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돌교회

4/13/2025 이사야 47:1-15 본문

주일 설교 말씀

4/13/2025 이사야 47:1-15

PastorYK 2025. 4. 14. 14:01

말씀: 사47:1-15                                              

제목: 너를 구원할 자가 없다

                       

 

오늘 사47장의 말씀뿐만 아니라 예수님 때문에 오늘도 종려주일을 맞습니다. 사47장을 비롯한, 그리고 종려주일을 통하여 결코 잊지 말아야 되는 것은 구약의 모든 약속 특히 구원을 이루기 위한 선택을 하신 최후의 날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날의 가치가 어떤 것인지는 4복음서에서 다 기록하고 있는 말씀으로 확인이 될 것입니다.

 

특히 눅 19:28-40입니다. 예수께서 이 말씀을 하시고 예루살렘을 향하여 앞서서 가시더라, 감람원이라 불리는 산 쪽에 있는 벳바게와 베다니에 가까이 가셨을 때에 제자 중 둘을 보내시며, 이르시되 너희는 맞은편 마을로 가라 그리로 들어가면 아직 아무도 타 보지 않은 나귀 새끼가 매여 있는 것을 보리니 풀어 끌고 오라, 만일 누가 너희에게 어찌하여 푸느냐 묻거든 말하기를 주가 쓰시겠다 하라 하시매, 보내심을 받은 자들이 가서 그 말씀하신 대로 만난지라, 나귀 새끼를 풀 때에 그 임자들이 이르되 어찌하여 나귀 새끼를 푸느냐, 대답하되 주께서 쓰시겠다 하고, 그것을 예수께로 끌고 와서 자기들의 겉옷을 나귀 새끼 위에 걸쳐 놓고 예수를 태우니, 가실 때에 그들이 자기의 겉옷을 길에 펴더라, 이미 감람 산 내리막길에 가까이 오시매 제자의 온 무리가 자기들이 본 바 모든 능한 일로 인하여 기뻐하며 큰 소리로 하나님을 찬양하여, 이르되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왕이여 하늘에는 평화요 가장 높은 곳에는 영광이로다 하니, 무리 중 어떤 바리새인들이 말하되 선생이여 당신의 제자들을 책망하소서 하거늘,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만일 이 사람들이 침묵하면 돌들이 소리 지르리라 하시니라

 

너희들이 잠잠할 경우에 돌까지도 소리를 질러야 되는 이 날입니다. 그날 주님께서 입성하실 때, 누구든지 어린 당나귀를 타고 입성하시는 주님을, 소선지서인 스가랴9:9에서 예언되었던 그대로 사람들이 종려나무를 가지고 입성하시는 주님을 환대하였기 때문에 그래서 이날을 종려주일로 지금까지 기리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왜 많고 많은 나무 중에 종려나무인가? 

 

종려나무는 시92:12-14에서도 알 수 있는데, “의인은 종려나무 같이 번성하며 레바논의 백향목 같이 성장하리로다, 이는 여호와의 집에 심겼음이여 우리 하나님의 뜰 안에서 번성하리로다, 그는 늙어도 여전히 결실하며 진액이 풍족하고 빛이 청청하니 번영과 아름다움 그리고 승리의 상징이기 때문입니다.

 

계7:9-12도 보세요! 이 일 후에 내가 보니 각 나라와 족속과 백성과 방언에서 아무도 능히 셀 수 없는 큰 무리가 나와 흰 옷을 입고 손에 종려가지를 들고 보좌 앞과 어린 양 앞에 서서, 큰 소리로 외쳐 이르되 구원하심이 보좌에 앉으신 우리 하나님과 어린 양에게 있도다 하니, 모든 천사가 보좌와 장로들과 네 생물의 주위에 서 있다가 보좌 앞에 엎드려 얼굴을 대고 하나님께 경배하여이르되 아멘 찬송과 영광과 지혜와 감사와 존귀와 권능과 힘이 우리 하나님께 세세토록 있을 지어다 아멘 때문에 너희들이 예루살렘으로 입성하는 하나님의 아들인 나를 맞지 않는다면, 40절에서 하신 말씀처럼 오히려 ‘돌들이 소리 지르리라’하고 하셨던 것입니다.

 

어떤 날이기에 너희들이 환대하지 아니한다면 돌들도 맞을 것이라고 하시는가? 사47장에서 알 수 있었습니다. 누구든지 죄로 죽어야 되는 모든 사람들을 구원하시고자, 죽으러 약속하신 그날 약속 그대로 입성하신 그날은 엄청나게 복된 날이었기 때문입니다. 이해가 되나요? 영원한 승리와 번영을 이루어주시려는 이 날을 아무 것도 아닌 돌들까지도 알고 주님을 맞을 것이라고 하셨던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 우리들이 그분을 온전히 찬송하지 않는다고요? ~ 당시 종려나무를 흔들었다는 그 뜻은 전쟁에서 승리한 왕이나 개선장군에 대한 경의 표시였던 것처럼, 예수님도 죄로 멸망을 당한 자녀들의 번영과 승리를 위한 왕으로 입성하셨기에 다들 나와서 종려나무를 흔들어서 ‘호산나(지금 구원하소서)’라고 하면서 승리를 이루실 주님을 환대했던 것입니다. 결국 우린 구세주시오 왕이신 예수님의 죽음으로 구원을 받고 영원한 승리자가 되어 번영의 날을 준비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2000년이 지난 지금도 우린 이 날을 기리고 있는 것이기에 그래서 저희 교회에서도 오늘, 김 성은 자매에게 그 큰 뜻을 이루어 주신 예수님을 기리는 차원에서 세례식을 준비했던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사47장의 말씀에서도 알 수 있는 것은 처녀 딸 바벨론까지도 죄로 망할 것이기에 종려주일뿐만 아니라 예배를 드린다는 것이 어떤 가치인지를 알아야 한다는 뜻에서의 오늘 설교입니다. 그런데 왜 주전 690년경에 주전 539년경에 있을 바벨론의 멸망에 대한 이 예언의 말씀을 하시는 것인가?

 

문제는 이미 그 전에 남 유다도 바벨론의 공격으로 망하지 않던가요? 바벨론에 의하여 주전 605년, 주전 598년, 주전 586년에 걸쳐 3번 공격을 받고 멸망을 당할 남 유다를 향하여 주전 690년경에 예언을 하고 계십니다. 게다가 주전 539년에 바벨론이 메대 바사국의 공격을 받고 망하게 됩니다. 그러니까, 주전 690년에 바벨론이 망할 것이라는 이 예언은 앞으로 150년 후에 바벨론이 멸망할 말씀인데, 왜 계속해서 이 예언을 말씀하시고 계시는 것일까요? 구원을 받을 나라와 사람들이 없기에 구원의 약속을 받은 너희들은 대단히 복되더라는 뜻에서의 반복된 강조라는 것입니다. 

 

사13:19를 보시면 바벨론이 멸망할 것을 예언하셨고, 사14장에서도 바벨론의 멸망을 말씀하십니다. 4절과 21-23절의 말씀도 보세요! 4-너는 바벨론 왕에 대하여 이 노래를 지어 이르기를 압제하던 자가 어찌 그리 그쳤으며 강포한 성이 어찌 그리 폐하였는고, 21-23 너희는 그들의 조상들의 죄악으로 말미암아 그의 자손 도륙하기를 준비하여 그들이 일어나 땅을 차지하여 세상을 가득하게 하지 못하게 하라, 만군의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내가 일어나 그들을 쳐서 이름과 남은 자와 아들과 후손을 바벨론에서 끊으리라 나 여호와의 말이라, 내가 또 그것이 고슴도치의 굴혈과 물웅덩이가 되게 하고 또 멸망의 빗자루로 청소하리라 나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하시니라” 

 

여기서도 이미 계속해서 바벨론의 멸망을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물론 다른 나라인 앗수르도 멸망을 당할 것이라는 예언을 사10:24-27, 사14:24-27에서도 하셨습니다. 그리고 예언하신 그대로 다 이루어졌던 것이 사실은 중요한 관건인데, 문제는 어디에 있던가요? 북이스라엘도 우상숭배로 앗수르에 의하여 주전722년에 망했고 남 유다도 말씀드린 그대로 바벨론의 포로가 되고 맙니다. 그리고 남 유다는 다시 70년 후에 예루살렘으로 돌아오게 되는데, 이것도 이미 다 예언이 되었던 것입니다수백 년 전의 예언그대로 이루어져서 누구는 영원히 역사에서 끝이 났고 누구는 다시 돌아와서 회복하더라는 것입니다.

 

왜요? 그것은 오직 약속 때문이라고 말씀을 이미 드린 바 있습니다. 언약이 그 이유입니다. 멸망과 회복이 자기들의 잘남과 못남에 달려 있던 것이 아니라, 오직 약속으로 인하여 그 운명이 나뉘었다는 것을 알라는 것입니다. 이 점을 알게 하시려고 같은 예언을 반복해서 하셨던 것입니다. 다시 말씀을 드리면 하나님의 약속은 약속일 뿐 만이 아니라 수천 년 전에 약속을 하셨을지라도 그 약속은 그 시간이 되면 정확하게 일점일획도 거짓이 없이 사실로 드러나게 하시고 말더라는 것입니다. 이 점을 통하여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결코 잊지 말라는 것입니다. 이런 예언 된 말씀들이 정확하게 성취가 되는 것을 보면서, 신실하신 하나님을 의뢰하게 하시려고, 의지하게 하시려고 하나님만이 기쁨이 되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그래서 믿는 너희들을 약속대로 영원한 승자가 되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신실하신 하나님을 믿으므로 너희의 의를 빛처럼, 너희들의 공의를 정오의 빛처럼 영원히 빛나게 하시려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돈과 힘과 권력과 지혜보다 전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월등하다는 것을 밝히시면서 더 이상 모든 강대국들처럼 앗수르나 바벨론이나 메대 바사인 페르시아나 그리이스나, 로마처럼 세상의 힘과 재물과 영광 때문에 방황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다 방황하여 하나님의 심판을 한 사람도 피할 수 없었지만, 하지만, 야곱의 자손 너희들은 다른 존재라는 것입니다. 너희들이 하나님의 말씀만을 따른다면, 그 선택은 상상 이상의 수확을, 아니 그 이상의 지혜와 그 이상의 자랑과 승리를 얻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구약 내내 이 점을 알게 하시려고 이렇게 예언을 반복하셨던 것입니다

 

이렇게 인간의 역사를 통하여 하나님께서 이런 식으로 반복적으로 내내 주장, 간섭하고 계시는 그 이유는 그건 이 세상의 부와 권력과 지혜와 힘으로는 복된 인간의 역사를 만들 수 있다, 없다? 없다는 것을 알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처럼 끝까지 그 영원한 승리와 번영의 복을 유지할 수 있다 없다? 없기 때문에 반복하시고 계시는 것입니다. 당대 바벨론이 최강이었을지라도 자기 자신의 백성들조차도 지켜내지 못했던 것을 우린 사47장에서 알 수 있었습니다.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는 것을 속수무책으로 무너질 것이라는 것을 지금 우린 사47장을 통하여 알 수 있게 하십니다. 그건 바벨론만이 아닙니다. 

 

단지 힘만으로는 불가능했음을 그간의 강대국을 통하여 확인을 시켜 주시고 계십니다. 힘과 부와 능력의 앗수르도 바벨론도 메대 바사국도 페르시아도 그리스도 로마도 다 패권을 거머쥐었지만 결국 사라지고 말았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실패에 대한 기준을 보면, 마치 도덕과 윤리 차원 또는 힘이 없는 결과로 역사학자들이 평가하고 있지만 아니라는 것을 은혜를 입은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오직 승패, 승부는 누가 어느 나라가 하나님에게 항복했느냐로 그 판가름이 난다는 것이 성경에서의 말씀입니다.

 

그렇다면, 그 진리를 누가 알까요? 누가 믿을 수 있을까요? ~ 하나님만이 창조주이시고, 구원이시고, 모든 역사의 왕이시고 주인이심을, 오직 은혜 입는 자녀들만이 알게 하셨습니다. ~ 역사학자들이 나름대로 인류의 역사에 대하여 성경하고 다르게 평가하고 있지만,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성경하고 다른 평가를 하는 역사학자의 주장을 믿고 살아가기에, 그래서 은혜를 입은 우리들이 그들에게 설명할 말이 없지만, 그러나 누가 진정한 지혜요 승자요 자랑입니까? ~ 지금 제가 여러분들에게 이 말씀을 드리는 이유는 제가 하나님만이 정답이라고 아무리 말을 해도 믿을 사람과 믿지 못하는 사람으로 늘 나뉜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나 지금 제가 이 말씀을 드리는 이유는 제가 여러분들을 이 말씀을 믿게 할 수 있고, 없고의 뜻에서의 말씀이 아닙니다. 하나님만이 주인이심에 대한 이 말씀을 전하고 듣고 있는 나는, 하나도 의심하지 않는 자가 되었기에, 그래서 하나님만을 의뢰하고 기뻐하면서 다 맡기고 있는가? 아니면 그렇지 않은가? ~ 이 점을 실은 주일 설교마다 늘 묻고 있는 것입니다. 왜요? 목사인 저는 하나님을 믿는 자로써 그 하나님을 전하는 자로써의 역할 뿐이지, 그 외에는 아무 것도 할 수 없기에 그렇습니다. 부연을 하자면, 믿게 된 자녀들이 보이는 세상에서의 유혹에 더 이상 속지 말고 나를 나 되게 하신 하나님만을 의뢰하여 은혜를 입은 자로써의 역할을 꼭 해야 되기 때문입니다. 그 역할이 너무나 중요하기에, 같은 내용을 사47장에서 또 이렇게 예언하시는 것입니다. 이 반복은 잔소리로 들릴 수도 있겠지만, 결코 하나님이 누구신지를 잊으면 안 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어떤가요? 거의가 무엇을 따르던가요? 하나님의 말씀인가요? 세상인가요? 세상을 따라가고 있습니다. 그러니 왜 이렇게 구약 내내 같은 말씀을 반복적으로 해야 되셨는지 그 이유를 아시겠습니까? 한 영혼이 회개하고 오직 하나님만을 의뢰하고 기뻐하기에 다 맡기는 그 선택이 결코 쉽지 않다는 것이 아닙니까? 이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은 어떤 기적이 아니라, 중생된 자들이 계속해서 이 말씀을 주야로 묵상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우주만물을 창조하시고 나서 그 반복은 수천 년 동안에 반복되고 있습니다. 누가 그 반복을 통하여 하나님만이 진리시고 길이시고 생명이 되심을 믿던가요? 오직 은혜를 입은 자들만이 믿고 그분에게 항복하여 종려나무를 들고서 승리를 주신 주님을 찬송하고 있는 것인데, 그 안에 여러분이 지금 동참하고 있나요? 그 동참이 어떤 복이요 능력이요 승리인지 알기에, 더 이상 보이는 힘에 요동하지 않고 있나요? ~ 분명한 진리는 하나님만이 우주만물을 영원 전부터 창조하신 후에 영원토록 온 우주만물을 다스리고 계십니다. 인간의 역사를 전혀 차질 없이 정확하게 합당하게 주장하고 계십니다. 인간의 역사를 다스리고 간섭하시면서 한 치의 착오도 없이 정확하게 모든 약속들을 이루어 주시고 계십니다.

 

그래서 그 하나님이 여러분의 자랑이요 기쁨입니까? 자족하고 있기에, 늘 감사하고 있나요? ~ 그 감사를 위하여 그래서 반복적으로 예언하시는 것입니다. 역사를 온전히 다스리시고 주장하시는 능력의 하나님, 신실하신 하나님 때문에 순종하고 있는지 지금도 저를 통하여 각자에게 묻고 계십니다. 그 물음에 어떤 대답을 하시나요? ~ 만약에 아직도 이 말씀이 나의 삶의 모사요 지혜요 즐거움이요 되지 않아서, 주야로 묵상하지 못하고 있다면, 지금 그 사람은 사47장에서의 처녀 딸 바벨론이 바로 자기라는 것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그 사람에게는 어떤 심판이 임할 것이라고 예언하시던가요?

 

사47:1-3을 보세요! “처녀 딸 바벨론이여 내려와서 티끌에 앉으라 딸 갈대아여 보좌가 없어졌으니 땅에 앉으라 네가 다시는 곱고 아리땁다 일컬음을 받지 못할 것임이라, 맷돌을 가지고 가루를 갈고 너울을 벗으며 치마를 걷어 다리를 드러내고 강을 건너라, 네 속살이 드러나고 네 부끄러운 것이 보일 것이라 내가 보복하되 사람을 아끼지 아니하리라” 

 

무엇보다도 하나님을 경외하지 못하고 외면하는 자는 100% 망하는 것이 규정 사실이요 진리라는 것을 우린 구약의 역사를 통하여 얻은 답입니다. 그래서 렘2:19과 렘6:8에서 하시는 말씀을 보세요! 19-네 악이 너를 징계하겠고 네 반역이 너를 책망할 것이라 그런즉 네 하나님 여호와를 버림과 네 속에 나를 경외함이 없는 것이 악이요 고통인 줄 알라 주 만군의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6:8-예루살렘아 너는 훈계를 받으라 그리하지 아니하면 내 마음이 너를 싫어하고 너를 황폐하게 하여 주민이 없는 땅으로 만들리라” 망하고 만다는 것인데 역시나 다 망하고 말았습니다. 다 역사 속으로 심지어 북이스라엘까지도 다 같이 심판을 받고 영원히 버려지고 만 것입니다. 그래서 하시는 말씀이 시37:1-2, 7-8입니다. “1-2, 악을 행하는 자들 때문에 불평하지 말며 불의를 행하는 자들을 시기하지 말지어다, 그들은 풀과 같이 속히 베임을 당할 것이며 푸른 채소 같이 쇠잔할 것임이로다, 7-8, 여호와 앞에 잠잠하고 참고 기다리라 자기 길이 형통하며 악한 죄를 이루는 자 때문에 불평하지 말지어다, 분을 그치고 노를 버리며 불평하지 말라 오히려 악을 만들 뿐이라 

 

이 말씀이 왜 중요한지 이해가 되시나요? 악인들은 다 은혜를 입은 나를 위한 도구일 뿐입니다. 나를 훈련하여 점과 흠이 없는 자가 되게 하시려고 세운 사라져 심판을 받아야 될 불쌍한 세력일 뿐입니다. 그러니 세상 세력들을 불평할 것도 미워할 것도 없다는 것입니다. 우린 바벨론처럼 곧 망하고 마는 세상의 세력에 대한 그 특징을 알아야 합니다. 왜요? 우리라는 존재들은 악인의 그 특징을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엄마 뱃속에서부터 가지고 나왔기 때문에 악인을 보고 준비를 해야 되기 때문입니다.

 

악인들은 시36:1-4입니다. “악인의 죄가 그의 마음속으로 이르기를 그의 눈에는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빛이 없다 하니, 그가 스스로 자랑하기를 자기의 죄악은 드러나지 아니하고 미워함을 받지도 아니하리라 함이로다, 그의 입에서 나오는 말은 죄악과 속임이라 그는 지혜와 선행을 그쳤도다, 그는 그의 침상에서 죄악을 꾀하며 스스로 악한 길에 서고 악을 거절하지 아니하는도다 

 

두려워하지 않는 것, 교만하여 자기의 죄가 드러나지 않을 것이라는 것, 그래서 미워함을 받지 않으며, 스스로 속고 있다는 것, 그리고 선행이 없고, 늘 죄를 꾀하면서도 회개하지 못하는 이 악인은 누구하고 닮았나요? 처녀 딸 바벨론하고 닮지 않았나요? 

 

사47:7-8입니다. “말하기를 내가 영영히 여주인이 되리라 하고 이 일을 네 마음에 두지도 아니하며 그들의 종말도 생각하지 아니하였도다, 그러므로 사치하고 평안히 지내며 마음에 이르기를 나뿐이라 나 외에 다른 이가 없도다 나는 과부로 지내지도 아니하며 자녀를 잃어버리는 일도 모르리라 하는 자여 너는 이제 들을지어다 

 

이 모든 모습이 바로 나의 옛 실체라는 것이 아닙니까? 이 문제를 해결하여 의의 산을 쌓게 하시려고 주신 것이 구원이요 은혜이기에 은혜는 1. 시36:1에서 악인은 생명의 빛이 없기에, 하나님에 대한 두려움이 없지만, 그러나 생명의 빛이 임하면, 하나님을 두려워하게 될 것입니다. 지금 어떤가요? 나는 정말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있나요? 아니면 그 두려움이 없던가요? 두려움이 없다면 더 이상 할 말은 없지만, 그러나 지금 만약에 자기가 하나님을 두려워한다면, 그 두려움이 가져 다 주는 것이 무엇이던가요? 이 두려움이 나를 어떻게 어디로 무엇을 하게 하던가요? 세상의 헛된 것들을 버리고 거룩함에 이루기 위하여 믿음의 훈련을 쉬지 않게 하고 동시에 세상의 세력을 제압하기 위한과 싸움이 쉬지 않을 것입니다. 

 

2. 시36:2에서 알 수 있듯이, 악인들은 자기 죄악은 드러나지 않고, 미워함도 받지도 않을 것이라는 자기 확신에 빠져 심판의 날, 자기죽음까지도 전혀 준비하지 않게 될 것입니다. 이런 모습이 자기라면, 이런 어리석은 확신이 있다면 그건 악인입니다. 그러나 의인은 그 반대이기에 점점 더 시간이 지날수록 나이가 들수록 하나님을 더욱 경외하면서 죽음과 심판의 날을 준비하게 되는데 이것이 악인과 다른 것입니다. 

 

3. 시36:3-4에서 알 수 있듯이, 악인은 스스로 믿음의 지혜가 없기에 스스로 속이게 되고, 선행보다는 악을 꾀하더라는 것입니다. 그러니 하나님의 의가 하나님의 산들과 같고 주의 심판은 큰 바다와 같은데 당연히 하나님의 심판은 따 놓은 장본인이 되지 않을 수가 있을까요? 이 심판을 그 누도 피할 수도 면할 수도 없기에, 주의 인자하심이 하늘에 있고 주의 진실하심이 공중에 사무쳐 있으신 하나님의 그 은혜로 두려움이 아닌 행복한 자로, 좌절이 아닌 승리의 소망을 얻은 복된 자가 되었기에, 사47장의 그 심판에서 벗어났기에 놀라운 종려주일을 오늘도 깊고 큰 감동과 감격 속에서 맞아야 되는 것이 아닙니까? ~ 나의 신앙이 돌보다는 나아야 될 것이 아닙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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