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돌교회

05/03/2020 - 사무엘상 7:1-17 본문

주일 설교 말씀

05/03/2020 - 사무엘상 7:1-17

PastorYK 2020. 5. 4. 18:15

말씀: 삼상7:1-17                                             

제목: 여호와를 사모하는 이스라엘, 왜?

 

오늘은 어린이 주일인데, 말씀을 드리기 전에 먼저 우리 성지, 성은에게 미안하다는 사과를 해야 될 것 같습니다. 어른들이 하나님만을 사모하지 못하여, 세상을 따라가다가, 이렇게 하나님께서 창조하여 주신 최고의 놀이터를 다 모조리 무너뜨리고 말았기 때문입니다. 이런 일이 또 생기면 결코 안 되기에, 속히 이 사태를 오늘의 말씀을 통하여 깨끗하게 수습해야 되겠다는 마음으로 말씀을 준비했습니다. 이제 성지, 성은이 그리고 어린 친구들이 다 회복된 건강한 놀이터에서 힘 것 뛰며, 즐거워할수 있게 되기를 바라면서 주신 말씀을 전합니다. 오늘 삼상7장의 말씀은 전혀 어렵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사모하므로 승리하는 이스라엘입니다. 모든 것이 제자리로 돌아옵니다. 빼앗겼던 성읍까지도 되찾게 됩니다. 그리고 화평과 평화까지도 이루게 됩니다. 누구 때문에? 네, 바로 선지자요 제사장이요 왕의 자격을 가진 사무엘로 인하여 모든 것을 회복하게 됩니다. 그런데 가만히 보세요? 생각나는 것이 없습니까? 그렇습니다. 사무엘로 인하여 회복과 승리를 가져온 곳은 바로 예수님 때문에 우리도 회복과 화목과 승리를 가져온다는 것을 알게 하시려는 오늘 본문의 말씀입니다. 전혀 어렵지 않지만 그렇다는 것을 찾아내기가 어렵기에 이렇게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그런데 오늘 삼상7장에서도 아주 중요한 신학적인 원리 두 가지를 얻게 됩니다1. 롬5:12-21입니다.

 

12. 그러므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들어왔나니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느니라 
13. 죄가 율법 있기 전에도 세상에 있었으나 율법이 없었을 때에는 죄를 죄로 여기지 아니하였느니라 
14. 그러나 아담으로부터 모세까지 아담의 범죄와 같은 죄를 짓지 아니한 자들까지도 사망이 왕 노릇 하였나니 아담은 오실 자의 모형이라 
15. 그러나 이 은사는 그 범죄와 같지 아니하니 곧 한 사람의 범죄를 인하여 많은 사람이 죽었은즉 더욱 하나님의 은혜와 또한 한 사람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말미암은 선물은 많은 사람에게 넘쳤느니라 
16. 또 이 선물은 범죄한 한 사람으로 말미암은 것과 같지 아니하니 심판은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정죄에 이르렀으나 은사는 많은 범죄로 말미암아 의롭다 하심에 이름이니라 
17. 한 사람의 범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그 한 사람을 통하여 왕 노릇 하였은즉 더욱 은혜와 의의 선물을 넘치게 받는 자들은 한 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생명 안에서 왕 노릇 하리로다 
18. 그런즉 한 범죄로 많은 사람이 정죄에 이른 것 같이 한 의로운 행위로 말미암아 많은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받아 생명에 이르렀느니라 
19. 한 사람이 순종하지 아니함으로 많은 사람이 죄인 된 것 같이 한 사람이 순종하심으로 많은 사람이 의인이 되리라 
20. 율법이 들어온 것은 범죄를 더하게 하려 함이라 그러나 죄가 더한 곳에 은혜가 더욱 넘쳤나니 
21. 이는 죄가 사망 안에서 왕 노릇 한 것 같이 은혜도 또한 의로 말미암아 왕 노릇 하여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영생에 이르게 하려 함이라 

 

그 내용은 대표에 대한 말씀입니다아담으로 인하여 타락하고제2의 아담으로 오신 예수님으로 인하여 회복이 된다는 것입니다. 2. 오늘 행10장에 나오는 인물인 고넬료를 통하여 이스라엘만의 구원이 있다는 잘못 점을 성령부음을 받은 고넬료를 통하여 알게 하십니다. 즉 삼상7장의 말씀을 오해하여 국가적 차원의 구원이지 않은가? 오해 할 수 있기에 행10장의 이방인 고넬료의 성령부음으로 구원은 국가적인 아니라 각 개인의 믿음으로만 이루어짐을 설명하기 위하여 행10장의 말씀을 함께 보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의 회복과 승리와 고넬료의 성령부음은 다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일차적으로 어떤 면을 이해하지 않으면 안 되는가 하면,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사모하였고 고넬료가 하나님을 경외하였기에 그래서 승리와 회복과 영광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로 하나님을 사모하게 되었고 하나님을 고넬료가 경외하여 얻게 된 성령부음이라는 큰 영광임을 놓쳐서는 안 될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얻은 구원으로 우린 하나님만을 사모하고 의지해야 합니다. 그런데 여러분은 생명의 말씀을 얼마나 사모하고 계십니까? 

 

그리고 진리의 말씀을 듣는 것이 어떤 복인지 아세요? 거의가 그렇지 않습니다. 평생 교회를 다녔다고 하시는 분들도 보면, 성경 말씀이 중요하다고 할 뿐, 그러나 마음으로 말씀을 사모하거나 즐거워하지 않기에 함께 볼 말씀이 있습니다행10:30-33입니다.

 

30. 고넬료가 이르되 내가 나흘 전 이맘때까지 내 집에서 제 구 시 기도를 하는데 갑자기 한 사람이 빛난 옷을 입고 내 앞에 서서 
31. 말하되 고넬료야 하나님이 네 기도를 들으시고 네 구제를 기억하셨으니 
32. 사람을 욥바에 보내어 베드로라 하는 시몬을 청하라 그가 바닷가 무두장이 시몬의 집에 유숙하느니라 하시기로 
33. 내가 곧 당신에게 사람을 보내었는데 오셨으니 잘하였나이다 이제 우리는 주께서 당신에게 명하신 모든 것을 듣고자 하여 다 하나님 앞에 있나이다 

 

이방인 고넬료에게 나타나신 분이 누구십니까하나님이신 예수님이십니다. 예수님이 나타나셔서 하시는 말씀이 무엇입니까? 고넬료에게 주님이 나타나신 것은 고넬료에게 베드로를 통하여 복음을 전달하시려는 것이었습니다

 

결국 복음입니다. 그래서 이방인에 대하여 잘못된 인식을 행10:9-16에서 말씀하여 주시고 나서, 베드로를 이방인 고넬료에게 가라고 하신 그 목적이 복음이었습니다.

 

9. 이튿날 그들이 길을 가다가 그 성에 가까이 갔을 그 때에 베드로가 기도하려고 지붕에 올라가니 그 시각은 제 육 시더라 
10. 그가 시장하여 먹고자 하매 사람들이 준비할 때에 황홀한 중에 
11. 하늘이 열리며 한 그릇이 내려오는 것을 보니 큰 보자기 같고 네 귀를 매어 땅에 드리웠더라 
12. 그 안에는 땅에 있는 각종 네 발 가진 짐승과 기는 것과 공중에 나는 것들이 있더라 
13. 또 소리가 있으되 베드로야 일어나 잡아 먹어라 하거늘 
14. 베드로가 이르되 주여 그럴 수 없나이다 속되고 깨끗하지 아니한 것을 내가 결코 먹지 아니하였나이다 한대 
15. 또 두 번째 소리가 있으되 하나님께서 깨끗하게 하신 것을 네가 속되다 하지 말라 하더라 
16. 이런 일이 세 번 있은 후 그 그릇이 곧 하늘로 올려져 가니라 

 

그래서 바닷가 피장 시몬의 집에 우거하던 베드로에게 가서 베드로를 너의 집으로 초대하여서 그를 통하여 복음을 들으라고 하셨다는 것이 아닙니까경건한 그를 위하여 베드로를 통하여 복음을 듣게 하시려고 바울에게처럼 고넬료에게도 주님이 그의 앞에 나타나신 것입니다. 오직 복음을 듣게 하시려고 주님께서 친히 현현(명백하게 나타남)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고넬료의 집에 도착한 베드로를 보자, 기다리고 있던 고넬료의 반응을 보세요! 행10:33입니다. 이제 우리는 주께서 당신에게 명하신 모든 것을 듣고자 하여 다 하나님 앞에 있나이다 복음을 전하러 온 베드로를 향하여 하는 고백이 자신들이 하나님 앞에 있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얼마나 말씀을 깊이 사랑하고 사모하며 소중하게 여기고 있던 고넬료입니까? 결국 이방인이었지만 고넬료는 이방인 최초로 성령 부어주심의 기적과 능력을 경험하게 됩니다. 얼마나 영광스러운 사건입니까

 

그 영광스러운 영적인 경험을 하게 된 것은 물론 은혜 때문이지만, 그러나 고넬료가 세상의 즐거움을 다 포기하고 오직 하나님만 경외하고 사모한 결과입니다우린 어떤가요? 우리도 말씀을 고넬료와 같은 그런 거룩한 마음가짐을 가지고 있던가요? 아니면 연속극차원인가요? 아니 연속극보다 못한 말씀으로 여기고 있지는 않습니까?~ 성도라면 고넬료처럼 말씀의 사모함이 있어야 깊은 신앙을 경험합니다사모함이 없이는 신앙을 지켜낼 수도, 깊어질 수도 없습니다. 

 

말씀을 전하는 설교자는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말씀을 전하기에, 그 말씀을 듣는 여러분들은 자기가 얼마나 특별한 자요 소중한 자신인지를 행10장에서 확인 할 수 있어야 합니다. 특히 행10장에서 복음을 전하는 자에게나 들어야 하는 자에게 예수님께서 친히 나타나셔서 전하고 들으라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을 믿는 지체들의 평생소원이 주님을 만나는 것일진대, 결국 주일마다 말씀을 받는 여러분들은 그 시간에 단지 몸이 아니라 인격의 예수님을 만나고 계신 것이 아닐까요

 

지금은 제가 말씀중심교단인 성경장로교단의 목사가 되었지만, 제가 1990년에 교회로 처음 인도을 받았을 땐, 모든 교회들의 신학이 다 똑같은 줄로 알았습니다. 그래서 못 모르고 하나님의 성회에 속한 순복음 교회를 다녔습니다. 그런데 다니던 그 교회 전체가 말씀보다는 방언과 같은 그런 은사 중심을 우선시 하여, 그 영향을 받아서 저도 처음에는 그런 은사나 기적을 원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때 주님을 얼마나 만나고 싶었는지 모릅니다. 왜요? 다들 그런 능력, 기적의 간증들을 많이 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저도 이렇게 주님을 만났다고 하면서, 남들처럼 간증하며 폼 재고 싶었던 것입니다. 은사 중심으로 그 교회가 운영되다가 보니까, 저도 그랬지만, 한마디로 신앙보다는 자랑하려는 마음이 우선이었습니다. 물론 뜨거운 신앙도 중요하겠지만 말씀을 사모하므로 인한 열정이 이루어져야 합니다말씀에 대한 사모함은 없고, 단지 주님만 만나고 싶어 하는 그런 경우는 바른 신앙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왜요? 오늘도 행10장에서 주님이 현현하셨지만 그 목적은 십자가와 부활에 대한 복음 때문이지 주님을 만나게 하는데 그 목적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지금 제가 이런 말씀을 드리는 이유는, 주님을 만나고 싶으면 기적과 기사보다는 말씀을 통하여 만나게 되셔야 이단에 속지 않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복음을 받았을 때, 바로 그 시간이 주님을 만나는 시간이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말씀을 듣는 이 시간을 그냥 대수롭지 않게, 하찮게 생각하면, 결코 안 된다는 것입니다. 행10장의 말씀에서 베드로나 최초 이방인 고넬료에게 주님께서 현현하신 그 이유가 단지 주님을 만났다는데 있는 것이 아니라, 복음이 목적입니다. 

 

복음을 통한 주님과의 인격적인 만남을 원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주일마다 복음을 받는 성도들은, 주님을 만나는 기회로써, 얼마나 긴장하고 사모해야 될까요? 매 주일이 그래야 하는데, 주일에 대한 그 가치를 모르기에, 이 세상은 혼돈과 공허와 깊은 흑암의 세상으로 타락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고넬료처럼 말씀에 대한 가치를 알고 사모하는 심정으로 말씀을 받거나,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언약궤를 비로써 찾고 찾게 된다면, 여호와 하나님을 사모하게 된다면, 어떤 내일이 나타날까요? 

 

나라의 그 큰 자금과 과학자들의 지혜로 풀 수 없는 지금의 이 코로나 19 사태를 믿음으로 푸는 길이 된다는 것이 아닙니까? ~ 그래서 다시 부탁합니다. 제발! 오직 돈과 힘이 아니라하나님의 말씀만을 따라주시기를 부탁합니다그런데 우리는 오늘 말씀을 통하여 알 수 있지만 또 그 한계를 느끼게 됩니다. 고넬료처럼 항상 하나님만을 경외하는 자라면 얼마나 좋을까요? 그런데 우린 늘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블레셋의 지배로 인한 고통 때문에 결국 감당하지 못하고 하나님을 사모하게 되면서 회개로 해결하게 됩니다. 이렇게 꼭 심각해야지만 정신을 차립니다

 

좋은 말로는 안 된다는 것이 아닙니까?~ 어떻게 된 인간들인지, 꼭 극한 상황이 되어야지만, 그때 하나님만을 바라봅니다. 물론 그것마저도 은혜요 복이겠지만, 고넬료처럼 평시에 하나님을 경외하면 안 되나요? 고넬료와 같아야 하는데, 심히 고통스러울 때만, 회개를 하여 해결을 받습니다. 그러니 어찌! 속상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자기 자식이 잘못하여 엄청 터져서 들어와 울면서 잘못했다고 하면 좋아요?~ 평시에 먹금직스럽고 보암직스럽고 탐스럽기까지 한, 이 세상의 세력과 놀다가보니까, ‘늘 이런 식입니다.’ 그런데 기독교의 역사를 보아도, 고넬료와 같아야 하는데 다수가 그렇지 못하여 넓은 길로 합니다. ‘은혜에 감사하다고 삶을 다 맡기겠다고 평시에 진한 고백은 하고 있으면서’ 성도들의 삶은 그렇지 않더라는 것입니다. 신앙과 삶이 분리되어 있습니다세상도 경외하고 있습니다. 그러다가 하나님께서 우리들이 너무 멀리 세상으로 빠져간다 싶으면, 즉 타락의 정도가 깊어지면그때 심판의 매, 정신을 차리라는 차원에서 무섭게 매를 드십니다. 

 

그 매는 지진, 홍수, 화재, 가뭄, 기근, 그리고 질병인 코로나 바이러스 19처럼 말입니다. 물론 세계 전쟁까지도 허락케 하십니다. 그러면 그때만 하나님에게 나와서 다들, 회개를 한다는 것이 아닙니까? 그래서 오늘의 설교 제목도 ‘왜 하나님을 사모해야 하는가?’ 로 정한 것입니다. 지금까지 제가 여러분들을 만나면, 늘 평시에 주님과 동행해야 한다고 당부 당부를 드리고 있습니다. 그래야 전쟁과 기근과 홍수와 대형 불과 온갖 큰 사고를 비롯하여 전염병까지도 두렵지 않게 됩니다. 

 

그런데 보세요! 성도들이 멋대로 하면 세상도 경외하면, 누구만 손해인지 아세요? 불순종했던 자신들이 다 잃고 맙니다그러나 그 반대로 어떤 부분에서는 기적이 나타납니다회복이 되어 새로워집니다레26:27-35입니다.

 

27. 너희가 이같이 될지라도 내게 청종하지 아니하고 내게 대항할진대 
28. 내가 진노로 너희에게 대항하되 너희의 죄로 말미암아 칠 배나 더 징벌하리니 
29. 너희가 아들의 살을 먹을 것이요 딸의 살을 먹을 것이며 
30. 내가 너희의 산당들을 헐며 너희의 분향단들을 부수고 너희의 시체들을 부숴진 우상들 위에 던지고 내 마음이 너희를 싫어할 것이며 
31. 내가 너희의 성읍을 황폐하게 하고 너희의 성소들을 황량하게 할 것이요 너희의 향기로운 냄새를 내가 흠향하지 아니하고 
32. 그 땅을 황무하게 하리니 거기 거주하는 너희의 원수들이 그것으로 말미암아 놀랄 것이며 
33. 내가 너희를 여러 민족 중에 흩을 것이요 내가 칼을 빼어 너희를 따르게 하리니 너희의 땅이 황무하며 너희의 성읍이 황폐하리라 
34. 너희가 원수의 땅에 살 동안에 너희의 본토가 황무할 것이므로 땅이 안식을 누릴 것이라 그 때에 땅이 안식을 누리리니 
35. 너희가 그 땅에 거주하는 동안 너희가 안식할 때에 땅은 쉬지 못하였으나 그 땅이 황무할 동안에는 쉬게 되리라 

 

그래서 이스라엘이 70년간의 노예로 바벨론으로 끌려가게 되면서 땅이 회복이 되어 다시 이스라엘로 돌아오게 되는 그 기적의 사건을 보세요! 대하36:17-23입니다.

 

17. 하나님이 갈대아 왕의 손에 그들을 다 넘기시매 그가 와서 그들의 성전에서 칼로 청년들을 죽이며 청년 남녀와 노인과 병약한 사람을 긍휼히 여기지 아니하였으며
18. 또 하나님의 전의 대소 그릇들과 여호와의 전의 보물과 왕과 방백들의 보물을 다 바벨론으로 가져가고
19. 또 하나님의 전을 불사르며 예루살렘 성벽을 헐며 그들의 모든 궁실을 불사르며 그들의 모든 귀한 그릇들을 부수고
20. 칼에서 살아 남은 자를 그가 바벨론으로 사로잡아가매 무리가 거기서 갈대아 왕과 그의 자손의 노예가 되어 바사국이 통치할 때까지 이르니라
21. 이에 토지가 황폐하여 땅이 안식년을 누림 같이 안식하여 칠십 년을 지냈으니 여호와께서 예레미야의 입으로 하신 말씀이 이루어졌더라
22. 바사의 고레스 왕 원년에 여호와께서 예레미야의 입으로 하신 말씀을 이루시려고 여호와께서 바사의 고레스 왕의 마음을 감동시키시매 그가 온 나라에 공포도 하고 조서도 내려 이르되
23. 바사 왕 고레스가 이같이 말하노니 하늘의 신 여호와께서 세상 만국을 내게 주셨고 나에게 명령하여 유다 예루살렘에 성전을 건축하라 하셨나니 너희 중에 그의 백성된 자는 다 올라갈지어다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함께 하시기를 원하노라 하였더라

 

한 곳만 더 봅니다. 겔32:1-13입니다.

 

1. 열두째 해 열두째 달 초하루에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여 이르시되
2. 인자야 너는 애굽의 바로 왕에 대하여 슬픈 노래를 불러 그에게 이르라 너를 여러 나라에서 사자로 생각하였더니 실상은 바다 가운데의 큰 악어라 강에서 튀어 일어나 발로 물을 휘저어 그 강을 더럽혔도다
3.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셨느니라 내가 많은 백성의 무리를 거느리고 내 그물을 네 위에 치고 그 그물로 너를 끌어오리로다
4. 내가 너를 뭍에 버리며 들에 던져 공중의 새들이 네 위에 앉게 할 것임이여 온 땅의 짐승이 너를 먹어 배부르게 하리로다
5. 내가 네 살점을 여러 산에 두며 네 시체를 여러 골짜기에 채울 것임이여
6. 네 피로 네 헤엄치는 땅에 물 대듯 하여 산에 미치게 하며 그 모든 개천을 채우리로다
7. 내가 너를 불 끄듯 할 때에 하늘을 가리어 별을 어둡게 하며 해를 구름으로 가리며 달이 빛을 내지 못하게 할 것임이여
8. 하늘의 모든 밝은 빛을 내가 네 위에서 어둡게 하여 어둠을 네 땅에 베풀리로다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9. 내가 네 패망의 소문이 여러 나라 곧 네가 알지 못하는 나라들에 이르게 할 때에 많은 백성의 마음을 번뇌하게 할 것임이여
10. 내가 그 많은 백성을 너로 말미암아 놀라게 할 것이며 내가 내 칼이 그들의 왕 앞에서 춤추게 할 때에 그 왕이 너로 말미암아 심히 두려워할 것이며 네가 엎드러지는 날에 그들이 각각 자기 생명을 위하여 무시로 떨리로다
11.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셨느니라 바벨론 왕의 칼이 네게 오리로다
12. 나는 네 무리가 용사 곧 모든 나라의 무서운 자들의 칼에 엎드러지게 할 것임이여 그들이 애굽의 교만을 폐하며 그 모든 무리를 멸하리로다
13. 내가 또 그 모든 짐승을 큰 물 가에서 멸하리니 사람의 발이나 짐승의 굽이 다시는 그 물을 흐리지 못할 것임이여

 

 애굽의 교만함으로 큰 재앙이 바벨론을 통하여 임했었지만, 그러나 그 후에 보면, 겔32:14의 말씀을 보세요

 

14. 그 때에 내가 그 물을 맑게 하여 그 강이 기름 같이 흐르게 하리로다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그러나 꼭 이렇게 괴롬을 받고 나서야, 즉 곪은 부분이 위험하여 수술을 받고나서 회복과 치료가 되듯이 꼭 그런 식으로 해결을 받으려고 합니까? 우리도 이젠, 평시에 고넬료처럼 하나님만을 경외하고 말씀을 깊이 사모하여, 말씀을 받을 때마다 주님 앞에선 자처럼 늘 진지하면 안 됩니까?~ 물론 우리의 한계이고 약점이지만 이젠 우리에게 놀라운 그 믿음이 있잖아요! 한 예로 한국의 문재인 대통령 한 사람이 깨끗하고 투명한 정치를 하니까, 한국이 되살아났습니다.

 

전 세계가 주목하면서 이번 코로나 19로 인하여 단번에 선진국이라는 인정을 받게 되지 않았습니까? 그러하듯이, 주님의 모든 교회들이 회개하여 각자가 깨끗해지면서, 각자가 주님과 동행하면 어떤 상상할 수도 없는 기적이 나타날까요? 홍해가 갈라지고 큰 산이 바다로 옮겨지는 정도가 아닙니다. 그 이상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아멘입니다- 강요차원에서 아멘이 되지 않아야 하는데, 진정으로 고넬료의 그 경건함으로 성령 부어주심을 체험하는 것이 부럽다면, 주님이 해 주시는 그 칭찬이 부럽다면, 말로만 아멘하실 것이 아니라, 우리도 지금부터 머뭇거리지 마시고고넬료처럼 주님과 동행하면서 평생을 찬송 드리고 평시에 섬기고 희생하고 배려하는 그 능력과 기적 속에서 살아야 되지 않을까요? 그러나 그러려면 성도된 자들은 예외 없이 목숨을 내놓고 살아가야지만 됩니다. 성도로써 성령의 열매를 생산하고 싶으시다면, 다 내려놓으셔야 합니다고넬료를 보면서 부럽지 않으셨어요? 그 가치는 수천억불의 복권 당첨 정도가 아닙니다. 하버드 4년 장학금과 최고의 회사에서의 대우로 한 달에 수백만 불의 수입을 보장 받는 것과 비교도 안 되는 것이바로 주님하고의 동행하는 삶입니다. 고넬료의 그 신앙이 그냥 만들어진 것이 아닙니다. 자신을 스스로 거룩한 말씀의 감옥 안으로 쳐 넣어서, 날마다 피 흘리면서 믿음과 화합하였기에 가능한 것입니다. 지금 이 세상에 당장 가장 시급한 것이 무엇인지 아세요? 성도들이 말씀을 사모해야 합니다. 은혜를 입은 지체들이 하나님을 앙망해야 됩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이스라엘도 보세요! 승리와 평화가 임하지 않았던가요? 마스크와 sanitizer와 물과 화장지와 고기가 우선이 아닙니다. 

 

회개를 하시면 다 해결이 됩니다. 회개를 하시면, 하늘과 땅과 천지가 정결하게 된다는 것이 아닙니까? 그래서 사무엘 선지자도 보내주셨고 주님께서도 현현하신 것입니다성도이기에 그래서 하늘에 소망을 두고 살기를 늘 원하고 있었다면, 이런 말씀을 들을 때, 벅차지 않을 수가 없어야 합니다. 내가 회개하면 우리들이 회개하면 회복이 된다는 이런 말씀을 들게 되면, 성도된 자들의 마음속에서 강력한 거룩한 욕망이 끓어올라야 되는데 어떤가요?~ 그러나 결코 쉽지 않습니다.

 

말씀을 드렸듯이 결단만으로 안 됩니다. 끓어오르는 것만으로 안 됩니다. 성도로써 따름인 순종, 주님과 동행하는 삶은 보이지 않게 강력하게 방해하는 옛 세력과 지독하게 항상 늘 싸워야지만 됩니다. 그렇지 않으면 안 됩니다. 산악인이 목숨을 걸고 히말라야를 정복하듯이, 그렇게 늘 감당하셔야 합니다. 죄로 인한 재앙에 대한 회복은 그냥 쉽게 되는 문제가 아닙니다. 단회적인 회개를 했다고 되는 문제가 아닙니다. 오늘 삼상7장 본문에서도 말씀하시지만,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우상 숭배하는 삶을 아무렇지 않게 여기면서 살고 있기에, 세상도 경외하고 있기에 드리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실은 아무렇지 않은 것이 아닌데, 아무렇지 않게 여기고 있기에 속이 터지는 것입니다. 우상숭배의 삶은요, 무섭습니다. 모든 것을 다 바꿔 버립니다. 코로나 바이러스 19를 보세요! 어떻게 달라져야 된다고 하던가요?이젠 예전의 삶으로 돌아갈 수 없게 된다고 합니다. 그래서 뉴 트렌드, 뉴 웨이브, 코로나 블루라는 신종 단어까지 생기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버리고 세상을 따르는 그 우상숭배는 그 결과가 얼마나 큰 손해요 고통인지를 이렇게 현실로 와서 직접 깊이 닿아야지만, 힘들어 하고 큰 상처를 받게 되면서 비로써 깨닫고 있습니다. 수없이 죽은 다음에 준비하는 것을 보니까, 참 속상하지 않습니까? 아니, 왜! 해답을 쥐고서도 방황하며, 세상을 무너뜨리고 짓을 하는지,~ 인간의 죄악은 깊고 깊다는 것을 새삼 느끼게 합니다. 오히려 교회가 말씀이 아니라, 돈으로 자연스럽게 운영이 되면서, 돈의 지배를 당연시 하다가, 이런 지경까지 왔으면 교회가 당장 회개를 해야 되는데, 그렇지 않는 것을 보면, 그것도 헛된 기대인가? 망연자실하게 됩니다. 회개를 하지 않는 지금의 교회들을 보면서, 무섭게 무너진 교인들을 보면서, 그동안에 말씀을 즐거워하라! 묵상하라! 순종하라고 주님께서 목이 터져라 천지를 진동케 하시면서~ 그렇게 부르짖어 주셨을텐데, 전혀 듣지 못하여, 지금 이 꼴이 된 것을 보면, 마냥 황당합니다. 슬프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여기서 포기할 수 없어서 또 힘을 내서 말씀을 드리면, 우리의 몸에 세상의 더러운 것들이 너무나 깊이 스며있기에, 세상의 세력과 한 몸이 되어 있었기에 방심하다가 이렇게 된 것입니다. 

 

아니 이미 그 전부터 한 몸이었습니다. 엄마의 태중에서부터 세상의 악한 세력의 하수인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은혜로 살길과 복된 삶은 오직 만군의 하나님만을 믿고 순종해야 되는 것임을 말씀을 통하여 알게 됩니다. 삼상7장에서도 확인이 됩니다. 그런데 삼상7장에서도 알 수 있는데, 이스라엘이 회개하고 순종할 때, 생기는 심각한 방해가 있습니다. 은혜로 그동안의 삶이 잘못되었음을 알고 회개를 하면 다시 어떤 방해가 생기는지 아세요? 

 

하나님에게로 돌아가는 하나님의 자녀들을 그동안에 지배하고 있었던 세상의 세력이 가만히 놔두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삼상7장에서도 보셨습니다. 사무엘이 블레셋의 지배 안에서 고통스러워 견디지 못하고 있는 이스라엘을 향하여 어떤 메시지를 보내던가요? 삼상7:3입니다.

 

3. 사무엘이 이스라엘 온 족속에게 말하여 이르되 만일 너희가 전심으로 여호와께 돌아오려거든 이방 신들과 아스다롯을 너희 중에서 제거하고 너희 마음을 여호와께로 향하여 그만을 섬기라 그리하면 너희를 블레셋 사람의 손에서 건져내시리라

 

하나님만을 섬기라고 합니다. 하나님만을 섬길 때, 비로써 세상의 세력인 블레셋의 지배에서 벗어나게 되면서 한국이 일본의 식민지로부터의 독립으로 자유를 누리듯이, 마찬가지로 이스라엘도 세상의 세력으로부터 벗어나야지만 진정한 자유를 누리게 되기에 그래서 하나님에게로 향하라는 생명의 말씀을 전한 것입니다. 그런데 그 다음에 보면, 삼상7:4-7입니다.

 

4. 이에 이스라엘 자손이 바알들과 아스다롯을 제거하고 여호와만 섬기니라
5. 사무엘이 이르되 온 이스라엘은 미스바로 모이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여호와께 기도하리라 하매
6. 그들이 미스바에 모여 물을 길어 여호와 앞에 붓고 그 날 종일 금식하고 거기에서 이르되 우리가 여호와께 범죄하였나이다 하니라 사무엘이 미스바에서 이스라엘 자손을 다스리니라
7. 이스라엘 자손이 미스바에 모였다 함을 블레셋 사람들이 듣고 그들의 방백들이 이스라엘을 치러 올라온지라 이스라엘 자손들이 듣고 블레셋 사람들을 두려워하여

 

블레셋이 공격합니다. 그러자 이스라엘이 반격을 하는 것이 아니라 두려워 떨고 있습니다. 왜요? 그동안에 지배된 자로 살아왔었기에 블레셋의 공격 즉 세상의 공격인 그 협박에 무너지게 됩니다. 여기서 길은 오직 한 길입니다. 삼상7:8-11입니다. 

 

8. 이스라엘 자손이 사무엘에게 이르되 당신은 우리를 위하여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 쉬지 말고 부르짖어 우리를 블레셋 사람들의 손에서 구원하시게 하소서 하니
9. 사무엘이 젖 먹는 어린 양 하나를 가져다가 온전한 번제를 여호와께 드리고 이스라엘을 위하여 여호와께 부르짖으매 여호와께서 응답하셨더라
10. 사무엘이 번제를 드릴 때에 블레셋 사람이 이스라엘과 싸우려고 가까이 오매 그 날에 여호와께서 블레셋 사람에게 큰 우레를 발하여 그들을 어지럽게 하시니 그들이 이스라엘 앞에 패한지라
11. 이스라엘 사람들이 미스바에서 나가서 블레셋 사람들을 추격하여 벧갈 아래에 이르기까지 쳤더라

 

여기서 이 역사적인 사건이 긴 세월이 지난, 지금 3,000년 후에 살고 있는 우리들에게 주는 교훈이 무엇인가 하면, 이 말씀은 지금도 유효하다는 뜻입니다. 즉 그 역사는 반복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언제나 인간 역사는 앞으로도 이 반복 속에서 살아가게 되는데 이젠 고넬료가 되어 보자는 말씀입니다삶의 아픔과 고통으로 인하여 길이 없어 보이는 그 상황이 왜 자기에게 왔는지, 그리고 그 문제를 어떻게 풀 수 있는지에 대한 해결을 알려주시려고 주신 이 말씀을 보고 이젠 세상에서 깨끗하게 돌아서자는 뜻입니다. 그렇습니다.

 

삼상7장의 말씀만으로도 인생의 모든 문제를 깨끗하게 풀 수 있습니다. 온 인류 철학자들이 찾고 찾던 그 진리를 우린 삼상 7장과 이방인 고넬료를 통하여 해답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단지 문제가 되는 것이 있다면, 그동안에의 자신이 따르던 세상의 힘과 능력에서 벗어나지 못하여 주신 이 인생의 해답을 해답으로 믿지 못하고 돈과 힘으로만 해결하려고 하다가보니까, 어떻게 된다고요? 경건의 모양만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해답을 쥐고도 오답을 따라가는 미련한 짓은 하지 맙시다. 

 

오답을 따라가는 그 이유는 무엇이라고요? 경건의 훈련을 하기 싫다는 것 때문입니다. 하지만, 경건의 삶이 싫어서 사람들을 죽이는 인간 백정이 되는 것이 낫다는 것이라면, 말이 된다고 생각합니까? 그러나 죄송하지만 교인 99%가 다 해답을 쥐고 오답을 따라가고 있습니다. 자기와 이웃의 영혼들을 죽일망정 경건한 삶은 싫다는 것입니다. 그러다가보니까, 자신의 문제가 해결이 될까요? 단언할진데, 안 됩니다. 자기를 살리고 복되게 하는 그 고난이 즐거움으로 전혀 느껴지지 않게 됩니다. 

 

믿음 때문에 환란을 즐거워하고 감사할 수 있는 자신인데도, 환란에서 오직 벗어나려고만 하지, 그 가치를 모릅니다. 결국 오늘날 지금처럼 나가지도 못하고 같이 있고 싶어도 같이 있지 못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제 또 보세요! 말씀을 오직 믿지 아니하고 세상을 습관적으로 따라가면, 코로나 바이러스 19로 생긴 이 사건보다 더 심각한 일이 생길 것입니다. 이미 그렇다는 것을 성경은 3,000년 전에 계시하고 있습니다. 

 

2. 무엇보다도 주님만 바라보려면, 하나님만을 의지하려면, 그래서 인생의 가치를 믿음 안에서 생산하려면, 하루가 얼마나 중요한지 알아야 합니다. 그 하루의 가치를 몰라서 어떤 실수를 하고 있는지 아세요? 날마다의 기도와 말씀을 항상 묵상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무슨 뜻인가 하면, 그날이 그날 같다고 오해를 합니다. 그러나 아닙니다. 오늘은 단지 오늘입니다. 내일이 아닙니다. 오늘 죽으면 그 사람은 내일이 없기에 오늘 할 일은 반듯이 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이 내일이라고 착각하여 오늘 꼭 해야 되는 일을 하지 않으므로 특히 말씀과 기도의 시간을 특별하게 여기지 못하므로 실을 통하여 득을 이루지 못하고 있습니다우리는 하루살이와 다르지 않습니다. 아닙니까? 우리는 하루살이라는 가치관으로 살아가야지만 하나님만을 바라보는 자로써 복을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하루살이가 하루를 미룰 수 있을까요? 미룰 수 없을 것입니다. 해야 되는 그 분량은 마쳐야 합니다하루살이로써는 피곤하니까, 좀 몸이 좋지 않으니까, 오늘은 넉넉하니까, 하루 쉬고 내일 해야겠다는 발상조차 할 수 없습니다. 

 

그렇게 우리도 하루살이처럼 살아가야 되는데, 어떤가요? ~ 미루고, 미루고, 미루고 있을 뿐입니다. 한꺼번에 한다고요? 그게 됩니까? 안 되기에 주님께서 눅18:8에서 “내가 왔을 때, 너희들의 믿음을 보겠느냐” 즉 한꺼번에 미루고 미루었던 해야 되는 일들을 그 누구도 한 번에 다 할 수 없다는 뜻입니다. 그러시면 하루살이처럼 성도된 너희들도 살아가야 한다고 심각한 경고를 하신 것입니다. 그러나 그 어떤 경고를 들어도 자기는 괜찮을 것이라는 안일무사주의로, 없을 수도 있는 내일을 기대하면서 아니 내일이 또 모레가 자기를 기다리고 있을 것처럼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다가 다 망했다는 것입니다. 그들처럼 같이 망하고 싶으십니까? 그럴 수 없으시다면, 하루살이처럼 살아가야지만 됩니다. 그러면 삼상7장의 에벤에설의 기적이 나타납니다. 그렇지 않았을 때에는 삼상4장에서의 언약궤를 빼앗기는 에벤에셀이 되겠지만, 순종하시면 승리하는 에벤에셀로 바뀝니다. 승리와 실패는 종이 두 장 차이입니다. 종이 두 장 차이점을 극복하지 못하여, 엘리 제사장처럼 목이 부러져 죽게 되고 엘리의 두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처럼 동시에 패하여 죽고 그래서 비느하시의 아내는 죽어가면서 ‘이가봇을 낳아야 되는 그 길’을 따라가시렵니까? 우리들이 살던 대로 산다면 그 인생은 정상이 아니라 멋대로 인생일 뿐입니다. 그러나 순종한다면 감옥의 삶처럼 느껴지지만 평화를 누리게 됩니다. 득을 위하여 실을 따라가야지만 됩니다. 삼상7장의 에벤에셀의 하나님을 만나기 위하여 말씀을 전심을 다하여 묵상하고 순종하게 되시기를 당부합니다.  

 

3. 준비 없는 삶을 당연하게 여기지 말자! 이스라엘의 신앙이 문제가 되는 것은 다 준비가 없기 때문입니다. 무슨 뜻인가 하면, 그냥 누구든지 가서 하면 되는 줄로 아는데, 아니라는 것입니다. 한 예로 물론 고등학교까지는 누구든지 원하면 대한민국 사람들은 가서 공부할 수 있는 의무자격이 됩니다. 지금 그 말씀을 드리는 것이 아니라, 이제 학교 수업에 들어간 학생의 마음가짐을 말하고 싶은 것입니다. 결혼식이 다가 아니라 가정을 꾸며야 되는 두 사람의 마음가짐이 없이는 안 된다는 뜻입니다. 이런 사람, 저런 사람들이 한다고 자기도 해서 되는 문제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해가 되셔야 하는데, 언약궤를 가지고만 있으면 될 것이라는 이스라엘과 언약궤를 힘으로 빼앗아 버렸다고 되는 것이 아니었듯이, 언약궤는 그 자격, 즉 믿음이 있어야 관리와 통제가 된다는 것입니다. 누구든지 언약궤를 관리할 수 없는 것입니다. 지금 그 말씀을 드리려는 것입니다. 그런데 잘 보세요! 은혜로 구원을 받았는데, 구원을 받은 자들이 정말 거룩함을 드러내고 있던가요? 아니잖아요! 단지 교회 안에 있는 것만으로 만족하고 있다가보니까, 엉망진창이 된 것이 아닙니까? 

 

삼상7장의 말씀과 고넬료를 보면서 더 이상 그러지 말자는 것입니다. 성도라면 그 합당한 자격을 믿음으로 만들어가야지만 되는 것입니다그런데 그런 사실을 아무도 모르고 있습니다. 믿기 전에 살던 대로 교회 안에서 그대로 하여도, 아무 상관이 없는 줄로 알고 있습니다그것은 무엇과 같은지 아세요? 혼인 전의 삶과 혼인 후의 삶이 달아야 할까요? 같아야 할까요? 만약에 같으면 어떻게 될까요? 부부관계가 깨질 것입니다. 가정이 결국 무너집니다. 

 

운동 전과 운동 후의 구분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운동 전과 운동 후가 다 같아요? 아니 어떻게 같을 수 있어요? 달라야 하잖아요! 벗어야 하고 씻어야 하고 그런데 그런 차이가 없다면, 무슨 문제가 생길까요? 관계가 유지되겠습니까? 안 됩니다. 다투게 될 것입니다. 어떤 기준에서 변화가 없으면, 여전히 삶의 전후가 같으면 관계를 또는 질서를 무너뜨리게 됩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요즘은 외출시에 마스크를 사용해야 합니다. 그런데 예전처럼 쓰지 않고 그냥 다녀보세요! 맞아 죽습니다. 그리고 가정에서도 예전과 달라야 하기에 누가 나갔다 왔다면 벗고 씻고 해야지, 그렇지 않으면 온 가족을 다 전염될 수 있습니다. 말씀을 들었을 때와 전혀 듣지 않았을 때가 완전 달라야지, 들었는데 믿는다고 하면서 여전히 예전처럼 세상을 똑같이 따라가면 그건 망하는 것입니다. 지금 이런 말씀을 드리는 이유가 믿기 전과 후가 같아서 그래요! 같게 되면 무너진 구약의 이스라엘의 전철을 밟게 됩니다. 그러나 보세요! 사무엘이 무엇이라고 합니까? 삼상7:3-4입니다. 

 

3. 사무엘이 이스라엘 온 족속에게 말하여 이르되 만일 너희가 전심으로 여호와께 돌아오려거든 이방 신들과 아스다롯을 너희 중에서 제거하고 너희 마음을 여호와께로 향하여 그만을 섬기라 그리하면 너희를 블레셋 사람의 손에서 건져내시리라
4. 이에 이스라엘 자손이 바알들과 아스다롯을 제거하고 여호와만 섬기니라

 

달라야 한다는 것이 아닙니까이제 전심으로 만군의 하나님을 믿으려면 너희들이 믿고 있던 모든 우상을 버리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그리고 다 버리고 나서 어떤 결과를 얻었습니까? 1. 기도를 드릴 수 있게 되고 그리고 기도의 응답을 받습니다. 삼상7:5-9입니다. 

 

5. 사무엘이 이르되 온 이스라엘은 미스바로 모이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여호와께 기도하리라 하매
6. 그들이 미스바에 모여 물을 길어 여호와 앞에 붓고 그 날 종일 금식하고 거기에서 이르되 우리가 여호와께 범죄하였나이다 하니라 사무엘이 미스바에서 이스라엘 자손을 다스리니라
7. 이스라엘 자손이 미스바에 모였다 함을 블레셋 사람들이 듣고 그들의 방백들이 이스라엘을 치러 올라온지라 이스라엘 자손들이 듣고 블레셋 사람들을 두려워하여
8. 이스라엘 자손이 사무엘에게 이르되 당신은 우리를 위하여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 쉬지 말고 부르짖어 우리를 블레셋 사람들의 손에서 구원하시게 하소서 하니
9. 사무엘이 젖 먹는 어린 양 하나를 가져다가 온전한 번제를 여호와께 드리고 이스라엘을 위하여 여호와께 부르짖으매 여호와께서 응답하셨더라

 

2. 하나님의 그 능력을 봅니다. 삼상7:10입니다. 

 

10. 사무엘이 번제를 드릴 때에 블레셋 사람이 이스라엘과 싸우려고 가까이 오매 그 날에 여호와께서 블레셋 사람에게 큰 우레를 발하여 그들을 어지럽게 하시니 그들이 이스라엘 앞에 패한지라

 

3. 그리고 에벤에셀의 하나님을 만나게 되고 전쟁에서 승리를 하여 빼앗겼던 성읍들을 되찾고 평화를 누리게 됩니다. 삼상7:12-14입니다. 

 

12. 사무엘이 돌을 취하여 미스바와 센 사이에 세워 이르되 여호와께서 여기까지 우리를 도우셨다 하고 그 이름을 에벤에셀이라 하니라
13. 이에 블레셋 사람들이 굴복하여 다시는 이스라엘 지역 안에 들어오지 못하였으며 여호와의 손이 사무엘이 사는 날 동안에 블레셋 사람을 막으시매
14. 블레셋 사람들이 이스라엘에게서 빼앗았던 성읍이 에그론부터 가드까지 이스라엘에게 회복되니 이스라엘이 그 사방 지역을 블레셋 사람들의 손에서 도로 찾았고 또 이스라엘과 아모리 사람 사이에 평화가 있었더라

 

그런데 우리들을 보세요! 버려야 되는 세상의 것들을 전혀 버리지 아니하고 종교행위만 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삼상4장에서의 언약궤를 빼앗겼던 실패한 에벤에셀이 됩니다. 그러나 다 세상의 우상을 버리고 그리고 기도로 하나님에게 나아가자, 승리의 에벤에셀로 완전 뒤바뀌고 만 것입니다. 이렇게 삶의 해답을 제시하여 주십니다. 단지 말씀만 따라가면 됩니다. 그런데 아니 해답을 받았는데, 오답을 택하면 어쩌라는 것입니까? 그 뜻은 정답을 얻고도 오답을 택하는 너희들은 고로나 바이러스 19를 만드는 살인자요 주변을 오염시켜서 전혀 쓰지 못하게 하니똥보다 더 더럽고 냄새나게 하는 자들이요, 가족까지도 만나지 못하게 하고 동족간의 피를 흘려, 원수 되게 하는 북한 김 일성, 김 정일, 김 정은 그들과 다르지 않을 것입니다. 정답을 얻고도 오답을 택하는 너희들은 사람을 속이기에 위선자요 정답을 얻고도 오답을 택하는 너희들은 어린 여자들을 조롱하고 그런 사진으로 거래하여 큰 상처를 준, ‘박사방 n 방번의 주범인 조주빈과 그 일당들’이 되는 것이요, 그 놈들에 대하여 부연 드리면, ‘박사방 n 방번’에서 유포된 성착취물을 별도의 텔레그램 대화방에서 다시 유포한 모방 범들이 잇따라 경찰에 붙잡히고 있다고 합니다. 

 

이 중 최대 1만 명 규모의 대화방을 운영한 ‘태평양’은 16세에 불과한 것으로 드러났다고 합니다. 경찰은 ‘박사방’ 운영자 조주빈(25)이 벌어들인 가상화폐 수익을 추적하기 위해 빗썸 등 가상화폐거래소를 압수수색하는 등 수사에 속도를 내고 있다고 합니다. 악의 세력은 달콤하기에 먹금직스럽기에 이렇게 쉽게 세워지는 듯합니다. 그러나 이렇게 쉽게 무너지고 맙니다. 그러나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그 사이에 피해를 당하여 고통하고 있습니까? 

 

정답을 얻고도 오답을 택하는 자들은 인간의 영혼을 죽이는 인간 백정이 되는 것입니다. 혹시 말씀을 지킨다, 사랑한다는 뜻이 무엇인지 알고 있나요? 말씀을 사랑하고 지킨다는 뜻은 말씀을 외우고 늘 소지하고 있다는 뜻이 아니라, 자기의 모든 세상 기준, 습관, 전통까지도 버리는 것과 같은 뜻입니다. 자기의 본성까지도 없애버리는 것이 바로 말씀을 지키는 삶이요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뜻이 되는 것입니다. 특히 악마의 사슬에서 벗어나게 해 줘서 감사하다고 했던, 그 놈 ‘n 방번의 주역 조주빈’ 교회에서 봉사를 했던 놈입니다. 보세요! 그 놈을 보더라도 알 수 있는 것이 신앙은 덕, 즉 상식과 윤리에서 벗어나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물론 구원의 조건은 인간백정보다 못한 우리들을 무조건적인 사랑으로 이루어 주셨지만그 다음은 달라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벧후1-8입니다.

 

성도가 되었으면, 즉 믿음을 받은 성도라면 최소한 ‘덕’이 있어야 합니다. 저는 이 ‘덕’을 무엇으로 해석한다고요? ‘도덕과 윤리를 가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좀 더 쉽게 말씀을 드리면 ‘상식’이 통하지 않을 수 없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n 방번, 박사방의 운영자 조주빈(25) 이 놈만 보더라도 아니 그 놈은 교회에서도 봉사를 한 놈이었지만, 너무나 빗나가 버렸고, 우리 주변의 교인, 아니 교회 직분자들을 보세요! 보기에는 상식이 통하고 도덕과 윤리를 가진 자처럼 보이고 있지만, 그들의 삶은 어떤가요? 정말 상식적이 통하던가요? 다 자기 기준에서 자기 옳은 대로 살면서 교회의 직분자라고 하는데, 그건 아니잖아요! 

자기 옳은 대로 행하는 삶은 사사시대의 타락의 특징이었습니다. 삼상4장의 실패한 에벤에셀이 됩니다. 그러나 삼상7장의 승리의 에벤에셀이 되기 위해서는 회개하고 하나님만을 간절하게 사모하셔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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