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돌교회

5/2/2021 열왕기상 2:1-46 본문

주일 설교 말씀

5/2/2021 열왕기상 2:1-46

PastorYK 2021. 5. 3. 14:05

말씀: 왕상 2:1-46                                        

제목: 솔로몬의 숙청작업 

 

원래 모든 국가의 공통적인 특징은 원수 또는 적대세력과 어우러져 있지 않나요? 공산당과 민주당, 여당과 야당처럼 말입니다. 서로의 약점을 트집 잡아서 국민으로부터 표를 하나라도 더 얻어 정권을 거머쥐려고 몸부림을 칩니다. 그러다가 정권을 잡으면, 서로 싸우면서 여권은 정권을 지켜내려고 하고 야권은 다시 정권을 가지려고 몸부림을 칩니다. 물론 약한 쪽에서는, 별의별 시시콜콜한 문제를 가지고 시비를 걸어 흠집을 내려고 수단과 방법까지도 가리지 않더라는 것입니다.

 

특히 그 나라의 민주적인 수준이 미치지 못하면, 불안하다는 핑계와 그리고 나라를 위한다는 명분으로 힘을 가진 세력이 예전의 한국과 미얀마처럼 숙청작업까지도 합니다. 그런 쿠데타를 일으켜서 장기 집권으로 나라를 망해 먹는 일이 인간 역사 안에서는 다반사로 일어나고 있습니다. 그런데 왕상 2장을 보면서 여러분은 어떤 느낌을 가졌나요? 하나님의 나라인 이스라엘도 세상 나라와 무엇이 다른가? 라는 생각을 하게 하더라는 말씀입니다. 공산당이나 독재 정권에서나 일어날 숙청작업이 이스라엘에서도 재현되고 있습니다. 

 

무슨 뜻일까요? 원수를 사랑하라, 서로 연합하고 화목하라는 말씀하고는 거리가 먼, 사건이기에 더더욱 이해가 안 되기 때문입니다. 세상 나라의 더러움을 정결케 해서 연합과 화목을 이루어야 되는 제사장 나라, 자비를 베풀어야 되는 이스라엘에서 이런 숙청작업이 솔로몬에 의하여 이루어졌습니다. 단지 자신의 통치에 위험한 세력들을, 늘 경계해야 될 방해 세력들을 제거하는 것이 개인의 보복과 사사로운 감정으로 보입니다. 게다가 다윗까지도 죽어가면서 마음에 두었던 원수에 대한 보복차원의 유언을 남기고 있습니다. 특히 아도니야가 부탁한 동녀 수넴 여자 아비삭을 자기 아내로 달라고 하자 죽음을 당했는데 너무하다는 생각이 들지는 않았나요

 

이 사건에 대하여 부연하면, 실은 하나님의 뜻을 어긴 형 아도니야는 반역으로 벌써 죽었어야 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그가 다윗 아버지의 여자를 자신의 아내로 달라는 것입니다. 그 뜻은 아도니야 자신이 이스라엘의 3대 왕의 자리를 포기하지 못하고 있었다는 뜻에서의 요구였던 것입니다. 그러니까 솔로몬으로부터 다윗의 후궁,  아비삭을 자신의 아내로 얻게 되면, 솔로몬까지도 자신을 이스라엘의 왕으로 인정을 한 것이 되고 그렇게 되면 다시 싸워 볼만하다는 점을 노렸던 것입니다. 

 

그래서 아비삭을 달라고 솔로몬의 모친 밧세바에게 청을 했던 그의 음모였습니다. 그리고 아비삭을 자신의 여인으로 구하는 것은 아버지 다윗을 모욕하는 것이요 압살롬처럼 다윗에게 반기를 드는 자가 된 것입니다. 그렇게 함으로 다윗을 싫어하던 다른 지파 사람들로부터 분열하려고 하던 세력들에게 빌미를 줄 수 있기에, 그에 대한 심판은 합당한 것입니다. 아도니야가 그렇게 해서 이스라엘의 분열을 조장하게 되면, 다시 한 번 솔로몬과 싸워 볼 수 있다는 계산을 했던 것입니다

 

아주 간사하고 간악한 요구를 한 것입니다. 그러니 어떻게 용서를 받을 수가 있겠습니까? 아들 압살롬이 다윗의 후궁을 훤한 대낮에 동침하는 만행은 아비 된 다윗의 마음을 완전 무너뜨린 짓이었는데, 그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율법을 완전하게 밟아서 뭉개버리는 처사가 아닙니까? 율법에 아비의 아내를 취할 수 없습니다. 그런 사건이 야곱의 장자 르우벤이 아버지 야곱의 첩 빌하와 통간했다가 결국 장자권을 빼앗기지 않았습니까? 창49:3-4에서 르우벤이 저주를 받는 그 원인이 아비 야곱의 첩 빌하와의 동침이 그 이유라고 밝히고 있습니다.

 

49:3 르우벤아 너는 내 장자요 내 능력이요 내 기력의 시작이라 위풍이 월등하고 권능이 탁월하다마는

49:4 물의 끓음 같았은즉 너는 탁월하지 못하리니 네가 아버지의 침상에 올라 더럽혔음이로다 그가 내 침상에 올랐었도다

 

그 일을 감히 압살롬에 이어서 아도니야가 하려고 했으니 어떻게 정결해야 되는 하나님 나라의 왕으로써 말씀이 기준이 된, 솔로몬이 아도니야를 용납, 용서를 할 수가 있겠습니까? 게다가 자기 멋대로 왕이 되려고 했다가, 용서를 받은 자인데 이미 죽어야 되는 목숨을 살려 준 것이 아닙니까?

 

그런데 다시 그 은혜를 잊고 아비 다윗의 아내를 취하려고 했으니 형일지라도 피할 수 없는 심판이었습니다. 그런데도 형을 심판한 솔로몬에 대한 보복이, 너무하는 것이 아닌가라고 할 수 있을까요? 너무한 것이 아니라 말도 안 된다는 생각이 들지는 않습니까? 왜요? 아니 다윗은 충신의 아내인 밧세바를 힘으로 권력으로 불러와서 간통까지 하고 그것도 모자라 임신을 하자 밧세바의 남편인 충신 우리아를 죽여 버리고 맙니다.

 

럼 다윗도 공평과 형평상 마찬가지로 죽여 버려야 합당한 것이 아닙니까? 어찌 공의로우신 하나님의 심판이 이렇게까지 불공평할 수 있나요? 라고 의심과 불평을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똑같은 죄인인데 누구는 살리고 누구는 죽이고 합니다이점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요?

 

그러나 이 처형 안에는 하나님의 숨겨진 깊은 뜻이 있습니다. 심판에는 두 가지가 있습니다. 첫째 심판은 하나님의 나라요 그래서 제사장 나라인 이스라엘과 교회는 하나님의 뜻인 공의를 자신과 열방에 전해야 합니다. 죄를 덮어주는 공의가 없는, 하나님 나라는 없다는 점입니다. 공의 없는 정결과 화목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솔로몬을 통하여 드러내신 것입니다. 그래서 사울 왕을 비롯하여 세검, 시므이, 아도니야까지 다 그들은 심판을 받아 죽게 됩니다

 

오직 인과응보인 공의의 하나님이심을 드러내십니다. 그러나 다윗과 솔로몬은 왜 죄 값으로 버려지지 않았는가? 그들을 통한 하나님의 뜻은 공의를 담은 은혜입니다. 언약으로 인하여 죄사함을 받게 된, 다윗과 솔로몬은 언약의 희생물인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구원을 받을 것이라는 상징적인 인물입니다. 그 상징을 다윗과 솔로몬을 통하여 왕상 2장에서 계시하신 것이지 불공평한 심판을 하신 것이 아닙니다.

 

결국 언약을 성취하시려고 누구를 보내주십니까? 마리아의 몸을 통하여 오신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모든 죄를 다 사하여 주시려고, 언약을 이루어 주시려고, 희생양이 되어 주신 것입니다. 그 위대한 말씀을 봅니다.

 

사53:4-5입니다.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는 징벌을 받아서 하나님에게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 하였노라,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 

 

구세주로 오신 주님께서 나의 죄로 인한 고난을 당하지 아니하신다면 우리에게는 화목과 평안으로 인한 승리와 기쁨을 전혀 기대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이 문제를 해결하시려고 보냄을 받으셨습니다. 엄마의 아기집(womb)에서부터 근본적으로 죄인으로 태어난 그 죄성, 그리고 머리털보다 많은 죄악들을 갖고 태어난 모든 인간들의 그 죄들은 인간의 힘과 능력으로 해결이 됩니까? 아닙니다. 영원히 해결할 수도 그리고 제거될 수도 없습니다. 아니 나무가 자라 뿌리가 깊게 내리듯이, 세월이 지나면서 선해지는 것이 아니라 죄의 뿌리가 더 자라서 더 악한 자로 변질이 되어, 기회를 아무리 주실지라도 그 기회를 붙잡지 못하고 영원히 죽어 버려지더라는 것입니다. 

 

때문에 인간의 죄에 대하여 해결함이 없이는 그 누구도 서로의 화목과 연합과 기쁨과 평안은 순간적일 뿐이지 영원할 수 없기에 그래서 친히 오셔서 언약의 희생제물이 되어 주신 것입니다. 그 죄의 문제를 죄인인 우리에게 맡겨서 스스로 해결하라고 하신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 자신이 해결하여 주시면서, 그 은혜가 능력과 힘이 되어 서로가 희생하면서 인내하면서 화목과 연합을 이루어서 참 승리자의 아름다운 삶을 세상 사람들에게 증거하는 증인이 되게 하신 것입니다. 

 

두 번째로 드릴 둘째심판이 있습니다. 그 심판은 재림의 주로 오실 때, 나타나는 심판입니다. 주님이 재림의 주로 오셔서 심판하실 때, 그때 모든 죄인들이 죄값으로 다 불 속으로 버려질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때 심판은 재림의 주께서 천사들과 구름타고 오셔서 하실 심판입니다. 곳곳에서 말씀하시는데, 한 곳만 봅니다. 마24:28-41입니다.

 

24:28 주검이 있는 곳에는 독수리들이 모일지니라

24:29 그 날 환난 후에 즉시 해가 어두워지며 달이 빛을 내지 아니하며 별들이 하늘에서 떨어지며 하늘의 권능들이 흔들리리라

24:30 그 때에 인자의 징조가 하늘에서 보이겠고 그 때에 땅의 모든 족속들이 통곡하며 그들이 인자가 구름을 타고 능력과 큰 영광으로 오는 것을 보리라

24:31 저가 큰 나팔 소리와 함께 천사들을 보내리니 그들이 그의 택하신 자들을 하늘 이 끝에서 저 끝까지 사방에서 모으리라

24:32 무화과나무의 비유를 배우라 그 가지가 연하여지고 잎사귀를 내면 여름이 가까운 줄을 아나니

24:33 이와 같이 너희도 이 모든 일을 보거든 인자가 가까이 곧 문 앞에 이른 줄 알라

24:34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이 세대가 지나가기 전에 이 일이 다 일어나리라

24:35 천지는 없어질지언정 내 말은 없어지지 아니하리라

24:36 그러나 그 날과 그 때는 아무도 모르나니 하늘의 천사들도, 아들도 모르고 오직 아버지만 아시느니라

24:37 노아의 때와 같이 인자의 임함도 그러하리라

24:38 홍수 전에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던 날까지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장가 들고 시집 가고 있으면서

24:39 홍수가 나서 그들을 다 멸하기까지 깨닫지 못하였으니 인자의 임함도 이와 같으리라

24:40 그 때에 두 사람이 밭에 있으매 한 사람은 데려감을 당하고 한 사람은 버려둠을 당할 것이요

24:41 두 여자가 맷돌질을 하고 있으매 한 사람은 데려감을 당하고 한 사람은 버려둠을 당할 것이니라

 

같이 살던 두 사람 중에 한 사람은 버려지고 다른 한 사람은 들려 올라갑니다. 남은 사람들은 결국 버려지지만, 들려 올라간 성도들은 하늘에서 혼인잔치로 주님과 함께 기뻐하는 자로 영원히 살게 됩니다. 바로 이때, 땅에 남는 자들은 저지른 죄로 회개를 하지 못하여 버림을 받은 사울 왕과 요압과 시므이 그리고 아도니야라면, 죄를 저질렀던 다윗과 솔로몬은 이때 은혜로 들려올라 갈 자라는 뜻에서 심판을 받지 않고 오히려 믿음의 조상으로 남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때문에 하나님이 불공평하고 형평성에 어긋났다고 하면 안 됩니다. 솔로몬의 이 숙청작업을 구속사적으로 해석을 해야 합니다.  솔로문의 심판은 궁극적으로 볼 때, 공의의 심판자로 오사 세상을 심판하시고 새 나라를 세우실 그리스도를 예표하는 것으로 이해를 하셔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이 성경을 볼 때, 언제나 자기 생각으로 이해를 하려고 하면 안 됩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언제나 구속사적 차원에서 보지 않으면 결국 감사할 수 없고 소망을 가질 수 없게 되면서 이겨내지 못하고 넘어집니다. 

 

그런데 무엇보다도 모르면 안 되는 중요한 점이 있습니다. 왜 우리들은 알고 믿고 있는, 이미 오셔서 회복을 이루어주신 구세주 예수님을 믿지 못하고 여전히 이스라엘 백성들은 기다리고 있는 것일까요? 그들이 아는 구세주는 복음의 은혜가 아닌 오직 이스라엘만 구원하고 이스라엘이 이 세상을 지배하도록 할, 심판의 주를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제2의 다윗 왕이 오셔서 온 세상을 다스리게 하실 것이라는 믿음이었습니다. 심지어 세례 요한까지도 복음을 전하시는 이미 오신 예수님을 믿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마11:1-3입니다. 

 

11:1 예수께서 열두 제자에게 명하기를 마치시고 이에 그들의 여러 동네에서 가르치시며 전도하시려고 거기를 떠나 가시니라

11:2 요한이 옥에서 그리스도께서 하신 일을 듣고 제자들을 보내어

11:3 예수께 여짜오되 오실 그이가 당신이오니이까 우리가 다른 이를 기다리오리이까

 

세례 요한도 당신이 구세주가 맞는가 하고 제자들을 예수님에게 보내서 확인을 하지 않을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그 이유는 말씀으로 확인합니다. 마3:1-12입니다.

 

3:1 그 때에 세례 요한이 이르러 유대 광야에서 전파하여 말하되

3:2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 하였으니

3:3 저는 선지자 이사야를 통하여 말씀하신 자라 일렀으되 광야에 외치는 자의 소리가 있어 가로되 너희는 주의 길을 준비하라 그의 오실 길을 곧게 하라 하였느니라

3:4 이 요한은 낙타털 옷을 입고 허리에 가죽 띠를 띠고 음식은 메뚜기와 석청이었더라

3:5 이 때에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요단 강 사방에서 다 그에게 나아와

3:6 자기들의 죄를 자복하고 요단 강에서 그에게 세례를 받더니

3:7 요한이 많은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이 세례 베푸는 데로 오는 것을 보고 이르되 독사의 자식들아 누가 너희를 가르쳐 임박한 진노를 피하라 하더냐

3:8 그러므로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고

3:9 속으로 아브라함이 우리 조상이라고 생각하지 말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나님이 능히 이 돌들로도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게 하시리라

3:10 이미 도끼가 나무 뿌리에 놓였으니 좋은 열매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혀 불에 던져지리라

3:11 나는 너희로 회개하게 하기 위하여 물로 세례를 베풀거니와 내 뒤에 오시는 이는 나보다 능력이 많으시니 나는 그의 신을 들기도 감당하지 못하겠노라 그는 성령과 불로 너희에게 세례를 베푸실 것이요

3:12 손에 키를 들고 자기의 타작 마당을 정하게 하사 알곡은 모아 곳간에 들이고 쭉정이는 꺼지지 않는 불에 태우시리라

 

예수님이 오시면 곧 바로 심판이 임하여 줄로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구세주라고 하시는 예수님이 오셔서 하시는 일이 무엇이었나요? 소경이 보며, 앉은뱅이가 걸으며, 문둥이가 깨끗함을 받으며, 귀머리가 들으며, 죽은 자가 살아나며,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선포하시고 계셨던 것입니다. 

 

그러니 구세주가 오시면 바로 세상심판이 임할 줄로 알았던 세례 요한도 의심이 들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물론 구약 말씀에서도 심판만이 있는 것이 아니라, 심판과 은혜가 혼합되어 있었는데, 그 구분을 못했던 것입니다. 그러니까 사53장의 이런 은혜의 말씀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단지 구세주가 오시면 심판하실 것이라는 말씀만을 믿고 있다가, 결국 예수님의 복음사역에 반기를 들게 되면서 모두가 나서서 죽이고 만 것입니다. 구약성경을 멋대로 해석한 결과입니다. 

 

그러나 실은 재림의 주를 통한 심판을 하시기 전에 은혜의 때가 허락되었기에 바벨론에서 돌아올 것이라는 말씀이 계속적으로 구약의 여러 선지자들을 통하여 알려 주셨지만, 이해를 못하고 그리고 그 결과는 예수님을 버리고 맙니다. 사53장에서도 은혜의 말씀을 하셨지만, 소선지서, 요엘서인 욜2:21-32의 말씀을 봅니다.

 

2:21 땅이여 두려워하지 말고 기뻐하며 즐거워할지어다 여호와께서 큰 일을 행하셨음이로다

2:22 들짐승들아 두려워하지 말지어다 들의 풀이 싹이 나며 나무가 열매를 맺으며 무화과나무와 포도나무가 다 힘을 내는도다

2:23 시온의 자녀들아 너희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로 말미암아 기뻐하며 즐거워할지어다 그가 너희를 위하여 비를 내리시되 이른 비를 너희에게 적당하게 주시리니 이른 비와 늦은 비가 예전과 같을 것이라

2:24 마당에는 밀이 가득하고 독에는 새 포도주와 기름이 넘치리로다

2:25 내가 전에 너희에게 보낸 큰 군대 곧 메뚜기와 느치와 황충과 팥중이가 먹은 햇수대로 너희에게 갚아 주리니

2:26 너희는 먹되 풍족히 먹고 너희에게 놀라운 일을 행하신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찬송할 것이라 내 백성이 영원히 수치를 당하지 아니하리로다

2:27 그런즉 내가 이스라엘 가운데에 있어 너희 하나님 여호와가 되고 다른 이가 없는 줄을 너희가 알 것이라 내 백성이 영원히 수치를 당하지 아니하리로다

2:28 그 후에 내가 내 영을 만민에게 부어 주리니 너희 자녀들이 장래 일을 말할 것이며 너희 늙은이는 꿈을 꾸며 너희 젊은이는 이상을 볼 것이며

2:29 그 때에 내가 또 내 영을 남종과 여종에게 부어 줄 것이며

2:30 내가 이적을 하늘과 땅에 베풀리니 곧 피와 불과 연기 기둥이라

2:31 여호와의 크고 두려운 날이 이르기 전에 해가 어두워지고 달이 핏빛 같이 변하려니와

2:32 누구든지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니 이는 나 여호와의 말대로 시온 산과 예루살렘에서 피할 자가 있을 것임이요 남은 자중에 나 여호와의 부름을 받을 자가 있을 것임이니라

 

이 말씀에서도 분명히 욜2:21-24, 28-29에서 회복의 때가 임할 것을 말씀하신 후에 그리고 욜2:30-31에서 심판을 하실 것이라고 하셨지만, 이스라엘 백성들은 은혜에 대한 예언의 말씀은 이해를 못하고 기다리던 구세주가 오시면 곧 바로 이 세상을 심판하고 이스라엘이 세상을 지배, 통치하게 될 것이라는 잘못된 말씀을 믿고 있었던 것입니다. 

 

무엇과 같은가 하면, 우리 눈에 보이는 자연으로 설명을 드린다면, 이와 같습니다. 마주선 앞산과 뒷산을 멀리서 보면, 그 두 산의 사이가 마치 붙어있는 것처럼 보이지 않던가요? 그 사이가 전혀 없어 보입니다. 보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실제로 가 보면, 두 산과의 거리가 상당하게 떨어져 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말씀도 마찬가지입니다. 

 

구약의 예언된 말씀이 멀리서 보니까, 구약의 말씀과 심판의 날이 마주선 두 산처럼 보여 지고 있었기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오해를 한 것입니다. 그 착각으로 구세주가 오시면, 바로 심판으로 이 세상을 멸하면서 이스라엘은 지배하는 힘의 나라가 될 것이라는 망상으로 인하여 예수님을 죽였고 그리고 아직까지도 심판의 구세주를 기다리고 있는 것입니다.

 

구세주가 오시면 세상은 심판을 받아서 이스라엘의 종으로 영원히 버려지면서 자기들만이 온 천하를 영원히 다스릴 줄로 알았는데, 그러나 예수님께서 오셔서, 그 보이지 않았던 은혜의 날을 열어 주신 것입니다. “와서 봐라! 지금은 은혜의 때란다!” 그러니까, 이스라엘은 돌아버린 것입니다. 죽일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말씀을 바로 알지 못하면 어떤 결과가 오는지 알아야 합니다. 

 

그런데 이 악한 전철을 여전히 지금 교회들이 밟고 있습니다. 예수님을 믿으면 형통한다는 지금 교회의 기복신앙과 구세주가 오면 이스라엘 백성만 구원을 받고 이방인들은 다 버림을 받는다는 그들의 그 원리와 무엇이 다릅니까? 동일합니다. 방향을 잘못 가면 원하는 목적지에 절대로 도달하지 못합니다. 마찬가지입니다. 말씀을 잘못 알면 큰일이 납니다.

 

오늘 왕상2장의 말씀도 마찬가지입니다. 저지른 죄로 시므이, 아도나야, 요압을 심판한 솔로몬 왕은 재림의 주가 와서 심판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하는 인물입니다. 왕상2장의 심판 때문에 심판보다 먼저 임할 구원의 신비인 은혜의 복이 감추어져 버린 것입니다. 감추어져 있다고, 보이지 않는다고 하여, 없다고 할 수 있는 것이 아니지 않습니까

 

왕상2장에서처럼 세상 심판이 구세주가 오면, 곧 임할 줄 알았지만 그러나 이렇게 놀라운 은혜의 복이 숨겨 있었던 것입니다. 고후6:1-2입니다.

 

6:1 우리가 하나님과 함께 일하는 자로서 너희를 권하노니 하나님의 은혜를 헛되이 받지 말라

6:2 이르시되 내가 은혜 베풀 때에 너에게 듣고 구원의 날에 너를 도왔다 하셨으니 보라 지금은 은혜 받을 만한 때요 보라 지금은 구원의 날이로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은 죄에 대한 숙청으로 죽이는 시기가 아니라 죄인들을 살리는 시기로 은혜를 입은 성도들에게 어떤 자가 되라고 하시는지, 우린 잘 알고 있습니다. 주님이 오셔서 은혜의 때를 열어 주셨으니 얼마나 큰 다행이요 복입니까?~그래서 우리들이 이렇게 구원을 받아 심판의 주님을 만날 준비, 죽음을 준비하게 된 것입니다. 

 

죄로 영원히 버려지지 않고 은혜로 거룩한 복된 종말론적인 삶을 살게 된 것입니다. 그러니 이스라엘로서는 이방인에게도 주시겠다는 복음의 말씀을 하시는 예수님이 어떻게 예쁠 수가 있을까요? 절대로 예쁠 수가 없습니다. 구세주라는 분이 오셔서 짐승보다 못한 지옥 장작에 불과한 이방인들을 유대인 자신들과 동일한 존재로 여기시니, 예수님이 얼마나 죽도록 미웠을까요? 그러니 죽일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경을 보실 때, 자기의 지식차원으로 보면 안 됩니다. 언제나 구속사적인 차원에서 보지 않으면, 이스라엘 백성처럼 오해를 하게 됩니다. 때문에 왕상 2장의 말씀도 이해를 할 수 없는 솔로몬의 숙청작업처럼 보일 수 있겠지만, 왕상2장의 솔로몬의 숙청작업은 무엇을 상징한다고요? 보이지 않던 은혜시기를 넘어 주님이 재림하실 때, 하실 그 심판의 주를 솔로몬이 상징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마24:28-41에서도 확인 했듯이,

 

24:28 주검이 있는 곳에는 독수리들이 모일지니라

24:29 그 날 환난 후에 즉시 해가 어두워지며 달이 빛을 내지 아니하며 별들이 하늘에서 떨어지며 하늘의 권능들이 흔들리리라

24:30 그 때에 인자의 징조가 하늘에서 보이겠고 그 때에 땅의 모든 족속들이 통곡하며 그들이 인자가 구름을 타고 능력과 큰 영광으로 오는 것을 보리라

24:31 저가 큰 나팔 소리와 함께 천사들을 보내리니 그들이 그의 택하신 자들을 하늘 이 끝에서 저 끝까지 사방에서 모으리라

24:32 무화과나무의 비유를 배우라 그 가지가 연하여지고 잎사귀를 내면 여름이 가까운 줄을 아나니

24:33 이와 같이 너희도 이 모든 일을 보거든 인자가 가까이 곧 문 앞에 이른 줄 알라

24:34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이 세대가 지나가기 전에 이 일이 다 일어나리라

24:35 천지는 없어질지언정 내 말은 없어지지 아니하리라

24:36 그러나 그 날과 그 때는 아무도 모르나니 하늘의 천사들도, 아들도 모르고 오직 아버지만 아시느니라

24:37 노아의 때와 같이 인자의 임함도 그러하리라

24:38 홍수 전에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던 날까지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장가 들고 시집 가고 있으면서

24:39 홍수가 나서 그들을 다 멸하기까지 깨닫지 못하였으니 인자의 임함도 이와 같으리라

24:40 그 때에 두 사람이 밭에 있으매 한 사람은 데려감을 당하고 한 사람은 버려둠을 당할 것이요

24:41 두 여자가 맷돌질을 하고 있으매 한 사람은 데려감을 당하고 한 사람은 버려둠을 당할 것이니라

 

주님께서 성육신하시고 그리고 사역을 감당하실 때, 심판이 계획된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말씀을 오해하여, 아니 감추어진 은혜시기를 보지 못하는 바람에 기다리던 구세주 예수님까지 죽이더라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바른 말씀은 빛을 받은 성도들에게 모사가 되고 기업이 되고 즐거움이 되고 금은보화보다 더 소중한 진리와 생명의 말씀으로 믿고 여기게 됩니다. 그러니 어떻게 주야로 말씀을 묵상하지 않을 수 있을까요? 그 말씀만이 우리들을 끝까지 인내하는 능력이 되고 우리의 행보를 지켜주므로 순종하여 들어가도 복을 받고 나가도 복을 받으면서 특히 이웃의 종으로서의 역할도 끝까지 감당하는 역할을 하게 할 것입니다. 말씀을 의지하는 성도가 어떻게 세상의 즐거움에서 질 수 있고, 세상의 성공에서 묶여 시간과 힘을 낭비할 수 있을까요? 말도 안 됩니다. 

 

예수님하고의 동행만이 성도에게는 모든 것이어야 합니다. 

 

눅21:34-36(마24:42-51)의 말씀을 봅니다.

“너희는 스스로 조심하라 그렇지 않으면 방탕함과 술취함과 생활의 염려로 마음이 둔하여지고 뜻밖에 그날이 덫과 같이 너희에게 임하리라, 이날은 지구상에 거하는 모든 사람에게 임하리라, 이러므로 너희는 장차 올 이 모든 일을 능히 피하고 인자 앞에 서도록 항상 기도하며 깨어 있으라 하시니라

 

늘 깨어 있어야 합니다. 늘 충성해야 합니다. 방심했다가 망합니다. 

 

마 24:42 그러므로 깨어 있으라 어느 날에 너희 주가 임할는지 너희가 알지 못함이니라

24:43 너희도 아는 바니 만일 집 주인이 도둑이 어느 시각에 올 줄을 알았더라면 깨어 있어 그 집을 뚫지 못하게 하였으리라

24:44 이러므로 너희도 준비하고 있으라 생각하지 않은 때에 인자가 오리라

24:45 충성되고 지혜 있는 종이 되어 주인에게 그 집 사람들을 맡아 때를 따라 양식을 나눠 줄 자가 누구냐

24:46 주인이 올 때에 그 종의 이렇게 하는 것을 보면 그 종이 복이 있으리로다

24:47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주인이 그의 모든 소유를 그에게 맡기리라

24:48 만일 그 악한 종이 마음에 생각하기를 주인이 더디 오리라 하여

24:49 동무들을 때리며 술 친구들과 더불어 먹고 마시게 되면

24:50 생각하지 않은 날 알지 못하는 시간에 그 종의 주인이 이르러

24:51 엄히 때리고 외식하는 자가 받는 벌에 처하리니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갈리라

 

2. 특히 왕상2장을 통하여 성도로써 결코 놓쳐서 안 되는 것이 있습니다. 어떤 성도들은 왜 지난 옛날의 죄들을 들 먹이냐고 하는데, 왕상2장의 죄들을 보면, 다 십 수 년 전의 죄들이지 않습니까? 오래된 쾌케 묶은 그들의 죄들을 심판하시고 계십니다. 그 오래된 죄에 대한 회개가 없다면, 그 죄가 아무리 오래 되었을지라도 그 죄의 뿌리는 여전히 남아 결국 이런 결과로 버려진다는 것입니다. 시51편에서는 다윗은 어떤 죄까지 들먹이고 있던가요? 시51:5입니다.

 

51:5 내가 죄악 중에서 출생하였음이여 어머니가 죄 중에서 나를 잉태하였나이다

 

엄마 뱃속에서 받은 죄까지도, 고백하고 있고, 특히 다윗이 은혜를 받고 나서는 시40:12입니다.

“무수한 재앙이 나를 둘러싸고 나의 죄악이 내개 미치므로 우러러볼 수도 없으며 죄가 나의 머리털보다 많으므로” 자기의 죄가 자기 머리털보다 많다고 고백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오래 전에 지은 죄에 대하여 언급하지 말라는 것은 아주 위험한 발상이라는 것입니다. 지금도 짓고 있는 자기의 죄는 이미 엄마 뱃속에서부터 받은 죄일 수 있습니다. 죄의 뿌리는 그 근거가 너무나 오래된 세력들이라, 그 죄의 세력은 최근판뿐만이 아니라 늘 개정판으로 세상을 혼돈 속으로 끌어가 버리고 있습니다. 늘 upgrade된 더 더러워진 죄들만이 회개하지 않은 더러운 그 자기 마음속에서부터 수없이 생산되고 있습니다. 죄의 세력이 문명과 과학이 발전되듯이 마찬가지로 죄의 세력도 늘 upgrade로 발전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방심하면 사단이 납니다.

 

그런데 옛날에 저지른 죄에 대하여 말하지 말라는 것은 죄의 세력을 보호해 주겠다는 뜻이요 죄 없이는 살 수 없다는 것과 무엇이 다를까요? ~죄 의 세력은 완전 제거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죄의 세력을 말려서 뽑아버려야 합니다. 완전 태워버려야 합니다. 그러시려면, 단 한 가지 말고는 다른 길이 없습니다.

 

시119:105-112입니다.

 

119:105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

119:106 주의 의로운 규례들을 지키기로 맹세하고 굳게 정하였나이다

119:107 나의 고난이 매우 심하오니 여호와여 주의 말씀대로 나를 살아나게 하소서

119:108 여호와여 구하오니 내 입이 드리는 자원제물을 받으시고 주의 공의를 내게 가르치소서

119:109 나의 생명이 항상 위기에 있사오나 나는 주의 법을 잊지 아니하나이다

119:110 악인들이 나를 해하려고 올무를 놓았사오나 나는 주의 법도들에서 떠나지 아니하였나이다

119:111 주의 증거들로 내가 영원히 나의 기업을 삼았사오니 이는 내 마음의 즐거움이 됨이니이다

119:112 내가 주의 율례들을 영원히 행하려고 내 마음을 기울였나이다

 

능력의 말씀으로 악의 세력을 끊어내야 합니다. 빛의 말씀으로 심하게 냄새나는 똥보다 더 냄새나는 악을 증오하고 미워할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잠시라도 방심했다가는 덩굴처럼 나를 뒤덮어버리고 말 것입니다.

 

3. 우리들이 저지른 자기의 죄악들이 밝혀질 때마다, 고백하지 못하고 인정하지 못하고 감사하지 못하고, 피 흘리기까지 싸우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1) 죄로부터의 건짐, 출애굽의 승리에 대한 그 가치를 모르기 때문일 것입니다. (2) 죄가 얼마나 더럽고 흉악하여 온 역사와 환경까지도 황폐케 하고 있는지, 그 몹쓸 세력을 전혀 인식하지 못한 결과일 것입니다. 똥을 밟아도 난리를 치면서 닦아내지 않던가요? 

 

그런데 똥하고는 전혀 비교도 안 되는 사람의 영혼까지도 죽이는 자기의 죄에 대하여서는 얼마나 관대하던가요? 심지어 자기 영혼을 죽이고 가족과 이웃을 죽이는 죄의 세력하고 즐기기까지 하고 있으니, 무슨 두말이 필요할까요? 그래서 하나님의 나라에 방해가 된다면, 자기 신앙에 독이 된다면, 솔로몬처럼 무조건 깨끗하게 제거를 해야 자기만이 아니라 모두가 삽니다. 사단의 세력들이 다가와서 달콤하게 속삭일 때, 당장 곧 대적할 수 있어야 합니다. 사단의 세력이 수작을 부리는데 바로 대적하지 못하고 기회를 주면, 당장은 즐기면서 세상의 즐거움이 not bad이라고 할 수 있지만, 그러나 그 대가를 무섭게 치루지 않으면 안 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세상의 죄는 마약인 코카인(cocaine)하고 완전 동일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죄가 코카인과 동일한데, 이 사실을 믿어야 하는데 믿지 않기에 심각한 것입니다. 이제 곧 주님께서는 재림의 주로 오십니다. 행1:9-11, 히9:27-28입니다.

 

행 1:9 이 말씀을 마치시고 그들이 보는데 올려져 가시니 구름이 그를 가리어 보이지 않게 하더라

1:10 올라가실 때에 제자들이 자세히 하늘을 쳐다보고 있는데 흰 옷 입은 두 사람이 그들 곁에 서서

1:11 이르되 갈릴리 사람들아 어찌하여 서서 하늘을 쳐다보느냐 너희 가운데서 하늘로 올려지신 이 예수는 하늘로 가심을 본 그대로 오시리라 하였느니라

 

히 9:27 한 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해진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

9:28 이와 같이 그리스도도 많은 사람의 죄를 담당하시려고 단번에 드리신 바 되셨고 구원에 이르게 하기 위하여 죄와 상관없이 자기를 바라는 자들에게 두 번째 나타나시리라

 

다시 오실 때에는 죄인들을 숙청하시려고 오십니다. 이 사실을 믿으신다면 더 이상 낭비하면 안 됩니다. 세상의 것으로 즐기면 죽습니다. 준비하셔야 할 것입니다. 일초 일전의 삶을 이루어 가셔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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