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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돌교회
10062019 사사기 6:1-40 본문
제목: 너는 이 네 힘을 의지하고 가서 구하라
삿6장의 사건의 그 시기를 보면, 3000년도 더 된 고리타분한 사건 이야기입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지금의 사건과 전혀 다르지 않다는 점입니다. 우리의 옛 모습은 타락한 아담이나 하와와 전혀 다르지 않기 때문입니다. 아벨 동생을 죽인 가인이 바로 우리 자신들의 실체이기도 합니다.
삿6:12을 보세요! “여호와의 사자가 기드온에게 나타나 이르되 큰 용사여 여호와께서 너와 함께 계시도다”
기드온이 큰 용사가 됩니다.
그러나 삿6:11입니다. “여호와의 사자가 아비에셀 사람 요아스에게 속한 오브라에 이르러 상수리나무 아래 앉으니라 마침 요아스의 아들 기드온이 미디안 사람에게 알리지 아니하여 하여 밀을 포도주 틀에서 타작하더니”
당시는 이스라엘의 타락으로 7년간 미디안의 속국으로 지배를 받고 있었던 것을 삿6:1에서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수확된 농산물을 그들에게 빼앗기지 않으려고 숨어서 농사를 짓던 작고 작은 남자 기드온이었습니다.
게다가 삿6:15를 보세요! “기드온이 그에게 대답하되 주여 내가 무엇으로 이스라엘을 구원하리이까 보소서 나의 집은 므낫세 중에 극히 약하고 나는 내 아비 집에서 제일 작은 자니이다”
기드온 스스로 주제 파악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자기는 작은 자라고까지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기드온에게 큰 용사라고 합니다. 왜요? 그렇게 작은 기드온이었지만 하나님을 믿고 나가서 강력한 미디안 세력과 싸워 당연히 이길 것임을 알고 계셨기 때문입니다. 이제 곧 너는 나로 인하여 큰 용사로 바뀔 것이라는 것입니다. 지난 시간에도 말씀을 드렸지만, 자기가 자기를 보면 바락과 기드온처럼 작은 자, 째째한 자 밖에 안 됩니다. 그러나 그럴지라도 하나님을 믿고 나가서 싸우면 바락이 히11장에 등록이 되고 기드온처럼 승리자가 되고 큰 용사가 됩니다. 그렇습니다. 결국은 누가 하나님을 믿기에 한심스러운 자기 자신을 거들떠보지 않고, 강력한 세상 세력도 보지 않고, 당당하게 나가서 죄의 세력과 싸우는가? 여기에 달려 있는 것입니다.
-1-
헛된 자기와 세상의 뜻을 포기하고 하나님의 뜻을 누가 따르는가에 달려 있기에, 무엇이 중요할까요? 누가 바른 말씀, 복음을 듣고 배우는가에 달려 있는 것입니다. 생명의 말씀을 듣고 배우지 않으면 여전히 바락처럼 여자의 꽁무니만을 따라다닐 것이요, 기드온처럼 밀농사를 포도주 틀에서 타작하는 못난 짓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입니다. 신앙은 자기를 포기하는 것입니다.
신앙은 오직 하나님의 말씀만을 믿고, 철병거 900대를 가진 막강한 군대장관 시스라와 싸우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기드온에게 그리고 우리들에게도 하나님만을 믿고 나가서 싸우라고 어떻게 이해와 설득을 시켜주시던가요?
삿6:36-40입니다. “기드온이 하나님께 여짜오되 주께서 이미 말씀하심같이 내 손으로 이스라엘을 구원하려 하시거든(36), 보소서 내가 양털 한 뭉치를 타작마당에 두리니 이슬이 양털에만 있고 사면 땅은 마르면 주께서 이미 말씀하심같이 내 손으로 이스라엘을 구원하실 줄 내가 알겠나이다 하였더니(37), 그대로 된지라 이튿날 기드온이 일찌기 일어나서 양털을 취하여 이슬을 짜니 물이 그릇에 가득하더라(38), 기드온이 또 하나님께 여짜오되 주여 내게 진노하지 마소서 내가 이번만 말하리이다 구하옵나니 나로 다시 사면 땅에는 다 이슬이 있게 하옵소서 하였더니(39), 이 밤에 하나님이 그대로 행하시니 곧 양털만 마르고 사면은 다 이슬이 있었더라(40)”
결국 기드온은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나가서 싸워 대승을 거둡니다.
자세한 전쟁에서의 승리한 이야기는 다음 주에 하기로 하고, 그러나 지금은 어떤가요? 사사 기드온 때보다 훨씬 못한 상태에서 세상의 세력들과 싸우라고 하시던가요? 아니면 어떤 보증하심으로 나가서 싸우라고 하시던가요? 사사 기드온 당시하고는 비교도 아니 되는, 더 확실한 보증인 십자가의 승리를 주시면서 나가서 싸우라고 하십니다. 십자가의 승리로 지금! 당장이라도,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고 하나님의 성전이 되었는데, 어떻게 싸우지 못할 수가 있고 세상 시스라 세력을 두려워 도망칠 수 있을까요?
-2-
어떻게 하나님의 거룩하신 뜻을 버리고, 아무 것도 하지 못하게 하는 무지한 세상 세력에 속아, 아니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무능한 자기 뜻대로, 생각대로, 살아갈 수 있을까요? 그것이 말이 된다고 생각하세요? 아니 생각해 보세요! 바락이 어떤 자입니까? 여자 꽁무니를 따라다니는 자가 어떻게 자기를 믿을 수 있을까요? 숨어서 농사를 짓던 기드온을 보세요! 그들이 무엇을 할 수 있던가요? 아무 것도 할 수 없습니다. 그런 수준에서 그들이 무엇을 할 수 있을까요? 겨우 먹고 살 뿐입니다.
그러나 바락과 기드온이 하나님을 믿고, 누구하고 싸우던가요?
삿7:12를 보세요! “미디안 사람과 아멜렉 사람과 동방의 모든 사람이 골짜기에 누웠는데 메뚜기의 중다함 같고 그 약대의 무수함이 해변의 모래가 수다함 같은지라”
바다 모래처럼 무수함이 헤아릴 수가 없었던 세상 세력 미디안과 아말렉과 나가서 싸웠던 것입니다. “싸웠더니” 어떻게 되던가요?
삿7:19-25를 보세요! “19기드온과 그들을 좇은 일백명이 이경 초에 진 가에 이른즉 번병의 체번할 때라 나팔을 불며 손에 가졌던 항아리를 부수니라 20세 대가 나팔을 불며 항아리를 부수고 좌수에 횃불을 들고 우수에 나팔을 들어 불며 외쳐 가로되 여호와와 기드온의 칼이여 하고 21각기 당처에 서서 그 진을 사면으로 에워싸매 그 온 적군이 달음질하고 부르짖으며 도망하였는데 22삼백명이 나팔을 불 때에 여호와께서 그 온 적군으로 동무끼리 칼날로 치게 하시므로 적군이 도망하여 스레라의 벧 싯다에 이르고 또 답밧에 가까운 아벨므홀라의 경계에 이르렀으며 23이스라엘 사람들은 납달리와 아셀과 므낫세에서부터 모여서 미디안 사람을 쫓았더라 24기드온이 사자를 보내어 에브라임 온 산지로 두루 행하게 하여 이르기를 내려와서 미디안 사람을 치고 그들을 앞질러 벧 바라와 요단에 이르기까지 나루턱을 취하라 하매 이에 에브라임 사람들이 다 모여서 벧 바라와 요단에 이르기까지 그 나루턱을 취하고 25또 미디안 두 방백 오렙과 스엡을 사로잡아 오렙은 오렙 바위에서 죽이고 스엡은 스엡 포도주 틀에서 죽이고 미디안 사람을 추격하고 오렙과 스엡의 머리를 가지고 요단 저편에서 기드온에게로 나아오니라”
완전 승리입니다. 기드온이 승리자가 된 것은 자기의 생각과 판단이 아니라 자기를 포기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따랐더니, 이런 결과를 얻게 되더라! 이것이 아닙니까? 오병이어의 기적입니다.
물론 기드온도 결단하기가 쉽지 않았기에 삿6:36-40의 말씀을 다시 깊이 생각해 보세요!
“36기드온이 하나님께 여짜오되 주께서 이미 말씀하심 같이 내 손으로 이스라엘을 구원하려 하시거든 37보소서 내가 양털 한 뭉치를 타작마당에 두리니 이슬이 양털에만 있고 사면 땅은 마르면 주께서 이미 말씀하심 같이 내 손으로 이스라엘을 구원하실줄 내가 알겠나이다 하였더니 38그대로 된지라 이튿날 기드온이 일찌기 일어나서 양털을 취하여 이슬을 짜니 물이 그릇에 가득하더라 39기드온이 또 하나님께 여짜오되 주여 내게 진노하지 마옵소서 내가 이번만 말하리이다 구하옵나니 나로 다시 한번 양털로 시험하게 하소서 양털만 마르고 사면 땅에는 다 이슬이 있게 하옵소서 하였더니 40이 밤에 하나님이 그대로 행하시니 곧 양털만 마르고 사면 땅에는 다 이슬이 있었더라”
하나님의 말씀에 대하여 의심하고 또 의심하다가 결국 하나님의 이 응답을 믿고 결단을 하고 나갔던 것입니다. 그래서 망했나요? 누가 망했던가요? 자기 생각대로 살던 미디안과 아말렉 허다하고 수다한 사람들이 쫄딱 망했던 것입니다. 여기서 잘 보세요! 형편없었던 자들이 하나님만을 바라보니까! 바다의 모래만큼 무수하고 허다한 세력이 완전 초토화가 되었다는 사실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들도 주신 믿음만을 가지고 자기를 부인하기 시작하면, 우리 한 사람이 어떤 기적을 드러낼까요? 무수한 세상의 세력보다 강하다는 것이 아닙니까? 우리 산돌교회가 바로 그런 믿음의 증인들을 생산하는 기적의 교회, 회복의 교회인 줄로 믿습니다. 아멘~자! 그렇다면 어떤가요? 우리 하나님은 불공평하시기에, 우리들에게 지금까지 기드온보다 작은 그런 기적을 보여주시면서 순종하라고 하시던가요? 아니면 상상도 못하는 기적을 보여주시면서 나가서 싸우라고 하시던가요?
-3-
기드온의 양털 기적과 우리의 구세주 예수님의 성육신과 십자가의 기적 중에서 어떤 기적이 더 큰 기적입니까? 십자가의 사건은 더 이상 설명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천사도 모르던 사건이었던 것입니다.
벧전1:9-12입니다.“9믿음의 결국 곧 영혼의 구원을 받음이라 10이 구원에 대하여는 너희에게 임할 은혜를 예언하던 선지자들이 연구하고 부지런히 살펴서 11자기 속에 계신 그리스도의 영이 그 받으실 고난과 후에 얻으실 영광을 미리 증거하여 어느 시, 어떠한 때를 지시하시는지 상고하니라 12이 섬긴 바가 자기를 위한 것이 아니요 너희를 위한 것임이 계시로 알게 되었으니 이것은 하늘로부터 보내신 성령을 힘입어 복음을 전하는 자들로 이제 너희에게 고한 것이요 천사들도 살펴 보기를 원하는 것이니라”
만군의 하나님 곁에서 영원히 동행하면서 영광을 드리던 천사들도 잘 몰라서 살펴보기를 원했던 사건이 바로 십자가 사건이었던 것입니다. 십자가 사건은 우리의 모든 소유 아니 목숨까지도 가족과 전토까지도 그 어떤 전 재산도 내려놓게 하시는 사건이어야 할 것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그러나 여전히 자존심과 세상의 즐거움과 재물 때문에 망설이고 있으니 하나님의 그 기이한 기적을 보지 못하게 되니, 참 슬프게 합니다. 방황하고들 있으니 안타까울 뿐입니다. 물론 지금 성도들의 뜻을 보면, 시90:13-17입니다.
“13여호와여 돌아오소서 언제까지니이까 주의 종들을 긍휼히 여기소서 14아침에 주의 인자로 우리를 만족케 하사 우리 평생에 즐겁고 기쁘게 하소서 15우리를 곤고케 하신 날수대로와 우리의 화를 당한 년수대로 기쁘게 하소서 16주의 행사를 주의 종들에게 나타내시며 주의 영광을 저희 자손에게 나타내소서 17주 우리 하나님의 은총을 우리에게 임하게 하사 우리 손의 행사를 우리에게 견고케 하소서 우리 손의 행사를 견고케 하소서”
평생 즐겁고 기쁘게 응답해 달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여기서 무엇을 알아야 하는가 하면, 구원의 성격을 알아야 합니다. 그런데 구원이 무엇인지를 제대로 알지 못하면 시90:13-17의 말씀을 오해하여, 인간적인 승리로 인한 즐거움과 기쁨으로 이해를 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구원의 성격이 무엇입니까?
우리들이 받은 구원은 영원하고 확실하고 보장된 선물입니다. 절대로 변개함이 없는 구원입니다. 그렇다면 그 구원에 대하여 의심하지 않고 믿는다면 나가서 강력한 시스라 세력과 싸울까요? 숨을까요? 나가서 싸우게 되는 것입니다. 바로 그 뜻을 우리들이 찾아내서 바락처럼 기드온처럼 담대하게 나갔더니, 기적이 나타나더라는 것입니다. 이기더라는 것입니다. 나아가서 담대하게 시스라와 대적하는 성도들의 인생을 견고하게 해 주시더라는 것이 아닙니까? 구원이 무엇인지를 모르면, 즉 구원의 성격에 대하여 모르면 늘 피하고 도망칠 뿐입니다. 하나님이 자기의 진정한 피난처가 되시는 줄을 누가 알게 된다고요? 자기를 믿지 않고 하나님을 믿기에 나아가서 싸우려는 자들이 자기를 보호하시는 능력의 하나님을 만나게 됩니다. 그런데 문제는 열심히 하면 된다고 합니다. 여기서 속으면 안 됩니다. 무엇을 위한 열심인가를 알아야 할 것입니다. 자기의 것을 포기하는 거룩한 열심인가? 아니면 자기를 세우려는 이기적인 열심인가?로 그 결과는 달라질 것입니다.
-4-
하나님을 믿고 다 맡겨버리는 열심이어야 하는데, 하나를 드리고 10개를 가지려고 합니다. 하나님이 속을까요? 그 더러운 중심을 보고 계십니다. 그러면 무엇이 다를까요? 열심에 대하여 바른 열심과 잘못된 열심을 무엇으로 분별을 할 수 있을까요? 자기를 부인하는 거룩한 열심은 점점 더 좁은 길을 갑니다. 나눔이 커지고 가지려는 욕심은 작아집니다. 미움과 다툼은 작아지고 마음의 감사와 기쁨과 평안이 커집니다. 그러나 자기를 위한 이기적 열심은 점점 더 가지려고 합니다. 나누지 못합니다. 인색합니다. 드리지 못합니다. 흉내만 낼뿐입니다. 결국 다툼만이 남습니다.
시기 질투 속에서 기독교가 개독교가 되고 목사가 먹사가 되고 집사가 잡사 됩니다. 교회가 기업이 됩니다. 물론 돈으로 대우를 받고 힘이 있기에 당장은 좋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인생은 잠시입니다. 보이지 않은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가 영원히 기다리고 있습니다. 당장의 즐거움 때문에 영원한 심판, 불의 심판을 원하십니까? 시91편을 봅니다. 특히 누가 높임을 받아요?
시91:1입니다. “지존자의 은밀한 곳에 거하는 자는 전능하신 자의 그늘 아래 거하리로다”
지존자의 은밀한 곳에 거하는 자, 전능하신 자의 그늘 아래 거하는 자가 높임을 받게 됩니다. 다시 말씀을 드리면, 하나님은 자기의 피난처가 되시고 요새가 되어 주시고, 자신의 의뢰하시는 하나님이 되시기에, 당연히 새 사냥꾼의 올무에서 벗어나게 해 주실 것이고, 극한 염병에서도 건져주시는 분이시기에, 당연히 하나님에게 피하게 될 것입니다. 이 정도가 아닙니다. 그 이상입니다.
시91:4-13입니다. “4저가 너를 그 깃으로 덮으시리니 네가 그 날개 아래 피하리로다 그의 진실함은 방패와 손 방패가 되나니 5너는 밤에 놀램과 낮에 흐르는 살과 6흑암 중에 행하는 염병과 백주에 황폐케 하는 파멸을 두려워 아니하리로다 7천인이 네 곁에서, 만인이 네 우편에서 엎드러지나 이 재앙이 네게 가까이 못하리로다 8오직 너는 목도하리니 악인의 보응이 네게 보이리로다 9네가 말하기를 여호와는 나의 피난처시라 하고 지존자로 거처를 삼았으므로 10화가 네게 미치지 못하며 재앙이 네 장막에 가까이 오지 못하리니 11저가 너를 위하여 그 사자들을 명하사 네 모든 길에 너를 지키게 하심이라 12저희가 그 손으로 너를 붙들어 발이 돌에 부딪히지 않게 하리로다 13네가 사자와 독사를 밟으며 젊은 사자와 뱀을 발로 누르리로다”
바락과 기드온 같은 자일지라도 신앙의 순종은 결국 이런 경험을 하게 되면서 시91편의 이런 고백을 어떻게 선포하지 않을 수 있을까요? 죽기 살기로 하나님을 자랑할 것입니다. 하나님만을 한없이 높일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도 누구를 높여 주시고 영화롭게 해 주신다고요?
시91:14-16입니다. “하나님이 가라사대 저가 나를 사랑한즉 내가 저를 건지리라 저가 내 이름을 안즉 내가 저를 높이리라, 저가 내게 간구하리니 내가 응답하리라 저희 환란 때에 내가 저와 함께 하여 저를 건지고 영화롭게 하리라, 내가 장수함으로 저를 만족케 하며 나의 구원으로 보이리라 하시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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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나 놀라우신 하나님의 약속입니까? 이보다 더 안전한 보장과 약속이 어디 있던가요? 하나님을 알면 복 중의 복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을 알아야 하는데 어떻게 하면 알까요? 바락과 기드온 같은 자기 자신을 믿지 말고 오직 말씀에 순종하면 됩니다. 능력의 하나님, 900대의 철병거를 가진 강력한 시스라 세력을 쳐 부셔버리시는 하나님을 만날 것입니다. 결국 강력한 시스라 세력을 단칼에 쳐부수시는 하나님을 만난 믿음의 성도는 어떤 고백을 하게 될까요?
시96:1-3입니다. “1새 노래로 여호와께 노래하라 온 땅이여 여호와께 노래할찌어다 2여호와께 노래하여 그 이름을 송축하며 그 구원을 날마다 선파할찌어다 3그 영광을 열방 중에, 그 기이한 행적을 만민 중에 선포할찌어다”
누가 하나님을 새 노래로 찬양하고 기이한 행적을 만민 중에 선포한다고요? 실력 있고, 능력 있기에 모두에게 인정을 받던 특별한 그런 자들이 아닙니다. 비록 여자 꽁무니를 따르던 바락이었지만, 한 남편의 아내로 한 가정을 위하여 조용히 살던 연약한 여자 야엘이었지만, 세상의 힘 때문에 숨어 살던, 그래서 당당치 못하던 기드온이었지만, 자기를 보지 않고 믿지 않고 죽기 살기로 작정하고 하나님의 뜻을 따랐더니, 결국 하나님의 기이한 일들을 선포하게 된 것입니다. 종교행위만으로 기이하신 하나님이 선포되지 않습니다.
세상의 헛된 것들을 포기하고 순종하는 자들만이 새 노래로 날마다 그분을 찬양하게 됩니다. 이렇게 신앙은 스스로의 경험이 있어야 할 것입니다.
히5:11-14입니다. “11멜기세덱에 관하여는 우리가 할 말이 많으나 너희의 듣는 것이 둔하므로 해석하기 어려우니라 12때가 오래므로 너희가 마땅히 선생이 될터인데 너희가 다시 하나님의 말씀의 초보가 무엇인지 누구에게 가르침을 받아야 할 것이니 젖이나 먹고 단단한 식물을 못 먹을 자가 되었도다 13대저 젖을 먹는 자마다 어린 아이니 의의 말씀을 경험하지 못한 자요 14단단한 식물은 장성한 자의 것이니 저희는 지각을 사용하므로 연단을 받아 선악을 분변하는 자들이니라”
경험하지 못하면 나이 먹은 어린아이로 남게 되지만 경험을 하면 단단한 식물을 먹는 자로 장성한 자가 됩니다. 그러나 단단한 식물을 먹으려면, 훈련 없이 안 됩니다. 평생 훈련 없는 삶은 노인이 되었을지라도 여전히 아이일 뿐입니다. 그 심각성을 모르면 재벌의 자녀들이 마약을 하게 되듯이, 배웠다는 젊은이들이 사업자금을 마련하려고 훤한 대낮에 마약을 팔고 있듯이 그렇게 무너지고 말 것입니다. 그러나 보세요! 여자 사사 드보라를 따르던 바락과 한 가정의 여인 야엘과 숨어 살던 기드온이 자기의 못난 점을 믿음으로 극복하고 순종을 하니까, 기적이 나타난 것입니다. 믿음의 장에 기록이 되고 무엇보다도 놀라운 하나님의 기이한 일을 보게 된 것입니다. 결국 그 결과, 자기만이 아니라, 이스라엘 온 나라에 십 수 년 간 태평이 임하지 않았습니까? 나 한 사람이 비록 한심스러운 꼴을 하고 있었지만, 끝까지 보살피시는 하나님만을 의지하니까, 자존심을 버리고 말씀을 따르면서, 여러 가지로 손해들을 보겠지만, 그러나 그 손해와 비교도 아니 되는 가치를 생산하게 됩니다. 한 나라의 태평이 임했고, 완전히 다른 존재로 쓰임 받게 되더라는 것이 아닙니까?
새 노래로 여호와께 노래하는 자가 되고 그 영광을 열방 중에 하나님의 성호를 송축하고 날마다 선포하는 자가 되더라는 것입니다. 결국 어떤 간증을 하게 될까요?
시96:4-13입니다. “4여호와는 광대하시니 극진히 찬양할 것이요 모든 신보다 경외할 것임이여 5만방의 모든 신은 헛 것이요 여호와께서는 하늘을 지으셨음이로다 6존귀와 위엄이 그 앞에 있으며 능력과 아름다움이 그 성소에 있도다 7만방의 족속들아 영광과 권능을 여호와께 돌릴찌어다 여호와께 돌릴찌어다 8여호와의 이름에 합당한 영광을 그에게 돌릴찌어다 예물을 가지고 그 궁정에 들어갈찌어다 9아름답고 거룩한 것으로 여호와께 경배할찌어다 온 땅이여 그 앞에서 떨찌어다 10열방 중에서는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통치하시니 세계가 굳게 서고 흔들리지 못할찌라 저가 만민을 공평히 판단하시리라 할찌로다 11하늘은 기뻐하고 땅은 즐거워하며 바다와 거기 충만한 것은 외치며 12밭과 그 가운데 모든 것은 즐거워할찌로다 그리할 때에 삼림의 나무들이 여호와 앞에서 즐거이 노래하리니 13저가 임하시되 땅을 판단하려 임하실 것임이라 저가 의로 세계를 판단하시며 그의 진실하심으로 백성을 판단하시리로다”
이 시편 기자의 고백이 나의 고백으로 나타나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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