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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돌교회
4/6/2025 이사야 46:1-13 본문
말씀: 사46:1-13
제목: 내가 설 곳, 내가 있어야 할 곳-하나님의 절규-하나님의 간절한 마음 즉 믿음의 장부가 되라
성경에서의 핵심과 요구는 간절함과 절규를 동반한 선택하라가 아닐까요? 즉 영원한 참 복이냐, 영원한 저주냐? 빛의 생명이냐 흑암의 사망이냐? ~ 여러분들은 지금 어느 쪽에 서 있습니까? 아니 어느 쪽에 서 있어야 할까요? 하나님 쪽이어야 합니까? 아니면 세상의 힘 쪽이어야 합니까?
그래서 눅16:19-26의 말씀을 봅니다. “한 부자가 있어 자색 옷과 고운 베옷을 입고 날마다 호화롭게 즐기더라, 그런데 나사로라 이름 하는 한 거지가 헌데 투성이로 그의 대문 앞에 버려진 채, 그 부자의 상에서 떨어지는 것으로 배불리려 하매 심지어 개들이 와서 그 헌데를 핥더라, 이에 그 거지가 죽어 천사들에게 받들려 아브라함의 품에 들어가고 부자도 죽어 장사되매, 그가 음부에서 고통 중에 눈을 들어 멀리 아브라함과 그의 품에 있는 나사로를 보고, 불러 이르되 아버지 아브라함이여 나를 긍휼히 여기사 나사로를 보내어 그 손가락 끝에 물을 찍어 내 혀를 서늘하게 하소서 내가 이 불꽃 가운데서 괴로워하나이다, 아브라함이 이르되 얘 너는 살았을 때에 좋은 것을 받았고 나사로는 고난을 받았으니 이것을 기억하라 이제 그는 여기서 위로를 받고 너는 괴로움을 받느니라, 그뿐 아니라 너희와 우리 사이에 큰 구렁텅이가 놓여 있어 여기서 너희에게 건너가고자 하되 갈 수 없고 거기서 우리에게 건너올 수도 없게 하였느니라”
세상 쪽에 선 모든 사람들은 모든 것이 죽으면 영원히 사라지고 마는 부와 권력을 선택하고 있지만, 그러나 최소한 자기 죽음 앞에서만큼은 모든 것을 다 잃고 만다는 것을 확실하게 확인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쪽의 사람들은 죽음도 제압하고 결국 부활하여 영원한 승자가 된다는 것을 믿고 살아왔었기에 죽음 앞에서도 얼마나 당당하던가요? 아니 당당하고 행복할 수 있게 됩니다. 그렇다면 다시 자신에게 물어 보세요! 나는 어느 쪽이어야 하는가? 죽음과 함께 영원히 사라질 부와 권세입니까? 아니면 죽음과 함께 영원한 승자의 자리이어야 합니까? ~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복된 선택과 결정을 할 수 있도록 자녀들에게 은혜와 함께 성경을 주셨습니다. 성경은 그리스도로 인한 성령으로 말미암아 성경이 참인 것임을, 진리라는 것임을 성경으로 증명이 되게 하셨습니다. 성경은 부와 권력을 가장 중요하다고 여기고 있는 세상의 그 실체에 대하여 정확하게 밝혀주시고 계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경을 믿는 자들은 오직 성경에서 답을 얻어 현실에서 영원한 승리를 준비할 수 있는 지혜로운 자들이 된 것입니다. 가장 귀하게 믿고 있던, 현실의 부와 힘과 권력과 지식까지도 다 배설물로 여기면서 한 목표, 거룩함만이 삶의 중심이 되게 합니다. 왜요? 영원한 그 승리는, 당장 멋지게 보이지만 곧 사라지고 마는 현실의 부와 힘과 권력하고 전혀 비교가 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고후4:18입니다. “우리가 주목하는 것은 보이는 것이 아니요 보이지 않는 것이니 보이는 것은 잠깐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함이라”
그렇기 때문에 고후5:1-10입니다. “만일 땅에 있는 우리의 장막집이 무너지면 하나님께서 지으신 집 곧 손으로 지은 것이 아니요 하늘에 있는 영원한 집이 우리에게 있는 줄 아느니라, 참으로 우리가 여기 있어 탄식하며 하늘로부터 오는 우리 처소로 덧입기를 간절히 사모하노라, -왜, 탄식합니까? 현실의 것들은 다 불안정한 것이기에 믿을 수가 없기에 영원한 나라를 기다리게 된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이렇게 입음은 우리가 벗은 자들로 발견되지 않으려 함이라 - 즉 현실의 고난들이 힘들어서 준비없이 단지 천국으로 도망가려는 그런 부끄러운 차원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참으로 이 장막에 있는 우리가 짐 진 것 같이 탄식하는 것은 벗고자 함이 아니요 오히려 덧입고자 함이니 - 즉 성도들은 현실의 고통을 피하는 자들이 아니라 고통을 통하여 거룩함을 준비해야 된다는 뜻이기에 오히려 덧입어야 한다, 쉽지 않다는 것입니다- 죽을 것이 생명에 삼킨바 되게 하려 함이라, 곧 이것을 우리에게 이루게 하시고 보증으로 성령을 우리에게 주신 이는 하나님이시니라, 그러므로 우리가 항상 담대하여 몸으로 있을 때에는 주와 따로 있는 줄을 아노니, 이는 우리가 믿음으로 행하고 보는 것으로 행하지 아니함이로라, 우리가 담대하여 원하는 바는 차라리 몸을 떠나 주와 함께 있는 그것이라 - 즉 죽기 전까지는 믿음으로 행하고 죽음을 준비하겠다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몸으로 있든지 떠나든지 주를 기쁘시게 하는 자가 되기를 힘쓰노라, 이는 우리가 다 반드시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나타나게 되어 각각 선악간에 그 몸으로 행한 것을 따라 받으려 함이라”
보이는 이 현실과 돌아갈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그 가치와 결과의 차이는 전혀 비교가 되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도라면, 당연히 하나님의 뜻을 따라 내일을 준비하는 자들이 되어야 하는데, 이렇게 듣고 보고 있으면서도 성도의 현실은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제가 드리고 싶은 말씀은 하나님의 은혜로 하나님의 쪽을 선택할 수 있게 되었다면, 순종밖에 없어야 하는데, 다수가 구경꾼의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는데 그 이유는 하나님께서 그 은혜를 주시려고 어떤 수고를 그간 하셨는지, 그 은혜로 복된 내일을 만들게 하시려는 간절한 하나님의 그 마음을 모르기 때문이 아닌가? 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러나 우리를 향하신 기대, 우리들을 너무나 사랑하시는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이 구경군으로 살아가는 것을 보시면, 세상에 속아 하나님하고 멀어져 가는 것을 보면, 우리들을 죽도록 사랑하시는 그 하나님께서는 그 한 영혼, 그 한 영혼을 위하여 어떤 기도를 할까요? ~ 하나님을 멀리하는 그 영혼을 보시면서 어떤 안타까움으로 기도를 하실까요? ~ 우리를 위한 그 눈물이 피가 되지 않을까요? ~ 저는 하나님의 그 절규가 한 여름에 쏟아지는 빗속에 별안간 나타나는 천둥번개와 다르지 않다고 표현하고 싶은데~
여러분들은 어떤가요?~ 자기의 어린 자식이 강가에서 넘어져 별안간 물에 쓸려 익사 직전이 되면, 어떻게 반응하던가요? 그처럼 하나님께서도 마찬가지로 그렇다는 것을 느낄 수 있어야 하는데~ 자기 자신이 그런 위험천만한 상태에 있으면서도 전혀 느끼지 못하고 있더라는 것입니다. 마치 살아생전의 부모에 대한 감사와 사랑이 제대로 와 닿지 않아서 동네 아저씨 아줌마 취급했던 것처럼 하나님의 그 은혜와 사랑에 대하여서도 그 정도로 반응을 하고 있다면, 그러나 그건 아니지 않습니까? ~
그러나 우리들의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의 못난 꼴을 보실 때마다, 외면하시지 않으시고 물에 빠진 자식을 살리려고 부모가 목숨을 걸 듯이, 늘 그렇게 반응하고 계시기에 사46장의 말씀에서도, 저는 복된 자리를 놓치고 방황하는 우리들을 지켜주시려고 쩔쩔매시는 그 하나님을 느끼게 하셨습니다. 지금 너희들의 그 자리가 복된 자리인지, 저주의 자리인지를 확인하여 똑바로 선택하라고 하시는 그 음성이 들렸습니다. 여러분들은 지난밤에 본문을 통하여 어떤 느낌을 받으셨나요? ~ 성도라면, 정말 자기가 복된 자가 되었다는 것을 확신하고 있다면, 하나님의 그 은혜와 사랑에 감동하여 날마다 하나님과 기쁨으로 동행하면서 영원한 승리를 매일 만들어가기를, 은혜를 입은 자녀들이 매일 행복해서 헛된 세상의 것들에서 점점 더 벗어나서, 하나님에게 더 가까이 다가가, 그래서 마음 것 자유롭게 살면서 하나님의 나라를 준비하는 그 모습을 그런 현실을 너무나 원하시고 계시는 하나님을 저는 사46장에서 파악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들의 한 영혼, 한 영혼들을 얼마나 사랑하시는지, 보이는 세상에서 속지 말고 그 힘에서 철저히 벗어나 생명과 행복과 영원한 승리를 주시려는 간절한 마음을 기록한 사46장인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그런지 아닌지, 함께 말씀을 통하여 확인해 보겠습니다. 1-2절입니다. “벨은 엎드러졌고 느보는 구부러졌도다 그들의 우상들은 짐승과 가축에게 실렸으니 너희가 떠메고 다니던 그것들이 피곤한 짐승의 무거운 짐이 되었도다, 그들은 구부러졌고 그들은 일제히 엎드러졌으므로 그 짐을 구하여 내지 못하고 자기들도 잡혀 갔느니라” 초강력 힘을 가졌던 바벨론이 믿던 우상 벨과 느보를 보라는 것입니다. 너희들이 그렇게 부러워했고 그리고 그 힘에 두려워했었지만 그러나 우상을 믿던 힘의 나라 바벨론이 우상과 함께 완전하게 영원히 망했다는 것이 아닙니까?
그러시면서 하시는 말씀이 3-7절입니다. “야곱의 집이여 이스라엘 집에 남은 모든 자여 내게 들을지어다 배에서 태어남으로부터 내게 안겼고 태에서 남으로부터 내게 업힌 너희여, 너희가 노년에 이르기까지 내가 그리하겠고 백발이 되기까지 내가 너희를 품을 것이라 내가 지었은즉 업을 것이요 내가 품고 구하여 내리라, 너희가 나를 누구에 비기며 누구와 짝하며 누구와 비교하여 서로 같다 하겠느냐, 사람들이 주머니에서 금을 쏟아 내며 은을 저울에 달아 도금장이에게 주고 그것으로 신을 만들게 하고 그것에게 엎드려 경배하며, 그것을 들어 어깨에 메어다가 그의 처소에 두면 그것이 서 있고 거기에서 능히 움직이지 못하며 그에게 부르짖어도 능히 응답하지 못하며 고난에서 구하여 내지도 못하느니라”
봐라 진정한 능력과 힘이 어디로부터 나오는지 모르겠니? 벨과 느보를 믿던 바벨론은 여호와를 버리고 하나님을 경외하지 아니하고 우상숭배로 인한 교만으로 망한 것이 아니냐? 그들이 믿던 우상이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던 것이 아니냐? 그러나 나 만군의 하나님은 우상들하고는 달리, 우주 만물을 창조도 했고, 온 인류의 모든 역사를 주관하시면서 야곱의 집, 이스라엘 집에 남은 모든 자들을 지키고 있는, 하나님인 내가 너희들도 지금 지키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사46:8을 보세요! “너희 패역한 자들아 이 일을 기억하고 장부가 되라 이 일을 마음에 두라”고 하셨습니다. 약속의 자녀들을 구원하고야 말겠다는 의지의 하나님만을 믿고 더 이상 세상의 힘을 두려워하지 말고 부러워하지도 말고 하나님의 나라의 믿음의 장부가 되라는 것입니다. 세상의 세력과 당당하게 싸워서 누가 진정한 신인지,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너희들이 있는 곳에서 믿음을 가지고 홀로 늘 밝혀내라는 것입니다.
물론 사46장에서 여기서만 나만을 바라보라고 나만을 따라오라고 하시지 않습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내내 그렇게 말씀하고 계십니다. 그 간절한 마음은 신약에서도 동일합니다. 그렇다는 것을 신약전체에서도 깊이 느낄 수 있지만, 몇 곳만 봅니다.
갈5:13-15입니다. “형제들아 너희가 자유를 위하여 부르심을 입었으나 그러나 그 자유로 육체의 기회를 삼지 말고 오직 사랑으로 서로 종노릇 하라, 온 율법은 네 이웃 사랑하기를 네 자신 같이 하라 하신 한 말씀에서 이루어졌나니, 만일 서로 물고 먹으면 피차 멸망할까 조심하라”
22-26절입니다.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 이 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욕과 탐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 만일 우리가 성령으로 살면 또한 성령으로 행할지니, 헛된 영광을 구하여 서로 노엽게 하거나 서로 투기하지 말지니라”
갈6:14입니다. “그러나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으니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세상이 나를 대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고 내가 또한 세상을 대하여 그리하니라”
그리고 살전5:12-24입니다. “형제들아 우리가 너희에게 구하노니 너희 가운데서 수고하고 주 안에서 너희를 다스리며 권하는 자들을 너희가 알고, 그들의 역사로 말미암아 사랑 안에서 가장 귀히 여기며 너희끼리 화목하라, 또 형제들아 너희를 권면하노니 게으른 자들을 권계하며 마음이 약한 자들을 권계하며 마음이 약한 자들을 격려하고 힘이 없는 자들을 붙들어 주며 모든 사람에게 오래 참으라, 삼가 누가 누구에게든지 악으로 악을 갚지 말게 하고 서로 대하든지 모든 사람을 대하든지 항상 선을 따르라,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성령을 소멸하지 말며, 예언을 멸시하지 말며, 범사에 헤아려 좋은 것을 취하고, 악은 어떤 모양이라도 버리라, 평강의 하나님이 친히 너희를 온전히 거룩하게 하시고 너희의 온 영과 혼과 몸이 우리 때에 흠 없게 보전되기를 원하노라, 너희를 부르시는 이는 미쁘시니 그가 또한 이루시리라” 이 말씀만 아니라 다른 성경말씀에서도 크고 큰 하나님의 어떤 절규와 간절함이신지 그 느낌이 오지 않던가요? 우리들이 그 가치와 사랑을 몰라 방황할 때, 하나님께서는 어떤 마음으로 그들의 회복을 위하여 어떤 절규로 간구하고 계시는지 그 느낌이 오지 않습니까? ~
그래서 구약에서도 보면, 너희들을 어디까지 어떻게 보호해 주시겠다고 하시던가요? 백발이 되어도 지켜줄 것이요 너희 엄마의 마음보다 더 큰 마음으로 보호해 주시겠다는 것이 아닙니까?
시편71:17-19입니다. “하나님이여 나를 어려서부터 교훈하셨으므로 내가 지금까지 주의 기이한 일들을 전하였나이다, 하나님이여 내가 늙어 백발이 될 때에도 나를 버리지 마시며 내가 주의 힘을 후대에 전하고 주의 능력을 장래의 모든 사람에게 전하기까지 나를 버리지 마소서, 하나님이여 주의 공의가 또한 지극히 높으시니이다 하나님이여 주께서 큰일을 행하셨사오니 누가 주와 같으리이까”
사46:4-5입니다. “너희가 노년에 이르기까지 내가 그리하겠고 백발이 되기까지 내가 너희를 품을 것이라 내가 지었은즉 업을 것이요 내가 품고 구하여 내리라, 너희가 나를 누구에 비기며 누구와 짝하며 누구와 비교하여 서로 같다 하겠느냐”
사49:13-17입니다. “하늘이여 노래하라 땅이여 기뻐하라 산들이여 즐거이 노래하라 여호와께서 그의 백성을 위로하셨은즉 그의 고난당한 자를 긍휼히 여기실 것임이라, 오직 시온이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나를 버리시며 주께서 나를 잊으셨다 하였거니와, 여인이 어찌 그 젖 먹는 자식을 잊겠으며 자기 태에서 난 아들을 긍휼히 여기지 않겠느냐 그들은 혹시 잊을지라도 나는 너를 잊지 아니할 것이라, 내가 너를 내 손바닥에 새겼고 너의 성벽이 항상 내 앞에 있나니, 네 자녀들은 빨리 걸으며 너를 헐며 너를 황폐하게 하던 자들은 너를 떠나가리라”
그 하나님께서 오늘도 우리들을 위하여 사46장을 통하여 어떤 신신당부를 하시고 계십니까? 세상의 우상인, 힘인 벨과 느보로 인하여 바벨론이 흥한 것이 아니라 그래서 망했다는 것이 아닙니까? 진정한 승리와 가치는 유일한 하나님으로만 나오기에 그래서 하나님만이 너희들을 지킬 수 있다고 말씀을 하십니다.
특히 하나님으로부터 은혜를 입은 성도들의 그 특징을 봅니다. 그 특징으로 어떤 반응을 하시는 하나님이신지, 이 점에 대하여 시34편을 봅니다. 이 시편은 삼상21:10-15이 그 배경입니다. 다윗이 사울 왕에게 쫓기다가 두려운 나머지 블레셋의 가드 왕인 아기스에게 가서 그 위기를 면하려고 했다가 오히려 들통이 나 잡혀 죽을 위기에 놓이자, 미친 짓을 하여 겨우 목숨을 건진 절체절명의 상태에서 다윗이 쓴 시입니다. 그 내용을 보세요! “내가 여호와를 항상 송축함이여 내 입술로 항상 주를 찬양하리이다, 내 영혼이 여호와를 자랑하리니 곤고한 자들이 이를 듣고 기뻐하리로다, 나와 함께 여호와를 광대하시다 하며 함께 그의 이름을 높이세, 내가 여호와께 간구하매 내게 응답하시고 내 모든 두려움에서 나를 건지셨도다, 그들이 주를 앙망하고 광채를 내었으니 그들의 얼굴은 부끄럽지 아니하리로다, 이 곤고한 자가 부르짖으매 여호와께서 들으시고 그의 모든 환난에서 구원하셨도다, 여호와의 천사가 주를 경외하는 자를 둘러 진 치고 그들을 건지시는도다, 너희는 여호와의 선하심을 맛보아 알지어다 그에게 피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너희 성도들아 여호와를 경외하라 그를 경외하는 자에게는 부족함이 없도다, 젊은 사자는 궁핍하여 주릴지라도 여호와를 찾는 자는 모든 좋은 것에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너희 자녀들아 와서 내 말을 들으라 내가 여호와를 경외하는 법을 너희에게 가르치리로다, 생명을 사모하고 연수를 사랑하여 복 받기를 원하는 사람이 누구뇨, 네 혀를 악에서 금하며 네 입술을 거짓말에서 금할지어다, 악을 버리고 선을 행하며 화평을 찾아 따를지어다, 여호와의 눈은 의인을 향하시고 그의 귀는 그들의 부르짖음에 기울이시는도다, 여호와의 얼굴은 악을 행하는 자를 향하사 그들의 자취를 땅에서 끊으려 하시는도다, 의인이 부르짖으매 여호와께서 들으시고 그들의 모든 환난에서 건지셨도다, 여호와는 마음이 상한 자를 가까이 하시고 충심으로 통회하는 자를 구원하시는도다, 의인은 고난이 많으나 여호와께서 그의 모든 고난에서 건지시는도다, 그의 모든 뼈를 보호하심이여 그 중에서 하나도 꺾이지 아니하도다, 악이 악인을 죽일 것이라 의인을 미워하는 자는 죄를 받으리로다, 여호와께서 그의 종들의 영혼을 속량하시나니 그에게 피하는 자는 다 벌을 받지 아니하리로다”
시34편에서 주님을 경외하는 다윗의 그 무게와 깊이와 가치가 느껴지지 않나요? 특히 은혜를 입은 자녀들에 대한 고백을 통하여 드러내시는 하나님의 그 강력하신 절규와 간절하신 마음이 보이지 않았나요? 지금도 주님께서는 우리들을 위하여 기도하시고 계십니다.
롬8:26, 34입니다. “26-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는 마땅히 기도할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 34-누가 정죄하리요 죽으실 뿐 아니라 다시 살아나신 이는 그리스도 예수시니 그는 하나님 우편에 계신 자요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시는 자시니라”
간구 정도가 아닙니다. 롬8:35-39입니다.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박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 기록된 바 우리가 종일 주를 위하여 죽임을 당하게 되며 도살당할 양 같이 여김을 받았나이다 함과 같으니라,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어떤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
환난이나 곤고나 박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도,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어떤 피조물이라도 그 무엇도 우리하고 하나님의 이 관계를 끊을 수 없습니다. 무슨 설명이 더 필요할까요? 그런데 어찌 성도의 그 가치가 드러나지 않을 수가 있단 말입니까? 여호와의 천사가 주를 경외하는 자를 둘러 진치고 완전하게 건져 주시는데, 무엇이 무섭고 두려워할 수 있단 말입니까? ~
여호와의 선하심을 알기에 그래서 하나님과 동행하면서 일어나는 경험을 매일 간증하고 찬송이 유지 되어야 합니다. 어떻게 헛된 것을 자랑할 수 있단 말입니까? 여호와를 경외하면 부족함이 전혀 없다는 것과 여호와를 찾는 자는 모든 좋은 것에 부족함이 없다는 이 사실을 그대로 드러내므로 우리들이 진정한 역사의 주인공임을 또한 믿음의 장부임을 밝힐 수 있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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