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너를 좇는 자가 너무 많은 즉
(성도들은 전쟁을 힘으로 하지 않는다!)
오늘 말씀을 가만히 보세요! 몇 가지로 말씀을 드립니다. 첫째-기드온 300용사와 바다의 모래처럼 허다한 미디안과 아멜렉 족속이 싸웠는데 누가 이겼습니까? 모든 기준과 원리를 포기한 기드온 300용사가 허다한 적군의 세력을 완전하게 이깁니다. 말이 될까요? 말이 전혀 되지 않았는데 신앙의 현실은 말이 안 되는 기적이 나타나더라는 것입니다. 왜, 그럴 수 있을까요? 어떻게 수천만 명과 300명의 싸움에서 300명이 이길 수 있을까요? 지난 금요 성경 시간에 말씀을 드렸지만 듣지 못한 지체들이 있어서 말씀을 드립니다.
세상에서는 승리하기 위하여 미디안 족속처럼 있는 모든 것들을 다 동원하여 싸웁니다. 모든 사람, 모든 물자, 모든 무기, 할 수 있는 것이 있다면, 있는 것들을 다 갖고 나와서 싸웁니다. 그러나 하나님 나라의 전쟁은 완전 반대입니다. 다 버리고 싸워야 합니다. 즉 오직 하나님만을 믿고 나가서 싸워야 합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방법은 세상하고 다릅니다. 그런데 문제는 다 동원하여 전쟁을 하는 세상의 원리가, 완전하게 다 버리고 오직 하나님만을 믿고 나가서 싸우는 소수의 성도들을 전혀 이기지 못하더라는 것입니다. 세상적으로는 모순이지만, 전혀 말이 안 되는 원리이기에 여전히 그들은 힘을 키우고 능력을 키우는데 모든 수고를 다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성도된 너희들은 세상의 모든 것들, 학벌, 돈, 힘, 자랑, 즐거움, 욕망, 능력, 실력까지 다 버리고 싸워야 된다고, 그래서 이 몸부림을 치지 않으면 안 되는 자들입니다. 빈털터리 신세라고 하면 맞을까요? 그렇습니다. 입을 것과 먹을 것만으로 자족하라고 하십니다. 이해가 되세요? 일을 하지 말고 공부를 하지 말라는 뜻이 아닙니다. 일을 열심히 하셔야 하고 공부도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열심히 하시되,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열심히 아니라 단 정직해야 합니다. 속이면 안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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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칙대로 해야 합니다. 그런데 그들이 다 가진 자, 다 동원한 세상 세력과의 전쟁을 하면, 빈털터리에 불과한 정말 가난하게 보이는 그들이 늘 100전 100승입니다. 다 가진 자들에게 절대로 지지 않더라는 것입니다. 왜 그럴까요? 어떻게 이길 수가 있을까요? 거기에는 진리가 숨어 있습니다. 진정한 힘과 능력은 오직 하나님으로부터 나오기 때문입니다. 인간의 모든 힘과 능력과 지혜를 다 동원할지라도 하나님하고는 상대가 안 된다는 뜻입니다. 시33:10-20, 시37:14-40입니다.
(시 33:10) |
여호와께서 나라들의 계획을 폐하시며 민족들의 사상을 무효하게 하시도다 |
(시 33:11) |
여호와의 계획은 영원히 서고 그의 생각은 대대에 이르리로다 |
(시 33:12) |
여호와를 자기 하나님으로 삼은 나라 곧 하나님의 기업으로 선택된 백성은 복이 있도다 |
(시 33:13) |
여호와께서 하늘에서 굽어보사 모든 인생을 살피심이여 |
(시 33:14) |
곧 그가 거하시는 곳에서 세상의 모든 거민들을 굽어살피시는도다 |
(시 33:15) |
그는 그들 모두의 마음을 지으시며 그들이 하는 일을 굽어살피시는 이로다 |
(시 33:16) |
많은 군대로 구원 얻은 왕이 없으며 용사가 힘이 세어도 스스로 구원하지 못하는도다 |
(시 33:17) |
구원하는 데에 군마는 헛되며 군대가 많다 하여도 능히 구하지 못하는도다 |
(시 33:18) |
여호와는 그를 경외하는 자 곧 그의 인자하심을 바라는 자를 살피사 |
(시 33:19) |
그들의 영혼을 사망에서 건지시며 그들이 굶주릴 때에 그들을 살리시는도다 |
(시 33:20) |
우리 영혼이 여호와를 바람이여 그는 우리의 도움과 방패시로다 |
(시 37:14) |
악인이 칼을 빼고 활을 당겨 가난하고 궁핍한 자를 엎드러뜨리며 행위가 정직한 자를 죽이고자 하나 |
(시 37:15) |
그들의 칼은 오히려 그들의 양심을 찌르고 그들의 활은 부러지리로다 |
(시 37:16) |
의인의 적은 소유가 악인의 풍부함보다 낫도다 |
(시 37:17) |
악인의 팔은 부러지나 의인은 여호와께서 붙드시는도다 |
(시 37:18) |
여호와께서 온전한 자의 날을 아시나니 그들의 기업은 영원하리로다 |
(시 37:19) |
그들은 환난 때에 부끄러움을 당하지 아니하며 기근의 날에도 풍족할 것이나 |
(시 37:20) |
악인들은 멸망하고 여호와의 원수들은 어린 양의 기름 같이 타서 연기가 되어 없어지리로다 |
(시 37:21) |
악인은 꾸고 갚지 아니하나 의인은 은혜를 베풀고 주는도다 |
(시 37:22) |
주의 복을 받은 자들은 땅을 차지하고 주의 저주를 받은 자들은 끊어지리로다 |
(시 37:23) |
여호와께서 사람의 걸음을 정하시고 그의 길을 기뻐하시나니 |
(시 37:24) |
그는 넘어지나 아주 엎드러지지 아니함은 여호와께서 그의 손으로 붙드심이로다 |
(시 37:25) |
내가 어려서부터 늙기까지 의인이 버림을 당하거나 그의 자손이 걸식함을 보지 못하였도다 |
(시 37:26) |
그는 종일토록 은혜를 베풀고 꾸어 주니 그의 자손이 복을 받는도다 |
(시 37:27) |
악에서 떠나 선을 행하라 그리하면 영원히 살리니 |
(시 37:28) |
여호와께서 정의를 사랑하시고 그의 성도를 버리지 아니하심이로다 그들은 영원히 보호를 받으나 악인의 자손은 끊어지리로다 |
(시 37:29) |
의인이 땅을 차지함이여 거기서 영원히 살리로다 |
(시 37:30) |
의인의 입은 지혜로우며 그의 혀는 정의를 말하며 |
(시 37:31) |
그의 마음에는 하나님의 법이 있으니 그의 걸음은 실족함이 없으리로다 |
(시 37:32) |
악인이 의인을 엿보아 살해할 기회를 찾으나 |
(시 37:33) |
여호와는 그를 악인의 손에 버려 두지 아니하시고 재판 때에도 정죄하지 아니하시리로다 |
(시 37:34) |
여호와를 바라고 그의 도를 지키라 그리하면 네가 땅을 차지하게 하실 것이라 악인이 끊어질 때에 네가 똑똑히 보리로다 |
(시 37:35) |
내가 악인의 큰 세력을 본즉 그 본래의 땅에 서 있는 나무 잎이 무성함과 같으나 |
(시 37:36) |
내가 지나갈 때에 그는 없어졌나니 내가 찾아도 발견하지 못하였도다 |
(시 37:37) |
온전한 사람을 살피고 정직한 자를 볼지어다 모든 화평한 자의 미래는 평안이로다 |
(시 37:38) |
범죄자들은 함께 멸망하리니 악인의 미래는 끊어질 것이나 |
(시 37:39) |
의인들의 구원은 여호와로부터 오나니 그는 환난 때에 그들의 요새이시로다 |
(시 37:40) |
여호와께서 그들을 도와 건지시되 악인들에게서 건져 구원하심은 그를 의지한 까닭이로다 |
그래서 어떤 고백과 찬송이 봇물이 터지듯이 터져 나오는지 아세요? 시27:1-3입니다.
(시 27:1) |
여호와는 나의 빛이요 나의 구원이시니 내가 누구를 두려워하리요 여호와는 내 생명의 능력이시니 내가 누구를 무서워하리요 |
(시 27:2) |
나의 대적, 나의 원수된 행악자가 내 살을 먹으려고 내게로 왔다가 실족하여 넘어졌도다 |
(시 27:3) |
군대가 나를 대적하여 진칠찌라도 내 마음이 두렵지 아니하며 전쟁이 일어나 나를 치려 할찌라도 내가 오히려 안연하리로다 |
세상은 힘으로 평가를 하기에 ‘힘 힘 힘’하고 있지만, 그러나 하나님의 나라는 힘과 능력이 아닙니다. 오직 믿음입니다. 하나님을 얼마나 알고 그래서 믿고 다 맡겨버렸느냐에 승리가 달려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힘과 재물로 이기는 것이 이기는 게 아니라는 뜻입니다. 성도로서 모든 것을 하나님에게 맡기면 맡길수록 나타나는 능력은, 수천만 대 300명에서 300명이 승리하듯이 진정한 힘이 하나님으로부터 나오고 있음을 알게 하십니다. 그래서 삿7:2입니다.
(삿 7:2) |
여호와께서 기드온에게 이르시되 너를 좇은 백성이 너무 많은즉 내가 그들의 손에 미디안 사람을 붙이지 아니하리니 이는 이스라엘이 나를 거스려 자긍하기를 내 손이 나를 구원하였다 할까 함이니라 |
그래서 세상의 힘을 두려워하지 않는 300명의 믿음의 군사들을 고르셨던 것입니다. 그 안에 포함되었다는 것이 얼마나 큰 영광인지를 아십니까? 너무나 큰 영광입니다. 왜요? 조금 후에 말씀을 드립니다. 너무나 바보 같은 질문이지만, 하나님의 백성으로 전쟁에 참여한다는 것이 이익인지, 아닌지를 판단해 보자는 것입니다. 누가 전쟁에 나가고 싶어 할까요? 전쟁은 누구든지 두려워합니다. 누구든지 피하고 싶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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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상부의 지시가 지금 떨고 있는 자들은 자기 집으로 곧 돌아가라는 것입니다. 떨고 있던 자들에게 두려워하던 차에, 돌아가라는 상부의 조치가 얼마나 큰 기쁨을 줄까요? 그러나 그 기쁨은 손해입니다. 돌아간 자들에게는 일생일대의 실수입니다. 왜요? 왜 손해입니까? 좋다고 집으로 돌아간 자들에게는 큰 손해요 일생일대의 실수가 되는 이유는 여자의 뒤꽁무니를 쫓아다니던 그런 한심한 바락의 신세를 면하는 기회를 놓쳐버렸기 때문입니다. 즉 약점이 강점이 되고 단점이 장점이 되는 기회를 놓치고 말았기 때문입니다. 돌아가므로 그 사람은 새로운 삶, 개천에서 용이 될 수 있는 이루 말할 수 없는 그 기회를 놓쳤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이 왜 여전히 힘들어 하고 불평하고 원망하면서 버려야 할 떠나야 할 못난 삶에서 벗어나지 못하는지 아세요? 어떻게 해야 되는지, 전혀 모르기 때문입니다. 모르는 그들은 보이는 세상의 힘과 능력이 전부 다 인 줄을 알고 삽니다. 정말 우물 안의 개구리와 같기 때문에 수천만 명하고 싸우려는 기드온의 믿음의 용사 300명을 비웃게 됩니다. 기드온 300명을 비웃는 그들의 목적은 보면 오직 돈과 힘이 전부입니다. 그러나 잠21:30-31을 보세요!
(잠 21:30) |
지혜로도 못하고, 명철로도 못하고 모략으로도 여호와를 당하지 못하느니라 |
(잠 21:31) |
싸울 날을 위하여 마병을 예비하거니와 이김은 여호와께 있느니라 |
돈과 힘과 비교할 수 없는 놀라운 다른 길, 다른 삶에 대하여 완전 몰라서 우물 안의 개구리처럼 삽니다. 그러나 그것은 스스로를 속이고 있고 속고 있는 것입니다. 참 미안하지만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보이는 것은 보이지 않는 것과 완전 비교가 되지 않기에, 인생은 안개와 같다고 우리 눈에 보이는 가치에 대하여 이슬이라고도 하시고 곧 시들 꽃과 같다고 합니다.
그런데 아무 것도 아닌, 보이는 것을 갖기 위하여, 아니 더 갖기 위하여 무슨 수고를 하던가요? 곧 사라질 힘과 재물을 위하여 목숨을 걸고 있습니다. 그래서 믿음의 300용사가 이긴다는 말씀을 또 삿7장을 통하여 주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말씀을 해 주시지만, 누가 오늘의 말씀을 믿고 하나님에게 다 맡겨버리던가요? 거의 없습니다. 다들, 예배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면, 다시 힘의 세계에 빠져 태연하게 방황하면서 전혀 고민 없이 얼마나 열심히 헛된 세상을 전심전력으로 따라가는지 모릅니다. 그리고 너무나 당연시 합니다. 아무렇지 않게 여기면서 정신없이 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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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기가 막힙니다. 그리고 다시 교회를 나오면 아하! 내가 그렇구나! 인정은 하지만, 여전히 다시 세상으로 지금까지 빠져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렇게 몇 년을 하셨나요? 언제 하나님 때문에 손해를 보았던가요? 언제 주님 때문에 세상의 구경거리, 만물의 찌기가 되어서 기뻐하셨습니까? 아니면 여전히, 세상에서 물질적 손해, 마음의 고통을 받으면, 썩을 자존심 때문에 견디지 못하여 미워하고 불평하고 원망하면서 복수하리라! 지지 않으리라! 이빨을 바득바득 갈았습니까? 사람에게 당하므로 끊었던 술과 담배까지도 다시 시작하지는 않았습니까? 그것이 패배자입니다.
물론 세상 안에서는 아무리 이겨도 패배자입니다. 누구든지 믿음으로 살지 않으면 다 패배자입니다. 그러나 믿음으로 사는 성도가 주님 때문에 당하는 것과 져주는 것은 얼마나 잘한 것인지, 얼마나 멋진 존재인지 알기는 아십니까? 주님 때문에 당한 손해와 주님 때문에 받은 아픔이 얼마나 위대한 존재가 된 자신인지를 알아야 합니다. 그런데 아무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들의 체질을 잘 아시는 하나님께서 그런 영적인 체험으로 성숙한 신앙인으로 자라도록 하시려고 전쟁 중에서라도 이해할 수 없는, 말도 안 되는 항아리, 횃불 전쟁과 300명을 남기고 돌아가라는 감원조치를 내리신 것을 삿7장을 통하여 알아야 지만 될 것입니다.
내 생각과 기준은 언제나 실패와 절망과 미움과 불안과 고통과 슬프게 하는 그 정도 밖에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이점을 아신다면, 더 이상 자기중심에서 살아가려고 몸부림치는 일은 없어야 할 것입니다. 무슨 일이든지 어떤 사건이든지 하나님의 편에서 보시고 판단하시고 그리고 선택하는 연습을 끊임없이 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힘들다고 잘 안 된다고 포기하지 마시고 끝까지 해 보시면, 시편이 보이고 말씀이 보입니다. 그럴 때, 아하! 이것이구나! 기쁨과 감사의 고백이 절로 나오게 됩니다. 절대로 보증합니다. 다시 삿7:4-7의 말씀을 보세요!
(삿 7:4) |
여호와께서 또 기드온에게 이르시되 백성이 아직도 많으니 그들을 인도하여 물 가로 내려가라 거기서 내가 너를 위하여 그들을 시험하리라 내가 누구를 가리켜 네게 이르기를 이 사람이 너와 함께 가리라 하면 그는 너와 함께 갈 것이요 내가 누구를 가리켜 네게 이르기를 이 사람은 너와 함께 가지 말 것이니라 하면 그는 가지 말 것이니라 하신지라 |
(삿 7:5) |
이에 백성을 인도하여 물 가에 내려가매 여호와께서 기드온에게 이르시되 누구든지 개가 핥는 것 같이 혀로 물을 핥는 자들을 너는 따로 세우고 또 누구든지 무릎을 꿇고 마시는 자들도 그와 같이 하라 하시더니 |
(삿 7:6) |
손으로 움켜 입에 대고 핥는 자의 수는 삼백 명이요 그 외의 백성은 다 무릎을 꿇고 물을 마신지라 |
(삿 7:7) |
여호와께서 기드온에게 이르시되 내가 이 물을 핥아 먹은 삼백 명으로 너희를 구원하며 미디안을 네 손에 넘겨 주리니 남은 백성은 각각 자기의 처소로 돌아갈 것이니라 하시니 |
누구를 하나님께서 택하셨던가요? 경계하고 긴장하는 300명의 믿음의 자녀들을 전쟁에 참여하도록 크신 은혜를 베풀어 주셨던 것입니다. 물론 전쟁을 좋아할 자는 없기에 전쟁에 참여하는 것이 하나님이 크신 은혜라고 할 수가 없겠지만, 그러나 하나님의 쪽에서 우리들이 보시고 판단하시고 그리고 선택하시면 그 전쟁에 참여하는 것이 얼마나 영광이요 자랑이요 복인지를 알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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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냐하면 성도들은 늘 영적인 전쟁을 할 수밖에 없는 군사로서의 부름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요구하시는 말씀이 있는데, 엡6:10-17입니다.
(엡 6:10) |
끝으로 너희가 주 안에서와 그 힘의 능력으로 강건하여지고 |
(엡 6:11) |
마귀의 간계를 능히 대적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입으라 |
(엡 6:12) |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을 상대하는 것이 아니요 통치자들과 권세들과 이 어둠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을 상대함이라 |
(엡 6:13) |
그러므로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취하라 이는 악한 날에 너희가 능히 대적하고 모든 일을 행한 후에 서기 위함이라 |
(엡 6:14) |
그런즉 서서 진리로 너희 허리 띠를 띠고 의의 흉배를 붙이고 |
(엡 6:15) |
평안의 복음의 예비한 것으로 신을 신고 |
(엡 6:16) |
모든 것 위에 믿음의 방패를 가지고 이로써 능히 악한 자의 모든 불화살을 소멸하고 |
(엡 6:17) |
구원의 투구와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라 |
선수라면 운동장에서 게임에 출전하여 이기든지 지든지 하여튼 일단은 땀을 흘리면서 죽도록 뛰어야 그것이 선수로서 보람이고, 기쁨이듯이, 성도들은 믿음의 군사들이기에 이 영적 전쟁에 참여하는 것이 복 입니다.
빠지는 것이 잘하는 것이 아닙니다. 군인은 전쟁이 나면 자신과 국가를 지키기 위하여 싸움터로 기꺼이 나가는 것이 자랑이요 가치입니다. 군인이 전쟁이 무서워서 도망하는 것은 군인이 아닙니다. 그런데 거룩한 하나님의 나라의 군사로 부름을 받은 성도가 세상의 세력이 강할 뿐만이 아니라 악하고 악하기에 나를 죽이고 나를 욕되게 하는 그 더러운 세상과 싸우지 아니하고 피하는 것은 탈영병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성도라면 미디안과 아멜렉과 전쟁을 하지 말라고 굳이 주변에서 말려도, 나는 기꺼이 싸워야 한다고, 싸우다가 죽더라도 싸워야 한다고 하면서 자진 출두까지도 망설일 수가 없어야 되는 것입니다.
성도는 이 미디안과의 전쟁을 피해서는 안 됩니다. 이 영적인 전쟁을 두려워서 피하는 것은 성도로써의 모욕이요, 비방거리가 되고, 조소를 받을 뿐입니다. 그러니까 처음에 전쟁이 두려워서 집으로 돌아간 이만 이천 명은 이미 자신을 죽이는 악한 세상이 무서워 피한 것입니다. 그러나 성도된 우리의 운명은 악의 세력인 미디안과의 전쟁을 피하면 안 됩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은 십자가 군사들이기에 언제나 세상의 원리와 이에 깊이 묶인 타락한 자아와 죽도록 싸워야 합니다. 그 싸움을 위하여 평시에 믿음의 훈련, 경건의 훈련을 하지 않으면, 죽을 때까지 패잔병으로 곤욕스럽게 살다가 죽음을 맞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선택한 믿음의 용사 300명은 어떤 영광스러운 영적인 체험을 하게 되던가요? 모래알처럼 가득한 적군을 단번에 쳐부수고 당당한 승리자로 엄청난 전리품을 얻는 복을 누리게 된 것입니다. 기억하셔야 할 것은 단 한 명도 다치거나 죽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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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복된 전쟁터로 부르심을 받아 하나님의 그 크고 크신 힘과 은혜와 능력을 경험해 보고 싶지 않으십니까? 아멘- 아멘이지요! 그럴려면 어떤 하루하루를 살아가야 됩니까? 죽기 살기로 말씀을 마음 판에 새기고 또 새기셔야 하고 골방에서의 기도를 쉬는 죄를 범하지 말아야 합니다. 마치 한국의 고 3 입시생처럼, 파수꾼이 새벽을 기다림처럼 살아가지 않으면 안 됩니다.
준비 없이 사는 성도들, 세상의 것이 좋아서 천금 같은 시간을 마음대로 사용하는 성도들을 하나님께서는 절대로 세워 주지 않으십니다. 그렇게 되면 하나님의 약속을 경험하지 못하게 되고 믿음의 비밀도 확보하지 못합니다. 믿음의 비밀을 확보치 못하면, homeless처럼 빈털터리 신세가 됩니다. 물론 homeless가 좋아 보시이면, 저로서도 할 말은 없지만, 노력을 하여 이웃에게 베풀고 섬기고 나누면서 인자한 자로, 살리는 자로, 그리고 거룩하신 하나님으로부터, “너는 나의 기쁨이야! 자랑이야!” 가 되시려면, 더 이상 세상의 재물과 자랑과 즐거움으로 머뭇거리지 말아야 하실 것입니다. 생명과 복과 사망과 저주 중에 어느 길을 선택하시려고 합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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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삿7장의 말씀에서 꼭 기억할 내용이 한 가지 더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준비가 전혀 안 된 다수보다는 준비된 소수의 정예군을 요구하신다는 점입니다. 준비된 신앙의 정예군들에게는 이 세상의 힘, 미국의 대통령, 미국의 빌 게이츠와 같은 재벌일지라도 전혀 맛볼 수 없는 영적인 승리의 기쁨과 평강과 감사의 삶을 미디안과의 전쟁을 통하여 주신다는 것입니다. 그 기쁨과 감사와 평강이 얼마나 컸으면 하나님의 수많은 자녀들이 수천 년 내내 죽기까지 순종할 수가 있겠습니까?
바울은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가 얼마나 큰지, 자신의 모든 세상의 재물, 권력, 명예까지도 다 배설물로 여겨버리고 세상의 헛된 세력, 우상들과 싸워 죽기까지 하지 않습니까? *** 작아도 적어도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 것이 하나님의 원리입니다. 무엇보다도 자신의 교회가 정말 하나님의 마음을 닮기를 사모하는 십자가의 기막힌 정예군을 준비시키고 있는 교회인지 아닌지를 분명하게 확인하셔야 할 것입니다.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주셔서 구원을 이루신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철저히 준비된 제자를 원하십니다. 미지근한 자녀들은 원하지 않으십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계3:14-16입니다.
(계 3:14) |
라오디게아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라 아멘이시요 충성되고 참된 증인이시요 하나님의 창조의 근본이신 이가 이르시되 |
(계 3:15) |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차지도 아니하고 뜨겁지도 아니하도다 네가 차든지 뜨겁든지 하기를 원하노라 |
(계 3:16) |
네가 이같이 미지근하여 뜨겁지도 아니하고 차지도 아니하니 내 입에서 너를 토하여 버리리라 |
그러나 세상에 푹 빠져서 정신없이 살던 우리들이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을 받았지만 결코 쉽게 변화되지 않습니다. 요한복음을 보시면, 능력의 말씀이 많이 나옵니다. 그런데 요1:9-11, 요2:23-25, 요3:3-4, 10-11, 요4:46-54등의 이 말씀들만이라도 보면,
(요 1:9) |
참 빛 곧 세상에 와서 각 사람에게 비추는 빛이 있었나니 |
(요 1:10) |
그가 세상에 계셨으며 세상은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되 세상이 그를 알지 못하였고 |
(요 1:11) |
자기 땅에 오매 자기 백성이 영접하지 아니하였으나 |
(요 3:3) |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 |
(요 3:4) |
니고데모가 이르되 사람이 늙으면 어떻게 날 수 있사옵나이까 두 번째 모태에 들어갔다가 날 수 있사옵나이까 |
(요 4:46) |
예수께서 다시 갈릴리 가나에 이르시니 전에 물로 포도주를 만드신 곳이라 왕의 신하가 있어 그의 아들이 가버나움에서 병들었더니 |
(요 4:47) |
그가 예수께서 유대로부터 갈릴리로 오셨다는 것을 듣고 가서 청하되 내려오셔서 내 아들의 병을 고쳐 주소서 하니 그가 거의 죽게 되었음이라 |
(요 4:48) |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는 표적과 기사를 보지 못하면 도무지 믿지 아니하리라 |
(요 4:49) |
신하가 이르되 주여 내 아이가 죽기 전에 내려오소서 |
(요 4:50) |
예수께서 이르시되 가라 네 아들이 살아 있다 하시니 그 사람이 예수께서 하신 말씀을 믿고 가더니 |
(요 4:51) |
내려가는 길에서 그 종들이 오다가 만나서 아이가 살아 있다 하거늘 |
(요 4:52) |
그 낫기 시작한 때를 물은즉 어제 일곱 시에 열기가 떨어졌나이다 하는지라 |
(요 4:53) |
그의 아버지가 예수께서 네 아들이 살아 있다 말씀하신 그 때인 줄 알고 자기와 그 온 집안이 다 믿으니라 |
(요 4:54) |
이것은 예수께서 유대에서 갈릴리로 오신 후에 행하신 두 번째 표적이니라 |
느낄 수 있는 것이 사람들은 하나님의 능력과 사랑과 은혜에도 좀처럼 변화되지 않더라는 것을 알게 합니다.
누구든지 하나님의 은혜를 받았을지라도 당장 자신의 더러운 욕심과 더러운 세상의 것도 버리지 못합니다. 그런 신앙의 현실을 하나님도 너무나 잘 아십니다. 아니 우리 자신들을 보더라도 회개하여 돌이키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모르지 않습니다. 그런데 그런 연약한 자녀들을 단지 연약하다는 이유 때문에 돌아올 때까지 마냥, 그냥 편하게 놔, 두는 것이 바른 것일까요? 아닙니다. 그것은 방관이요 방심입니다. 어느 정도 때가 되면 갓난 아이들도 먹던 우유를 밥과 고기로 점차적으로 서서히 바꾸듯이, 신앙도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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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저 앉아서 ‘여기가 좋사옵나이다’ 하는 타성에 젖어서 쉽게 가려는 게으른 자녀들을, 권하고 찌르고 간섭을 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것이 교회의 역할입니다. 생각해 보세요! 보이는 육신의 악한 습관도 좀처럼 고쳐지지 않아서 얼마나 쩔쩔매고 있습니까? 그런데 어떻게 영적인 변화, 즉 나를 버리고 거룩한 하나님의 길로 인도해야 하는 것이 쉽게 편하게 된다고 판단하십니까? 쉽고 편할 수 없기에 사명을 받은 교회 안에는 어린 영혼들이 돌아올 때까지 그냥 놔두지 않으시고 이런저런 이해 할 수 없는 수많은 사건들이 늘 생기도록 하십니다. 그것을 다 이해하려고 고민하지는 마세요! 단지 하나님을 알고 깨달아서 닮아가려고 자기의 시간을 충분히 사용하셔야 할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이미 하나님의 은혜로 돌아와 있는 복된 자녀들을 위하여 교회에서는 해산의 수고를 감당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바울도 갈4:19에서 말씀합니다.
(갈 4:19) |
나의 자녀들아 너희 속에 그리스도의 형상을 이루기까지 다시 너희를 위하여 해산하는 수고를 하노니 |
그래서 하나님의 은혜를 잊고 정신을 못 차리고 방황하는 고린도 교인에 대하여는 바울이 어떤 해산의 수고를 하던가요? 십자가의 길을 가라는 복음의 중심을 놓치고 자신의 능력과 은사만을 자랑하는 그들을 끝까지 권면하고 있습니다. 고린도 전후서 내내, 그러면 안 된다, 하지 마라, 그렇게 밖에 하지 못하느냐, 책망을 쉬지 않고 있습니다. 결국 교인들을 근심하게 했습니다. 고후7:8-12의 말씀 봅니다.
(고후 7:8) |
그러므로 내가 편지로 너희를 근심하게 한 것을 후회하였으나 지금은 후회하지 아니함은 그 편지가 너희로 잠시만 근심하게 한 줄을 앎이라 |
(고후 7:9) |
내가 지금 기뻐함은 너희로 근심하게 한 까닭이 아니요 도리어 너희가 근심함으로 회개함에 이른 까닭이라 너희가 하나님의 뜻대로 근심하게 된 것은 우리에게서 아무 해도 받지 않게 하려 함이라 |
(고후 7:10) |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은 후회할 것이 없는 구원에 이르게 하는 회개를 이루는 것이요 세상 근심은 사망을 이루는 것이니라 |
(고후 7:11) |
보라 하나님의 뜻대로 하게 된 이 근심이 너희로 얼마나 간절하게 하며 얼마나 변증하게 하며 얼마나 분하게 하며 얼마나 두렵게 하며 얼마나 사모하게 하며 얼마나 열심 있게 하며 얼마나 벌하게 하였는가 너희가 그 일에 대하여 일체 너희 자신의 깨끗함을 나타내었느니라 |
(고후 7:12) |
그런즉 내가 너희에게 쓴 것은 그 불의를 행한 자를 위한 것도 아니요 그 불의를 당한 자를 위한 것도 아니요 오직 우리를 위한 너희의 간절함이 하나님 앞에서 너희에게 나타나게 하려 함이로라 |
근심하게 했지만, 바울의 책망이 회개하는 복(福)이 된 것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에 책망은 약(藥)입니다. 바울이 세운 고린도 교회지만, 교인들의 신앙이 자라지 않고 분별 못하고 방황하기에 몇 년을 기다리다가 할 수 없이 책망의 편지를 보냈던 것입니다. 고전3:1-2의 말씀을 봅니다.
(고전 3:1) |
형제들아 내가 신령한 자들을 대함과 같이 너희에게 말할 수 없어서 육신에 속한 자 곧 그리스도 안에서 어린 아이들을 대함과 같이 하노라 |
(고전 3:2) |
내가 너희를 젖으로 먹이고 밥으로 아니하였노니 이는 너희가 감당하지 못하였음이거니와 지금도 못하리라 |
고린도 교인들의 신앙이 어렸지만 그러나 놔두지 않았습니다. 놔두면 더 죽는 것입니다. 놔두면 더 나빠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도 고린도 교회의 회복을 위하여 바울의 쓴소리, 아픈 책망을 지속적으로 하도록 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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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지어 어떻게 하셨는지 아세요? 고전5:1-5입니다.
(고전 5:1) |
너희 중에 심지어 음행이 있다 함을 들으니 그런 음행은 이방인 중에서도 없는 것이라 누가 그 아버지의 아내를 취하였다 하는도다 |
(고전 5:2) |
그리하고도 너희가 오히려 교만하여져서 어찌하여 통한히 여기지 아니하고 그 일 행한 자를 너희 중에서 물리치지 아니하였느냐 |
(고전 5:3) |
내가 실로 몸으로는 떠나 있으나 영으로는 함께 있어서 거기 있는 것 같이 이 일 행한 자를 이미 판단하였노라 |
(고전 5:4) |
주 예수의 이름으로 너희가 내 영과 함께 모여서 우리 주 예수의 능력으로 |
(고전 5:5) |
이런 자를 사탄에게 내주었으니 이는 육신은 멸하고 영은 주 예수의 날에 구원을 받게 하려 함이라 |
물론, 여기서, 너는 얼마나 신실하여, 바울처럼 책망할 그런 자격이 있느냐 묻겠지요! 그럼, 그렇게 생각하는 분에게 겸손하게 묻습니다. 그럼, 그냥 놔, 둘까요? 놔두면 제대로 신앙생활을 하는 성도가 얼마나 되던가요? 하나님께서도 얼마나 답답하셨으면 저같이 부족한 못난 사람을 목사로 세우셨을까요?
이 점을 깊이 생각하시고 무엇보다도 더 중요하고 알아야 되시는 것은 영적인 전쟁에 참여할 수 있는 자로 각자가 준비하는 것이 가장 중대한 관건입니다. 기드온의 300명 군사로 주의 한 지체로 쓰여 지기 위하여 시간을 낭비하지 말아야 합니다. 입시생처럼, 사업가처럼, 미국의 농구선수처럼 땀을 흘려야 합니다. 물론 주님의 제자일지라도 십자가의 삶이 자기하고 전혀 맞지 않기에 그래서 시험을 받아 떨어져 나가는 경우가 우리 교회의 경우에 적지 않습니다. 왔다가 나갑니다. 왜냐하면, 현실과 믿음의 간격이 너무나 크고 다르기 때문입니다. 심지어 예수님을 따르던 제자들도 떠났다고 하시지 않던가요? 요6:51-66입니다.
(요 6:51) |
나는 하늘에서 내려온 살아 있는 떡이니 사람이 이 떡을 먹으면 영생하리라 내가 줄 떡은 곧 세상의 생명을 위한 내 살이니라 하시니라 |
(요 6:52) |
그러므로 유대인들이 서로 다투어 이르되 이 사람이 어찌 능히 자기 살을 우리에게 주어 먹게 하겠느냐 |
(요 6:53) |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인자의 살을 먹지 아니하고 인자의 피를 마시지 아니하면 너희 속에 생명이 없느니라 |
(요 6:54) |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영생을 가졌고 마지막 날에 내가 그를 다시 살리리니 |
(요 6:55) |
내 살은 참된 양식이요 내 피는 참된 음료로다 |
(요 6:56) |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내 안에 거하고 나도 그의 안에 거하나니 |
(요 6:57) |
살아 계신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시매 내가 아버지로 말미암아 사는 것 같이 나를 먹는 그 사람도 나로 말미암아 살리라 |
(요 6:58) |
이것은 하늘에서 내려온 떡이니 조상들이 먹고도 죽은 그것과 같지 아니하여 이 떡을 먹는 자는 영원히 살리라 |
(요 6:59) |
이 말씀은 예수께서 가버나움 회당에서 가르치실 때에 하셨느니라 |
(요 6:60) |
제자 중 여럿이 듣고 말하되 이 말씀은 어렵도다 누가 들을 수 있느냐 한대 |
(요 6:61) |
예수께서 스스로 제자들이 이 말씀에 대하여 수군거리는 줄 아시고 이르시되 이 말이 너희에게 걸림이 되느냐 |
(요 6:62) |
그러면 너희는 인자가 이전에 있던 곳으로 올라가는 것을 본다면 어떻게 하겠느냐 |
(요 6:63) |
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은 영이요 생명이라 |
(요 6:64) |
그러나 너희 중에 믿지 아니하는 자들이 있느니라 하시니 이는 예수께서 믿지 아니하는 자들이 누구며 자기를 팔 자가 누구인지 처음부터 아심이러라 |
(요 6:65) |
또 이르시되 그러므로 전에 너희에게 말하기를 내 아버지께서 오게 하여 주지 아니하시면 누구든지 내게 올 수 없다 하였노라 하시니라 |
(요 6:66) |
그 때부터 그의 제자 중에서 많은 사람이 떠나가고 다시 그와 함께 다니지 아니하더라 |
진리의 말씀인 십자가는 언제나 걸림돌이 됩니다. 말씀의 순종이 세상적으로는 큰 손해이기에 그래서 떠납니다. 아니라고 해도 소용이 없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 점을 오늘 삿7장에서 말씀합니다. 무슨 뜻인가 하면, 기드온이 자기의 못난 모습과 연약함을 의지하지 아니하고 힘이 아닌 오직 믿음으로 대승리를 합니다. 오직 힘으로 싸워야 되는 세상적인 사람들은 전혀 엄두도 나지 않기에 다수가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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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리를 위하여 모든 것들을 다 동원하여도 힘든 전쟁에서의 승리인데, 전혀 힘으로 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을 믿는 믿음으로만 전쟁을 하라고 하니, 그들로써는 결국 전혀 이길 수 없는 전쟁으로 여기게 되면서, 주님이 가라고 하시는 좁은 길을 더 이상 갈 수 없게 되어 떠난 것입니다. 만약에 삿7장처럼 횃불과 항아리만을 가지고 전쟁하라고 돌아간 자들에게 애초에 명하면 그런 무모한 전쟁을 누가 할까요? 그렇지 않아도 두려운데, 말도 안 되는 이 전쟁을 누가 남아서 싸우려고 할까요?
비웃으면서 떠날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그런 전쟁을 하라고 하니, 따르던 자들이 떠나게 되는 것입니다. 모든 힘을 가지고 승리자가 되려는 제자들로서는 힘을 포기하고 십자가의 길을 가라고 하니, 능력을 보고 따르던 많은 제자들이 어떻게 십자가를 지라는 주님을 따를 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떠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복음 때문에 믿음이 없는 자들이 떠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것입니다. 오히려 당연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주님도 말리지 않으셨던 것입니다.
또한 그것이 사역의 한 단면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모든 성도들이 다 성령 충만하여 복음을 복으로 여기기 전에는, 복음 때문에 떠나지 않는 교회가 있다면 대단히 조심해야 합니다. 믿음이 적은 교인들은 복음 앞에서 견딜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다가 어떤 성도들은 복음 때문에 교회를 왔다 갔다 하면서 얼마간, 방황하다가 정착을 하게 되는데, 아마 다수가 그런 식으로 그런 과정을 거치고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교인들이 나갈까 봐, 두려워서, 손해를 볼까 봐, 복음을 제대로 전하지 않으면 정말 안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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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이 믿음이 없어서 나가게 되더라도 복음은 가감 없이 전해야 합니다. 사람을 두려워하면 안 됩니다. 교회는 복음을 듣고 나가더라도 끝까지 복음을 전하면서 무엇이 하나님의 뜻인지를 듣게 해야 됩니다. 바른 복음을 들은 성도들이 세상의 힘에서 점차적으로 벗어나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원하던 세상의 것들에서 포기시켜야 되는 것이 교회의 사명입니다. 주님께서 좁은 길로 가라는 그 말씀이 미친 짓으로 여겨지는 믿음 없는 그들이 듣고 또 교회를 나가게 되더라도 타협하면 안 될 것입니다.
그들이 택함을 받은 복된 자들이라면 복음을 계속해서 듣고 또 듣다가 틀림없이 회개하고 돌아올 것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복음의 요구가 너무나 힘들어서 떠나는 그들을 보면 참 안타깝지만, 우리로써는 기다리는 길 밖에 없습니다. 이제 그들을 위한 우리들의 몫은 외면하는 것이 아니라, 기도로 힘껏 도와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 한 사람, 한 사람들은 각자가 오실 주님을 위한 준비를 열심히 하셔야 합니다. 그럴 때에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갑자기 가서 미디안족속과 싸우라는 명령을 내리실 때, 특별하게 쓰임을 받는 복을 받아야 할 것입니다. 참으로 멋진 주님의 도구로 세워 주시는 그날을 위하여 날마다 전력을 다하여 준비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