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돌교회

4/11/2021 사무엘하 23:1-39 본문

주일 설교 말씀

4/11/2021 사무엘하 23:1-39

PastorYK 2021. 4. 12. 14:40

말씀: 삼하 23:1-39

제목: 다윗의 마지막 말이라

 

여러분들은 오늘 이 말씀의 가치를 혹시 얼마나 되는지 짐작이나 해 보셨나요? 이해를 위하여 예를 든다면, 역사적으로 유명한 프로로 살다가 죽은 야구 선수, 축구선수, 골프선수들의 쓰던 그들의 신발, 옷, 공 그리고 쓰던 운동용품이나 그 외에도 세계적으로 유명한 파스칼, 고호 그런 작가가 그린 그림, 한 점이 얼마나 되던가요? 부르는 것이 가격입니다. 심지어 여자 배우들의 속옷까지도 얼마나 비싼 가격으로 거래가 되고 있는지 이 세상인지를 아십니까? 그래서 지금도 골동품을 찾기 위하여 그 깊은 바다 속으로 가라앉았다는 정보를 얻으면 그 배까지도 엄청난 비용을 들여서 찾고 있을 정도입니다. 그리고 노아의 방주까지도 찾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오늘 말씀인 다윗의 마지막 말이 그 가치가 어느 정도로 측정이 될까요? 무한대의 가치 그 이상이 아닐까요? 왜요? 다윗이 누구입니까? 모르는 사람이 없는 인물입니다. 게다가 그런 위대한 한 사람이 전 인생을 살면서 내린 그의 이 마지막 말은 엑기스 중의 엑기스가 아닐까요? 그렇다면 그 가치가 얼마나 될까요? 특히 다윗의 이 마지막 말이 주는 의미는 어떤 능력이요 무엇과 비교가 될 수 없는 아니 그 무엇하고도 비교할 수 없는 무한대의 가치를 가진 말이 아닐까요? 그리고 그런 내용의 말을 이렇게 보고 듣고 있는 우리들은 또 어떤 복된 자들인지, 짐작이나 해 보셨나요? 이런 차원으로 오늘 우린 전하고 들을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다윗의 이 마지막 말은 다윗이 주님과 함께 평생 살면서 남긴 마지막 말입니다. 단 한 순간에 쓰여진 내용이 아니라 다윗 평생에 걸친 그의 신앙의 모든 경험에 대한 이 마지막 말을 죽음을 앞두고 단 몇 줄로 남긴 이 내용은 보고 듣는 모든 이에게 어떤 선물이 될까요? 우린 이런 마지막 말을 남기기 위하여 어떤 길을 가고 있습니까? 이제 준비한 주일 말씀을 시작합니다. 

 

제 아버님께서 살아생전에 문을 열고 출입할 때마다, 서로 부딪쳐서, 손상을 입는 곳을 2005년경에 sponge를 붙여주셔서 손상을 막아 지금까지 오래 동안에 잘 쓰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오늘 설교를 준비하면서 그때 붙여주셨던, 몇몇의 그 sponge가 눈에 띄면서, 아주 작은 일에 불과했던, 아무 것도 아닐 수 있었던 그 sponge가 그렇게 자상하게 집안의 일들을 일일이 보살펴 주시던 아버지가 그날따라 생생하게 생각이 나게 하더라고요! 이렇게 작은 일까지도 벌써 돌아가신지, 8년이 지났지만, 아버지의 그 소중하신 손길의 흔적이 여전히 남아 설교 준비를 하는 동안 내내 잔잔한 감동을 주셨습니다. 제가 오늘 무슨 말씀을 드리려고 하는가 하면, sponge 그런데, 그러니 우리들의 그 마지막 고백이 아니 그 마지막 고백을 위하여 늘 준비하면서 보여주던 자신의 삶이 가족과 친구와 이웃들에게 어떤 놀라운 역할을 하게 될지 짐작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 작은 아버지의 손길도 남아 지금까지도 생생하게 기억이 되면서 참 자상하셨던 아버지, 그래서 나도 그래야 되겠다는 생각이 들면서, 오늘 설교도 다윗의 이 마지막 유언도 그렇게 깊은 감동과 도전과 결심을 하게 하는 귀한 last will이 되겠구나! 하는 차원에서 준비한 말씀입니다.

 

그래서 드리는 질문이, 우리 중의 나는 결코 죽지 않을 것이라는 그런 확신을 갖고 계신 분이 있습니까? ~ 주님이 오시기 전까지는 누구든지 죄로 영원히 죽어 버려지든지 아니면 믿음 때문에 버려짐의 죽음이 아닌, 잠으로 죽음을 대신하게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부활의 약속을 갖고 모든 사람들과 이 세상에서 작별해야 했던 모든 사람들, 약속하심으로 죽음이 아닌 잠을 자야 했던 성도들이 깨어 영생하게 될 성도들은, 분명한 마지막 자기 고백만큼은 배우자와 자녀들과 친구들에게 기억 되게 하기 위한 그 마지막 유언을 준비하지 않을 수가 있을까요? ~ 세상 사람들도 유언을 하는 법인데, 은혜로 살던 자신이 영원한 작별을 이 세상에서 하게 되면서 유언 없이 삶을 마감할 수 있을까요? 그럴 수는 없습니다. 성도된 우린 어떤 마지막 유언이 되어야 할까요? 생각해 보셨나요? 물론 각자의 조건과 살아온 과정에 따라 서로 다른 유언을 할 것입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자기의 마지막 시간인 죽음에 대하여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어서 그런 마지막 고백에 대하여 관심도 없을 수 있는데, 우리 중에 그런 분이 계신 것은 아닙니까? 자기의 죽음에 대하여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면, 쥐도 새도 모르게 감쪽같이 마지막 유언도 없이 사라져버릴 작정이셨나요?~ 최소한 지난 저녁 시간만큼은 오늘 말씀인 다윗의 마지막 고백 때문에 적지 않은 고민을 하시다가 잠을 청하지 않을 수 없었을텐데, 다윗의 마지막 이 고백을 보면서 우리들도 동일한 마지막 유언을 남길 수 있어야 하기에 아니 남겨야 하기에 준비한 몇 가지 말씀을 드립니다. 

 

1.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볼 때,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내용이 혹시 형통, 복 그런 말씀이 아닙니까?

잠3:1-10입니다.  

 

3:1 내 아들아 나의 법을 잊어버리지 말고 네 마음으로 나의 명령을 지키라

3:2 그리하면 그것이 네가 장수하여 많은 해를 누리게 하며 평강을 더하게 하리라

3:3 인자와 진리가 네게서 떠나지 말게 하고 그것을 네 목에 매며 네 마음판에 새기라

3:4 그리하면 네가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은총과 귀중히 여김을 받으리라

3:5 너는 마음을 다하여 여호와를 신뢰하고 네 명철을 의지하지 말라

3:6 너는 범사에 그를 인정하라 그리하면 네 길을 지도하시리라

3:7 스스로 지혜롭게 여기지 말지어다 여호와를 경외하며 악을 떠날지어다

3:8 이것이 네 몸에 양약이 되어 네 골수를 윤택하게 하리라

3:9 네 재물과 네 소산물의 처음 익은 열매로 여호와를 공경하라

3:10 그리하면 네 창고가 가득히 차고 네 포도즙 틀에 새 포도즙이 넘치리라

 

그런데 약속하신 그 복들을 받으려고 우리는 어떤 결단과 수고를 하게 되나요? 나름대로 최선을 다하는데, 그 결과는 늘 실망으로 끝나고 심하면 배반까지도 하더라는 것입니다. 왜 그럴까요? 마음이 앞선 선택과 결단이 실패의 원인이 아닐까요? 세상 사람들도 마음만 앞서고 자기의 주제를 파악하지 못하면, 성공해 보려고 시작한 일들이 거의 해 내지 못하고, 도중에 하차하게 됩니다. 어떤 사람들은 자기의 자존심 때문에 포기의 시간을 놓치게 되면서, 상상할 수 없는 큰 상처를 주고받게 되는 경우도 허다합니다. 철저한 준비 없이 마음이 앞서서 시작한 모든 일들은 언제나 이런 고통을 피하지 못하게 됩니다. 제가 오늘 드리고 싶은 내용이 바로 그 점입니다. 오늘도 놀라운 복을 약속하셨습니다. 그러나 오늘 말씀에서도 우선시, 하셔야 되는 것은 복이 아니라 나는 은혜로 인하여 하나님을 경외하였나? 그리고 은혜로 인하여 나는 공의 즉 공평과 정의로운 행보로 자기의 자리를 지키고 있었나를 살펴야 되는 것입니다. 이 순서를 놓치면 그 사람의 인생은 실패만 남게 됩니다. 삶 자체가 무익할 뿐이고 늘 실패자로 살게 됩니다. 그뿐만이 아니라 주변을 피폐하게 만들지 않겠습니까? 그런 경우가 허다합니다. ~ 남들도 사업을 시작하니까,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보란듯이 성공하는 것을 보다가보니까, 자기도 시작하면, 성공하겠다는 성급함으로 돈을 이리저리 모아서 시작은 하게 되지만 그러나 도중에 하차 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 실망과 함께 그 실패로 인하여 심하면 온 가족이 뿔뿔이 헤어지게 됩니다. 그러나 실패한 사람들에게 드릴 아주 중요한 유언이 될 만한 깨달음이 있습니다. 자기의 약점이 오히려 강하게 복되게 한다는 것입니다. 서두르지 말고 자기의 약점 때문에 늘 준비하였더니 결국 성공하더라는 것입니다.

 

저를 비롯하여 한국의 어느 나이 드신 여자 배우 윤여정씨가 그러시더라고요! 자기가 이렇게 큰 상을 받은 것은 자기의 열등감이 준 결과라고 말입니다. 얼굴도 부족하고 목소리까지 특이해서 모든 감독들이 이구동성으로 너는 배우감이 아니라고 했더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문제점을 가지고 노력하면서 준비하면서 욕심을 포기하면서 자기의 자리를 맞추어서 지켜내다가 보니까, 큰 상을 받는 날이 왔다고 인터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저도 나쁜 머리, 게다가 부족한 인내와 집중, 그래서 더 배우지 못한 열등감으로 신학을 시작했고 그리고 목회도 최선을 다하여 솔직하게 말씀을 드리면 쩔쩔매면서 20년을 하다가 보니까, 지금까지 이렇게 설교를 준비하면서 다윗처럼 마지막 유언을 남길 수 있는 제가 되었더라는 것입니다. 저로서는 큰 복입니다. 바라던 복은 언제나 그 다음이어야 합니다. 우선은 자기의 마음이 앞서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자기 마음이 앞서지 않으려면 오직 은혜로 자신을 통제해야 된다는 것을 성도된 우린, 늘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 순서가 지켜지지 않으면 사울 왕, 다윗의 큰 아들 암논, 군대장관 요압, 반역으로 인하여 목이 잘린 세바, 므비보셋의 종 시바, 압살롬 꼴이 날 뿐입니다. 

 

은혜 없이, 자기 마음이 앞선 결과입니다. 그래서 성경에서 하시는 말씀이 잠16:32입니다. “노하기를 더디하는 자는 용사보다 낫고 자기의 마음을 다스리는 자는 성을 빼앗는 자보다 나으니라” 성급하여 앞서 가려고 하는 자기의 마음은 오직 은혜로 반듯이 다스려야 합니다. 은혜로 타락한 자기 마음을 다스리기 위해서는 그러기 위해서는 잠8:32-35입니다. “아들들아 이제 내게 들으라 내 도를 지키는 자가 복이 있느니라, 훈계를 들어서 지혜를 얻으라 그것을 버리지 말라, 누구든지 내게 들으며 날마다 내 문 곁에서 기다리며 문설주 옆에서 기다리는 자는 복이 있나니, 대저 나를 얻는 자는 생명을 얻고 여호와께 은총을 얻을 것임이니라” 그렇습니다. 

 

말씀을 들어야 하고 지켜야 자기의 약점이 강점이 됩니다. 그렇지 않으면 어떻게 될 것이라고 하던가요? 잠8:36입니다. “그러나 나를 잃는 자는 자기의 영혼을 해하는 자라 무릇 나를 미워하는 자는 사망을 사랑하느니라” 자기의 원 마음은 언제나 썩어 있다는 것을 놓치면 안 됩니다. 자기의 타락한 원 마음은 언제나 하나님을 경외할 수 없고 공의로울 수 없음을 알고 오직 말씀과 기도로 철저한 준비를 할 때, 어떤 복을 받게 된다고 하십니까? 저는 돋는 해 아침 빛 같고 구름 없는 아침 같고 비가 온 후의 광선으로 땅에서 움이 돋는 새 풀 같이 된다는 것입니다. 

 

이 복은 재물과 권세와 인간의 지혜로는 이룰 수 없습니다. 불가능합니다. 돋는 해 아침 빛 같고 구름 없는 아침 같고 비가 온 후의 광선으로 땅에서 움이 돋는 새 풀 같다는 이 약속의 복은 사라지는 복, 헛된 복이 아닙니다. 모두에게 함께 누릴 수 있는 감사와 기쁨이 넘치게 하는 영원한 복입니다. 이 복을 우리가 살아생전에 확보하고 삶을 마감해도 마감해야 되는 것이 아닙니까? 그러기 위하여 우린 삼하23:1-3에서 하시는 말씀을 잘 보셔야 합니다.

 

23:1 이는 다윗의 마지막 말이라 이새의 아들 다윗이 말함이여 높이 세워진 자, 야곱의 하나님께로부터 기름 부음 받은 자, 이스라엘의 노래 잘하는 자가 말하노라

23:2 여호와의 영이 나를 통하여 말씀하심이여 그의 말씀이 내 혀에 있도다

23:3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말씀하시며 이스라엘의 반석이 내게 이르시기를 사람을 공의로 다스리는자,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다스리는 자여

 

이 놀라운 복을 누구에게 허락하셨나요? 네! 바로 다윗입니다.  

 

2. 다윗이 누구입니까? 삼하23:1에서 알 수 있습니다. “이는 다윗의 마지막 말이라 이새의 아들 다윗이 말함이여 높이 올리운 자, 야곱의 하나님에게 기름부음을 받은 자, 이스라엘의 노래 잘하는 자가 말하도다” 그는 높이 올리운 자, 야곱의 하나님에게 기름부음을 받은 자, 그리고 이스라엘의 노래를 잘하는 자라고 스스로 평가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평가는 하나님의 약속인 은혜로 할 수 있는 고백입니다. 이런 다윗이 어떤 말씀을 받았다고 합니까? 삼하23:3입니다. “이스라엘 하나님이 말씀하시며 이스라엘의 바위가 내게 이르시기를 사람을 공의로 다스리는 자,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다스리는 자여” 무슨 뜻일까요? 다윗에게 주신 말씀이 사람을 공의로 다스리고,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다스리는 자에게 하시는 말씀이라는 것입니다

 

찬양을 부르고 봉사를 하고 선교를 하면 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공동체 안에 포함만 되면, 다 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삶이 공의, 즉 공평과 정의로워야 하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가 되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그럼 누가 공의롭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입니까? 은혜를 입고 순종하는 자만이 공의롭고 하나님을 경외할 수 있습니다. 그들이 어떤 복을 약속받고 있습니까? 다시 봅니다. 삼하23:4-5입니다. “저는 돋는 해 아침 빛 같고 구름이 없는 아침 같고 비 후의 광선으로 땅에서 옴이 돋는 새 풀과 같으니라 하시도다, 내 집이 하나님 앞에 이같지 아니하냐 하나님이 나로 더불어 영원한 언약을 세우사 만사에 구비하고 견고케 하셨으니 나의 모든 구원과 나의 모든 소원을 어찌 이루지 아니하시랴” 정말 놀라운 복입니다. 이런 복을 누가 받았다는 것입니까? 다윗입니다. 바로 하나님의 은혜로 공의로 다스리고, 하나님을 경외하면, 모두에게 기쁨을 주는 영원한 복을 누리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그렇습니다. 신앙은 하나님에게만 잘하는 것이 신앙이 아닙니다. 이웃과의 관계가 믿음으로 이루어져야 합니다. 물론 사람들에게만 잘하고 하나님을 무시하여도 당연히 안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바른 신앙을 갖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아십니까?~ 결코, 결코 간단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나라와 이 세상 나라에서 즉 신앙과 현실 속에서 절제와 균형과 분별함이 없으면 안 됩니다. 우리들이 하나님과 이웃의 관계를 믿음과 은혜로 유지한다는 것은 단번에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평생에 걸쳐, 더러운 자신과 세상의 헛된 세력과 죽도록 싸우지 않으면 안 되는 전쟁인데, 우리가 그 싸움을 하고 있습니까? 

 

우리가 왜 지쳐 있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려고 지쳐 있나요? 아니면 세상의 즐거움과 성공으로 인하여 지쳐 있나요? 우린 무엇 때문에 즐거워하고 있나요? 하나님에게 순종하려고 하였기에 즐거워하고 있나요? 아니면 세상의 것 때문에 즐거워하고 있나요? 하나님만을 경외하고 공의를 끝까지 유지한다는 것은 엄청난 복이요 능력이지만 그러나 다시 말씀을 드리면, 가장 고되고 어려운 경건의 훈련을 거치지 않으면 그 누구도 그 복, 돋는 해 아침 빛 같고, 구름 없는 아침 같고, 비가 온 후의 광선으로 땅에서 움이 돋는 새 풀처럼 될 수 없습니다. 누워서 떡먹기 식으로 절로 이루어지는 복이 아닙니다. 그런데 여전히 거저먹으려는 식으로 늘 쉽게 살아가는 자신을 보면서도, 고민까지도 전혀 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 이유를 아십니까? 자기가 왜 은혜가 필요한지를 모르고 있기 때문입니다. 자기가 자기의 힘과 능력으로 열심히 하면 된다는 자연주의자적 발상에 완전하게 묶여 있기 때문입니다. 늘 마음이 앞서 있기에, 실패할 수 있는 그래서 스스로 어려움에 빠뜨릴 위험의 소지를 갖고 있는데, 방심하고 있습니다. 자기가 자기 마음을 믿는 것은 좋은데, 하나님의 은혜가 자기 자신의 힘과 능력이기에 그래서 믿는다면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긴 세월 속에서도 여전히 자신의 신앙 수준이 단지 종교행위로 만족하고 있고, 자신의 삶의 공의와 상관없고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땡땡이치는 학생에 불과한 것입니다. 그러나 땡땡이 쳤던 그 결과는 어떤가요? 늘 결정적인 날에 후회만을 남게 합니다. 좋아 보이기에 그래서 해서는 안 되는 못된 짓을 하다가 시험을 보는 날에 막심한 후회를 한 적이 없나요?~ 세상 친구 따라갈 것이 아니라 말씀을 따라가야 합니다. 

 

은혜란 공로 없이 거저 받은 구원이기에 자기의 그 어떤 수고와 실력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받은 은혜는 따르는 조건이 있습니다. 배우면 절로 알게 되듯, 먹으면 절로 배부르듯이, 마찬가지로 은혜는 순종으로 나타나는 법입니다. 순종은 아무나 따라할 수 없습니다. 은혜를 거저 받은 자들만이 좁은 길, 눈물골짜기를 지날 수 있습니다. 좁은 길, 눈물골짜기는 은혜만이 복이 되게 합니다

 

복이 되는 은혜는 세상의 정과 욕심도 다 십자가에 못을 박아버리게 하는 능력입니다. 은혜는 돈으로도 살 수 없고 힘으로도 가질 수 없습니다. 은혜 아니면 안 된다고 우리들이 늘 찬양을 드리고 있지만, 그 은혜는 노래로 되지 않고 은혜로 자기의 모든 세상의 욕심과 정을 배설물로 여길 때, 은혜는 돋는 해 아침 빛 같게 하고, 구름 없는 청명한 아침 같게 하고, 비가 온 후의 광선으로 땅에서 움이 돋는 새 풀 같게 합니다. 은혜는 능력이기에 신앙과 현실 속에서 균형과 절제와 분별을 하게 합니다. 은혜 없이는 그 누구도 하나님의 복을 받을 수 없기에 다윗과 같은 마지막 유언과 고백은 기대할 수 없습니다

 

3. 삼하23:8-39까지 다윗의 용사에 대하여 언급하고 있습니다. 무슨 뜻일까요? 왜 이 다윗의 용사들이 느닷없이 여기에 기록되고 있는 것일까요? 다윗이 받은 이 복은, 자기의 힘과 능력이 아닌 충신들의 도움으로 된, 복이라는 고백을 드러내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세워진 이런 37명의 충신들의 도움으로 이루어진 복이라는 뜻입니다. 여기서 우린 다윗의 신앙이 얼마나 건강한지를 알게 합니다

 

하나님만을 경외한 다윗이요 그리고 이웃하고의 관계도 온전하였음을 보이고 있기 때문입니다. 독식하지 않았습니다. 자기 자만에 빠지지 않았습니다. 공로를 인정하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하여 그 이웃 안에 다윗의 마음에 미운 자가 없었던 것은 아니었지만, 그러나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임을 알았기에 자신을 도운 37명의 충신들의 이름을 남기고 있습니다

 

우린 어떤가요? 자기의 믿음으로, 누가 자기 때문에 이렇게 하나님의 나라의 충신으로 남게 했던가요? 다윗과 37명의 충신의 그 관계를 보세요! 놀랍습니다. 삼하23:13-17입니다.

 

23:13 또 삼십 두목 중 세 사람이 곡식 벨 때에 아둘람 굴에 내려가 다윗에게 나아갔는데 때에 블레셋 사람의 한 무리가 르바임 골짜기에 진 쳤더라

23:14 그 때에 다윗은 산성에 있고 그 때에 블레셋 사람의 요새는 베들레헴에 있는지라

23:15 다윗이 소원하여 이르되 베들레헴 성문 곁 우물 물을 누가 내게 마시게 할까 하매

23:16 세 용사가 블레셋 사람의 진영을 돌파하고 지나가서 베들레헴 성문 곁 우물 물을 길어 가지고 다윗에게로 왔으나 다윗이 마시기를 기뻐하지 아니하고 그 물을 여호와께 부어드리며

23:17 이르되 여호와여 내가 나를 위하여 결단코 이런 일을 하지 아니하리이다 이는 목숨을 걸고 갔던 사람들의 피가 아니니이까 하고 마시기를 즐겨하지 아니하니라 세 용사가 이런 일을 행하였더라

 

믿음 안에서의 그들의 관계는 이 정도입니다. 이것이 믿음입니다. 우리는 어떤가요? 나의 믿음 때문에 이런 충신들이 함께 하고 있습니까? 목숨을 건 이런 인물들이 자기와 함께 하시려면자기가 하나님만을 경외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리고 공평과 정의로운 자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이것이 믿음입니다. 믿음은 돋는 해 아침 빛 같고 구름 없는 아침 같고 비가 온 후의 광선으로 땅에서 움이 돋는 새 풀 같게 합니다. 그리고 믿음만이, 이런 37명의 충신들을 친구로 둘 수 있게 되고 자신의 그 믿음은 영원히 마지막까지 남아 모든 이들의 본이 될 것입니다. 

 

그렇지 않고 돈과 즐거움으로 이 세상을 쉽게 살아가려고 한다면 삼하23:6-7입니다. “그러나 사악한 자는 다 내어 버리울 가시나무 같으니 이는 손으로 잡을 수 없음이로다, 그것들을 만지는 자는 철과 창자루를 가져야 하리니 그것들이 당장에 불사르리로다 하니라” 믿음하고 거리가 먼 사악한 자들은 다윗의 이런 위대한 마지막 유언은커녕 영원히 부끄럽고 그래서 먼지처럼 사라지면서 영원히 썩어버리고 말 것입니다

 

영원하고 모두에게 복과 기쁨이 되는 마지막 유언은 오직 은혜로만 이루어집니다. 이 놀라운 약속의 복은 은혜가 우리의 삶의 힘과 능력이 되어,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묶어버릴 때, 받을 수 있는 영원한 복입니다. 이 복을 이루려면 우린 주님과 늘 동행하는 것이 현실이 되어야 합니다. 은혜는 쩔쩔매는 가운데서도 하나님만을 바라보게 하는데, 그러나 그 고된 현실 속에서 어느 사이에 다윗의 막강한 충신들이 목숨을 걸고 다윗을 돕고 지켜주므로 이런 능력의 마지막의 말을 남기게 됩니다. 

 

이렇게 다윗을 전 생애를 통하여 믿음의 다윗 되게 하신, 변화시키신 하나님만을 우리 모두도 바라보면서, 그 놀라운 복, 돋는 해의 아침 빛 같고, 구름 없는 아침 같고, 비가 온 후의 광선으로 땅에서 움이 돋는 새 풀 같게 되시므로, 각자의 마지막의 유언이 되어서 영원히 빛을 발하는 증인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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