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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5/2024 이사야 30:1-33 본문
말씀: 사30:1-33
제목: 패역한 자식들은 화 있을진저
왜 이런 한심스로운 자, 악하고 미련하고 이기적이고 간사하고 간교한 윤 석열과 같은 모습들을 수천 년에 걸쳐서 계속해서 밝히시는 이유가 어디에 있다고 봅니까? 약속의 그날이 되었을 때, 완전한 항복을 시키기 위해서라고 말씀을 드리고 있습니다. 그동안에 얼마나 참아내신 하나님이신지를 알게 하여 오직 하나님만을 바라보게 하시려는 것이라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특히 수천 년 내내 이스라엘을 통하여 보여주시는 그런 참담한 꼴을 그래서 ‘패역한 자식들은 화 있을진저’라고 저주하신 하나님께서는 결국 힘으로는 해결이 안 된다는 것과 죄의 세력이 어떤 세력인지를 그대로 보여주시고 계시는 것입니다.
패역하여 화를 자초하고 있는 자기의 그 실체를 모르면, 은혜를 입는 날에도 진정한 감사와 감동의 시간이 되지 않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렇게 자기의 그 더럽고 미련하고 악하고 말도 안 되는 짓을 한, 패역하여 화를 자초했던 자기를 구약을 통하여 확인하게 될 때, 그런 나를 버리지 아니하시고 은혜를 주시므로 새로운 자가 되었다는 것을 확인이 되었을 때, 진리의 말씀을 보게 되고 듣게 되었을 때, 그 은혜를 입은 성도는 어떤 반응을 가질까요? 많지만, 한 곳만 봅니다.
시150편을 보세요! “할렐루야 그의 성소에서 하나님을 찬양하며 그의 권능의 궁창에서 그를 찬양할지어다, 그의 능하신 행동을 찬양하며 그의 지극히 위대하심을 따라 찬양할지어다, 나팔 소리로 찬양하며 비파와 수금으로 찬양할지어다, 소고 치며 춤추어 찬양하며 현악과 퉁소로 찬양할지어다, 큰 소리 나는 제금으로 찬양하며 높은 소리 나는 제금으로 찬양할지어다, 호흡이 있는 자마다 여호와를 찬양할지어다 할렐루야”
다른 말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두말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오직 나를 구원하신 하나님에게 감사하여 찬송을 드릴 뿐입니다. 그 감사는 찬송만이 아니라 결국 순종으로 대신할 것입니다. 경건함으로 그 감사를 대신할 것입니다. 그 은혜에 그 무엇인들, 아낄 것이 하나라도 있을 수 있을까요? 패역하여 화를 자초하던 나를 구원하여 주신 그분을 앙망하고 사랑하고 사모하면서, 그분과 동행하면서 오실 그날을 준비할 것입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은 사30장의 말씀만으로도 알 수 있습니다. 패역하여 화를 자초하던 이스라엘, 즉 나에게 은혜를 베풀어 주셔서 회복시켜 주셨기 때문입니다. 나를 새롭게 하여 주신 하나님께서는 저주의 나를 축복하는 나로, 더러운 나를 정결한 나로, 새롭게 재창조하여 이 세상에는 없는 영원한 기쁨을 주셨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만난 하나님은 능치 못함이 없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니 하나님을 만난 자녀들은 힘으로 살면 안 되는 것인데, 세상을 따라가면 안 되는데, 왜 여전히 화를 자초하는 패역의 삶인, 사라질 안개와 같은 세상의 헛된 힘과 자랑을 포기하지 못할 수 있나요? ~ 힘의 정체를 모르신다면 모르지만, 그러나 힘의 정체는 어떤가요? 세상의 그 힘과 능력이 무엇을 할 수 있던가요? ~ 의지, 감정 그리고 지식을 가진 인간들의 그 힘이 영원한 저주의 고통을 영원한 승리의 기쁨으로 완전하게 바꿀 수 있을까요? ~ 가능할까요? ~ 앞으로 과학의 힘으로 의지, 감정 그리고 지식을 가진 인간들을 항상 기뻐하는 자로 회복이 될 수 있다고 믿기에 기대하고 있는 것은 아닙니까? ~ 만약에 가능하다면, 그 능력으로 최소한 한 달이 아닌, 일주일이 아닌, 내일의 저주를 막아서 인간의 불행을 해결해 줄 수 있어야 되는데, 어떤가요? 그러나 아직도 보면, 내일의 저주 정도가 아니라 일초의 후에 생길 재난도 막을 수 없어서 세상의 힘과 능력을 힘과 능력이라고 인정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어떤 말씀을 하십니까?
사41:21-24입니다. “나 여호와가 말하노니 너희 우상들은 소송하라 야곱의 왕이 말하노니 너희는 확실한 증거를 보이라, 장차 당할 일을 우리에게 진술하라 또 이전 일이 어떠한 것도 알게 하라 우리가 마음에 두고 그 결말을 알아보리라 혹 앞으로 올 일을 듣게 하며, 뒤에 올 일을 알게 하라 그리하면 너희가 신들인 줄 우리가 알리라 또 복을 내리든지 재난을 내리든지 하라 우리가 함께 보고 놀라리라, 보라 너희는 아무것도 아니며 너희 일은 허망하며 너희를 택한 자는 가증하니라”
사44:7입니다. “내가 영원한 백성을 세운 이후로 나처럼 외치며 알리며 나에게 설명할 자가 누구냐 있거든 될 일과 장차 올 일을 그들에게 알릴지어다”
세상의 힘과 능력으로는 내일을 아니 일초 후 생길 재앙, 재난을 해결하지 못합니다. 그 어떤 힘과 능력으로 또는 우상으로도 불가능하기에 세상의 힘, 재물을 믿지 말고 능치 못함이 없는 하나님만을 믿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감기조차도 해결이 되지 않고 있는 세상의 힘인데, 세상의 힘과 재물로 무슨 승리와 행복을 기대합니까? 물론 잠시의 기쁨과 행복은 가능하겠지만 영원한 기쁨과 승리는 불가능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사48:12-22입니다. “야곱아 내가 부른 이스라엘아 내게 들으라 나는 그니 나는 처음이요 또 나는 마지막이라, 과연 내 손이 땅의 기초를 정하였고 내 오른손이 하늘을 폈나니 내가 그들을 부르면 그것들이 일제히 서느니라, 너희는 다 모여 들으라 나 여호와가 사랑하는 자는 나의 기뻐하는 뜻을 바벨론에 행하리니 그의 팔이 갈대아인에게 임할 것이라 그들 중에 누가 이 일들을 알게 하였느냐, 나 곧 내가 말하였고 또 내가 그를 부르며 그를 인도하였나니 그 길이 형통하리라, 너희는 내게 가까이 나아와 이것을 들으라 내가 처음부터 비밀히 말하지 아니하였나니 그것이 있을 때부터 내가 거기에 있었노라 하셨느니라 이제는 주 여호와께서 나와 그의 영을 보내셨느니라, 너희의 구속자시요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이이신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나는 네게 유익하도록 가르치고 너를 마땅히 행할 길로 인도하는 네 하나님 여호와라, 네가 나의 명령에 주의하였더라면 네 평강이 강과 같았겠고 네 공의가 바다 물결 같았을 것이며, 네 자손이 모래 같았겠고 네 몸의 소생이 모래 알 같아서 그의 이름이 내 앞에서 끊어지지 아니하였겠고 없어지지 아니하였으리라 하셨느니라, 너희는 바벨론에서 나와서 갈대아인을 피하고 즐거운 소리로 이를 알게 하여 들려주며 땅 끝까지 반포하여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그의 종 야곱을 구속하셨다 하라, 여호와께서 그들을 사막으로 통과하게 하시던 때에 그들이 목마르지 아니하게 하시되 그들을 위하여 바위에서 물이 흘러나게 하시며 바위를 쪼개사 물이 솟아나게 하셨느니라,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악인에게는 평강이 없다 하셨느니라”
악인은 평강이 없지만, 그러나 하나님을 믿고 사는 자녀들에게는 평강이 강처럼, 의가 바다처럼 넘친다는 것입니다. 이 말씀을 믿으십니까? 세상의 힘을 믿는 패역한 사람들은 영원한 기쁨, 승리에 대하여서는 이해를 할 수 없는 소설과 영화에서나 말이 되는 이야기라고 여길 것입니다. 그러나 영원한 기쁨과 승리가 fact일지라도, 그들은 모르기에 농담으로 여기고 말 것입니다. 그러나 농담이 아니라 사실임을 증명하고 있습니다. 바로 은혜를 입은 성도들만은 전혀 의심하지 않고 하나님의 모든 말씀을 믿고 있기에 어떤가요? 달라도 다르지 않던가요? 아니 완전 힘의 사람들하고는 다릅니다. 이건 은혜를 입은 자신들만이 아는 사실이기에, 말로 설명이 되지 않기에 힘의 사람들로부터 늘 공격을 받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주신 이 성경을 읽더라도 힘의 사람들은 말씀의 방향이 힘으로만 가기에, 회복과 항복을 전혀 기대할 수 없음을 알아야 합니다. 그런데 이 점에 대하여 오늘 사30장에서도 보면 어떤가요? 보지 못하고 듣지 못하기에 하나님을 외면하고 힘을 의지하는 타락한 남 유다를 보면서, 그 패역한 자식들이라고 하시는 하나님의 그 책망하심이 참 두렵고 무섭습니다. 그런데 이렇게까지 선을 긋고 책망하시는 그 이유를 사30장의 말씀만 보더라도 무슨 뜻인지를 알게 합니다. 타락한 구약의 이스라엘을 향하신 하나님의 진노하심이 이렇게 무시무시한데, 은혜를 입은 자들이 힘으로 해결하려고 한다면, 어떤 조치를 내리실까요? 짐승의 피로 남 유다의 죄를 해결하여 주시던 하나님께서 이 정도로도 노하고 계신다면, 주님의 피로 은혜를 입은 자들이 멋대로 산다면 어떨까요? 이 점에 대하여서는 지난 말씀에서 알 수 있는데, 확인하지 않은 분도 계실 수 있으니깐, 봅니다.
히2:1-3, 10:29, 12:25입니다. “2장-그러므로 우리는 들은 것에 더욱 유념함으로 우리가 흘러 떠내려가지 않도록 함이 마땅하니라, 천사들을 통하여 하신 말씀이 견고하게 되어 모든 범죄함과 순종하지 아니한 자들이 공정한 보응을 받았거든, 우리가 이같이 큰 구원을 등한히 여기면 어찌 그 보응을 피하리요 이 구원은 처음에 주로 말씀하신 바요 들은 자들이 우리에게 확증한 바니, 10:29하물며 하나님 아들을 짓밟고 자기를 거룩하게 한 언약의 피를 부정한 것으로 여기고 은혜의 성령을 욕되게 하는 자가 당연히 받을 형벌은 얼마나 더 무겁겠느냐 너희는 생각하라, 12:25너희는 삼가 말하신 이를 거역하지 말라 땅에서 경고하신 이를 거역한 그들이 피하지 못하였거든 하물며 하늘로부터 경고하신 이를 배반하는 우리일까 보냐” 지금은 단지 경고성의 말씀이지만, 그러나 이 경고는 은혜를 입은 성도들에게는 단지 경고로 여기지 않고, 그날을 준비하는 회개의 말씀, 순종할 것을 다짐하는 말씀으로 여겨, 더욱 경각심을 갖고 주님 맞을 준비를 하게 될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29장이나 30장에서 남 유다의 영적 무감각과 타락에 대하여 지적해 주시는 이 말씀도 은혜를 입은 성도들에게는 가벼운 말씀이 아니라 두려움과 함께 회개케 하는 말씀이 되게 하실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패역한 자들에게 심판하시겠다는 하나님의 뜻은 버리시기 위한 말씀이 아닌 것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에게 돌아오게 하시려는 차원입니다. 여기서 은혜를 입은 성도된 우리들은 자기가 얼마나 복된 자임을 알아야 하는데 어떤가요? ~ 감동, 감격 그 자체입니까? ~ 부모가 자기 자녀들이 범죄 하여 위기에 놓였을 때, 어떤 반응을 보이던가요? 일단은 우선적으로 보호하려고 얼마나 애를 쓰시던가요? ~ 그런 모습이 보이는 사30장에서의 말씀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믿지 않는 믿지 못하는 악의 세력들은 가차 없이 무섭게 심판하시고야 말겠다는 하나님의 뜻을 보면, 정말 악인과 다르지 않은 우리들을 보살피고 회복을 시켜 주시겠다는 하나님의 그 의지만으로도 큰 위로가 되고 힘이 됩니다.
그래서 오늘도 이 귀한 사30장의 말씀을 통하여 다시 한 번 무엇이 참 복인지를 확인 해 보려고 합니다. 먼저 크게 사30장을 보면, 마치 홍해가 갈라지듯이 갈라져 있는 것을 알 수 있는데, 1-17절까지는 애굽의 현실이라면 18-26절은 가나안 땅에서의 삶, 즉 회복될 모습을 보게 합니다. 저주의 현실을 복과 승리의 삶이 되게 하시겠다는 것입니다. 먼저 저주의 현실을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1절에서 알 수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패역한 자식들은 화 있을진저 그들이 계교를 베푸나 나로 말미암지 아니하며 맹약을 맺으나 나의 영으로 말미암지 아니하고 죄에 죄를 더하도다”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패역한 자식들은 화 있을진저’ 아주 무섭게 선언하셨습니다. 왜요? 2절입니다. “그들이 바로의 세력 안에서 스스로 강하려 하며 애굽의 그늘에 피하려 하여 애굽으로 내려갔으되 나의 입에 묻지 아니하였도다” 하나님이 아닌 애굽의 바로의 도움을 받으려고 애굽으로 사신을 보냈던 것입니다. 그것도 한 마디 기도도 없이, 전혀 묻지도 아니하고 마치 하나님하고 전혀 상관없다는 듯이, 온갖 재물을 바리바리 싸서 나귀들 등에 싣고 위험을 무릅쓰고 애굽까지 보낸 것입니다. 그랬는데 이를 아신 하나님께서는 뭐라고 경고하십니까?
3-7절입니다. “그러므로 바로의 세력이 너희의 수치가 되며 애굽의 그늘에 피함이 너희의 수욕이 될 것이라, 그 고관들이 소안에 있고 그 사신들이 하네스에 이르렀으나, 그들이 다 자기를 유익하게 하지 못하는 민족으로 말미암아 수치를 당하리니 그 민족이 돕지도 못하며 유익하게도 못하고 수치가 되게 하며 수욕이 되게 할 뿐임이니라, 네겝 짐승들에 관한 경고라 사신들이 그들의 재물을 어린 나귀 등에 싣고 그들의 보물을 낙타 안장에 얹고 암사자와 수사자와 독사와 및 날아다니는 불뱀이 나오는 위험하고 곤고한 땅을 지나 자기에게 무익한 민족에게로 갔으나, 애굽의 도움이 헛되고 무익하니라 그러므로 내가 애굽을 가만히 앉은 라합이라 일컬었느니라”
바로의 세력이 너희들의 수치가 되고 수욕이 될 것이라고 하시면서 애굽의 도움은 헛되고 무익하다고 하십니다. 왜요? 하나님께서 라합인 애굽을 가만히 앉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그 뜻은 남 유다가 애굽의 도움을 받지 못하게 하시려고 무기력하게 만들어 버렸다는 것입니다. 교회가 타락하니깐, 우리의 주변이 어떻게 되던가요? 교회가 힘으로 향하니깐, 나라의 근간이 요동치게 되는 것입니다. 아니 다 망하고 맙니다. 그것을 어떻게 확인할 수 있고, 알 수 있는가 하면, 그건 하나님의 약속입니다.
신28:15-22만 봅니다. “네가 만일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순종하지 아니하여 내가 오늘 네게 명령하는 그의 모든 명령과 규례를 지켜 행하지 아니하면 이 모든 저주가 네게 임하며 네게 이를 것이니, 네가 성읍에서도 저주를 받으며 들에서도 저주를 받을 것이요, 또 네 광주리와 떡 반죽 그릇이 저주를 받을 것이요, 네 몸의 소생과 네 토지의 소산과 네 소와 양의 새끼가 저주를 받을 것이며, 네가 들어와도 저주를 받고 나가도 저주를 받으리라, 네가 악을 행하여 그를 잊으므로 네 손으로 하는 모든 일에 여호와께서 저주와 혼란과 책망을 내리사 망하며 속히 파멸하게 하실 것이며, 여호와께서 네 몸에 염병이 들게 하사 네가 들어가 차지할 땅에서 마침내 너를 멸하실 것이며, 여호와께서 폐병과 열병과 염증과 학질과 한재와 풍재와 썩는 재앙으로 너를 치시리니 이 재앙들이 너를 따라서 너를 진멸하게 할 것이라”
그래서 렘2:19에서 어떤 말씀을 하십니까? “그런즉 네 하나님 여호와를 버림과 네 속에 나를 경외함이 없는 것이 악이요 고통인 줄 알라” 가난과 불치병과 약함과 당함이 고통이 아니라, 불순종이 고통이요 저주인 것입니다. 특히 이스라엘이 타락하게 되면 강대국들이 들어와서 이스라엘을 무섭게 공격하도록 하십니다. 게다가 나중에는 이스라엘을 심하게 공격한 교만한 나라들까지도 하나님께서 결국 멸망케 하여 역사 속에서 사라지고 마는 것을 우린 성경을 통하여 알 수 있다는 것입니다. 특히 분명한 점은 세상이 너무나 타락하면, 노아 땐 물로 심판하시면서 오직 8명만 구원하여 주셨지만, 이제 올 심판은 벧후3:10-13입니다. “그러나 주의 날이 도둑 같이 오리니 그 날에는 하늘이 큰 소리로 떠나가고 물질이 뜨거운 불에 풀어지고 땅과 그 중에 있는 모든 일이 드러나리로다, 이 모든 것이 이렇게 풀어지리니 너희가 어떠한 사람이 되어야 마땅하냐 거룩한 행실과 경건함으로, 하나님의 날이 임하기를 바라보고 간절히 사모하라 그 날에 하늘이 불에 타서 풀어지고 물질이 뜨거운 불에 녹아지려니와, 우리는 그의 약속대로 의가 있는 곳인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도다”
언제쯤이 될까요? 창15:16입니다. “네 자손은 사대 만에 이 땅으로 돌아오리니 이는 아모리 족속의 죄악이 아직 가득 차지 아니함이니라 하시더니” 온 세상에 죄가 가득 fill up 되었을 때입니다. 그래서 창6:12-13입니다. “하나님이 보신즉 땅이 부패하였으니 이는 땅에서 모든 혈육 있는 자의 행위가 부패함이었더라, 하나님이 노아에게 이르시되 모든 혈육 있는 자의 포악함이 땅에 가득하므로 그 끝 날이 내 앞에 이르렀으니 내가 그들을 땅과 함께 멸하리라” 마찬가지로 주님께서 심판의 주로 오실 때는 이 세상에 죄가 가득할 때 오실 것입니다.
그래서 계시록을 보시면, 계6:9-11입니다. “다섯째 인을 떼실 때에 내가 보니 하나님의 말씀과 그들이 가진 증거로 말미암아 죽임을 당한 영혼들이 제단 아래에 있어, 큰 소리로 불러 이르되 거룩하고 참되신 대주재여 땅에 거하는 자들을 심판하여 우리 피를 갚아 주지 아니하시기를 어느 때까지 하시려 하나이까 하니, 각각 그들에게 흰 두루마기를 주시며 이르시되 아직 잠시 동안 쉬되 그들의 동무 종들과 형제들도 자기처럼 죽임을 당하여 그 수가 차기까지 하라 하시더라” 그 수가 차기까지 기다려야 합니다. 그러다가 그 수가 차면, 즉 죄가 가득 했을 때, 계18:3, 5, 23-24입니다. “3-그 음행의 진노의 포도주로 말미암아 만국이 무너졌으며 또 땅의 왕들이 그와 더불어 음행하였으며 땅의 상인들도 그 사치의 세력으로 치부하였도다 하더라, 5- 그의 죄는 하늘에 사무쳤으며 하나님은 그의 불의한 일을 기억하신지라, 23,24-등불 빛이 결코 다시 네 안에서 비치지 아니하고 신랑과 신부의 음성이 결코 다시 네 안에서 들리지 아니하리로다 너의 상인들은 땅의 왕족들이라 네 복술로 말미암아 만국이 미혹되었도다, 선지자들과 성도들과 및 땅 위에서 죽임을 당한 모든 자의 피가 그 성 중에서 발견되었느니라 하더라” 그래서 주님께서도 말씀하십니다.
마24:32-39, 44입니다. “무화과나무의 비유를 배우라 그 가지가 연하여지고 잎사귀를 내면 여름이 가까운 줄을 아나니, 이와 같이 너희도 이 모든 일을 보거든 인자가 가까이 곧 문 앞에 이른 줄 알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이 세대가 지나가기 전에 이 일이 다 일어나리라, 천지는 없어질지언정 내 말은 없어지지 아니하리라, 그러나 그 날과 그 때는 아무도 모르나니 하늘의 천사들도, 아들도 모르고 오직 아버지만 아시느니라, 노아의 때와 같이 인자의 임함도 그러하리라, 홍수 전에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던 날까지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장가 들고 시집가고 있으면서, 홍수가 나서 그들을 다 멸하기까지 깨닫지 못하였으니 인자의 임함도 이와 같으리라 44-이러므로 너희도 준비하고 있으라 생각하지 않을 때에 인자가 오리라” 지금이 그때입니다. 주님의 심판의 날이 눈앞에까지 왔기에 늘 깨어 있어야 합니다. 한 눈을 팔 사이가 없습니다. 자기의 등불에 기름이 즉 성령의 기름이 가득 차 있어야 합니다. 물론 성령의 기름을 돈을 주고 살 수 있다면, 다행이지만, 성령의 기름이 가득하려면, 즉 성령이 충만하려면, 그리고 그 충만을 계속해서 유지하시려면, 하루아침에 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호흡하는 날 동안은 주님과 동행해야 되는데, 주일까지도 준비 없이, 예수님을 믿는다고 할 수 있다고요? 주일의 소중함을 안다면, 한 눈 팔 시간이 없는 법입니다. 순종하는 성도들은 피눈물 없는 경건의 훈련이 없이는 불가능합니다. 그렇지 않고서는 주님을 맞이할 수 있는 성도는 없습니다. 아주 기본적인 생활 외에는 다른 그 어떤 무엇도 할 시간이 거의 없음을 알아야 합니다. 주 안에서의 할 일이 얼마나 많은 지, 가장 기본적인 일, 상식적인 일만 하려고 해도, 시간이 모자라서 쩔쩔매게 됩니다. 그런데 놀러 다닌다고요? 그런 여유가 있다고요? 성지 수준이면 그럴 수 있겠지만, 성도의 믿음이 대학생 수준만 되어도 실은 더 이상 세상의 즐거움은 완전히 용납할 수 없어야 합니다. 세상 즐거움을 제거하는 성도된 자들의 투쟁은 늘 처절하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래야 우린 화 있을진저 패역한 자식들이란 무서운 책망에서 벗어나 영원한 행복과 기쁨을 소망하면서 내일을 준비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두 번째로 드릴 말씀입니다. 파렴치한 자들의 행위에 대하여 어떤 말씀을 하시는가 하면, 사30:8입니다. “이제 가서 백성 앞에서 서판에 기록하며 책에 써서 후세에 영원히 있게 하라” 다 기록하라는 것입니다. 무엇을 기록하라고 하시던가요? 사30:9-11입니다. “대저 이는 패역한 백성이요 거짓말 하는 자식들이요 여호와의 법을 듣기 싫어하는 자식들이라, 그들이 선견자들에게 이르기를 선견하지 말라 선견자들에게 이르기를 우리에게 바른 것을 보이지 말라 우리에게 부드러운 말을 하라 거짓된 것을 보이라, 너희는 바른 길을 버리며 첩경에서 돌이키라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이로 우리 앞에서 떠나시게 하라 하는도다” 이 한심스러운 모습은 다름이 아니라 믿기 전의 우리들과 조금도 다르지 않다는 것입니다. 요한복음1장에서 10장까지의 말씀하고도 일맥상통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절망 그 자체입니다.
그것은 창2:17에서 하신 말씀입니다.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 하시니라” 선악과를 먹으면 정녕 죽으리라가 무슨 뜻인지를 사30:9-11에서 여지없이 보여주시고 계십니다. 그 결과 그들의 종말은 심판을 받고 다 불 속으로 영원히 갇혀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그 점에 대하여서도 사30:13-14의 말씀에서 알 수 있게 합니다. “이 죄악이 너희에게 마치 무너지려고 터진 담이 불쑥 나와 순식간에 무너짐 같게 되리라 하셨은즉, 그가 이 나라를 무너뜨리시되 토기장이가 그릇을 깨뜨림 같이 아낌이 없이 부수시리니 그 조각 중에서, 아궁이에서 불을 붙이거나 물웅덩이에서 물을 뜰 것도 얻지 못하리라” 마지막 심판 날에 대하여 상징적으로 보여주시고 계십니다. 심지어 이 문제를 해결한 방도인 길을 제시하여 주셔도 어떤 반응을 하더라는 것입니까?
사30:15-16전반부의 말씀입니다. “주 여호와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이가 이같이 말씀하시되 너희가 돌이켜 조용히 있어야 구원을 얻을 것이요 잠잠하고 신뢰하여야 힘을 얻을 것이거늘 너희가 원하지 아니하고, 이르기를 아니라 우리가 말 타고 도망하리라 하였으므로 너희가 도망할 것이요 또 이르기를 우리가 빠른 짐승을 타리라 하였으므로” 이런 반응을 통하여 알 수 있는 것은 그들은 하나님을 전혀 모른다는 뜻입니다. 자신들이 패역한 힘의 존재임을 드러내고 있는 것입니다. 말씀을 무시하는 힘의 그들은 눅16장의 말씀인 영원히 버려진 그 부자만을 원하는 자들이기에 진정한 승자가 된 거지 나사로, 꿈을 이룬 거지 나사로, 현실의 힘을 이긴 거지 나사로에 대하여 전혀 관심을 가질 수가 없는 영적으로 죽어 있는 자라는 것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이 어떻게 된다고 하십니까? 사30:16후-17입니다. “너희를 쫓는 자들이 빠르리니, 한 사람이 꾸짖은즉 천 사람이 도망하겠고 다섯이 꾸짖은즉 너희가 다 도망하고 너희 남은 자는 겨우 산꼭대기의 깃대 같겠고 산마루 위의 기치 같으리라 하셨느라” 힘을 따르던 패역했던 그들이 완전히 버려지기 전에, 힘을 따르던 그 현실이 어떻게 되는지를 일차적으로 말씀을 하시면서 그리고 말씀 그대로 그렇게 되고 마는 것을 성경과 역사에서 보여주시고 계십니다.
그런데 사30:18-26을 보세요! “그러나 여호와께서 기다리시나니 이는 너희에게 은혜를 베풀려 하심이요 일어나시리니 이는 너희를 긍휼히 여기려 하심이라 대저 여호와는 정의의 하나님이심이라 그를 기다리는 자마다 복이 있도다, 시온에 거주하며 예루살렘에 거주하는 백성아 너는 다시 통곡하지 아니할 것이라 그가 네 부르짖는 소리로 말미암아 네게 은혜를 베푸시되 그가 들으실 때에 네게 응답하시리라, 주께서 너희에게 환난의 떡과 고생의 물을 주시나 네 스승은 다시 숨기지 아니하시리니 네 눈이 네 스승을 볼 것이며, 너희가 오른쪽으로 치우치든지 왼쪽으로 치우치든지 네 뒤에서 말소리가 네 귀에 들려 이르기를 이것이 바른 길이니 너희는 이리로 가라 할 것이며, 또 너희가 너희 조각한 우상에 입힌 은과 부어 만든 우상에 올린 금을 더럽게 하여 불결한 물건을 던짐 같이 던지며 이르기를 나가라 하리라, 네가 땅에 뿌린 종자에 주께서 비를 주사 땅이 먹을 것을 내며 곡식이 풍성하고 기름지게 하실 것이며 그 날에 네 가축이 광활한 목장에서 먹을 것이요, 밭가는 소와 어린 나귀도 키와 쇠스랑으로 까부르고 맛있게 한 먹이를 먹을 것이며, 크게 살육하는 날 망대가 무너질 때에 고산마다 준령마다 그 뒤에 개울과 시냇물이 흐를 것이며, 여호와께서 자기 백성의 상처를 싸매시며 그들의 맞은 자리를 고치시는 날에는 달빛은 햇빛 같겠고 햇빛은 일곱 배가 되어 일곱 날의 빛과 같으리라”
wow~ 이 말씀만으로도 은혜를 입은 성도들은 위로가 되고 감동과 감격이 되지 않습니까? 패역했던 힘의 나에게 은혜를 주시면서 행복을 만들라고 하십니다. 패역하여 화를 면할 수 없었던 우리, 나에게 놀라운 승리의 말씀을 하십니다. 그리고 그날 예수님의 십자가를 통하여 일차적으로 이루어 주시면서 완전한 회복을 위하여 여전히 쉬지도 아니하시면서 주무시지도 아니하시면서 한 영혼, 한 영혼들을 인도하시고 계십니다.
그런데 어떻게 은혜를 입은 성도가 저주의 화를 승리의 복으로 인도하신 하나님을 전폭적으로 의지하지 않을 수가 있을까요? 어떻게 순종하지 않을 수가 있을까요? 패역하여 화를 자초하던 무가치했던 그런 자기를 어떻게 철저하게 부인하지 않을 수가 있을까요? 그 은혜를 알게 되면, 자기 목숨까지도 아끼지 않을 것입니다.
시간이 갈수록 점점 감사가 깊어지면서 결코 자기 유익을 구하지 않게 될 것입니다. 그 정도만이 아니라, 불평과 원망도 제압하게 될 것입니다. 왜 은혜가 진정한 힘이 되는지 알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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