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돌교회

10/8/2023 하박국 1:1-17 본문

주일 설교 말씀

10/8/2023 하박국 1:1-17

PastorYK 2023. 10. 9. 10:32

말씀: 합1:1-17                                          

제목: 선지자 하박국의 기도

 

 

하박국서도 인간으로부터 받은 말씀이 아닌 하나님의 묵시입니다. 거짓일 수가 없다는 뜻이요 곧 그대로 시행될 것이나, 그 일어날 재앙, 재난, 심판 안에는 중요한 하나님의 뜻이 담겨 있다는 뜻에서의 묵시입니다. 그런데 오늘 말씀도 보면 지금, 우리들의 현실하고 무엇이 다를까요? 하박국 당시도 그랬지만, 지금도 보면, 무법천지입니다. 법의 나라 미국이라는 곳이 어떻게 이렇게 까지도 무너질 수 있는지, 느끼게 하는 요즘입니다. 얼마 전에 미국의 어느 도시에서 오토바이를 탄 수십 명의 사람들이 어린아이들이 탄, 소형차 뒤로 뛰어 올라탔는데, 그 위에서 뛰는 바람에 차의 뒤 창문이 깨져버리는 장면이 나왔고, 그 때, 그 차 안에 있던 엄마 운전자와 뒤 좌석에 앉았던 아이들이 얼마나 놀랐겠습니까? 당연히 엄마 운전자가 내려, 그들에게로 다가갔는데, 별안간 그 중에 한 놈이 총을 들고 위협하더라고요, 그 다음에는 유유하게 오토바이를 타고 수십 명이 사라지고 있는 장면을 you tube를 통하여 실감나게 볼 수 있었습니다. 마약으로, 날로 곳곳에서 늘어나는 homeless로, 총기 사고로, 약탈하는 날강도들로, American dream을 말하던 미국이었는데, 이젠 법의 나라라고도 할 수 없고 무법천지가 따로 없습니다

 

이런 곳에서 살고 있는 지금 우리는 어떤 기도를 드려야 할까요? 하박국 선지자의 그 기도가 골방 곳곳에서 터져 나와야 되는데, 어떤가요? ~ 결국 율법이 무너진 선민 이스라엘은 그 후에 묵시대로 바벨론의 3차 공격을 받고 주전 586년에 멸망을 당하여 바벨론으로 다 끌려가고 맙니다. 그리고 70년 후에 다시 예루살렘으로 돌아오게 되는데, 그렇다면 지금이, 하박국 당시와 전혀 다르지 않습니다. 그럼, 우린 이런 무법천지에서 어떻게 해야 된다고 생각 하십니까? 무엇이 해결책이라고 생각하십니까? 법이 무너졌는데 은혜만으로 이 부패와 타락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그렇지 않기에 하나님께서는 하박국 선지자를 통하여 어떤 경고의 말씀을 하십니까? 걱정하지 말라고 위로하셨나요? 택함을 받은 너희들은 잘 될 수밖에 없으니, 멸망이나 심판에 대하여 전혀 걱정하지 말라고 하셨나요? ~ 그러나 이스라엘과 남 유다는 자기들이 선민이라는 그 뜻을 몰라, 결국 다른 나라들과 구별되는 놀라운 특별 은혜를 입고 받았었지만 망했다는 것이 아닙니까? 결론적으로 말씀을 드린다면 돌아갈 우리들은 이제 곧 닥칠 주님의 심판의 날, 재림의 날을 철저하게 준비해야 합니다

 

즉 의인은 오직 믿음으로 살아야 합니다. 이 점에 대하여 3-4주에 걸쳐서 말씀을 드리려고 합니다. 우리들이 지금까지 살펴 본, 나훔서에서는 타락한 앗수르와 타락한 앗수르를 멸망시키는데 바벨론이 쓰임을 받았다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이제 이번 주일부터 살펴 볼 하박국에서는 앗수르를 멸망시킨 바벨론이 다시 타락하여 멸망을 초래하게 된다는 것에 대한 내용도 알려 드릴 것입니다. 힘의 나라들이 결국 멸망을 당하고 마는 이런 인간의 역사를 보면서, 느끼는 점은 내일을 기대할 수 없다는 것을 알게 합니다

 

예수를 믿지 않는 이 세상은 조금도 선해질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분명한 점은 인간의 역사는 갈수록 악해지는 법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세상에서, 무엇이 살길이요 승리인지를 알고 그 길을 전심으로 따라가는 것만이 능사요 지혜일 것입니다. 하여튼 소선지서의 8 번째에 놓인 하박국서는 그 이름의 뜻이 ‘껴안는 자’, ‘매어달리는 자’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하박국서의 내용을 보셔서 알겠지만, 자기 민족을 품고 있고, 하나님에게 매어달리고 있는 하박국 선지자를 보게 됩니다.  그리고 하박국에게서 특이한 점이 있는데, 레위 지파 출신의 음악가였다는 것을 합3:1의 시기오놋(열정적인 곡조)과 합3:19에서 내 수금에 맞췄다는 것으로 알게 합니다. 음악을 하는 선지자였습니다.

 

먼저 본서의 기록 연대를 보면, 합1:5-11의 갈대아의 남 유다 침입 예언에 대한 내용을 미루어 추정해 볼 때에 앗수르를 정복하고 근동의 패권을 장악한 주전 612년부터 남 유다 1차 침입이 있었던 주전 605년 사이의 말씀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예레미야 선지자와 같은 동시대의 선지자로 활약한 인물입니다.

 

본서의 기본 구성을 보시면 크게 두 부분으로 나뉩니다. (1)1:1-2:20인데,  1절은 서론입니다. 그리고 2절부터 2:20까지는 하박국 선지자의 질문과 하나님의 응답이 있고 그리고 (2)3:1-19에서는 하박국의 찬양으로 되어 있습니다. 

 

신학적 집필 동기와 배경을 봅니다. 당시 앗수르에 대한 강한 반감을 가지고 있던 남 유다의 요시야 왕이, 앗수르를 돕기 위하여 갈그미스로 향하던 애굽 왕 바로느고의 진군을 막다가, 요시야 왕이 므깃도에서 전사하는데, 그 후 남 유다는 그 이유로 애굽으로부터 큰 곤경을 받게 됩니다. 그리고 그 당시 최강국으로 떠오르던, 바벨론은 남쪽 애굽으로 그 세력을 확장하기 위하여, 팔레스틴 지역을 먼저 장악해야 했었기에, 남 유다의 정복은 필연이었습니다. 그러니 남 유다는 바벨론의 공격을 피할 수가 없었고, 마침 남 유다가 하나님만을 믿지 아니하고 우상숭배로, 정치, 사회, 경제, 도덕적으로 나라의 꼴이 말이 아니었던 것입니다. 그러니 당연히 율법도 해이해 지면서 힘없는 사람들의 삶이 어떠했을까요? ~

 

그러다가보니깐, 강대국들이 쳐들어오면, 하나님을 믿고 싸우는 것이 아니라, 통치자들이 조공을 받쳐 나라의 위기를 해결 했다는 것을 대하36:1-4와 왕하23:32-35에서도 알 수 있습니다. 여호아하스가 그의 조상들의 모든 행위대로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였더니, 바로 느고가 그를 하맛 땅 립나에 가두어 예루살렘에서 왕이 되지 못하게 하고 또 그 나라로 은 백 달란트와 금 한 달란트를 벌금으로 내게 하고, 바로 느고가 요시야의 아들 엘리아김을 그의 아버지 요시야를 대신하여 왕으로 삼고 그의 이름을 고쳐 여호야김이라 하고 여호아하스는 애굽으로 잡아갔더니 그가 거기서 죽으니라, 여호야김이 은과 금을 바로에게 주니라 그가 바로 느고의 명령대로 그에게 그 돈을 주기 위하여 나라에 부과하되 백성들 각 사람의 힘대로 액수를 정하고 은금을 징수하였더라 백성들의 재산을 착취, 약탈, 압제를 서슴지 않았던 것입니다.

 

게다가 렘36:20-32에서도 보면, 남 유다의 16대 왕 요시야의 아들 17대 왕인 여호아하스는 3개월만에 폐위가 되면서 애굽에서 끌려가므로 그의 동생인 여호야김이 남 유다의 18대왕이 되어 통치를 하게 됩니다. 그런데 여호야김이 하나님의 말씀을 기록한 두루마리를 불태워버립니다. 나라를 강력하게 하는 하나님의 말씀을 태워버릴 정도가 되었으니, 힘없는 선량한 가난한 백성들의 삶은 힘과 권력을 가진 자들의 횡포로 인하여 고달프기가 실로 끝이 없었던 것입니다. 

 

그때, 선지자 하박국은 자연스럽게 공의로우신 하나님의 심판이 속히 임하기를 부르짖어 간구하게 된 것입니다. 그 내용이 하박국서입니다. 하박국 선지자는 남은 자들의 고통을 위로하고 그런 불의한 상황 속에서도 더욱 믿음으로 살 것을 격려하기 위해 본서를 선포케 하셨던 것입니다. 하박국 선지자는 남은 자들의 고통스런 상황을 대변하는 심정으로 불의한 자들을 속히 심판치 않으시는 그 이유를 항변투로 하나님께 묻자, 이에 대하여 응답을 주시는 방식입니다. 

 

그러면서 세계의 역사를 절대 공의로 다스리시는 하나님의 절대 주권과 불의한 자들을 향한 심판의 확실성을 선포함으로써 남은 자들로 하여금 어떠한 상황 속에서도 좌절하지 말라! 그리고 믿음으로 승리하도록 격려하는 것이 하박국서의 요지입니다. 실로 ‘의인은 그의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라는 합2:4의 이 위대한 선언은 당대뿐만 아니라 억압받고 고통 받고 있는 현대 성도들에게도 너무나 중요한 진리의 선언이 되지 않을 수가 없는 선지서입니다. 

 

하박국서의 핵심 단어는 이신득의, 핵심 절은 2:4입니다. “보라 그의 마음은 교만하여 그 속에서 정직하지 못하나 의인은 그의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참 놀라운 이 말씀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다음 시간에 드리기로 하고 하박국서의 핵심 장은 3장입니다. 

 

이제 한절, 한절 그 내용을 살펴봅니다. 1절입니다. “선지자 하박국이 묵시로 받은 경고라” 이 말씀 역시 묵시로 시작됩니다. 묵시라고 언급하심으로써 이하 서술되는 예언된 경고의 내용들은 자신의 말이 아니라 신적 기원을 가진 틀림없이 루어질 오점이 전혀 없는 하나님의 말씀임을 강조하고 있다고 이미 말씀을 드렸습니다.

 

때문에 하박국서의 모든 말씀들도 다 믿어야 합니다. 의심했다가는 하나님의 심판을 면할 수 없게 되는데, 그런데 결국 이 예언의 말씀인 악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과 징계에 대하여 다수가 믿었을까요? ~ 그렇지 않았기에, 특별한 단어인 묵시로 받은 경고라는 말씀을 사용하셨던 것입니다. 그리고 이런 무게 있는 1절의 말씀을 통하여 알 수 있는 것은 그 당시 종교적 도덕적으로 남 유다가 얼마나 심하게 타락했었는지도 알게 합니다. 그 타락성은 2-4절에서도 잘 나타납니다.

 

2-4절을 보세요! “여호와여 내가 부르짖어도 주께서 듣지 아니하시니 어느 때까지리이까 내가 강포로 말미암아 외쳐도 주께서 구원하지 아니하시나이다, 어찌하여 내게 죄악을 보게 하시며 패역을 눈으로 보게 하시나이까 겁탈과 강포가 내 앞에 있고 변론과 분쟁이 일어났나이다, 이러므로 율법이 해이하고 정의가 전혀 시행되지 못하오니 이는 악인이 의인을 에워쌌으므로 정의가 굽게 행하여짐이니이다” 

 

강포와 패역함과 겁탈과 그리고 변론과 분쟁으로 악인들이 의인을 제압하고 있었고 게다가 정의가 굽게 행하여졌던 것입니다. 무법천지가 된 것입니다. 그리고 2절부터는 하박국 선지자가 하나님께 이의를 제기하면서 해결을 위하여 하나님의 징계, 심판을 간곡하게 구하는 질문의 내용이기도 합니다. ‘공의 하나님께서 어찌하여 죄악이 관영한 남 유다를 징계치 아니하시는가’ 라는 내용입니다. 여기서 미련하고 이기적인 우리에게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2절의 내용입니다. 다시 봅니다. 내가 부르짖어도 주께서 듣지 아니하시니 어느 때까지리이까 내가 강포로 말미암아 외쳐도 주께서 구원하지 아니하시나이다” 얼마나 남 유다가 타락했으면 같은 민족이요 한 가족이면서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심판을 구하되 그것도 부족하여 부르짖기까지 했는가? 과연 이런 기도를 드릴 수가 있을까? 왜요? 타락한 북이스라엘이 앗시리아의 공격으로 망했는데, 어떻게 망했는지 두 눈으로 모두가 다 보지 않았나요? 그 부패와 타락으로 망한 북이스라엘은 민족자체가 이방 나라와 뒤섞이면서 민족 자체가 사라지고 말 정도였고, 그리고 교만으로 망한 앗시리아도 나훔3:10에서 보았지만, 자신의 아이들이 침략한 바벨론 군사에 의하여 모퉁이에 메어침을 당하여 부서져 버렸던 것을 모를 수가 없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하박국 선지자는 하나님에게 부르짖고 있었습니다. 자기의 나라, 자기의 민족, 아니 자기의 혈육이요 가족을 향하여 심판을 해서라도 이 무너진 남 유다를 바로 잡아달라고 부르짖었던 것입니다. 그들이 하박국 선지자의 가족이요 혈육일지라도 그들의 죄악을 더 이상 묵고할 수 없기에, 하나님에게 이 점에 대한 징계와 심판의 기도를 드리는 하박국 선지자의 부르짖는 것을 보면서 두 가지로 말씀을 드립니다. 

 

첫째입니다. 2-4절에서 알 수 있듯이, 하박국 선지자가 우상숭배로 인한 강포와 패역과 겁탈로 나라가 무법천지가 되어, 민족의 타락을 보면서 하나님에게 부르짖게 된 것입니다. 율법을 세워달라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의 심판을, 징계를 기다리겠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어떤가요? 응답을 하셨는데 그 응답이 5-10절의 내용입니다. 다시 함께 봅니다.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너희는 여러 나라를 보고 또 보고 놀라고 또 놀랄지어다 너희의 생전에 내가 한 가지 일을 행할 것이라 누가 너희에게 말할지라도 너희가 믿지 아니하리라, 보라 내가 사납고 성급한 백성 곧 땅이 넓은 곳으로 다니며 자기의 소유가 아닌 거처들을 점령하는 갈대아 사람을 일으켰나니, 그들은 두렵고 무서우며 당당함과 위엄이 자기들에게서 나오며, 그들의 군마는 표범보다 빠르고 저녁 이리보다 사나우며 그들의 마병은 먼 곳에서부터 빨리 달려오는 마병이라 마치 먹이를 움키려 하는 독수리의 날음과 같으니라, 그들은 다 강포를 행하러 오는데 앞을 향하여 나아가며 사람을 사로잡아 모으기를 모래 같이 많이 할 것이요, 왕들을 멸시하며 방백을 조소하며 모든 견고한 성들을 비웃고 흉벽을 쌓아 그것을 점령할 것이라” 하박국 선지자의 간구에 대한 하나님의 응답이 무시무시합니다. 결국 바벨론도 합1:11을 통하여 알 수 있지만, “그들은 자기들의 힘으로 자기들의 신으로 삼는 자들이라 이에 바람 같이 급히 몰아 지나치게 행하여 범죄하리라 그래서 망하고 맙니다. 

 

율법의 시대였기에 율법으로 해결하시는 무서운 하나님이 합당하다고 생각하십니까? 그럴까요? ~ 그러면 지금은 은혜의 시기인데도, 율법이 다 무너져서 무법천지가 되어가고 있는데, 은혜시대니깐, 좋은 것이 좋은 것이라고 하면서 잘 먹고 잘 입고 잘 벌면, 무법천지도 해결이 될 수 있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

 

사53:5입니다.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 이런 말씀을 가지고 단지 예수 그리스도께서 성도들의 평화, 형통을 위하여 채찍에 맞으면서 피 흘려 돌아가신 것이라고 설교까지도 하고 있는데, 그것이 합당하다고 여깁니까? ~ 은혜의 목표는 거룩함에 있습니다. 착각하면 안 됩니다. 좀 더 생각해 봅니다. 지금이 분명 은혜의 시기입니다. 그런데, 율법을 무시하므로 곳곳이 무법천지가 되고 있습니다. 전혀 안전할 수 없습니다. 전혀 안전할 수 없는 이 사회문제를 은혜만으로 해결이 될 것이라고 믿습니까? 불가능합니다. 왜요? 율법 없이 어떻게 안전할 수 있습니까?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박국 선지자의 부르짖는 그 간구에 하나님의 응답은 율법에 맞는 심판을 내리겠다고 응답을 해 주셨습니다. 

 

그런데 잘 보세요! 구약은 율법이 중심인데 합2:4에서 무슨 말씀을 하셨습니까? 당시 주변이 율법이 무너지면서 불법이 창궐한 상태가 되었지만,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라’고 하십니다. 무슨 뜻입니까? 하박국 당시가 율법시대이지만, 율법으로 해결이 되는 것이 아니라 믿음으로 세상의 공격을 해결하라고 하신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 뜻은 믿음은 율법보다 더 크다는 뜻입니다. 더 크다는 그 뜻은 율법이 없어도 된다는 것이 아니라 믿음은 율법의 요구를 이루어지게 하는 능력이기에, 롬8:1-4에서 하시는 말씀을 보세요!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율법이 육신으로 말미암아 연약하여 할 수 없는 그것을 하나님은 하시나니 곧 죄로 말미암아 자기 아들을 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보내어 육신에 죄를 정하사, 육신을 따르지 않고 그 영을 따라 행하는 우리에게 율법의 요구가 이루어지게 하려 하심이니라” 은혜를 입은 성도가 되면 정죄함이 결코 없지만, 그러나 율법의 요구가 이루어지게 하시려고 주신 것이 은혜임을 알아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은혜가 넘쳤던 초대 교회에서 어떤 사건이 생겼던가요?  행5:1-11입니다. “아나니아라 하는 사람이 그의 아내 삽비라와 더불어 소유를 팔아, 그 값에서 얼마를 감추매 그 아내도 알더라 얼마만 가져다가 사도들의 발 앞에 두니, 베드로가 이르되 아나니아야 어찌하여 사탄이 네 마음에 가득하여 네가 성령을 속이고 땅 값 얼마를 감추었느냐, 땅이 그대로 있을 때에는 네 땅이 아니며 판 후에도 네 마음대로 할 수가 없더냐 어찌하여 이 일을 네 마음에 두었느냐 사람에게 거짓말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께로다, 아니니아가 이 말을 듣고 엎드러져 혼이 떠나니 이 일을 듣는 사람이 다 크게 두려워하더라, 젊은 사람들이 일어나 시신을 싸서 메고 나가 장사하니라, 세 시간쯤 지나 그의 아내가 그 일어난 일을 알지 못하고 들어오니, 베드로가 이르되 그 땅 판 값이 이것뿐이냐 내게 말하라 하니 이르되 예 이것뿐이라 하더라, 베드로가 이르되 너희가 어찌 함께 꾀하여 주의 영을 시험하려 하느냐 보라 네 남편을 장사하고 오는 사람들의 발이 문 앞에 이르렀으니 또 너를 메어 내가리라 하니, 곧 그가 베드로의 발 앞에 엎드러져 혼이 떠나는지라 젊은 사람들이 들어와 죽은 것을 보고 메어다가 그의 남편 곁에 장사하니, 온 교회와 이 일을 듣는 사람들이 다 크게 두려워하니라” 왜 은혜의 시대인데 거짓말을 했다고 부부를 이렇게 심판해 즉사케 하십니까?

 

그 뜻은 은혜의 시대라고 하여 율법이 필요 없다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은혜는 율법을 이루는 능력인데 왜 힘, 떡에 넘어가서 율법보다 훨씬 더 큰 능력의 은혜를 율법보다 작게 여길 수 있는가? 작을 수 없기에 예수 그리스도가 속죄양이 된 것을 모를 수 있더냐! 결코 그럴 수 없기에 은혜로 법을 지켜 율법의 요구를 이루어가야 하는데, 율법의 모세가 은혜의 예수보다 더 크게 여긴 것입니다. 이것이 은혜지상주의입니다. 은혜지상주의가 되면, 율법의 목적인 거룩함, 사랑을 막기에, 이런 악한 짓들이 앞으로도 교회 안에서 비밀비재하게 일어날 것을 이미 다 아신 하나님께서는, 아나니아와 삽비라를 통하여 일벌백계를 하신 것입니다. 율법 없는 은혜는 성립할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박국 선지자도 타락한 남 유다가 속히 징계와 심판을 받더라도 그 징계를 통하여 이스라엘이 깨닫고 회개하여 돌아온다면 그것이 바람직하기에 부르짖으면서 심판을 구하는 간구를 드릴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율법이 없다면, 율법을 무시한다면, 그 타락을 무엇으로 해결할 수 있을까요?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신약에서도 하시는 말씀을 봅니다.

 

마18:15-17입니다. “네 형제가 죄를 범하거든 가서 너와 그 사람과만 상대하여 권고하라 만일 들으면 네가 네 형제를 얻은 것이요, 만일 듣지 않거든 한두 사람을 데리고 가서 두세 증인의 입으로 말마다 확증하게 하라, 만일 그들의 말도 듣지 않거든 교회에 말하고 교회의 말도 듣지 않거든 이방인과 세리와 같이 여기라” 잘못한 것에 대한 징계입니다. 지금 은혜만을 주장하다가보니깐 징계가 없어 교회가 어떻게 되었나요? 

 

살전5:14입니다. “또 형제들아 너희를 권면하노니 규모 없는 자들을 권계(勸戒)하며” 

 

히3:13입니다. “오직 오늘이라 일컫는 동안에 매일 피차 권면하여 너희 중에 누구든지 죄의 유혹으로 강퍅케 됨을 면하라” 

 

구약에서는 잠27:5-6입니다. “면책은 숨은 사랑보다 나으니라, 친구의 통책(痛責-아프게 꾸짖음)은 충성에서 말미암은 것이나” 

 

잠27:9입니다. “기름과 향이 사람의 마음을 즐겁게 하나니 친구의 충성된 권고가 이와 같이 아름다우니라” 비록 형제와 이웃과 동족이라 할지라도 범죄하였을 때에는 그 죄를 지적하고 회개토록 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는 것이 진정한 사랑이요 애국의 길이 되는 것입니다. 물론 그것이 또한 성도의 의무입니다. 

 

하박국의 기도가 그런 차원에서의 부르짖음입니다. 속히 하나님의 심판을 받고 회개하고 돌아오는 것이 낫지, 그들의 타락을 그냥 방관했다는 더 큰일이 나타난다는 것입니다. 때문에 듣기 좋은 세상적인 기도는 듣기에 좋을지는 모르지만 그것은 독을 보이지 않게 발라놓은 독사탕과 다르지 않은 것입니다. 듣기 좋은 기도는 서서히 죽이는 악행이 될 수 있습니다. 부르짖는 기도가 듣기에 좋아서 그래서 은혜가 된다고 하면 안 됩니다. 기도는 거룩한 아픔이 꼭 따라야 합니다. 그것이 유익한 기도입니다

 

두 번 째로 왜 속히 응답하지 않으셨는가? 하나님께서 속히 응답치 아니하신다고 하여 선지자 하박국은 어떤 반응을 나타내고 있는가? 2-4절을 보시면 불평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바른 기도에 대하여서도 응답이 속히 임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배워야 합니다. 바른 기도도 속히 응답하시지 아니하신다면 잘못된 기도에 대해서는 두말이 필요치 않는 것입니다. 그런데 속히 응답하시지 않는 이유가 어디에 있을까요? 그 이유는 타락한 한 명이라도 돌이키시려는 하나님의 사랑과 인내하심입니다. 만약에 심판이 그때그때 마다 임하게 하신다면 아무도 구원을 얻을 자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회개하고 돌아올 자들이 있기 때문에 기다려 주셨던 것이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 대하여 방관하신 것이라거나 포기하신 것이라고 믿으면 안 됩니다. 합2:3을 보세요! “이 묵시는 정한 때가 있나니 그 종말이 속히 이르겠고 결코 거짓되지 아니하리라 비록 더딜찌라도 기다리라 지체되지 않고 정녕 응하리라 

 

벧후3:9-10입니다. “주의 약속은 어떤 이의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 오직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치 않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그러나 주의 날이 도적같이 오리니 그날에는 하늘이 큰 소리로 떠나가고 체질이 뜨거운 불에 풀어지고 땅과 그 중에 있는 모든 일이 드러나리로다” 늦어지는 징계와 심판이 하박국 선지자가 불평하고 있었지만, 그러나 우리들의 연약함을 아시는 하나님께서 끝까지 기다려 주신 하나님이십니다. 그래서 저도 구원을 받게 되었고, 지금 이렇게 복된 삶을 사는 자가 된 것입니다. 여러분들도 끝까지 인내하시면서 기다려 주셨기에 지금 천국 백성으로써 율법의 요구인 거룩함과 사랑의 삶을 이루어갈 수 있게 된 것입니다. 

 

당시 선지자 하박국도 율법이 마비가 되면서 더 타락하여 무너지는 나라와 민족이 심히 걱정이 되었기에, 속히 하나님의 심판을 구했었지만, 그러나 거기서도 하나님의 능력은 함께 하셨고, 보이지 않으시는 하나님의 손길로 말미암아 놀라운 합3장의 찬송을 지어 드릴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이점을 감안하여 볼 때에, 우리 역시도 기다릴 줄을 아는 신앙이 되어야 합니다. 응답이 늦어진다고 하여, 불평하거나 의심할 필요가 없을 것입니다. 특히 응답이 늦는다고 하여 낙망한다면, 그건 절대 금물입니다. 

 

눅18:1입니다. “항상 기도하고 낙망치 말아야 될 것을 저희에게 비유로 하여” 이 비유의 말씀은 낙망치 말아야 되는 비유입니다. 즉 어떻게 하면 응답을 받느냐에 관한 이야기가 아닙니다. 응답을 받아 마땅한데도 불구하고 응답을 받지 못하는 문제에 대하여 혼동하는 일이 없도록 하기 위하여 주신 말씀입니다. 항상 기도하면서 낙망치 말아야 될 것을 말씀하는 것은 늘 기도하는데도 불구하고 기도의 응답이 우리의 욕심대로, 마음대로 이루어 지지 않기에 그래서 주신 비유의 말씀입니다. 

 

결코 늦은 응답이 하나님의 외면하심이 아닙니다. 우리는 끝까지 인내할 줄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믿음의 기도 없이 세상의 힘을 제압하려고 한다면, 그건 모순입니다. 기도의 목적도 모르면서 드리는 당일치기 기도는 속전속결의 응답을 바라게 되는 것입니다. 기도를 늘 유지하지 않게 되면, 어떤가요? 낙망도 쉽게 하는 법입니다. 그러나 거룩함을 위한 기도로 쉬지 않는 성도들에게는 소망을 주십니다. 끝까지 인내할 수 있는 능력을 주십니다. 때문에 믿음의 기도란 세상의 어떤 응답을 받기 위해서 드리는 부르짖음이 아니라, 우선은 하나님이 자신의 인생과 온 천하 만민들의 생명과 온 우주의 주인 되심을 믿고, 담대하게 은혜의 보좌로 나아가야 합니다. 그리고 늘 항복, 자기부인을 위한 기도를 쉬지 말아야 하고 어려움 중에서도 감사하는 기도를 드려야 합니다. 그럴 때, 응답이 늦어도, 설령 응답이 되지 않을지라도 하나님은 나의 아버지시요 부족함이 전혀 없게 동행하시는 좋으신 하나님을 최우선으로 생각하게 되고 믿음의 기도를 쉬지 않게 되면서 그 이상의 응답으로 기쁨을 주시는 하나님을 만나게 될 것입니다. 

 

결론입니다. 벧후3:8-18입니다. “사랑하는 자들아 주께는 하루가 천 년 같고 천 년이 하루 같다는 이 한 가지를 잊지 말라, 주의 약속은 어떤 이들이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 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 오직 주께서는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하지 아니하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그러나 주의 날이 도둑 같이 오리니 그 날에는 하늘이 큰 소리로 떠나가고 물질이 뜨거운 불에 풀어지고 땅과 그 중에 있는 모든 일이 드러나리로다, 이 모든 것이 이렇게 풀어지리니 너희가 어떠한 사람이 되어야 마땅하냐 거룩한 행실과 경건함으로, 하나님의 날이 임하기를 바라보고 간절히 사모하라 그 날에 하늘이 불에 타서 풀어지고 물질이 뜨거운 불에 녹아지려니와, 우리는 그의 약속대로 의가 있는 곳인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도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이것을 바라보나니 주 앞에서 점도 없고 흠도 없이 평강 가운데서 나타나기를 힘쓰라, 또 우리 주의 오래 참으심이 구원이 될 줄로 여기라 우리가 사랑하는 형제 바울도 그 받은 지혜대로 너희에게 이같이 썼고, 또 그 모든 편지에도 이런 일에 관하여 말하였으되 그 중에 알기 어려운 것이 더러 있으니 무식한 자들과 굳세지 못한 자들이 다른 성경과 같이 그것도 억지로 풀다가 스스로 멸망에 이르느니라, 그러므로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이것을 미리 알았은즉 무법한 자들의 미혹에 이끌려 너희가 굳센 데서 떨어질까 삼가라, 오직 우리 주 곧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그를 아는 지식에서 자라 가라 영광이 이제와 영원한 날까지 그에게 있을지어다” 

 

끝까지 믿고 인내하는 것이 믿음이요 능력이요 바른 신앙입니다. 끝까지 믿고 인내하시되 거룩한 행실과 경건함으로 하나님의 그 날이 임하시기를 바라보면서 깨어 충성하는 삶이 유지되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늘 실망과 슬픔의 날로 지새우지 않을 수가 없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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