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돌교회

9/1/2024 이사야 14:1-32 본문

주일 설교 말씀

9/1/2024 이사야 14:1-32

PastorYK 2024. 9. 2. 12:36

말씀: 사14:1-32                                                

제목: 누가 승과 패의 기준을 알랴

                                          

 

8/27일 아침 뉴스를 듣고 보았는데, downtown의 옷 도매상들이 도둑놈들에 의하여 털렸는데, 어떻게 털렸는가 하면, 한 가계의 자물쇠를 부수고 들어간 다음에 그 가계와 붙어 있는 상점의 벽을 뚫고 도둑질을 했던 것입니다. 문제는 뚫고 들어간 그 집만이 아니라 벽으로 연결된 15개의 상점의 벽을 터널처럼 뚫고 아주 편하게 이틀간에 걸쳐서 도둑질을 했던 것입니다. 더 이상 여기서는 장사를 할 수 없다고 난리가 난 것입니다. 이 큰 도시가 도둑놈들에게 완전히 뚫렸으니 더 이상 법을 믿고 사업을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참 안타깝습니다. 

 

평생에 걸쳐 쌓아왔던 삶의 터전들이 약탈로 무너지고 있으니, 얼마나 힘들고 고통스럽겠습니까? ~ 그런데 신앙인으로써 생각 해 보세요! 자기 영혼이 자기의 미련함과 어리석음과 게으름으로 매일 그렇게 자기의 옛 세력에게 그리고 세상의 힘의 세력으로부터 무지막지하게 털리고 있다면, 아니 실제로 그렇게 털리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은 아무렇지 않다고 한다면, 아무렇지 않다고 하는 그 사람은 결국 어떻게 될까요? ~ 무슨 말이 필요하겠습니까? 망하는 것이 당연할 것입니다. 영적으로 망하는 사람들의 특징을 보면, 다들 망하고 있는데도 괜찮다고 하는 사람들입니다. 

 

정말 황당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앞으로 열방의 심판과 멸망에 대한 말씀이 이어져 나오겠지만, 오늘 사14장의 예언된 말씀도 보세요! 그 당시에는 200년 후의 성취될 예언의 말씀이기에 다들 긴가민가할 수밖에 없었겠지만, 우리들이 지금 사14장의 예언을 볼 때, 그 예언들이 이미 다 사실이 되어 이젠 역사가 된 것입니다. 그 역사를 보면, 많은 나라들이 무너지고 있습니다. 아니 사라지고 있었습니다. 왜요? 막을 대책이 없었던 것입니다. 살길을 선택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그들이 바로 힘의 사람들이라는 것입니다. 그들의 망함이 예언 된 줄로 알고 있었는지는 몰라도 다들 속수무책으로 망했던 것입니다. 여기서 놀라운 점은 계속해서 나라들이 성경의 예언대로 망하고 있는데, 유독 한 나라만이 존재하더라는 것입니다. 그 망함을 해결하는 민족이 있더라는 것입니다.

 

사14:1-3입니다. “여호와께서 야곱을 긍휼히 여기시며 이스라엘을 다시 택하여 그들의 땅에 두시리니 나그네 된 자가 야곱 족속과 연합하여 그들에게 예속될 것이며, 민족들이 그들을 데리고 그들의 본토에 돌아오리니 이스라엘 족속이 여호와의 땅에서 그들을 얻어 노비로 삼겠고 전에 자기를 사로잡던 자들을 사로잡고 자기를 압제하던 자들을 주관하리라, 여호와께서 너를 슬픔과 곤고와 및 네가 수고하는 고역에서 놓으시고 안식을 주시는 날에” 다 망하는데, 길을 찾지 못하여 처참하게 다 무너지고 마는데, 역사 속으로 영원히 사라지고 있는데, 

 

1. 오직 한 나라만이 회복이 되더라는 것입니다. 이 회복에 대하여 말씀을 먼저 드립니다. 사14:1-3에서는, 망했던 남 유다가 본국으로 돌아오게 되고, 그리고 사14:4-20에서는 바벨론이 멸망을 당하게 된다는 예언인데, 멸망을 당하게 되는 이유가 사14:17에서 밝히고 있습니다. 17절을 봅니다. “세계를 황무하게 하며 성읍을 파괴하며 그에게 사로잡힌 자들을 그 집으로 놓아 보내지 아니하던 자가 아니냐 하리로다” 

 

무슨 뜻일까요? 설명을 위하여 렘16:10-15입니다. “네가 이 모든 말로 백성에게 말할 때에 그들이 네게 묻기를 여호와께서 우리에게 이 모든 큰 재앙을 선포하심은 어찌 됨이며 우리의 죄악은 무엇이며 우리가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 범한 죄는 무엇이냐 하거든, 너는 그들에게 대답하기를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너희 조상들이 나를 버리고 다른 신들을 따라서 그들을 섬기며 그들에게 절하고 나를 버려 내 율법을 지키지 아니하였음이라, 너희가 너희 조상들보다 더욱 악을 행하였도다 보라 너희가 각기 악한 마음의 완악함을 따라 행하고 나에게 순종하지 아니하였으므로, 내가 너희를 이 땅에서 쫓아내어 너희와 너희 조상들이 알지 못하던 땅에 이르게 할 것이라 너희가 거기서 주야로 다른 신들을 섬기리니 이는 내가 너희에게 은혜를 베풀지 아니함이라 하셨다 하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그러나 보라 날이 이르리니 다시는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신 여호와께서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지 아니하고, 이스라엘 자손을 북방 땅과 그 쫓겨났던 모든 나라에서 인도하여 내신 여호와께서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리라 내가 그들을 그들의 조상들에게 준 그들의 땅으로 인도하여 들이리라” 이스라엘이 우상으로 나라가 무너지게 되는데 그러나 다시 돌아오게 하시겠다는 약속의 말씀입니다

 

좀 더 구체적으로 하시는 말씀을 봅니다. 렘29:10-14입니다.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바벨론에서 칠십 년이 차면 내가 너희를 돌보고 나의 선한 말을 너희에게 성취하여 너희를 이 곳으로 돌아오게 하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을 내가 아나니 평안이요 재앙이 아니니라 너희에게 미래와 희망을 주는 것이니라, 너희가 내게 부르짖으며 내게 와서 기도하면 내가 너희들의 기도를 들을 것이요, 너희가 온 마음으로 나를 구하면 나를 찾을 것이요 나를 만나리라, 이것은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나는 너희들을 만날 것이며 너희들을 포로 된 중에서 다시 돌아오게 하되 내가 쫓아 보내었던 나라들과 모든 곳에서 모아 사로 잡혀 떠났던 그 곳으로 돌아오게 하리라 이것은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그런데 렘50:33로 갑니다. “만군의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이스라엘 자손과 유다 자손이 함께 학대를 받는도다 그들을 사로잡은 자는 다 그들을 붙들고 놓아 주지 아니하리라

 

약속된 예언 그대로 70년이 되면, 그간 바벨론의 포로로 끌려왔던 남 유다인들을 본국으로 돌려보내야 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바벨론이 하나님의 뜻을 따르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러자, 메대바사를 통하여 돌려보내지 않았던 바벨론을 무너뜨리시면서 어떤 조치를 내리게 하십니까? 

 

렘50:41-46입니다. 보라 한 민족이 북쪽에서 오고 큰 나라와 여러 왕이 충동을 받아 땅 끝에서 일어나리니, 그들은 활과 투창을 가진 자라 잔인하여 불쌍히 여기지 아니하며 그들의 목소리는 바다가 설레임 같도다 딸 바벨론아 그들이 말을 타고 무사 같이 각기 네 앞에서 대열을 갖추었도다, 바벨론의 왕이 그 소문들 듣고 손이 약하여지며 고통에 사로잡혀 해산하는 여인처럼 진통하는 도다, 보라 사자가 요단의 깊은 숲에서 나타나듯이 그가 와서 견고한 처소를 칠 것이라 내가 즉시 그들을 거기에서 쫓아내고 택한 자를 내가 그 자리에 세우리니 나와 같은 자 누구며 출두하라고 나에게 명령할 자가 누구며 내 앞에 설 목자가 누구냐, 그런즉 바벨론에 대한 여호와의 계획과 갈대아 사람의 땅에 대하여 품은 여호와의 생각을 들으라 양 떼의 어린 것들을 그들이 반드시 끌어가고 그들의 초장을 황폐하게 하리니, 바벨론이 약탈 당하는 소리에 땅이 진동하며 그 부르짖음이 나라들 가운데에 들리리라 하시도다 결국 바벨론은 메대 바사의 왕 고레스에 의하여 주전 539년에 멸망을 당하게 됩니다. 

 

이 말씀에 대한 내용은 사14장과 렘51장과 스1장에서도 알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여기서 놓치면 안 되는 말씀이 있는데, 왜 남 유다를 70년 만에 본국으로 누구 마음대로 돌려보내야 했던가요? 그건 이미 말씀으로 확인이 되었듯이, 바벨론의 포로가 되기 전부터 하나님께서 예레미야 선지자를 통하여 회복이 될 것을 약속을 하셨기 때문입니다. 렘29장의 말씀에서 보셨듯이, 이미 계획된 하나님의 뜻을 선지자 예레미야에게 선포하도록 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감히 바벨론이 따르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래서 망하게 됩니다. 무슨 뜻인지, 이해가 되시나요? 이해가 되지 않을지라도 그 역사의 진실이 이렇게 성경에서 밝혀 주고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사14:17의 말씀이고 그래서 바벨론은 멸망을 당한다고 사14장에서도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또 알아야 되는 점이 있습니다. 왜 70년 만에 남 유다가 돌아와야 했나요? 왜 꼭 70년이어야 했던가요? 

 

레25:8-13입니다. “너는 일곱 안식년을 계수할지니 이는 칠 년이 일곱 번인즉 안식년 일곱 번 동안 곧 사십구 년이라, 일곱째 달 열흘날은 속죄일이니 너는 뿔나팔 소리를 내되 전국에서 뿔나팔을 크게 불지며, 너희는 오십 년째 해를 거룩하게 하여 그 땅에 있는 모든 주민을 위하여 자유를 공포하라 이 해는 너희에게 희년이니 너희는 각각 자기의 소유지로 돌아가며 각각 자기의 가족에게로 돌아갈지며, 그 오십 년째 해는 너희의 희년이니 너희는 파종하지 말며 스스로 난 것을 거두지 말며 가꾸지 아니한 포도를 거두지 말라, 이는 희년이니 너희에게 거룩함이니라 너희는 밭의 소출을 먹으리라, 이 희년에는 너희가 각기 자기의 소유지로 돌아갈지라 

 

희년이었기 때문입니다. 희년에는 모든 것이 다 제자리로 돌아가야 합니다. 거기에는 영원한 회복의 의미를 갖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바벨론 포로로 70년 간 끌려갔었지만, 70년이 되면 남 유다 즉 남은 자들을 다 돌려보내도록 이미 다 계산된 하나님의 섭리요 경륜이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바벨론이 하나님의 뜻에 불순종을 하면서 망하게 됩니다. 여기서 무엇을 알아야 합니까? 인류의 역사는 힘의 역사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인류의 흐름은 하나님의 뜻에 달려 있다는 것을 알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정말 그렇다면 내 멋대로 자기 하고 싶은 대로 한다는 것이 얼마나 미련한 선택인지를 알게 하지 않나요? 특히 성경이 얼마나 가치 있는 진리인지를 사14장을 통하여 또한 알아야 할 것입니다. 

 

이렇게 성경은 인간의 죽고 사는 문제, 존재하느냐 버림을 받느냐의 근본적인 문제까지도 다 알게 하기 때문입니다. 특히 멸망 가운데서도 끝까지 남게 되는 자들을 보세요! 자기의 힘과 능력이 아니라 하나님의 약속에 의한 회복이요 구원인 것을 성경에서 밝히고 계십니다. 하나님의 이 약속은 결국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이루어졌음을 성경을 통하여 만천하에 전파되었습니다. 그렇다면 성경에서의 그 구원의 약속이 진부인지를 누가 알고 있을까요? 

 

남은 자들만이 확신할 수 있습니다. 그 확신 때문에 어떤 기적이 나타나는지 남은 자인 자기 자신만이 알 수 있게 됩니다. 특히 남은 자들의 목표가 세상의 부가 아니라 거룩함이 되었기에 그래서 그 후의 하루가 그 전의 하루하고는 완전 다릅니다. 여러분들은 어떤가요? 주님의 제자들도 어떤가요? 어떻게 달라지던가요? 아니면 여전히 힘을 따라가느냐고 애를 먹고 있으면서도, 당연하다고 여기고 있는 것은 아닙니까? 성도는 환란까지도 즐거워하는 자들이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그 환란은 자신이 만들 환란이 아니라 순종 때문에, 거룩함 때문에, 나타난 환란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힘 때문에 생기는 환란은 물론 중생의 계기는 될 수 있겠지만, 힘으로 사는 한, 인내도 연단도 소망도 이룰 수가 없게 됩니다. 그러나 믿음으로 인한 환란은 인내를 하게 되고 인내를 통하여 연단하게 되면서 약속하신 그 놀라운 소망을, 힘의 사람들은 그 누구도 이룰 수 없는 생명의 열매, 영원한 승리자의 그 자리를 확보하게 되면서 영원히 누리는 자가 될 것입니다. 그 결과는 오직 살고 있는 동안에만 허락된 기회입니다.  

 

그 인생이 누구에게는 길 수도 있겠지만, 누구에게는 아주 짧을 수 있는데, 하여튼 호흡하고 있는 동안에만 승패가 그렇게 선명하게 나뉜다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승의 이 과정은 쉽게 대충 편한 방법으로 갈 수 없습니다. 만약에 자기의 인생이 중생한 후에 그 과정이 예전에 살던 식하고 다르지 않다면 그건 속고 있는 것입니다. 성도의 현실은 좁은 길입니다. 좁은 길은 자기 머리통이 깨져야 되는 아픔과 고통 없이는 갈 수 없는 길입니다. 

 

2. 사14장을 통하여 바벨론 뿐만 아니라 최강 앗수르도 그리고 블레셋도 멸망을 당하게 될 것을 예언하십니다. 세상의 최강만이 아니라 열방까지도 우상숭배로 인하여 멸망을 당하게 되는데, 하나님 앞에서 그 모든 것들이 얼마나 헛된 것인지 여지없이 예언하시면서 남은 자들을 향하여 두려워하지 말라는 교훈을 주고 계셨다는 것을 알게 하지 않습니까? 그리고 결국 예언하신 대로 앗수르가 바벨론에게 주전605년에 망하고 바벨론은 메대 바사에 의하여 주전539년에 멸망을 당하게 됩니다. 이렇게 예언대로 다 이루어졌지만, 약속하신 그날 오신, 예수 그리스도가 죽어 성령 하나님께서 오시기 전까지는 그 누구도 그 놀라우신 하나님을 경외도, 의지도 전혀 할 수 없었다는 점입니다. 그러나 오순절에 임하신 성령 하나님을 통하여 깨닫게 되면서 어떤 변화가 일어나던가요? 유대지도자들을 두려워하더니, 하나님만을 경외하게 됩니다.

 

먼저 행2:1-4의 말씀을 봅니다. 오순절 날이 이미 이르매 그들이 다같이 한 곳에 모였더니, 홀연히 하늘로부터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가 있어 그들이 앉은 온 집에 가득하며, 마치 불의 혀처럼 갈라지는 것들이 그들에게 보여 각 사람 위에 하나씩 임하여 있더니, 그들이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언어들로 말하기를 시작하니라 

 

그리고 나서 어떤 변화가 보이던가요? 행2:36-47입니다. “그런즉 이스라엘 온 집은 확실히 알지니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은 이 예수를 하나님이 주와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느니라 하니라, 그들이 이 말을 듣고 마음에 찔려 베드로와 다른 사도들에게 물어 이르되 형제들아 우리가 어찌 할꼬 하거늘, 베드로가 이르되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받으라 그리하면 성령의 선물을 받으리니, 이 약속은 너희와 너희 자녀와 모든 먼 데 사람 곧 주 우리 하나님이 얼마든지 부르시는 자들에게 하신 것이라 하고, 또 여러 말로 확증하며 권하여 이르되 너희가 이 패역한 세대에서 구원을 받으라 하니, 그 말을 받은 사람들은 세례를 받으매 이 날에 신도의 수가 삼천이나 더하더라, 그들이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서로 교제하고 떡을 떼며 오로지 기도하기를 힘쓰니라, 사람마다 두려워하는데 사도들로 말미암아 기사와 표적이 많이 나타나니, 믿는 사람이 다 함께 있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또 재산과 소유를 팔아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 주며, 날마다 마음을 같이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 하나님을 찬미하며 또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으니 주께서 구원 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시니라

 

성령 하나님의 인침으로, 얼마나 지혜로워졌던가요? 그리고 대단히 담대해 졌습니다. 행4:17-21입니다.  “이것이 민간에 더 퍼지지 못하게 그들을 위협하여 이후에는 이 이름으로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게 하자 하고, 그들을 불러 경고하여 도무지 예수의 이름으로 말하지도 말고 가르치지도 말라 하니, 베드로와 요한이 대답하여 이르되 하나님 앞에서 너희의 말을 듣는 것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보다 옳은가 판단하라, 우리는 보고 들은 것을 말하지 아니할 수 없다 하니, 관리들이 백성들 때문에 그들을 어떻게 처벌할지 방법을 찾지 못하고 다시 위협하여 놓아 주었으니 이는 모든 사람이 그 된 일을 보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림이라” 

 

은혜를 입은 주님의 제자들이 믿음으로 세상의 힘인 제사장, 성전 맡은 자, 사두개인들을 제압하고 있습니다. 이런 놀라운 제자들의 변화가 가능했던 것은 하신 예언되었던 모든 말씀들이 다 이루어졌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특히 구약의 말씀들이 은혜를 입은 제자들에게 큰 힘이 되었던 것입니다. 그중에 소개할 시편 말씀이 긴데 내용이 너무 귀합니다. 

 

시37:1-40입니다. “악을 행하는 자들 때문에 불평하지 말며 불의를 행하는 자들을 시기하지 말지어다, 그들은 풀과 같이 속히 베임을 당할 것이며 푸른 채소 같이 쇠잔할 것임이로다, 여호와를 의뢰하고 선을 행하라 땅에 머무는 동안 그의 성실을 먹을거리로 삼을지어다,  여호와를 기뻐하라 그가 내 마음의 소원을 네게 이루어 주시리로다, 네 길을 여호와께 맡기라 그를 의지하면 그가 이루시고, 네 의를 빛 같이 나타내시며 네 공의를 정오의 빛 같이 하시리로다, 여호와 앞에 잠잠하고 참고 기다리라 자기 길이 형통하며 악한 죄를 이루는 자 때문에 불평하지 말지어다, 분을 그치고 노를 버리며 불평하지 말라 오히려 악을 만들 뿐이라, 진실로 악을 행하는 자들은 끊어질 것이나 여호와를 소망하는 자들은 땅을 차지하리로다, 잠시 후에는 악인이 없어지리니 네가 그 곳을 자세히 살필지라도 없으리로다, 그러나 온유한 자들은 땅을 차지하며 풍성한 화평으로 즐거워하리로다, 악인이 의인 치기를 꾀하고 그를 향하여 그의 이를 가는 도다, 그러나 주께서 그를 비웃으시리니 그의 날이 다가옴을 보심이로다, 악인이 칼을 빼고 활을 당겨 가난하고 궁핍한 자를 엎드러뜨리며 행위가 정직한 자를 죽이고자 하나, 그들의 칼은 오히려 그들의 양심을 찌르고 그들의 활은 부러지리로다, 의인의 적은 소유가 악인의 풍부함보다 낫도다, 악인의 팔은 부러지나 의인은 여호와께서 붙드시는도다, 여호와께서 온전한 자의 날을 아시나니 그들의 기업은 영원하리로다, 그들은 환난 때에 부끄러움을 당하지 아니하며 기근의 날에도 풍족할 것이나, 악인들은 멸망하고 여호와의 원수들은 어린 양의 기름 같이 타서 연기가 되어 없어지리로다, 악인은 꾸고 갚지 아니하나 의인은 은혜를 베풀고 주는도다, 주의 복을 받은 자들은 땅을 차지하고 주의 저주를 받은 자들은 끊어지리로다, 여호와께서 사람의 걸음을 정하시고 그의 길을 기뻐하시나니, 그는 넘어지나 아주 엎드러지지 아니함은 여호와께서 그의 손으로 붙드심이로다, 내가 어려서부터 늙기까지 의인이 버림을 당하거나 그의 자손이 걸식함을 보지 못하였도다, 그는 종일토록 은혜를 베풀고 꾸어 주니 그의 자손이 복을 받는 도다, 악에서 떠나 선을 행하라 그리하면 영원히 살리니, 여호와께서 정의를 사랑하시고 그의 성도를 버리지 아니하심이로다 그들은 영원히 보호를 받으나 악인의 자손은 끊어지리로다, 의인이 땅을 차지함이여 거기서 영원히 살리로다, 의인의 입은 지혜로우며 그의 혀는 정의를 말하며, 그의 마음에는 하나님의 법이 있으니 그의 걸음은 실족함이 없으리로다, 악인이 의인을 엿보아 살해할 기회를 찾으나, 여호와는 그를 악인의 손에 버려두지 아니하시고 재판 때에도 정죄하지 아니하시리로다, 여호와를 바라고 그의 도를 지키라 그리하면 네가 땅을 차지하게 하실 것이라 악인이 끊어질 때에 네가 똑똑히 보리로다, 내가 악인의 큰 세력을 본즉 그 본래의 땅에 서 있는 나무 잎이 무성함과 같으나, 내가 지나갈 때에 그는 없어졌나니 내가 찾아도 발견하지 못하였도다, 온전한 사람을 살피고 정직한 자를 볼지어다 모든 화평한 자의 미래는 평안이로다, 범죄자들은 함께 멸망하리니 악인의 미래는 끊어질 것이나, 의인들의 구원은 여호와로부터 오나니 그는 환난 때에 그들의 요새이시로다, 여호와께서 그들을 도와 건지시되 악인들에게서 건져 구원하심은 그를 의지한 까닭이로다” 

 

은혜를 입은 제자들이 이런 말씀들을 대했을 때, 어떤 느낌이 들었을까요? 그동안 두려워했던 세상의 힘이 비로소, 가소롭다고 여길 수 있었을 것입니다. 자신들의 기업이 영원히 보장이 되고, 게다가 시37:37입니다. “온전한 사람을 살피고 정직한 자를 볼지어다 모든 화평한 자의 미래는 평안이로다 자신들의 미래가 평안으로 영원토록 보장된 것입니다. 그러니 얼마나 달라질 수 있었을까요? 우리 아이들도 보세요! 어떤 어린 아이가 놀다가 친구와 싸우게 되었을 때, 자기 뒤에 아빠나 엄마나 또는 자기 형이 있으면 어떤가요? 없을 때와는 전혀 다른 반응을 보이 되듯이, 성도들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이 자기의 구원의 반석이시고 산성이시고 목자가 되어주심을 믿고 있다면 당연히 세상의 힘을 조금도 두려워할 것이 없어야 할 것입니다. 게다가 죽음의 권세까지도 제압하신 예수님을 자신들의 두 눈으로 확인까지 되었으니, 목숨을 걸고 그 어떤 협박 속에서도 이 기적의 복음을 전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 당시 제자들은 진정한 승리가 무엇인지를 알았던 것입니다. 그래서 all in이 자신들의 남은 인생에서 최종 선택이 될 수밖에 없었는데, 그러나 지금 우리들은 어떤가요? 지금 교회들은 어떤가요? 여전히 세상의 성공인가요? ~ 어떤 계산을 하면서 믿음의 자리를 지키고 있나요?

 

모든 역사의 최 강대국들이 하나님의 뜻을 위한 도구로 쓰이고 있는 것을 보면, 하나님의 성전이 된 성도들이 하나님을 대신하고 있는 자녀들이기에, 최 강대국의 그 어떤 공격에도 두려워하기는커녕 오히려 안연하게 대처할 수 있어야 그것이 맞는 대응이 아닐까요?

 

시21:7입니다. “왕이 여호와를 의지하오니 지존하신 이의 인자함으로 흔들리지 아니하리이다

 

그래서 시27:3에서도 보세요! 군대가 나를 대적하려 진 칠지라도 내 마음이 두렵지 아니하며 전쟁이 일어나 나를 치려할지라도 나는 여전히 태연하리로다

 

시편기자가 세상 군대가 쳐 들어와서 대적하여 진칠찌라도 자기 마음이 두려워하지 않고 오히려 태연할 수 있다고 한 것도 보면, 그것으로 믿음이 어떤 능력인지를 알게 하십니다. 그렇다면 은혜를 입은 성도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얼마나 소중하게 여겨야 할까요

 

재물이 말씀보다 우선 될 수 없어야 하고, 당장의 승리를 위하여 이웃에게 상처를 주는 자가 되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우린 육체와 함께 십자가에 정욕과 탐심을 못 박은 자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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