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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돌교회
7/9/2023 미가서 1:1-16 본문
말씀: 미1:1-16
제목: 자세히 들을지어다(2)
지난 시간에 하나님께서 당시 영적인 상태가 얼마나 심각하고 부패했으면 선지자 미가를 통하여, 백성을 포함하여 땅과 거기에 있는 모든 것들아 자세히 들으라고 하셨을까요? 4000년 전의 이스라엘의 부패로 인하여 “백성들아 너희는 다 들을지어다 땅과 거기에 있는 모든 것들아 자세히 들을지어다”라고 하셨는데, 그렇다면 4000년이 지난 지금의 교회의 영적인 상태는 어떤가요? 풍성한 영광의 은혜까지 베풀어 주셨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아지지 않고 있습니다. 나아지기는커녕 심각함이 어떤지, 천지가 진동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도 이어 같은 제목을 가지고 말씀을 드릴 때, ‘자세히 들으시므로’ 우리 모두가 안전한 내일을 확보하시는 말씀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오늘은 당시 이스라엘 백성이 저지른 죄에 대하여 하나님께서 어떻게 징계, 심판을 하시는지, 3절부터 보시면서 은혜를 나누어보려고 합니다. “땅의 높은 곳을 밟으실 것이라”고 하십니다. 무슨 뜻입니까? 땅의 높은 곳은 (1) 이스라엘의 우상숭배의 온상지가 된 산당이 높은 산이나 망대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2) 상징적으로 권력, 부 등을 믿고 자신을 높이는 인간의 교만도 포함합니다. (3) 하나님의 심판이 미치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던 천연의 요새 등을 완전하게 무너뜨리시겠다는 뜻입니다. 이 조건만을 보시더라도, 하나님의 심판 안에 우리들도 포함이 되어 있지 않을까요? 특히 우리는 권력, 부, 또는 과학의 힘을 믿고 자신을 높이려는 이 기준이 심판의 표적이 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지금 우리들의 현실을 보면 어떤가요? 그 누구도 안전할 수 없는 지경이 되었습니다. 곳곳이 재앙이요 재난입니다. 한치 앞도 장담할 수 없는 엄청난 가장 큰 폭풍, 그 파도의 높이가 보이지 않는 대 재앙 속으로 들어가 버렸습니다.
이제는 오직 한 길만이 남았습니다. 그 큰 폭풍이 덮치기 전에 속히 회개를 하셔야 합니다. 그리고 권력과 부와 과학의 힘에서 벗어나, 주님께서 가신 십자가의 길을, 좁은 길을 따라야지만, 그 재난에서 벗어나 안전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시편기자는 곳곳에서 고백합니다.
시간상 시91:1-16을 봅니다. “지존자의 은밀한 곳에 거주하며 전능자의 그늘 아래에 사는 자여, 나는 여호와를 향하여 말하기를 그는 나의 피난처요 나의 요새요 내가 의뢰하는 하나님이라 하리니, 이는 그가 너를 새 사냥꾼의 올무에서와 심한 전염병에서 건지실 것임이로다, 그가 너를 그의 깃으로 덮으시리니 네가 그의 날개 아래에 피하리로다 그의 진실함은 방패와 손방패가 되시나니, 너는 밤에 찾아오는 공포와 낮에 날아드는 화살과, 어두울 때 퍼지는 전염병과 밝을 때 닥쳐오는 재앙을 두려워하지 아니하리로다, 천 명이 네 왼쪽에서, 만 명이 네 오른쪽에서 엎드러지나 이 재앙이 네게 가까이 하지 못하리로다, 오직 너는 똑똑히 보리니 악인들의 보응을 네가 보리로다, 네가 말하기를 여호와는 나의 피난처시라 하고 지존자를 너의 거처로 삼았으므로, 화가 네게 미치지 못하며 재앙이 네 장막에 가까이 오지 못하리니, 그가 너를 위하여 그의 천사들을 명령하사 네 모든 길에서 너를 지키게 하심이라, 그들이 그들의 손으로 너를 붙들어 발이 돌에 부딪히지 아니하게 하리로다, 네가 사자와 독사를 밟으며 젊은 사자와 뱀을 발로 누르리로다, 하나님이 이르시되 그가 나를 사랑한즉 내가 그를 건지리라 그가 내 이름을 안즉 내가 그를 높이리라, 그가 내게 간구하리니 내가 그에게 응답하리라 그들이 환난 당할 때에 내가 그와 함께하여 그를 건지고 영화롭게 하리라, 내가 그를 장수하게 함으로 그를 만족하게 하며 나의 구원을 그에게 보이리라 하시도다” 하나님만이 피난처가 되십니다. 대 재앙에서 안전할 수 있는 유일한 길입니다. 선택은 여러분에게 달려 있습니다. 인격의 하나님이시기에 우리보고 선택하라고 하십니다. ~
4절입니다. “그 아래에서 산들이 녹고 골짜기들이 갈라지기를 불 앞의 밀초 같고 비탈로 쏟아지는 물 같을 것이니” 지진이나 화산의 폭발, 그리고 쏟아지는 비로 인한 현상입니다. 자연 재해는 결코 우연이 아닙니다. 인간의 욕심, 미련함이 자연재해의 원인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는 것을 노아의 홍수를 통하여서도 알 수 있는데, 노아홍수는 자연재해가 아닌 인간의 타락이 그 이유입니다. 그리고 구약 내내도 그랬지만, 지금도 자연 재해로 인한 피해는 속수무책이지 않던가요?
이 재난이 다 야곱 즉 사마리아와 예루살렘의 우상숭배로 인함이라고 5절에서 말씀하십니다. 이건 남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지은 죄를 철저하게 회개하지 않으면 이렇게 당한다는 묵시입니다. 그러나 회개하지 않으므로 예언 그대로 결국 무섭게 멸망을 당합니다. 아니 당했습니다. 성경을 통하여 또는 인류역사를 통하여 수천 년 내내, 너희들이 왜! 당했는지, 멸망을 받아야 했는지를 그대로 보여주고 있지만, 어떤가요? ~ 놀랍게도 여전히 피난처 되시는 하나님을 믿지 않고 재물과 권세와 힘을 믿더라는 것입니다. 우린 역사를 통하여 무엇을 배워야 하는지 아십니까? ‘그렇구나! 그렇게 하면 망하고 마는 구나’를 배워야 하는데 그것이 아니라, 망하는 것을 보면서도 망하는 길을 여전히 반복하더라는 것입니다. 왜요? 영적으로 미련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성령을 받은, 은혜를 입은 성도들은 어느 쪽을 선택하던가요? 승리의 길, 안전한 길인 말씀을 택합니다. 그리스도의 마음을 가졌기 때문입니다. 새사람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지금 나는 어느 쪽에 서 있나요? ~
6절입니다. “이러므로 내가 사마리아를 들의 무더기 같게 하고 포도 심을 동산 같게 하며 또 그 돌들을 골짜기에 쏟아 내리고 그 기초를 드러내며” 들의 무더기는 밭에 흩어진 돌을 귀퉁이에 쌓아 둔 것과 같은 것입니다.그 의미는 그간 화려하고 치장되어 번영을 구가하던 사마리아가 돌처럼 폐허가 되었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포도 심을 동산 같게 하며’ 란 말씀의 뜻은, 침공을 받아 사마리아는 사라져 포도밭이 된다는 것입니다. 결국 분명히 묵시를 통하여 말씀해 주셨지만, 사마리아는 결국 심판을 받고 망합니다.
7절도 봅니다. “그 새긴 우상들은 다 부서지고 그 음행의 값은 다 불살라지며 내가 그 목상들을 다 깨뜨리리니 그가 기생의 값으로 모았은즉 그것이 기생의 값으로 돌아가리라” 침략을 받아, 모든 우상들이 부서지고, 불살라지고, 깨져 버리는 동시에, 그때, 사마리아에 우상숭배로 모아 저장 되었던 모든 금은보화가 다시 적국에 의해 정복 탈취 당하여 다른 우상에게로 바쳐질 것이라는 뜻입니다. 그가 기생의 값으로 모았은즉 그것이 기생의 값으로 돌아갈 것이라는 말씀의 뜻입니다.
결국 대하36:18-19, 스1:7-11에서 알 수 있듯이, 이스라엘은 패망하면서 다 빼앗기고 맙니다. 지은 죄는 역시나 덮여질 수 없습니다. 반드시 그 대가를 치르고 맙니다. 특히 우린 하나님의 심판의 날에 다 드러나고 맙니다.
계20:11-15입니다. “또 내가 크고 흰 보좌와 그 위에 앉으신 이를 보니 땅과 하늘이 그 앞에서 피하여 간 데 없더라, 또 내가 보니 죽은 자들이 큰 자나 작은 자나 그 보좌 앞에 서 있는데 책들이 펴 있고 또 다른 책이 펴졌으니 곧 생명책이라 죽은 자들이 자기 행위를 따라 책들에 기록된 대로 심판을 받으니, 바다가 그 가운데에서 죽은 자들을 내주고 또 사망과 음부도 그 가운데에서 죽은 자들을 내주매 각 사람이 자기의 행위대로 심판을 받고, 사망과 음부도 불못에 던져지니 이것은 둘째 사망 곧 불못이라, 누구든지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자는 불못에 던져지리라” 이 말씀을 믿으세요? 아멘입니다.
하나님께서 거짓말을 하실까요? 지금까지가 예언된 모든 말씀들이 100% 이루어졌습니다. 그런데, 행1:11의 심판의 주로 도둑처럼 별안간 임하실 것이라는 말씀과 계20장의 이 심판의 말씀을 거짓말을 할 필요가 있나요? 그래서 예수님께서도 제자들에게 말씀을 해 주셨습니다. 눅21:34-35입니다. “너희는 스스로 조심하라 그렇지 않으면 방탕함과 술취함과 생활의 염려로 마음이 둔하여지고 뜻밖에 그날이 덫과 같이 너희에게 임하리라, 이날은 온 지구상에 거하는 모든 사람에게 임하리라” 그렇기 때문에 눅21:36을 봅니다.
“이러므로 너희는 장차 올 이 모든 일을 능히 피하고 인자 앞에 서도록 항상 기도하며 깨어 있으라” 왜요? 무시무시한 심판 날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사람이라면 이 날만큼은 철저하게 목숨을 걸고서라도 모든 재산을 걸고서라도 준비하셔야 합니다.
8절입니다. 8절부터는 남 유다의 멸망이 얼마나 심각했는지에 대한 내용입니다. 하나님의 심판의 처참함으로 선지자 미가가 받았던 지극한 슬픔이 8절에서의 애곡과 통곡입니다. 하나님의 심판의 그 고통이 얼마나 심했는지 9절에서도 알 수 있습니다. “이는 그 상처는 고칠 수 없고 그것이 유다까지도 이르고 내 백성의 성문 곧 예루살렘에도 미쳤음이니라”
10절도 봅니다. “가드에 알리지 말며 도무지 울지 말지어다 내가 베들레아브라에서 티끌에 굴렀도다” 이런 심판을 이스라엘의 철전지 원수였던 블레셋의 가드에 고하지 말라고 하시는데 그 의미는 부끄러움의 극치임을 이렇게 표현하신 것입니다. 원수나라 블레셋만큼은 몰랐으면 좋겠다는 것입니다. 심지어 들통이 날까봐 울지도 말라고 합니다. 자기의 수치를 누구에게 만큼은 감추고 싶어 하던가요?
삼상31:1-4에서 보면, 사울왕도 큰 상처를 입고 할례 없는 블레셋 군사들로부터 모욕을 당하는 것이 두려워 병기를 든 자기 병사에게 죽이라고 하지 않았나요? ~ 결국 남유다도 우상숭배로 패망하면서 어떤 지경이 되고 말던가요? ~ 우상숭배로 인한 그 심판의 결과가 얼마나 참담한지를 예레미야애가 2:20-22의 말씀만 봅니다.
“여호와여 보시옵소서 주께서 누구에게 이같이 행하셨는지요 여인들이 어찌 자기 열매 곧 그들이 낳은 아이들을 먹으오며 제사장들과 선지자들이 어찌 주의 성소에서 죽임을 당하오리이까, 늙은이와 젊은이가 다 길바닥에 엎드러졌사오며 내 처녀들과 내 청년들이 칼에 쓰러졌나이다 주께서 주의 진노의 날에 죽이시되 긍휼히 여기지 아니하시고 도륙하셨나이다, 주께서 내 두려운 일들을 사방에서 부르시기를 절기 때 무리를 부름같이 하셨나이다 여호와께서 진노하시는 날에는 피하거나 남은 자가 없나이다 내가 낳아 기르는 아이들을 내 원수가 다 멸하였나이다” 하나님을 외면하면, 세상의 재물과 힘을 의지하면, 그 심판의 결과는 가히 짐작도 못할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베들레아브라에서 티끌에 굴렀도다’ 이 말씀의 뜻은 벧엘에서 7km 지점에 위치한 ‘베들레아브라’는 그 도시의 이름의 뜻이 ‘먼지가 많다는 도시’입니다. 이 도시 의미처럼 이스라엘은 죄로 말미암아 먼지를 뒤집어 쓰거나 먼지 구덩이에 몸을 굴리게 된다는 것으로 유다가 아주 극심한 모욕, 슬픔을 당할 것이라는 내용을 시적으로 표현하신 것입니다.
11절입니다. “사빌 주민아 너는 벗은 몸에 수치를 무릅쓰고 나갈지어다 사아난 주민은 나오지 못하고 벧에셀이 애곡하여 너희에게 의지할 곳이 없게 하리라” 사빌은 아스돗 동남쪽 8km에 위치한 곳으로, ‘아름다운 성읍’이라는 뜻을 가진 도시이름입니다. 결국 아름다운 성읍이 벗은 몸으로 끌려갈 것이라는 것도 결국은 수치를 의미합니다. ‘사아난 주민은 나오지 못하고’ 즉 ‘진군의 도시’라는 뜻을 가진 ‘사아난’은 군사 도시이었지만, 결국 앗수르의 공격으로 군사도시로써의 힘을 잃고 목숨 연명을 위하여 침묵하게 된다는 내용입니다. ‘정류하는 집’ 즉 쉴 수 있는 곳이란 뜻을 가진 ‘벧에셀’은 예루살렘 부근 감람산 동편에 위치한 곳으로 앗수르의 공격으로 쉴 곳을 잃었다는 뜻입니다. 지은 죄로 말미암아 제 역할을 전혀 할 수 없는 처지가 된 것입니다.
12절입니다. “마롯 주민이 근심 중에 복을 바라니 이는 재앙이 여호와께로 말미암아 예루살렘 성문에 임함이니라” ‘비통하다’는 뜻의 ‘마롯’은 그 소재지가 분명하지는 않지만, ‘마롯’주민은 멸망 직전의 예루살렘이, 하나님의 은혜로 구사일생의 회생이 되는 도움을 ‘마롯’주민이 여러 번 받았다고 하는데, 그 예루살렘의 성의 도움을 이젠, 받을 수 없게 되었다는 뜻입니다.
13절입니다. “라기스 주민아 너는 준마에 병거를 메울지어다 라기스는 딸 시온의 죄의 근본이니 이는 이스라엘의 허물이 네게서 보였음이니라” 라기스는 유다와 애굽이 접경지대에 있는 국경도시로써, 예루살렘이 공격을 앗수르로부터 당하게 되면, 라기스 너희들이 피해를 받게 될 것인데, 그 피해를 보지 않으려면 빠른 말을 타고 도망하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라기스는 딸 시온의 죄의 근본이니’ 라는 말씀의 뜻은 ‘라기스’는 예루살렘의 타락을 주도하는데 가장 큰 원인을 제공한 도시였기 때문입니다. 라기스를 통하여 애굽의 우상 문화가 들어오게 되었고 전쟁용 준마를 늘 공급해 왔기에 그 힘과 능력으로 여호와 신앙만을 의지하지 못하게 했던 곳이기 때문입니다.
14절입니다. “이러므로 너는 가드모레셋에 작별하는 예물을 줄지어다 악십의 집들이 이스라엘 왕들을 속이리라” ‘가드모레셋’은 미가의 고향입니다. 그런데 ‘그곳에 작별하는 예물을 주라’는 뜻은 다시는 만나지 못할 것이기에 작별의 예물을 주라는 내용입니다. 그리고 ‘악십’은 ‘속이다’의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악십의 집들이 이스라엘의 왕들을 속인다’는 그 의미는 ‘악십’은 본래 이스라엘의 땅이었으나 앗수르 침공시에 악십 거민들이 유다 정복을 도왔다는 뜻으로 유다를 배신했다는 것입니다.
15절입니다. “마레사 주민아 내가 장차 너를 소유할 자로 네게 이르게 하리니 이스라엘의 영광이 아둘람까지 이를 것이라” ‘상속’이란 뜻을 가진 ‘마레사’에게 하나님께서 마레사를 상속할 상속자인 앗수르를 보내시겠다는 뜻으로 그것은 모든 재산을 다 잃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이스라엘의 영광이 아둘람까지 이를 것’이라는 뜻은 옛적에 사울이 다윗을 쫓았던 시기에 다윗 이 피신했던 당시 그 동굴이 아둘람으로서 그 의미는 남 유다가 어떤 비참한 위기를 맞게 될 것인가를 뜻하는 내용입니다.
16절입니다. “너는 네 기뻐하는 자식으로 인하여 네 머리털을 깎아 대머리 같게 할지어다 네 머리가 크게 벗어지게 하기를 독수리 같게 할지어다 이는 그들이 사로잡혀 너를 떠났음이라” 이 말씀도 기뻐하던 유대인들이 포로로 끌려갈 것이라는 참담한 예언의 말씀입니다. 그런데 끌려가는데 독수리의 머리털 없는 것 같은 처지에서 끌려갈 것이라는 것입니다. 여기서 독수리는 중동 지역의 독수리입니다. 이곳에서 서식하는 독수리는 머리 부분에 털이 없는 것이 특징이라고 합니다. 그러니까 머리털이 없는 독수리처럼, 남 유다가 앗수르의 포로로 끌려갈 때에 머리털이 다 깎여 즉 극단적인 애통과 창피와 슬픔을 나타내는 차원에서의 다 깎임입니다.
* 여기까지 내용을 통하여 알 수 있는 것은 죄로 인한 사마리아와 예루살렘의 패망은 결코 피할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진지하게 철저하게 파괴될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왜? 하나님께서는 달갑지 않는 심판을 성읍 하나씩, 하나씩 이름을 불러 가면서 설명을 하고 있는 것일까요? ~ 그냥, 간단하게, 너희들은 곧 망한다, 그러니 준비하라! 라고 이렇게만 하셔도 될 것이 아닙니까? 그런데 저주의 설교를 성읍 한 개씩 다 일일이 언급하시면서 말씀을 하시는 그 이유는 다름이 아닙니다.
사마리아나 예루살렘이 영적으로 너무나 타락했기에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무슨 뜻인가 하면, 의사가 환자를 진단할 때에 환자의 상태에 대한 설명이 전혀 없이, 당신은 곧 암 때문에 죽습니다. 당장 죽을 준비를 하시오! 라고만 한다면, 그것은 환자에게 절망을 주는 최악의 태도요, 의사로써의 자격이 없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아주 위급한 환자에게 그런 진단을 내린다면 그 환자는 실망과 함께 좌절하게 되고 자기 병하고의 싸움도 해 보지 못하고 쓰러지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의사가 환자에게 그 환자의 모든 상태와 그렇게 된 이유들과 그리고 치료 방법에 대하여 자세히 제시하면서 투병할 것을 권유하고 용기를 부여해 준다면, 환자는 포기를 쉽게 하지 않고 오히려 투병 준비를 할 것입니다. 같은 이치입니다. 비록 우상숭배로 부패하여 그래서 받게 되는 심판이지만,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타락한 그 자녀들을 불쌍히 여겨 주셨기에, 그래서 그렇게 저지른 모든 죄에 대하여 일일이 밝혀 주시면서, 기회를 줄테니, 다시는 동일한 죄를 짓지 말라고 하신다면, 비록 당장은 큰 폭풍 속일지는 몰라도 하나님 아버지의 약속 때문에 내일을 준비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왜 이렇게 일일이 죄를 자세히 밝히고 계시는 지, 이해를 못하면, 어떤 반응을 갖게 될까요? 포기하고 말 것입니다. 절망하고 말 것입니다. 그러나 그 이유를 알게 된다면, 자신의 모든 죄, 모르고 저지른 죄까지도 알게 하시는 하나님에게 큰 감사를 드릴 것입니다. 왜요? 그것이 복된 길이요 죄의 세력을 제압할 수 있는 기회가 되고 하나님을 더욱 알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선지자들을 통하여 자세히 그들의 타락으로 인한 그 결과까지도 이렇게 정확하게 언급해 주시면서, 다시는 그 어떤 처지에서도 우상숭배하지 말고 끝까지 여호와 하나님만을 순종, 경외하여서 복된 삶을 누리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지은 모든 죄악의 결과에 대하여 일일이 밝혀 주심이 모욕과 학대와 조롱처럼 느껴질 수 있는지는 몰라도, (1) 그래야지만 다시는 죄와 타협하지 않게 되고, 그래서 (2) 하나님만을 경외하면 내일의 승리와 영광이 보장되기에, 일일이 지은 모든 죄들로 인한 그 결과까지도 다 밝혀 주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자비하심과 사랑하심을 알게 하십니다. 그리고 이제 유다 왕들도 패망하면서 끌려가게 되지만, 그 결과를 다 알게 될 것인데, 그 때를 위하여 하나님께서 주시는 미가서 말씀도 실은 좌절과 절망의 말씀이 아니라 감사를 드려야 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잘 알고 있듯이, 한국 임진왜란 때에 선조대왕이 자기만 살기 위하여 도성을 버리고 평양으로 피하자! 나라가 어떻게 되었습니까? 왕이 백성을 배반했다고 하여, 난리를 피우면서 결국 도성을 불태워버리지 않았습니까? 하나님께서는 바로 이런 사태까지도 다 알고 계셨기에, 그래서 선지자 미가를 통하여 일일이 다 묵시 해 주시면서, 내일을 준비할 수 있게 하신 것입니다. 죄 값이 어떤 결과를 가져오는지, 깊은 각성과 함께 하나님의 심판에 대한 각인으로 구원을 이루어주시려고 이렇게 자세하게 하나님의 마음과 뜻을 영원히 남겨주신 것입니다. 미가 선지자를 통하여 하시려는 하나님의 뜻은 너희들이 저지른 죄 값으로 받는 심판 때문에 좌절, 포기, 낙심하지 말고 더욱 겸손한 자세를 취하라는 것입니다. 자신의 죄를 시인하고 그래서 자기 머리를 깎고 자신의 죄에 대한 비통함을 갖고 다시 시작해 보라는 것인데, 그렇다는 것을 미1:16의 말씀에서 알 수 있습니다.
물론 자기 죄를 깨닫지 못하는 교만한 자들에게는 결코 쉬운 이야기는 아니겠지만, 그러나 자신의 죄를 은혜로 깨닫게 되면, 자기 머리칼을 깎는 식의 마음으로 참회하는 자세를 갖고 시작한다면, 그것이 절호의 회복의 기회가 될 것입니다. 머리를 깎는 식의 참회하는 마음으로 그렇게 날마다 거룩한 수고를 감당한다면, 감찰하시는 하나님께서는 결코 부족함이 없는 감사의 삶, 기쁨의 삶을 늘 열어 주시고도 남을 것입니다. 그러나 자신은 늘 주님만을 바라보고 있다고 하면서도, 요즘처럼 일어나는 재난으로 손실을 보게 될 경우 그 고통에서 더 경건해 지려고 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자신의 신앙의 방향이 잘못되어 있다는 반증입니다. 자신의 신앙의 방향이 잘못되어 있게 되면, 즉 거룩함이 아니라 세상의 형통이 목적이 되면, 그 교인들은 천국에서도 불평할 수밖에 없고, 전혀 부족하지 않으면서도 자족하지 못하게 되고, 그래서 다툼과 경쟁의 시기로 연합과 화목을 누릴 수 없다고 말씀하십니다. 신앙의 목표가 거룩함이 되지 않으면 자기의 잘못과 허물을 깨달을 수가 없게 됩니다. 신앙의 목표가 거룩함이 되지 아니하면, 늘 물질적이기에 깊은 신앙관을 갖지 못하게 됩니다.
그러나 믿음의 삶은 깊은 폭풍 속에서 흔들리지 않아야 합니다. 은혜가 힘인 성도들은 큰 물고기 속에서도 감사 찬양을 드릴 수 있어야 합니다. 물질차원의 신앙하고는 그 차원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특히 하나님께서는 행복과 근심을 함께 주시지도 않고 하나님께서는 실수도 하지 못하는 분입니다. 그런데 성도 자신의 당면한 문제가 지속되면서 생기는 그 폭풍 속에서 감사와 기쁨을 얻지 못하고 있다면, 신앙의 방향이 거룩함이 아니기에 안 되는 것입니다.
특히 감추어진 자신의 죄를 보지 못하고 있으면, 하나님께서는 알 때까지 어려움을 주시기도 하십니다. 미가 선지자 그 당시 이스라엘의 심판을 받게 되는 것도 보면, 결국은 죄를 지적해 주어도 감사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 이유는 세상의 부와 자랑에 빠져 있었기 때문입니다. 때문에 유다의 모든 곳에도, 사빌에도, 사아난도, 마롯도, 라기스도, 가드모레셋, 마레사 등 전부 하나님의 심판 앞에 노출이 되어 있었던 것입니다. 죄를 숨기고 죄를 감출 수 있는 곳은 그 어디에서도 불가능하다는 것이 아닙니까? ~
땅 끝에도, 하늘 우주 끝에도, 바다의 그 깊고 깊은 곳일지라도 자기의 죄는 그 하나라도 숨길 수가 없음을 알라는 것입니다. 죄를 숨기면 숨길수록 하나님의 심판의 강도는 갈수록 더 강력해 진다는 것도 알아야 합니다. 숨기면 숨길수록 그 사람의 내일은 더욱 어두워질 뿐입니다. 때문에 그 어느 누구도 심판의 그날을 피할 수 없기에 하나님을 믿는다면, 성도들은 다가오는 그 심판의 날을 늘 준비해야 합니다. 심판의 내일을 준비하는 것이 지혜요 승리요 능력입니다. 이 세상 그 어느 곳에도 안전한 곳은 없습니다. 그 어떤 재벌의 돈도, 정치인의 그 어떤 권력도, 최고의 빛나는 명예를 가지고 있을지라도 자신의 죄는 스스로 해결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하시는 말씀을 보면 겔14:12-20입니다. “여호와의 말씀이 또 내게 임하여 이르시되, 인자야 가령 어떤 나라가 불법을 행하여 내게 범죄 하므로 내가 손을 그 위에 펴서 그 의지하는 양식을 끊어 기근을 내려 사람과 짐승을 그 나라에서 끊는다 하자, 비록 노아, 다니엘, 욥, 이 세 사람이 거기에 있을지라도 그들은 자기의 공의로 자기의 생명만 건지리라 나 주 여호와의 말이니라, 가령 내가 사나운 짐승을 그 땅에 다니게 하여 그 땅을 황폐하게 하여 사람이 그 짐승 때문에 능히 다니지 못하게 한다 하자, 비록 이 세 사람이 거기에 있을지라도 나의 삶을 두고 맹세하노니 그들도 자녀는 건지지 못하고 자기만 건지겠고 그 땅은 황폐하리라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가령 내가 칼이 그 땅에 임하게 하고 명령하기를 칼아 그 땅에 돌아다니라 하고 내가 사람과 짐승을 거기에서 끊는다 하자, 비록 이 세 사람이 거기에 있을지라도 나의 삶을 두고 맹세하노니 그들도 자녀는 건지지 못하고 자기만 건지리라 나 주 여호와의 말이니라, 가령 내가 그 땅에 전염병을 내려 죽임으로 내 분노를 그 위에 쏟아 사람과 짐승을 거기에서 끊는다 하자, 비록 노아, 다니엘, 욥이 거기에 있을지라도 나의 삶을 두고 맹세하노니 그들도 자녀는 건지지 못하고 자기의 공의로 자기의 생명만 건지리라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살 길은 오직 믿음입니다. 믿음만이 모든 위험에서 안전할 수 있고 어떤 위기에서도 문제가 되지 않고 오히려 더 경건해 지고 더 하나님만을 경외하게 됩니다. 믿음은 감사가 더 깊어지게 하고 기쁨이 충만해 지도록 하는 능력입니다. 다시 말씀을 드립니다. 오직 안전지대는 믿음 즉 하나님의 말씀을 믿어야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으로 사는 공동체만이 안전할 수 있습니다.
결론입니다. 지금 어려운 상황에 놓였습니까? 그 어려움을 피하려고 하지 마시고 끝까지 부딪쳐야 합니다. 고통스럽다고 하여 숨지 마세요! 숨으면 더 힘들어집니다. 믿음을 가지고 끝까지 부딪치셔야 합니다. 그러면 그 답이 나옵니다. 해결의 길이 보이게 됩니다. 결국 하나님께 철저하게 항복하는 기회가 될 것입니다. 그러나 시드기야 왕처럼 두려워서 도망 쳐 보세요! 두려움이 현실이 됩니다.
왕하25:1-7입니다. “시드기야 제구년 열째 달 십일에 바벨론의 왕 느부갓네살이 그의 모든 군대를 거느리고 예루살렘을 치러 올라와서 그 성에 대하여 진을 치고 주위에 토성을 쌓으매, 그 성이 시드기야 왕 제 십일 년까지 포위되었더라, 그 해 넷째 달 구일에 성 중에 기근이 심하여 그 땅 백성의 양식이 떨어졌더라, 그 성벽이 파괴되매 모든 군사가 밤중에 두 성벽 사이 왕의 동산 곁문 길로 도망하여 갈대아인들이 그 성읍을 에워쌌으므로 그가 아라바 길로 가더니, 갈대아 군대가 그 왕을 뒤쫓아 가서 여리고 평지에서 그를 따라 잡으매 왕의 모든 군대가 그를 떠나 흩어진지라, 그들이 왕을 사로잡아 그를 립나에 있는 바벨론 왕에게로 끌고 가매 그들이 그를 심문하니라, 그들이 시드기야의 아들들을 그의 눈앞에서 죽이고 시드기야의 두 눈을 빼고 놋 사슬로 그를 결박하여 바벨론으로 끌고 갔더라”
순종하지 않으면 이렇게 다 잃고 맙니다. 그렇기 때문에 현실이 무섭다고 하여 피하지 말고 믿음을 가지고 내일의 승리를 위하여 세상 세력, 자신의 연약함, 부족함과 끝까지 싸워야 합니다. 만약에 우리에게 암 수술이 필요하다면 그 수술이 위험할지라도 의사를 믿고 수술을 받아야 회복의 기회가 생기는 법과 같은 것입니다. 수술이 두려워서 피하면 기회를 잃게 될 것입니다. 우리의 인생이란 아무리 정직하게 사업을 경영했어도, 거래처가 도산하게 된다면, 관련된 자기에게도 그 피해는 면할 수 없습니다. 대인 관계에서도 이웃과 잘 유지하고 있었을지라도, 어떨 땐, 잘 지내던 이웃에게 아니 친구에게도 배반을 당하게 되는 경우도 있는 법입니다. 그런 처지에서도 성도된 우리들은 그 아픔과 슬픔도 인정하고 견딜 수 있어야 합니다. 같은 값이면 감사의 마음을 가지고 당한 그 억울한 어려움도 견딘다면, 자신의 내일에 큰 도움이 됩니다. 왜요? 왜 그래야 합니까? 하나님께서 늘 보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보호하시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승리를 위한 숨겨진 어떤 하나님의 놀라운 계획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성도들은 실패의 고통 속에서도 의심과 불평보다는 감사와 기쁨으로 반응할 수 있어야 합니다. 만약에 억울하기에 그래서 다투거나, 또는 송사를 하게 된다면, 당장은 답답하지 않을 수 있어도, 그 선택이 큰 손해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 맡겨야 될 것을 자기가 해결하려고 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일거수일투족까지 다 감찰하고 계십니다. 감찰하시면서 가장 복된 길로 인도해 주십니다. 이 점을 놓치면 안 됩니다. 자기의 약점, 허물이라고 하여 다 손해를 보는 것이라고 착각하지 마세요!
오히려 자기의 손해와 잃음이 복이 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자기의 고통들이 오히려 더 깊은 믿음을 가질 수 있게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런 아픔을 통하여 성도된 자기 자신이 성장하고 정결해 지기를 원하십니다. 그렇기에 크고 작은 실패와 아픔까지도 허락하십니다. 사마리아와 예루살렘의 심판은 그렇기 때문에 영원한 패망과 좌절을 위한 영벌의 심판이 아니었습니다. 죄 값을 인정하고 다시 승리를 주시는 그 포로의 기회가 하나님의 일하심임을 보게 하셨고, 그 포로의 시간이 하나님하고 더욱 가까워 질 수 있게 하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루살렘으로 돌아올 때에는 더 큰 믿음을 가지고 돌아올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성도라면 불순종으로 인한 실패까지도 하나님께서 주신 복된 기회라고 여길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지만, 신앙이 더 깊어지고 높아지고 넓어질 것입니다. 그러나 한 가지를 더 부연한다면, 죄 값으로 영원히 돌아올 수 없는 저주의 심판도 꼭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도에게 임한 고통이 최악일지라도 그 고통을 통하여 회개의 기회가 되게 하셔야 하고 더 큰 믿음을 갖는 시간이 되게 하셔야 합니다. 그러기 위하여 성도는 큰 폭풍 속에서도 큰 물고기 뱃속에서도 말씀을 늘 묵상하고 기도의 삶을 쉬지 말아야 합니다. 어려움이 있다면 힘이 아니라 오직 믿음으로 극복하셔야 합니다. 그래서 주신 재난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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