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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돌교회
5/9/2021 열왕기상 3 : 1-28 본문
말씀: 왕상 3:1-28
제목: 솔로몬의 일천번제
이스라엘의 3대 왕 솔로몬하면 지혜로 유명합니다. 세상 학자들보다 낫다는 평가를 받고 있었습니다. 그러니 온 천하에서 그의 지혜의 소문을 들은 모든 왕들은 그의 지혜를 들으려고 왔더라는 것입니다. 특히 아내가 많은 왕으로 모르는 사람이 없습니다. 게다가 솔로몬이 어떻게 하나님으로부터 복을 받은 왕인지, 그렇다는 것을 오늘 말씀에서 우린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왕상3:4-13입니다.
3:4 이에 왕이 제사하러 기브온으로 가니 거기는 산당이 큼이라 솔로몬이 그 제단에 일천 번제를 드렸더니
3:5 기브온에서 밤에 여호와께서 솔로몬의 꿈에 나타나시니라 하나님이 이르시되 내가 네게 무엇을 줄꼬 너는 구하라
3:6 솔로몬이 이르되 주의 종 내 아버지 다윗이 성실과 공의와 정직한 마음으로 주와 함께 주 앞에서 행하므로 주께서 그에게 큰 은혜를 베푸셨고 주께서 또 그를 위하여 이 큰 은혜를 항상 주사 오늘과 같이 그의 자리에 앉을 아들을 그에게 주셨나이다
3:7 나의 하나님 여호와여 주께서 종으로 종의 아버지 다윗을 대신하여 왕이 되게 하셨사오나 종은 작은 아이라 출입할 줄을 알지 못하고
3:8 왕께서 택하신 백성 가운데 있나이다 그들은 큰 백성이라 수효가 많아서 셀 수도 없고 기록할 수도 없사오니
3:9 누가 주의 이 많은 백성을 재판할 수 있사오리이까 듣는 마음을 종에게 주사 주의 백성을 재판하여 선악을 분별하게 하옵소서
3:10 솔로몬이 이것을 구하매 그 말씀이 주의 마음에 든지라
3:11 이에 하나님이 그에게 이르시되 네가 이것을 구하도다 자기를 위하여 장수하기를 구하지 아니하며 부도 구하지 아니하며 자기 원수의 생명을 멸하기도 구하지 아니하고 오직 송사를 듣고 분별하는 지혜를 구하였으니
3:12 내가 네 말대로 하여 네게 지혜롭고 총명한 마음을 주노니 네 앞에도 너와 같은 자가 없었거니와 네 뒤에도 너와 같은 자가 일어남이 없으리라
3:13 내가 또 네가 구하지 아니한 부귀와 영광도 네게 주노니 네 평생에 왕들 중에 너와 같은 자가 없을 것이라
이렇게 하나님까지도 칭찬이 자자했던 솔로몬이었습니다. 얼마나 솔로몬이 유명했는지, 솔로몬에 대하여 왕상3장-11장까지 솔로몬 한 사람의 삶에 대하여 이렇게 길게 언급하고 있는 것만 보아도 대단한 인물이었는지를 짐작하게 합니다. 아니 지금까지도 솔로몬에 대한 유명세는 대단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칭찬과 세상의 유명세가 진정으로 칭찬이요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유명세라고 생각하십니까? 여기서 분명한 점은 하나님의 칭찬 전에 솔로몬은 어떤 죄악을 짓고 있었는지 알아야 합니다. 그 점에 대하여 왕상3:1에서 언급하고 있습니다. 말씀을 봅니다.
“솔로몬이 애굽 왕 바로로 더불어 인연을 맺어 그 딸을 취하고 데려다가 다윗 성에 두고 자기의 궁과 여호와의 전과 예루살렘 주위의 성이 필역되기를 기다리니라”
이스라엘의 여인이 아니라 이방여인을 아내로 취하였던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율법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혼인은 이방여인하고 할 수 없도록 확실한 제한을 두고 있습니다. 출34:10-17입니다.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보라 내가 언약을 세우나니 곧 내가 아직 온 땅 아무 국민에게도 행치 아니한 행적을 너희 전체 백성 앞에서 행할 것이라 너의 머무는 나라 백성이 다 여호와의 소위를 보리니 내가 너를 위하여 행할 일이 두려운 것임이니라, 너는 내가 오늘 네게 명하는 것을 삼가 지켜라 보라 내가 네 앞에서 아모리 사람과 가나안 사람과 헷 사람과 브리스 사람과 히위 사람과 여부스 사람을 쫓아내리니, 너는 스스로 삼가 내가 들어가는 땅의 거민과 언약을 세우지 말라 그들이 너희 중에 올무가 될까 하노라, 너희는 도리어 그들의 단들을 헐고 그들의 주상을 깨뜨리고 그들의 아세라 상을 찍을찌어다, 너는 다른 신에게 절하지 말라 여호와는 질투라 이름하는 질투의 하나님임이니라, 너는 삼가 그 땅의 거민과 언약을 세우지 말찌니 이는 그들이 모든 신을 음란히 섬기며 그 신들에게 희생을 드리고 너를 청하면 네가 그 희생을 먹을까 함이며, 또 네가 그들의 딸들로 네 아들들의 아내를 삼음으로 그들의 딸들이 그 신들을 음란히 섬기며 네 아들로 그들의 신들을 음란히 섬기게 할까 함이니라, 너는 신상들을 부어 만들지 말찌니라” 이렇게 무섭게 철저하게 우상 숭배는 절대로 안 돼! 그래서 가나안 여자들, 이방 여인들과 혼인은 안 돼! 절대 금하셨지만, 그러나 천하를 통치하게 된, 솔로몬은 이방여인들과 혼인을 했던 것입니다.
물론 그 혼인들 중에는 그 여자를 좋아서 혼인을 했을 뿐만이 아니라, 정치적인 성향을 띤 혼인도 있었던 것입니다. 천하를 다스리다가보니까, 솔로몬이 이스라엘의 안보를 위한 명분으로 강대국과의 연합을 이런 식으로까지 하여 하나님의 율법까지도 범했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 이스라엘을 믿음으로만 지켜내야 하는데 그것이 아니라, 세상의 힘과 방법까지도 허용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그런 솔로몬에게 하나님께서 어떤 복을 주셨는지 우린 압니다. 오늘 말씀을 보면, 솔로몬 왕이 일천번제를 드리니까, 그래서 그 지성을 보시고 귀하다고 하시면서 주신 복으로 성경은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럴까요? 그래서 주신 복일까요?
그러나 그 전에 솔로몬은 왕이 된 후에도, 이미 암몬 여인인 나아마라는 부인이 있었다는 점입니다. 이미 솔로몬은 그렇게 신신당부를 하신 이방여인하고의 혼인을 했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간절하신 그 뜻을 깨드리고, 율법을 파괴하고 있었습니다. 나아마라는 솔로몬의 아내는 솔로몬의 아들, 그 유명한 르호보암의 어미였던 것입니다. 애굽의 공주를 아내로 또 데려오기 전에 이미 암몬 여인 나아마를 부인으로 두고 있었던 것입니다. 지금 제가 무슨 말씀을 드리려는 지, 감이 잡히시나요?
오늘은 2가지로 말씀을 드립니다. 첫째입니다. 솔로몬의 일천번제인 지성이면 감천으로 솔로몬이 복을 받았다. 라는 이 기복신앙에서 속지 말아야 합니다. 성경의 목표는 거룩함이지 세상의 복을 받는 방법에 대하여 말씀을 하지 않습니다. 솔로몬 왕이 율법을 이렇게 무시하여 감히 이방여인들과 혼인을 합니다. 하나님의 명을 어기는 죄를 짓고 있었지만 하나님께서는 인내하고 계시다가, 다시 또 애굽의 공주를 정략적(political tactics), 정치적 차원에서 아내들을 데리고 오자, 비로써 나타나셔서 율법에 순종해야 됨을 확실하게 명시하여 주셨던 것입니다.
심지어 지혜와 총명한 마음의 복과 부와 영광의 복까지도 주시면서 솔로몬아! 너는 반드시 다윗 아비처럼 순종하라! 이 말씀을 하시려고 솔로몬에게 나타나 주셨던 것이지, 일천번제를 하나님에게 드렸기에 그래서 예뻐서, 친히 꿈에 나타나 주신 복들이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그렇다는 것을 확인합니다. 왕상11:9-10입니다. “솔로몬이 마음을 돌이켜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를 떠나므로 여호와께서 저에게 진노하시니라 여호와께서 일찍이 두 번이나 저에게 나타나시고, 이 일에 대하여 명하사 다른 신을 좇지 말라 하셨으나 저가 여호와의 명령을 지키지 않았으므로”
하나님께서 솔로몬에게 나타나신 이유가 무엇이라고요? 복을 주시려는 것이 아니라 책망이요 경고 차원이었던 것입니다. 왕상3장의 오늘을 말씀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면 안 됩니다. 그런 오해의 여지가 있는 말씀들은 말씀 안에서 해석을 할 수 있어야 합니다. 말씀을 착각하면, 어떻게 된다고요? 이스라엘 백성처럼, 세례 요한처럼 예수님을 의심하게 되면서 결국 죽이게 됩니다.
죽여 놓고도 끝이 아니라 주님께서 부활하셨다는 소문을 들어 확인도 할 수 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활의 주 예수님을 의심하면서 여전히 구세주가 와서 이스라엘만을 구원해 주실 것이라는 헛된 믿음을 갖고, 지금까지도 기다리고 있더라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말씀은 정확하게 이해를 해야 합니다. 다시 말씀을 드리지만, 솔로몬이 일천번제로 복을 받게 된 것이 아니라, 지성이면 감천이 아니라, 솔로몬이 타락하여 이방여인과 혼인을 하자 경고, 책망차원에서 나타나셨고, 그리고 주신 복은 그 복을 늘 생각하면서, 순종하라는 하나님의 뜻을 잊지 말라는 것이었지, 이 복을 솔로몬의 일천번제로 받았다고 하면서 우리들도 기도하여 복을 받자로 가면 큰일이 나는 것입니다. 지혜와 총명한 마음의 복과 부와 영광의 복을 주시면서 ‘순종하라’는 것이 하나님께서 솔로몬에게 나타나신 이유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복은 ‘순종하라’에 있기에, 지금까지 하나님의 자녀들에게도 어떤 복을 하염없이 주시면서 순종하게 하시려는 하나님이신지, 알고 있으십니까?~
신약의 모든 하나님의 자녀들이 실은 솔로몬 왕보다 상상도 할 수 없는 비교도 할 수 없는 더 많은 복을 받았다는 것을 알고 있나요? 그렇다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을까요? 시101:2입니다. “내가 완전한 길에 주의 하오리니 주께서 언제나 내게 임하시겠나이까 내가 완전한 마음으로 내 집 안에서 행하리이다” 다윗이 원하는 바가 무엇이라고 합니까? 다윗은 이스라엘의 왕으로써 인자와 공의가 충만하지 못하면 안 되기에 그래서 하나님의 임재하심을 너무나 사모하여 이렇게 기도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성도된 우린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이루어졌습니다.
성령하나님께서 늘 영원히 함께 하십니다. 하나님의 성전이 된 것입니다. 그래서 임마누엘의 하나님이라고 합니다. 그러니, 솔로몬 왕과 비교하여도 전혀 부족함이 없는 복을 받았다는 것을 알게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하고 늘 함께하는 성도된 우리에게 어떤 부탁과 요청을 간절하게 하시던가요? 역시나 마찬가지로 ‘순종하라’입니다. 우린 솔로몬 왕보다 더 큰 복을 받았기에 그래서 우린 더, 솔로몬보다 더 큰 부탁을 하실 수밖에 없다는 것도 알아야 합니다. 아닌가요? ~
누가 아니라고 할 수 있을까요? 오직 복을 재물, 돈으로만 평가하는 기복신앙을 가진 미련한 자들만이 아니라고 할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주시는 진정한 복은 재물과 영광과 총명이 아니라 바로 예수님이 복이라고 하십니다. 왜요? 세상의 재물과 권세와 영광은 사라지고 마는 잠시의 복이지만 예수님을 믿는 복은 모든 것을 영원히 다 얻는 영광의 복이기 때문입니다. 고전3:21-23입니다. “그런즉 누구든지 사람을 자랑하지 말라 만물이 다 너희 것임이라, 바울이나 아볼로나 게바나 세계나 생명이나 사망이나 지금 것이나 장래 것이나 다 너희의 것이요, 너희는 그리스도의 것이요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것이니라”
그러니까 우리가 우주와 역사의 주인이시고 왕이신 하나님의 것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들이 어떤 존재들인지, 감이나 잡히세요? 진정한 복이 재물이 아니라 예수를 본 자, 만난 자, 하나님의 성전이 된 자들이 다 최고의 복을 받았기에 하시는 말씀을 보면, 마13:16-17입니다.
“그러나 너희 눈은 봄으로 너희 귀는 들음으로 복이 있도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많은 선지자와 의인이 너희 보는 것들을 보고자 하여도 보지 못하였고 너희 듣는 것을 듣고자 하여도 듣지 못하였느니라”
믿음을 가진 자들은 복의 개념부터도 완전하게 달라집니다. 그러므로 주신 재물과 총명까지도 다 주님을 위하여 사용하게 되므로 받은 자신의 그 재물과 총명도 이웃의 영광을 위하여 기꺼이 사용하게 되더라는 것입니다. 헛된 재물과 사라지는 시간을 가지고 영원한 영광의 것들, 즉 억울할 수 없는, 성도라면 부러워하는, 경건한 삶, 섬기는 삶, 양보하고 희생하는 삶, 정결한 삶을 항상 준비하게 됩니다. 더 이상 착각하지 말고, 순종합시다! 순종은 억울한 선택이 아니라 능력이요 복입니다.
두 번째 말씀입니다. 왕상10:21-25입니다.
10:21 솔로몬 왕이 마시는 그릇은 다 금이요 레바논 나무 궁의 그릇들도 다 정금이라 은 기물이 없으니 솔로몬의 시대에 은을 귀히 여기지 아니함은
10:22 왕이 바다에 다시스 배들을 두어 히람의 배와 함께 있게 하고 그 다시스 배로 삼 년에 한 번씩 금과 은과 상아와 원숭이와 공작을 실어 왔음이더라
10:23 솔로몬 왕의 재산과 지혜가 세상의 그 어느 왕보다 큰지라
10:24 온 세상 사람들이 다 하나님께서 솔로몬의 마음에 주신 지혜를 들으며 그의 얼굴을 보기 원하여
10:25 그들이 각기 예물을 가지고 왔으니 곧 은 그릇과 금 그릇과 위복과 갑옷과 향품과 말과 노새라 해마다 그리하였더라
이런 솔로몬이 나중에는 무너지면서 그의 인생은 결국 부끄러운 왕으로 남게 됩니다. 우린 왕상11:9-13을 봅니다. “솔로몬이 마음을 돌이켜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를 떠나므로 여호와께서 저에게 진노하시니라 여호와께서 일찍이 두 번이나 저에게 나타나시고, 이 일에 대하여 명하사 다른 신을 좇지 말라 하셨으나 저가 여호와의 명령을 지키지 않았으므로, 여호와께서 솔로몬에게 말씀하시되 네게 이러한 일이 있었고 또 네가 나의 언약과 내가 네게 명한 법도를 지키지 아니하였으니 내가 결단코 이 나라를 네게서 빼앗아 네 신복에게 주리라, 그러나 네 아비 다윗을 위하여 네 세대에는 이 일을 행치 아니하고 네 아들의 손에서 빼앗으려니와, 오직 내가 이 나라를 다 빼앗지 아니하고 나의 종 다윗과 나의 뺀 예루살렘을 위하여 한 지파를 네 아들에게 주리라 하셨더라” 이렇게 결국 이스라엘의 분열을 가져온 왕이 되면서 부끄러운 왕으로 남게 됩니다.
누구든지 원하던, 영적인 최고의 경험까지도 했던 황제 솔로몬이었지만, 힘과 능력만을 구하는 세상의 왕처럼, 멋대로 권세를 휘두르다가 솔로몬은 결국 최악까지 간, 가장 악하고 못난 하나님 나라의 왕으로 남게 된 것입니다. 아무리 큰 복들을 받았지만, 모두가 원하는 그런 복과 영적인 경험을 했을지라도, 이렇게 망하게 되는 것을 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아니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요?
망하는 솔로몬의 길을 가지 못하여 안달하고 있습니다. 그런 교인들을 보면, 아니 솔로몬의 복만을 도려내어서 부추기고 있고 그 복을 위하여 열심히 기도하라고 속이고 있는 그런 목회자들을 보면 두렵고 무섭습니다. 세상의 힘에 속은 솔로몬은 부끄러운 왕입니다. 솔로몬 자신까지도 전도서에서 자기의 그 부끄러움을 고백하고 있는데, 아니 어떻게 그 복을 받으라고 할 수 있나요? 물론 세상의 자기 왕이 모든 자기 나라의 여인들을 아내로 삼는다고 할지라도 누가 뭐라고 할까요?
강력한 왕이기에 미친 짓도 할 수 있습니다. 천하의 왕으로서 많은 아내를 두는 것이 무슨 흉이요 죄라고 할 수 있나요? 그러나 하나님의 나라는 다릅니다. 황제일지라도 부귀영화를 누렸던 솔로몬일지라도, 솔로몬의 그 능력과 영광과 비교하면, 비교도 아니 되는 그 작은 불순종이, 그 강력했던 나라, 이스라엘을 결국 무너지는 이유가 되더라는 것입니다. 작은 죄라고 우습게 여기면 천하의 왕 솔로몬도 무너지는데, 하물며 우린 어떤가요? 황제 솔로몬도 불순종으로 이렇게 무너졌는데, 우리의 불순종은 어떤 결과를 가져올까요? 괜찮다고 확신할 수 있습니까? ~
당시 솔로몬의 최상의 능력과 영광을 우린 보았습니다. 그러나 죄 앞에서는 이겨낼 장사가 완전 없더라는 것입니다. 최강 로마도 결국 하고 싶은 대로 하다가 타락으로 무너져서 영원히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아직도 하고 싶은 대로 하면서 더 즐기려고 합니까? 더 가지려고 합니까? 더 자랑하려고 합니까? 은혜의 줄로 자기의 지정의를 꽁꽁 묶지 않으면,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 박지 않으면 망합니다.
믿으신다면, 믿는 그 성도들은 순종을 위하여 말과 행동을 함부로 내세울까요? 신중할 것입니다. 특히 아무리 좋은 것도 끝까지 지켜내지 못하고, 방치하고, 가볍게 여겨버리면, 아무리 좋은 것일지라도 소용이 없을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이 귀한 믿음과 신앙을 거저 주셨다고 하여, 가볍게 여길 수 있나요? 아니면 두려워해야 할까요? ~ 어떻게 해야 할까요? 믿음의 능력은 죽은 자도 살리고 오병이어의 기적도 일으키고, 문둥병까지도 깨끗하게 할 수 있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단지 쥐고만 있어도 되는 것이 아닙니다. 순종을 해야지만 능력이 나타납니다.
그렇지 않으면 본 나무에서 잘라져, 버려지고 마는 가지가 될 것입니다. 그런데 놀라운 점은 본 나무에 달린 가지와 잘려나가서 버려지는 가지의 현실을 보면, 생명이 있는 본 나무에 붙어 있는 가지는 언제나 고달프고 뜨겁고 춥고 보기에 참 망할 것 같아 보이지만, 떨어져나간, 버림받은 나뭇가지는 세상의 멋진 포장으로 참 자유롭게 보이고 즐겁게 보이고 좋아 보이고, 쉬워 보이고, 행복한 것처럼 보이더라는 것입니다. 당시 솔로몬 왕도 보세요! 최고로 보이지 않았나요?
솔로몬은 그렇게 보였을 뿐이지, 실은 복도 최고도 아니었습니다. 주신 믿음과 신앙을 지켜내지 못하면, 이스라엘도 보세요! 지금도 방황하고 있습니다. 야곱에 의하여 시작된 이스라엘이 모세를 통하여 이루어졌지만, 구약 내내 얼마나 시끄러운 나라이었는지 모르는 사람이 없습니다. 그리고 신약에 와서는 거의 2000년 동안에 나라 없는 나그네, 디아스포라로 힘겹게 살다가 1948년에 겨우 나라가 회복이 됩니다. 그리고 세계대전을 통하여 이스라엘의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버리고, 배반하고, 죽인, 대가로 독일군 나치에 의하여 600만 명이나 참혹하게 학살을 당합니다.
솔로몬처럼 ‘나 한 사람 멋대로 해도 괜찮겠지’ 하고 방심하는 그 방심이 이런 지경으로까지 이른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인간의 가치는 돈과 힘이 아니라 순종하는 믿음으로 평가 받습니다. 동의하십니까? 당연히 아멘이지요~그런데 왜 여전히 돈, 돈, 돈하고 있습니까? 왜 두 주인을 섬기려고 합니까? 신앙을 지키려고 피땀을 흘릴 결단과 결심으로 왜 끝까지 순종할 생각은 안 합니까? 썩어지고 사라질 세상의 것에 아낌없는 투자를 하여 성공을 할지라도 그건 사라지는 성공일 뿐입니다.
진정한 성공은 끝까지 주님과 동행하면서 영원히 남는 자들이 성공한 것입니다. 두 손에 두 주머니에 재물로 가득 채웠다고, 통장에 돈이 가득하다고 하여 성공했다고 하지 않으십니다. 눅12:13-21입니다.
12:13 무리 중에 한 사람이 이르되 선생님 내 형을 명하여 유산을 나와 나누게 하소서 하니
12:14 이르시되 이 사람아 누가 나를 너희의 재판장이나 물건 나누는 자로 세웠느냐 하시고
12:15 그들에게 이르시되 삼가 모든 탐심을 물리치라 사람의 생명이 그 소유의 넉넉한 데 있지 아니하니라 하시고
12:16 또 비유로 그들에게 말하여 이르시되 한 부자가 그 밭에 소출이 풍성하매
12:17 심중에 생각하여 이르되 내가 곡식 쌓아 둘 곳이 없으니 어찌할까 하고
12:18 또 이르되 내가 이렇게 하리라 내 곳간을 헐고 더 크게 짓고 내 모든 곡식과 물건을 거기 쌓아 두리라
12:19 또 내가 내 영혼에게 이르되 영혼아 여러 해 쓸 물건을 많이 쌓아 두었으니 평안히 쉬고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자 하리라 하되
12:20 하나님은 이르시되 어리석은 자여 오늘 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네 준비한 것이 누구의 것이 되겠느냐 하셨으니
12:21 자기를 위하여 재물을 쌓아 두고 하나님께 대하여 부요하지 못한 자가 이와 같으니라
그러나 성공하는 소수의 행보를 보시요! 눅12:31-34입니다.
12:31 다만 너희는 그의 나라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런 것들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12:32 적은 무리여 무서워 말라 너희 아버지께서 그 나라를 너희에게 주시기를 기뻐하시느니라
12:33 너희 소유를 팔아 구제하여 낡아지지 아니하는 배낭을 만들라 곧 하늘에 둔 바 다함이 없는 보물이니 거기는 도둑도 가까이 하는 일이 없고 좀도 먹는 일이 없느니라
12:34 너희 보물 있는 곳에는 너희 마음도 있으리라
죽은 자와 산 자의 차원이 다릅니다. 죽은 자들은 보이는 조건을 채우기에 정신이 없지만, 믿음의 중심에 선, 산 자들은 조건을 채우는 삶이 아니라 하나님하고의 관계, 이웃 간의 관계를 우선시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채우려는 자들은 자기만 편하거나 살려고 이웃을 괴롭히면서 그 관계를 깨뜨리게 되지만, 관계를 우선시 하는 믿음의 자녀들은 그 반대로 이웃을 살리려고 다 내려놓습니다. 자기가 가진 것으로 이웃과 나누고 섬기고 양보하고 배려하기에 관계가 이루어지면서 더욱 건강한 공동체를 세우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예수님께서 오셨습니다. 더 이상 스스로 속이지도 말고 속지도 말아야 합니다.
결론입니다. 말씀을 크게 넓게 깊게 이해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결국 다윗도 솔로몬도 실은 저지른 죄 때문에 사울 왕이나 요압이나 압살롬과 아도니야처럼 다 망해야 합니다. 그런데 망하지 않더라는 것입니다. 다윗과 솔로몬뿐 만이 아니라, 디아스포라로 수천 년간을 떠돌아다녔지만 이스라엘이라는 나라는 망했나요? 아니면 갈수록 막강한 나라로 존재하고 있던가요? 후자입니다. 기적이 아닙니까? 이스라엘도 기적이듯이 다윗과 솔로몬도 기적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구약 이스라엘을 통하여 주님의 핏 값으로 세워진 신약의 교회가 세상의 힘에 눌려서 망하여 문을 닫고 교회라는 실체가 사라지고 말았나요? ~ 망할 것 같은데도, 망하지 않고 여전히 존재하여 절에서조차 교회라는 이름을 쓰고 있는 것을 보더라도 무엇이 기적입니까? 망할 것 같은데 망하지 않고 강력한 빛을 드러내는 이것이 기적이라는 것입니다. 그것이 어떻게 가능할까요? 어떻게 여전히 존재하여 그 가치를 드러내고 있는 것일까요? 그 뒤에서 보이지 않는 능력으로 전 역사와 시간과 모든 사건들을 통제하고 간섭하시고, 그 안에서 지도하여 주시고, 날마다 주님의 자녀들과 교회들을 불꽃같은 눈동자로 졸지도 주무시지도 않으시면서 약속하신 대로 지켜주시는 하나님이 계시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기적의 그 이유이지 인간의 능력과 실력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성경 곳곳을 보세요! 망해야 되는데 망하지 않더라는 것입니다. 망할 것 같지 않았는데 망하더라는 것을 우린 분별할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한 곳만 봅니다. 민24:15-25입니다.
24:15 예언하여 이르기를 브올의 아들 발람이 말하며 눈을 감았던 자가 말하며
24:16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자가 말하며 지극히 높으신 자의 지식을 아는 자, 전능자의 환상을 보는 자, 엎드려서 눈을 뜬 자가 말하기를
24:17 내가 그를 보아도 이 때의 일이 아니며 내가 그를 바라보아도 가까운 일이 아니로다 한 별이 야곱에게서 나오며 한 규가 이스라엘에게서 일어나서 모압을 이쪽에서 저쪽까지 쳐서 무찌르고 또 셋의 자식들을 다 멸하리로다
24:18 그의 원수 에돔은 그들의 유산이 되며 그의 원수 세일도 그들의 유산이 되고 그와 동시에 이스라엘은 용감히 행동하리로다
24:19 주권자가 야곱에게서 나서 남은 자들을 그 성읍에서 멸절하리로다 하고
24:20 또 아말렉을 바라보며 예언하여 이르기를 아말렉은 민족들의 으뜸이나 그의 종말은 멸망에 이르리로다 하고
24:21 또 가인 족속을 바라보며 예언하여 이르기를 네 거처가 견고하고 네 보금자리는 바위에 있도다
24:22 그러나 가인이 쇠약하리니 나중에는 앗수르의 포로가 되리로다 하고
24:23 또 예언하여 이르기를 슬프다 하나님이 이 일을 행하시리니 그 때에 살 자가 누구이랴
24:24 깃딤 해변에서 배들이 와서 앗수르를 학대하며 에벨을 괴롭힐 것이나 그도 멸망하리로다 하고
24:25 발람이 일어나 자기 곳으로 돌아가고 발락도 자기 길로 갔더라
망할 것 같은 이스라엘은 끝까지 남아 있고, 끝까지 남아 있을 것만 같았던 강대국들은 다 사라지고 없어져 버렸다는 것이 아닙니까?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 603,350명 중에서 603,348명이 타락하여 다 죽어버렸는데, 나중에 다시 보니까, 601,730명이 다시 새롭게 태어나 약속하신 젖과 꿀이 흐리는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더라는 것입니다. 왜요? 어떻게 그럴 수 있나요? 하나님의 언약 때문입니다. 계시록에서도 보세요! 하나님의 종들이 세상의 악의 세력에 다 당합니다.
그러나 누가 영원히 남아서 복된 영생을 할 것이라고 약속을 하고 있던가요? 택함을 받아서 세상에서 당했던 자들이 그 복을 누리게 하십니다. 그것이 가능한 이유가 무엇입니까? 인간의 능력과 실력이 아니라 하나님의 약속 때문에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인간의 능력이 최강일지라도 안 된다는 것이 창세기부터 계시록까지 내내 밝혀주시고 계십니다. 그런데 보세요! 발람 선지자가 이스라엘을 위하여 축복의 노래를 불렀지만 그의 종말은 어떤가요?
민31:7-8을 보면, “그들이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하신 대로 미디안을 쳐서 그 남자를 다 죽였고, 그 죽인 자 외에 미디안의 다섯 왕을 죽였으니 미디안의 왕들은 에위와 레겜과 수르와 후르와 에바이면 또 브올의 아들 발람을 칼로 죽였더라”
그는 버려집니다. 왜요? 민31:16입니다.
“보라 이들이 발람의 꾀를 좇아 이스라엘 자손으로 브올의 사건에 여호와 앞에 범죄케 하여 여호와 회중에 염병이 일어나게 하였느니라”
이스라엘을 저주하라는 모압 왕 발락에게 하나님의 뜻대로 이스라엘을 축복해 놓고도 세상의 성공과 승리를 발람이 포기하지 못하고 이스라엘을 미혹하여 우상숭배를 하게 합니다. 그 사건인 민25:1-3, 9입니다.
“이스라엘이 싯딤에 머물러 있다니 그 백성이 모압 여자들과 음행하기를 시작하니라, 그 여자들이 그 신들에게 제사할 때에 백성을 청하매 백성이 먹고 그들의 신들에게 절하므로, 이스라엘이 바알브올에게 부속된지라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에게 진노하시니라, 그 염병으로 죽은 자가 이만 사천 명이었더라”
이 사건의 배후 조종자가 바로 발람이었던 것 민31:16에서 말씀하십니다.
31:16 보라 이들이 발람의 꾀를 따라 이스라엘 자손을 브올의 사건에서 여호와 앞에 범죄하게 하여 여호와의 회중 가운데에 염병이 일어나게 하였느니라
모두들 영적인 경험을 솔로몬과 발람처럼 원합니다. 복을 받기를 원합니다. 그러나 참 신앙은 끝까지 믿음으로 주님의 좁은 길을 따라가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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