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돌교회

3/23/2025 이사야 44:1-28 본문

주일 설교 말씀

3/23/2025 이사야 44:1-28

PastorYK 2025. 3. 24. 11:54

말씀: 사44:1-28                                          

제목: 나의 영을 네 자손에게 부어 주리니

 

 

여러분들이 아프리카로 여행을 갔는데, 거기에 살고 있던 아프리카 인들이 주먹만 한, diamond를 장사꾼들하고 거래를 하는데, 장사꾼들이 주는 생필품으로 물물 교환하는 것을 보면, 어떨까요? ~ 또는 자기가 어떤 산을 올라가다가, 무심코 어느 지점에 이르렀는데 보지 못한 어떤 풀들이 주변에 많이 깔려 있기에 그냥 지나쳤다가, 궁금해서 다시 하산하는 길에 그곳을 들러 보니깐, 어떤 사람들이 그 풀을 캐고 있는데 다들 정신없기에, 이 풀들이 무엇이냐고 물어보았더니, 이 풀은 단 한 뿌리에도 백만 원 이상 하는 최고로 귀한 산삼 중의 산삼이라고 했을 때, 몰라서 외면했던 그 사람이 여러분이었으면 기분이 어떨까요? 

 

그렇습니다. 무엇이 diamond인지 무엇이 산삼 (wild ginseng)인지 모르면 그 복을 다 놓치고 말 것입니다. 오늘의 사44장의 말씀도 마찬가지입니다. 사44장에서 하시려는 중요한 말씀을 알고 믿으면 복인데 모르게 되면 결국 복을 다 놓치고 말 것입니다. 그래서 질문으로 주일 설교를 시작하겠습니다. 

 

예수를 알면, 믿으면 구원을 받는다 아니면 그렇지 않다? 어느 쪽일까요?

 

약2:19입니다. “네가 하나님은 한 분이신 줄을 믿느냐 잘하는 도다 귀신들도 믿고 떠느니라” 실은 귀신들도 예수님을 이미 우리보다 먼저 알고 있었고 믿고 있었기에 복음서를 보면 귀신의 세력들도 예수님을 보고서는 두려워 떨었기에 즉시 순종하지 않던가요? 공간복음인 마8장, 막1장, 막5장, 눅4장, 눅8장에서도 알 수 있는데 한 곳만 봅니다.

 

눅8:26-33입니다. “그들이 갈릴리 맞은편 거라사인의 땅에 이르러, 예수께서 육지에 내리시매 그 도시 사람으로서 귀신들린 자 하나가 예수를 만나니 그 사람은 오래 옷을 입지 아니하며 집에 거하지도 아니하고 무덤 사이에 거하는 자라, 예수를 보고 부르짖으며 그 앞에 엎드려 큰 소리로 불러 이르되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여 당신이 나와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당신께 구하노니 나를 괴롭게 하지 마옵소서 하니, 이는 예수께서 이미 더러운 귀신을 명하사 이 사람에게서 나오라 하셨음이라 (귀신이 가끔 그 사람을 붙잡으므로 그를 쇠사슬과 고랑에 매어 지켰으되 그 맨 것을 끊고 귀신에게 몰려 광야로 나갔더라), 예수께서 네 이름이 무엇이냐 물으신즉 이르되 군대라 하니 이는 많은 귀신이 들렸음이라, 무저갱으로 들어가라 하지 마시기를 간구하더니, 마침 그 곳에 많은 돼지 떼가 산에서 먹고 있는지라 귀신들이 그 돼지에게로 들어가게 허락하심을 간구하니 이에 허락하시니, 귀신들이 그 사람에게서 나와 돼지에게로 들어가니 그 떼가 비탈로 내리 달아 호수에 들어가 몰사하거늘 

 

그렇다면 롬10:9-10입니다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받으리라,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 분명 ‘예수를 믿으면 구원을 얻는다’라고 했습니다. 그럼 귀신이 예수를 믿기에 귀신 들린 사람으로부터 말씀에 순종하여 나간 것은 무엇입니까? ~

 

그래서 오늘 말씀이 중요합니다. 보지도 듣지도 못하던 우리들이 예수님을 믿을 수 있게 된 것이 결국 무엇 때문일까요? 구원은 보이는 가시적인 그 기적들로도, 돈과 권력의 힘으로도 되는 것이 아닙니다. 이루어질 하나님의 약속 때문입니다. 어떤 약속입니까? 

 

사44:3입니다. “나는 목마른 자에게 물을 주며 마른 땅에 시내가 흐르게 하며 나의 영을 네 자손에게 나의 복을 네 후손에게 부어 주리니” 구원은 나의 영을 네 자손에게 나의 복을 네 후손에게 약속하신 그대로 부어 주셨기 때문입니다. 후손에게 약속하신 그대로 부어주셨는지 확인합니다.

 

행2:1-4입니다. “오순절 날이 이미 이르매 그들이 다같이 한 곳에 모였더니, 홀연히 하늘로부터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가 있어 그들이 앉은 온 집에 가득하며, 마치 불의 혀처럼 갈라지는 것들이 그들에게 보여 각 사람 위에 하나씩 임하여 있더니그들이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언어들로 말하기를 시작  하니라” 

 

그 영이 임하시므로 그 영의 인침을 받은 자녀들에게는 어떤 일이 벌어지게 되었는가 하면, 예수님을 구세주로 믿게 됩니다. 그러나 귀신이 믿는 그 믿음은 성령이 아니라 창조된 모든 천사들이 다 같이 있다가 한 분류들이 교만하게 되면서 하나님을 배신하게 되는데, 그 배신 세력들이 바로 어두움의 세력, 거짓된 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사실도 우린 성경에서 알 수 있습니다.

 

사14:12-15입니다. 이 말씀은 우리가 보는 개역개정성경이 아니라 King James Version으로 봅니다. 사14:12-15입니다. “오 아침의 아들 루시퍼야, 네가 어찌 하늘에서 떨어졌느냐! 민족들을 약하게 만든 자야, 네가 어찌 끊어져 땅으로 떨어졌느냐!, 왜냐하면 네가 네 마음속으로 말하기를, "내가 하늘로 올라가, 내가 [하나님]의 별들 위로 내 왕좌를 높이겠다. 내가 북쪽의 옆면들에 있는 회중의 산 위에 앉겠다. 내가 구름들이 있는 높은 곳 위로 올라가겠다. 내가 [가장 높으신 분]과 같이 되겠다." 라고 말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너는 끌려가 지옥으로, 곧 그 구덩이의 옆면들로 내려갈 것이다”

 

결국 영도 두 가지로 나뉘는 것입니다. 요일4:1-3, 6입니다. “사랑하는 자들아 영을 다 믿지 말고 오직 영들이 하나님께 속하였나 분별하라 많은 거짓 선지자가 세상에 나왔음이라, 이로써 너희가 하나님의 영을 알지니 곧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체로 오신 것을 시인하는 영마다 하나님께 속한 것이요, 예수를 시인하지 아니하는 영마다 하나님께 속한 것이 아니니 이것이 곧 적그리스도의 영이니라 오리라 한 말을 너희가 들었거니와 지금 벌써 세상에 있느니라, 6-우리는 하나님께 속하였으니 하나님을 아는 자는 우리의 말을 듣고 하나님께 속하지 아니한 자는 우리의 말을 듣지 아니하나니 진리의 영과 미혹의 영을 이로써 아느니라 예수를 시인하는 영, 진리의 영과 시인하지 않는 영, 미혹의 영으로 나뉘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귀신이 예수님을 보고 알았지만, 그러나 성령으로 인한 앎과 두려움이 아니기에 아닌 것입니다. 

 

그러나 우린 아니지 않습니까? 요일4:2에서도 알 수 있고, 그리고 롬8:9, 14-16입니다. 9-만일 너희 속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면 너희가 육신에 있지 아니하고 영에 있나니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 14-16-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사람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 너희는 다시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우리가 아빠 아버지라고 부르짖느니라, 성령이 친히 우리의 영과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언하시나니 오직 성령으로 예수님을 믿을 수 있게 된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의 믿음이 성령의 도움으로 인한 놀라운 믿음이기에, 은혜를 예언하던 구약의 선지자들이 연구하고 부지런히 살폈고, 그리고 천사들까지도 이 점을 알기를 열망했기에 내내 살펴보았다고 벧전1:8-13에서 말씀하고 계십니다. 예수를 너희가 보지 못하였으나 사랑하는 도다 이제도 보지 못하나 믿고 말할 수 없는 영광스러운 즐거움으로 기뻐하니, 믿음의 결국 곧 영혼의 구원을 받음이라, 이 구원에 대하여는 너희에게 임할 은혜를 예언하던 선지자들이 연구하고 부지런히 살펴서, 자기 속에 계신 그리스도의 영이 그 받으실 고난과 후에 받으실 영광을 미리 증언하여 누구를 또는 어떠한 때를 지시하시는지 상고하니라, 이 섬긴 바가 자기를 위한 것이 아니요 너희를 위한 것임이 계시로 알게 되었으니 이것은 하늘로부터 보내신 성령을 힘입어 복음을 전하는 자들로 이제 너희에게 알린 것이요 천사들도 살펴보기를 원하는 것이니라그러므로 너희 마음의 허리를 동이고 근신하여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에 너희에게 가져 다 주실 은혜를 온전히 바랄지어다 이 말씀만으로도 우린 만세 전부터 감추어져 있던 그 비밀인 성령을 받았다는 것, 성령의 전이 되었다는 그 가치가 얼마나 대단한 사건인지 아셔야 합니다. 주먹만 한 diamond, 한 뿌리에 1억을 하는 그런 산삼정도가 아닙니다.

 

그래서 사44:4-5의 말씀을 보시면, “그들이 풀 가운데에서 솟아나기를 시냇가의 버들 같이 할 것이라, 한 사람은 이르기를 나는 여호와께 속하였다 할 것이며 또 한 사람은 야곱의 이름으로 자기를 부를 것이며 또 다른 사람은 자기가 여호와께 속하였음을 그의 손으로 기록하고 이스라엘의 이름으로 존귀히 여김을 받으리라” 하나님 나라에서 존귀한 자들이 된 것이라고 했습니다. 어떤 차원에서의 존귀함일까요? 가치가 없는 세상차원에서의 존귀함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외면인 힘의 가치는 힘만 있으면 누구든지, 또는 우상숭배자들도 쉽게 포장으로 그 가치와 그 존귀에 대하여 멋지게 흉내를 낼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상을 믿는, 힘의 승리만을 원하는 우상숭배자들에 대하여 어떤 말씀을 하시던가요? 우상과 그 악한 영을 믿는 어리석은 자들에 대하여 사44:9-20에서 말씀하십니다. 우상으로는 영혼 구원을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아무 것도 창조할 수 없고 미래에서 될 어떤 일과 장차 올 어떤 일에 대하여 예언도 전혀 할 수 없다는 것입니. 그래서 결국 우상 숭배하는 자들은 수치를 당하고 말 것이라고 하십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다르다는 것입니다. 사44:6-8, 28을 보세요! 이스라엘의 왕인 여호와, 이스라엘의 구원자인 만군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나는 처음이요 나는 마지막이라 나 외에 다른 신이 없느니라, 내가 영원한 백성을 세운 이후로 나처럼 외치며 알리며 나에게 설명할 자가 누구냐 있거든 될 일과 장차 올 일을 그들에게 알릴지어다, 너희는 두려워하지 말며 겁내지 말라 내가 예로부터 너희에게 듣게 하지 아니하였느냐 알리지 아니하였느냐 너희는 나의 증인이라 나 외에 신이 있겠느냐 과연 반석은 없나니 다른 신이 있음을 내가 알지 못하노라, 28-고레스에 대하여는 이르기를 내 목자라 그가 나의 모든 기쁨을 성취하리라 하며 예루살렘에 대하여는 이르기를 중건되리라 하며 성전에 대하여는 네 기초가 놓여지리라 하는 자니라” 하나님만이 진정한 신이시기에 될 일과 장차 올 일을 정확하게 예언하실 수 있는 분이기에, 그 하나님께서는 28절에서도 알 수 있듯이 160년 후에 생길 성전건축을 바사국의 왕 고레스라는 이름까지도 언급하신 것을 보면,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알게 하십니다. 그런 기적은 여기만이 아니라 주전900년경인 왕상13:2에서도 300년 후에 세울 요시야 왕(왕하23:16-주전640년)에 대하여 미리 그 이름을 언급하셨고, 단11장에서는 2-3세기 이후의 사건들을 상세하게 예언하고 계십니다. 이런 예언이 그대로 이루어지고 있는 것을 보면서, 우린 인간의 모든 역사를 다스리고 주관하시는 분이 살아계신 하나님이심을 알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영을 부어 주시므로 제한적 영원이 아닌 영원히 존귀한 자가 되게 하시겠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여기서 무엇보다도, 내가 영을 받은 자인지 아닌지를 확인하는 것만큼 중요한 일이 있을까요? ~ 그런데 하나님의 예언대로, 약속대로 영을 받아 내가 존귀한 자가 되었다면, ~ 이보다 복된 일이 또 있을까요? 영광 중의 영광이 아닐 수가 없을 것입니다. 자기가 하나님의 약속대로 영을 부음 받아 하나님 나라에서 거룩한 자녀가 되었다면, 죽음까지도 이긴 자요, 영생을 보장을 받게 된 것입니다.

 

고전3:21-22에서 알 수 있듯이 만물이 다 자기의 것이 된 것입니다. 지금이나 장래의 것도 다 자기의 것이 된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는 더 이상 바랄 것이 전혀 없는 자가 된 것인데, 그 복과 영광을 받은 자가 만약에 세상의 부와 건강과 힘을 바라고 있다면, 의심의 여지가 있는 것이 아닐까요? ~ 하여튼 자기가 은혜로 만물의 주인이 되었다면, 어떻게 힘, 가난, 질병 때문에 두려워할 수 있을까요? 자기가 영을 받았는지 아닌지 그 확신이 되지 않아서 그렇지, 확인만 된다면, 그 확인으로 어떤 삶을 시작할 수 있을까요? 주님만을 따르게 될 것입니다. 순종을 당연히 할 것입니다. 결코 다투거나 미워하거나 원망하거나 시기질투가 아니라, 자기가 죽어서라도 이웃을 살릴 것입니다. 이웃이 주는 고통을 오히려 감사하면서 힘의 삶에서 완전히 벗어날 것입니다. 그런데 성령 부음을 받은, 이런 큰 선물에 대하여, 이런 영광스러운 선택에 대하여, 흠모와 사모와 자랑이 되어야 하고 성령 충만하지 못해서 안달할 수 있어야 하는데, 놀랍게도 박수를 치는 구경꾼으로 대신하려고 한다는 것이 아닙니까? 어떻게 인침을 받았다고 할 수 있나요? ~ 존귀한 자라고 할 수 있을까요? 

 

자기가 영을 받아서 존귀한 자가 되었다면 당장 좁고 좁은 십자가의 길을 가게 되더라도, 머뭇거리면 되겠습니까? 그럴 수 없다는 것입니다. 무엇이든지 방해할 수 없는데, 최고 권력자 바로 왕일지라도, 심지어 홍해도 성도가 가는 길을 막을 수 없고, 크고 큰 힘의 성 여리고도 막을 수 없었는데, 바로 왕, 홍해, 여리고성하고 비교하면 비교도 안 되는 아주 작고 작은 세상의 힘과 부와 능력 앞에서 어떻게 쩔쩔맬 수 있습니까? 지금의 우리들의 지금의 이 환란 정도가 힘들어 머뭇거리면, 앞으로 더 큰 환란이 닥칠텐데~

 

그런데 머뭇거리고 있고 구경꾼으로 살고 있다면, 인치심에 대한 그 가치, 그 능력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교회 안에 그런 힘의 교인들이 너무 많기에 그래서 준비한 오늘 말씀입니다. 그래서 다시 묻습니다. 존귀한 자가 되었는데 그래서 만물이 다 자기의 것인데 왜 누리지 못할 수 있을까요?~ 아직도 힘이 좋아 보이는 것입니다. 그래서 자기 뜻대로 하는데, 그러나 좋아 보이는 이 세상의 것들은 안개처럼, 구름처럼, 아침 이슬처럼 잠시 있다가 없어집니다. 마치 무엇과 같습니까? 세상의 영광과 부와 힘은 손으로 기름을 거머쥐려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거머쥐어 봐야 죽을 때 아무 것도 남지 않습니다.  손으로 물을 잡아봐야 역시 아무 것도 남지 않듯이 그것이 세상의 복과 승리입니다.

 

그런데 왜 존귀한 자가 하나님의 말씀을 믿지 않으려고 합니까? 영을 부어주셨기에 그래서 예수님을 믿게 되었다면, 순종하여 하나님으로부터 인정을 받는 자가 되어야 할텐데~,  영을 받은 그 복을 삶으로 증거 하여 하나님의 자랑이요 기쁨이 되어, 찬양하면서 맞는 아름다운 임종이 되어야 하는데, 왜 그 엄청난 복을 포기하려고 합니까? 영원한 승리자가 된 거지 나사로를 부러워하고 있는 이름 없는 부자가 되고 싶어서 그러는 것일까요? 오늘도 말도 안 되는 이런 질문을 제가 해야 합니까? ~ 우리들이 존귀한 자로써 세상의 보이는 것에 속아 방황하는 이웃들에게 참 이김이 무엇인지를 전해서, 함께 이 복된 승리를 만들어 가야 되는데, 만약에 자기 가족이, 친한 친구가 가장 복된, 놓칠 수 없는 아니 놓쳐서는 안 되는 이 거룩함의 삶과 순종의 길을 포기하고 세상을 따라가고 있다면, 존귀한 우리들은 어떻게 해야 할까요? 그 가족과 친구를 포기해야 할까요? ~ 아니면 이기게 해야 할까요? 이기게 해야 합니다. 이기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그들이 이 세상의 힘을 이겨 순종하게 하려면 먼저 알아야 되는 말씀이 있습니다. 

 

1. 눅10:16입니다. “너희 말을 듣는 자는 곧 내 말을 듣는 것이요 너희를 저버리는 자는 곧 나를 저버리는 것이요 나를 저버리는 자는 나 보내신 이를 저버리는 것이라 하시니라 영을 받았다면 영을 받은 자기는 그 존귀함에 대하여 확실하게 알아야 합니다. 은혜를 입은 자의 말은 주님의 말과 동등하기 때문입니다. 영을 받은 자는 주님을 대신하는 자가 된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의 대사가 된 것입니다. 나라의 대사도 그 책임과 역할이 얼마나 큰지 모르는 사람이 있나요? 하물며 하나님 나라의 대사가 되는 것은 영광이고 자랑이 아닐 수 없을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의 대사로써 영광스러운 그 역할을 당당하게 자신 있게 감당할 때, 롬10:14-17입니다. 그런즉 그들이 믿지 아니하는 이를 어찌 부르리요 듣지도 못한 이를 어찌 믿으리요 전파하는 자가 없이 어찌 들으리요,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으면 어찌 전파하리요 기록된 바 아름답도다 좋은 소식을 전하는 자들의 발이여 함과 같으니라, 그러나 그들이 다 복음을 순종하지 아니하였도다 이사야가 이르되 주여 우리가 전한 것을 누가 믿었나이까 하였으니,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 

 

자기 가족과 친구가 영을 받은 존귀한 성도들을 통하여 말씀에 항복하는 기적이 일어날 수 있기 때문에 드리는 말씀입니다. 순종의 능력과 영원한 승리로 항상 기뻐하고 감사하는 삶을 영을 받아 존귀하게 된 우리들을 통하여, 그들도 은혜를 입고 동참할 수 있을 때, 그들도 우리처럼 존귀한 자가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존귀한 자가 된 성도들은 말 한마디까지도 자기 행동, 행동까지도 긴장하게 되는데 어떤가요? ~ 존귀한 자들이 함부로 하고 싶은 대로 한다면,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는 행위요 그건 자포자기입니다. 

 

영을 받은 자의 말은 하나님을 대신하고 있다는 것을 늘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래서 은혜를 입은 자신에 대한 그 가치와 그 무게를 알아야 하기 위하여, 철저한 훈련은 필수입니다. 존귀한 자의 자리를 지키기 위한 피나는 경건의 훈련은 아무리 힘들어도 쉬지 않고 준비를 해야 합니다. 그럴 때, 바로 왕을 제압할 수 있고, 홍해가 갈라지고, 여리고 성이 무너지고 말 것입니다. 그 간증을 할 수 있는 겸손한 믿음의 주인공이 되어야 합니다.

 

2. 눅10:17-20입니다. 칠십 인이 기뻐 돌아와 이르되 주여 주의 이름이면 귀신들도 우리에게 항복하더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사탄이 하늘로부터 번개 같이 떨어지는 것을 내가 보았노라, 내가 너희에게 뱀과 전갈을 밟으며 원수의 모든 능력을 제어할 권능을 주었으니 너희를 해칠 자가 결코 없으리라, 그러나 귀신들이 너희에게 항복하는 것으로 기뻐하지 말고 너희 이름이 하늘에 기록된 것으로 기뻐하라 하시니라” 자기이름이 예수로 말미암아 은혜를 입어 하나님의 성전이 되어 하나님의 나라에 기록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그 가치를 알아야 합니다. 그 복을 알아야 합니다. 그 가치와 복이 주님의 기도에서도 알게 합니다. 

 

눅10:21-24입니다. 그 때에 예수께서 성령으로 기뻐하시며 이르시되 천지의 주재이신 아버지여 이것을 지혜롭고 슬기 있는 자들에게는 숨기시고 어린 아이들에게는 나타내심을 감사하나이다 옳소이다 이렇게 된 것이 아버지의 뜻이니이다, 내 아버지께서 모든 것을 내게 주셨으니 아버지 외에는 아들이 누구인지 아는 자가 없고 아들과 또 아들의 소원대로 계시를 받는 자 외에는 아버지가 누구인지 아는 자가 없나이다 하시고, 제자들을 돌아보시며 조용히 이르시되 너희가 보는 것을 보는 눈은 복이 있도다,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많은 선지자와 임금이 너희가 보는 바를 보고자 하였으되 보지 못하였으며 너희가 듣는 바를 듣고자 하였으되 듣지 못하였느니라 인간들이 원하는 가볍고 제한된 그 차원에서의 복이 아니라 창조주 하나님 구원의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영원한 복, 무제한의 복입니다. 어디 감히 비교할 수 있을까요? 세상의 복은 전혀 근처도 올 수 없는 거룩한 복입니다. 이런 복을 믿고 사는 존귀한 자들은 대단합니다. 엄청난 경험을 하게 됩니다.

 

시27편을 봅니다. “여호와는 나와 빛이요 나의 구원이시니 내가 누구를 두려워하리요 여호와는 내 생명의 능력이시니 내가 누구를 무서워하리요, 악인들이 내 살을 먹으려고 내게로 왔으나 나의 대적들, 나의 원수들인 그들은 실족하여 넘어졌도다, 군대가 나를 대적하여 진 칠지라도 내 마음이 두렵지 아니하며 전쟁이 일어나 나를 치려할지라도 나는 여전히 태연하리로다, 내가 여호와께 바라는 한 가지 일 그것을 구하리니 곧 내가 내 평생에 여호와의 집에 살면서 여호와의 아름다움을 바라보며 그의 성전에서 사모하는 그것이라, 여호와께서 환난 날에 나를 그의 초막 속에 비밀히 지키시고 그의 장막 은밀한 곳에 나를 숨기시며 높은 바위 위에 두시리로다, 이제 내 머리가 나를 둘러싼 내 원수 위에 들리리니 내가 그의 장막에서 즐거운 제사를 드리겠고 노래하며 여호와를 찬송하리로다, 여호와여 내가 소리 내어 부르짖을 때에 들으시고 또한 나를 긍휼히 여기사 응답하소서, 너희는 내 얼굴을 찾으라 하실 때에 내가 마음으로 주께 말하되 여호와여 내가 주의 얼굴을 찾으리이다 하였나이다, 주의 얼굴을 내게서 숨기지 마시고 주의 종을 노하여 버리지 마소서 주는 나의 도움이 되셨나이다 나의 구원의 하나님이시여 나를 버리지 마시고 떠나지 마소서, 내 부모는 나를 버렸으나 여호와는 나를 영접하시리이다, 여호와여 주의 도를 내게 가르치시고 내 원수를 생각하셔서 평탄한 길로 나를 인도하소서내 생명을 내 대적에게 맡기지 마소서 위증자와 악을 토하는 자가 일어나 나를 치려 함이니이다, 내가 산 자들의 땅에서 여호와의 선하심을 보게 될 줄 확실히 믿었도다, 너는 여호와를 기다릴지어다 강하고 담대하며 여호와를 기다릴지어다 

 

세상의 복으로 이런 고백이 어찌 가능하겠습니까? 영의 부음을 입은 자녀들, 거룩한 목표를 가지고 살아가는 자녀들만이 할 수 있는 고백입니다. 지금 우린 그 놀라운 복, 이 세상에서는 없는 복, 약속하셨던 성령의 존재가 되었다면, 하나님께서 거하시는 거룩한 성전이 되었다면, 자기의 자리가 어떤 책임과 특권이 있는지 잊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성전이 되었다면 시27:3-4, 13-14처럼 담대하고 확신 속에서 살아가야 합니다. 왜 성도가 보이는 힘 때문에 쩔쩔매야 합니까? 왜 치사하게 구경꾼으로 부끄럽게 살아가려고 합니까? ~ 만약에 이 큰 복을 주신 하나님 예수 그리스도를 의지하지 않고 믿지 않게 되면, 눅11:29-32입니다. “무리가 모였을 때에 예수께서 말씀하시되 이 세대는 악한 세대라 표적을 구하되 요나의 표적밖에는 보일 표적이 없나니, 요나가 니느웨 사람들에게 표적이 됨과 같이 인자도 이 세대에 그러하리라, 심판 때에 남방 여왕이 일어나 이 세대 사람을 정죄하리니 이는 그가 솔로몬의 지혜로운 말을 들으려고 땅 끝에서 왔음이거니와 솔로몬보다 더 큰 이가 여기 있으며, 심판 때에 니느웨 사람들이 일어나 이 세대 사람을 정죄하리니 이는 그들이 요나의 전도를 듣고 회개하였음이거니와 요나보다 더 큰 이가 여기 있느니라 예전의 옛 사람들인, 요나 말을 듣고 회개한 니느웨 사람들과 지혜로운 솔로몬을 보려고 왔던 남방 여왕으로부터 너희들은 요나보다 크고 솔로몬의 지혜보다 큰 예수를 믿지 않으니 이보다 부끄러운 경우는 없다고 하면서 조롱과 조소를 하면서 책망할 것입니다. 심히 어리석다고 할 것입니다. 아니 영원토록 그들로부터 조롱과 조소를 당하고야 말 것입니다. 교회에 다니면서 예수의 말씀을 믿지 아니하고 힘으로 산다면 이것이야 말로 모욕이요 수치가 되고야 말 것입니다. 만약에 지금 이 말씀을 듣고서도 구경꾼처럼 또는 힘으로 살아가고 있는 자신에 대하여 부끄러움을 느끼지 못하고 있다면 그들은 죽어서 모든 모욕과 조롱을 당하고야 말 것입니다. 그럴 것이라고 어떻게 그걸 알 수 있냐고 물을 수 있겠지만, 우린 알 수 있는데 눅11:37-52의 말씀에서 알 수 있기 때문입니다. 

 

먼저 37-41절의 말씀입니다. “예수께서 말씀하실 때에 한 바리새인이 자기와 함께 점심 잡수시기를 청하므로 들어가 앉으셨더니, 잡수시기 전에 손 씻지 아니하심을 이 바리새인이 보고 이상히 여기는지라, 주께서 이르시되 너희 바리새인은 지금 잔과 대접의 겉은 깨끗이 하나 너희 속에는 탐욕과 악독이 가득하도다, 어리석은 자들아 밖을 만드신 이가 속도 만들지 아니하셨느냐, 그러나 그 안에 있는 것으로 구제하라 그리하면 모든 것이 너희에게 깨끗하리라 단지 잡수기 전에 예수께서 손을 씻지 않으시는 것을 바리새인들이 보고 이상히 여기는 것만으로도, 이에 대하여 답변하시는 말씀들을 보면, 예수께서 속은 탐욕과 악독이 가득한 어리석은 자들이라고 하시면서, 이어서 어떤 무서운 책망을 하십니까? 화 있을진저~ 라고 6번에 걸쳐서 계속해서 저주의 말씀을 하십니다. 왜? 화 있을진저~ 라고 6번에 걸쳐서 계속해서 저주를 하십니까? 그들의 마음속에는 탐욕과 악독이 가득한 어리석은 자들이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결국 마찬가지로 자기의 마음속에서 탐욕과 악독이 가득하게 되면, 바리새인처럼 세상의 부와 힘을 따르게 되지 거룩함을 위하여 순종할 수 없다는 그 증거가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제자들을 향하여 하시는 말씀이 눅12:1-3입니다. 그 동안에 무리, 수만 명이 모여 서로 밟힐 만큼 되었더니 예수께서 먼저 제자들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바리새인들의 누룩 곧 외식을 주의하라, 감추인 것이 드러나지 않을 것이 없고 숨긴 것이 알려지지 않을 것이 없나니, 이러므로 너희가 어두운 데서 말한 모든 것이 광명한 데서 들리고 너희가 골방에서 귀에 대고 말한 것이 지붕 위에서 전파되리라 

 

감추인 것이 드러나지 않을 것이 하나도 없다고 하십니다. 그러니 마지막 심판을 면할 수도 피할 수도 감출 수도 없는 것입니다그래서 시편기자도 하시는 32편의 말씀에서 자기의 허물과 죄를 감추는 자만큼 복이 없다고 말씀을 하셨던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러시면서 누구를 두려워하라고 하십니까?

 

눅12:4-5입니다. 내가 내 친구 너희에게 말하노니 몸을 죽이고 그 후에는 능히 더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라, 마땅히 두려워할 자를 내가 너희에게 보이리니 곧 죽인 후에 또한 지옥에 던져 넣는 권세 있는 그를 두려워하라 내가 참으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를 두려워하라

 

심판의 하나님을 두려워하라고 하십니다. 오늘 제가 드리는 이 말씀들이 누구에게는 복이 되고 누구에게는 독이 될 것입니다. 무슨 뜻인가 하면, 듣고 두려워하여 회개하고 순종하게 된다면 복이 되겠지만 누구는 자기에게 상관없다는 식으로 여기므로 여전히 힘으로 또는 구경꾼으로 심판 준비 없이 살아간다면 그에게는 독의 말씀이 되고 맙니다. 그렇습니다. 듣고 회개하여 순종하는 자는 영, 성령의 사람이기에 가능한 것입니다. 그러나 영을 받지 못했다면 이해를 못하고 또는 들을 수가 없기에 버려질 수밖에 없게 되는데, 바로 그때, 성령을 받고 순종하던 그들이 어떤 복을 받은 자신들인지를 더욱 확실하게 알게 될 것입니다.  

 

한 곳만 더 봅니다. 눅13:22-30의 말씀입니다. 예수께서 각 성 각 마을로 다니사 가르치시며 예루살렘으로 여행하시더니, 어떤 사람이 여짜오되 주여 구원을 받는 자가 적으니이까 그들에게 이르시되,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쓰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들어가기를 구하여도 못하는 자가 많으리라, 집 주인이 일어나 문을 한 번 닫은 후에 너희가 밖에 서서 문을 두드리며 주여 열어 주소서 하면 그가 대답하여 이르되 나는 너희가 어디에서 온 자인지 알지 못하노라 하리니, 그 때에 너희가 말하되 우리는 주 앞에서 먹고 마셨으며 주는 또한 우리를 길거리에서 가르치셨나이다 하나, 저가 너희에게 말하여 이르되 나는 너희가 어디에서 왔는지 알지 못하노라 행악하는 모든 자들아 나를 떠나가라 하리라, 너희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모든 선지자는 하나님 나라에 있고 오직 너희는 밖에 쫓겨난 것을 볼 때에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갈리라, 사람들이 동서남북으로부터 와서 하나님의 나라 잔치에 참여하리니, 보라 나중 된 자로서 먼저 될 자도 있고 먼저 된 자로서 나중 될 자도 있느니라 하시더라 누가 좁은 문으로 들어갈 수 있을까요? 

 

많은 사람들이 원한다고 해서 갈 수 있지 않다는 것을 눅13:24에서 말씀하십니다. 그러면 누가 좁은 길로 갈 수 있을까요? 그렇습니다. 성령을 받은 자녀들만이 갈 수 있습니다. 성령을 받은 자들만, 하나님께서 알아 봐 주신다는 것을 눅13:25-28에서 알게 하십니다. 그러니 성령을 받았다는 것이 어떤 특권인지를 알아야 합니다. 성령의 부음을 받지 못하면, 아무리 닫힌 문을 두드리면서 열어달라고 할지라도, 나는 너희들을 어디에서 온 자인지를 알 수 없다고 하십니다. 

 

오히려 행악하는 모든 자들아 나를 떠나가라고 하시면서 성령의 부음을 받지 못한 너희들은 밖에 쫓겨나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갈 것이라고 하십니다. 그러나 성령의 인치심을 받은 자녀들은 하나님의 나라에 거할 것이라고 하시면서 동서남북에서 온 모든 자녀들이 하나님 나라의 잔치에 참여할 것이라는 것입니다. 이것만 보더라도 은혜를 입은 우리들이 이 세상에 사는 동안에 바라고 원하는 것이 무엇이어야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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