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돌교회

12/22/2019 - 사사기 16:1-31 본문

주일 설교 말씀

12/22/2019 - 사사기 16:1-31

PastorYK 2019. 12. 28. 03:35

말씀: 삿16:1-31                                          

제목: 삼손의 마지막 기도-나의 두 눈을 뺀 원수를 단번에 갚게 하소서

 

혹시 지상 낙원이라고 하던 나라, 울릉도의 1/3의 작은 나라 “나우루”를 아십니까? 모든 것이 공짜였다고 합니다. 세금도 전혀 없었고, 병원비도 공짜, 교육비도 다 공짜 게다가 혼인을 하면 집까지도 다 공짜였다고 합니다. 당연히 유학도 원하면 나우루 정부에서 다 제공했었고 만약에 나우루에서 의사들이 고치지 못하는 병은 최첨단 시설을 가진 선진국으로까지 보내어서 최고의 수술과 치료를 받도록 했었다고 합니다. 당시 미국과 일본보다 2배로 잘 살던 나라인데 그 나라는 자신의 자원인 인광석으로 인한 수십 년 동안에 수입이 넘쳐서 생활비를 매년 1억씩 주었지만, 결국 파멸한 나라가 된 것을 아세요? 지금도 곳곳에 비싼 외제차가 고철로 세워져 있다고 합니다. 나우루가 몰락한 것입니다. 그 이유는 수십 년간의 인광석의 수출로 온 백성이 아무 일도 하지 않고 다들 거저 호화롭게 낭비하는 삶만을 유지했던 것입니다. 그러다가 날벼락이 떨어졌는데, 영원히 수출이 될 줄 알았던 인광석이 1990 년경에 드디어 바닥을 드러낸 것입니다. 멸망을 피할 수 없게 된 것입니다. 낭비요, 방심’이 그 원인입니다. 끝까지 그 인광석이 생산될 것이라 다들 온 백성이 다 착각하여 내일을 전혀 준비를 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어떤가요? 우리는 준비하고 있습니까? 여전히 삼손처럼 살고 싶으십니까? “나우루”처럼 공짜 돈이면, 만사형통이 된다고 생각합니까? 오늘 말씀과 연관이 되어 먼저 돈과 방심으로 멸망을 한, 미련한 나라 ‘나우루’에 대하여 말씀을 드렸습니다. 오늘 삿16장의 말씀은 만화가 아닙니다. 사실을 기록한 진리입니다오늘은 그 어느 날보다 특별한 주일입니다. 아기 예수님이 태어나신 날을 기념하는 주일이기 때문입니다. 성도라면 성탄절 주일을 맞이할 때마다, 무슨 생각을 하셔야 할까요? 아하! 즐거운 날, 선물을 주고받는 그런 날로 생각하십니까? 

 

그럴 수 있겠지만, 그건 우선이 될 수 없습니다. 오늘은 말할 수 없이 아름답고 소중한 그런 특별한 날이지만, 아기 예수님이 왜 오셨지, 왜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아기 예수님을 보내주셨는지를 많이 생각하면서 그간의 자신에 대하여 깊이 돌아보는 날이 되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고 즐거워한다면 등장하고 있는 블레셋 사람과 들릴라 그리고 부끄러운 삼손과 전혀 다르지 않을 것입니다. 오늘은 3 가지로 말씀을 드리려고 합니다. 

 

첫째로 여러분들이 느끼셨는지를 모르겠습니다. 성경에서 한 인물을 이렇게 13, 14, 15, 16장인 4장에 걸쳐서 아주 길게 말씀을 하고 계십니다. 결코 간단한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누구나 쉽게 알게 하려는 것입니다. 등장인물을 통하여 특히 삼손을 통하여 분명하고 각별한 하나님의 뜻이 있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이 없을 것입니다. 삼손에 대한 사건이 얼마나 중요하면 이름만 기록하고 죽었다는 이스라엘의 사사들도 있었음을 우리는 삿3:31, 10:1-2, 12:8-15에서 보지 않았습니까? 삿3:31, 10:1-2, 12:8-15을 보세요!

 

사사기 3:31

31. 에훗 후에는 아낫의 아들 삼갈이 있어 소 모는 막대기로 블레셋 사람 육백 명을 죽였고 그도 이스라엘을 구원하였더라

사사기 10:1-2

1. 아비멜렉의 뒤를 이어서 잇사갈 사람 도도의 손자 부아의 아들 돌라가 일어나서 이스라엘을 구원하니라 그가 에브라임 산지 사밀에 거주하면서
2. 이스라엘의 사사가 된 지 이십삼 년 만에 죽으매 사밀에 장사되었더라

사사기 12:8-15

8. 그 뒤를 이어 베들레헴의 입산이 이스라엘의 사사가 되었더라
9. 그가 아들 삼십 명과 딸 삼십 명을 두었더니 그가 딸들을 밖으로 시집 보냈고 아들들을 위하여는 밖에서 여자 삼십 명을 데려왔더라 그가 이스라엘의 사사가 된 지 칠 년이라
10. 입산이 죽으매 베들레헴에 장사되었더라
11. 그 뒤를 이어 스불론 사람 엘론이 이스라엘의 사사가 되어 십 년 동안 이스라엘을 다스렸더라
12. 스불론 사람 엘론이 죽으매 스불론 땅 아얄론에 장사되었더라
13. 그 뒤를 이어 비라돈 사람 힐렐의 아들 압돈이 이스라엘의 사사가 되었더라
14. 그에게 아들 사십 명과 손자 삼십 명이 있어 어린 나귀 칠십 마리를 탔더라 압돈이 이스라엘의 사사가 된 지 팔 년이라
15. 비라돈 사람 힐렐의 아들 압돈이 죽으매 에브라임 땅 아말렉 사람의 산지 비라돈에 장사되었더라

그러나 삼손은 그의 출생부터 죽을 때까지의 인생을 너무나 자세하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하나님의 신을 받은 모든 성도들의 삶이 삼손하고 전혀 다르지 않기 때문일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삼손이라는 인물을 통하여구원을 받은 지금 너희들이 무엇 때문에 넘어지는지, 무엇이 우리들의 약점인지를 정확하게 지적하시고 싶으신 것입니다. 그래서 내내 삼손의 문제점을 집요하게 지적해 왔는데 특히 오늘 삿16장의 말씀에서는 너무나 말도 안 되는 그런 삼손을 보여 주시고 있습니다. 17절의 말씀입니다. 다시 한 번 17절의 말씀을 보시겠습니다.

 

사사기 16:17

17. 삼손이 진정을 토하여 그에게 이르되 내 머리에는 삭도를 대지 아니하였나니 이는 내가 모태에서 하나님의 나실 인이 되었음이라 만일 내 머리가 밀리우면 내 힘이 내게서 떠나고 나는 약하여져서 다른 사람과 같으리라

삼손은 자신이 나실 인인지를 잘 알고 있었음을 말해 주는 말씀입니다. 삼손은 그때까지 자신이 나실 인지를 모르고 사사답지 못한 어리석고 미련하고 못난 짓거리를 했던 것이 아니라 나실 인지를 자신이 잘 알고 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율법까지도 범하면서 20년간을 사사로 살아왔던 것입니다. 그리고 어떤 마지막 기도를 절실하게 드리면서 죽어가던가요? 삿16:28입니다.

28. 삼손이 여호와께 부르짖어 가로되 주 여호와여 구하옵나니 이번만 나로 강하게 하사 블레셋 사람이 나의 두 눈을 뺀 원수를 단번에 갚게 하옵소서 하고

참 부끄러운 마지막 기도입니다. 용서를 구하고 회개가 아니라, 자기 원수를 갚으려고 힘을 달라고 합니다. 끝까지 부끄러운 사사 삼손이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다른 사사들과 어떤 상이한 평가를 내리셨는지 보면, 이미 말씀을 드렸지만 다시 봅니다. 삿3:11, 30, 5:31, 8:28입니다.

 

사사기 3:11

11. 그 땅이 평온한 지 사십 년에 그나스의 아들 옷니엘이 죽었더라

사사기 3:30

30. 그 날에 모압이 이스라엘 수하에 굴복하매 그 땅이 팔십 년 동안 평온하였더라

사사기 5:31

31. 여호와여 주의 원수들은 다 이와 같이 망하게 하시고 주를 사랑하는 자들은 해가 힘 있게 돋음 같게 하시옵소서 하니라 그 땅이 사십 년 동안 평온하였더라

사사기 8:28

28. 미디안이 이스라엘 자손 앞에 복종하여 다시는 그 머리를 들지 못하였으므로 기드온이 사는 사십 년 동안 그 땅이 평온하였더라

거기서 다 “ 태평(평온)하였더라”고 말씀을 하고 있지만, 변변치 못했던 몇몇 사사들과 같이 삼손의 사역에 대하여 무엇이라고 평가를 내리고 있습니까? 삿15:20, 16:31의 말씀을 보세요!

 

사사기 15:20

20. 블레셋 사람의 때에 삼손이 이스라엘의 사사로 이십 년 동안 지냈더라

사사기 16:31

31. 그의 형제와 아버지의 온 집이 다 내려가서 그의 시체를 가지고 올라가서 소라와 에스다올 사이 그의 아버지 마노아의 장지에 장사하니라 삼손이 이스라엘의 사사로 이십 년 동안 지냈더라

지내었더라’라고만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사라는 특별한 사명을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삼손이 끝까지 얼마나 못난 짓을 했으면 이런 평가를 하셨겠습니까? 그런데 우리는 어떻습니까? 우리 중에 혹시 삿16:28-30의 말씀을 통하여 ‘와! 역시 삼손은 대단하다!’ 하면서 물개박수를 열심히 치고 있는 것은 아닙니까?

28. 삼손이 여호와께 부르짖어 이르되 주 여호와여 구하옵나니 나를 생각하옵소서 하나님이여 구하옵나니 이번만 나를 강하게 하사 나의 두 눈을 뺀 블레셋 사람에게 원수를 단번에 갚게 하옵소서 하고
29. 삼손이 집을 버틴 두 기둥 가운데 하나는 왼손으로 하나는 오른손으로 껴 의지하고
30. 삼손이 이르되 블레셋 사람과 함께 죽기를 원하노라 하고 힘을 다하여 몸을 굽히매 그 집이 곧 무너져 그 안에 있는 모든 방백들과 온 백성에게 덮이니 삼손이 죽을 때에 죽인 자가 살았을 때에 죽인 자보다 더욱 많았더라

말씀을 드렸듯이, 사사라면 이런 사사로운 자기 원수 갚는 일로 기도를 드린다면 그것은 너무나 부끄러운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들도 삼손처럼 자기가 구별된 거룩한 성도라는 것은 잘 알고 있으면서도, 세상에서 어떤 모습으로 지금까지 자기의 자리를 지키고 있었습니까? 

 

우리들의 생명록에도, 누구누구도 삼손처럼 그렇게 ‘단지 지내었다!’라고, 그렇게만 기록되어 있는 것은 아니십니까? 성도라면 달라도 달라야 합니다. 무엇이 달라도 달라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성도라고 하면서 자신이 블레셋 사람들과 들릴라 그리고 삼손과 무엇이 다릅니까? 성도는 오늘 등장인물처럼 힘과 돈에 빠져서 타협하고 팔아먹는 식은 절대로 안 됩니다. 야물딱스럽게 끝까지 믿고 끝까지 주님을 닮아가야 할 것입니다.

 

삼손의 싸움은 이스라엘을 위한 싸움이 아니었습니다. 다 자신의 개인적인 사사로운 일과 감정 때문에 그것도 율법을 지키지 않으면서 생긴 싸움을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내버려 두셨더라면 그는 이미 블레셋 사람들에게 수없이 죽었을 것입니다. 이스라엘을 구원하라고 엄청난 능력을 받았지만, 삼손은 끊임없이 개인적인 사사로운 일 때문에 어느 지경까지 넘어가게 되었는지 오늘 삿16장에서 더욱 분명하게 보여 주십니다. 삿16장에서만도 삼손은 두 여인에게 관심을 갖고 있었다고 고발하고 있습니다. 

 

1절에서는 한 기생에게 빠진 것으로 기록하고 있고 그리고 그 다음은 소렉 골짜기의 그 유명한 여인 들릴라에게 빠졌다고 4절에서 밝히고 있습니다. 삼손의 가장 큰 약점이요 문제점은 다름이 아니라 여자입니다. 삿14장에서도 블레셋 여인이었고, 삿16장에서도 여자들의 문제를 내내 지적하고 있습니다. 결국 삼손은 들릴라를 끝으로 처참한 인생을 마감합니다세상 감옥에서 더러운 죄에 빠진 세상들과 함께 삼손은 부끄러운 간절한 기도를 드리면서 죽었습니다

 

지금도 삼손은 자신의 일생을 돌아보면서 특히 마지막 그 기도를 생각하면서, 하나님 앞에서 피눈물을 흘리면서 고개도 들지 못하고 재를 뿌리며 회개하고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놀라지 않을 수가 없는 것은 이 기막힌 삼손에 대한 하나님의 경고의 말씀을 이해하지 못했었는지는 몰라도 얼마나 대단했고 은혜 충만했었는지, 많은 성도들의 사랑과 존경을 받았던 많은 주의 종들이 음란죄, 여자 문제로 어떤 고발과 고소를 당했는지 아십니까? 모르는 사람들이 거의 없을 것입니다. 

 

너무나 잘 알고 있습니다. 오늘 설교 때문에 결국 이런 목사들의 비행 특히 불륜사건에 대한 글을 찾게 되었는데, 거기에 쓰여진 내용을 보면, 저도 목사지만, 정말 할 말을 잃을 뿐입니다. 어떤 말까지 서슴지 아니하고 기록하고 있는가 하면, 성폭행과 성추행을 저지르는 단일직종으로는 아마도 목사가 최고인 듯하다고까지 언급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무슨 할 말이 필요하겠습니까? 목사와 관련된 추문은 그 외에도 셀 수가 없다고 하면서 끝을 맺고 있는데, 그런데 문제는 목사도 목사이지만, 목사들이 이 정도라고 한다면 그러면 성도들은 어느 정도일까요?

 

다 드러낸다면, 끔찍하다 못해 차마 눈도 뜨지 못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세상 사람들은 어떨까요? 그간의 모든 것이 다 밝혀진다면 불신과 의심으로 신경쇠약에 걸려서 미쳐버릴 것입니다. 나중에는 아예 자식을 낳지 않을 것입니다. 혼인을 하지 않을 것입니다. 결국 멸망할 것입니다. 성경에서 인간의 불륜에 대하여 이렇게까지 언급해 주실 때에는 누구든지 이 문제에 대해서만큼은 자유로울 수 없다는 것입니다

 

누구든지 이 문제는 대단히 조심해야 하지만, 특히 부부는 더욱 주의 또 주의하셔야 할 것입니다. 삼손이 망한 이유가 여자라는 것을 기억하시고 마찬가지로 부부는 늘 조심하셔야 할 것입니다. 이 문제에 대하여 나는 자신 있다는 마음이 있다면 그 사람은 반듯이 넘어질 것입니다. 그런 교만은 금물입니다. 고전7:1-5입니다.

1. 너희가 쓴 문제에 대하여 말하면 남자가 여자를 가까이 아니함이 좋으나
2. 음행을 피하기 위하여 남자마다 자기 아내를 두고 여자마다 자기 남편을 두라
3. 남편은 그 아내에 대한 의무를 다하고 아내도 그 남편에게 그렇게 할지라
4. 아내는 자기 몸을 주장하지 못하고 오직 그 남편이 하며 남편도 그와 같이 자기 몸을 주장하지 못하고 오직 그 아내가 하나니
5. 서로 분방하지 말라 다만 기도할 틈을 얻기 위하여 합의상 얼마 동안은 하되 다시 합하라 이는 너희가 절제 못함으로 말미암아 사탄이 너희를 시험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라

두 번째로 삼손을 통하여 생각해 보실 말씀은 삼손이 이렇게 타락한 이유가 어디에 있다고 생각을 합니까? 삿14장에 나오는 블레셋 여인 때문일까요? 삼손을 괴롭히는 블레셋 사람들 때문일까요? 아니면 삿16장에 나오는 기생과 들릴라 때문에 삼손이 처참하게 무너졌다고 생각을 하십니까? 아닐 것입니다. 삼손이 무너진 가장 근본적인 원인은 자신을 너무나 믿었기 때문입니다

 

자신을 믿었기에 자신을 지킬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이것이 은사의 약점이기도 합니다. 영적으로 무장이 안 된 자들에게 주시는 이런 은사들은 오히려 이렇게 자신과 모두에게 큰 재앙이 된다는 것을 명명백백하게 말씀해 주십니다. 오히려 삼손에게 그런 힘과 능력이 임하지 않았더라면 그는 오직 믿음을 가지고 충성하는 사사로 이스라엘을 세상으로부터 구원하는 일에 조금도 부족하지 않았을 지도 모릅니다.

 

그런 능력이 없었으면 그는 기도하고 하나님만을 바라보면서 이스라엘의 구원을 이루는 귀감이 되는 선한 도구로 인정을 받게 되지 않았을까요? 그랬을 것입니다. 삼손의 문제는 힘과 능력만을 의지하였고 스스로 자신을 영적으로 준비하지 않았기에 세상의 악한 세력에 지고 만 것입니다. 그래서 성도에게 주시는 말씀을 봅니다. 엡6:11-20입니다.

11. 마귀의 간계를 능히 대적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입으라
12.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을 상대하는 것이 아니요 통치자들과 권세들과 이 어둠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을 상대함이라
13. 그러므로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취하라 이는 악한 날에 너희가 능히 대적하고 모든 일을 행한 후에 서기 위함이라
14. 그런즉 서서 진리로 너희 허리 띠를 띠고 의의 호심경을 붙이고
15. 평안의 복음이 준비한 것으로 신을 신고
16. 모든 것 위에 믿음의 방패를 가지고 이로써 능히 악한 자의 모든 불화살을 소멸하고
17. 구원의 투구와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라
18. 모든 기도와 간구를 하되 항상 성령 안에서 기도하고 이를 위하여 깨어 구하기를 항상 힘쓰며 여러 성도를 위하여 구하라
19. 또 나를 위하여 구할 것은 내게 말씀을 주사 나로 입을 열어 복음의 비밀을 담대히 알리게 하옵소서 할 것이니
20. 이 일을 위하여 내가 쇠사슬에 매인 사신이 된 것은 나로 이 일에 당연히 할 말을 담대히 하게 하려 하심이라

우리 중에 자신만만한 것이 있습니까? 남에게 지지 않는 그 어떤 능력이 있습니까? 그러나 자신이 생명의 말씀으로 무장이 되어 있지 않으면 오히려 자신만만한 자신의 그 능력이 바로 자신을 무너지게 하는 원인이 될 수 있기에 드리는 말씀입니다. 때문에 은사를 구하거나 은사를 받은 성도들은 일차적으로 성령 충만을 유지해야만 됩니다. 단지 열심과 봉사와 전도와 드림이 아니라 자신의 삶의 내용과 기준과 목표가 하나님의 기준과 내용과 목표로 바뀌지 않으면 안 될 것입니다. 이것은 아는 것만으로 되지 않습니다

 

인식하고 있는 것으로도 안 됩니다. 삿16:17이 말씀이 증명하고 있지 않습니까? 다시 봅니다.

17. 삼손이 진심을 드러내어 그에게 이르되 내 머리 위에는 삭도를 대지 아니하였나니 이는 내가 모태에서부터 하나님의 나실인이 되었음이라 만일 내 머리가 밀리면 내 힘이 내게서 떠나고 나는 약해져서 다른 사람과 같으리라 하니라

잘 알고 있다고도 되는 문제가 아닙니다하나님의 원리와 방법이 전혀 불편하지 않을 정도로까지 되지 않고서는 힘과 능력의 은사를 구하면 위험합니다

 

은사를 받았을지라도 자신이 말씀으로 준비가 되어 있지 않으면, 준비가 될 때까지 기다리셔야 될 것입니다. 일꾼들이 열심히 섬기다가 실족하거나 넘어지는 것은 어떤 보이는 무엇 때문에 실족하는 것이 아닙니다. 자신의 적(敵)은 블레셋 사람도 들릴라도 아닌 바로 준비가 안 된, 설익은 자기 자신이 자신을 쓰러뜨리는 적(敵)이지, 보이는 그 어떤 무엇이 적의 세력이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성도는 빌2:1-5의 말씀을 늘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1. 그러므로 그리스도 안에 무슨 권면이나 사랑의 무슨 위로나 성령의 무슨 교제나 긍휼이나 자비가 있거든
2. 마음을 같이하여 같은 사랑을 가지고 뜻을 합하며 한마음을 품어
3. 아무 일에든지 다툼이나 허영으로 하지 말고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고
4. 각각 자기 일을 돌볼뿐더러 또한 각각 다른 사람들의 일을 돌보아 나의 기쁨을 충만하게 하라
5.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성도일지라도 자신의 일, 즉 세상의 일을 구하면 넘어집니다. 삼손을 보세요! 남이 넘어뜨리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자신을 넘어뜨리는 것입니다. 그러나 삼손처럼 자기의 일이 아니라 예수의 일을 구하면즉 그의 나라와 의를 구하면 성경의 말씀이 얼마나 소중하고 복된 생명의 말씀인지를 더욱 깨닫게 될 것입니다. 말씀이 전혀 부족하지 않다는 것을 자신만이 알게 될 것입니다. 이 복된 체험을 날마다 하게 되시기를 바랍니다. 아멘- 정말 아멘입니다. 성도는 빌3:7-14의 삶이 되어야 합니다.

7. 그러나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하던 것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길뿐더러
8.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기 때문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9.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 내가 가진 의는 율법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은 것이니 곧 믿음으로 하나님께로부터 난 의라
10. 내가 그리스도와 그 부활의 권능과 그 고난에 참여함을 알고자 하여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
11. 어떻게 해서든지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에 이르려 하노니
12.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 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달려가노라
13. 형제들아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14.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달려가노라

예수님의 이외의 것을 바울처럼 다 배설물로 여기지 않으면 삼손의 그 전철을 피하지 못할 것입니다. 빌3:10-11의 말씀을 특별하게 보세요! 내가 그리스도와 그 부활의 권능과 그 고난에 참예함을 알려 하여 그의 죽으심과 본받아(10) 어찌하든지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에 이르려 하노니” 신약의 서신 13개를 기록한 바울입니다. 바울만큼 하나님과 예수님에 대하여 잘 아는 일꾼이 어디에 있을까요? 없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무엇이라고 고백하고 있습니까

 

내가 그리스도와 그 부활의 권능과 그 고난에 참예함을 알려 하여” 알려고 한다고 하지 않습니까? 하나님을 더욱 깨달아 가는 것만큼 가치 있는 삶은 없기에 바울은 소중한 생명까지도 아끼지 않았습니다. 세상의 기준, 너무나 아끼던 세상의 그 어떤 것들도 하나님을 알기 위하여 버릴 때, 버리는 것만큼 하나님에 대한 믿음은 비례하여 자라갑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다는 것은 말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에 대한 사랑은 세상의 기준을 버린, 그 만큼만 하나님을 사랑할 수 있습니다그래서 꼭 그만한 신앙의 경륜과 신앙훈련의 시간이 절대적으로 요구 되지, 단지 종교행위와 달콤한 말로 깊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나는 하나님을 하늘만큼 땅만큼 사랑한다고 수억만 번을 고백 해 보셔야 아무 소용도 없습니다. 삼손의 약점이 우리들의 약점입니다. 준비 없이 은사를 좋아하면 삼손처럼 됩니다. 자신의 약점을  믿음으로 강점으로 돌려놔야 합니다

 

셋째로 삼손을 보시면, 얼마나 바보 같은 짓을 하고 있습니까? 점점 더 못난 짓을 하고 있습니다갈수록 더 어리석어 가는 삼손을 보고 있습니다. 마지막에는 세상 재물에 미친 들릴라에게 속아서 그것도 몇 번을 속습니까? 마르지 않은 푸른 칡으로 결박, 새 줄로 결박, 머리털 일곱을 위선과 섞어 짜면, 3번을 속이지만, 여기까지 오면 이제, 삼손이 그녀를 믿지 않았을 것 같은데, 그러나 들릴라의 재촉, 보채고 또 조르자 결국 밝혀서는 안 되는 그 비밀까지 밝히고 맙니다. 이해가 되는 사건입니까? 말도 안 되는 이야기 같습니다. 그러나 사실입니다. 삼손이 들릴라에게 당했던 이유는, 은 일천일백 개에 이미 배반하기로 한, 들릴라를 삼손이 미련하게도 믿었던 것입니다. 눈가풀이 씌었기에 그 와중에서도 비밀을 고백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돈에 빠진 들릴라를 믿었다가 삼손은 결국 눈이 뽑히고 세상 사람의 희롱을 당하다가 그들과 같이 죽습니다. 삼손도 이런 지경까지 가고 싶었겠습니까? 그러나 전혀 신앙이 준비 되어 있지 않았기에 그 유혹을 이겨낼 수 없었던 것입니다. 아니 사사이었지만 세상이 하나님보다 더 좋았던 것입니다. 그럴 수가 있을까? 하고 의심하게 되지만, 그러나 지금 우리들도 그렇지 않던가요? 나는 아니라고 할 수 있겠지만, 삼손처럼 역시나 세상의 돈에 빠져서 머뭇거리지 않던가요? 성도라는 우리들도 세상에 깊이 빠져서 삼손처럼 바로 그 절망의 길로 가고 있지 않던가요? 

 

그런 교인들이 어디 한두 명입니까? 돈과 명예와 권세가 다가 아니다 더 이상 속지 말라, 따라가지 말라, 아무리 말리고 말려도, 웃기지 말라는 식으로 비아냥거리며 순종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세상에 속고 있는 교인들을 보면 이해할 수 없었던 삼손과 전혀 다르지 않습니다. 오늘 말씀을 보면, 누가 누구를 웃기고 있습니까? 속고 있는 삼손을 보고 한심하다고 하면서 왜 삼손처럼 세상에 속아서 살고 있는 자기 자신은 한심하지 않습니까? 삼손이 어떻게 출생했고 어떤 능력을 받았습니까? 

 

그러나 그의 인생과 죽음 앞에서 그의 마지막 기도까지 기대하고는 정 반대입니다. 왜 이렇게 되었을까요? 자기가 얼마나 미련한 사사인지를 몰랐던 것입니다. 죄가 발견되면 사사일지라도 그 즉시, 회개하고 감추지 말아야 하는데, 감추다가 이 꼴을 당한 것입니다. 밝혀진 자신의 죄를 회개하지 않으면, 인정하지 않으면 더욱 미련해 지고 나빠지면서, 삼손처럼 마감합니다. 잠시, 잠시 겨우 모면하려고 하지 마세요! 하나님 앞과 성도 앞에는 솔직하셔야 합니다. 자존심 때문에 이 볼품없는 세상에서 바보가 되지 않으려고 숨기다가, 삼손처럼 영원한 바보가 될  수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드릴 말씀은 그런 기도까지도 들어 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리고 결국 타락한 삼손, 죽어가는 삼손의 기도를 통하여서도 이스라엘의 구원을 이루어내셨다는 점입니다. 하나님의 뜻은 그 어떤 방해 속에서도 머뭇거림 없이 결국 이루시고야 마십니다. 그렇다면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요? 자기 고집을 버려야 합니다. 항복을 어떻게 하지 않을 수가 있어요? 손에 들린 모든 것을 다 내려놓아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만을 바라보기 위하여 주신 생명의 말씀을 마음 판에 새겨야 합니다. 주야로 말씀을 묵상할 수밖에 없어야 할 것입니다. 말씀만이 나를 부끄럽게 하지 않게 하시기에 시119:6116의 말씀이 확인이 됩니다.

시편 119:6

6. 내가 주의 모든 계명에 주의할 때에는 부끄럽지 아니 하리이다

시편 119:116

116. 주의 말씀대로 나를 붙들어 살게 하시고 내 소망이 부끄럽지 말게 하소서

동의하십니까? 아멘- 아멘입니다. 말씀이 금은보화처럼 아니 그보다 더 소중하다는 것을 알게 될 그때, 부끄러움이 아니라  시27편의 고백이 터져 나올 것입니다. 1-6절입니다.

시편 27:1-6

1. 여호와는 나의 빛이요 나의 구원이시니 내가 누구를 두려워하리요 여호와는 내 생명의 능력이시니 내가 누구를 무서워하리요
2.  나의 대적 나의 원수된 행악자가 내 살을 먹으려고 내게로 왔다가 실족하여 넘어졌도다
3. 군대가 나를 대적하여 진칠찌라도 내 마음이 두렵지 아니하며 전쟁이 일어나 나를 치려할지라도 내가 오히려 안연하리로다
4. 내가 여호와께 청하였던 한 가지 일 곧 그것을 구하리니 곧 나로 내 생전에 여호와의 집에 거하여 여호와의 아름다움을 앙망하며 그 전에서 사모하게 하실 것이라
5. 여호와께서 환난 날에 나를 그 초막 속에 비밀히 비키시고 그 장막 은밀한 곳에 나를 숨기시며 바위 위에 높이 두시리로다
6. 이제 내 머리가 나를 두른 내 원수 위에 들리리니 내가 그 장막에서 즐거운 제사를 드리겠고 노래하여 여호와를 찬송하리로다

우리 모두의 이 고백이 이루어지게 하시려고 아기 예수님이 이 세상에 오셨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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