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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돌교회
02/02/2020 - 룻기 1:1-18 본문
말씀: 룻1:1-18
제목: 모압 여인 룻의 선택
룻기서는 저자에 대한 정확한 정보가 없습니다. 그러나 탈무드와 유대 전승에 의하면 사사기와 사무엘서의 저자인 사무엘이 기록했다는 학설과 당시 선지 학교 출신 중에 누군가가 룻의 그 아름다운 감동적인 이야기를 통하여 하나님의 섭리를 전하려고 기록했다는 설도 있으나 정확하지 않다는 것이 신학자들의 주장입니다. 룻기서의 내용을 보면, 한 이방 과부에 대한 감동적인 신앙이야기로 쓰여 있지만 그 안에는 놀라운 하나님 아버지의 구원 계획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하나님이 누구신지, 하나님께서 무엇을 원하시는지, 그리고 하나님의 섭리에 대한 의미심장(意味深長)한 생명의 말씀이 곳곳에 깊이 감춰져 있습니다. 특히 이스라엘의 전적인 타락을 말씀하시는 사사기 다음에 나오는 룻기는 그래서 더욱 의미를 주고 있습니다. 비록 4장으로 된 짧은 말씀이지만, 이 말씀을 통하여 하나님을 더욱 깊이 만나는 시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1절의 말씀을 보시면, 결국 이스라엘의 흉년으로 한 가정이 모압 지방으로 이주해 갑니다. 하나님의 나라 이스라엘 이었지만 당시의 경제 상태가 어떠했었는지 짐작케 합니다. 미국이 극심한 흉년이 들어서 멕시코로 이주해 간 것과 같습니다.
게다가 남편도 죽고 이방 여인 오르바와 룻과 결혼한 두 아들도 결혼한 지, 10년 만에 다 죽습니다. 시어머니와 두 며느리만 남습니다. 이런 기막힌 팔자를 가진 사람들도 있을까요? 만들기 전에는 사람이 살아가면서 이렇게 되기란 결코 쉽지 않습니다. 특히 나오미 가정은 사사기 당시 타락과 흉년으로 이스라엘을 떠나 이방나라로 이주합니다. 아마도 그 땅에 흉년으로 먹을 것도 구하기가 어려웠을 것입니다. 그래서 평생 살던 고향 유다 베들레헴까지도 포기하고, 인간취급도 하지 않던 이방 모압까지 이주했던 것을 보면, 당시의 경제상태를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남편이 죽더니 두 아들도 이방 여인과 혼인 한 후, 십년이 되면서 두 아들도 죽게 됩니다. 당시 그 입장을 우리가 바꿔놓고 생각을 해 보세요!~ 나오미의 입장으로써는 절망입니다. 그렇다고 시어머니인 나오미가 신앙이 없습니까? 그렇지 않았습니다. 시어머니로써 두 며느리에게 따뜻하고 배려하는 그 마음은 룻1:6-13의 말씀에서 알 수 있지 않습니까! 말씀을 보세요!
6. | 그 여인이 모압 지방에서 여호와께서 자기 백성을 돌보시사 그들에게 양식을 주셨다 함을 듣고 이에 두 며느리와 함께 일어나 모압 지방에서 돌아오려 하여 |
7. | 있던 곳에서 나오고 두 며느리도 그와 함께 하여 유다 땅으로 돌아오려고 길을 가다가 |
8. | 나오미가 두 며느리에게 이르되 너희는 각기 너희 어머니의 집으로 돌아가라 너희가 죽은 자들과 나를 선대한 것 같이 여호와께서 너희를 선대하시기를 원하며 |
9. |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허락하사 각기 남편의 집에서 위로를 받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하고 그들에게 입 맞추매 그들이 소리를 높여 울며 |
10. | 나오미에게 이르되 아니니이다 우리는 어머니와 함께 어머니의 백성에게로 돌아가겠나이다 하는지라 |
11. | 나오미가 이르되 내 딸들아 돌아가라 너희가 어찌 나와 함께 가려느냐 내 태중에 너희의 남편 될 아들들이 아직 있느냐 |
12. | 내 딸들아 되돌아 가라 나는 늙었으니 남편을 두지 못할지라 가령 내가 소망이 있다고 말한다든지 오늘 밤에 남편을 두어 아들들을 낳는다 하더라도 |
13. | 너희가 어찌 그들이 자라기를 기다리겠으며 어찌 남편 없이 지내겠다고 결심하겠느냐 내 딸들아 그렇지 아니하니라 여호와의 손이 나를 치셨으므로 나는 너희로 말미암아 더욱 마음이 아프도다 하매 |
여기서 우리가 나오미처럼 동일한 그 처지에 놓이게 되었더라면, 어떤 생각을 했을까요? 저 두 년이 이 집안에 들어와서 두 아들을 잡아먹었다고 막말도 하지 않았을까요? 아니라고요? 창38:1-11입니다.
1. | 그 후에 유다가 자기 형제들로부터 떠나 내려가서 아둘람 사람 히라와 가까이 하니라 |
2. | 유다가 거기서 가나안 사람 수아라 하는 자의 딸을 보고 그를 데리고 동침하니 |
3. | 그가 임신하여 아들을 낳으매 유다가 그의 이름을 엘이라 하니라 |
4. | 그가 다시 임신하여 아들을 낳고 그의 이름을 오난이라 하고 |
5. | 그가 또 다시 아들을 낳고 그의 이름을 셀라라 하니라 그가 셀라를 낳을 때에 유다는 거십에 있었더라 |
6. | 유다가 장자 엘을 위하여 아내를 데려오니 그의 이름은 다말이더라 |
7. | 유다의 장자 엘이 여호와가 보시기에 악하므로 여호와께서 그를 죽이신지라 |
8. | 유다가 오난에게 이르되 네 형수에게로 들어가서 남편의 아우 된 본분을 행하여 네 형을 위하여 씨가 있게 하라 |
9. | 오난이 그 씨가 자기 것이 되지 않을 줄 알므로 형수에게 들어갔을 때에 그의 형에게 씨를 주지 아니하려고 땅에 설정하매 |
10. | 그 일이 여호와가 보시기에 악하므로 여호와께서 그도 죽이시니 |
11. | 유다가 그의 며느리 다말에게 이르되 수절하고 네 아버지 집에 있어 내 아들 셀라가 장성하기를 기다리라 하니 셀라도 그 형들 같이 죽을까 염려함이라 다말이 가서 그의 아버지 집에 있으니라 |
유다도 그런 결정을 내린 이유가 다말이란 여자에 대하여 부정적인 생각을 했던 것입니다. 그것이 우리의 실체입니다. 그렇게 하고도 남는 것이 우리입니다. 남편을 잡아먹었다는 며느리에 대한 비난과 질책을 두 명의 이방 며느리들도 당연히 피할 수가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두 며느리들의 입장을 충분히 이해하는 나오미의 그 마음은 참으로 따뜻하고 지혜롭습니다. 자신이 위로를 받아야 하는데 두 며느리를 위로하고 있으니 나오미의 그 모습이 귀하지 않았습니까? 여차하면 죽을 때까지 두 이방 여인들도 과부로 평생을 살다가 죽을 수 있었는데, 시어머니가 오히려 너희들의 나라 모압으로 돌아가라고 풀어 주니, 큰 위로가 되었을 것입니다. 그렇지 않고 끝까지 같이 살아야 한다고 친정으로 돌아가지 못한다고 시어머니가 고집을 부렸다면, 사실 며느리로써는 끔찍한 상황이 아닐 수가 없었을 것입니다. 나중에는 거의가 도망갈 생각을 하지 않았을까요?~ 그렇지 않습니까? 나오미의 가정에 아들이 있는 것도 아니요, 재산이 있는 것도 아니요, 없어서 모압까지 이주한 나오미의 가정은 모압에서는 이방 객지 사람들인데, 남아 있을 여자가 있을까요? 쉽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러니 당연히 도주할 생각을 안 하는 것이 정상일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모압 여인 며느리 룻을 보세요! 어떻습니까? 룻1:14-17의 말씀을 보세요!
14. | 그들이 소리를 높여 다시 울더니 오르바는 그의 시어머니에게 입 맞추되 룻은 그를 붙좇았더라 |
15. | 나오미가 또 이르되 보라 네 동서는 그의 백성과 그의 신들에게로 돌아가나니 너도 너의 동서를 따라 돌아가라 하니 |
16. | 룻이 이르되 내게 어머니를 떠나며 어머니를 따르지 말고 돌아가라 강권하지 마옵소서 어머니께서 가시는 곳에 나도 가고 어머니께서 머무시는 곳에서 나도 머물겠나이다 어머니의 백성이 나의 백성이 되고 어머니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되시리니 |
17. | 어머니께서 죽으시는 곳에서 나도 죽어 거기 묻힐 것이라 만일 내가 죽는 일 외에 어머니를 떠나면 여호와께서 내게 벌을 내리시고 더 내리시기를 원하나이다 하는지라 |
아니 무슨 시어머니 집에, 무슨 대단한 재산이 있다고 죽기 살기로 나오미를 붙잡습니까? 아무 것도 없는데 어떻게 아무 것도 없는 그런 시어머니를 따르려고 합니까? 게다가 이스라엘이 자신의 나라도 아니고 따지고 보면 나그네 신세이지 않습니까? 그런데 어떻게 시어머니를 따라가겠다는 생각을 할 수 있겠습니까? 나 같아도 엄두가 나지 않습니다. 어느 누가 그런 처지의 놓인 시어머니를 따르려고 할까요? 아무도 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모압 여인 룻은 그런 기막힌 처지에 놓인 늙은 시어머니를 따라서 모든 것이 전혀 다른 이스라엘까지 들어옵니다. 결국 나오미를 따라온 이방 여인 룻에 대하여 무엇이라고 했습니까? 룻2:4-12의 말씀을 보세요!
4. | 마침 보아스가 베들레헴에서부터 와서 베는 자들에게 이르되 여호와께서 너희와 함께 하시기를 원하노라 하니 그들이 대답하되 여호와께서 당신에게 복 주시기를 원하나이다 하니라 |
5. | 보아스가 베는 자들을 거느린 사환에게 이르되 이는 누구의 소녀냐 하니 |
6. | 베는 자를 거느린 사환이 대답하여 이르되 이는 나오미와 함께 모압 지방에서 돌아온 모압 소녀인데 |
7. | 그의 말이 나로 베는 자를 따라 단 사이에서 이삭을 줍게 하소서 하였고 아침부터 와서는 잠시 집에서 쉰 외에 지금까지 계속하는 중이니이다 |
8. | 보아스가 룻에게 이르되 내 딸아 들으라 이삭을 주우러 다른 밭으로 가지 말며 여기서 떠나지 말고 나의 소녀들과 함께 있으라 |
9. | 그들이 베는 밭을 보고 그들을 따르라 내가 그 소년들에게 명령하여 너를 건드리지 말라 하였느니라 목이 마르거든 그릇에 가서 소년들이 길어 온 것을 마실지니라 하는지라 |
10. | 룻이 엎드려 얼굴을 땅에 대고 절하며 그에게 이르되 나는 이방 여인이거늘 당신이 어찌하여 내게 은혜를 베푸시며 나를 돌보시나이까 하니 |
11. | 보아스가 그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네 남편이 죽은 후로 네가 시어머니에게 행한 모든 것과 네 부모와 고국을 떠나 전에 알지 못하던 백성에게로 온 일이 내게 분명히 알려졌느니라 |
12. | 여호와께서 네가 행한 일에 보답하시기를 원하며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의 날개 아래에 보호를 받으러 온 네게 온전한 상 주시기를 원하노라 하는지라 |
세상의 눈으로 볼 때에 룻이 바보 멍청이 같은 결정을 했지만, 나오미 고향에서는 어떤 대우를 받습니까? 어떤 대우가 아니라, 나중에 룻은 이스라엘의 성군 다윗 왕의 조상이 되지 않습니까? 아니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스런 그 엄청난 족보에 기록되지 않습니까? 마1:1-6의 말씀을 보세요!
1. |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계보라 |
2. | 아브라함이 이삭을 낳고 이삭은 야곱을 낳고 야곱은 유다와 그의 형제들을 낳고 |
3. | 유다는 다말에게서 베레스와 세라를 낳고 베레스는 헤스론을 낳고 헤스론은 람을 낳고 |
4. | 람은 아미나답을 낳고 아미나답은 나손을 낳고 나손은 살몬을 낳고 |
5. | 살몬은 라합에게서 보아스를 낳고 보아스는 룻에게서 오벳을 낳고 오벳은 이새를 낳고 |
6. | 이새는 다윗 왕을 낳으니라 다윗은 우리야의 아내에게서 솔로몬을 낳고 |
물론 우리의 상식으로는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어떻게 이방여인이 이런 선택을 할 수가 있었는가? 그러나 선택을 할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라고 우리는 이해를 할 수 있지만 그러나 그 안에는 시어머니 나오미의 깊은 신앙심에서 나오는 그 따뜻한 마음이 룻의 마음을 움직이게 하는 결정적인 동기가 되었던 것입니다. 단지 하나님의 은혜로 며느리 룻이 내린 결단이라고만 이해를 하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시어머니 나오미를 통하여 드러내 주신 것입니다.
그렇지 않을까요? 만약에 시어머니 나오미가 며느리들을 괴롭히고 힘들게 했었더라면, 그리고 쓸데없는 잔소리를 하면서 이방여인이라고 무시를 했었더라면, 은혜를 아무리 넘치도록 내려주실지라도, 누가 따를까요? 아무도 따르지 않을 것입니다. 넘치는 은혜 속에서도 못된 시어미 노릇을 했더라면 오히려 그 집 모든 남자들이 다 죽었을 때, 며느리들이 복수했을 것입니다. 만약에 못되고 악한 시어머니 노릇을 했었더라면, 아들이 죽고 나오미의 고향으로 나와 함께 가자라고 했을 때, 노망했냐고 악담을 했을지도 모르는 노릇이지요! 그러나 나오미는 함께 살면서 늘 두 며느리에게 기막히게 소중한 신앙인으로써 본이 되었기에, 놀라운 선택을 룻이 믿고 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선택은 엄청난 영광을, 이 세상의 모든 대왕들도 누리지 못하는 최대의 영광을 룻이 누리게 됩니다. 눈물골짜기를 지나면서 샘의 곳이 되었고 이른 비의 은혜를 입게 됩니다. 시어머니인 나오미의 아름다운 신앙 때문에 룻은 세상 말로 팔자가 핀 것입니다. 어떤 팔자가 된 것입니까?
자기의 뜻을 포기하고 하나님의 뜻을 따르므로, 창조주 하나님께서 인정하시고 칭찬하시는 여인이 졸지에 된 것입니다. 우리는 어떻습니까? 시온의 대로를 향한 나의 신앙을 통하여 영적인 룻을 생산하고 있습니까? 아니면 나의 형편없는 부끄러운 신앙 때문에 하나님의 나라의 문을 닫게 되는 악한 도구입니까? 하나님께서 나 때문에 학을 띠고 계십니까? 그래서 전도란 무엇보다도 내가 있는 곳에서 달라도 아주 달라야 합니다. 달라도 조금만 다른 것이 아니라 완전하게 달라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악을 선으로 갚아야 될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어떻습니까?
악을 선으로 갚기는커녕 선을 악으로 갚을 때가 없었나요? 자기보다 잘하면 박수를 쳐 주는 것이 아니라 시기 질투가 자연스럽게 나타나지 않던가요? 신앙을 가진 부모로써 자식들이 룻처럼 그런 미련한 거룩한 결정을 할 수 있도록 어떤 교육을 하고 있으십니까? 아니면 형편없는 신앙 때문에 자식들로부터 무시를 당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우리는 이제 이 세상의 방법과 원리를 이미 포기한 존재들입니다.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을 박은 자들입니다.
오직 위의 것만을 바라봐야 됩니다. 세상의 것으로 즐거워하지 말아야 됩니다. 그런데 같이 살고, 만나고 있는 이웃들에게 성도된 자신이 세상 사람과 다르지 않다면, 이 보다 걱정되는 일은 없을 것입니다. 만약에 그렇다면, 그것은 자신의 가족과 이웃에게 독약을 먹이고 있는 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성도가 세상 사람처럼 살면, 가치관이 전혀 다르지 않다면, 자신의 가족과 이웃을 아주 천천히 잔인하게 죽이는 대단히 악랄한 자라고 해도 틀리지 않은 것입니다.
사랑하는 자신의 가족과 이웃이 사망의 길로 따라가지 못하도록, 간교하게 속이는 세상의 원리에 대하여 철저하게 방어를 할 수 있도록, 성도된 지체들이 땀 흘려가면서 믿음으로 인도해야 당연한 것인데,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불행이요 재앙입니다. 동의하십니까? 아멘- 그러나 룻에게는 시어머니 나오미가 늘 같이 살면서 신앙의 본을 보여 주었기에 가장 최악이었던 그 입장에도 세상의 길이 아닌 생명의 길, 편안한 자신의 길이 아닌 좁고 좁은 하나님의 길을 따라나서게 된 것이지, 룻이 나오미로부터 아무 본이 될 만한 것이 전혀 없었는데, 하나님께서 단지 강권하셨기에, 그래서 룻이 나오미를 따라나섰다가 대박이 났다! 라는 그런 생각은 하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한 영혼의 전도가 누워 떡먹기 식으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자신이 죽어야 할 것입니다. 그래서 그 전도자에 대하여 어떤 평가를 내리시던가요? 롬10:14-15입니다.
14. | 그런즉 그들이 믿지 아니하는 이를 어찌 부르리요 듣지도 못한 이를 어찌 믿으리요 전파하는 자가 없이 어찌 들으리요 |
15. |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으면 어찌 전파하리요 기록된 바 아름답도다 좋은 소식을 전하는 자들의 발이여 함과 같으니라 |
그 발에 대하여 아름답다고 하십니다. 때문에 나오미의 가정처럼 자랑스러운 가정이요 아름다운 자녀로 키우시고 싶으시다면 부모된 우리들은 다 내려놓아야 할 것입니다.
두 번째로 오늘 말씀을 통하여 주시는 교훈은 그 이상이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룻1:14의 말씀을 보세요!
14. | 그들이 소리를 높여 다시 울더니 오르바는 그의 시어머니에게 입 맞추되 룻은 그를 붙좇았더라 |
며느리 오르바를 보세요! 그녀도 대단히 괜찮은 며느리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하나님의 가정으로 시집을 온 것을 보더라도 보통 여인은 아니었다는 것을 알게 합니다. 최고의 기회를 받았던 것입니다. 세상 적으로는 아무 것도 없는 집안, 이방나라에서 온 별 볼일이 없어 보이는 그런 나오미 가정으로 시집을 왔기에 게다가 삶의 원리와 방법이 전혀 다른 가정이기에 이방여인으로써는 이중삼중의 부담이 되는 처지인데, 그래도 결혼을 한 것을 보면, 오르바도 보통은 넘는다. 라고 평가를 쉽게 내릴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결국 오르바는 세상으로 다시 돌아갑니다. 시작은 잘했었지만, 결국은 시어머니의 설득에 진정한 복을 포기하고 만, 여인이 되고 만 것입니다.
이 여인 오르바의 선택으로 다시 돌아간 그녀의 삶이 어떠했을까요? 행복했을까요? 후회를 했을까요? 하지만, 돌아간 후에, 오르바가 세상에서 보고 듣는 현실이 다 하나님의 뜻과 반대이었기에 다시 세상을 따라갈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물론 그 당시에, 시어머니를 떠난 오르바와 끝까지 남은 룻 중에 누가 바른 선택이었을까? 당장은 누구의 선택이 잘한 것인지 판가름이 나지 않았겠지만, 그후, 그 판가름은 끝까지 따라간 룻이 복된 선택이었다는 것이 아닙니까? 이렇게 분명하게 드러났기에, 그래서 제가 드리고 싶은 말씀은 하나님의 복을 받으려면, 보통으로 인정을 받는 수준에서 머물러 있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오르바가 남편이 죽고 난 후에, 어쩔 수가 없어서 자신의 나라 모압으로 돌아오는 결정에 대하여 그 누구도 욕을 하거나 흉을 보지 않았을 것입니다. 오히려 수고했다, 어찌 그런 집으로 시집을 가서 과부가 되었는고, 하면서 주변의 위로를 받을 수 있었지, 잘못 했다고 수근 거리는 사람들은 한 사람도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진정한 복된 자가 되려면, 보통의 결정이 아닌 그 수준을 넘는 룻과 같은 그 결정을 할 수 있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쉽게, 쉽게 구렁이가 담을 넘어가는 식으로 신앙생활을 대충 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이 정도면 되겠지! 생각하고, 남이 하는 정도로만 안심하고 남들이 하는 수준에서 머물면 성공할 수 없습니다. 그랬다가는 진정한 복중의 큰 복을 놓친 오르바 짝이 되고 말 것입니다. 지금은 오르바가 죽은 후에, 룻의 복을 보면서 얼마나 후회를 하고 있을까요?~지금 우리들이 오르바의 그 후회를 향한 선택을 하면서 수고하고 있는 것은 아닙니까?~ 한 번의 선택으로 영원한 후회를 한 오르바와 영원한 복을 거머쥔 룻을 보면서 우린 많은 생각을 해야 할 것입니다.
나의 결단과 결정이 어떤 결과로 이어질지, 이런 오늘의 말씀을 보면서, 고민하지 아니한다면, 말씀을 배울 이유도, 말씀을 들을 이유도 없을 것입니다. 한 번의 선택으로 이렇게 나뉘고 만다면, 성도된 우린 얼마나 매사에 신중해야 할까요? 보통 정도로는 너무나 부족합니다. 그 이상, 훨씬 그 이상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결단과 결정을 하면서 대충 내려놓아서는 안 될 것입니다. 완전 다 맡겨버려야 합니다. 룻처럼 아주 다 포기하고 온전히 따라야 할 것입니다. 그 결과 룻은 복의 여인이 됩니다. 이런 복을 위하여 우리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영원한 칭찬과 자랑이 되는 영광스런 결과를 눈앞에 두고 대충하다가 놓치게 된다면, 우린 며느리 오르바보다 더 큰 후회를 하고야 말 것입니다. 어떻습니까? 믿음의 성도로서, 룻처럼 그 영광을 거머쥐고 싶지 않으십니까? 아멘이지요! 그 영광을 위하여 그 영광을 거머쥐기 위하여 온갖 고난의 삶, 눈물 골짜기를 룻처럼 지나야 합니다. 룻은 엘리멜렉의 아들에게 시집가서 시어머니 나오미와 곁에서 살면서 하나님을 알게 되었고, 그래서 나오미를 따를 수 있었던 것입니다. 세상의 길을 버릴 수 있었고 all in하기로 결심을 했고 결정적인 순간에 all in를 했던 것입니다.
강한 표현을 한다면, 룻은 나오미를 통하여 하나님께 반한 것입니다. 홀딱 빠진 것입니다. 그러나 그 결과는 이미 알지 않습니까? 그렇다면 우리도 룻처럼 all in이 문제가 될 수 있을까요? 룻이 시집가서 결국 10년 만에 내린 결정이 all in이었습니다. 그런데 우린 무엇이 그렇게 부족하여, 여전히 머뭇거리고 있어야 합니까? 헛된 세상의 즐거움과 영광에서 머뭇거리지 말라고 하십니다. 창조주 하나님, 구원의 하나님께서 깨끗하게 세상의 것들을 다 포기하고 전심으로 따라오면 룻의 영광을 주시겠다고 이미 약속을 해 주셨습니다. 그런데 무엇이 그렇게 의심스럽고, 두려워서 여전히 뒷짐을 지고 이리저리 두리번거릴 수 있단 말입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믿지 못하여 여전히 머뭇거리고 있는 우린, 룻이 당시에 내린 그 결단에 대하여 깊이 생각해 봐야 합니다. 룻이 시어머니를 따라야겠다는 그 결정을 내내 고민하다가 어렵게 내렸을까요? 아니면 하나님의 가정인 나오미와 살면서 이미 내린 결정이었을까요? ~룻은 나오미와 살면서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보았기에 룻은 이 집에, 세상 말로 표현을 빌린다면, 뼈를 묻기로 작정을 했던 것입니다. 룻1:6-7의 시기 인 고향 베들레헴으로 돌아오는 바로 그 때, “별안간 도박하는 식으로 그래 죽기 아니면 까무라치기다, 못 먹어도 고야! 또는 모 아니면 도야” 이런 식으로 내린 결정이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나오미의 가정이 달라도 다르기에 그녀는 감동했을 것이요, 어떻게 하면 자신도 이런 믿음의 가정을 가질 수가 있을까? 라는 거룩한 고민을 늘 하고 있었기에, 결정해야 되는 순간에 룻1:16-17의 기막힌 말씀을 담대하게 할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룻의 그 고백이 너무나 귀하고 아름답기에 함께 다시 봅니다.
16. | 룻이 이르되 내게 어머니를 떠나며 어머니를 따르지 말고 돌아가라 강권하지 마옵소서 어머니께서 가시는 곳에 나도 가고 어머니께서 머무시는 곳에서 나도 머물겠나이다 어머니의 백성이 나의 백성이 되고 어머니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되시리니 |
17. | 어머니께서 죽으시는 곳에서 나도 죽어 거기 묻힐 것이라 만일 내가 죽는 일 외에 어머니를 떠나면 여호와께서 내게 벌을 내리시고 더 내리시기를 원하나이다 하는지라 |
이런 고백은 단번에 줄줄 나오는 것이 아니지 않습니까? 평시에 준비하고 준비하는 신앙의 그 과정이 있었기에 눈물 골짜기를 지나면서 이런 확고부동(確固不動)한 선언을 할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말씀을 늘 드리고 있지만, 평시에 신앙의 준비를 철저하게 해왔던 일꾼들은 일반적인 신앙인들하고는 달라도 전혀 다른 결정을 한 순간에 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주신 기회를 놓치지 않습니다. 홈런타자가 들어오는 공을 쳐서 담장을 훌쩍 넘기듯이 말입니다. 축구선수가 온 기회를 놓치지 않듯이 말입니다.
그러나 평시 신앙의 준비를 해오지 못했던 사람들은 어떤지 아십니까? 늘 후회와 원망을 달고 삽니다. 왜요 이것도 저것도 아닌 회색분자의 삶을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세상의 눈치를 보면서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결국에는 그런 자들이 가슴을 치면서, 피눈물이 나는 통탄과 후회를 하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평시에 신앙을 잘 준비하는 성도들은 언제나 좁은 길, 자기 부인을 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대충 신앙생활을 하는 성도들은 늘 세상 편에 서 있습니다.
자기만 잘 살아보려고, 자기만 편안하려고 늘 머뭇거리고 있습니다. 그러다가보니 주신 말씀을 믿지 못하고 이러 저리 살피기만 하는데, 그러나 그 결과는 성경에서 망할 수밖에 없다고 아주 자세히 늘 이야기 해 주고 있습니다. 자기중심의 선택을 하기에 나중에 꼭 후회를 합니다. 그래서 대충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들은 반듯한 성도를 만나면, 슬슬 피하거나, 숨거나, 입을 다물어 버리고 말지요! 망하는 길입니다. 안 됩니다. 우린 지금부터라도 보통 이상으로 가야 합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생각해 보면, 일류 프로 선수들의 장점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그들은 미치도록 평상시에 피땀을 흘리는 훈련을 해 오고 있기에 시합에 들어가면, 오는 기회는 절대로 놓치지도 않지만, 오지 않는 기회일지라도 스스로 기회를 만들어서 자신에 대한 그 실력을 꼭 발휘(發揮)하고 만다는 것입니다. 우리들에게 주어지는 그 영광은 누가 거머쥘 수 있는가? 물론 그 기회는 누구에게나 기회를 주십니다. 그러나 미치도록 평시에 준비해 오지 않았던 사람들에게는 그 기회를 눈앞에 두고서도 거머쥐지 못합니다.
실력이 없기에 거머쥘 수가 없습니다. 간곡하게 부탁을 드립니다. 나름대로 다른 사람과 다른, 세상에서 맛볼 수 없는, 하나님이 주시는 그 기쁨으로 감사하면서 기도의 삶을 쉬지 않고 계신다면 복을 거머쥔 자가 되는 것이지만, 만약에 그렇지 않으시다면, 당장 대충의 삶에서, 보통에서 벗어나셔야 할 것입니다. 간절하게 부탁합니다. 이제부터라도 미치도록 땀 흘리시면서 하나님께 all in 하세요!
그것이 지혜요 복이요 능사로써, 그 영광을 거머쥐는 기회가 올 것입니다. 늦었다고 머뭇거리지 마시고, 포기하지 마시고, 지금부터라도 본격적으로 시작해 보세요! 룻이 거머쥔 그 영광을 하나님께서 거머쥐도록 은혜의 기회를 지금도 공평하게 주십니다. 그런데 그 기회가 자기에게 보이지 않는 이유는, 대충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 거룩한 믿음의 수고를 항상 하고 있으시면, 하나님께서는 반듯이 그 룻의 그 영광을 거머쥐게 해 주십니다. 영광의 하나님을 만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우리들은 남을 나보다 낫게 여기시라는 그 말씀을 이루기 위하여, 몸부림을 쳐야 합니다. 눈물 없이 이룰 수 없습니다. 무엇보다도 살려달라고 이를 위하여 기도를 쉬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죽기 살기로 골방에서의 은밀한 기도를 생활화하셔야 됩니다. 보통으로는 안 됩니다. 보통의 수준은 주시는 기회까지도 다 보이지 않기에 늘 놓칠 뿐입니다.
셋째로 주시는 말씀은 이스라엘이 그 당시 영적으로 도덕, 윤리적으로 얼마나 타락했습니까?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 가운데서도 하나님의 약속을 이루어 내셨습니다. 비록 타락하여 나라까지도 흉년으로 인하여 조국을 떠나야 되는 그 위기를 이스라엘이 맞게 되었지만, 그러나 그 가운데서도 하나님은 그 구원을 쉬지 않으셨고 결국 이방 여인 룻을 통하여 하나님의 구원의 그 약속을 성취하셨습니다. 룻기 당시처럼 하나님의 음성이 들리지 않는다고 하여 하나님의 손길을 느끼지 못한다고 하여 하나님의 뜻이 멈춘 것이 아닙니다. 신앙을 내 기준과 내 생각으로 확인하는 것만큼 미련하고 못난 것은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능력을 보여 달라거나, 구하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 신앙인지를 우리는 알 수가 있습니다.
룻 당시에도 하나님의 능력을 볼 수도, 느낄 수도 없었지만, 그러나 살아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그들의 눈에는 전혀 보이지 않았지만, 느낄 수도 없었지만, 그러나 그 최악에서 최고를 이루시고야 말지 않았습니까? 가장 안전한 신앙은 말씀만으로 만족해야 할 것입니다. 말씀을 그대로 믿는 것이 가장 안전하고 실수가 없고, 어떤 처지에서도 흔들림이 없이 끝까지 똑바로 갈 수 있는 유일한 길이 이 성경말씀입니다. 인간의 방법, 원리 등을 동원하지 마시고 말씀에 순종하라! 하면 순종하시고, 사랑하라! 하시면 사랑하고, 하지 말라! 하시면 하지 마시고, 물론 지독스런 손해와 고통이 동반 될 것입니다. 그러나 그 고통과 손해는 더 큰 영광, 전혀 비교할 수 없는 영광을 거머쥐기 위한 아주 작은 것에 대한 버림과 손해일 뿐입니다. 롬8:18입니다.
18. | 생각하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비교할 수 없도다 |
고후4:16-18입니다.
16. | 그러므로 우리가 낙심하지 아니하노니 우리의 겉사람은 낡아지나 우리의 속사람은 날로 새로워지도다 |
17. | 우리가 잠시 받는 환난의 경한 것이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의 중한 것을 우리에게 이루게 함이니 |
18. | 우리가 주목하는 것은 보이는 것이 아니요 보이지 않는 것이니 보이는 것은 잠깐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함이라 |
이 영적인 원리를 이방인 여인이었던 룻이 보통 이상의 신앙생활을 통하여 터득했기에 아무도 갈 수 없는 하나님의 길을 선택할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내가 세상의 어떤 것에 미쳐서 늘 갖고 다니고 잊지 못해서 품고 다니듯이 하나님의 원리를 그렇게 내 것으로 만들려고 해 보세요! 바로 그 천국의 생명수가 흐르는 화려한의 그곳이 보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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