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찾고 부르던 그들의 하나님은 이름은 같았지만그 속성이 전혀 다른 하나님이었습니다. 이름이 같다고 같으면 동일한 하나님입니까? 아닙니다. 

 

쌍둥이가 얼굴이 같다고 성격과 실력이 같던가요? 이름이 같으면 다 같은 사람이니까? 아니듯이. 단지 하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면 다 됩니까?~ 창조주 하나님, 구원의 하나님에게 택함과 부르심을 입은 자로서 나아감이 되어야지만 됩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이름만으로 해결하려는 삼상4장 당시나 지금 교회하고 무엇이 다릅니까지금도 당시의 이스라엘의 하나님에 대한 이해가 놀랄 정도로 너무나 동일합니다. 그런데 왜 여전히 다른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믿고 부르짖고 있습니까

 

창조주 하나님, 구원의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고 싶지 않다는 것입니다. 부활의 하나님은 필요 없고 세상의 성공만이 모든 것이기 때문입니다. 가서는 안 되는 망하는 길을 다들 다수가 전심으로 달려가고 있는 것은 하나님의 계획과 뜻하고 근본적으로 생리가 전혀 맞지 않기 때문입니다. 물과 기름입니다. +와 –입니다. 하나님의 차원에서의 승리와 성공과 평안과 기쁨과 감사의 삶을 용납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자기 식으로 승리와 성공과 평안과 기쁨을 가지려고 망하더라도 끝까지 가 보겠다는 고집 아니 집착입니다

 

그러나 시113편에서 오실 메시야에 대한 그 분이 약속하신대로 임하셔서, 주시는 그분의 강력한 말씀 마7:13-14입니다.

 

13.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고
14.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자가 적음이라

좁은 길, 하나님의 차원에서의 승리와 성공과 평안과 기쁨과 감사의 삶을 믿음을 가지고 만들어 가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를 구원하여 주신 주님께서 어떤 목회자들을 주의하라고 하십니까? 마7:15입니다.

 

15. 거짓 선지자들을 삼가라 양의 옷을 입고 너희에게 나아오나 속에는 노략질하는 이리라

거짓 선지자를 주의해야 합니다. 무증상 코로나 바이러스 19와 동일한 존재들입니다. 그런데 누가 거짓 선지자들에게 당합니까? 누가 거짓 선지자들에게 걸려들어요? 현실만을 추구하는 자들이 걸려듭니다. 보이는 것으로 만족하는 자들입니다. 무엇이 보이는 삶인가? 마22:1-14, 마24:37-41입니다. 

 

마태복음 22:1-14

1. 예수께서 다시 비유로 대답하여 이르시되
2. 천국은 마치 자기 아들을 위하여 혼인 잔치를 베푼 어떤 임금과 같으니
3. 그 종들을 보내어 그 청한 사람들을 혼인 잔치에 오라 하였더니 오기를 싫어하거늘
4. 다시 다른 종들을 보내며 이르되 청한 사람들에게 이르기를 내가 오찬을 준비하되 나의 소와 살진 짐승을 잡고 모든 것을 갖추었으니 혼인 잔치에 오소서 하라 하였더니
5. 그들이 돌아 보지도 않고 한 사람은 자기 밭으로, 한 사람은 자기 사업하러 가고
6. 그 남은 자들은 종들을 잡아 모욕하고 죽이니
7. 임금이 노하여 군대를 보내어 그 살인한 자들을 진멸하고 그 동네를 불사르고
8. 이에 종들에게 이르되 혼인 잔치는 준비되었으나 청한 사람들은 합당하지 아니하니
9. 이에 종들에게 이르되 혼인 잔치는 준비되었으나 청한 사람들은 합당하지 아니하니
10. 종들이 길에 나가 악한 자나 선한 자나 만나는 대로 모두 데려오니 혼인 잔치에 손님들이 가득한지라
11. 임금이 손님들을 보러 들어올새 거기서 예복을 입지 않은 한 사람을 보고
12. 이르되 친구여 어찌하여 예복을 입지 않고 여기 들어왔느냐 하니 그가 아무 말도 못하거늘
13. 임금이 사환들에게 말하되 그 손발을 묶어 바깥 어두운 데에 내던지라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갈게 되리라 하니라
14. 청함을 받은 자는 많되 택함을 입은 자는 적으니라

마태복음 24:37-41

37. 노아의 때와 같이 인자의 임함도 그러하리라
38. 홍수 전에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던 날까지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장가 들고 시집 가고 있으면서
39. 홍수가 나서 그들을 다 멸하기까지 깨닫지 못하였으니 인자의 임함도 이와 같으리라
40. 그 때에 두 사람이 밭에 있으매 한 사람은 데려가고 한 사람은 버려둠을 당할 것이요
41. 두 여자가 맷돌질을 하고 있으매 한 사람은 데려가고 한 사람은 버려둠을 당할 것이니라

먹고 마시고 혼인하고 사업하다가 망하는 것입니다. 물론 먹고 마시고 사업하고 혼인하지 말라는 뜻이 아닙니다. 모든 것이 다 주를 위하지 않으면 망한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도 주시는 말씀롬14:6-9입니다.

 

6. 날을 중히 여기는 자도 주를 위하여 중히 여기고 먹는 자도 주를 위하여 먹으니 이는 하나님께 감사함이요 먹지 않는 자도 주를 위하여 먹지 아니하며 하나님께 감사하느니라
7. 우리 중에 누구든지 자기를 위하여 사는 자가 없고 자기를 위하여 죽는 자도 없도다
8.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다
9. 이를 위하여 그리스도께서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셨으니 곧 죽은 자와 산 자의 주가 되려 하심이라

왜 죽으신 분이 부활하셨다고요?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는 자가 되게 하시려고, 그리고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 되게 하시려고 부활하신 것입니다. 더 이상 착각하지 마시고, 보이는 현실의 즐거움과 승리에서 벗어나 미련한 길을 같이 갑시다! 나의 신앙의 실패, 즉 하나님을 모르면 ‘이가봇’만을 낳습니다. 우리 아이들이 안전 할 수 있는 길은 우리가 가득한 하나님의 의를 현실 속에서 드러낼 때만 이루어질 것입니다.   

 

2. 블레셋과의 이 전쟁은 우리들이 아는 그런 힘의 전쟁이 아닙니다. 영적인 전쟁입니다. 영적인 전쟁은 싸우는 방법이 다릅니다. 군사의 수도 아닙니다. 막강한 무기로 싸우는 전쟁이 아닙니다. 시118:6-17, 147:8-11입니다.

 

6. 여호와는 내 편이시라 내가 두려워하지 아니하리니 사람이 내게 어찌할까
7. 여호와께서 내 편이 되사 나를 돕는 자들 중에 계시니 그러므로 나를 미워하는 자들에게 보응하시는 것을 내가 보리로다
8. 여호와께 피하는 것이 사람을 신뢰하는 것보다 나으며
9. 여호와께 피하는 것이 고관들을 신뢰하는 것보다 낫도다
10. 뭇 나라가 나를 에워쌌으니 내가 여호와의 이름으로 그들을 끊으리로다
11. 그들이 나를 에워싸고 에워쌌으니 내가 여호와의 이름으로 그들을 끊으리로다
12. 그들이 벌들처럼 나를 에워쌌으나 가시덤불의 불 같이 타 없어졌나니 내가 여호와의 이름으로 그들을 끊으리로다
13. 너는 나를 밀쳐 넘어뜨리려 하였으나 여호와께서는 나를 도우셨도다
14. 여호와는 나의 능력과 찬송이시요 또 나의 구원이 되셨도다
15. 의인들의 장막에는 기쁜 소리, 구원의 소리가 있음이여 여호와의 오른손이 권능을 베푸시며
16. 여호와의 오른손이 높이 들렸으며 여호와의 오른손이 권능을 베푸시는도다
17. 내가 죽지 않고 살아서 여호와께서 하시는 일을 선포하리로다
8. 그가 구름으로 하늘을 덮으시며 땅을 위하여 비를 준비하시며 산에 풀이 자라게 하시며
9. 들짐승과 우는 까마귀 새끼에게 먹을 것을 주시는도다
10. 여호와는 말의 힘이 세다 하여 기뻐하지 아니하시며 사람의 다리가 억세다 하여 기뻐하지 아니하시고
11. 여호와는 자기를 경외하는 자들과 그의 인자하심을 바라는 자들을 기뻐하시는도다

오직 하나님을 아는 믿음이 전쟁의 중심이 되어야 합니다. 그럼 믿음이 전쟁의 힘이 되어야 한다면, 어떻게 해야 되는가? 평시에 준비된 자들만이 가능합니다. 어떤 준비인가 하면, 자기의 등잔 안에 기름이 가득 차 있어야 합니다. 

 

그러려면, (1) 항상 깨어 있어야 합니다. 왜요? 도둑처럼 오십니다. (2) 말씀을 밥 먹듯이 마음 판에 새겨 넣어야 합니다. (3) 자신의 생각과 판단과 결정과 행동에 대하여 자신이 어느 쪽에 선 자신인가를 그때, 그때마다 민감하게 반응할 수 있어야 합니다. (4)특히 자신의 감추어진 죄가 발견되면 분노할 것이 아니라 감사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 준비만이 승리할 수 있고 부활의 소망을 이룰 수 있습니다. 그런데 역시나 어떤가요우리는 어떻습니까? 어떤 믿음을 가지고 있습니까? 

 

혹시나 우리들의 믿음도 실로에서 언약궤를 가지고 오면 반듯이 이긴다는 삼상4장과 같은 믿음을 가지고 있지는 않습니까? 죄송한 말씀이지만, 거의 다 그런 믿음을 갖고 있지 않습니까? 그래서 이런 말도 안 되는 사건의 말씀을 우리 모두에게 주실 수밖에 없으셨던 것입니다. 교회를 다닌다는 사람들의 태반이 이런 잘못된 믿음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시대와 역사를 막론하고 언제나 이스라엘이 간 그 길을 따라가고 있다는 뜻입니다. 부인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지금으로써도 너무 심각합니다. 기독교의 믿음과 신앙은 결코 복의 개념이 아닙니다

 

전쟁의 승리를 주는 것이 언약궤가 아니듯이 말입니다. 그런데 이 잘못된 믿음이 지금까지도 왕성합니다. 그렇게 바른 말씀을 전해도 듣지 못하고, 고칠 생각을 못하는 이유에 대하여 조금 전에 말씀을 드렸습니다. 하나님의 뜻과 길이 싫은 것입니다. 인간의 죄 된 생리하고는 전혀 맞지 않기 때문입니다인간의 죄는 바른 신앙을 완전 막아버립니다. 그 뿌리가 얼마나 지독스럽게 깊은지 아는 사람은 압니다. 그 세상 세력을 제거하지 못하여 이 모양 이 꼴이 된 것입니다. 

 

단지 흉내만 내는 변질된 믿음이 우리들의 교회를 지배하고 있습니다그러나 성도라면 세상의 본이 되어야 하는데 세상에서 부끄러움이 되고 있다면, 이보다 더 아파할 사건이 어디에 있겠습니까성도라면 무엇 때문에 아파해야 하는지는 알아야 합니다. 그것이 은혜를 입은 존귀한 자로써의 자세입니다. 성도가 세상의 것 때문에 괴로워한다면, 그것보다 부끄럽고 답답한 일은 없을 것입니다. 성도가 세상의 일 때문에 낙심하고 포기를 한다면, 세상의 일로 즐거워한다면 결국 모든 교회들은 맛을 잃은 소금과 같을 것입니다. 성경을 갖고 있다고 하여 귀신이 공격하지 않을 것이다, 또는 십자가를 걸고 있으면 귀신이 또한 도망할 것이다. 라는 식의 믿음은 오늘 삼상4장의 말씀과 다르지 않습니다. 새벽기도도 같습니다. 새벽기도를 하면 복을 받더라, 하면서 새벽 기도를 가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세상 문제를 해결하려고 새벽기도를 오게 하는 교회들도 얼마나 많은지 참으로 부끄러운 뿐입니다. ‘이가봇’만이 낳습니다. 광우병 걸린 소처럼 그런 병든 자들만이 교회 울타리 안에 가득 채워질 것입니다. 

 

특히 한국의 경우에도 보면, 자녀들이 입시 때가 되면 새벽기도에 부모들이 가득 메워진다고 하지 않습니까? 교인들이 평시에는 엄두도 내지 못하다가 사고가 생기면 새벽기도에 나가는 경우가 허다한데한국 교회들의 경우에는 기복신앙이 일반화가 되었습니다. 그러다가 보니까? 헌금도, 봉사도, 전도도 다 복을 받으려고, 세상의 문제를 해결하려고 합니다. ‘이가봇’만이 낳습니다. 믿음과 복이 마치 바늘과 실의 관계처럼 되어버리고 말았습니다

 

예수님이 오심이 건강과 부자 됨에 있다고 특히 사53:4-5의 말씀을 가지고 설교를 하는 목사도 보았는데 정말 아닙니다. 말씀을 모르는 자들의 소치(까닭에서 빚어진 일)입니다. 예수님이 오심은 인간의 죄의 문제 때문에 오셨습니다. 그런데 죄의 문제를 거의 언급하지 아니하고 복의 문제만을 언급하는데, 어떻게 그럴 수 있는지 저로써도 할 말이 없습니다. 성경은 세상의 건강과 출세와 부에 대하여 약속하지 않았습니다. 그럼, 신28장의 복을 받는다는 그 유명한 말씀은 무슨 뜻인가? 

 

물리적인 차원에서의 복이 아니라는 것이 무엇으로 알 수가 있습니까? 먼저 신28:1의 말씀을 보세요! 

 

1.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삼가 듣고 내가 오늘 네게 명령하는 그의 모든 명령을 지켜 행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세계 모든 민족 위에 뛰어나게 하실 것이라

말씀에 순종하라! 입니다. 말씀에 순종하게 되면, 어떤 마음이 생겨야 되는지 아십니까? 요15:7-14입니다.

 

7.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
8. 너희가 열매를 많이 맺으면 내 아버지께서 영광을 받으실 것이요 너희는 내 제자가 되리라
9.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사랑하였으니 나의 사랑 안에 거하라
10. 내가 아버지의 계명을 지켜 그의 사랑 안에 거하는 것 같이 너희도 내 계명을 지키면 내 사랑 안에 거하리라
11.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내 기쁨이 너희 안에 있어 너희 기쁨을 충만하게 하려 함이라
12. 내 계명은 곧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하는 이것이니라
13. 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면 이보다 더 큰 사랑이 없나니
14. 너희는 내가 명하는 대로 행하면 곧 나의 친구라

사랑이요 제자 된 삶이지 물질도 출세도 건강도 아닙니다. 물질, 출세, 건강을 위하여 절실하게 구하지 않게 됩니다. 물론 물리적인 세상의 복도 복이지만, 곧 사라지는 가치이기에 복에 끼지 못한다는 것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말씀에 순종하게 되면, 즉 섬김과 희생과 나눔으로 행하게 되는 그 믿음의 행실은 영생으로 이어지는 복입니다. 그래서 구약에서도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이 거룩함이 아닙니까? 특이나 레위기의 제사법은 다 죄를 해결하여 거룩함에 이르기 위한 말씀이 아닙니까? 신약의 말씀도 보세요! 마13:16-17, 롬4:7-8. 엡1:3. 약1;12, 25. 벧전 3:14, 4:14, 계1:3, 14:13, 16:15, 19:9, 20:6, 22:7, 14. 

마태복음 13:16-17

16. 그러나 너희 눈은 봄으로, 너희 귀는 들음으로 복이 있도다
17.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많은 선지자와 의인이 너희가 보는 것들을 보고자 하여도 보지 못하였고 너희가 듣는 것들을 듣고자 하여도 듣지 못하였느니라

로마서 4:7-8

7. 불법이 사함을 받고 죄가 가리어짐을 받는 사람들은 복이 있고
8. 주께서 그 죄를 인정하지 아니하실 사람은 복이 있도다 함과 같으니라

에베소서 1:3

3. 찬송하리로다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을 우리에게 주시되

야고보서 1:12, 25

12. 시험을 참는 자는 복이 있나니 이는 시련을 견디어 낸 자가 주께서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생명의 면류관을 얻을 것이기 때문이라
25. 자유롭게 하는 온전한 율법을 들여다보고 있는 자는 듣고 잊어버리는 자가 아니요 실천하는 자니 이 사람은 그 행하는 일에 복을 받으리라

베드로전서 3:14

14. 그러나 의를 위하여 고난을 받으면 복 있는 자니 그들이 두려워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며 근심하지 말고

베드로전서 4:14

14. 너희가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치욕을 당하면 복 있는 자로다 영광의 영 곧 하나님의 영이 너희 위에 계심이라

요한계시록 1:3

3. 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와 그 가운데에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는 복이 있나니 때가 가까움이라

요한계시록 14:13

13. 또 내가 들으니 하늘에서 음성이 나서 이르되 기록하라 지금 이후로 주 안에서 죽는 자들은 복이 있도다 하시매 성령이 이르시되 그러하다 그들이 수고를 그치고 쉬리니 이는 그들의 행한 일이 따름이라 하시더라

요한계시록 16:15

15. 보라 내가 도둑 같이 오리니 누구든지 깨어 자기 옷을 지켜 벌거벗고 다니지 아니하며 자기의 부끄러움을 보이지 아니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요한계시록 19:9

9. 천사가 내게 말하기를 기록하라 어린 양의 혼인 잔치에 청함을 받은 자들은 복이 있도다 하고 또 내게 말하되 이것은 하나님의 참되신 말씀이라 하기로

요한계시록 20:6

6. 이 첫째 부활에 참여하는 자들은 복이 있고 거룩하도다 둘째 사망이 그들을 다스리는 권세가 없고 도리어 그들이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제사장이 되어 천 년 동안 그리스도와 더불어 왕 노릇 하리라

요한계시록 22:7, 14

7.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이 두루마리의 예언의 말씀을 지키는 자는 복이 있으리라 하더라
14. 자기 두루마기를 빠는 자들은 복이 있으니 이는 그들이 생명나무에 나아가며 문들을 통하여 성에 들어갈 권세를 받으려 함이로다

성경의 목표는 오직 거룩함과 온전함입니다. 그래서 이를 위하여 먼저 자기를 부인하라고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왜요? 자아인 나는 세상의 성공과 출세와 부, 건강과 같은 것들이 이루어지기를 너무나 소망하고 있습니다. 아니 그 자체입니다. 옛 성품은 헛된 세상의 물리적인 것들을 너무나 좋아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오심과 죽으심이 그런 세상의 것들을 이루어 주시려고, 성육신하고 그래서 죽어주고 그리고 부활하셨다면, 기독교는 귀신보다 머리가 나쁜 신이 되고 당연히 무당보다 못한 종교가 됩니다. 기억하셔야 합니다. 예수님이 산상수훈에서 어떤 말씀을 선포하셨습니까? 마5:1-12입니다.

 

1. 예수께서 무리를 보시고 산에 올라가 앉으시니 제자들이 나아온지라
2. 입을 열어 가르쳐 이르시되
3.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요
4.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
5.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
6.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배부를 것임이요
7. 긍휼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긍휼히 여김을 받을 것임이요
8.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
9. 화평하게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
10.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은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라
11. 나로 말미암아 너희를 욕하고 박해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슬러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12.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너희 전에 있던 선지자들도 이같이 박해하였느니라

성경의 복은 세상의 기준이 아닙니다.

 

성경의 복은 당하여 주는 것입니다. 바보가 되어 주는 것입니다. 성도가 가족만이 아니라 원수까지도 섬기고 희생하여 바보가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세상에 빠져서 허덕이고 있는 이웃들이 거룩한 성도를 통하여 주님을 의지하게 됩니다. 오직 하나님의 뜻을 따르게 됩니다. 물론 예수님께서 폭풍을 다스리시고, 치유하시고, 채워주시고, 귀신을 쫓으셨지만, 목적은 희생, 섬김, 나눔입니다. 마20:20-28입니다.

 

20. 그 때에 세베대의 아들의 어머니가 그 아들들을 데리고 예수께 와서 절하며 무엇을 구하니
21. 예수께서 이르시되 무엇을 원하느냐 이르되 나의 이 두 아들을 주의 나라에서 하나는 주의 우편에, 하나는 주의 좌편에 앉게 명하소서
22.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는 너희가 구하는 것을 알지 못하는도다 내가 마시려는 잔을 너희가 마실 수 있느냐 그들이 말하되 할 수 있나이다
23. 이르시되 너희가 과연 내 잔을 마시려니와 내 좌우편에 앉는 것은 내가 주는 것이 아니라 내 아버지께서 누구를 위하여 예비하셨든지 그들이 얻을 것이니라
24. 열 제자가 듣고 그 두 형제에 대하여 분히 여기거늘
25. 예수께서 제자들을 불러다가 이르시되 이방인의 집권자들이 그들을 임의로 주관하고 그 고관들이 그들에게 권세를 부리는 줄을 너희가 알거니와
26. 너희 중에는 그렇지 않아야 하나니 너희 중에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고
27. 너희 중에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너희의 종이 되어야 하리라
28.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성도는 세상에서 바보가 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당하지 않으면 일이 안 됩니다. 

 

부부간에도 바보가 되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런데 성도가 ‘이가봇’을 낳게 되면서 돈, 돈, 돈, 출세, 출세, 출세, 자랑, 자랑, 자랑하다가 다 깨지고 있지 않습니까? 서로 잘났다고 하다가 다 무너지고 있습니다. 지금 교회들이 가르치는 식으로 건강하고 넉넉하고 출세하고 자랑하는 것이 맞는 것이라면, (1)마8:20의 말씀처럼 머리 둘 곳도 없었던 주님은 (2)막12:41-44의 말씀처럼 단지 두 렙돈을 넣은 여인을 칭찬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3)예수님을 믿다가 순교한 자들은 누구입니까? 

마태복음 8:20

20. 예수께서 이르시되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의 새도 거처가 있으되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다 하시더라

마가복음 12:41-44

41. 예수께서 헌금함을 대하여 앉으사 무리가 어떻게 헌금함에 돈 넣는가를 보실새 여러 부자는 많이 넣는데
42. 한 가난한 과부는 와서 두 렙돈 곧 한 고드란트를 넣는지라
43. 예수께서 제자들을 불러다가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가난한 과부는 헌금함에 넣는 모든 사람보다 많이 넣었도다
44. 그들은 다 그 풍족한 중에서 넣었거니와 이 과부는 그 가난한 중에서 자기의 모든 소유 곧 생활비 전부를 넣었느니라 하시니라

(4)예수님을 믿다가 거지로 죽은 자는 누구시며, (5)예수님을 믿다가 병들어 죽은 자들은 누구십니까? 그런 자들이 어디 한두 명이던가요? 거의 다가 그렇게 기막히게 힘들게 바보처럼 살다가 이 세상을 떠나 하나님의 품에 안기고 있습니다. 지금, 수억이 믿고 있는데하나님이 몇 명이나 세상의 기준으로 가득 채워주시고 치유케 해 주시던가요? 거의 없습니다. 거의 없는데 이것을 가지고 거의 그렇게 된다는 식으로 설교를 하고 있으니, 즉 ‘이가봇’이 자랑이라고 하니, 할 말이 없습니다.  

 

물론 이 잘못된 영적인 죄의 문제는 간단하게 해결할 수가 없습니다. 뿌리가 아주 깊어서 고질적인 문제입니다. 그래서 삼상 4장의 당시의 이스라엘 사람들이나 수천 년이 지난 지금 교회들이나 변함없이 동일한 문제로 늘 속고 속이면서 이렇게 코로나 바이러스19를 낳습니다. 성경에서의 복은 마5:3-12에서 언급하고 있습니다.

 

3.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요
4.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
5.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
6.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배부를 것임이요
7. 긍휼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긍휼히 여김을 받을 것임이요
8.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
9. 화평하게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
10.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은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라
11. 나로 말미암아 너희를 욕하고 박해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슬러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12.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너희 전에 있던 선지자들도 이같이 박해하였느니라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나니", 이것이 진정한 복된 모습이기에 그래서 부활하셨고 그리고 이 사실을 증거해 주시려고 성령 하나님이 오셨습니다

 

성령하나님 때문에 우리가 이제는 말씀대로 그렇게 살아갈 수가 있게 된 것입니다. 말씀대로 살아가게 하시려고, 좁은 길, 고난의 길, 십자가의 길을 기꺼이 선택케 하시려고 예수님을 믿게 된 자녀들을 새 피조물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고후5:17입니다.

 

17.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그런데 예수님을 믿는 것이 건강과 물질과 출세에 있다고 이것이 제 1 순위로 가르치면 안 되는 것입니다. 거짓입니다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성령 하나님의 간섭과 도움으로 우리들을 어디로 끌고 가십니까? 나 죽어 너 살리고, 나 바보 되고 너 지혜롭게 하고, 원수인 바로 너, 정말 싫은 그런 너를 바로 세우고 살리는 길로 가게 하십니다. 고후8:9입니다.

 

9.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너희가 알거니와 부요하신 이로서 너희를 위하여 가난하게 되심은 그의 가난함으로 말미암아 너희를 부요하게 하려 하심이라

이 말씀의 핵심은 출세가 아니라 인간의 힘과 능력으로 절대로 할 수 없는 섬김이요 희생입니다

 

결론입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이 자녀들을 구원하시 이유가 섬김과 희생과 나눔의 삶입니까? 아니면 세상의 부자와 출세와 건강의 삶입니까? 어느 쪽을 위한 구원일까요? 예수님이 죽으심은 섬김과 희생과 나눔인 사랑이 목적입니다. 이 영광스런 섬김, 희생, 나눔인 십자가의 길은 결코 단번에 되지 않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도 각 자녀들에게 대단히 어려운 과정과 훈련이 그것도 잠시가 아닌 기나긴 한평생을 거쳐야지만 됩니다. 아무도 간단히 이루어진 적이 없습니다. 에녹을 보세요!

 

아들 므두셀라는 낳고 평생 긴장한 삶이었기에 승천하게 됩니다. 결코 단번에 되지 않기에 전능하신 하나님께서도 훈련의 훈련을 받게 하십니다. 하나님의 능력으로는 출세, 건강, 부자는 전혀 어려운 것이 아닙니다. 간단하게 해결할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간단하게 해결이 가능하신 하나님께서 출세, 건강, 부자로 부르짖는 기도에 응답하지 않으시는 이유가 어디에 있겠습니까? 거룩함에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다시 이 시간을 통하여 무엇이 건강하고 바른 신앙인지를 알아야 합니다. 마13:1-9에서 말씀하십니다.

 

1. 그 날 예수께서 집에서 나가사 바닷가에 앉으시매
2. 큰 무리가 그에게로 모여 들거늘 예수께서 배에 올라가 앉으시고 온 무리는 해변에 서 있더니
3. 예수께서 비유로 여러 가지를 그들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씨를 뿌리는 자가 뿌리러 나가서
4. 뿌릴새 더러는 길 가에 떨어지매 새들이 와서 먹어버렸고
5. 더러는 흙이 얕은 돌밭에 떨어지매 흙이 깊지 아니하므로 곧 싹이 나오나
6. 해가 돋은 후에 타서 뿌리가 없으므로 말랐고
7. 더러는 가시떨기 위에 떨어지매 가시가 자라서 기운을 막았고
8. 더러는 좋은 땅에 떨어지매 어떤 것은 백 배, 어떤 것은 육십 배, 어떤 것은 삼십 배의 결실을 하였느니라
9. 귀 있는 자는 들으라 하시니라

말씀을 봅니다. 너무나 잘 아는 씨 뿌리는 비유의 말씀입니다. 

 

그러나 알기는 알지만 머리로만 알고 있기에 입으로 하는 것과 깨달음으로 순종하는 것은 다른 말씀입니다. 말씀을 잘 보세요! 예수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바로 옥토 밭입니다. 옥토 밭이 되어야지만, 열매가 풍성하게 맺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럼 어떤 열매일까요? 출세, 건강, 부자입니까? 끝까지 아닙니다. 성령의 열매입니다. 갈5:22-24입니다.

 

22.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23. 온유와 절제니 이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
24.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욕과 탐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

그런데 어떻게 설교들이 세상의 것을 위한 예수님이라고 할 수가 있습니까? 하여튼 성도들이 옥토 밭이 되시려면, 4절의 , 6절의 , 7절의 가시의 문제를 해결해야 합니다. 그럼, 새, 해, 가시는 무엇인가? 마13:19-22의 말씀을 보세요! 

 

19. 아무나 천국 말씀을 듣고 깨닫지 못할 때는 악한 자가 와서 그 마음에 뿌려진 것을 빼앗나니 이는 곧 길 가에 뿌려진 자요
20. 돌밭에 뿌려졌다는 것은 말씀을 듣고 즉시 기쁨으로 받되
21. 그 속에 뿌리가 없어 잠시 견디다가 말씀으로 말미암아 환난이나 박해가 일어날 때에는 곧 넘어지는 자요
22. 가시떨기에 뿌려졌다는 것은 말씀을 들으나 세상의 염려와 재물의 유혹에 말씀이 막혀 결실하지 못하는 자요

새는 악인이라고 19절에서 알게 합니다. 해는 환난, 핍박이라고 합니다. 가시는 세상의 염려와 재리의 유혹이라고 22절에서 말씀합니다. 성도가 못 모르고 입맛대로 사람들을 사귀다가는 열매를 맺지 못한다는 뜻입니다. 

 

성도가 살면서 자연스럽게 생기는 환난, 핍박을 이기지 못하면 역시나 아무 소용이 없다는 말씀입니다. 성도가 세상의 염려와 재물의 유혹을 이기지 못하면 역시나 마찬가지로 말씀이 막혀서 결실할 수가 없다고 말씀합니다. 그런데 지금 교인들이 사람을 가려가면서 사람을 사귀던가요? 똥개가 고기 덩어리를 보면 무조건 침을 흘리듯이 이익만 되면 누구이든지간에 상관없이 따라가지 않던가요? 지금 교인들이 환난, 핍박을 이기고 있던가요? 아니지 않습니까? 

 

이 문제를 해결 아닌 당장 피하려는 차원에서 하나님을 이용하고 있지 않습니까? 지금 교인들이 세상의 염려와 재물에 대한 문제를 통하여 미워하고 불평하고 싸우고 난리법석을 떨고 있습니다. 이런 수준의 교인들이 무슨 성령의 열매를 맺을 수가 있습니까? 악인인 새, 환난, 핍박인 해, 세상의 염려와 재물의 유혹인 가시, 이 문제들을 해결하지 않고서는 옥토 밭이 될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어떻습니까? 무조건 자신의 필요를 채우라고 기도하고 봉사하고 전도하고 헌금을 한다면, 그것이 바로 잘못된 믿음이 되는 것입니다. 성도라면, 옥토 밭이 되기 위해서, 당연하게 생기는 새, 해, 가시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평생, 피 흘리기까지 죽도록 싸워야 합니다피 흘리기까지 싸울 수 있는 능력을 받은 자들이 피 흘리기까지는 하나님이 하시고 자신은 세상의 복만을 받을 생각을 하고 있다면, 이것이 언약궤로 이기려는 잘못된 신앙입니다. 신앙은 1)갈6:8입니다.

 

8. 자기의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는 육체로부터 썩어질 것을 거두고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는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두리라

기적만이 아닙니다. 신앙은 원리원칙입니다. 즉 심는 대로 거둔다는 말씀입니다. 

 

성도가 원리원칙으로 살아갈 때에, 그 과정 속에서 결국 돌아보면, 하나님의 능력 안에서 놀라운 인도함을 받아서 한나의 찬송을 드리게 하십니다. 2)신앙은 마13:30입니다.

 

30. 둘 다 추수 때까지 함께 자라게 두라 추수 때에 내가 추수꾼들에게 말하기를 가라지는 먼저 거두어 불사르게 단으로 묶고 곡식은 모아 내 곳간에 넣으라 하리라

심판이 있음을 알고 그날을 준비하는 삶입니다. 3)신앙은 마13:31-32입니다.

 

31. 또 비유를 들어 이르시되 천국은 마치 사람이 자기 밭에 갖다 심은 겨자씨 한 알 같으니
32. 이는 모든 씨보다 작은 것이로되 자란 후에는 풀보다 커서 나무가 되매 공중의 새들이 와서 그 가지에 깃들이느니라

장성한 분량의 믿음까지 자라면 점점 겸손하게 될 것입니다. 항상 감사할 것입니다. 이것이 신앙입니다. 4)신앙은 마13:33입니다. 

 

33. 또 비유로 말씀하시되 천국은 마치 여자가 가루 서 말 속에 갖다 넣어 전부 부풀게 한 누룩과 같으니라

한사람이 누룩처럼 전체를 부풀게 하듯이 세상을 조용하게 변화시킵니다

 

5)신앙은 마13:44-46입니다.

 

44. 천국은 마치 밭에 감추인 보화와 같으니 사람이 이를 발견한 후 숨겨 두고 기뻐하며 돌아가서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그 밭을 사느니라
45. 또 천국은 마치 좋은 진주를 구하는 장사와 같으니
46. 극히 값진 진주 하나를 발견하매 가서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그 진주를 사느니라

복음 때문에 자신의 모든 세상의 것들을 포기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신앙인이 알고 있는 말씀인데도, 그렇게 듣고 들었지만 아니 어떻게 여전히 자기를 자기가 저주할 수 있습니까? 다시 부탁합니다. 말씀을 듣고 스스로 속이지 말아야 합니다. 성도가 세상의 것을 따라가는 한, 거룩하신 하나님까지도 ‘이가봇의 하나님’이 됩니다.  

이제부터 영원까지 여호와의 이름을 찬송할지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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