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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돌교회
12/29/2019 - 사사기 17:1-13 본문
말씀: 삿17:1-13
제목: 자기 옳은 대로 행하였더라
오늘 등장하는 미가와 레위 인 때문에 드리는 말씀입니다. 물론 너무나 답답하고 속상해서 드리는 말씀이기도 합니다. 성경은 생명의 말씀입니다. 그런데 정말 생명의 말씀으로 여기고 있습니까? 생명의 말씀이란, 바로 나를 근본적으로 살리는 그런 말씀이란 뜻이 가장 중요하다는 것인데 그 점에 대하여 얼마나 심각하게 생각해 본적이 있습니까? 무슨 뜻인가 하면, 다들 성경을 볼 때, 자기를 살리는 중차대한 말씀으로 보지 못하고 있다가 보니까, 말씀을 읽을 때, 진지하지 못하고 심각하지 못하고 단지, 무슨 의미와 책임 차원에서만 보고 있다는 뜻입니다.
잘못되어도 너무나 크게 잘못된 상황입니다. 그런데 왜 그럴까요? 왜 진지하고 심각하게 이 생명의 말씀을 대하지 못하는 이유가 어디에 있을까요? 한 번 이렇게 생각해 봅니다. 심하게 몹시 아픈 환자가 의사를 만나면 어떤 반응을 보이던가요? 혹시 암인가? 혹시 불치병인가? 그러다가 나중에 큰 문제가 아니라고 하면 얼마나 좋아하던가요? 그렇습니다. 심각하게 아픔을 고민하다가 의사를 만나면, 깊은 고민과 아닐 것이라는 그런 소망을 갖게 되는데 그러나 특히 혹시, 불치병이라고 하면, 암이라고 하면, 라는 그런 상상을 하는 그 이유는 다름이 아니라 바로 자기의 일이기 때문이요 그리고 살아 있기 때문입니다. 무엇보다도 자기는 더 살아야 된다는 그 마음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그런 마음을 갖는 이유는 그 의사를 믿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대단히 아플 그 당시, 그 의사는 자기에게 너무나 중요하기에 만약에 어떤 심각한 문제가 발견이 되면, 다 맡기면서 all in 까지 합니다. 그리고 고쳐주시기를 간절하게 믿고 기대를 하게 됩니다. 자기의 그 바람 속에는 살아 있다는 자신의 지정의가 완전 발동합니다. 심각할수록 그렇습니다.
그런데 잘 보세요! 신앙을 가졌다고 하는 우린 어떤가요?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는 우린 자신의 진정한 아버지요 전능하신 하나님을 자기의 누구라고 여기고 있던가요? 정말 나의 아버지요 전능하신 하나님이라고 정말 늘 믿고 있습니까? 아니면 동네에서 단지 아는 그런 어떤 분으로만 여기고 있습니까? 분명할진데, 성경을 그렇게 사랑하지 못하고 기도하기를 원하지 못하는 그 이유는 하나님 아버지를 동네의 한 아저씨 정도로만 알고 여기고 있기에 우린 평시에도 믿는다고만 하면서도 멋대로 합니다.
그리고 자기가 하는 짓이 악함에도 불구하고, 믿음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세상 사람과 같으면서도 불구하고 전혀, 전혀 두려워하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 성도라고 하면서 멋대로 하는 그 이유는 하나님을 전적으로 믿지 못하고 있다는 증거가 되다가보니까, 의사보다 못한 존재의 하나님으로만 여기게 되는 것이고,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그 신앙의 가치가 평시에 나타나지 못하게 되는 것입니다. 특히 신앙이 있다면 즉 자신이 하나님의 자녀라고 믿고 있다면, 말씀을 대할 때마다 자신의 지정의가 발동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무슨 뜻인가 하면, 살아 있는 인간들이 가지고 있는 지정의 그것도 나의 지정의가 아닌 하나님의 지정의에서 말씀을 느껴야 합니다. 동상이몽이 되면 안 됩니다. 성경에서 하시는 말씀 중에 무엇보다도 정말 잘 안 되는 부분이 있는데, 롬12:15입니다. “즐거워하는 자들로 함께 즐거워하고 우는 자들로 함께 울라” 그러시면서 16절의 말씀을 보세요! “서로 마음을 같이하며 높은데 마음을 두지 말고 도리어 낮은데 처하며 스스로 지혜 있는 체 말라”고 하십니다.
서로 마음을 같이 하라고 하시는데, 늘 말씀을 드렸지만 30년을 살아도 마음이 일치되지 못하고 있고 자식을 낳고 길렀어도 동상이몽이 아니냐는 말씀을 드린 바 있습니다. 여기서 우린 하나님하고 같이 즐거워하고 아파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를 알아야 하고 최소한 의사를 대하듯이, 경찰, 검사를 대하듯이 최소한 그 이상이 되어야 하는데 그 정도도 되지 못하다가보니까, 하나님은 인격의 하나님이 아니라 만화 속에 나오는 지정의도 없는 분으로 여기게 됩니다. 그 결과 지금 교회와 성도의 수준은 어떤가요?
하나님을 최소한 검찰로 보더라도, 이런 타락은 불가능하고, 의사보다 못하게 여기다가 보니까, 명의보다 못한 분으로 여기는 죄악을 범하게 되면서 교회가 기업이 되어야 했고 목사 먹사가 되고 집사가 잡사가 되면서 여전히 타락한 이스라엘을 열심히 따라가는 짓을 하고 오늘 삿17장에 등장하는 미가와 레위 인이 생산될 뿐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전능하시고 무소부재하신 하나님이 아니기에 주일이 되면 우리의 마음 상태는 어떤가요? 단지 동네 아저씨처럼 여기게 되니까, 다들 가벼운 마음으로 이 자리에 참여하게 되고, 드리는 것도 무슨 차원으로 드리던가요? 부모님에게 드리는 것보다 자식들에게 주는 것보다 진지하던가요? 두렵게도 마치 동냥하는 식입니다. 아닙니까? 아니라고요?
자신이나 자식이 죽을병에 걸리면 살기 위하여 전 재산을 병원에 드리지 않던가요? 아니 자기가 좋아하는 그 어떤 것이 망가지면 얼마나 아쉬워하던가요? 그런데 자기의 그 영혼을 치료하신 진정한 의사이신 하나님에 대하여 얼마나 인색한지 아세요? 인격의 하나님, 생명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을 제대로 믿고 있지 않기에 우리는 늘 한심한 꼴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거기에는 자신의 진정성이 늘 없기에 만화로 말씀을 여기고 있기에 그런 것입니다. 여러분이 어떤 심각한 문제가 별안간 생기면 지금은 무엇으로 일단 확인을 하던가요? Youtube라는 channel를 보게 되는데 얼마나 주의 깊게 보면서 도움을 받고 있던가요? 그런데 어떻게 하나님의 말씀은 그 정도가 전혀 되지 못하고 있을까요? 오늘 말씀을 드리기 전에 아니 오늘 말씀도 그런 마음이 없이 그냥 쉽게 가볍게 와 있을 수 있기에 그러면 여전히 말씀을 자신에게 도움이 전혀 안 되고 아무 상관이 없이 대하시면 새해에는 용납이 될 수 없기에 아니 지금 당장부터라도 같이, 즐거워하고 힘들어 할 줄을 알아야 하기에 새벽에 주신 말씀을 드렸습니다. 본문으로 갑니다.
하나님만이 이스라엘의 왕이시오 하나님의 통치만을 받아야 되는 신정국가로 부르심을 받았던 이스라엘입니다. 그래서 모세를 통하여 시내 산에서 받은 율법으로 이스라엘이 가야할 목표와 방향이 무엇인지를 뚜렷하게 확인할 수 있는 말씀을 주셨습니다. 모두들 자신의 나라 이스라엘이 어떻게 구원을 받았으며, 어떤 과정 속에서 이스라엘이라는 나라가 가나안 땅에 굳게 세워 졌는지를 모르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영적 지도자들이 다 죽고 난 후, 자손들이 악을 행합니다. 바알을 하나님 앞에서 믿고 섬겼던 것입니다.
결국 진노하심으로 주변 국가들로부터 지배를 받게 되는데, 지배를 받으면서 받는 고통으로 부르짖으면 사사를 통하여 구원하여 주셨습니다. 이런 식으로 내내 유지되었던 이스라엘의 신앙의 특징을 보면, 율법 중심이 아니라 다 멋대로 생각하고 판단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무엇이라고 하시던가요? 삿17:6, 21:25에서 알 수 있습니다. “그때에는 이스라엘의 왕이 없으므로 사람마다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였더라” 라고 당시의 상황을 드러내주시고 계십니다. 즉 하나님의 나라인 이스라엘을 영적으로 인도할 믿음의 왕도 제사장도 선지자도 사사도 없었다는 뜻입니다.
그러니 백성들은 두말이 필요 없는 것입니다. 다들 각자가 알아서 자기 소견대로 행하는 꼴이 된 것입니다. 그 고발을 오늘 삿 17장의 말씀에서 알게 합니다. 미가와 레위 인을 보라는 것입니다. 그들을 통하여 무엇이 잘못된 신앙인지를 지적합니다. 특히 하나님이 주신 말씀을 가지고 순종이 아니라, 단지 복을 받으려는 것만을 보더라도, 당시 이스라엘 민족이 얼마나 이기적이고 미련했고 당장 복을 받으려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있다는 것을 알게 합니다. 하나님을 바르게 알지 못하므로 세상 무속 종교와 전혀 다르지 않다는 것입니다. 생명의 말씀을 받았지만 복의 말씀을 가지고서도 저주의 길과 죽음의 길을 택하고 있더라는 것입니다. -
삿17장의 말씀을 보시면서 여러분들은 답답하여 자기 가슴을 치지 않았나요? 미련의 극치요 눈을 뜬 장님이요 불속을 gas를 들고 들어가고 있는 망가진 그들을 보여 주시는데, 아무렇지도 않으셨습니까? 이렇게 완전하게 다시 세상 인으로 타락하는, 영적으로 무너지고, 썩어가는 그들을 보여주시면서, 하시는 말씀이, 지금 너희들은 어디를 향하여 가고 있는지를 묻고 계십니다. 왜요? 사사시대처럼 타락하면 절대로 안 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사사 때와 전혀 다르지 않습니다. 미가와 레위 인이 보여주는 그들의 신앙이나 지금이나 다르지 않습니다. 그대로 copy하고 있습니다. 지금부터 3300년 전의 사사기 말씀인데 신앙의 타락과 부패 상태가 지금이나 그때나 완전 똑같다는 것입니다. 삿17:6의 말씀처럼, “그때에는 이스라엘에 왕이 없으므로 사람마다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였더라” 지금도 우리들이 자기 소견대로 살고 있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그때와 조금도 다르지 않기에 두렵기만 합니다. 그런데 다들 교회를 다니면서도 영적인 실패에 대하여 사사 때와 같다는 이 점에 대하여 전혀 두려워하지 않고 있습니다. 신앙의 타락과 실패에 대한 두려움은 전혀 없는데 반하여, 그러나 세상적인 문제, 출세, 돈, 비난, 암 선고, 실패, 가난으로 인한 열등감 등 그런 세상의 문제에 대하여서는 대단히 민감합니다. 그런데 그런 세상적인 것들에 대하여 민감하다는 그 뜻에는,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다름이 아니라, 그 증세가 바로 3000년 전의 사사 때도 다들 그랬다는 것입니다. 등장하는 미가와 레위 인을 통하여 쉽게 확인이 됩니다. 율법을 통한 하나님의 정해진 길과 방향이 있지만, 자기들이 옳은 대로 하고 싶은 대로 하는 이 선택이 지금도 전혀 다르지 않기에 드리는 말씀입니다. 아니 지금이 오히려 더 심하다고 해도 반론할 사람이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자신의 소견대로 사는 이 길은, 이 선택은 이미 내내 말씀을 드리고 있지만, 저주와 사망의 길이기에 안타까울 뿐입니다. 주전 약 1390부터 1055년경까지 350년 동안에 이 사사 시대에 걸쳐서 무엇이 신앙의 문제점인지를 낱낱이 보여 주시고 계시지만, 지금 우리들의 신앙의 방향과 목적을 보면, 미가와 레위인과 너무나 똑같습니다. 아닌가요? 그렇습니다. 타락의 수준이 너무나 똑같았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그럴 수가 있습니까? 타락의 수준이 사사시대하고 완전 같은데 성도된 자로써 어떻게 아무렇지 않을 수 있을까요?
영적인 감각이 없는 마치 죽은 자와 같은 사람들과 무슨 신앙의 이야기를 할 수 있을까요?~참담 그 자체입니다. 너무나 기막히고 한심하여서 이제 이 문제 때문에 다들, 금식하고, 이 문제로 새벽기도를 하고도 남아야 하는데, 다들 무엇을 위한 금식이고 새벽기도를 드리고 있던가요?~ 그런데 여전히 지금도 당시 미가와 레위 인과 다르지 않으니~ 이런 상태에서 온갖 악기를 동원하여 춤을 추면서 즐거움과 감격과 감동으로 찬송을 하나님에게 아무리 많이 모여서 드리면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즐거움과 감격과 감동으로 찬송을 하나님에게 드리기 전에, 회개가 우선이 되어야 하는데, 지금 누가 회개를 하고 있던가요? 회개를 하여서 이젠 예수님께서 가라고 하신 그 좁은 길을 가려고 누가 몸부림을 치고 있던가요? 이젠 예수님처럼 미련한 자가 되리라! 오른 뺨을 맞으면 왼뺨도 돌려 대리라! 속옷을 달라고 하면 겉옷도 주리라! 악은 모양이라도 취하지 않으리라! 악을 선으로 갚으리라! 크게 결심하면서 이 문제로 깊은 고민에 빠진 자들이 얼마나 있던가요?~
다들 이 헛된 세상에서 곧 사라지고야 마는 세상의 것들과 즐기지 못하여, 더 갖지 못하여 어떤 짓을 하던가요? 정말 입을 것과 먹을 것만으로 우리들은 만족하십니까? 아니잖아요! ‘제발 하지 말라’는 세상 computer 게임 등은 못해서 안달이고, 보지 말라는 것은 보려고 안달이고, 가지 말라고 하면 가지 못하여 안달하고, 내려놓으라고 하는데 한 줌이라도 더 가지려고, 꼼수를 부리고 거짓말을 하고, 상처를 주면서 의심과 불신을 넣어서 결국 하나님의 거룩하심에 먹칠을 하고 있습니다. 아닙니까? 나는 아니라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는 분이 있으면 일어나 보세요!~ 지금 교회가 사사 때의 타락하고 다르지 않습니다. 신약의 우리들에게는 구약의 성도들과 신앙을 비교하면 신약의 우리들은 달라도 달라져야 되는데, 다르던가요? 하나님께서 지속적으로 상세하게 말씀하여 주시고 계시고,
그 어느 때보다 그 이상으로 지금까지도 가르치시고 지도하시고 계시는데도, 순종하고 있던가요? 아닙니다. 전혀 좋아지지 않고 있습니다. 아니 어떻게 더욱 타락해 갈 수 있을까요? ~ 계속적으로 나빠지고 있기에, 지금 지구를 지키려는 환경보호자들이 말하기를, 그 크고 큰 깊은 바다까지도 오염이 되어 바다의 산호가 사라지고 있다고 합니다. 바다거북과 큰 고래들이 인간의 타락으로, 즉 버린 오물로 죽어 가고 있다고 합니다. 어떻게 그럴 수 있는지, 정말 인간의 타락은 무섭다! 라는 것을 요즘에 특히 더 실감하게 됩니다. 성도된 나 한 사람이 미가처럼 레위인처럼 살게 되면, 다 망하는 것입니다. 저는 오늘 이 말씀을 통하여 이런 결론의 말씀을 먼저 드리고자 합니다. 돈과 원수 때문에 내가 망하는 것이 아니라 말씀을 모르는 자기 자신 때문에 망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동의 하세요? 아멘입니다.
그런데 왜 우리들의 우선이 말씀이 아니고 재물입니까? 삼손도 그랬고 미가도 그랬습니다. 지금도 그렇습니다. 말하고 있는 성도 분들의 말은 그럴듯한 하나님의 말씀을 하고 있기는 한데, 다수의 마음 깊은 곳에는 말씀이 아니라 실은 나는 돈이야! 돈이 최고야! 라고 믿고 있기에 오늘 말씀을 좀 더 깊이 살펴보려고 합니다. 이스라엘의 에브라임 산지에 살던 미가라는 사람이 왜 신상을 세웠을까요? 하나님을 완전하게 떠났기 때문입니다. 물론 그간에 들은 가락이 있었기에 삿17:5에 보시면, “이 사람 미가에게 산당이 있으므로 또 에봇과 드라빔을 만들고 한 아들을 세워 제사장을 삼았더라” 하나님에게 제사를 드릴 때, 대제사장들이 입던 에봇과 드라빔을 만들었고 그리고 레위 인을 제사장으로 세웠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무엇을 의미합니까? 하나님이 누구신지를, 하나님의 뜻과 원리가 무엇인지를 전혀 알지 못하고 단지 복에 빠져 있습니다. 복을 위한 선택이라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렇게 된 이유는 이스라엘의 영적 지도자 제사장들과 사사와 선지자들이 다 타락하였기 때문입니다. 먼저 이스라엘의 제사장들이 자신들의 그 사명을 다하지 않았다는데, 그 이유와 원인에 대하여 살펴보기 이전에,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신정국가로 세우신 이유에 대하여 먼저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신정국가로 세우신 이유는 출19:5-6입니다.
5. | 세계가 다 내게 속하였나니 너희가 내 말을 잘 듣고 내 언약을 지키면 너희는 열국 중에서 내 소유가 되겠고 |
6. | 너희가 내게 대하여 제사장 나라가 되며 거룩한 백성이 되리라 너는 이 말을 이스라엘 자손에게 고할찌니라 |
하나님께서는 이 뜻을 모세에게 전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이 뜻은 모세를 통하여 이스라엘 민족을 대표하는 장로들에게 알렸음을 출19:7에서 말씀합니다. “모세가 와서 백성의 장로들을 불러 여호와께서 자기에게 명하신 그 모든 말씀을 그 앞에서 진술하니” 그런데 장로들에게 먼저 알리고 나서 그 다음에 제사장 나라가 되며 거룩한 백성이 되게 하는 그 역할을 누구에게 주셨습니까? 누가, 이 하나님의 뜻을 위해 먼저 부르심을 받았던가요? 레위 지파인 모세의 형 아론과 그의 아들들에게 제사장 직분을 맡기셨던 것입니다. 출28:1-3입니다.
1. | 너는 이스라엘 자손 중 네 형 아론과 그 아들들 곧 나답과 아비후와 엘르아살과 이다말을 그와 함께 네게로 나아오게 하여 나를 섬기는 제사장 직분을 행하게 하라 |
2. | 네 형 아론을 위하여 거룩한 옷을 지어서 영화롭고 아름답게 할찌니 |
3. | 너는 무릇 마음에 지혜 있는 자 곧 내가 지혜로운 영으로 채운 자들에게 말하여 아론의 옷을 지어 그를 거룩하게 하여 내게 제사장을 직분을 행하게 하라 |
하나님의 뜻은 거룩입니다. 거룩한 제사장의 옷을 입는 이유는 단지 입는데 있지 않고, 거룩한 제사장으로써 죄를 제거하고 지체간의 화평과 거룩함을 이루어 가는데 있습니다.
거룩함에 있기에 하시는 말씀이 레19:1-2입니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일러 가라사대, 너는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에게 고하여 이르라 너희는 거룩하라, 나 여호와 너희 하나님이 거룩함이니라” 거룩함은 세상의 뜻과 방법을 버리고 하나님 뜻과 방법으로 사는 것입니다. 이를 위하여 레위 지파에 속하였던 아론과 그의 아들들이 제사장으로 쓰임을 받게 되면서 제사장의 거룩한 옷을 입도록 하신 것입니다. 너무나 중차대한 이 사명을 레위 지파에게 맡기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율법을 따르지 않으면 저주와 사망에서 벗어날 수 없기에 특별하게 맡겨주셨습니다. 순종해야지만 살 수 있습니다. 레18:24-30의 말씀을 다시 보세요!
24. | 너희는 이 모든 일로 스스로 더럽히지 말라 내가 너희 앞에서 쫓아내는 족속들이 이 모든 일로 말미암아 더러워졌고 |
25. | 그 땅도 더러워졌으므로 내가 그 악으로 말미암아 벌하고 그 땅도 스스로 그 주민을 토하여 내느니라 |
26. | 그러므로 너희 곧 너희의 동족이나 혹은 너희 중에 거류하는 거류민이나 내 규례와 내 법도를 지키고 이런 가증한 일의 하나라도 행하지 말라 |
27. | 너희가 전에 있던 그 땅 주민이 이 모든 가증한 일을 행하였고 그 땅도 더러워졌느니라 |
28. | 너희도 더럽히면 그 땅이 너희가 있기 전 주민을 토함 같이 너희를 토할까 하노라 |
29. | 이 가증한 모든 일을 행하는 자는 그 백성 중에서 끊어지리라 |
30. | 그러므로 너희는 내 명령을 지키고 너희가 들어가기 전에 행하던 가증한 풍속을 하나라도 따름으로 스스로 더럽히지 말라 나는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이니라 |
이런 재앙을 막아야 하기에 제사장 직분을 레위 지파에게 맡기신 것입니다. 오직 레위인의 일은 거룩함을 위한 제사요 예배로 레위 인들을 제한 하셨기에, 땅도 기업으로 주시지 않으셨습니다. 레위지파의 생계는 민18:20-24의 말씀에서 하십니다.
20. | 여호와께서 또 아론에게 이르시되 너는 이스라엘 자손의 땅에 기업도 없겠고 그들 중에 아무 분깃도 없을 것이나 내가 이스라엘 자손 중에 네 분깃이요 네 기업이니라 |
21. | 내가 이스라엘의 십일조를 레위 자손에게 기업으로 다 주어서 그들이 하는 일 곧 회막에서 하는 일을 갚나니 |
22. | 이 후로는 이스라엘 자손이 회막에 가까이 하지 말 것이라 죄값으로 죽을까 하노라 |
23. | 그러나 레위인은 회막에서 봉사하며 자기들의 죄를 담당할 것이요 이스라엘 자손 중에는 기업이 없을 것이니 이는 너희 대대에 영원한 율례라 |
24. |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께 거제로 드리는 십일조를 레위인에게 기업으로 주었으므로 내가 그들에 대하여 말하기를 이스라엘 자손 중에 기업이 없을 것이라 하였노라 |
그런데 믿음의 어른들이 다 죽으면서 하나님을 배반합니다. 바알을 믿는 죄악을 하나님 앞에서 범합니다. 그리고 멋대로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는데, 그것이 삿17:7-13에서도 타락한 레위 인을 지적하고 있으셨지만, 삿19장의 말씀은 더욱 기막힌 말씀을 하십니다. 삿19:1, 29의 말씀을 보시면, 하나님의 율법에서 금하고 있던 첩을 어떤 레위 인이 취했고, 그리고 자신의 첩을 12조각을 내었던 자가 바로 레위인 것을 말씀하십니다.
사사기 17:7-13
7. | 유다 가족에 속한 유다 베들레헴에 한 청년이 있었으니 그는 레위인으로서 거기서 거류하였더라 |
8. | 그 사람이 거주할 곳을 찾고자 하여 그 성읍 유다 베들레헴을 떠나 가다가 에브라임 산지로 가서 미가의 집에 이르매 |
9. | 미가가 그에게 묻되 너는 어디서부터 오느냐 하니 그가 이르되 나는 유다 베들레헴의 레위인으로서 거류할 곳을 찾으러 가노라 하는지라 |
10. | 미가가 그에게 이르되 네가 나와 함께 거주하며 나를 위하여 아버지와 제사장이 되라 내가 해마다 은 열과 의복 한 벌과 먹을 것을 주리라 하므로 그 레위인이 들어갔더라 |
11. | 그 레위인이 그 사람과 함께 거주하기를 만족하게 생각했으니 이는 그 청년이 미가의 아들 중 하나 같이 됨이라 |
12. | 미가가 그 레위인을 거룩하게 구별하매 그 청년이 미가의 제사장이 되어 그 집에 있었더라 |
13. | 이에 미가가 이르되 레위인이 내 제사장이 되었으니 이제 여호와께서 내게 복 주실 줄을 아노라 하니라 |
사사기 19:1
1. | 이스라엘에 왕이 없을 그 때에 에브라임 산지 구석에 거류하는 어떤 레위 사람이 유다 베들레헴에서 첩을 맞이하였더니 |
사사기 19:29
29. | 그 집에 이르러서는 칼을 가지고 자기 첩의 시체를 거두어 그 마디를 찍어 열두 덩이에 나누고 그것을 이스라엘 사방에 두루 보내매 |
지도자가 이 정도였으니까, 이스라엘 백성의 영적 상태는 두말이 필요 없습니다. 그러니 누가 십일조, 헌물을 드리겠습니까? 결국 레위 인들은 살 길을 찾기 위하여 집을 떠날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그 내용이 삿17:7-13의 말씀이기도 합니다. 서론에서 이미 말씀을 드렸지만, 누구 때문에 이스라엘이 망했다고요? 제사장이 제사장 역할을 하지 않았기에 망했지 돈이 없기 때문에 망했던 것이 아닙니다. 어떤 레위 인처럼 레위 인으로써 자기 신앙을 지키지 않으면 자기만 망하는 것이 아닙니다. 다 망하게 하는 원인 제공자가 된다는 것을 말씀은 경고하고 있습니다. 말씀을 순종하지 않으면, 이렇게 해도 저렇게 해도 길이 없고 망하게 될 것을 말씀하십니다. 그렇다면, 말씀을 지키는 것이 능사요 지혜가 아닙니까? 아멘입니다.
내 방식대로 사는 것이 사망이요 처절한 패망이요 죽는 길이라고 말씀하시는데, 굳이 그 길을 선택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말씀을 따르지 않고 자기 소견대로 행하는 이 길은 망조(亡兆)입니다. 물론 자기 소견대로 하는 그 삶이 편하겠지요! 편하지요! 그러나 자신의 안락과 편함이 결국 자신도 망하고, 가족도 망하고, 이웃, 그리고 나라까지도 망하게 되는 것을 삿19장은 정확하게 지적하고 계십니다. 믿음이 없으면 이런 말씀을 받으면서도 순종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믿음이 없으면 순종은커녕 더 망가뜨리고 더 뒤집어 놓고 맙니다. 자기 편한 길로 갑니다. 안 됩니다.
목숨을 걸고서라도 지켜야 되었지만, 그러나 삿17, 19장에서 등장한 한 레위 사람처럼 조금만 힘들면, 인내 없이 자기 하고 싶은 대로 가고 맙니다. 결국 한 사람, 한 사람들이 말씀을 따르지 않으면 온 나라가 도탄(塗炭)에 빠집니다. 동족상잔(同族相殘)의 기사가 삿20장에 나옵니다. 수만 명이 서로 죽이고 죽습니다. 베냐민 지파는 거의 다 죽어 전멸의 위기를 맞게 되었다고 삿21:3에서 말씀합니다.
3. | 이르되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여 어찌하여 이스라엘에 이런 일이 생겨서 오늘 이스라엘 중에 한 지파가 없어지게 하시나이까 하더니 |
자기 소견대로 살고, 자기 편리한 대로 살면, 이렇게 한 지파가 사라질 수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율법을 주셨습니다. 그런데 이런 지경에까지 와서야, 피를 토하는 후회를 해 본들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이미 엎어진 물입니다. 물론 너무나 괴로운 나머지, 왜 하나님께서는 좀 막아 주시지 않았습니까? 라고 하소연을 하게 되는데, 그러나 오늘처럼 하나님께서는 이미 헤아릴 수 없을 만큼 경고의 경고를 쉬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자신의 죄로 인하여 부끄럽게 될 때마다, 아니 아주 처참해 질 때에도, 후회만을 할 뿐, 진정한 회개가 유지 되지 않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젠 그 크고 큰 깊은 바다까지도 안전하지 않게 된 것입니다. 예전의 바다가 아닙니다. 다 경고의 말씀을 무시한 결과입니다. 이미 하나님께서 그 종말의 비참함을 다 알고 계셨기에, 그래서 막을 수 있는 방법이란 방법은 이미 다 동원하셨습니다. 독생자 아들이 죽기까지 하여 그 십자가로 다 해결해 주신 것입니다. 재앙과 저주와 사망을 말입니다. 하지만, 본인들이 사사 때처럼 자기 소견대로 행하고 있기에 이렇게 말도 안 되는 세상이 되고 만 것입니다. 곧 불의 심판으로 멸망을 당할 것입니다. 2 Peter 3:7-12, 계20:9-10의 말씀을 보세요!
베드로전서 3:7-12
7. | 남편들아 이와 같이 지식을 따라 너희 아내와 동거하고 그를 더 연약한 그릇이요 또 생명의 은혜를 함께 이어받을 자로 알아 귀히 여기라 이는 너희 기도가 막히지 아니하게 하려 함이라 |
8. | 마지막으로 말하노니 너희가 다 마음을 같이하여 동정하며 형제를 사랑하며 불쌍히 여기며 겸손하며 |
9. | 악을 악으로, 욕을 욕으로 갚지 말고 도리어 복을 빌라 이를 위하여 너희가 부르심을 받았으니 이는 복을 이어받게 하려 하심이라 |
10. | 그러므로 생명을 사랑하고 좋은 날 보기를 원하는 자는 혀를 금하여 악한 말을 그치며 그 입술로 거짓을 말하지 말고 |
11. | 악에서 떠나 선을 행하고 화평을 구하며 그것을 따르라 |
12. | 주의 눈은 의인을 향하시고 그의 귀는 의인의 간구에 기울이시되 주의 얼굴은 악행하는 자들을 대하시느니라 하였느니라 |
계시록 20:9-10
9. | 그들이 지면에 널리 퍼져 성도들의 진과 사랑하시는 성을 두르매 하늘에서 불이 내려와 그들을 태워버리고 |
10. | 또 그들을 미혹하는 마귀가 불과 유황 못에 던져지니 거기는 그 짐승과 거짓 선지자도 있어 세세토록 밤낮 괴로움을 받으리라 |
자신이 하나님의 경고의 말씀을 듣고도 돌이키지 않으므로써 불의 심판을 피할 수 없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이 세상이 미워서 방치하시거나 방관하신 적은 결코 없습니다. 그래서 당장 자신의 죄에 대한 결과가 오지 않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자신의 죄는 회개를 하지 않으면 눈처럼 쌓일 것입니다. 쌓이다가 결국은 무너지고 맙니다. 방심, 방관은 절대 금물입니다. 시간을 낭비하면 안 됩니다. 별안간 그날 한 순간에 무너집니다.
그런데 왜 이 지경까지 가도록 나를 놔두셨다고 불평을 한다면, 그건 괴변입니다. 지금 당장, 심판의 날이 오지 않는다고 하여 방심하는 것은 미련한 것입니다. 우리의 인생은 심는 대로 거두는 법입니다. 뿌리는 대로 거두는 것입니다. 막9:45-50입니다.
45. | 만일 네 발이 너를 범죄하게 하거든 찍어버리라 다리 저는 자로 영생에 들어가는 것이 두 발을 가지고 지옥에 던져지는 것보다 나으니라 |
46. | (없음) |
47. | 만일 네 눈이 너를 범죄하게 하거든 빼버리라 한 눈으로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두 눈을 가지고 지옥에 던져지는 것보다 나으니라 |
48. | 거기에서는 구더기도 죽지 않고 불도 꺼지지 아니하느니라 |
49. | 사람마다 불로써 소금 치듯 함을 받으리라 |
50. | 소금은 좋은 것이로되 만일 소금이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이를 짜게 하리요 너희 속에 소금을 두고 서로 화목하라 하시니라 |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고, 그리고 사람마다 불로서 소금 치듯 함을 받으리라고 이렇게 말씀을 통하여 누누이 경고하시지 않았던가요? 기다리시고, 기다려 주셨지만, 본인이 회개하지 않은 결과일 뿐입니다. 전8:11을 보세요! “악한 일에 징벌이 속히 실행되지 않으므로 인생들이 악을 행하기에 마음이 담대하도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에 전심을 다하여 귀를 기울이고 기도의 삶을 지속적으로 유지하고 있는 한, 반듯이 잘못 행하던 걸음을 세워 주시고, 영광스럽고 복된 길로 다시 향하도록 도와주실 것입니다.
당장 돌이키는 것이 자존심에 문제가 될지라도 돌이키지 않으면 안 됩니다. 왜냐하면 그 결과는 전혀 비교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자존심의 상처가 1이라면 그 결과는 1000 아니 그 이상의 고통과 아픔으로 올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사단은 아주 서서히 무너뜨립니다. 별 것 아니라고 그들은 늘 속삭입니다. 창3:1-6의 말씀입니다.
1. | 그런데 뱀은 여호와 하나님이 지으신 들짐승 중에 가장 간교하니라 뱀이 여자에게 물어 이르되 하나님이 참으로 너희에게 동산 모든 나무의 열매를 먹지 말라 하시더냐 |
2. | 여자가 뱀에게 말하되 동산 나무의 열매를 우리가 먹을 수 있으나 |
3. | 동산 중앙에 있는 나무의 열매는 하나님의 말씀에 너희는 먹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 너희가 죽을까 하노라 하셨느니라 |
4. | 뱀이 여자에게 이르되 너희가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 |
5. |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져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 줄 하나님이 아심이니라 |
6. | 여자가 그 나무를 본즉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 한 나무인지라 여자가 그 열매를 따먹고 자기와 함께 있는 남편에게도 주매 그도 먹은지라 |
그 결과를 볼까요?
(1)부끄러움이 임하게 되었고 (2)하나님을 피하게 되었습니다. (3)모두에게 저주가 임했습니다. 땅까지도 저주가 임했습니다. (4)그리고 더욱 기막힌 것은 에덴동산에서 그들은 쫓겨났습니다. (5)여기서 끝났어도 다행이었지만, 창4장을 보시면 형 가인이 동생 아벨을 돌로 쳐 죽이기까지 했고, 그런데 거기서 멈춘 것이 아니라, 더 나빠집니다. 더 강퍅해 집니다. 창4:23-24의 말씀을 보세요!
23. | 라멕이 아내들에게 이르되 아다와 씰라여 내 목소리를 들으라 라멕의 아내들이여 내 말을 들으라 나의 상처로 말미암아 내가 사람을 죽였고 나의 상함으로 말미암아 소년을 죽였도다 |
24. | 가인을 위하여는 벌이 칠 배일진대 라멕을 위하여는 벌이 칠십칠 배이리로다 하였더라 |
한 사람의 죄가 여기까지 이르게 합니다. 결국 창6-8장을 보시면, 하와의 불순종으로 인하여 인류는 전멸을 당합니다. 그래서 롬5:16-19입니다.
16. | 또 이 선물은 범죄한 한 사람으로 말미암은 것과 같지 아니하니 심판은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정죄에 이르렀으나 은사는 많은 범죄로 말미암아 의롭다 하심에 이름이니라 |
17. | 한 사람의 범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그 한 사람을 통하여 왕 노릇 하였은즉 더욱 은혜와 의의 선물을 넘치게 받는 자들은 한 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생명 안에서 왕 노릇 하리로다 |
18. | 그런즉 한 범죄로 많은 사람이 정죄에 이른 것 같이 한 의로운 행위로 말미암아 많은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받아 생명에 이르렀느니라 |
19. | 한 사람이 순종하지 아니함으로 많은 사람이 죄인 된 것 같이 한 사람이 순종하심으로 많은 사람이 의인이 되리라 |
한 사람 때문입니다. 이 저주와 사망의 길에서 벗어나게 해 주셨는데 다시 저주와 사망을 원하십니까? 아무 의미도 없고, 소용도 없고, 저주만이 남고, 이웃까지 해치는 악한 자신의 길을 가시렵니까? 질문을 드립니다. 사단이 성도들을 어떻게 공격하고 있는지 아십니까?
첫째는 사단의 세력들은 당장에 심판하시지 않으시는 하나님을 악용하고 있습니다. 때문에 성도들은 사단의 공격을 막고 대적하기 위해서는 그때그때 잘못을 확인하고 알게 되었을 때마다 회개하고 돌이키지 않으면 더욱 돌아올 수 없는 불행을 낳게 될 것입니다.
둘째로는 사단의 어떤 무기가 있는가 하면, 죄를 감추려는 인간의 약점을 이용합니다. 자존심 때문에 체면 때문에, 그때그때 회개하지 않고 잘못을 감추려는 우리들의 약점을 이용하여 결국은 파탄에 이르게 합니다. 댐의 물이 처음에는 바늘 구멍만한 크기로 나오다가 이런 저런 이유와 핑계로 인하여 막지 못하고 수리하지 않으므로써 결국 댐이 무너지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그러나 그때그때 회개를 한다면 생각보다 쉽게 해결이 되고 해결이 되면서 더욱 믿음이 자라나고 있다는 것을 느끼게 될 것입니다.
셋째로 사단의 무기는 자신의 지은 죄들을 밝히면 더 이상 부끄러워서 살 수 없게 될 것이라는 착각을 하게 합니다. 그래서 죄를 감추게 하는데, 안 됩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은 지은 죄를 감추면 안 됩니다. 만약에 지은 죄를 감춰보세요! 감출수록 견딜 수가 없게 될 것입니다. 시32:3-4의 말씀을 봅니다. “내가 토설치 아니할 때에 종일 신음하므로 내 뼈가 쇠하였도다, 주의 손이 주야로 나를 누르시오니 내 진액이 화하여 여름 가뭄에 마름같이 되었도다” 그러나 믿고 고백해 보시요!
시32:5-6입니다. “내가 이르기를 내 허물을 여호와께 자복하리라 하고 주께 내 죄를 아뢰고 내 죄악을 숨기지 아니하였더니 곧 주께서 내 죄의 악을 사하였나이다” 사함을 받은 후에 그 해방이 얼마나 좋았는지, 시32:6에서 무엇이라고 합니까? “이로 인하여 무릇 경건한 자는 주를 만날 기회를 타서 주께 기도할찌라 진실로 홍수가 범람할찌라도 저에게 미치지 못하리라, 주는 나의 은신처이오니 환난에서 나를 보호하시고 구원의 노래로 나를 에우시리라” 고백의 보상입니다. 하나님을 믿고 나와서 고백하는 모든 자녀들에게 주신 복입니다. 스스로 자신을 세상의 것으로 묶지 마시고, 더 이상 옛 자신을 믿지 마시고, 오직 하나님 아버지에게 다 내려놓으시기를 바랍니다! 힘들면 멋대로 향하려는 자신을 은혜의 줄로 꽁꽁 묶어서 이겨내셔서 2020년에는 넘치는 믿음의 열매를 가득 맺게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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