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돌교회

7/23/2023 미가 2:1-13 본문

주일 설교 말씀

7/23/2023 미가 2:1-13

PastorYK 2023. 7. 24. 10:25

말씀: 미2:1-13                                      

제목: 내 것이 되면

 

 

다들 하도 바빠서 거의 이런 고민을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우리들이 미2장에 나오는 이스라엘의 지도자들과 백성들처럼 삶의 고통과 실패가 왜 생기는 것일까요? 물론 죄라고 대충 대답을 하실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게 대충 대답하지 마시고 구체적으로 답변을 해 보세요! ~ 여러 가지로 대답을 할 수 있겠지만 미가서 2장의 지도자들이 가난한 백성들의 재산을 강탈하는 그 내용을 보았을 때, 내 것을 더 불려야 한다는 욕심 때문이 아닐까요? 욕심이란 것은 내 것이라는 소유욕에서부터 온 죄의 증세라고 저는 봅니다.

 

그래서 주님께서 나의 제자가 되려면 다 부인하라고 하셨습니다.  왕이 되고자 하는 자는 먼저 종이 되라고 하셨습니다. 내 것이라는 소유욕부터 말끔히 우선 제거하지 않으면 가질 자격도 왕이 될 자격도 없다는 뜻입니다. 이해가 되십니까? ~ 이해가 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이해가 되지 않기에, 그럼, 내가 열심히 수고하여 번 수입도, 내가 얻은 높은 자리도 내 것이라고 하면, 그럼 죄가 되는 것인가? 라고 의심할 수 있는데, 지금까지 여러분은 내 것에 대하여 얼마나 깊이 생각해 보셨나요? ~ 무엇이 내 것이던가요? 내 것이 있으면, 한 번 말씀해 보세요! 심지어 어른뿐만이 아니라 어린 아이들까지도 내 것이라고 하면서 싸우지 않던가요? ~ 

 

지난주 월요일에는 이빨이 아프면 늘 가서 치료를 받고 있는 치과에 가서 치료를 받았습니다. 그런데 그날따라 치료를 받으면서 내 이빨이 내 것인가? 라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심지어 내 이빨인데 거울이란 도구가 없으면 내가 보지도 못하고 볼 수도 없고 게다가 아프면 스스로 해결도 안 되는 이것이 내 것이라고 할 수 있는가? ~ 그리고 꼭 아프거나 불편할 때만, 내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되는데 ~ 잠시 그런 생각을 하던 그 날, 이미 사용하던 크라운을 제거하여 주시고 새 크라운을 위하여 임시 이빨을 넣어 주셨습니다. 그런데, 다른 임시 이빨이 들어오니까, 얼마나 불편한지 상당히 예민해 지더라고요! 

 

그러면서 문득 드는 생각이, 잠기 곁길로 빠집니다. 그간 쓰던 크라운을 빼고 임시 이빨이 들어와도 이렇게 불편한데, 복음이라는 새 가치관, 진리가 들어오면 처음에는 물론 거저 받은 구원의 복이기에 기뻐할 수 있겠지만, 그러나 그건 처음만 그럴 뿐,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더욱 불편해 지는 것이, 당연한 것인데, 왜 다들 전혀 불편해 하지 않을 수가 있을까? ~ 왜 다들 십 수 년이 지나도 불편보다는 늘 기뻐한다고 성공했다고만 간증하고 고백하는 것일까? ~ 그 이유는 그 복음을 자기의 삶으로 만들려고 하지 않았기 때문이 아닐까요?  

 

복음이 내 삶이 되려면 자기 부인 즉 내 것이 없어야 하는데, 그러려면, 무섭게 날마다 자기의 옛 기준, 전통, 습관과 무섭게 싸워야 합니다. 그런데, 그렇지 않고 단지 ‘구원 받았다’에만 다들 만족해 하고 있기에, 자기중심에서 주님 중심으로, 내가 주님을 닮으려고, 좁은 길로 가려고 몸부림을 쳐야 하는데, 그렇지 않고 있기 때문에, ‘늘 감사해요!’ 라고만 말만하고 있고, 사랑하지도 않으면서 ‘사랑한다’고 하면서 웃는데, 그것은 앵무새와 무엇이 다른지, 다들 흉내만 내고 있다는 것임을 다시 생각할 수 있었습니다. 

 

복음이 단지 장식품에 불과하게 되면, 생명이 없는 죽은 앵무새 신앙이 되고 맙니다. 복음을 하나님이 주신 위대한 장식품만으로 취급을 하고 있기에, 내 삶하고는 상관이 없었기에 불편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왜 이렇게 되었습니까? 그간의 내 것을 내 것이라고 했거나, 더 가지려고 했기 때문입니다. 복음이, 지혜와 능력의 복음이 되려면, 그간의 내 것이라고 했던 내 것 모두를 다 포기하지 못하면, 안 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복음보다는 썩어 없어질, 영원히 사라질 보이는 그간의 내 것이 더 좋았기에, 그래서 포기하지 않으므로 인하여 그 복음이 전혀 불편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보이는, 자신 손에 쥔, 그러나 죽으면 사라지는 내 것을 포기하면 망한다는 자기 기준 때문에, 성도라는 분들이 복음, 복음 늘 말은 하고 있었지만, 교회에 올 때마다 ‘내가 주님을 사랑해요’ 라고 늘 입에 달고 출입을 했었는지는 몰라도, 내 형통, 내 것을 위한 복음이 되었기에 좁은 길을 가는 성숙한 성도가 될 수 없었던 것입니다. 그렇게 복음이 자기의 실제 삶하고는 상관이 없이, 단지 장식품이 되면, 어떤가요? 그들이 원하는 것이 무엇이 되던가요? 그들이 다들 어떤 것을 위하여 싸우게 되던가요?  좀 더 부자가 되려고, 좀 더 편해지려고, 좀 더 잘난척을 하려고, 죽도록 수고하게 되지, 하나님께서 주신 복음의 삶을 위하여, 거룩함을 위하여 하루에 단 한 시간이라도 전심으로 진심으로 골방에 들어가서 하나님하고의 만남을 유지할 수 없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 성은이가 지난 설교를 듣고 배우고 나서 어떤 고백을 했습니까? “기술에 중독되기는 매우 쉽다. 그러나 하루에 15분씩 성경을 읽고 기도하기는 너무 힘들다. 우리는 우리 죄의 불길이 아직 미미할 때, 그 불을 꺼야 한다. 우리는 죄가 커지고 우리를 압도하도록 내버려 둘 수 없다. 그러기 위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야 한다” 참 은혜가 됩니다. 기대가 됩니다. 아멘~ 

 

그런데 종 된 자들이, 피조물들이, 주인이신 하나님을 만나기를 피하게 되면, 즉 말씀과 기도의 삶을 피하게 되면, 어떻게 될까요? ~ 특히 다들 피곤하고 바빠서 기다리고 계신 하나님하고 만날 수 없다고 하는데 ~ 그러니 평생을 교회에 다니시더라도 주님하고 가까워 질 수 있을까요? 하나님을 닮아갈 수 있습니까? 없습니다. 단지 복음을 자기의 장식품으로만 여기고 있기에, 모양만 성도요 교인이지, 실제 그 속마음은 늘 복음을 통하여 내 것만을 채우려는 속물로 살아가고 있더라는 점입니다. 

 

그렇게 되면 정결한 삶보다는 더러운 길을 택하게 되면서 위선자의 길을 가게 됩니다. 그런 한심한 자신을 보면서 금식하고 기도하고 말씀을 마음판에 새기면서 날마다 새로워지려고, 거룩해지려고, 주님의 향기가 되려고, 몸부림을 쳐야 되는데, 그런 성도들이 얼마나 됩니까? ~ 거의 없기에 교회가 이런 꼴이 되고 만 것입니다.

 

잠시 곁길로 갔는데, 임시 이빨을 끼고 불편해 하다가 다음날 아침에 늘 하던 대로 골방에서 기도를 드리는데, 그 시간에 깨우침을 주시더라고요! ‘김 목사야! 그 이빨이 네 것이 맞니?’ 하시더라고요.  이것이 내 것이기는 한데, 아플 때만 내 것이라는 생각이 들기는 들었습니다. 내 것이기는 한데, 내가 내 것을 내 마음대로 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면서 ‘아하~ 그렇구나! 내 것이라고 하는 것이 참 어리석은 인간의 가치관이라는 것’을 알게 하셨습니다. 내 것을 포기하지 못하는 한, 다 하나님의 것이라고 인정하지 않는 한, 미2:1-2에 등장하는 힘이 있고 부한 왕, 제사장, 선지자들이 그 권세로, 악한 계획을 밤에 세우면서 날이 새면, 힘없는 백성의 재산들을 빼앗아 버렸던 것처럼 그렇게 되고 말더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드리는 말씀입니다. 여러분은 어떤가요? 여러분은 자기의 것이 하나라도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 가만히 생각을 해 보세요! 내 것이 어디에 있나요? 내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다 나에게 맡겨 주신 것들입니다. 그래서 그 무엇도, 내가 번 수입까지도, 유산까지도, 내 연필 한 자루까지도, 내 마음대로 하면 안 됩니다. 우리는 피조물로써 다 하나님의 것들입니다. 머리칼 하나도 내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맡김을 받은 청지기일 뿐입니다. 어떻게 청지기가 내 것이라고 할 수 있나요? 내 것이라고 하면 그건 하나님의 것을 도둑질하는 도둑놈이 되는 것입니다. ~ 

 

이 점을 모르면 어떻게 됩니까? 자기 것이라고는 하나도 없는 청지기인데, 자기 것이라고 착각하여 게다가 힘이 생기다가 보면, 자기 마음대로 하게 되는데, 자기 마음대로 하면, 어떤 일이 생깁니까? 미2:3에서 말씀하십니다. 재앙의 때가 된다고 하십니다. 좋은 일보다는 나쁜 일이 더 생기더라는 것입니다. 행복한 날보다는 슬픈 날이 더 생기더라는 것입니다. 화목과 화평보다는 깨지는 날이 더 일어나고 말더라는 것입니다. ~ 눈도 귀도 자기의 것이라고 하여 아무 것이나 보고 들으려고 하고, 생각도 자기 것이라고 하여 자기 마음대로 생각하는데, 이 몸도 자기의 것이라고 하여 자기 마음대로 쓰면 안 되는 법입니다. 입도 자기의 것이라고 하여 몸에 나빠도 맛만 있으면 얼마나 기뻐하면서 먹습니까? 그 결과가 어떤가요? 성인병으로 고생하게 되고, 청지기로서 이빨 관리를 못하여 이렇게 이빨 때문에 고생하게 되는 법입니다. 그 정도가 아닙니다, 청지기의 역할을 주인 역할로 뒤바뀌다가 보니깐, 이스라엘처럼 나라가 망하게 됩니다. 자기 것인 줄로 알고 자기 마음대로 하면, 기쁨, 승리보다는 후회와 실패만이 남는 것입니다. 아닌가요? ~ 

 

리고 분명한 진리는 자기 뜻대로 이루어지지 않더라는 것입니다. 무슨 뜻일까요? 우린 창2장에 나오는 선악과에서 알 수 있습니다. 선악과란 무엇입니까? 너희들의 왕, 주인이신 창조주 하나님이 계시다는 뜻입니다. 너는 네가 왕이 될 수 없고 주인이 될 수 없다는 것임을 선악과에서 알게 하십니다. 그런데 아담이 이것을 잊고 멋대로 따 먹다가 망한 것이 아닙니까? 자기 뜻대로 하다가 에덴에서 쫓겨난 것이 아닙니까? 그렇습니다. 내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내가 선물로 받거나, 내가 내 돈으로 산 연필 한 자루일지라도 실은 내 것이 아닙니다.  종이 한 장까지도 내 것이 아니기에 늘 감사한 마음으로 쓸 수 있어야 되지, 가볍게 여기거나 함부로 다루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돈을 주고 샀거나 선물로 받았을지라도 단지 내 것이 되었다가 아니라, 소중하게 사용하겠다는 청지기 마음에서 지불하는 물건 값이 되어야 하고 선물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들이 그렇게 작은 것이라도 청지기 마음으로 소중하게 여기면서 사용하게 된다면, 선한 청지기가 힘이 생겼다고 하여 힘없고 가난한 백성의 재산들을 강탈하고 빼앗을 수 있을까요? ~ 아니 그 반대일 것입니다. 자기가 갖고 있는 것으로 이웃의 필요를 채워 줄 것입니다. 왜요? 다 하나님의 것임을 알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다들 더 갖지 못해 안달하는데, 가지면 가질수록 어떤가요? 삶의 무게가 무거워질 뿐입니다. 가지면 가질수록 두려움과 불안과 고난의 삶만이 남을 것입니다. 여기서 벗어나는 길은 선한 청지기로써의 삶이 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주님께서 무엇이라고 하시던가요?

 

딛1:7입니다. “감독은 하나님의 청지기로서 책망할 것이 없고 한 아내의 남편이며 방탕하다는 비난을 받거나 불순종하는 일이 없는 믿는 자녀를 둔 자라야 할지라

 

벧전 4:10입니다. “각각 은사를 받은 대로 하나님의 여러 가지 은혜를 맡은 선한 청지기같이 서로 봉사하라” 

 

청지기란, 관리하는 관리자입니다. 자기 것이 아니기에 주인의 뜻대로 맡겨 주신 것들을 잘 관리하여 모두에게 유익이 되게 하는 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우리들이 바로 하나님의 청지기로서 자기에게 맡겨 주신 것들을 허락하는 날까지 잘 관리를 하는 자들이지, 자기 것으로 여기면서 자기 마음대로 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창1:26-28입니다. 하나님이 이르시되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그들로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가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 하시고,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하나님이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 우리는 하나님께서 지으신 모든 것들을 다스리는 자들입니다. 청지기라는 뜻입니다. 우리는 피조물이지, 주인이 아닙니다.

 

시100:3을 봅니다. “여호와가 우리 하나님이신 줄 너희는 알지어다 그는 우리를 지으신 이요 우리는 그의 것이니 그의 백성이요 그의 기르시는 양이로다” 리는 하나님의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의 것은 하나도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마치 자기의 것인 냥, 함부로 취급하니, 이스라엘이 망하지 않을 수 없었고, 지금 지구의 날씨도 보세요! 폭우로 죽고 뜨거워 죽고 있습니다. 이런 재앙도 결국 내 것이라는 소유욕 때문입니다.

 

특히 권력이 생기면, 무슨 짓거리를 하던가요? 다 자기 것으로 여기려고 합니다. 특히 하나님을 모르는 자연인들은 더 합니다. 신앙인조차도 은혜를 잊으면 어떤가요? 다시 자연인의 모습으로 돌아가 버립니다. 자기 것이라고 하여 자기 마음대로 행합니다. 구약의 이스라엘의 타락한 왕들과 제사장들, 선지자들이 그 짓을 행하므로 미가 선지자를 통하여 책망을 받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미2:2에서 확인하지 않았습니까? ~ 이렇게 은혜를 모르는 사람들은 어두운 밤에 기회가 되면, 온갖 만행, 추태를 저지르고 있지만, 성도에게의 밤은 지난 시간에 시편을 통하여 확인 하셨지만, 주인이시요 주권자이신 하나님하고의 깊은 만남의 시간이 되셔야 합니다. 자신이 청지기임을 재확인하시면서 하나님 외에는 절대로 숭배할 수 없어야 함을 깊이 새겨, 진리에서 벗어나는 일이 없도록 늘 깨어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만약에 악인들처럼 밤의 시간을 낭비하거나 단지 party를 하면서 즐기려고만 한다면, 당장은 좋겠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어떨까요? 그 사람의 삶은 더욱 곤고해지고, 갈수록 메말라지고 말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누구든지 간에, 은혜 안에서의 삶의 평안과 기쁨이 없다는 것은 죄하고의 타협을 하고 있거나, 복음에 대한 아픔과 고민이 없다는 반증입니다. 불이익을 위하여 변명과 눈감아 주고 있기 때문이라고 하지 않을 수가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조용한 깊은 밤에 여호와 하나님을 향하여 손을 들고 감사의 찬송과 고백을 드린다면, 죄로부터 오는 두려움과 고통이 변하여 말할 수 없는 기쁨으로 채워 주실 것입니다. 하나님하고 만나 감사를 드리는 그 밤은 바싹 메말라서 삶의 기쁨과 즐거움을 점점 잃어가던  마음의 밭에 아침 이슬처럼, 단비처럼 촉촉하게 은혜의 비를 새벽녘에 내려 주시기에, 풍성한 열매까지도 맺게 하여 주실 것입니다. 

 

욜1:12입니다. “포도나무가 시들었고 무화과나무가 말랐으며 석류나무와 대추나무와 사과나무와 밭의 모든 나무가 다 시들었으니 이러므로 사람의 즐거움이 말랐도다” 왜 삶의 즐거움이 말랐나요? 왜 인생이 삭막하셨습니까? 왜 밤새 잠을 이루지 못하고 뜬 눈으로 새워야 했을까요? ~ 청지기의 역할을 놓쳤기 때문입니다. 지금까지 청지기의 삶을 몰라, 그간 세상에서 방탕하셨다면, 이제 꽉 닫혔던 자기의 마음의 문을 지금까지도 쉬지 않으시고 두드리고 계시는 창조주 하나님과 함께 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럴 때, 약속하신 말씀을 봅니다. 욜2:12-14입니다. “여호와의 말씀에 너희는 이제라도 금식하고 울며 애통하고 마음을 다하여 내게로 돌아오라 하셨나니, 너희는 옷을 찢지 말고 마음을 찢고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로 돌아올지어다 그는 은혜로우시며 자비로우시며 노하기를 더디 하시며 인애가 크시사 뜻을 돌이켜 재앙을 내리지 아니하시나니, 주께서 혹시 마음과 뜻을 돌이키시고 그 뒤에 복을 내리사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 소제와 전제를 드리게 하지 아니하실는지 누가 알겠느냐”

 

이뿐만이 아닙니다. 어떤 약속을 구체적으로 하십니까? 욜2:18-24입니다. 그 때에 여호와께서 자기의 땅을 극진히 사랑하시어 그의 백성을 불쌍히 여기실 것이라, 여호와께서 그들에게 응답하여 이르시기를 내가 너희에게 곡식과 새 포도주와 기름을 주리니 너희가 이로 말미암아 흡족하리라 내가 다시는 너희가 나라들 가운데서 욕을 당하지 않게 할 것이며, 내가 북쪽 군대를 너희에게서 멀리 떠나게 하여 메마르고 적막한 땅으로 쫓아내리니 그 앞의 부대는 동해로, 그 뒤의 부대는 서해로 들어갈 것이라 상한 냄새가 일어나고 악취가 오르리니 이는 큰일을 행하였음이니라 하시리라, 땅이여 두려워하지 말고 기뻐하며 즐거워할지어다 여호와께서 일을 행하셨음이로다, 들짐승들아 두려워하지 말지어다 들의 풀이 싹이 나며 나무가 열매를 맺으며 무화과나무와 포도나무가 다 힘을 내는도다시온의 자녀들아 너희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로 말미암아 기뻐하며 즐거워할지어다 그가 너희를 위하여 비를 내리시되 이른 비를 너희에게 적당하게 주시리니 이른 비와 늦은 비가 예전과 같을 것이라, 마당에는 밀이 가득하고 독에는 새 포도주와 기름이 넘치리로다 

 

그렇습니다. 회개하면, 네 마음의 문을 열어 말씀을 전심으로 진심으로 받아보세요! 그래서 내 것이 아니라 청지기로써의 삶을 살게 되시면,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께서 시온에서 네게 신령한 복을 주실 겁니다” 아멘~ 그러니 참으로 연약한 우리 산돌 교회도 보세요! 산돌 교회가 앞으로 말씀에 순종하여 선한 청지기로서의 역할을 하게 되면, 하나님의 어떤 자랑과 능력이 되며, 그래서 하나님의 뜻을 위하여 우리에게 어떤 신령한 복을 허락하실 지, 생각만 하셔도 가슴이 떨리지 않습니까? ~

 

그러나 밤마다 이스라엘의 지도자들처럼 내 것으로 더 가지려고 악한 계략을 꾸미며 가난한 자들의 것까지 탐하여 강탈하게 되면 결국 4-5절의 좌절을 맛보게 됩니다. 4-5절의 말씀의 이해를 위하여 먼저 수14:5의 말씀을 봅니다.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령하신 것과 같이 행하여 그 땅을 나누었더라” 이스라엘이 가나안 땅을 분배할 때, 제비를 뽑고 할당 받은 땅을 측량하여 받았습니다. 

 

그러나 미가 당시 이스라엘의 타락으로 인하여 하나님이 주시는 땅을 소유할 수 있는 선한 자가 없다는 뜻을 의미하는 내용이 미2:4-5입니다. 죄악으로 인해 여호와의 회중이라는 거룩한 칭호와 주시는 땅을 받을 수 있을 자가 하나도 없다는 것으로 이스라엘에 대한 조소와 조롱의 내용입니다. 죄의 결과요 대가입니다. 그러나 이제 곧 받을 하나남의 심판에 대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이 무엇이라고 했는지 아십니까? 

 

6절입니다. “그들이 말하기를 너희는 예언하지 말라 이것은 예언할 것이 아니거늘 욕하는 말을 그치지 아니한다 하는 도다” 타락한 지도자, 제사장들과 거짓 선지자들은 하나님 심판에 대한 미가 선지자의 예언에 대하여 욕을 한다고 하면서 타락한 자신들은 안전과 행복만을 선포하는 거짓 선지자들의 예언만을 믿고 인정하겠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심판에 대한 묵시가 결국은 회개하여 복을 주시려는 하나님의 뜻인데 그 묵시를 “욕”으로 밖에 여기지 않았던 것입니다

 

때문에 욕하는 말을 그치지 아니한다고 묵시를 받아 선포한 선지자 미가를 핍박했던 것입니다. 그러자 미가는 다시 7절로 무엇이라고 그들을 향하여 반문합니까? 7절의 말씀을 먼저 봅니다. “너희 야곱의 족속아 어찌 이르기를 여호와의 영이 성급하시다 하겠느냐 그의 행위가 이러하시다 하겠느냐 나의 말이 정직하게 행하는 자에게 유익하지 아니하냐” 하나님의 심판에 대하여 불만을 가진 야곱의 족속인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께 대하여 성급하다고 합니다여기서 성급함의 뜻은 옹졸함, 성급함, 편협함, 무능함 등의 내용을 가진 단어로써 하나님을 감히 부인했던 것입니다. 자신들의 완악함과 죄악이 얼마나 극한 상황에까지 이르렀는지에 대해서는 전혀 생각지 아니하고 오히려 하나님이 그렇게 자신들의 타락에 대하여 심판을 하신다는 묵시에 대해서 가당치 않다는 것입니다. 그 점에 대하여 미가 선지자는 반문을 하는 것이 7절의 말씀입니다. 하나님은 너희들의 죄에 대하여 오랜 동안 참으셨기에 결코 성급하신 분이 아니요, 오히려 하나님의 심판이 정직한 자들에게 유익이 되신다는 것이 미가의 반문입니다즉 하나님의 심판이 악인에게는 마땅히 가혹할 수밖에 없지만,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을 경외하여 순종하는 자들에게는 복, 유익이 된다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의 나라의 타락한 지도자들과 부자들은 가난한 자들의 재산, 생명까지도 탐하여 빼앗고, 종교지도자들은 참 예언에 대하여 하나님의 성급하심을 지적하면서 11절의 예언을 요구했던 것입니다. 11절을 보세요! “사람이 만일 허망하게 행하며 거짓말로 이르기를 내가 포도주와 독주에 대하여 네게 예언하리라 할 것 같으면 그 사람이 이 백성의 선지자가 되리라” 

 

무슨 뜻입니까? 풍요로운 물질과 육신적 향락과 세속적인 번영만을 약속하는 예언을 할 것 같으면, 바로 그 사람이, 그런 거짓 예언을 하는 거짓 선지자를 이스라엘의 참 선지자로 그들이 인정해 주겠다는 것이 11절의 말씀입니다. 이것이 이스라엘을 망하게 했던 죄상입니다.

 

그 결과 10절입니다. “이것은 너희가 쉴 것이 아니니 일어나 떠날지어다 이는 그것이 이미 더러워졌음이니라 그런즉 반드시 멸하리니 그 멸망이 크니라 하나님께서 너희들에게 준 가나안 땅을 더럽혔기에 이제 떠나라, 너희들은 그래서 예언한 대로 망하여 포로로 끌려 갈 것이라는 묵시입니다. 결국 망했습니다. 그런데 지금이 바로 이스라엘이 망하던 그 당시와 너무나 똑같은 상황입니다. 지금 교회가 부패하고 타락으로 곳곳에서 재앙이 터지고 있는데, 듣기 좋은 설교, 물질의 복에 대한 설교만을 원하고 있습니다. 지금까지는 풍성하신 은혜를 부족함이 없이 넉넉히 차고 넘치도록 채워 주셨지만, 이제는 그 은혜의 촛대를 옮길 날이 얼마 남지 않았는데도, 사람을 두려워하여 십자가의 삶을 전하지 못하고 있고 바른 생명의 설교를 들으려고도 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사람의 눈치를 보면서 형통의 설교만을 하고 있는 지금은 미2:8-9의 말씀처럼, “근래에 내 백성이 원수같이 일어나서 전쟁을 피하여 평안히 지나가는 자들의 의복에서 겉옷을 벗기며, 네 백성의 부녀들을 그들의 즐거운 집에서 쫓아내고 그들의 어린 자녀에게서 나의 영광을 영원히 빼앗는 도다” 지금은 그 정도가 아니라, 죽은 설교로 더 심각한 사건들이 우리 주변과 교회 안에서 수없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믿는 부자들과 위정자들의 악함으로, 우리 주변은 힘없고 가난한 자들의 생명과 게다가 아이들까지도 포함하여 그들의 몸의 장기까지도 팔아, 돈을 벌려고 하는 작금의 사태를 보면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심판에 대하여 감추고 사람이 무서워 복과 형통만을 구하라고 한다면, 그런 교회들의 은혜의 촛대를 옮기셔야지 그렇지 않으신다면, 그분은 공의의 하나님, 거룩하신 하나님이 되실 수가 없을 것입니다. 당연히 심판을 하셔야 합니다. 

 

특히 피난민과 가난하고 힘없는 고아된 자들을 괴롭히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전적으로 무시하는 큰 악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영원히 가리는 죄악임을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 어떤 사람들이 교회의 어떤 직책을 받아서 하나님의 영광을 영영히 빼앗고 있습니까주님의 거룩한 피 값으로 세워 주신 교회에서 오히려 돕지는 못할망정 하나님의 영광을 더럽히는 곳이 되었으니 더 이상 할 말이 없다는 것입니다. 교회에 속한 나 한 사람이 주신 그 직분, 역할을 자기의 유익과 성공을 위하여 사용한다면, 그건 하나님의 얼굴에 똥칠하는 것이 아닐까요? ~ 그렇기 때문에 그런 자들을 그날, 아주 큰 심판으로 벌하시겠다고 10절에서 말씀 하셨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타락한 이스라엘을 향하여 수없이 경고의 말씀을 해 주셨지만, 이스라엘은 결국 망하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12-13절의 회복의 말씀을 주시는 그 의미는 무엇을 말씀하시는 것일까요? ~ 망한다고 할 때는 언제이고 다시 회복시켜 주시겠다는 것은 무엇을 뜻하시는 것일까요? 지금 우리가 증인입니다. 하나님의 심판의 목적은 회복입니다. 돌아옴에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하여 너희들의 구원을 완전하게 이루어주시겠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지금 우리들이 구원의 하나님에게 매일, 매주, 영원히 예배를 드릴 수 있는 것입니다. 이 시간이 얼마나 큰 복된 자리인지를, 얼마나 큰 강력한 역사하심으로 참여할 수 있는, 이 시간인지를 아셔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향하여 구약 내내 어떤 선택을 하라고 하셨나요? 복과 생명의 길을 선택하라고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모두에게 선지자들을 통하여 말씀을 해 주셨지만 결국 그들은 불순종하면서 우상숭배를 하면서 망하고 맙니다. 옛 언약으로는 이스라엘이 생명과 복의 길을 택하지 못하더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새 언약을 약속하게 됩니다. 그 새 언약을 이루기 위하여 하나님께서 친히 오셔서 죽기까지 하여 새 사람이 되게 해 주시겠다는 십자가 사건을 미가 그 당시에서도 살짝 드러내 주셨던 것입니다그 방법과 길이 아니고서는 구원의 기회는 없다는 것이 바로 미2:12-13의 말씀입니다. 그 전까지는 망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 구약의 내용입니다. 너희들이 회복될 것이라는 말씀은 구세주가 성육신 하여 모든 자녀들을 완전하게 회복시키시겠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하시는 말씀이 바로 12-13절의 내용입니다. 때문에 하나님의 심판의 차원은 믿는 자녀들에게는 더욱 성숙한 삶을 위한 사랑의 채찍이었지만, 세상 사람들에게는 회개의 기회가 오지 않을 것이라는 뜻에서의 심판이 될 것입니다

 

때문에 하나님의 징계로 인한 성도로써의 좌절은 절대 금물입니다. 그러나 중요한 점은 자기를 위한 물질적 차원에서의 그릇된 믿음은 언제나 하나님의 징계를 피할 수 없습니다. 잘못된 믿음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면, 회개하지 못한다면 늘 좌절과 낙망과 원망이 떠나지 않을 것입니다. 결국 하나님의 뜻을 모르기에 하나님께서 나를 향하신 뜻이 무엇인지를 모르면, 불평에서 벗어날 수 없음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이십니다. 참 좋으신 하나님입니다. 

 

때문에 미가는 타락한 자신의 민족을 보면서 애통하고 애곡할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왜요? 그 애곡과 애통은 이렇게 연결이 됩니다. 골1:24입니다. “나는 이제 너희를 위하여 받는 괴로움을 기뻐하고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그의 몸 된 교회를 위하여 내 육체에 채우노라” 지금 우리들도 실은 즐거워 할 때가 아닙니다.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그의 몸 된 교회를 위하여 나의 육체에 채워야 합니다.

 

그래서 주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다고 마5:4에서 말씀 하십니다

(마 5:4)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

그 근본 이유는 죄 때문입니다. 늘 죄하고의 싸움을 쉬지 말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거룩함 때문에 애통하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어떤 자세를 성도는 갖추어야 하는가? 많지만, 한 곳만 pick up를 한다면, 빌4:11-13입니다. “내가 궁핍하므로 말하는 것이 아니라 어떠한 형편에든지 내가 자족하기를 배웠노니, 내가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에 배부르며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이를 위한 말씀이 미2:12-13의 말씀입니다. 내가 정녕히 이스라엘의 남은 자를 모으고 그들을 한 처소에 두기를 보스라 양 떼 같게 하며 초장의 양 떼 같게 하리니, 길을 여는 자가 그들 앞에 올라가고 그들은 길을 열어 성문에 이르러서는 그리로 나갈 것이며 그들의 왕이 앞서 가며 여호와께서는 선두로 가시리라” 

 

지금 우리는 2700년 전의 예언의 말씀이 그대로 이루어졌기에, 주님을 선두로 그분의 뜻을 전심으로 따를 수 있는 청지기가 되어야 합니다. 애통하면서 애곡하면서 따라야 합니다. 주님의 십자가의 길을 놓치지 말아야 합니다. 세상의 것들을 다 포기하고 자기를 부인하고, 이웃을 섬기다가 점과 흠이 없는 모습으로 돌아가셔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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