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돌교회

02/23/2020 - 룻기 2:14 -23 본문

주일 설교 말씀

02/23/2020 - 룻기 2:14 -23

PastorYK 2020. 2. 24. 17:55

말씀: 룻2:14-23                                                 

제목: 축복하는 우리의 근족 보아스

오늘 본문에 대하여 말씀을 드리기 전에 지금 우리들이 살고 있는 지구 안에 어떤 재앙으로 몸살을 알고 있는지 혹시 잘 알고 있으십니까? 지금 중국의 신종 코로나 19 바이러스만이 아니라 아프리카에 단번에 9000명이 먹을 수 있는 양식을 엄청난 메뚜기 떼 5000억 마리가 휩쓸고 있다고 합니다. 이로 인하여 아프리카에 상상할 수 없는 굶주림이 터질 것이라고 걱정하고 있는데 바로 그 메뚜기 떼가 지금 중국으로 이동 중이라고 합니다. 만약에 이 메뚜기 떼를 해결하지 못하면 그 결과는 감당할 수 없는 상황으로 이르게 된다고 합니다.

 

이런 사건들을 보면서 무슨 생각이 납니까? 마지막 때임을 직감 하게 합니다. 오직 금덩어리만을 위한 미련한 자들에 대한 경고이기도 합니다. 그 경고가 말씀하신 그대로 정확하게 나타나고 있습니다. 더 이상 머뭇거릴 수 없음을 알려 드립니다. 초긴장 하셔야 합니다. 깨어 있어야 합니다. 오시겠다고 하신 주님께서 곧 도둑처럼 임하실 것입니다. 지금 여러분들은 어느 편에 서 있습니까? 말씀입니까? 세상 입니까? 이 질문에 대한 tip를 드린다면, 세상을 따르므로 믿음의 준비를 전혀 하지 않고 있는 분들은 지금 제가 드리는 말씀에 대한 심각성을 모를 것입니다

 

그리고 이런 상황 속에서 혹시 주님 오실 때인가? 하며 걱정만하거나 그래서 머뭇거리면서 작은 걱정거리로 여긴다면, 그 사람들도 역시나 전혀 준비를 하지 못하고 있다는 반증입니다. 지금 일어나고 있는 상황 때문에 머뭇거리고 당황하는 분들이 계신다면, 당부합니다당장 하던 모든 일을 멈추고 그간, 자신이 무엇을 위한 수고였는지, 살펴보시고 그리고 곧 준비를 시작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물론 지금 시작한다고 하여 없던 믿음이 곧 생기지 않습니다. 그간 자신이 세상에 빠져서 믿음을 준비하지 못한 사람들은 마치 계란으로 바위를 치는 식의 느낌을 받을 것입니다. 

 

그럴지라도 포기하지 마세요! 부탁드립니다. 이제 오늘 본문으로 돌아갑니다. 먼저 보아스에 대하여 말씀을 드립니다. 마1:1-5입니다. 

1.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계보라
2. 아브라함이 이삭을 낳고 이삭은 야곱을 낳고 야곱은 유다와 그의 형제들을 낳고
3. 유다는 다말에게서 베레스와 세라를 낳고 베레스는 헤스론을 낳고 헤스론은 람을 낳고
4. 람은 아미나답을 낳고 아미나답은 나손을 낳고 나손은 살몬을 낳고
5. 살몬은 라합에게서 보아스를 낳고 보아스는 룻에게서 오벳을 낳고 오벳은 이새를 낳고

다윗의 조상이요 예수님의 족보에 들어간 믿음의 사람 보아스를 보세요! 보아스는 나오미가 어떤 이방 며느리를 데리고 오는지 주변에서 듣고 나서 주저 없이, 의심 없이 자기 밭에서 이삭 줍는 그녀가 룻임을 알게 되자, 곧 바로 믿고 정성을 다하여 보살펴 주고 있는 보아스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요1:1-11입니다. 

1.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2. 그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3.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
4. 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
5. 빛이 어둠에 비치되 어둠이 깨닫지 못하더라
6. 하나님께로부터 보내심을 받은 사람이 있으니 그의 이름은 요한이라
7. 그가 증언하러 왔으니 곧 빛에 대하여 증언하고 모든 사람이 자기로 말미암아 믿게 하려 함이라
8. 그는 이 빛이 아니요 이 빛에 대하여 증언하러 온 자라
9. 참 빛 곧 세상에 와서 각 사람에게 비추는 빛이 있었나니
10. 그가 세상에 계셨으며 세상은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되 세상이 그를 알지 못하였고
11. 자기 땅에 오매 자기 백성이 영접하지 아니하였으나

 

보세요! 간은 아무도 믿지 못하는 존재들입니다. 자기의 욕심과 미련함으로 인하여 믿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심지어 자기 자신도 믿지 못하고 살아갈 때가 허다합니다. 그러나 놀랍게도 생명이 없는 돈은 편리함을 주기에 목숨을 걸고 믿더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보세요! 세례 요한을 통하여 오실 메시야를 기다리고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그분을 증거 했었지만, 그리고 오신 구세주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을 보고도 전혀 믿지 못하더라는 것입니다. 아니 오히려 온갖 모욕과 조소, 조롱까지 하면서 결국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죽여 버리더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을 보고도 믿지 못하는 존재가 바로 우리입니다. 그런데 보아스를 보세요! 비록 이방여인이었지만, 룻을 알아보고 어떤 반응을 보이던가요? 의심없이 믿더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보아스가 저는 참으로 귀하다는 것을 발견하여 이렇게 말씀을 준비하게 됩니다. 의심 많아서 자신도 믿지 못하는 자들이, 돈이면 만족하는 자들이, 참 성도, 참 목회자를 알아보는 것이 쉬울 것 같습니까? 예수님도 알아보지 못하기에, 참 성도, 참 목회자를 알아본다는 것은 아무나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믿음이 없는 자들은 분별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돈이 힘이기에 한 알의 이삭의 가치를 무시하므로 분별이 불가능한 것인데, 그것은 영적인 깊이가 전혀 없다는 것이요 오직 세상에만 묶여 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저는 여러분들에게 너무나 감사하다는 말씀을 드리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지금까지, 저와 같이 주님의 교회를 섬길 수 있는 것은 다름이 아니라 자기가 자기도 믿지 못하는 처지에서 서로 만나, 이제는 우리들이 이렇게 서로 신뢰하면서 믿게 된 것을 보면, 나오미와 룻의 관계처럼, 보아스와 룻의 관계처럼 우리들도 그 관계가 이루어졌다는 것입니다. 아닌가요? 우리들이 그리스도 안에서 어느 정도까지 신뢰와 믿음이 생긴 것을 보면, 기적이지 않습니까? 기적입니다. 우리가 어느 사이에 십자가로 놀라운 그 기적의 만남을 이룬 것입니다. 아닙니까?~ 십자가가 만든 작품입니다. 그래서 저는 비록 적은 무리가 모여서 이렇게 예배를 드리고 있지만, 서로가 신뢰하면서 자기의 자리를 지키고 있다는 이 사실만으로도 실은 성공이요 기적이라는 것입니다. 가만히 깊이 생각해 보세요! ~ 

 

우린 산돌교회 안에서 믿음 때문에 아무도 누릴 수 없는 나오미와 룻의 그 관계처럼, 보아스와 룻의 그 관계처럼 그 관계가 이루어졌기에 저는 우리 모두가 성공한 성도라고 감히 말할 수 있는데, 여러분들은 아닌가요? 이해가 되는지 모르겠습니다. 감이 잡히지 않으십니까? ~ 우리 모두가 많이 부족함에도 불구하고 여러분들이 주님 안에서 특히 부족한 저를 중심으로 최선을 다하여 지금 여기까지 같이 올 수 있었다는 그것만으로도예수님께서 어떤 칭찬을 하고 계시는지 혹시 오늘 분문의 등장하는 보아스와 룻의 그 믿음과 신뢰의 관계를 보면서 느끼지 못하셨습니까? 저는 오늘 말씀을 준비하면서 강력하게 깊이 느꼈습니다. 

 

20년 동안에 산돌교회를 섬기면서 적지 않은 분들이 믿지 못하여 떠난 것을 보면 지금 여러분들은 더더욱 더없이 소중한 이웃임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그러다가보니까 지난 금요성경공부에서도 말씀을 드렸지만 목회자로서 한눈을 팔고 싶은 마음이 왜 없었을까요? 그러나 그런 마음이 들어도 결국 부족한 저를 끝까지 믿어주는 여러분 때문에 한눈을 팔 수 없게 되고, 더욱 매진하게 되는 힘과 능력이 되더라는 말씀입니다. 나를 믿고 함께 주님의 산돌교회를 섬기고 계시는데 어떻게 제가 제 이기심과 욕심으로 여러분들을 배반할 수 있고 실망을 줄 수 있을까? 결코 그럴 수 없게 합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믿음이 만들어낸 우리들의 열매, 산돌교회의 열매임을 오늘 보아스와 룻과의 그 믿음의 만남을 통하여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지금까지 어려운 가운데서도 저를 믿고 힘 것, 정성을 다하여 땀을 흘려주셔서, 이런 고백을 하게 되고 이렇게 저로서는 깊이 감사할 뿐입니다. 바로 보아스가 시어머니를 따르는 믿음의 룻을 알아보고 그때부터 어떻게 보살펴 주던가요? 룻에 대한 감사한 마음을 가진 보아스가 룻을 얼마나 아끼면서 전심으로 도와주고 있습니까? 시어머니를 위하여 수고하고 희생하는 룻에게 한없는 격려와 위로를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룻으로써는 감동 그 자체였을 것입니다. 그리고 느낄 수 있는 또 다른 점이, 룻 자신이 시어머니를 따라오는 덕분에, 엄청난 믿음의 증인 보아스를 만나, 그가 주는 위로와 격려로 인한 그 감동은 일생일대로 가장 잘한 선택이라고 스스로 생각했을 것이라 점입니다. 그렇습니다우린 누군가에게 쉽게 위로하고 격려할 수 없고 또한 감동의 위로나 격려를 받을 수 있는 그런 존재가 아닙니다. 힘들어 하는 이웃을 살리려고 자기가 희생하여 구원해 보려는 그 자리가 비록 계란으로 바위치기 식일지라도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도전하고 있는 그 믿음을 가진 이웃이 실은 힘들어 하는 이웃을 위로하고 격려 할 수 있는 것이지, 멋대로 하고, 하고 싶은 대로 하면서 그래서 주변의 질서를 무너뜨리는 되먹지 못한 그런 자들이 할 수 있는 위로와 격려가 아닙니다. 성도로서 분별을 하셔야 할 것입니다. 이웃에게 위로하고 격려하는 것도 믿음의 지혜가 반드시 필요합니다. 그렇습니다.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보아스라는 인물은 분별과 지혜의 믿음을 가진 성도입니다. 보아스, 그가 희생하고 있는 믿음의 룻에게 따뜻한 이웃으로 다가가서 격려하고 있기에 룻은 큰 감동을 받고 어려운 역할을 감당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선수는 선수를 알아본다고, 보아스는 시어머니를 위하여 희생하는 모압 여인 룻을 알아보고, 따뜻하게 위로하는 보아스의 그 신앙, 그 따뜻한 마음과 손길이 참 멋지고 아름답다는 것입니다. 그냥 믿음의 족보에 등록되는 것이 아닙니다. 주님께서도 눅18:8에서 말씀을 하신 것처럼,

8.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속히 그 원한을 풀어 주시리라 그러나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 하시니라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라고 하신 말씀처럼 보아스는 늘 준비하고 있던 자이었기에 룻의 믿음을 보고 그래서 어떤 시험을 준 다음에 통과했기에 나중에 위로하고 격려한 것이 아니라 그녀가 룻이라는 것을 확인하는 바로 그 순간에 바로 어떤 반응을 하던가요

 

조금도 머뭇거림이 없이 룻을 향하여 말할 수 없는 사랑을 베풀었다는 것입니다. 이런 점이 의심하고 인정하지 못하고 경쟁하고 남을 이기려는 우리들에게 큰 교훈이 됩니다. 룻2:4-16입니다.

4. 마침 보아스가 베들레헴에서부터 와서 베는 자들에게 이르되 여호와께서 너희와 함께 하시기를 원하노라 하니 그들이 대답하되 여호와께서 당신에게 복 주시기를 원하나이다 하니라
5. 보아스가 베는 자들을 거느린 사환에게 이르되 이는 누구의 소녀냐 하니
6. 베는 자를 거느린 사환이 대답하여 이르되 이는 나오미와 함께 모압 지방에서 돌아온 모압 소녀인데
7. 그의 말이 나로 베는 자를 따라 단 사이에서 이삭을 줍게 하소서 하였고 아침부터 와서는 잠시 집에서 쉰 외에 지금까지 계속하는 중이니이다
8. 보아스가 룻에게 이르되 내 딸아 들으라 이삭을 주우러 다른 밭으로 가지 말며 여기서 떠나지 말고 나의 소녀들과 함께 있으라
9. 그들이 베는 밭을 보고 그들을 따르라 내가 그 소년들에게 명령하여 너를 건드리지 말라 하였느니라 목이 마르거든 그릇에 가서 소년들이 길어 온 것을 마실지니라 하는지라
10. 룻이 엎드려 얼굴을 땅에 대고 절하며 그에게 이르되 나는 이방 여인이거늘 당신이 어찌하여 내게 은혜를 베푸시며 나를 돌보시나이까 하니
11. 보아스가 그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네 남편이 죽은 후로 네가 시어머니에게 행한 모든 것과 네 부모와 고국을 떠나 전에 알지 못하던 백성에게로 온 일이 내게 분명히 알려졌느니라
12. 여호와께서 네가 행한 일에 보답하시기를 원하며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의 날개 아래에 보호를 받으러 온 네게 온전한 상 주시기를 원하노라 하는지라
13. 룻이 이르되 내 주여 내가 당신께 은혜 입기를 원하나이다 나는 당신의 하녀 중의 하나와도 같지 못하오나 당신이 이 하녀를 위로하시고 마음을 기쁘게 하는 말씀을 하셨나이다 하니라
14. 식사할 때에 보아스가 룻에게 이르되 이리로 와서 떡을 먹으며 네 떡 조각을 초에 찍으라 하므로 룻이 곡식 베는 자 곁에 앉으니 그가 볶은 곡식을 주매 룻이 배불리 먹고 남았더라
15. 룻이 이삭을 주우러 일어날 때에 보아스가 자기 소년들에게 명령하여 이르되 그에게 곡식 단 사이에서 줍게 하고 책망하지 말며
16. 또 그를 위하여 곡식 다발에서 조금씩 뽑아 버려서 그에게 줍게 하고 꾸짖지 말라 하니라

룻을 삼자를 통하여 듣기만 하고도 바로 알아주는 그 보아스의 믿음이 얼마나 아름답습니까? 그 당시 보아스의 그 위로와 격려를 받던 룻은 얼마나 행복하고 감사했을까요?우린 바로 오늘의 말씀에서 그들이 서로 주고 받았던 그 귀한 느낌을 받았어야 합니다. 어떤가요?~ 

 

룻 자신이 시어머니를 따르겠다고 하던 그 결정이 조금도 후회되지 않았다는 것을 느끼면서 룻은 심히 행복했을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스스로가 준비되지 않으면 이런 역할을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나의 영적 준비는 그 준비가 힘들어 하는 이웃에게 어떤 힘과 능력과 기쁨이 되게 하는지 우린 오늘 등장하는 보아스를 통하여 깊이 느낄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그렇게 우리 자신들이 믿음을 준비하고 있었기에 그래서 보아스처럼 그런 따뜻한 말 한 마디를 제때에 할 수 있으므로, 위로가 꼭 필요했던 이웃에게 큰 위로가 된다면, 그것이 바로 믿음의 족보에 등록되었다는 증거가 아닐까요?~ 우리 모두 보아스처럼 그렇게 룻과 같은 이웃들을 위로할 수 있는 자가 되기 위하여 더 이상 머뭇거리지 마시고 하던 세상의 일을 멈추시고 믿음의 준비를 하게 되시기를 바랍니다. 아멘! 물론 말씀을 드렸지만 시작한다고 바로 되지 않습니다. 지독한 자기의 세상의 뜻과 고집을 이겨내야지만 됩니다. 피 흘리는 싸움을 감당해야지만 됩니다. 경건의 그 싸움을 끝까지 유지할 때만, 믿음의 화합이 이루어지면서 보아스의 그 믿음을 갖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믿음의 화합이 이루어질 때까지 방심은 절대 금물입니다. 그리고 당장에 믿음의 화합은 쉽게 이루어질 수 없기에 당황하게 될 것입니다. 그럴지라도 포기하면 안 됩니다. 힘들다고 전혀 감당할 수 없다고 포기하는 것은 자기의 목숨을 포기하는 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끝까지 훈련을 받아내셔야 합니다. 그 훈련의 고통 없이는 누구든지 믿음의 장에 등록되지 않습니다. 그리고 훈련 없이는 위로가 필요한 믿음의 룻을 만나더라고 보아스처럼 믿음을 가지고 그렇게 따뜻하게 대접하지 못할 것입니다. 보아스의 그 아름다운 그 반응은 말씀을 드린 대로 스스로 피나는 훈련을 한 결과이지, 절로 된 것이 아닙니다. 특히 성도라면 보아스처럼 피 흘리는 경건의 훈련을 하면서, 자신의 세상의 뜻과 싸우면서 자기 시각에서 벗어나, 하나님의 시각을 갖지 않으면, 룻이 받았던 그런 감동을 느끼게 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것입니다. 그 훈련의 대가로 보아스는 위대한 룻을 만나서 어떤 복을 받았습니까? 역시나 룻과 같이 믿음의 성군 다윗의 조상이 된 것입니다. 그런 경우가 성경에 등장합니다. 

 

자기 기준을 버리므로 복을 받은 믿음의 인물들을 찾아보겠습니다.

(1)행8:26-39의 말씀을 보세요!

26. 주의 사자가 빌립에게 말하여 이르되 일어나서 남쪽으로 향하여 예루살렘에서 가사로 내려가는 길까지 가라 하니 그 길은 광야라
27. 일어나 가서 보니 에디오피아 사람 곧 에디오피아 여왕 간다게의 모든 국고를 맡은 관리인 내시가 예배하러 예루살렘에 왔다가
28. 돌아가는데 수레를 타고 선지자 이사야의 글을 읽더라
29. 성령이 빌립더러 이르시되 이 수레로 가까이 나아가라 하시거늘
30. 빌립이 달려가서 선지자 이사야의 글 읽는 것을 듣고 말하되 읽는 것을 깨닫느냐
31. 대답하되 지도해 주는 사람이 없으니 어찌 깨달을 수 있느냐 하고 빌립을 청하여 수레에 올라 같이 앉으라 하니라
32. 읽는 성경 구절은 이것이니 일렀으되 그가 도살자에게로 가는 양과 같이 끌려갔고 털 깎는 자 앞에 있는 어린 양이 조용함과 같이 그의 입을 열지 아니하였도다
33. 그가 굴욕을 당했을 때 공정한 재판도 받지 못하였으니 누가 그의 세대를 말하리요 그의 생명이 땅에서 빼앗김이로다 하였거늘
34. 그 내시가 빌립에게 말하되 청컨대 내가 묻노니 선지자가 이 말한 것이 누구를 가리킴이냐 자기를 가리킴이냐 타인을 가리킴이냐
35. 빌립이 입을 열어 이 글에서 시작하여 예수를 가르쳐 복음을 전하니
36. 길 가다가 물 있는 곳에 이르러 그 내시가 말하되 보라 물이 있으니 내가 세례를 받음에 무슨 거리낌이 있느냐
37. (없음)
38. 이에 명하여 수레를 멈추고 빌립과 내시가 둘 다 물에 내려가 빌립이 세례를 베풀고
39. 둘이 물에서 올라올새 주의 영이 빌립을 이끌어간지라 내시는 기쁘게 길을 가므로 그를 다시 보지 못하니라

고정관념을 버린 빌립 집사 때문에 예배를 마치고 돌아가는 에디오피아 여왕 간다게의 모든 국고를 맡은 내시가 광야에서도 깨달음을 받고 세례를 받는 복의 시간을 얻게 됩니다.

(2)행9:10-18의 말씀처럼, 제자 아나니아가 고정관념을 버리므로 하여 사울이 바울이 되는 기적을 결국 보게 됩니다.

10. 그 때에 다메섹에 아나니아라 하는 제자가 있더니 주께서 환상 중에 불러 이르시되 아나니아야 하시거늘 대답하되 주여 내가 여기 있나이다 하니
11. 주께서 이르시되 일어나 직가라 하는 거리로 가서 유다의 집에서 다소 사람 사울이라 하는 사람을 찾으라 그가 기도하는 중이니라
12. 그가 아나니아라 하는 사람이 들어와서 자기에게 안수하여 다시 보게 하는 것을 보았느니라 하시거늘
13. 아나니아가 대답하되 주여 이 사람에 대하여 내가 여러 사람에게 듣사온즉 그가 예루살렘에서 주의 성도에게 적지 않은 해를 끼쳤다 하더니
14. 여기서도 주의 이름을 부르는 모든 사람을 결박할 권한을 대제사장들에게서 받았나이다 하거늘
15. 주께서 이르시되 가라 이 사람은 내 이름을 이방인과 임금들과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전하기 위하여 택한 나의 그릇이라
16. 그가 내 이름을 위하여 얼마나 고난을 받아야 할 것을 내가 그에게 보이리라 하시니
17. 아나니아가 떠나 그 집에 들어가서 그에게 안수하여 이르되 형제 사울아 주 곧 네가 오는 길에서 나타나셨던 예수께서 나를 보내어 너로 다시 보게 하시고 성령으로 충만하게 하신다 하니
18. 즉시 사울의 눈에서 비늘 같은 것이 벗어져 다시 보게 된지라 일어나 세례를 받고

(3)행10:1-47의 말씀처럼, 고정관념을 버린 베드로로 인하여 이방인 고넬료의 가정이 하나님의 가정으로 복을 받는 기적을 체험하게 되지 않았습니까?~

1. 가이사랴에 고넬료라 하는 사람이 있으니 이달리야 부대라 하는 군대의 백부장이라
2. 그가 경건하여 온 집안과 더불어 하나님을 경외하며 백성을 많이 구제하고 하나님께 항상 기도하더니
3. 하루는 제 구 시쯤 되어 환상 중에 밝히 보매 하나님의 사자가 들어와 이르되 고넬료야 하니
4. 고넬료가 주목하여 보고 두려워 이르되 주여 무슨 일이니이까 천사가 이르되 네 기도와 구제가 하나님 앞에 상달되어 기억하신 바가 되었으니
5. 네가 지금 사람들을 욥바에 보내어 베드로라 하는 시몬을 청하라
6. 그는 무두장이 시몬의 집에 유숙하니 그 집은 해변에 있다 하더라
7. 마침 말하던 천사가 떠나매 고넬료가 집안 하인 둘과 부하 가운데 경건한 사람 하나를 불러
8. 이 일을 다 이르고 욥바로 보내니라
9. 이튿날 그들이 길을 가다가 그 성에 가까이 갔을 그 때에 베드로가 기도하려고 지붕에 올라가니 그 시각은 제 육 시더라
10. 그가 시장하여 먹고자 하매 사람들이 준비할 때에 황홀한 중에
11. 하늘이 열리며 한 그릇이 내려오는 것을 보니 큰 보자기 같고 네 귀를 매어 땅에 드리웠더라
12. 그 안에는 땅에 있는 각종 네 발 가진 짐승과 기는 것과 공중에 나는 것들이 있더라
13. 또 소리가 있으되 베드로야 일어나 잡아 먹어라 하거늘
14. 베드로가 이르되 주여 그럴 수 없나이다 속되고 깨끗하지 아니한 것을 내가 결코 먹지 아니하였나이다 한대
15. 또 두 번째 소리가 있으되 하나님께서 깨끗하게 하신 것을 네가 속되다 하지 말라 하더라
16. 이런 일이 세 번 있은 후 그 그릇이 곧 하늘로 올려져 가니라
17. 베드로가 본 바 환상이 무슨 뜻인지 속으로 의아해 하더니 마침 고넬료가 보낸 사람들이 시몬의 집을 찾아 문 밖에 서서
18. 불러 묻되 베드로라 하는 시몬이 여기 유숙하느냐 하거늘
19. 베드로가 그 환상에 대하여 생각할 때에 성령께서 그에게 말씀하시되 두 사람이 너를 찾으니
20. 일어나 내려가 의심하지 말고 함께 가라 내가 그들을 보내었느니라 하시니
21. 베드로가 내려가 그 사람들을 보고 이르되 내가 곧 너희가 찾는 사람인데 너희가 무슨 일로 왔느냐
22. 그들이 대답하되 백부장 고넬료는 의인이요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이라 유대 온 족속이 칭찬하더니 그가 거룩한 천사의 지시를 받아 당신을 그 집으로 청하여 말을 들으려 하느니라 한대
23. 베드로가 불러 들여 유숙하게 하니라 이튿날 일어나 그들과 함께 갈새 욥바에서 온 어떤 형제들도 함께 가니라
24. 이튿날 가이사랴에 들어가니 고넬료가 그의 친척과 가까운 친구들을 모아 기다리더니
25. 마침 베드로가 들어올 때에 고넬료가 맞아 발 앞에 엎드리어 절하니
26. 베드로가 일으켜 이르되 일어서라 나도 사람이라 하고
27. 더불어 말하며 들어가 여러 사람이 모인 것을 보고
28. 이르되 유대인으로서 이방인과 교제하며 가까이 하는 것이 위법인 줄은 너희도 알거니와 하나님께서 내게 지시하사 아무도 속되다 하거나 깨끗하지 않다 하지 말라 하시기로
29. 부름을 사양하지 아니하고 왔노라 묻노니 무슨 일로 나를 불렀느냐
30. 고넬료가 이르되 내가 나흘 전 이맘때까지 내 집에서 제 구 시 기도를 하는데 갑자기 한 사람이 빛난 옷을 입고 내 앞에 서서
31. 말하되 고넬료야 하나님이 네 기도를 들으시고 네 구제를 기억하셨으니
32. 사람을 욥바에 보내어 베드로라 하는 시몬을 청하라 그가 바닷가 무두장이 시몬의 집에 유숙하느니라 하시기로
33. 내가 곧 당신에게 사람을 보내었는데 오셨으니 잘하였나이다 이제 우리는 주께서 당신에게 명하신 모든 것을 듣고자 하여 다 하나님 앞에 있나이다
34. 베드로가 입을 열어 말하되 내가 참으로 하나님은 사람의 외모를 보지 아니하시고
35. 각 나라 중 하나님을 경외하며 의를 행하는 사람은 다 받으시는 줄 깨달았도다
36. 만유의 주 되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화평의 복음을 전하사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보내신 말씀
37. 곧 요한이 그 세례를 반포한 후에 갈릴리에서 시작하여 온 유대에 두루 전파된 그것을 너희도 알거니와
38. 하나님이 나사렛 예수에게 성령과 능력을 기름 붓듯 하셨으매 그가 두루 다니시며 선한 일을 행하시고 마귀에게 눌린 모든 사람을 고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함께 하셨음이라
39. 우리는 유대인의 땅과 예루살렘에서 그가 행하신 모든 일에 증인이라 그를 그들이 나무에 달아 죽였으나
40. 하나님이 사흘 만에 다시 살리사 나타내시되
41. 모든 백성에게 하신 것이 아니요 오직 미리 택하신 증인 곧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신 후 그를 모시고 음식을 먹은 우리에게 하신 것이라
42. 우리에게 명하사 백성에게 전도하되 하나님이 살아 있는 자와 죽은 자의 재판장으로 정하신 자가 곧 이 사람인 것을 증언하게 하셨고
43. 그에 대하여 모든 선지자도 증언하되 그를 믿는 사람들이 다 그의 이름을 힘입어 죄 사함을 받는다 하였느니라
44. 베드로가 이 말을 할 때에 성령이 말씀 듣는 모든 사람에게 내려오시니
45. 베드로와 함께 온 할례 받은 신자들이 이방인들에게도 성령 부어 주심으로 말미암아 놀라니
46. 이는 방언을 말하며 하나님 높임을 들음이러라
47. 이에 베드로가 이르되 이 사람들이 우리와 같이 성령을 받았으니 누가 능히 물로 세례 베풂을 금하리요 하고
48. 명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라 하니라 그들이 베드로에게 며칠 더 머물기를 청하니라

버려야 되는 세상 차원의 인간의 생각과 기준은 하나님의 뜻을 전혀 이해할 수도 없고 그래서 넉넉할 수 없고 삶의 변화를 가져올 수도 없습니다. 진정한 사랑도 할 수 없습니다. 단지 다투고 시기하고 미워하고 근심만이 남을 것입니다. 사울 왕을 보세요! 자기 생각과 판단 때문에 왕의 자리도 빼앗겼고, 세 아들도 함께 죽게 됩니다. 근심에 근심을 더할 뿐입니다. 그러나 자기를 부인하고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면보아스처럼, 룻처럼 복의 복을 더하여 받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을 주야로 묵상하여 하나님의 기준으로 살아가게 되는 자들이 복의 복을 받게 되는 것이기에 하나님의 말씀에 all in하라는 신신당부를 하지 않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들치고 잘못되는 경우가 없기에 시편기자가 무엇이라고 말씀하십니까? 시128:1-6입니다.

1. 여호와를 경외하며 그의 길을 걷는 자마다 복이 있도다
2. 네가 네 손이 수고한 대로 먹을 것이라 네가 복되고 형통하리로다
3. 네 집 안방에 있는 네 아내는 결실한 포도나무 같으며 네 식탁에 둘러 앉은 자식들은 어린 감람나무 같으리로다
4.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는 이같이 복을 얻으리로다
5. 여호와께서 시온에서 네게 복을 주실지어다 너는 평생에 예루살렘의 번영을 보며
6. 네 자식의 자식을 볼지어다 이스라엘에게 평강이 있을지로다

내 생각과 판단은 망할 뿐입니다. 자기 기준은 위험할 뿐입니다. 그런데 자기 뜻을 들어주지 않는다고 하여 화를 낸다면, 

그것은 미련하고 어리석은 것입니다. 그러나 철저하게 준비하여 자기부인을 하던 보아스는 결국 룻을 향하여 위로하고 결국 혼인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 결과는 다윗의 조상이요 예수님의 족보, 생명록에 등록됩니다. 언제나 말씀을 드리지만, 말처럼 쉬운 것은 없습니다. 그래서 무엇이라고 하던가요? 말로 하는 사람들을 향하여 talking is cheap. 이라고 놀립니다. 특히 생활 속에서도 보세요! 의사들이 손을 깨끗이 하라고 하지만, 하던가요? 잘 씻지 않던 사람들은 거의 잊어버리고서는 아무거나  만지는데 지금 같은 시기에는 위험합니다. 

 

그것만이 아닙니다. 안전벨트를 매라고 그렇게 안내 방송을 귀가 따갑도록 수없이 광고를 했지만 처음에는 어떠했던가요? 습관이 되지 않아서 운전 할 때마다 안전벨트를 매지 않았고 얼마나 귀찮아했는지 모르는 분이 없습니다. 모든 것이 습관이 되어야지만 합니다. 누구든지 훈련이 필요합니다. 당장 되지 않고 많은 훈련의 시간이 걸립니다. 신앙도 마찬가지입니다. 훈련 없이 안 됩니다. 그래서 순종하라고 수천 년간을 말씀하시고 계시지만 여전히 멋대로 입니다. 싫다고 안합니다

 

죽는다고 해도 당장 죽지 않으니까, 들은 척도 안하고 자기 하고 싶은 대로 합니다. 특히 경제적인 손해 볼 것 같으면 죽어라고 순종하지 않습니다. 룻4:1-6에서도 알 수 있듯이, 보아스보다 더 가까웠던 친족이 있었는데, 기업 무를 그 책임을 거절합니다

1. 룻의 시어머니 나오미가 그에게 이르되 내 딸아 내가 너를 위하여 안식할 곳을 구하여 너를 복되게 하여야 하지 않겠느냐
2. 네가 함께 하던 하녀들을 둔 보아스는 우리의 친족이 아니냐 보라 그가 오늘 밤에 타작 마당에서 보리를 까불리라
3. 그런즉 너는 목욕하고 기름을 바르고 의복을 입고 타작 마당에 내려가서 그 사람이 먹고 마시기를 다 하기까지는 그에게 보이지 말고
4. 그가 누울 때에 너는 그가 눕는 곳을 알았다가 들어가서 그의 발치 이불을 들고 거기 누우라 그가 네 할 일을 네게 알게 하리라 하니
5. 룻이 시어머니에게 이르되 어머니의 말씀대로 내가 다 행하리이다 하니라
6. 그가 타작 마당으로 내려가서 시어머니의 명령대로 다 하니라

그러나 보아스는 약속대로 순종하여 룻과 혼인을 합니다그리고 후사 오벳을 낳아서 나오미 가족의 대를 이어 줍니다. 오벳이 누구던가요? 이스라엘의 성군 다윗의 친 할아버지입니다. 다윗의 아비 이새의 아버지가 오벳입니다. 

 

기업 무를 자로써의 책임을 다하게 되면서 그 결과는 영광스럽습니다. 보아스라는 인물은 이미 신앙 면으로 아주 잘 준비된 사람이었기에 룻을 통하여 하나님의 자랑이 됩니다. 그래서 룻의 이야기는 아름다웠던 것입니다. 그러나 그 아름다움은 피나는 믿음의 훈련과 함께, 어렵게 선택한 그 결과입니다. 나오미의 혈통을 이어주려고 룻하고 계대혼인을 합니다. 

 

두 번째로 드릴 말씀은 기업을 무는 것 즉 계대혼인에 대하여 말씀을 드립니다. 룻2:17-20절의 말씀을 보세요!

17. 룻이 밭에서 저녁까지 줍고 그 주운 것을 떠니 보리가 한 에바쯤 되는지라
18. 그것을 가지고 성읍에 들어가서 시어머니에게 그 주운 것을 보이고 그가 배불리 먹고 남긴 것을 내어 시어머니에게 드리매
19. 시어머니가 그에게 이르되 오늘 어디서 주웠느냐 어디서 일을 하였느냐 너를 돌본 자에게 복이 있기를 원하노라 하니 룻이 누구에게서 일했는지를 시어머니에게 알게 하여 이르되 오늘 일하게 한 사람의 이름은 보아스니이다 하는지라
20. 나오미가 자기 며느리에게 이르되 그가 여호와로부터 복 받기를 원하노라 그가 살아 있는 자와 죽은 자에게 은혜 베풀기를 그치지 아니하도다 하고 나오미가 또 그에게 이르되 그 사람은 우리와 가까우니 우리 기업을 무를 자 중의 하나이니라 하니라

풍성한 음식을 가져온 룻을 보면서 나오미가 보아스에게 하나님의 복을 받으라고 축복을 하면서 또 어떤 고백을 합니까? 그가 생존한 자와 사망한 자에게 은혜 베풀기를 그치지 아니한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그가 우리의 가까운 친척인데, 우리 기업을 무를 자 중 하나라고 합니다. 그리고, 나서 나오미가 룻으로부터 그간에 보아스가 한 모든 이야기를 듣고 나서는 룻에게 22절의 말씀을 해 줍니다. 룻2:22절을 보세요!

22. 나오미가 며느리 룻에게 이르되 내 딸아 너는 그의 소녀들과 함께 나가고 다른 밭에서 사람을 만나지 아니하는 것이 좋으니라 하는지라

그리고 룻은 나오미의 조언대로 순종을 합니다. 그런데 왜 나오미가 룻에게 그런 요구를 했을까요? 그가 바로 우리 기업을 무를 자 중 한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럼, 기업을 무를 자란 무슨 뜻인지를 먼저 살펴야 이해가 될 것입니다. 기업을 무를 자라는 의미는 원어로는 고엘(Goel)로 되어 있고 영어로는 "he is one of our kinsman-redeemers"입니다. 그럼, 그것이 무슨 뜻인지 구체적으로 살펴봅니다. 

 

이 고엘 제도는 고대 히브리 사회에서 볼 수 있는 제도입니다. 이 제도는 친척을 중심으로 만들어진 제도인데 자신의 공동체를 유지, 운영하기 위한, 특별한 제도입니다친척들 사이에서 서로를 위하여 지켜내야 하는 권리와 의무입니다. 말씀으로 설명합니다.

1.레25:47-52입니다.

47. 만일 너와 함께 있는 거류민이나 동거인은 부유하게 되고 그와 함께 있는 네 형제는 가난하게 되므로 그가 너와 함께 있는 거류민이나 동거인 또는 거류민의 가족의 후손에게 팔리면
48. 그가 팔린 후에 그에게는 속량 받을 권리가 있나니 그의 형제 중 하나가 그를 속량하거나
49. 또는 그의 삼촌이나 그의 삼촌의 아들이 그를 속량하거나 그의 가족 중 그의 살붙이 중에서 그를 속량할 것이요 그가 부유하게 되면 스스로 속량하되
50. 자기 몸이 팔린 해로부터 희년까지를 그 산 자와 계산하여 그 연수를 따라서 그 몸의 값을 정할 때에 그 사람을 섬긴 날을 그 사람에게 고용된 날로 여길 것이라
51. 만일 남은 해가 많으면 그 연수대로 팔린 값에서 속량하는 값을 그 사람에게 도로 주고
52. 만일 희년까지 남은 해가 적으면 그 사람과 계산하여 그 연수대로 속량하는 그 값을 그에게 도로 줄지며

즉 가난한 가족의 형제가 채무 때문에 노예로 팔려가게 되는 처지가 되었을 때에, 가장 가까운 친척부터 그 노예로 팔려갈 친척을 위하여 대신 그 빚을 갚아 주고 종의 굴레에서 벗어나게 해 주는 것이 고엘 제도입니다. 

2. 레25:23-28입니다.

23. 토지를 영구히 팔지 말 것은 토지는 다 내 것임이니라 너희는 거류민이요 동거하는 자로서 나와 함께 있느니라
24. 너희 기업의 온 땅에서 그 토지 무르기를 허락할지니
25. 만일 네 형제가 가난하여 그의 기업 중에서 얼마를 팔았으면 그에게 가까운 기업 무를 자가 와서 그의 형제가 판 것을 무를 것이요
26. 만일 그것을 무를 사람이 없고 자기가 부유하게 되어 무를 힘이 있으면
27. 그 판 해를 계수하여 그 남은 값을 산 자에게 주고 자기의 소유지로 돌릴 것이니라
28. 그러나 자기가 무를 힘이 없으면 그 판 것이 희년에 이르기까지 산 자의 손에 있다가 희년에 이르러 돌아올지니 그것이 곧 그의 기업으로 돌아갈 것이니라

형제가 어떤 사정으로 인하여 남에게 땅을 팔았으면 이런 경우에도 역시나 가장 가까운 친척순서대로 남은 기간의 값을 계산하여 되돌려 주어서 회복된 삶을 누리게 하는 이 제도가 고엘 제도입니다. 

3. 민5:5-7입니다.

5.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6.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르라 남자나 여자나 사람들이 범하는 죄를 범하여 여호와께 거역함으로 죄를 지으면
7. 그 지은 죄를 자복하고 그 죄 값을 온전히 갚되 오분의 일을 더하여 그가 죄를 지었던 그 사람에게 돌려줄 것이요

죄지은 것까지도 물질로 계산하여 물어줘서 자유하게 하는 제도도 마찬가지로 고엘 제도입니다. 

4. 민35:16-21입니다. 친척이 죽은 자를 대신하여 복수까지도 친척이 대신할 수 있습니다. 이것도 고엘 제도입니다. 

16. 만일 철 연장으로 사람을 쳐죽이면 그는 살인자니 그 살인자를 반드시 죽일 것이요
17. 만일 사람을 죽일 만한 돌을 손에 들고 사람을 쳐죽이면 이는 살인한 자니 그 살인자는 반드시 죽일 것이요
18. 만일 사람을 죽일 만한 나무 연장을 손에 들고 사람을 쳐죽이면 그는 살인한 자니 그 살인자는 반드시 죽일 것이니라
19. 피를 보복하는 자는 그 살인한 자를 자신이 죽일 것이니 그를 만나면 죽일 것이요
20. 만일 미워하는 까닭에 밀쳐 죽이거나 기회를 엿보아 무엇을 던져 죽이거나
21. 악의를 가지고 손으로 쳐죽이면 그 친 자는 반드시 죽일 것이니 이는 살인하였음이라 피를 보복하는 자는 살인자를 만나면 죽일 것이니라

5. 신25:5-10의 말씀입니다.

5. 형제들이 함께 사는데 그 중 하나가 죽고 아들이 없거든 그 죽은 자의 아내는 나가서 타인에게 시집 가지 말 것이요 그의 남편의 형제가 그에게로 들어가서 그를 맞이하여 아내로 삼아 그의 남편의 형제 된 의무를 그에게 다 행할 것이요
6. 그 여인이 낳은 첫 아들이 그 죽은 형제의 이름을 잇게 하여 그 이름이 이스라엘 중에서 끊어지지 않게 할 것이니라
7. 그러나 그 사람이 만일 그 형제의 아내 맞이하기를 즐겨하지 아니하면 그 형제의 아내는 그 성문으로 장로들에게로 나아가서 말하기를 내 남편의 형제가 그의 형제의 이름을 이스라엘 중에 잇기를 싫어하여 남편의 형제 된 의무를 내게 행하지 아니하나이다 할 것이요
8. 그 성읍 장로들은 그를 불러다가 말할 것이며 그가 이미 정한 뜻대로 말하기를 내가 그 여자를 맞이하기를 즐겨하지 아니하노라 하면
9. 그의 형제의 아내가 장로들 앞에서 그에게 나아가서 그의 발에서 신을 벗기고 그의 얼굴에 침을 뱉으며 이르기를 그의 형제의 집을 세우기를 즐겨 아니하는 자에게는 이같이 할 것이라 하고
10. 이스라엘 중에서 그의 이름을 신 벗김 받은 자의 집이라 부를 것이니라

형이 죽으면 동생이 형수하고 결혼을 해서 형의 후손을 이어가는 계대혼인이라고 합니다. 결국 동생은 형의 후손을 위하여 희생해야 하는 이 제도도 고엘 제도입니다. 이 고엘 제도를 싫다고 하여 동생이 형의 아내와 동침하지 않으면 어떻게 되는 하면, 9절을 보세요! 이런 모욕을 받게 되고 심지어는 하나님의 저주를 받는 경우도 있습니다. 창38:1-10의 말씀을 보세요.

1. 그 후에 유다가 자기 형제들로부터 떠나 내려가서 아둘람 사람 히라와 가까이 하니라
2. 유다가 거기서 가나안 사람 수아라 하는 자의 딸을 보고 그를 데리고 동침하니
3. 그가 임신하여 아들을 낳으매 유다가 그의 이름을 엘이라 하니라
4. 그가 다시 임신하여 아들을 낳고 그의 이름을 오난이라 하고
5. 그가 또 다시 아들을 낳고 그의 이름을 셀라라 하니라 그가 셀라를 낳을 때에 유다는 거십에 있었더라
6. 유다가 장자 엘을 위하여 아내를 데려오니 그의 이름은 다말이더라
7. 유다의 장자 엘이 여호와가 보시기에 악하므로 여호와께서 그를 죽이신지라
8. 유다가 오난에게 이르되 네 형수에게로 들어가서 남편의 아우 된 본분을 행하여 네 형을 위하여 씨가 있게 하라
9. 오난이 그 씨가 자기 것이 되지 않을 줄 알므로 형수에게 들어갔을 때에 그의 형에게 씨를 주지 아니하려고 땅에 설정하매
10. 그 일이 여호와가 보시기에 악하므로 여호와께서 그도 죽이시니

결국 고엘 제도라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요? 

 

비록 당시 고대 히브리 사회에서 있던 제도였지만, 이 제도가 말하고 싶은 것은 하나님의 나라에서는 자기 혼자서만 잘 먹고, 잘 살면 된다는 이기적인 삶을 용납할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어렵고 힘든 이웃을 위한 희생, 섬김을 강력하게 가르치시려고 룻기 오늘 말씀에서 이 제도를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먼저 룻3:12과 4:1-6의 말씀을 보세요!

룻기 3:12

12. 참으로 나는 기업을 무를 자이나 기업 무를 자로서 나보다 더 가까운 사람이 있으니

룻기 4:1-6

1. 보아스가 성문으로 올라가서 거기 앉아 있더니 마침 보아스가 말하던 기업 무를 자가 지나가는지라 보아스가 그에게 이르되 아무개여 이리로 와서 앉으라 하니 그가 와서 앉으매
2. 보아스가 그 성읍 장로 열 명을 청하여 이르되 당신들은 여기 앉으라 하니 그들이 앉으매
3. 보아스가 그 기업 무를 자에게 이르되 모압 지방에서 돌아온 나오미가 우리 형제 엘리멜렉의 소유지를 팔려 하므로
4. 내가 여기 앉은 이들과 내 백성의 장로들 앞에서 그것을 사라고 네게 말하여 알게 하려 하였노라 만일 네가 무르려면 무르려니와 만일 네가 무르지 아니하려거든 내게 고하여 알게 하라 네 다음은 나요 그 외에는 무를 자가 없느니라 하니 그가 이르되 내가 무르리라 하는지라
5. 보아스가 이르되 네가 나오미의 손에서 그 밭을 사는 날에 곧 죽은 자의 아내 모압 여인 룻에게서 사서 그 죽은 자의 기업을 그의 이름으로 세워야 할지니라 하니
6. 그 기업 무를 자가 이르되 나는 내 기업에 손해가 있을까 하여 나를 위하여 무르지 못하노니 내가 무를 것을 네가 무르라 나는 무르지 못하겠노라 하는지라

가장 가까운 친척이 책임을 진다고 했다가 보아스 말씀을 듣고 나서는 가만히 생각해 보니까, 자신이 나오미 가정을 위하여 희생을 해야 되었던 것입니다. 나오미 가정을 위하여 잃어버렸었던 땅도 사서 돌려주고 룻하고도 혼인하여 후손도 낳아주는 역할이기에 결국 포기를 합니다. 결국 룻4:7-10의 말씀을 보면,

7. 옛적 이스라엘 중에는 모든 것을 무르거나 교환하는 일을 확정하기 위하여 사람이 그의 신을 벗어 그의 이웃에게 주더니 이것이 이스라엘 중에 증명하는 전례가 된지라
8. 이에 그 기업 무를 자가 보아스에게 이르되 네가 너를 위하여 사라 하고 그의 신을 벗는지라
9. 보아스가 장로들과 모든 백성에게 이르되 내가 엘리멜렉과 기룐과 말론에게 있던 모든 것을 나오미의 손에서 산 일에 너희가 오늘 증인이 되었고
10. 또 말론의 아내 모압 여인 룻을 사서 나의 아내로 맞이하고 그 죽은 자의 기업을 그의 이름으로 세워 그의 이름이 그의 형제 중과 그 곳 성문에서 끊어지지 아니하게 함에 너희가 오늘 증인이 되었느니라 하니

가장 가까웠던 그 사람이 포기를 하자 보아스가 장로들을 세워서 이 일에 증인을 삼고 그리고 나오미 가정의 기업 무를 자가 됩니다. 물론 인간적인 생각과 기준으로 보면 어떻습니까? 가장 가까웠던 그 사람이 나오미 가정의 회복을 위한 친척간의 기업 무를 의무와 책임을 포기하는 것이 세상 적으로는 더욱 지혜롭게 보이고 현명한 자로 보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아닙니다

 

세상적인 기준으로 볼 때에는 바보 같은 짓을 한, 보아스를 하나님께서 칭찬하셨습니다. 결국 하나님의 뜻은 고엘 제도에 박수를 보내시는 것이라면, 세상의 사람들은 역시나 반대의 입장입니다. 그럼 질문을 드립니다. 우리라면 어느 쪽을 선택할까요? 지금 주보에다가 고엘 제도를 찬성하면 yes로 아니면 no로 적어 보세요! 우리는 늘 잊지 말아야 합니다. 언제나 부자일 수 없고 언제나 가난뱅일 수가 없는 것입니다. 언제 어느 때에 자신의 처지가 어떻게 변화될지는 아무도 모르는 것입니다. 

 

때문에 도울 때에 돕는 것이 지혜로운 선택이 되는 것입니다. 전3:1-13입니다. 

1. 범사에 기한이 있고 천하 만사가 다 때가 있나니
2. 날 때가 있고 죽을 때가 있으며 심을 때가 있고 심은 것을 뽑을 때가 있으며
3. 죽일 때가 있고 치료할 때가 있으며 헐 때가 있고 세울 때가 있으며
4. 울 때가 있고 웃을 때가 있으며 슬퍼할 때가 있고 춤출 때가 있으며
5. 돌을 던져 버릴 때가 있고 돌을 거둘 때가 있으며 안을 때가 있고 안는 일을 멀리 할 때가 있으며
6. 찾을 때가 있고 잃을 때가 있으며 지킬 때가 있고 버릴 때가 있으며
7. 찢을 때가 있고 꿰맬 때가 있으며 잠잠할 때가 있고 말할 때가 있으며
8. 사랑할 때가 있고 미워할 때가 있으며 전쟁할 때가 있고 평화할 때가 있느니라
9. 일하는 자가 그의 수고로 말미암아 무슨 이익이 있으랴
10. 하나님이 인생들에게 노고를 주사 애쓰게 하신 것을 내가 보았노라
11. 하나님이 모든 것을 지으시되 때를 따라 아름답게 하셨고 또 사람들에게는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셨느니라 그러나 하나님이 하시는 일의 시종을 사람으로 측량할 수 없게 하셨도다
12. 사람들이 사는 동안에 기뻐하며 선을 행하는 것보다 더 나은 것이 없는 줄을 내가 알았고
13. 사람마다 먹고 마시는 것과 수고함으로 낙을 누리는 그것이 하나님의 선물인 줄도 또한 알았도다

자신하는 것만큼 교만하고 미련한 것은 없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기업을 물어서 한 가정을 회복시키는 그 보아스는 누구를 상징하는 인물일까요? 하나님의 자녀들을 위하여 100% 희생하고 섬긴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합니다. 예수님 역시 성육신하셔서 가난하고 병들고 게다가 미련한 모든 자녀들을 위하여 다 포기하지 않으셨습니까? 살리기 위하여 고엘의 의무를 다하셨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룻기를 통하여 원하시는 뜻이 무엇이겠습니까? 오늘 말씀을 통하여 하시려는 말씀이 무엇이겠습니까? 따뜻한 섬김과 나눔입니다. 나 혼자 넉넉하고 만족하고 이웃의 가난을 돌아보지 않는 자들에 대한 경고가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안타까운 것은 요즘 누가 가난하고 힘든 이웃을 위하여 자신의 것을 아낌없이 나누고 베풀려고 합니까? 하나님의 것도 아낌없이 드리지 못하지 않습니까? 참 인색합니다. 오히려 가난한 이웃의 작은 것까지도 다 빼앗으려고 하지 않습니까? 

 

힘이 있고 권세가 있는 자들에게의 것은 엄두도 내지 못하면서, 힘없는 가난한 이웃의 것을 쉽게 빼앗을 수가 있기에 그래서 온갖 거짓과 술수를 다 동원하는 우리의 현실을 보세요! 그런 세상 사람들에게 고엘 제도, 예수 그리스도의 원리가 얼마나 미련하고 못난 짓인가, 하면서 조롱하고 비웃기를 서슴지 않고 있습니다. 그런데 성도까지 고엘 제도에 대하여 감사하지 못한다면? 그것이 정말 슬픈 일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성도가 가난을 미워하고 부자 되려고 거짓되고 남에게 해를 끼친다면, 그것만큼 슬프고 안타까운 일이 있겠습니까? 

 

성도라면 언제나 희생하는 자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그런데 자신은 하나님으로부터 한없는 은혜와 사랑을 받고 부족함이 없이 살아가고 있으면서, 가난한 이웃을 돕고 섬기기를 바라지 않는다면, 어떻게 자신의 가정이 화평할 수가 있고 기뻐할 수가 있겠습니까? 고엘 제도에 적극적인 동참을 하지 않는 한, 자신의 가정의 평화와 기쁨은 절대로 누리지 못할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이 무엇이라고 가르치시던가요? 마19:23-24입니다.

23.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부자는 천국에 들어가기가 어려우니라
24. 다시 너희에게 말하노니 낙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이 부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쉬우니라 하시니

재물만을 의지하다가 가난한 이웃과 나누지 못하고 섬기지 못하여서 버림을 받는 잠시 부자가 되느니, 가난으로 하나님만을 바라보다가 영원한 부자로써 영생하는 것이 복일진데, 아닙니까? ~진정한 부자가 되시려면, 보아스처럼 가난한 이웃을 위하여 주신 재물을 나누는 자가 되어 가난한 자들과 함께 기뻐하면서 부자의 티를 전혀 내지 않는 그런 겸손한 부자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요? ~그러시려면, 보아스처럼 주신 돈, 가진 재물을 쓸 줄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마19:25-30의 말씀을 보세요! 

25. 제자들이 듣고 몹시 놀라 이르되 그렇다면 누가 구원을 얻을 수 있으리이까
26. 예수께서 그들을 보시며 이르시되 사람으로는 할 수 없으나 하나님으로서는 다 하실 수 있느니라
27. 이에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보소서 우리가 모든 것을 버리고 주를 따랐사온대 그런즉 우리가 무엇을 얻으리이까
28.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세상이 새롭게 되어 인자가 자기 영광의 보좌에 앉을 때에 나를 따르는 너희도 열두 보좌에 앉아 이스라엘 열두 지파를 심판하리라
29. 또 내 이름을 위하여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부모나 자식이나 전토를 버린 자마다 여러 배를 받고 또 영생을 상속하리라
30. 그러나 먼저 된 자로서 나중 되고 나중 된 자로서 먼저 될 자가 많으니라

 

자신의 것을 가난한 이웃과 나누고 섬기는 삶은 인간의 능력으로 할 수가 없다고 26절에서 말씀하시지 않습니까? 성령 충만한 자들만 29절의 말씀처럼 주신 모든 재산과 물질 그리고 가족까지도 다 포기할 수가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그래서 보아스같은 참 부자는 아무나 되지 않습니다. 재산이 가득하다고 부자라고 할 수 없는 것입니다. 보아스같은 부자는 경건의 훈련없이 이루어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세상에서 편하고 자랑하려고 부자가 되는 것은 저주요 불행일 뿐입니다

 

눅12:13-21입니다.

13. 무리 중에 한 사람이 이르되 선생님 내 형을 명하여 유산을 나와 나누게 하소서 하니
14. 이르시되 이 사람아 누가 나를 너희의 재판장이나 물건 나누는 자로 세웠느냐 하시고
15. 그들에게 이르시되 삼가 모든 탐심을 물리치라 사람의 생명이 그 소유의 넉넉한 데 있지 아니하니라 하시고
16. 또 비유로 그들에게 말하여 이르시되 한 부자가 그 밭에 소출이 풍성하매
17. 심중에 생각하여 이르되 내가 곡식 쌓아 둘 곳이 없으니 어찌할까 하고
18. 또 이르되 내가 이렇게 하리라 내 곳간을 헐고 더 크게 짓고 내 모든 곡식과 물건을 거기 쌓아 두리라
19. 또 내가 내 영혼에게 이르되 영혼아 여러 해 쓸 물건을 많이 쌓아 두었으니 평안히 쉬고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자 하리라 하되
20. 하나님은 이르시되 어리석은 자여 오늘 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네 준비한 것이 누구의 것이 되겠느냐 하셨으니
21. 자기를 위하여 재물을 쌓아 두고 하나님께 대하여 부요하지 못한 자가 이와 같으니라

그러나 이 세상은 나누지 못하는 가치 없는 죽은 부자가 되어야 함을 가르치고 있고 모두들 돈이라면 환장을 하고 있습니다. 심지어 교회에서도 부자가 되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 안에서는 부자와 가난에 대하여 아무 차이점과 상관이 없다고 가르치지 않습니까? 우리는 자족(自足)할 뿐입니다. 더 이상 속지 마시고 멋진 보아스와 같은 부자 되고 싶다면 하나님의 말씀을 가슴에 채우고 뼈마디 마다 각인하여 이웃과 언제나 나눌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가득한 재물은 불행입니다

 

믿음이 없는 부자는 근심일 뿐입니다. 마19:16-22의 말씀을 보세요!

16. 어떤 사람이 주께 와서 이르되 선생님이여 내가 무슨 선한 일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17. 예수께서 이르시되 어찌하여 선한 일을 내게 묻느냐 선한 이는 오직 한 분이시니라 네가 생명에 들어 가려면 계명들을 지키라
18. 이르되 어느 계명이오니이까 예수께서 이르시되 살인하지 말라, 간음하지 말라, 도둑질하지 말라, 거짓 증언 하지 말라,
19. 네 부모를 공경하라,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하신 것이니라
20. 그 청년이 이르되 이 모든 것을 내가 지키었사온대 아직도 무엇이 부족하니이까
21.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가 온전하고자 할진대 가서 네 소유를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보화가 네게 있으리라 그리고 와서 나를 따르라 하시니
22. 그 청년이 재물이 많으므로 이 말씀을 듣고 근심하며 가니라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에게 재물은 오직 한길입니다. 가난한 자들의 필요를 위하여 나누어야 합니다. 그래서 부자 되게 하셨던 것입니다. 우리는 딤전6:7-10, 17-19의 말씀을 잊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디모데전서 6:7-10

7. 우리가 세상에 아무 것도 가지고 온 것이 없으매 또한 아무 것도 가지고 가지 못하리니
8. 우리가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있은즉 족한 줄로 알 것이니라
9. 부하려 하는 자들은 시험과 올무와 여러 가지 어리석고 해로운 욕심에 떨어지나니 곧 사람으로 파멸과 멸망에 빠지게 하는 것이라
10.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나니 이것을 탐내는 자들은 미혹을 받아 믿음에서 떠나 많은 근심으로써 자기를 찔렀도다

디모데전서 6:17-19

17. 네가 이 세대에서 부한 자들을 명하여 마음을 높이지 말고 정함이 없는 재물에 소망을 두지 말고 오직 우리에게 모든 것을 후히 주사 누리게 하시는 하나님께 두며
18. 선을 행하고 선한 사업을 많이 하고 나누어 주기를 좋아하며 너그러운 자가 되게 하라
19. 이것이 장래에 자기를 위하여 좋은 터를 쌓아 참된 생명을 취하는 것이니라

 

딤전6:7-10입니다.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됩니다. 'For the love of money is a root of all kinds of evil. Some people eager for money, have wandered from the faith and pierced themselves with many griefs' 진정한 부자는 돈에 묶여서 쓰지 못하는 자들이 아니요 하나님의 뜻을 따라 가난하고 힘든 이웃들을 돕는 자가 아름다운 부자입니다. 그래서 하시는 말씀이 딤후6:17-19입니다. 질문합니다. 가난한 이웃을 위하여 재물을 쓰고, 후손이 끊긴 가족의 회복을 위한 이 고대의 고엘 제도를 찬성하십니까? 아멘-찬성하신다면, 다 내려놓으셔야 합니다. 주님께서 가신 길을 가셔야 할 것입니다. 그것이 이 마지막 때에, 재앙을 준비하고 오실 주님을 준비하는 슬기로운 성도가 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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