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 | 월 | 화 | 수 | 목 | 금 | 토 |
---|---|---|---|---|---|---|
1 | 2 | 3 | ||||
4 | 5 | 6 | 7 | 8 | 9 | 10 |
11 | 12 | 13 | 14 | 15 | 16 | 17 |
18 | 19 | 20 | 21 | 22 | 23 | 24 |
25 | 26 | 27 | 28 | 29 | 30 | 31 |
- 룻
- 다윗
- Ruth 1
- Eli
- Judges
- saul
- 자기 옳은 대로 행하였더라
- 사무엘상 2
- Hophni and Phinehas
- 룻기 1
- 삼손
- 사무엘
- 사사기
- Ruth 2
- Living Stone Korean Church
- 보아스
- 1 Samuel
- 홉니와 비느하스
- David
- Samson
- They Did Which Was Right In Their Eyes
- Samuel
- Naomi
- 사울
- 1 Samuel 2
- 엘리
- 산돌한인교회
- Ruth
- Philistines
- 나오미
- Today
- Total
산돌교회
7/14/2024 이사야 7:1-25 본문
말씀: 사7:1-25
제목: 앗수르 믿는 아하스
사7장은 그 어떤 기적보다도 아주 위험하기에 조심하지 않을 수 없는 말씀이기도 합니다. 왜냐하면, 그 당시는 구약이었고, 그리고 모든 것이 다 율법 중심이었습니다. 그런데 처녀가 혼인하지도 않았는데, 남자 아이를 낳았고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고 하시더라는 것입니다. 얼마나 위험한 기적입니까? 여차하면 돌에 맞아 죽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그 당시 처녀가 잉태했다면 누가 그 잉태를 바르게 볼 수 있을까요? 아마도 이스라엘에서 처녀에게 공감을 얻어 내기란 불가능한 기적인데, 이런 기적을 두려워 떨고 있는 아하스에게 이사야가 와서 전해 주고 있더라는 것입니다.
아하스에게 하나님을 믿게 하려다가 오히려 그간 서로 잘 알고 지내던 그 처녀(자기 딸, 가족)가 돌에 맞아 죽을 수 있는 기적을 주시더라는 말입니다. 그러나 결국 아하스는 하나님을 믿지 않고 앗수르에게 도움을 청합니다. 그리고 아하스는 앗수르의 우상제단을 copy하여 예루살렘 성전에 두고 그 우상제단에서 제물을 드리는 좋지 못한 왕으로 끝나고 맙니다. 그러니 이해가 되지 않고 있습니다. 이런 형편없는 왕에게까지도, 도움을 주시려고 전쟁에서 이김을 주시려고 처녀를 통하여 남자 아이를 낳게 하시더라는 것입니다. 분명히 아하스가 신앙이 없는 타락한 왕인지를 아시면서도 불구하고, 아하스 왕도 잘 알던 처녀에게 아이를 낳게 하는 기적을 주시더라는 말입니다. 믿던지 말던지 상관하지 아니하시고 말입니다. 끝까지 한 영혼을 위하여, 그 한 영혼이 믿음으로 해결하여 승리자가 되게 하시려고 최선을 다하시는 하나님이시라고 밖에는 다르게 이해하기가 어려운 사7장의 말씀이었습니다. 처녀가 잉태했다는 이런 위험한 기적을 이루어주시면서 다른 기적들도 많았을텐데 ~ 하여튼 하나님을 의지하게 하시려는 하나님의 일하심을 생각하면, 참 이해가 어렵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아하스를 그렇게 사랑하시기에 힘 것, 도와주시려는 하나님의 그 모습이 충만하게 보이는 사7장입니다.
악하고 악한 아하스까지도 그렇게 사랑하시니, 마10:42, 눅15:1-10의 말씀이 무슨 뜻인지를 알게 하셨습니다. 수와 크기와 모양과 전혀 상관없이 한 영혼을 그렇게 사랑하시는 하나님이심을 사7장에서 찾을 수 있게 되어 사7장의 말씀이 큰 은혜가 되었습니다. 그러니 성도들이 하나님만을 바라보려고 할 때, 얼마나 기뻐하실까요?
자기가 짐승과 같은 존재인지를 알고 하나님에게 다 맡길 때, 바라볼 때, 사랑이 넘치시는 하나님께서는 그 큰 권능의 손길로 나의 오른 손을 굳게 잡아 주실 것입니다. 이 경험이 이 경험 때문에 우린 세상의 힘에 휘둘리지 않아야 할 것이며, 나의 오른손을 굳게 잡아주시니, 항상 감사의 삶을 유지할 수 있게 하지 않을까요?
이제 말씀을 시작합니다. 사7장에서 14절의 말씀은 해석하기 어려운 난제입니다. 난제이지만, 이 말씀을 가지고 저는 이렇게 말씀을 드리고자 합니다. 14절에서의 처녀는 마리아가 아니지만, 마리아를 상징하고 있고, 임마누엘이란 이름도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하고 있지만, 이런 기적의 말씀을 주시는 이유는 세상의 힘을 두려워하지 말라는 뜻에서의 말씀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 처녀와 그 아이가 누구인지를 모릅니다. 단 14절은 예수님과 마리아를 상징하는 말씀이고, 이 기적이 아하스를 위하여 그 당시에도 일어난 것입니다. 그런데 그 처녀와 그 기적의 아이를 아하스 왕과 선지자 이사야가 알고 있었을까요? 아니면 전혀 모르는 당시의 소문이었을까요? 처녀 잉태와 태어날 임마누엘을 전혀 모르는데, 두려워 떨고 있는 아하스 왕에게 이런 예언의 말씀을 할 수 있었을까요? 분명한 점은 사실이었기에 그래서 이렇게 확실한 기적의 말씀을 전할 수 있게 하신 것이지, 그러지 않으면 두려워 떨고 있는 아하스에게 말할 필요가 있었을까요? 처녀가 잉태하여 아이를 낳았다는 그 사실이, 사실이 아니고 소문이었다면 말할 필요가 없습니다. 여기서 분명한 점은 14-16절의 처녀와 임마누엘이라는 이름을 가진 그 아이가 누구네 집의 사람들인지는 정확하게 알 수는 없지만 단 알 수 있는 한 가지 사실은 아하스 왕 또는 이사야 선지자가 너무나 잘 알 수 있는 처녀와 그 처녀의 아들이라는 점입니다.
그러니깐 이런 기적을 알게 될, 두려워 떨고 있던 앗수르를 따르던 아하스 왕에게 이사야가 이렇게 전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무엇인가 하면, 다 알 수 있었던 그 처녀 잉태 기적 사건과 그리고 이사야의 자기 아들 스알야숩까지 동원해서 친 아람을 따르던 그 두 나라가 확실하게 망할 것이라는 구체적인 말씀을 해 주셨지만, 놀랍게도 아하스 왕은 하나님을 전혀 믿지 않고 결국 앗수르에게 도움을 청하고 말더라는 것입니다. 처녀가 잉태했고 이를 보았고 알았던 아하스, 그리고 이사야가 와서 태어날 아이 임마누엘을, 두려워 떨고 있던 아하스에게 전했지만, 하나님을 믿지 않고 앗수르 즉 힘을 따르더라는 것을 사7장에서 알게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믿지 않고 앗수르에게 도움을 청하는데, 아하스가 이해가 됩니까? 우리 같으면 두 나라는 연기 나는 부지깽에 불과하고, 그리고 처녀가 아이를 낳게 하고 아이 이름으로 임마누엘, ‘내가 너와 함께 하리라’ 약속을 하셨는데, 아하스처럼 두려워할 수 있을까요? 그러나 아하스는 두려워서 앗수르에게 도움을 청합니다.
이 난해 말씀을 어떻게 해석해야 되는 것도 중요할 수 있겠지만, 무엇보다도 중요한 말씀은 아하스가 하나님을 믿지 않더라는 것입니다. 물론 사7:1-9의 말씀을 보셨지만, 처음에 하나님께서 두 나라 아람과 북이스라엘의 침략으로 심하게 두려워 떨고 있는 남 유다의 아하스에게 사7:3-4에서 구체적인 말씀을 해 주시면서, 조금도 두려워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두 나라가 큰 힘을 가지고 큰 군사력을 가지고 와서, 지금 너를 협박하고 있지만, 친 아람을 따르던 두 나라가 친 앗수르를 따르는 아하스 너를 악한 꾀로 대적하여 두렵게 하고 있지만, 그럴지라도 결국 두 나라는 멸망을 당하고 말 것이라고 사7:5-9 전반부에서 자세하게 말씀을 해 주십니다.
그러시면서 하시는 말씀이 사7:9의 후반부입니다. “만일 너희가 굳게 믿지 아니하면 너희는 굳게 서지 못하리라 하시니라” 너희들이 굳게 믿지 아니하면, 굳게 설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이런 막강한 말씀을 전해 주셨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믿지 못함을 아신 하나님께서 다시 말씀을 또 주십니다. 어떤 말씀인가 하면, 사7:3-9의 이 말씀이 조금도 거짓이 없다는 것을 알게 하시려고, 아하스, 너가 하나님에게 그 어떤 특별한 징조라도 구하라고 사7:11에서 말씀을 하십니다.
그런데 아하스가 뭐라고 합니까? 구하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시험하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을 믿지 않겠다는 뜻으로 얼마나 완악하고 미련한 아하스 왕인지를 알게 합니다. 그러자 다시 사7:13입니다. “이사야가 이르되 다윗의 집이여 원하건대 들을지어다 너희가 사람을 괴롭히고서 그것을 작은 일로 여겨 또 나의 하나님을 괴롭히려 하느냐”라고 그 속상함을 말씀하시면서 포기하지 아니하시고 다시 기적의 말씀을 하십니다.
사7:14입니다.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고 그리고 그의 이름을 임마누엘이라고 하시고, 네가 미워하는 두 나라가 황폐하게 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하스는 하나님을 따르지 않게 되면서 도움을 청했지만, 결국 청했던 앗수르에게 당하게 된다는 것을 사7:17에서 알 수 있습니다. 남 유다가 어떤 고통과 치욕을 당할 것인지, 남 유다의 땅이 어떻게 황폐케 될 것인지를 구체적으로 사7:18-25에서 밝혀 주십니다. 그렇습니다. 누구든지 하나님을 믿지 않으면 어떻게 되는지 보라는 것입니다.
그 사실을 이미 이사야를 통하여 말씀하셨던, ‘보아도 보지 못하고 들어도 듣지 못함을’ 아하스 왕을 통하여 그대로 보여주시는 것이 사7장입니다. 사7장의 아하스 왕을 보면서 어떤 생각이 들던가요? 임마누엘의 하나님인 내가 너를 100% 도와주고 있어! 불꽃같은 눈동자로 졸지도 자지도 않으면서 너를 24시간 밤낮 지켜주고 있어! 나는 너의 피난처고 산성이고 선한 목자이고 요새고 반석이야! 해와 달도 너를 상하게도 해하지도 못해! 그러니 세상의 힘을 두려워하지 말고 순종하라고, 이것이 살길이고 자랑이라고 그렇게 말씀을 통하여 2000년 내내 주의 종들이 선언을 하고 있지만, 어떤가요?
어떤 반응을 지금 교회들이 보이고 있던가요? 지금 어떤 선택을 하고 있던가요? 앗수르 즉 물질, 힘이 없으면 안 됩니다. 여기서 깊이 생각해 봐야 합니다. 힘과 물질이 우선인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믿을 수 있을까요? 누가 보이는 세상의 것들을 다 내려놓을 수 있을까요? 나는 하나님의 말씀을 보고 있고 듣고 있기에 아하스 하고는 달라도 확실하게 다르다고 확신하고 계십니까? 아니면 아하스를 따르면서도, 종교행위 때문에 나는 아하스가 아니야! 라고 속고 있는 것은 아닌가요?
만약에 자기가 정말 하나님의 말씀을 믿기에, 주님과 동행하고 있다면, 어떤 찬양을 드릴까요? 어떤 기도를 드릴까요? 무엇을 위하여 all in 할까요? ~
우린 사6장에서 하신 그 말씀, ‘너는 보아도 보지 못하고 들어도 듣지 못하는 백성에게 가라’고 하신 그 말씀을 사7장의 아하스를 통하여 확인할 수 있게 합니다. 어떤 확인인가요? ~ 힘의 사람들은 두려워하지 말라고 해도 두려워하더라는 것입니다. 처녀가 아들을 낳아 임마누엘이라는 놀라운 이름을 주셨어도 믿지 못하더니, 결국 힘의 앗수르로 가서 도움을 청하고 말더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믿음이라고 할 수 있나요? ~ 보아도 보지 못하고 들어도 듣지 못하던 제 2의 아하스가 될 뿐입니다.
여기서 우린 알아야 합니다. 왜 아하스 왕이 아람과 북이스라엘의 침략에 대하여 두려워 떨었고 앗수르를 따랐을까요? 하나님의 말씀을 보아도 보지 못했고 들어도 듣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믿음이 하나도 없었던 것입니다. 아하스 왕에 대하여 왕하16:1-5에서 무엇이라고 말씀하시는지 보겠습니다. “르말랴의 아들 베가 제십칠년에 유다의 왕 요담의 아들 아하스가 왕이 되니, 아하스가 왕이 될 때에 나이가 이십 세라 예루살렘에서 십육 년간 다스렸으나 그의 조상 다윗과 같지 아니하여 그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보시기에 정직히 행하지 아니하고, 이스라엘의 여러 왕의 길로 행하며 또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자손 앞에서 쫓아내신 이방 사람의 가증한 일을 따라 자기 아들을 불 가운데로 지나가게 하며, 또 산당들과 작은 산 위와 모든 푸른 나무 아래에서 제사를 드리며 분향하였더라, 이 때에 아람의 왕 르신과 이스라엘의 왕 르말랴의 아들 베가가 예루살렘에 올라와서 싸우려 하여 아하스를 에워쌌으나 능히 이기지 못하니라”
그런데 문제는 아하스 왕이 그때 회개하고 하나님만을 바라보아야 했는데 어떤 조치를 내리던가요? 왕하16:6-9입니다. “당시에 아람의 왕 르신이 엘랏을 회복하여 아람에 돌리고 유다 사람을 엘랏에서 쫓아내었고 아람 사람이 엘랏에 이르러 거기에 거주하여 오늘까지 이르렀더라, 아하스가 앗수르 왕 디글랏 빌레셀에게 사자를 보내 이르되 나는 왕의 신복이요 왕의 아들이라 이제 아람 왕과 이스라엘 왕이 나를 치니 청하건대 올라와 그 손에서 나를 구원하소서 하고, 아하스가 여호와의 성전과 왕궁 곳간에 있는 은금을 내어다가 앗수르 왕에게 예물로 보냈더니, 앗수르 왕이 그 청을 듣고 곧 올라와서 다메섹을 쳐서 점령하여 그 백성을 사로잡아 기르로 옮기고 또 르신을 죽였더라” 하나님께서 주실 승리인데 믿음으로 싸우지 못하고 앗수르의 도움을 받아서 아람과 이스라엘을 물리치게 됩니다.
게다가 아하스 왕이 무슨 악행을 저질렀는가 하면, 왕하16:10-16입니다. “아하스 왕이 앗수르의 왕 디글랏 빌레셀을 만나러 다메섹에 갔다가 거기 있는 제단을 보고 아하스 왕이 그 제단의 모든 구조와 제도의 양식을 그려 제사장 우리야에게 보냈더니, 아하스 왕이 다메섹에서 돌아오기 전에 제사장 우리야가 아하스 왕이 다메섹에서 보낸 대로 모두 행하여 제사장 우리야가 제단을 만든지라, 왕이 다메섹에서 돌아와 제단을 보고 제단 앞에 나아가 그 위에 제사를 드리되, 자기의 번제물과 소제물을 불사르고 또 전제물을 붓고 수은제 짐승의 피를 제단에 뿌리고, 또 여호와의 앞 곧 성전 앞에 있던 놋제단을 새 제단과 여호와의 성전 사이에서 옮겨다가 그 제단 북쪽에 그것을 두니라, 아하스 왕이 제사장 우리야에게 명령하여 이르되 아침 번제물과 저녁 소제물과 왕의 번제물과 그 소제물과 모든 국민의 번제물과 그 소제물과 전제물을 다 이 큰 제단 위에 불사르고 또 번제물의 피와 다른 제물의 피를 다 그 위에 뿌리라 오직 놋제단은 내가 주께 여쭐 일에만 쓰게 하라 하매, 제사장 우리야가 아하스 왕의 모든 명령대로 행하였더라”
오늘은 아하스 왕이 어떤 인물인지를 왕하16장을 통하여 살펴보고 있습니다. 아하스 왕은 보아도 보지 못하고 들어도 듣지 못하는 악하고 완악한 왕입니다. 그래서 렘2:19에서 이런 자들을 향하여 무엇이라고 말씀하시던가요? “네 악이 너를 징계하겠고 네 반역이 너를 책망할 것이라 그런즉 네 여호와를 버림과 네 속에 나를 경외함이 없는 것이 악이요 고통인 줄 알라 주 만군의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특히 이사야 7장에서 아하스 왕이 얼마나 완악하고 미련한 왕인지에 대하여 더욱 자세하게 말씀을 하고 계십니다. 건방지게 나는 하나님을 시험하지 않겠다고 하면서 하나님의 도움을 외면하던 아하스에게 결국 어떤 경고를 받게 됩니까? 사7:17에서 하시는 말씀이 앗수르로부터 무서운 침략을 받게 될 것이라는 경고가 임합니다.
어떤 경고입니까? 사7:18-25에서 남 유다가 초토화가 되고 백성들이 유린당하게 되고, 극심한 경제적인 고통을 예언하십니다. 그런데 그대로 가감 없이 하나님의 심판이 현실이 되고 말았습니다. 우리들이 진정 이런 하나님의 말씀을 보고 듣고 그래서 누가 진정한 신인지 진리인지를 알 수 있게 되었다면, 이스라엘이 선택한, 망하는 힘의 길을 택할 수 있을까요? ~ 자기가 힘의 길을 택하면서, 나는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있다고, 아무리 큰 소리로 수천번을 부르짖어 댄다고 하여, 누가 인정해 줄까요? ~
참 답답하고 안타깝습니다. 말씀을 따르지 않으면 결국 망합니다. 이를 알게 하는 것이 바로 은혜입니다. 은혜는 망하는 길로 가지 못하게 막아 주는 능력입니다. 은혜, 은혜 하면서 세상을 따라간다면 자기 식으로 한다면, 그건 스스로 속고 있는 것입니다. 은혜는 세상의 힘과 타협을 일(하나)도 용납하지 않습니다. 은혜는 무엇보다도 끝까지 참고 인내하게 하고, 맡겨주신 성도의 그 자리를 기쁨과 감사의 마음으로 끝까지 힘을 다하여 감당하게 합니다. 어떤가요? 나는 어느 쪽인가요?
둘째로 드릴 말씀은 사7장의 아하스 왕을 통하여 배울 수 있는 점이 있습니다. 우리들이 아하스 왕와 같이 완악하고 무지할지라도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아세요? 시73:22-23입니다. “내가 이같이 우매 무지함으로 주 앞에 짐승이오나, 내가 항상 주와 함께 하니 주께서 내 오른손을 붙드셨나이다” 아하스를 통하여 드릴 수 있는 말씀은 신앙이 무엇이냐 할 때, 바로 시73:22-23이어야 합니다. 자신이 아하스처럼 완악하고 미련하다는 것을 알지만, 그래서 주의 앞에서 늘 짐승 같아서 심히 괴로울지라도 그럴지라도 결코 포기와 낙심과 불평과 원망이 아니라, 끝까지 하나님하고만 동행하려는 강력한 의지를 놓치지 말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럴 때, 어떤 기적이 나타나는지 아세요? 하나님께서는 그런 나의 오른 손을 완전 붙들어 주시더라는 것입니다. 그러니 하나님에게 더 가깝게 나아가는 계기가 되게 하더라는 것입니다.
그 뿐만 아니라, 어떤 고백이 터져 나온다고요? 시73:24-28입니다. “주의 교훈으로 나를 인도하시고 후에는 영광으로 나를 영접하시리니, 하늘에서는 주 외에 누가 내게 있으리요 땅에서는 주 밖에 내가 사모할 이 없나이다, 내 육체와 마음은 쇠약하나 하나님은 내 마음의 반석이시요 영원한 분깃이시라, 무릇 주를 멀리하는 자는 망하리니 음녀 같이 주를 떠난 자를 주께서 다 멸하셨나이다, 하나님께 가까이 함이 내게 복이라 내가 주 여호와를 나의 피난처로 삼아 주의 모든 행적을 전파하리이다” 은혜를 입은 성도라면 힘의 아하스하고는 이렇게 전혀 다른 고백과 반응이 나타나게 됩니다. 성도라면 짐승같은 자신을 늘 보게 될지라도, 끝까지 주와 함께 하려고할 때, 놀랍게도 나의 오른손을 굳게 잡아 주시는 하나님을 만나는 그 경험을 통하여 짐승같은 자신을 제압할 수 있게 됩니다. 이것이 신앙이요 그래서 주신 것이 은혜입니다. 우린 완벽할 수 없습니다. 늘 실수하게 되고 하나님 앞에서는 짐승과 같은 존재입니다. 그러나 그분이 나를 사랑하시기에 그래서 다시 참 마음과 온전한 마음으로 나를 기다리고 계시는 하나님에게 나아가게 되면, 시73:24-28의 고백이 나의 고백이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승리요 기쁨이요 자랑이지, 입김보다 가벼운 세상의 재물과 힘이 다가 아닙니다.
이를 알고 믿고 주님만 바라보게 되면, 짐승 같기에 그래서 주님만 따라가려고 한다면, 결국 죽음도 이깁니다. 임종시, 점과 흠이 없는 거룩한 자가 되어 찬송하면서 이 세상에서의 삶을 아름답게 마감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은혜를 착각하여 그래서 아하스처럼 힘으로 향하면 영원히 망합니다. 아하스는 실패자입니다. 진정한 힘은 자기가 짐승 같은 존재임을 알고 하나님만 바라볼 때, 시편73편 기자처럼 자기의 오른손을 붙잡아 주시는 하나님을 만나게 됩니다.
셋째로 드릴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도움도 받으려고 하지 않고 결국에는 앗수르의 힘을 의지하는 아하스를 보면 어떤 생각이 들던가요? 그는 분명히 보아도 보지 못하는 자였고 들어도 듣지 못하던 왕이었는데, 물론 이 완악함은 아하스만이 아니라 우리들도 그랬다가, 이젠, 보게 되었고 듣게 된 것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점이 있습니다. 보지 못하던 자들이 은혜로 보게 되었다면, 듣지 못하던 자들이 은혜로 듣게 되었다면, 어떤 선택을 할까요? 보게 하시고 듣게 하신 하나님에게 항복할까요? 아니면 불순종할까요? 보아도 보지 못하고 들어도 듣지 못하여 버려질 자가 은혜로 듣게 되고 보게 되었다면, 자기를 회복시켜주신 하나님에게 다 맡길까요? 맡기지 않을까요? 다 내려놓을까요? 아니면 자기 것들을 챙기면서, 하나님의 말씀은 외면할까요? ~ ‘보지 못하던 자들이 보게 되고 듣지 못하던 자들이 듣게 되면’ 그 은혜를 어찌 잊을 수 있을까요? ~ 그렇다면, 그 은혜를 진정으로 감사하는 자들은 어떤 선택을 할까요? 그 하나님을 알기 위하여 주신 성경말씀을 자기의 것이 되게 하려고 어떤 수고를 하게 될까요?
말씀을 주야로 죽어라, 묵상하면서 말씀을 마음 판에 깊이 새기려고 몸부림을 치지 않을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진정 자신이 하나님의 도움으로 ‘보지 못했는데 보게 되고, 듣지 못했는데 듣게 되었다면’ 당연히 그분에 대한 말씀을 점 하나도 놓치지 않으려고 할 것입니다. 그것이 자기가 고침을 받았다는 증거가 되는 것이 아닐까요? ~
그런데 만약에 그렇지 않다면, ‘그건 아직도 보아도 보지 못하고 있다는 뜻이요 들어도 듣지 못하고 있음을 스스로 인정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분을 보고 싶고 그의 음성을 듣고 싶다면, 하나님하고 늘 가까이 하세요! 말씀을 늘 묵상해 보세요! 그러면 더 보이고 더 들릴 것입니다. 당연히 지혜도 승리도 얻을 것입니다.
'주일 설교 말씀' 카테고리의 다른 글
7/28/2024 이사야 9:1-21 (16) | 2024.07.29 |
---|---|
7/21/2024 이사야 8:1-22 (14) | 2024.07.22 |
7/7/2024 이사야 6:1-13 (13) | 2024.07.08 |
6/30/2024 이사야 5:1-30 (13) | 2024.07.01 |
6/23/2024 이사야 4:1-6 (18) | 2024.06.2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