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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돌교회
3/31/2024 스가랴 11:1-17 본문
말씀: 슥11:1-17
제목: 저주처럼 예언 된 말씀
오늘은 놀라운 부활 주일입니다. 이해할 수 없는 비상식적인 일이 2000년 전에 벌어진 것입니다. 이 부활을 누가 믿을까요? 힘의 차원에서는 불가능한 논리입니다. 그렇기에 기독교의 부활에 대하여 힘의 사람들로부터 공감과 인정을 받기란 불가능합니다. 그러나 사실이기에 믿어야 하는데 세상 안에서는 믿을 방법과 길이 없습니다. 그래서 절망입니다.
특히 슥11장의 말씀이 부활절하고 어떤 관련이 있다고 생각할 수 있나요? 슥11장 자체를 두고 보면 어떤가요? 주전480년경에 주신 예언의 말씀입니다. 그런데 그 내용을 보셨지만 어떤가요? 이해가 안 됩니다. 스룹바벨 성전까지 다 세우고 난 후, 약 50년 후에 주신 예언이 슥11장인데, 그동안은 어떤 예언이 있었나요? 스룹바벨 성전을 완공하기 전까지는 내내 이스라엘의 회복과 승리의 약속과 함께 바른 금식과 봄비를 구하라는 기도에 대한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러다가 슥11장에 와서는 그 내용이 완전히 달라집니다. 별안간에 너희들, 즉 영적인 지도자인 바리새인, 서기관, 장로를 포함하여 모든 이스라엘 백성이 망한다고 하십니다. 그리고 오실 메시야까지 포기할 뿐만이 아니라 무한대의 가치를 가지신 메시야를 은 30에 팔아 버리므로 즉 경멸하므로 그 결과 망하고 말 것이라고 그 점에 대하여 자세히 말씀하시고 계십니다.
그런데 왜 말씀의 내용이 180도로 바뀌었을까요? 간단히 설명을 드린다면, 율법을 주고 성전을 세워주시고 그러나 망하여 포로가 되었지만 다시 회복을 시켜 돌아오게 하셔서 또 제 2성전을 세워주시면서 너희들은 세상의 힘보다 더 강력한 믿음으로 세상의 제사장의 나라로써 본이 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은 결국 망합니다. 하나님의 은총과 연락 즉 연합으로 제 2성전을 짓고 난 이스라엘은 그 후에도 마지막까지 하나님을 배신하고 말더라는 것입니다. 무슨 뜻입니까? 부활이 없으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수천 년 간을 아무리 그렇게 보살펴 주시고 지도하여 주시면서 도와주고 또 도와줘도 결국은 안 되는 구나! 심지어 메시야가 오셔서 다시 기회를 주시겠다고 하시지만 그럴지라도 메시야를 죽이고 말더라는 것입니다. 결국 세웠던 이스라엘의 지도자인 목자들이 무슨 죄악을 저지르고 말던가요?
슥11:16만 보더라도 알 수 있습니다. “보라 내가 한 목자를 이 땅에 일으키리니 그가 없어진 자를 마음에 두지 아니하며 흩어진 자를 찾지 아니하며 상한 자를 고치지 아니하며 강건한 자를 먹이지 아니하고 오히려 살진 자의 고기를 먹으며 또 그 굽을 찢으리라”
그 당시 사악한 목자를 보면서 이스라엘은 완전히 무질서요 도탄에 빠진 상태요 절망 그 자체였음을 알 수 있게 합니다. 그런데 이런 상태에서 하나님을 배신하고, 결국 메시야이신 하나님의 아들까지도 경멸이 여기면서 그리고 죽이므로 멸망을 당하고 말았지만, 그 사이에 믿음의 불꽃, 성령을 제자들에게 보내주시더니, 어떤 일이 생깁니까?
행1:8입니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불순종으로 망한 이스라엘이 다시 하나님의 은총와 연합으로 갈릴리로부터 시작하여 예루살렘의 다락방에서 성령이 임하시더니 그 예루살렘의 다락방에서 온 유다로, 온 유다에서 사마리아로, 사마리아에서 땅 끝 즉 이방 전 세계까지 전파되면서 오늘에 이른 것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결국 슥11:9-11의 말씀대로 로마의 침공을 주후70년에 받고 결국 망하고 맙니다. 망했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점은 그 절망 안에서 되게 하시더라는 것입니다. 그 시작이 망했는데 모두를 일으키고 계시더라는 것입니다.
바로 그 점을 알게 하시는 것이 슥11장입니다. 먼저 슥11장의 내용을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슥11장은 3부분으로 나뉘어 있습니다. 슥11:1-3의 내용은 성전 재건 후 하나님의 크신 은혜를 체험했지만, 다시 또 범죄 함으로 큰 환란 가운데 처하게 된 이스라엘에 대한 선지자의 탄식입니다. 4-14절의 내용은 선한 목자로 오실 메시야의 사역과 이러한 메시야를 이스라엘이 배척할 뿐 아니라 은 30에 팔아넘길 것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15-17절은 참 목자 되신 메시야를 배척한 이스라엘이 거짓된 악한 목자 아래서 고난당하게 될 것과 이러한 거짓되고 악한 목자에게 임할 심판을 기록하고 계십니다.
그러나 슥11장의 예언되었던 그 내용대로 500년 후에 다 이루어졌다는 사실입니다. 복된 승리와 영광스런 예언이 아니라 저주와 재앙의 예언이 500년 후에 그대로 다 이루어진 것입니다. 끔직한 재앙의 예언이 다 이루어졌다는 것을 보면, 무슨 생각이 드시나요? 당연히 저주의 예언 성취가 아니라 복된 예언의 성취들이 이루어져야 된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데, 그것이 아니라 그 반대로 저주의 예언이 그대로 이루어진 것입니다. 이건 속일 수 없는 사실입니다.
사실인데, 슥11장의 이 저주의 예언이 무슨 말씀을 하시려는 것일까요? 어려운 가운데 힘든 스룹바벨 성전이 하나님의 도움으로 완성이 되었지만, 성전을 통하여 이스라엘의 신앙이 하나님만을 경외했다면 무슨 문제가 되었을까요? ~ 그러나 놀랍게도 그 하나님의 보살핌과 보호하심 가운데서도 이스라엘은 신앙이 나아지는 것이 아니라 그 반대로 결국 타락하고 말더라는 것입니다. 이제 곧 말라기의 말씀을 보겠지만, 말라기의 말씀만 보아도 그 부패와 타락의 정도를 짐작할 수 있게 합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은 망하게 되고 약 2000년간 이 땅에서 사라지게 됩니다. 그런데 왜? 이스라엘은 그 놀라운 약속의 복들을 다 차버렸을까요? 복을 차버린 것이 아니라 복을 아무리 주시려고 해도 그 복을 받을 수가 없는 상태였다는 것입니다. 그 어떤 보살핌과 도움을 심지어 율법도 주셨고 제사장도 세워 주셨고 성전까지도 세워 주시면서 늘 제사까지도 드릴 수 있게 하셨지만, 그럼에도 이스라엘은 생명의 복, 진리의 복, 승리의 복을 포기하고 죽음의 길, 사망의 저주를 택하고 말더라는 것입니다.
결국 받은 율법에 의하여 망하고 만 것입니다. 무슨 뜻인지 이해가 되시나요? 그렇습니다. 롬3:21입니다. “이제는 율법 외에 하나님의 한 의가 나타났으니 율법과 선지들에게 증거를 받은 것이라” 율법 외에 다른 하나님의 의가 필요 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율법 외에 다른 하나님의 의인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주셨는데, 그 메시야이신 예수 그리스도까지도 죽여 버리고 말더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이 어떻게 된다고요? 당연히 망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슥11:1-3에서 너희들을 사르게 하라, 곡할지어다, 넘어졌고, 쓰러졌고, 엎어졌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 이유에 대하여 자세하게 푼 것이 바로 슥11:4-14입니다. 4절을 보시면, “여호와 나의 하나님이 이르시되 너는 잡혀 죽을 양 떼를 먹이라” 이스라엘이 다 잡혀 죽을 양 떼가 되고 만 것입니다. 결국 예언하신 대로 이스라엘은 메시야를 외면하는 바람에 AD 70년에 로마의 Titus 장군에 의하여 예루살렘의 성전이 함락되고 그 당시 무려 150만 명이 사상자를 내고 멸망합니다.
결국 슥11:5를 보세요! “사들인 자들은 그들을 잡아도 죄가 없다 하고 판자 들은 말하기를 내가 부요하게 되었은즉 여호와께 찬송하리라 하고 그들의 목자들은 그들을 불쌍히 여기지 아니하는도다” 이스라엘은 노예가 되고 마는데, 이방인들이 뭐라고 하는가 하면, 이스라엘 사람들을 잡아도 죄가 없고 특히 유대지도자들이 자기 민족을 노예로 팔아 돈을 벌게 되는데, 뭐라고 해요? 부자가 되었다고 하면서 하나님에게 찬송할 것이라고 합니다. 자기 민족을 팔면서 전혀 불쌍히 여기지 아니하고 오히려 좋아했던 이스라엘의 지도자들일 것이라고 예언하셨습니다.
그 당시 이스라엘이 어떠했는지 상상이 갑니까? 얼마나 악했는지를 밝히고 있습니다. 결국 슥11:6에서 하나님께서 하시는 말씀이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가 다시는 이 땅 주민을 불쌍히 여기지 아니하고 그 사람들을 각각 그 이웃의 손과 임금의 손에 넘기리니 그들이 이 땅을 칠지라도 내가 그들의 손에서 건져내지 아니하리라 하시기로” 포기하시겠다고 하십니다. 그래서 70년에 로마의 티투스 장군에 의하여 나라를 잃고 맙니다. 로마가 힘이 있어서가 아니라 로마가 이스라엘을 멸망을 시킨 것이 하나님의 뜻이었던 것입니다.
일어날 모든 사건들이 이렇게 이미 준비되었다는 것을 알게 합니다. 이런 사실을 세상 사람들은 모르고 단지 힘의 역사로만 보고 있는데 아닙니다. 인류의 모든 역사를 주장하시는 분이 하나님이십니다. 그리고 슥11:7에서 말씀하십니다. “내가 잡혀 죽을 양 떼를 먹이니 참으로 가련한 양들이라 내가 막대기 둘을 취하여 하나는 은총이라 하며 하나는 연합이라 하고 양 떼를 먹일새” 무슨 뜻입니까? 하나님의 은총인 은혜와 연락(連絡)인 하나님과 결속된 관계로 끝까지 이스라엘 백성들을 모두 사랑하였지만, 결국 그들은 끝까지 하나님을 배반하고 말았다는 뜻입니다. 어떤 배반인가 하면 슥11:8, 12-13입니다. 8절의 말씀은 한 달 동안에 즉 한 달이 아니라 장구한 역사에 비해 상대적으로 ‘지극히 짧은’ 기간을 의미하는 것으로 이스라엘의 3 목자인 지도자들이 미련하게도 하나님이신 예수님을 미워했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12-13절의 말씀은 예수님에 대한 평가를 고작 은 30개로 삼았던 것입니다. 당시 은30개는 노예들의 몸값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아들 무한대의 가치를 가지신 예수 그리스도를 노예 정도로 취급한 것입니다.
얼마나 무지하고 어리석은 그들입니까? 이제 이런 그들의 미련한 선택으로 이스라엘은 처참하게 멸망을 당하게 될 것이라는 예언의 말씀이 슥11장의 내용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이런 불길한 저주예언을 하시는 그 근본 이유가 무엇인가? ~ 하나님께서 이런 불길한 재앙의 말씀을 예언하시는 그 근본 이유를 말씀을 드리기 전에, 먼저 이 점을 알아야 합니다. 이스라엘이 망하는 이유는 결국 하나님의 말씀을 외면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슥11장에서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심판은 심판을 위한 심판의 말씀이 아닙니다. 물론 심판을 받는 이유는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것이 핵심의 말씀입니다. 그러나 이 재앙의 예언은 이제 너희들의 구세주로 임하실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으로부터 구세주로 보내심을 받은 메시야라는 것을 깨닫게 하시려는데 있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께서 창3:15의 최초로 예언하신 약속의 말씀을 시작으로 그동안 하신 약속들이 그대로 다 이루어져야 되기 때문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하나님의 계획은 무의미할 뿐입니다. 게다가 하나님은 거짓말쟁이가 되고 특히 모든 인류는 다 지옥의 형벌을 면하지 못하는 무서운 심판을 받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슥11장의 말씀 안에서도 구세주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가 누구인지를 잘 그려져 있는 것입니다. 창3:15의 말씀을 보면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네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하시고” 창3:15의 말씀은 하나님께서 메시야를 통하여 죄와 사망의 저주에서 벗어나 영생하는 생명의 길을 주시겠는 약속의 말씀입니다. 십자가 사건을 통하여 죄악의 세력을 완전하게 꺾고 구원을 완전하게 이루어주시겠다는 말씀입니다. 창3:15의 최초의 복음이 선포된 후에 그때부터 줄 곳, 스가랴 선지자가 살던 당시까지 끊임없이 이어지면서 결국 하나님의 아들 메시야를 통하여 구원을 반드시 이루실 것을 명명백백하게 재확인시켜 주시는 내용이 슥11장의 말씀이기도 합니다. 때문에 이제 오실 예수 그리스도가 구세주 되심을 깨닫고 구원을 이루어 주시려는데 그 의미가 있기에 슥11장에서 예수가 어떻게 말씀되고 있는 지를 찾아봅니다.
슥11:12의 말씀에서 잘 나타납니다. “내가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가 좋게 여기거든 내 품삯을 내게 주고 그렇지 아니하거든 그만두라 그들이 곧 은 삼십 개를 달아서 내 품삯을 삼은지라” 이제 오실 하나님이신 예수라는 분이 이제 이스라엘 자신의 백성들에게 은 30의 가치로 취급을 받고 버림을 받게 된다면 그가 바로 너희들을 구원하실 메시야요 그리스도가 된다는 것입니다. 그럼, 이 예언의 말씀으로 예수가 그리스도가 되시는지를 어떻게 확인할 수 있는가?
마26:14-16입니다. “그 때에 열둘 중의 하나인 가룟 유다라 하는 자가 대제사장들에게 가서 말하되, 내가 예수를 너희에게 넘겨주리니 얼마나 주려느냐 하니 그들이 은 삼십을 달아 주거늘, 그가 그 때부터 예수를 넘겨 줄 기회를 찾더라”입니다.
슥11:12-13의 당시 예언하셨던 말씀과 2000년 전에 십자가의 사건으로 죽으셨다가 부활하신 당시의 사건을 기록한 마26장의 말씀의 내용과 비교해 보았습니다. 다르지 않습니다. 결국 하나님 아들 예수께서는 전혀 말도 아니 되는, 무한하신 신이 유한한 인간의 몸을 입고 타락한 세상의 죄인들을 구원하려고 오셨지만, 아무도 그분을 믿을 수가 없었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오셨습니다. 상상할 수 없는 방법으로 오셨기에 그래서 그분을 아무도 믿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은 심판을 받게 됩니다.
왜요? 왜 이스라엘이 심판을 받아야 했습니까? 요5:46-47입니다. “모세를 믿었더라면 또 나를 믿었으리니 이는 그가 내게 대하여 기록하였음이라, 그러나 그의 글도 믿지 아니하거든 어찌 내 말을 믿겠느냐 하시니라” 메시야에 대한 예언된 모든 말씀들이 믿어지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분이 구세주시라는 것을 스가랴서 뿐 만 아니라 구약의 전체 말씀에서 밝히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요20:31도 보세요! “오직 이것을 기록함은 너희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 또 너희로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 예수님이 자신이 부르심을 받고 구세주로 이 악한 세상에 왔을 때에, 미리 예언된 구약의 말씀만으로도, 너희들이 내가 누구인지를 깨닫고 역시 하나님의 구원이 성취가 되었다는 이 놀라운 사실 앞에서, 예수님을 믿고 순종했어야 했던 것입니다. 그래야 심판이 아닌 진정한 승리자가 되는데, 그렇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부활의 주로 인한 승천과 함께 성령께서 임하시므로 그 모든 과정과 그리고 예수가 구세주가 되심을 확인할 수가 있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도 눅24:44의 말씀을 주십니다. 우리 함께 보십니다. “또 이르시되 내가 너희와 함께 있을 때에 너희에게 말한 바 곧 모세의 율법과 선지자의 글과 시편에 나를 가리켜 기록된 모든 것이 이루어져야 하리라 한 말이 이것이라 하시고” 물론 구약의 39권의 모든 말씀들이 한꺼번에 한 사람에 의해서 쓰여 졌다면 의심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구약의 말씀은 각 시대의 수십 명의 저자들이 수백 년 이상 거의 천년 동안에 기록한 39권의 말씀들입니다.
구약은 결국 오실 주님이 구세주 되시는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점을 분명히 말씀하시고 계시지만, 그러나 결국 하나님께서는 율법이 아닌 롬3:25, 26에서도 확인을 했듯이, 하나님의 다른 의를 통하여 구원하셨던 것입니다. 그러니까 오실 메시야를 말씀하신 것이 구약이라면, 그 구원을 실제로 이루신 예수님을 확인할 수 있는 말씀이 신약입니다. 특히 예수님은 자신에 대하여 수차례 설명을 하실 때에 자신이 누구라고 말씀을 하셨는지 아십니까? 요5:30, 7:28, 8:28, 42, 10:25, 12:44-45, 13:19-20, 14:10, 15:21, 16:28, 30, 17:7, 18, 21, 23, 25의 말씀을 보세요!
요5:30 “나는 아무것도 내 마음대로 할 수 없다. 나는 듣는 그대로 심판한다. 그래서 내 심판은 공정하다. 이것은 내가 원하는 대로 하려는 것이 아니라 나를 보내신 분이 원하는 대로 하려고 하기 때문이다.
요7:28-29 그때 성전에서 가르치고 계시던 예수님이 큰 소리로 말씀하셨다. “그렇다. 너희는 나를 알고 또 내가 어디서 온 것도 알고 있다. 그러나 나는 내 마음대로 온 것이 아니다. 나를 보내신 분이 따로 계신다. 그분은 참되신 분이시다. 너희는 그분을 모르지만, 나는 알고 있다. 이것은 내가 그분에게서 왔고 그분은 나를 보내셨기 때문이다.”
요8:28 그러므로 예수님이 다시 말씀하셨다. “너희가 나를 십자가에 못박아 죽인 다음에야 비로소 내가 그리스도라는 것과 또 내가 아무것도 스스로 말하지 않고 아버지께서 가르쳐 주신 대로 말한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요8:42 그래서 예수님이 그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너희 아버지가 정말 하나님이시라면 너희가 나를 사랑했을 것이다. 이것은 내가 하나님에게서 나와 이 곳에 왔기 때문이다. 나는 내 마음대로 온 것이 아니고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셨다.
요10:25 그래서 예수님은 그들에게 이렇게 대답하셨다. “내가 이미 말했어도 너희는 믿지 않고 있다. 내가 아버지의 이름으로 하고 있는 이 일들이 나를 증거하고 있다.
요12:44-45 예수님은 큰 소리로 이렇게 말씀하셨다. “나를 믿는 사람은 나를 믿는 것이 아니라 나를 보내신 분을 믿는 것이며, 나를 보는 사람은 나를 보내신 분을 보는 것이다.
요13:19-20 내가 이 일을 미리 너희에게 일러 주는 것은 그 일이 일어날 때 내가 바로 그 사람이라는 것을 너희가 믿도록 하기 위해서이다. 내가 분명히 너희에게 말한다. 누구든지 내가 보내는 사람을 영접하는 사람은 나를 영접하는 자이며 나를 영접하는 사람은 나를 보내신 분을 영접하는 자이다.”
요14:10 너는 내가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신 것을 믿지 않느냐? 내가 너희에게 말하는 것은 내 마음대로 하는 말이 아니라 내 안에 계시는 아버지께서 그의 일을 하시는 것이다.
요15:21 그들은 너희가 나에게 속해 있다는 이유로 너희를 그처럼 괴롭힐 것이다. 이것은 그들이 나를 보내신 분을 모르기 때문이다.
요16:28 나는 아버지에게서 나와 세상에 왔다가 다시 세상을 떠나 아버지에게로 간다.”
요16:30 이제 우리는 더 묻지 않아도 주님께서 모든 것을 다 아시는 분이라는 것을 알겠습니다. 이것으로 우리는 주님이 하나님에게서 오신 분이라고 믿습니다.”
요17:7 지금은 그들이 아버지께서 내게 주신 모든 것이 아버지에게서 온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요17:18 아버지께서 나를 세상에 보내신 것처럼 나도 그들을 세상에 보냈습니다.
요17:21 아버지,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고 내가 아버지 안에 있는 것같이 그들도 하나가 되어 우리 안에 있게 하소서. 그래서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세상이 믿게 하소서.
요17:23 나는 그들 안에 있고 아버지는 내 안에 계십니다. 그들이 완전히 하나가 되게 하셔서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과 또 나를 사랑하신 것처럼 아버지께서 그들도 사랑하신 것을 세상이 알게 하소서.
요17:25 의로우신 아버지, 세상은 아버지를 모르지만 나는 알고 있으며 그들도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알고 있습니다.
요한복음서 내내 자신이 하나님으로부터 왔다고 말씀을 하십니다. 즉 자신이 그냥 하늘에서 ‘뚝, 떨어진 자’가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자신은 이미 만세 전에 하나님의 계획대로 준비되어서 이 세상으로 보냄을 받은 자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하나님의 구원 계획에 대하여 의심 없이 믿어져야지만 구원이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자신이 누구인지를 공생애 3년 반 동안에 밝히고 계셨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사실을 믿게 하시려고 구약의 마지막 선지자인 세례 요한까지 보내셔서 어떤 말씀까지 하게 하셨나요?
요3:28의 말씀입니다. “내가 말한 바 나는 그리스도가 아니요 그의 앞에 보내심을 받은 자라고 한 것을 증언할 자는 너희니라” 그런데 예수가 누구인지를 이스라엘에게 알리러 온 세례 요한도 역시 이미 구약에서 예언된 인물입니다.
말4:4-5입니다. “보라 여호와의 크고 두려운 날이 이르기 전에 내가 선지자 엘리야를 너희에게 보내리니, 그가 아버지의 마음을 자녀에게로 돌이키게 하고 자녀들의 마음을 그들의 아버지에게로 돌이키게 하리라 돌이키지 아니하면 두렵건대 내가 와서 저주로 그 땅을 칠까 하노라 하시니라,
막1:6입니다. ”요한은 낙타털 옷을 입고 허리에 가죽 띠를 띠고 메뚜기와 석청을 먹더라”
구약에서는 왕하1:8을 봅니다. “그들이 그에게 대답하되 그는 털이 많은 사람인데 허리에 가죽 띠를 띠었더이다 하니 왕이 이르되 그는 디셉 사람 엘리야로다” 구약에서는 엘리야로 말씀하시지만, 마17:10-13을 보시면 “제자들이 물어 이르되 그러면 어찌하여 서기관들이 엘리야가 먼저 와야 하리라 하나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엘리야가 과연 먼저 와서 모든 일을 회복하리라,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엘리야가 이미 왔으되 사람들이 알지 못하고 임의로 대우하였도다 인자도 이와 같이 그들에게 고난을 받으리라 하시니, 그제서야 제자들이 예수께서 말씀하신 것이 세례 요한인 줄을 깨달으니라” 구약에서 엘리야라는 선지자가 바로 예수님을 증거하는 구약의 마지막 선지자 세례 요한임을 말씀합니다. 이렇게 성경은 성경으로 풀게 되어 있습니다. 때문에 구약을 모르면 예수라는 분은 하늘에서 떨어진 분이 될 뿐입니다. 예수가 누구인지를 확인할 수 없기에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로 단지 앵무새처럼 따라할 뿐입니다. 그렇게 되며 저주를 피하지 못하고 맙니다.
그 결과 이스라엘도 슥11:1-3의 예언대로 심판을 받게 된 것입니다. 물론 스가랴 선지자 당시에 이런 예언의 말씀을 받았지만, 결국 그 후 500년 후에 슥11:1-3의 말씀처럼 메시야를 믿지 아니하므로 말미암아 AD 70년 로마 디도 장군에 의해서 멸망을 받아 이스라엘은 약 2000년 간 버림을 받게 됩니다. 창3:15의 하나님의 예언의 말씀이 놀라운 십자가의 사건으로 이루어졌지만, 이루신 예수님을 외면하고 오히려 미워하므로 그들은 슥11:10, 14의 말씀처럼 하나님의 은총과 연합에서 끊어지는 아픔을 실제로 AD 70년에 로마의 Titus 장군에 의해서 받게 됩니다. 이스라엘의 모든 지도자들과 모든 백성들이 구약을 똑바로 깨닫지도 못했을 뿐만 아니라 사도들에 의한 주님의 부활과 주가 되신다는 말씀까지도 의심하고 외면하므로 결국 AD 70년에 버림을 받게 된 것입니다. 특히 하나님의 말씀을 믿지 못하는 아니 하나님의 말씀을 바로 깨닫지 못한 목자들 즉 나라의 지도자인 서기관, 바리새인, 장로들은 그들이 메시야를 죽이는데 앞장을 선 장본인들입니다. 그들의 사역이 어떠했습니까?
슥11:16을 다시 보세요! “보라 내가 한 목자를 이 땅에 일으키리니 그가 없어진 자를 마음에 두지 아니하며 흩어진 자를 찾지 아니하며 상한 자를 고치지 아니하며 강건한 자를 먹이지 아니하고 오히려 살진 자의 고기를 먹으며 또 그 굽을 찢으리라” (1) 없어진 자들 즉 죽은 자들을 마음에 두지 아니하며 그것은 사랑이 전혀 없었다는 뜻입니다. (2) 흩어진 자를 찾지 아니하며 즉 어린 양들이 집을 잃어버렸을 경우에 그들을 찾을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는 말씀입니다. (3) 상한 자들을 고치지 아니하며 (4) 강건한 자들을 먹이지 아니하며 즉 굶겼다는 것입니다. (5) 오히려 살진 자들을 먹으며 그것도 부족하여 그 굽까지도 찢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당시 메시야를 죽이려고 앞장을 섰던 악한 지도자들의 모습입니다. 영적인 지도자들이 이렇게 진리를 외면했었으니 백성들이야 더 이상 말할 것이 없지요! 이 원인 때문에 이스라엘 모두는 버림을 받은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지 못했기에 그렇게 된 것입니다. 구약을 모르면 예수님을 만나도 믿지를 못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구약을 알면 예수님을 만나지 않아도 그분을 메시야로 믿게 된다는 사실입니다.
물론 성령 하나님께서 깨닫게 해 주셨기에 예수님을 믿게 되는 것이지만, 그러나 구약을 모르면 성령 하나님께서 믿게 해 주시려고 해도 온전하게 믿을 수가 없게 된다는 것입니다. 구약을 모르고 예수님을 믿게 된다는 것은 마치 하늘에서 떨어진 예수가 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말씀을 듣다가 보면 그 말씀들이 짝을 맞추듯이 맞춰지면서 바로 이것이로구나! 성령의 도움으로 점점 깊게 깨닫게 되지만, 물론 그것까지도 다 하나님께서 도와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일차 구원은 무조건적인 선택으로써 하나님의 일방통행이라면, 성화의 과정은 성령 하나님과 함께 거룩한 목표를 향한 수고를 각자들이 하셔야 되는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우리들의 참 미련한 모습을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을 통하여 깨닫게 하지 않습니까? 세상의 힘 때문에 하나님의 은혜와 연합을 포기하는 이스라엘과 우리와 무엇이 다릅니까? 힘의 세상 때문에 진리이신 주님을 은 30개와 바꾸었던 이스라엘의 무지와 우리가 무엇이 다릅니까? 우리는 참으로 악하고 미련한 자들입니다. 자신을 보면 절망감이 들 때에도 허다하지 않습니까?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러한 우리들을 불쌍히 여겨주시는 분이십니다. 히4:14-15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큰 대제사장이 계시니 승천하신 이 곧 하나님의 아들 예수시라 우리가 믿는 도리를 굳게 잡을지어다,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의 연약함을 동정하지 못하실 이가 아니요 모든 일에 우리와 똑같이 시험을 받으신 이로되 죄는 없으시니라” 부활승천하신 주님께서는 하늘나라에서도 바로 형편없는 미련한 우리들을 그대로 방치하지 아니하시고 체휼(윗자리에 앉은 자들이 아랫사람의 곤란한 사정을 돌보고 구해 주는 일), 쉬운 말로 표현한다면, 동정하여 주시는 분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히4:16의 말씀처럼 “그러므로 우리가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 성도라면 그 어떤 처지에서도 낙망과 절망하지 마시고 미안하여 쩔쩔매지 마시고 변명 핑계 대지 마시고 담대히 은혜의 보좌 앞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나아가게 해 주시려고 자비하신 하나님께서는 연약하고 부족한 우리들을 위하여 메시야를 보내 주신 것입니다. 그런데 이 놀라운 하나님의 사랑을 외면한다면 이스라엘이 받았던 그 심판을 면하지 못할 것입니다.
그러나 형편없는 악한 자신일지라도 하나님의 이 놀라운 넓은 사랑을 믿고 담대히 은혜의 보좌 앞으로 나아간다면 그것이 복이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마음이요 바람이십니다. 그러나 만약에 하나님을 모른다고 해 봅시다! 자기 식으로 판단하여 너무나 미안해서 하나님을 외면하게 된다면 그것은 스스로 복을 차고 심판을 부르는 미련한 선택이 될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들의 연약함을 너무나 잘 아십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보내주신 것입니다. 때문에 어떤 형편에서도 무시로 성령 안에서 하나님께 담대히 아니 뻔뻔해도 됩니다. 나아가셔서 인정하고 도움을 청하시기를 바랍니다. 숨지 마세요! 그것이 복을 받는 길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현실이 얼마나 떳떳하고 청결하고 잘하는데 있지 않습니다. 자기가 미련하고 어리석고 부족할수록 오히려 하나님하고의 관계가 더 깊어지고 더 사랑하게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이 잘 나고 잘 해서가 아니라 참 못났지만, 단지 사랑하시기에 늘 동행하여 주시고 계십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긍휼과 자비를 베풀어 주셨다는 것이 무슨 뜻입니까? 똑똑하고 잘하는데 있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그 자비와 은혜와 긍휼을 아는데 있습니다. 누가 더 하나님을 의지할까요? 부족하면 할수록 더 사랑하게 되고 더 의지하게 됩니다.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연약하고 부족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믿음으로 하나님께 나와서 회개와 도움을 구하는 자녀들을 지극히 기뻐하십니다. 이 점을 기억하시고 끝까지 승리하시는 삶, 승리를 만들어 가는 남은 삶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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