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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돌교회
9/24/2023 나훔 3:1-19 (1) 본문
말씀: 나3:1-19
제목: 화 있을진저 피의 성이여
먼저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왜 사랑의 하나님께서는 좋은 일도 아니고 앗시리아인들의 잔인무도함으로 거북함이 가득한 듣기도 싫고 보기도 싫은 끔찍한 이런 사실들을 왜 나훔을 통하여 예언하여 주신 것입니까? 그리고 예언 그대로 50년 후에 다 이루어져 멸망을 당하고 맙니다. 그런데 만약에 이런 사실을 기록하지 않았다면 앗시리아는 멸망을 당하지 않았을까요? 여러분들 생각에 포악무도한 악당들의 실체를 밝혀 주는 것이 도움이 되나요? 아니면 다 감추고 그에 대한 듣기 좋은 이야기만을 기록했을 때, 도움이 되나요? 또는 악의 세력들이 하고 싶은 대로 내버려두면 여러분들에게 도움이 되나요? 물론 자신들이 저지른 죄악, 자신의 악하고 미련한 그 실체를 다 감춘다고 했을 때, 인정하지 않는다고 했을 때, 심판을 면할 수 있게 된다면, 굳이 드러낼 필요가 당연히 없겠지만, 그러나 아니지 않습니까?
계20:11-15입니다. “또 내가 크고 흰 보좌와 그 위에 앉으신 이를 보니 땅과 하늘이 그 앞에서 피하여 간 데 없더라, 또 내가 보니 죽은 자들이 큰 자나 작은 자나 그 보좌 앞에 서 있는데 책들이 펴 있고 또 다른 책이 펴졌으니 곧 생명책이라 죽은 자들이 자기 행위를 따라 책들에 기록된 대로 심판을 받으니, 바다가 그 가운데에서 죽은 자들을 내주고 또 사망과 음부도 그 가운데에서 죽은 자들을 내주매 각 사람이 자기의 행위대로 심판을 받고, 사망과 음부도 불못에 던져지니 이것은 둘째 사망 곧 불못이라, 누구든지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자는 불못에 던져지리라” 백보좌 심판이 있는 그날, 모든 각 개인들이 태어나서 죽는 날까지 저지른 모든 죄악들이 기록된 개인행위록을 가지고 심판하신다고 하십니다. 그렇습니다.
마18:8-10에서 확인합니다. “만일 네 손이나 네 발이 너를 범죄하게 하거든 찍어 내버리라 장애인이나 다리 저는 자로 영생에 들어가는 것이 두 손과 두 발을 가지고 영원한 불에 던져지는 것보다 나으니라, 만일 네 눈이 너를 범죄하게 하거든 빼어 내버리라 한 눈으로 영생에 들어가는 것이 두 눈을 가지고 지옥 불에 던져지는 것보다 나으니라, 삼가 이 작은 자 중의 하나도 업신여기지 말라 너희에게 말하노니 그들의 천사들이 하늘에서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얼굴을 항상 뵈옵느니라”
우리의 모든 행위가 수호천사들을 통하여 그 심판 날의 심판을 위하여 낱낱이 다 기록되고 있다는 것이 아닙니까? 아무도 개미 새끼 한 마리도 그 심판을 피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낱낱이 자신의 모든 죄악들이 다 기록된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일까요?
은혜 밖에는 없기에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은혜를 주신 것이 아닙니까? 그러나 그 은혜가, 은혜가 되려면 자기의 모든 죄악이 다 드러나야지만 될까요? 아니면 다 감추면 될까요? 흰색의 밝음이 어디에서 나타납니까? 어두움 속에서만 아무리 작은 빛이라도 빛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은혜의 빛을 찬양하고 감사해야 되는데, 자기의 더러운 죄악들을 인간의 힘으로 다 덮어버릴 수 있다면, 인간의 죄를 용서하는 그 은혜의 가치가 드러날까요? 우리의 죄를 용서해 주신 은혜의 주님을 어떻게 하면, 찬양할 수 있을까요? ~ 생각해 보세요!
그런데 우리들의 모든 저지른 죄, 앞으로도 저지를 죄까지도 용서하는 그 은혜에 대한 감사와 찬양이, 자신의 모든 죄악을 들어내는 율법을 통해서만 드러나는 법인데, 왜 더러운 죄를 드러내는 그 율법을 단지 지난 옛 언약이라고 하면서 무시하라고 합니까? 과거 없는 현실과 미래가 존재할 수 있을까요? ~ 아니 어떻게 지난, 봄이 없는데 여름과 가을과 겨울이 올 수 있나요? 만약에 그렇다면 그 사람은 영원히 한 살이겠네요? 아닌가요? 마찬가지로 율법 없는 은혜가 가능할까요? ~
단지 은혜만으로 신앙이 다 된다면, 예수가 와서 왜 죽어야 했습니까? ~ 아니 어떻게 율법 없이 은혜만으로 은혜가 진정한 찬양과 그 높임을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할 수 있나요? 율법 때문에 은혜가 빛나는 것입니다. 율법 없는 은혜는 성립, 존재할 수 없습니다. 이치적으로 은혜의 가치는 자신의 죄가 드러날 때, 높임을 받고 찬양을 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아닙니까? 나의 죄를 밝혀 주는 율법이 없이는 은혜는 갈 곳을 잃고 맙니다. 은혜의 자리는 사라집니다.
자신이 저지른 모든 죄악까지도 드러내 주고 지금 저지르고 있는 자신의 죄에 대하여 알게 하는 그 율법이 없이, 어떻게 그 놀라운 예수님의 은혜의 가치를 깨닫고 찬양을 드릴 수 있을까요? 그렇습니다. 율법으로 나의 죄, 모든 죄악이 드러날 때마다 주님의 그 은혜는 점점 더 깊어지고 충만해 지는 것입니다. 밝음은 어두움 안에서만 그 가치가 드러나듯이 말입니다. 그래서 구약 성경은 끊임없이 죄인들의 죄에 대하여 계속해서 말씀하시면서 무슨 약속을 계속해서 해 주시던가요? 타락하여 버림을 받은 자녀들을 위하여 그 은혜를 약속하고 계셨던 것입니다.
그 시작이 창3:15의 여자의 후손이라고 했던 것입니다. 그 여자의 후손이 누구입니까?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하고 있는데, 그 예언을 왜 하시는 것입니까? 에덴에서 쫓겨나는 아담과 하와 그리고 앞으로 태어나서 택함을 받을 자녀들을 위한 구원 때문에 하신 약속입니다. 그런데 그 구원의 약속이 창3:15에서 끝났던 것이 아니라, 구약 내내 그 약속을 이런저런 모양으로 드러내 주시는데, 그 내용을 크게 보면, 창12:3의 아브라함하고 하신 그 약속도 그 구원을 이루기 위한 약속이었습니다.
그리고 창49:10에서의 야곱의 아들 유다에 대한 유언도 그 구원을 이루기 위한 유언이었고, 이사야 9:6-7의 약속도 보면, “이는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 바 되었는데 그의 어깨에는 정사를 메었고 그의 이름은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 할 것임이라, 그 정사와 평강의 더함이 무궁하며 또 다윗의 왕좌와 그의 나라를 굳게 세우고 지금 이후로 영원히 정의와 공의로 그것을 보존하실 것이라 만군의 여호와의 열심이 이를 이루시리라”
그 한 아이가 누구입니까? 그리고 그 하나님의 나라가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이루어질 것이라는 약속의 말씀입니다. 이미 우리가 살펴보았지만 미5:2도 보세요! “베들레헴 에브라다야 너는 유다 족속 중에 작을지라도 이스라엘을 다스릴 자가 네게서 내게로 나올 것이라 그의 근본은 상고에, 영원에 있느니라” 누구의 탄생을 예언하고 계십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예언하신 대로 여자의 후손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약속대로 여자의 몸만을 빌려 남자 없이 태어나시는데,
마1:20을 보시면, “이 일을 생각할 때에 주의 사자가 현몽하여 이르되 다윗의 자손 요셉아 네 아내 마리아 데려오기를 무서워하지 말라 그에게 잉태된 자는 성령으로 된 것이라” 여자의 후손이 되셔야 했기에 성령의 잉태로 태어나셨고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을 통하여 하나님에게 만세 전에 예정되었던 믿음의 자녀들에게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를 세워 주셨던 것입니다. 어떻게 하나님의 나라를 세워주셨는가?
마12:25-28입니다. “예수께서 그들의 생각을 아시고 이르시되 스스로 분쟁하는 나라마다 황폐하여질 것이요 스스로 분쟁하는 동네나 집마다 서지 못하리라, 사탄이 만일 사탄을 쫓아내면 스스로 분쟁하는 것이니 그리하고야 어떻게 그의 나라가 서겠느냐, 또 내가 바알세불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내면 너희의 아들들은 누구를 힘입어 쫓아내느냐 그러므로 그들이 너희의 재판관이 되리라, 그러나 내가 하나님의 성령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내는 것이면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너희에게 임하였느니라”
그동안에 나를 지배하던 악의 세력을 단지 약속 때문에 거저 몰아내 주시고, 성령의 전이 되게 하신 것입니다. 저지른 죄로 망할 우리 모두에게 그 은혜로 인하여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면서 더 이상 힘으로 살지 않아도 된 것입니다. 내가 세상 세력을 원하지 않는 이상은 피의 성을 만드는 세상 세력이 나를 더 이상 지배할 수 없게 된 것입니다. 피의 성을 막고 참 승리를 향한 은혜가 모든 것인 성도들에게 성경은 구속사적인 차원에서 자기 발에 등이요 자기 길에 빛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령 하나님은 성경에 대하여 어떤 이해를 자녀들에게 주고 있나요? 성경은 그 내용이 구원에 대한 일관성과 연속성을 가진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이라는 것을 알게 하십니다. 성경 66권을 보면, 42여명의 저자들이 같은 세대가 아닌 전혀 다른 시대에 살고 있으면서 그래서 서로를 전혀 알지도 알 수도 없는 상황이요 성격도, 다 다를진대, 성령의 도움으로 기록하게 된 성경은 그 중심 내용인 구속사적인 면에서 다 같았더라는 것이 아닙니까? 이런 말씀을 제가 왜 드립니까? 율법을 대표하는 구약과 은혜를 대표하는 신약이 같은 boundary 안에서 하나님의 66권의 말씀인데, 교회를 다니는 적지 않은 많은 사람들이 목사들을 포함하여 율법을 무시하고 은혜만을 주장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구원에 대한 한 권의 책으로써 구약과 신약이 나뉠 수 없는 동전 앞뒷면과 같기에, 손바닥과 손등의 관계라고 할 수 있기에 이렇게 오늘도 이 점에 대하여 말씀을 또 다시 드리고 있는 것입니다. 성경이 말씀하시고 계시지만, 성경의 저자들이 이구동성으로 주장하는 것이 율법 없는 은혜는 없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너희들이 성령의 도움으로 은혜의 소중함을 인정한다면, 은혜의 주님을 사랑하고 전적으로 의지하기를 원하고 있다면, 자신의 죄를 지적하는 율법 없이는 은혜의 삶은 불가능하다는 것이 아닙니까? ~ 그렇기 때문에 설교나 성경을 볼 때, 또는 배울 땐, 율법으로 자신의 더러운 죄악이 그대로 다 노출되도록 하셔야 합니다. 자신의 죄악들이 율법으로 그대로 싹, 다 노출될 때, 비로소, 주님의 그 은혜가 자신의 진정한 위로가 되고 큰 기쁨이 되고 영원한 찬송이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도 나훔서 3장을 보시면, 앗시리아의 그 잔인함과 포악함으로 인한 피의 성이라고 고발하시면서 그들의 죄악이 밝혀지고 있는 것도, 결국은 죄인들에게 왜 은혜가 필요한지를 품고 있는 말씀입니다. 너희들의 죄악으로 영원히 회복이 되지 않을 것이라는 나3:19의 무시무시한 말씀을 보세요!
“네 상처는 고칠 수 없고 네 부상은 중하도다 네 소식을 듣는 자가 다 너를 보고 손뼉을 치나니 이는 그들이 항상 네게 행패를 당하였음이 아니더냐 하시니라” 그 이유는 너의 죄 때문이라고 하시는데, 결국 이 문제를 은혜로 해결해 주시겠다는 것을 알게 하시려는 하나님의 예언의 말씀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오셔서 무엇이라고 하십니까? 마11:1-6입니다. “예수께서 열두 제자에게 명하기를 마치시고 이에 그들의 여러 동네에서 가르치시며 전도하시려고 거기를 떠나가시니라, 요한이 옥에서 그리스도께서 하신 일을 듣고 제자들을 보내어, 예수께 여짜오되 오실 그이가 당신이오니이까 우리가 다른 이를 기다리오리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가 가서 듣고 보는 것을 요한에게 알리되, 맹인이 보며 못 걷는 사람이 걸으며 나병환자가 깨끗함을 받으며 못 듣는 자가 들으며 죽은 자가 살아나며 가난한 자에게 복음이 전파된다 하라, 누구든지 나로 말미암아 실족하지 아니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하시니라”
누가 복이라고요? 은혜가 무엇인지를 제대로 아는 자들이 복이라는 것입니다. 그럼 누가 그 은혜를 알 수 있다고 했나요? 나의 죄를 다 밝혀 주는 율법으로 알 수 있기에, 그래서 은혜와 율법은 동전의 앞뒷면이라고 했던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죄가 선포되지 않고서는 나의 죄가 밝혀지지 않고서는 은혜의 무한한 그 가치, 그 소중함은 무의미하게 되고 맙니다. 더 이상 속지 마시고 죄 밝힘이 없는 듣기 좋은 설교는 다 거짓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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