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돌교회

9/22/2024 이사야 18:1-7 본문

주일 설교 말씀

9/22/2024 이사야 18:1-7

PastorYK 2024. 9. 23. 12:30

말씀: 사18:1-7                                            

제목: 구스의 예언 

 

 

 

오늘은 하나님께서 구스에 주시는 예언의 말씀입니다. 우리들이 사18장을 통하여 알아야 되는 점은 왜 하나님께서 구스라는 나라에게까지 선지자를 통하여 이런 말씀을 해 주시는 것인가? 라는 궁금증을 갖게 합니다. 거기에는 이유가 있었습니다. 그건 다름이 아니라, 구스라는 나라가 사18:1을 보면, 그 당시 앗수르의 침공 때문에 심하게 두려워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합니다.

 

그런데 사18:2의 말씀을 두 가지로 해석하고 있습니다. 그 하나는 사18:2의 말씀을 남 유다에서 구스에 사신을 보내면서 앗스르의 멸망에 대한 위로의 말씀이라는 해석입니다. 그러니깐, 1절은 앗수르 때문에 두려워하면서 전쟁 준비를 하던 구스를 표현하고 있다면, 2절의 말씀을 남 유다가 배를 띄워서 구스로 사신을 보내어 앗수르가 망한다는 예언의 말씀을 전하라는 뜻으로 해석을 하고 있습니다. 그 해석에서도 중요한 하나님의 뜻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그 당시 남 유다도 앗수르의 침략에 대하여 두려워하면서 주변국인 구스를 비롯하여 애굽에게까지도 도움을 청했던 것입니다.

 

사30:1-2입니다.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패역한 자식들은 화 있을진저 그들이 계교를 베푸나 나로 말미암지 아니하며 맹약을 맺으나 나의 영으로 말미암지 아니하고 죄에 죄를 더하도다, 그들이 바로의 세력 안에서 스스로 강하려 하며 애굽의 그늘에 피하려 하여 애굽으로 내려갔으되 나의 입에 묻지 아니하였도다“ 

 

사31:1-3입니다. “도움을 구하러 애굽으로 내려가는 자들은 화 있을진저 그들은 말을 의지하며 병거의 많음과 마병의 심히 강함을 의지하고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이를 앙모하지 아니하며 여호와를 구하지 아니하나니, 여호와께서도 지혜로우신즉 재앙을 내리실 것이라 그의 말씀들을 변하게 하지 아니하시고 일어나사 악행하는 자들의 집을 치시며 행악을 돕는 자들을 치시리니, 애굽은 사람이요 신이 아니며 그의 말들은 육체요 영이 아니라 여호와께서 그의 손을 드시면 돕는 자도 넘어지며 도움을 받는 자도 엎드러져서 다 함께 멸망하리라” 

 

그러니깐 ‘하나님의 힘만으로는 앗수르를 이길 수 없다, 나라를 지킬 수 없다는’라는 남 유다의 불신앙 때문에, 그 차원에서의 남 유다의 사신을 애굽으로 보냈다는 점입니다. 그래서 이런 부끄러운 남 유다의 모습,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전혀 없음을 이미 아셨기에,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남 유다의 사자를 구스나라로 보내시면서 앗수르는 멸망을 당할 것이라고 전하라고 하시면서, 애굽의 도움을 받으려는 남 유다의 불신앙을 지적하신 것입니다. 즉 남 유다, 너희들은 하나님만을 믿고 세상 세력인 앗수르에 대하여 전혀 두려워할 이유가 없다! 어떻게 인간의 나라, 우상을 믿는 이방 나라 애굽과 애굽을 정복한 그 구스를 의지하려는가? 이보다 큰 수치가 어디에 있는가를 지적하심으로서 믿음을 가지라는 뜻에서의 2절의 말씀이라는 것입니다.

 

물론 구스라는 나라가 이방나라이었지만 알려지기를 장대하고 준수한 나라라고 했습니다. 그럴만한 것이 구스가 신앙 면에서도 보면, 솔로몬 시대의 구스 여왕이 솔로몬 왕을 찾은 적이 있었고, 행8:26-40에 보면 알 수 있는데, 초대 교회 때에는 구스의 여왕 간다게의 모든 국고를 맡은 관리인 내시가 예배하려 예루살렘으로 왔던 것을 보면 이방나라였지만 달랐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구스의 힘으로도 보면 주전715년부터 주전664년까지 애굽을 점령한 적이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니 당연히 당시 패권을 다투었던 앗수르로서는 구스하고 적대관계가 되었고 특히 위치적으로도 보아도, 남 유다 다음 접경국이 바로 구스였습니다. 그러니깐, 앗수르가 북이스라엘과 아람을 당시에 점령하고 그리고 나서 앗수르가 남 유다를 치려고 했을 때, 그 다음 앗수르의 공격 대상은 구스와 애굽이었던 것입니다. 그렇게 되자, 믿음이 있었어도 구스로서는 초긴장할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심하게 두려워하고 있을 때, 어떤 기쁜 소식을 보내주셨나요? 

 

사18:3-6입니다. “세상의 모든 거민, 지상에 사는 너희여 산들 위에 기치를 세우거든 너희는 보고 나팔을 불거든 너희는 들을지니라,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내가 나의 처소에서 조용히 감찰함이 쬐이는 일광 같고 가을 더위에 운무 같도다, 추수하기 전에 꽃이 떨어지고 포도가 맺혀 익어갈 때에 내가 낫으로 그 연한 가지를 베며 퍼진 가지를 찍어 버려서, 산의 독수리들과 땅의 들짐승들에게 던져 주리니 산의 독수리들이 그것으로 여름을 지내며 땅의 들짐승들이 다 그것으로 겨울을 지내리라 하셨음이라 

 

앗수르가 하나님에 의하여 망할 것이라는 예언의 말씀을 전해 줬던 것입니다. 그때 구스는 얼마나 기뻐했을까요?  그런데 그런 놀라운 예언이 그대로 적중하면서 앗수르가 하나님에 의하여 망하게 됩니다. 남 유다를 침공했지만 단 하루 만에 군사 185,000명이 죽으면서 앗수르 왕 산헤립은 니느웨로 돌아가게 됩니다. 이를 확인한 구스에서는 어떤 선택을 한다고 예언을 하시던가요?

 

사18:7을 보세요! “그 때에 강들이 흘러 나누인 나라의 장대하고 준수한 백성 곧 시초부터 두려움이 되며 강성하여 대적을 밟는 백성이 만군의 여호와께 드릴 예물을 가지고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을 두신 곳 시온 산에 이르리라

 

남 유다를 지켜 주신 하나님, 앗수르를 멸하게 하신 하나님에게, 하나님께서 계시는 시온 산으로 구스가 예물을 가지고 경배하러 올 것이라는 예언의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아니 심히 두려워 떨던 구스에게 승리의 소식과 함께 앗수르를 물리쳐 주시더니 그것도 부족하여 구스에게 어떤 복을 주시겠다고 합니까? 믿음까지 주시겠다는 것이 아닙니까? ~ 

 

그날에 구스가 하나님에게 예물을 가지고 온다는 것은 앗수르를 멸망케 한, 복보다 더 큰 복이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왜요? 믿음을 가진 자들에게 어떤 회복과 복이 임하던가요? 그 놀라운 믿음의 복에 대한 말씀이 사55장, 60장, 61장, 62장만 보더라도 잘 알 수 있습니다. 

 

한 곳만 먼저 봅니다. 사55장입니다. 오호라 너희 모든 목마른 자들아 물로 나아오라 돈 없는 자도 오라 너희는 와서 사 먹되 돈 없이, 값없이 와서 포도주와 젖을 사라, 너희가 어찌하여 양식 아닌 것을 위하여 은을 달아 주며 배부르게 하지 못할 것을 위하여 수고하느냐 내게 듣고 들을지어다 그리하면 너희가 좋은 것을 먹을 것이며 너희 자신들이 기름진 것으로 즐거움을 얻으리라, 너희는 귀를 기울이고 내게로 나아와 들으라 그리하면 너희의 영혼이 살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영원한 언약을 맺으리니 곧 다윗에게 허락한 확실한 은혜니라보라 내가 그를 만민에게 증인으로 세웠고 만민의 인도자와 명령자를 삼았나니, 보라 네가 알지 못하는 나라를 네가 부를 것이며 너를 알지 못하는 나라가 네게 달려올 것은 여호와 네 하나님 곧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이로 말미암음이니라 이는 너를 영화롭게 하였느니라, 너희는 여호와를 만날 만한 때에 찾으라 가까이 계실 때에 그를 부르라, 악인은 그의 길을, 불의한 자는 그의 생각을 버리고 여호와께로 돌아오라 그리하면 그가 긍휼히 여기시리라 우리 하나님께로 돌아오라 그가 너그럽게 용서하시리라, 이는 내 생각이 너희 생각과 다르며 내 길은 너희의 길과 다름이니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이는 하늘이 땅보다 높음 같이 내 길은 너희의 길보다 높으며 내 생각은 너희의 생각보다 높으니라, 이는 비와 눈이 하늘로부터 내려서 그리로 돌아가지 아니하고 땅을 적셔서 소출이 나게 하며 싹이 나게 하여 파종하는 자에게 종자를 주며 먹는 자에게 양식을 줌과 같이, 내 입에서 나가는 말도 이와 같이 헛되이 내게로 돌아오지 아니하고 나의 기뻐하는 뜻을 이루며 내가 보낸 일에 형통하리라, 너희는 기쁨으로 나아가며 평안히 인도함을 받을 것이요 산들과 언덕들이 너희 앞에서 노래를 발하고 들의 모든 나무가 손뼉을 칠 것이며, 잣나무는 가시나무를 대신하여 나며 화석류는 질려를 대신하여 날 것이라 이것이 여호와의 기념이 되며 영영한 표징이 되어 끊어지지 아니하리라 

 

하나님 아버지의 일하심이 어떤가요? 구스를 얼마나 사랑하시는지를 느낄 수 있습니다. 복을 주시지 못하여 안달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특히 구스에 믿음의 복을 주시는 하나님이 누구십니까? 지금 우리들을 사랑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런데 어떻게 하나님에게 항복을 하지 않을 수가 있을까요? 

 

2절에 대한 또 다른 해석은 그 결론은 같은데, 사18:2의 말씀을 다르게 해석하고 있습니다. 구스가 앗수르가 남 유다를 무너뜨리고 구스 자기 나라를 곧 침략할 것을 두려워하여 그래서 구스도 대비하고자 자기들의 사절단을 주변 국가 곳곳에 보냈다는 해석입니다. 아까는 남 유다가 급해서 곳곳에 남 유다의 사신을 보냈다는 해석인데 이번에는 그 반대로 앗수르의 침략에 급해진 구스에서 남 유다를 비롯하여 주변국으로 사신을 보냈다는 해석입니다. 물론 어떻게 해석을 해도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단지 여러분들이 일관성 없는 해석으로 혼동할 수 있어서 드리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어떻게 이해를 해도 문제 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사18장의 말씀에서 강조하고 싶은 점은 사18:7의 말씀입니다. 구스가 예언된 그대로 앗수르가 망하면서, 이를 확인한 구스는 결국 그날 약속의 하나님에게로 돌아오게 된다는 이 말씀이 중요합니다.

 

이제 여기부터 우리는 고민해야 합니다. 돌아오게 되는 구스를 보면서 진심으로 묻고 싶습니다. 우리는 정말 나를 구원하신 하나님에게로 구스처럼 돌아왔나요? 나의 구원을 이루어 주신 하나님에게 감사하여 예물 즉 구스처럼 예물을 드리고 있나요? ~ 

 

성도라면 사18장의 구스에 대한 이 말씀을 보시면서 알아야 합니다. 이방의 나라들, 힘의 나라들이 하나님의 심판으로 다 멸망을 당하고 있는데 구스가 승리의 소식을 듣고 예언 된 그대로 구스는 그날, 예물을 가지고 하나님에게 돌아왔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의 그 신실하심을 인정했고 항복했다는 뜻입니다. 바로 그 돌아오는 구스를 위하여 쉬지 않고 땀을 흘리신 하나님의 그 수고를 우린 잊지 말아야 합니다. 당장의 현실의 문제로 두려워 떨고 있는 이웃들을 향하여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돌아오던지 말던지, 상관하지 말고 우리도 하나님처럼, 하나님만이 진정한 신이시고, 우리의 내일을 100% 보장해 주시는 분이시고, 모든 힘과 능력과 사랑과 진리와 생명이 샘물처럼 늘 충만하게 공급하여 주시는 하나님이심을 항시 삶으로 알려야 한다는 점입니다. 그럴 때, 구스와 같은 기적이, 회개의 기적이, 하나님에게 항복하는 기적이 구스처럼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그들이 진리의 말씀을 듣지 못한다고 하여 보지 못한다고 하여 외면하거나 포기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알고, 성도라면, 말씀을 믿고 있는 성도라면, 하나님의 일하심을 진심으로 감사하고 있다면,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복음을 전할 때, 우린 또 구스와 같이 돌아오는 이웃을 만나게 될 것입니다. 구스처럼 하나님에게로 돌아오는 그 이웃을 얻는 것보다 복된 일은 없기 때문입니다. 

 

물론 이 복음을 전한다는 뜻은 무엇보다도 성도로서의 그 믿음의 자리를 지켜내야 된다는 뜻입니다. 어쩌다가 복음을 전하거나, 또는 기분에 따라 순종하는 그런 감정적인 삶이 아니라, 항상 주님과 동행하라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그럴 때 이웃들이 우리들의 믿음의 삶을 보고 구스처럼 하나님에게로 돌아오게 될 것입니다.

 

라합도 보세요!  수 2:1-14입니다눈의 아들 여호수아가 싯딤에서 두 사람을 정탐꾼으로 보내며 이르되 가서 그 땅과 여리고를 엿보라 하매 그들이 가서 라합이라 하는 기생의 집에 들어가 거기서 유숙하더니, 어떤 사람이 여리고 왕에게 말하여 이르되 보소서 이 밤에 이스라엘 자손 중의 몇 사람이 이 땅을 정탐하러 이리로 들어왔나이다, 여리고 왕이 라합에게 사람을 보내어 이르되 네게로 와서 네 집에 들어간 그 사람들을 끌어내라 그들은 이 온 땅을 정탐하러 왔느니라, 그 여인이 그 두 사람을 이미 숨긴지라 이르되 과연 그 사람들이 내게 왔었으나 그들이 어디에서 왔는지 나는 알지 못하였고, 그 사람들이 어두워 성문을 닫을 때쯤 되어 나갔으니 어디로 갔는지 내가 알지 못하나 급히 따라가라 그리하면 그들을 따라 잡으리라 하였으나, 그가 이미 그들을 이끌고 지붕에 올라가서 그 지붕에 벌여 놓은 삼대에 숨겼더라, 그 사람들은 요단 나루터까지 그들을 쫓아갔고 그들을 뒤쫓는 자들이 나가자 곧 성문을 닫았더라, 또 그들이 눕기 전에 라합이 지붕에 올라가서 그들에게 이르러, 말하되 여호와께서 이 땅을 너희에게 주신 줄을 내가 아노라 우리가 너희를 심히 두려워하고 이 땅 주민들이 다 너희 앞에서 간담이 녹나니, 이는 너희가 애굽에서 나올 때에 여호와께서 너희 앞에서 홍해 물을 마르게 하신 일과 너희가 요단 저쪽에 있는 아모리 사람의 두 왕 시혼과 옥에게 행한 일 곧 그들을 전멸시킨 일을 우리가 들었음이니라, 우리가 듣자 곧 마음이 녹았고 너희로 말미암아 사람이 정신을 잃었나니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는 위로는 하늘에서도 아래로는 땅에서도 하나님이시니라, 그러므로 이제 청하노니 내가 너희를 선대하였은즉 너희도 내 아버지의 집을 선대하도록 여호와의 이름으로 내게 맹세하고 내게 증표를 내라, 그리고 나의 부모와 나의 남녀 형제와 그들에게 속한 모든 사람을 살려 주어 우리 목숨을 죽음에서 건져내라, 그 사람들이 그에게 이르되 네가 우리의 이 일을 누설하지 아니하면 우리의 목숨으로 너희를 대신할 것이요 여호와께서 우리에게 이 땅을 주실 때에는 인자하고 진실하게 너를 대우하리라 

 

결국 수6:20-25입니다. “이에 백성은 외치고 제사장들은 나팔을 불매 백성이 나팔 소리를 들을 때에 크게 소리 질러 외치니 성벽이 무너져 내린지라 백성이 각기 앞으로 나아가 그 성에 들어가서 그 성을 점령하고, 그 성 안에 있는 모든 것을 온전히 바치되 남녀 노소와 소와 양과 나귀를 칼날로 멸하니라, 여호수아가 그 땅을 정탐한 두 사람에게 이르되 그 기생의 집에 들어가서 너희가 그 여인에게 맹세한 대로 그와 그에게 속한 모든 것을 이끌어 내라 하매정탐한 젊은이들이 들어가서 라합과 그의 부모와 그의 형제와 그에게 속한 모든 것을 이끌어 내고 또 그의 친족도 다 이끌어 내어 그들을 이스라엘의 진영 밖에 두고, 무리가 그 성과 그 가운데에 있는 모든 것을 불로 사르고 은금과 동철 기구는 여호와의 집 곳간에 두었더라, 여호수아가 기생 라합과 그의 아버지의 가족과 그에게 속한 모든 것을 살렸으므로 그가 오늘까지 이스라엘 중에 거주하였으니 이는 여호수아가 여리고를 정탐하려고 보낸 사자들을 숨겼음이었더라

 

세상의 힘이 아닌 하나님을 택하므로 지금까지도 신앙의 본이 되고 있습니다. 

 

한 곳만 더 봅니다. 아주 특별했던 기브온 족속입니다. 수9:3-6입니다. “기브온 주민들이 여호수아가 여리고와 아이에게 행한 일을 듣고, 죄를 내어 사신의 모양을 꾸미되 해어진 전대와 해어지고 찢어져서 기운 가죽 포도주 부대를 나귀에 싣고, 그 발에는 낡아서 기운 신을 신고 낡은 옷을 입고 다 마르고 곰팡이가 난 떡을 준비하고, 그들이 길갈 진영으로 가서 여호수아에게 이르러 그와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이르되 우리는 먼 나라에서 왔나이다 이제 우리와 조약을 맺읍시다” 결국 그 거짓말로 인하여 기브온 족속은 이스라엘의 종이 됩니다. 

 

수9:22-27도 보세요! 여호수아가 그들을 불러다가 말하여 이르되 너희가 우리 가운데에 거주하면서 어찌하여 심히 먼 곳에서 왔다고 하여 우리를 속였느냐, 그러므로 너희가 저주를 받나니 너희가 대를 이어 종이 되어 다 내 하나님의 집을 위하여 나무를 패며 물을 긷는 자가 되리라 하니, 그들이 여호수아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의 종 모세에게 명령하사 이 땅을 다 당신들에게 주고 이 땅의 모든 주민을 당신들 앞에서 멸하라 하신 것이 당신의 종들에게 분명히 들리므로 당신들로 말미암아 우리의 목숨을 잃을까 심히 두려워하여 이같이 하였나이다, 보소서 이제 우리가 당신의 손에 있으니 당신의 의향에 좋고 옳은 대로 우리에게 행하소서 한지라, 여호수아가 곧 그대로 그들에게 행하여 그들을 이스라엘 자손의 손에서 건져서 죽이지 못하게 하니라, 그 날에 여호수아가 그들을 여호와께서 택하신 곳에서 회중을 위하며 여호와의 제단을 위하여 나무를 패며 물을 긷는 자들로 삼았더니 오늘까지 이르니라 

 

수많은 당시의 가나안 족속들이 하나님에 대하여 자세하게 다 들었지만, 단지 소수인 그들만이 하나님에 대하여 듣고 항복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생명록에 영원히 기록이 되는 복을 받게 됩니다. 당시의 가나안 족속들도 하나님에 대하여 모두가 다 들었지만 그러나 기브온 족속 그들만이 하나님의 일하심을 듣고 항복했습니다.

 

그건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구원은 다수가 아닌 소수만이 항복합니다. 왜요? 모든 것을 다 잃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라합을 보세요! 라합은 하나님 때문에 자기 민족을 배반해야 했고, 기브온 족속은 이스라엘의 종이 됩니다. 힘의 눈으로 보면, 라합은 배신자로 보입니다. 그러나 라합의 배신은 진리를 선택하는 지혜로운 배신이었습니다. 법과 정의를 위하여 마약의 소굴인 마피아를 배신하는 것이 잘못된 것입니까? ~ 

 

기브온 족속도 역시나 미련한 족속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당장의 삶이 영원한 생명과 바꾸는 것이라면, 당장 죽을지언정 영원한 생명을 택하는 것이 지혜이기에, 그래서 라합과 기브온 족속은 보이는 현실의 힘과 가치는 안개와 같았음을 알았기에, 영원한 가치요 생명이요 힘과 능력이신 하나님을 택한 것입니다.

 

그래서 시편기자의 고백을 보세요! 시84:10-12입니다. “주의 궁정에서의 한 날이 다른 곳에서의 천 날보다 나은즉 악인의 장막에 사는 것보다 내 하나님의 성전 문지기로 있는 것이 좋사오니, 여호와 하나님은 해요 방패이시라 여호와께서 은혜와 영화를 주시며 정직하게 행하는 자에게 좋은 것을 아끼지 아니하실 것임이니이다, 만군의 여호와여 주께 의지하는 자는 복이 있나이다 

 

지금 우린 어떤가요? 구스처럼, 라합처럼, 기브온 백성처럼 주님의 그 은혜로 말미암아 무엇을 내려놓고 순종하고 있나요? 최선을 다하여 끝까지 주님과 동행하고 있나요? 무엇 때문에 일희일비하고 있나요? 여기서 특히 잊지 말아야 되는 중요한 점이 있습니다. 인과응보인 율법, 그래서 심판만이 있어야 되는 구약에 왜 이런 라합이나 기브온 족속이나 구스의 경우를 말씀하고 계시는 것일까요? 

 

가나안 족속 중에서 하나님에게 항복한 사람은 기생 라합 한 사람이었고, 가나안 족속 중에서 기브온 족속만이 항복했습니다. 다수 중에 극히 일부만 하나님에 대하여 듣고 항복했습니다. 노아도 보세요! 그 당시 수많은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심판을 밝혀주셨지만 아무도 믿지 않았고 오직 노아의 가족 8명만이 믿고 확률을 따진다면 거의 0%입니다. 전 인류 중 8명만이 말씀을 듣고 믿음을 가지고 배를 만들었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일을 하시면 다 믿을 것 같지만, 아닙니다. 겨우 극소수 외는 아니더라는 것입니다

 

솔직히 말하면, 노아 당시 배를 좀 쉽게 제작하여 물에 띄울 수 있도록 100여명이, 한 20여 가정이, 아무 것도 못하는 사람들이 아니라 못질, 대패질, 톱질에 실력이 최고인 목수들을 모아서 배를 만들어 승선했더라면 서로가 얼마나 좋았을까요? 그러나 겨우 노아의 가족 8명만이 힘의 사람들로부터 조롱과 조소를 120년 동안에 받으면서 거친 힘든 순종으로 영원한 승리자가 되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노아, 라합, 기브온 족속이 항복하여 순종하는 것을 볼 때, 구스도 같은 boundary에 들어간다는 점입니다.

 

무슨 뜻인가 하면, 구스가 자기 힘으로 자기의 어떤 실력으로 구원을 받았다는 것을 말씀하시는 것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믿었다고는 하지만, 거기에는 중요한 암시가 있습니다. 그들이 괜찮은 특별한 자들이 아니라 그들이 어떻게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었으며 어떻게 믿음을 가질 수 있었는가?를 보이기 위해 기록되었다는 점입니다. 부연한다면, 그들의 항복과 순종에는 중요한 내용을 감추고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인가 하면, 그들이 하나님에 대하여 듣고 그래서 항복하고 순종할 수 있었다고 이해를 하면 안 됩니다

 

왜냐하면 그 항복과 순종 안에는 하나님과 단절되어 영적으로 죽어 있던 인간들 편에서 시작한 일이, 자기 자신이 아닌 제 3자의 힘과 능력으로 그 죽은 자들에게 간섭이 있었기에, 항복과 순종이 가능했다는 것입니다. 어떻게 죽은 자들이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보고 항복하고 순종할 수 있었는가? 하면, 도대체 어떤 간섭이 거기에 있었기에, 시체 된 자들에게 싹이 나오고 꽃을 피우게 하셨는가 하면, 이 설명을 위하여 성경에서는 아브라함이 등장하도록 하신 것입니다. 믿음의 조상이 된 아브라함은 자기의 실력으로 아브라함이 믿음의 조상이 된 것이 아님을 우린 창12장부터 창22장까지에서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전혀 믿지 않던 그 아브라함이 나중에는 이삭을 바치는 수준에까지 자라는 것을 보면서, 약속하신 대로 죽어 있던 아브라함을 믿음의 조상이 될 수 있었던 건, 하나님의 도움, 간섭으로 되었기에, 구약 안에서도 늘 그 은혜가 감추어져 있었던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구스가 예물을 하나님에게 드렸다는 사18:7의 말씀에서도 알아야 되는 점은 구스가 하나님의 은혜를 입었기에 예물을 드리는 즉, 항복할 수 있었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언제 그런 기적의 변화가 일어날 것이라는 겁니까? 그렇습니다. 늘 동일합니다. 그날입니다. 예수의 영이 임하시는 그날에 이루어질 것이라는 예언이었습니다. 그 예언을, 실은 구약에서도 내내 언급하셨는데, 사55장을 보셨습니다. 언제 이렇게 된다고 했던가요? 그날입니다. 그러니깐, 구스가 하나님에게로 돌아오게 된다는 이 말씀을 통하여 하시려는 결론은 뭘까요? 비록 700년 후에 일어날 예언이지만, 택함을 받은 남은 자된 너희들에게 주시는 신령한 복을 보세요!

 

사60:4-9입니다. “네 눈을 들어 사방을 보라 무리가 다 모여 네게로 오느니라 네 아들들은 먼 곳에서 오겠고 네 딸들은 안기어 올 것이라, 그 때에 네가 보고 기쁜 빛을 내며 네 마음이 놀라고 또 화창하리니 이는 바다의 부가 네게로 돌아오며 나라들의 재물이 네게로 옴이라, 허다한 낙타, 미디안과 에바의 어린 낙타가 네 가운데 가득할 것이며 스바의 사람들은 다 금과 유향을 가지고 와서 여호와의 찬송을 전파할 것이며, 게달의 양 무리는 다 네게로 모일 것이요 느바욧의 숫양은 네게 공급되고 내 제단에 올라 기꺼이 받음이 되리니 내가 내 영광의 집을 영화롭게 하리라, 저 구름 같이, 비둘기들이 그 보금자리로 날아가는 것 같이 날아오는 자들이 누구냐, 곧 섬들이 나를 앙망하고 다시스의 배들이 먼저 이르되 먼 곳에서 네 자손과 그들의 은금을 아울러 싣고 와서 네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에 드리려 하며 이스라엘의 거룩한 이에게 드리려 하는 자들이라 이는 내가 너를 영화롭게 하였음이라 

 

사60:15-22절입니다. “전에는 네가 버림을 당하며 미움을 당하였으므로 네게로 가는 자가 없었으나 이제는 내가 너를 영원한 아름다움과 대대의 기쁨이 되게 하리니, 네가 나라들의 젖을 빨며 뭇 왕의유방을 빨고 나 여호와는 네 구원자, 네 구속자, 야곱의 전능자인 줄 알리라, 내가 금을 가지고 놋을 대신하며 은을 가지고 철을 대신하며 놋으로 나무를 대신하며 철로 돌을 대신하며 화평을 세워 관원을 삼으며 공의를 세워 감독을 삼으리니, 다시는 강포한 일이 네 땅에 들리지 않을 것이요 황폐와 파멸이 네 국경 안에 다시 없을 것이며 네가 네 성벽을 구원이라, 네 성문을 찬송이라 부를 것이라, 다시는 낮에 해가 네 빛이 되지 아니하며 달도 네게 빛을 비추지 않을 것이요 오직 여호와가 네게 영원한 빛이 되며 네 하나님이 네 영광이 되리니, 다시는 네 해가 지지 아니하며 네 달이 물러가지 아니할 것은 여호와가 네 영원한 빛이 되고 네 슬픔의 날이 끝날 것임이라, 네 백성이 다 의롭게 되어 영원히 땅을 차지하리니 그들은 내가 심은 가지요 내가 손으로 만든 것으로서 나의 영광을 나타낼 것인즉, 그 작은 자가 천 명을 이루겠고 그 약한 자가 강국을 이룰 것이라 때가 되면 나 여호와가 속히 이루리라 

 

사61-62장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날, 은혜를 입게 되는 그날이 되면 놀라운 회복의 기적이 나타날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날, 은혜를 입은 자녀들은, 주님과 동행하게 되면서 불평을 감사로, 좌절의 삶을 소망의 삶으로, 가난의 삶을 나눔의 삶으로, 더러움을 정결함으로, 슬픔의 삶을 기쁨의 삶으로, 가시나무가 백향목으로 바뀔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다투던 현실의 고통에서 벗어나, 그날 은혜로 화목과 화평을 이루는 복된 삶으로 바뀌게 된다는 것입니다. 현실의 고통과 아픔을 이겨내는 기적을 경험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지금 은혜를 입은 우린 어떤가요? 이 큰 은혜를 주신 하나님에게 어떤 감사 찬송을 드리고 있나요? 하나님만 오직 앙망하면서 순종하고 있나요? ~ 

 

구약이 보기에는, 인과응보인 심판이 구약의 전체 내용처럼 말씀하시고 계셨지만, 실은 구약에서의 목적도 구원이었기에 그 구원이, 힘이 아닌 은혜임을 알게 하시려고 이런 식으로 은혜에 대하여 계속해서 내내 암시하고 계셨습니다. 거기엔 무슨 말씀을 하시려는 것인가, 하면, 은혜를 입은 신약의 성도 너희들은 도무지 상상도 안 되는 엄청난 복을 받게 될 자들이라는 것을 알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그 큰 은혜를 입게 되면, 사울도 바울이 된다는 것입니다. 사망이 부활이 된다는 것입니다. 은혜가 죽은 너희들을 살릴 것이라는 강력한 능력이요 원리라는 뜻이기에 이런 식으로 은혜에 대하여 늘 암시하고 계셨던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도 어떤 기도를 드리던가요?

 

엡1:15-19입니다. 이로 말미암아 주 예수 안에서 너희 믿음과 모든 성도를 향한 사랑을 나도 듣고, 내가 기도할 때에 기억하며 너희로 말미암아 감사하기를 그치지 아니하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 영광의 아버지께서 지혜와 계시의 영을 너희에게 주사 하나님을 알게 하시고, 너희 마음의 눈을 밝히사 그의 부르심의 소망이 무엇이며 성도 안에서 그 기업의 영광의 풍성함이 무엇이며, 그의 힘의 위력으로 역사하심을 따라 믿는 우리에게 베푸신 능력의 지극히 크심이 어떠한 것을 너희로 알게 하시기를 구하노라 

 

그래서 은혜를 입은 성도들은 영원히 찬송하면서 아무리 힘든 현실이라도 앗수르, 세상의 힘을 의지하지 않게 되고 오직 하나님만 바라보면서 점과 흠이 없는 내일을 준비하게 된다고 하십니다. 이 말씀을 하시려고 아니 이를 위하여 구스에게까지 믿음의 사신을 보내주신 것입니다. 그 구스에는 바로 우리들까지도 포함하고 있었던 것이 아닙니까? ~ 

 

그런데 잠간 존재하고 사라져 버리는 이 현실 때문에 영원한 영광의 중한 것을 포기한다고요? 그러나 현실의 환란, 고통을 참고 인내한다면, 영원한 영광의 중한 것을 영원히 거머쥐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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