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돌교회

3/17/2024 스가랴 9:1-17 본문

주일 설교 말씀

3/17/2024 스가랴 9:1-17

PastorYK 2024. 3. 18. 09:59

말씀: 슥9:1-17                                                

제목: 시온의 딸아 크게 기뻐할지어다

 

 

지난 시간에는 이방나라들이 이스라엘의 저지른 죄로 타락한 이스라엘을 때리는 막대기로 쓰임을 받았지만, 그 이유는 이방나라들의 교만과 우상숭배로 하나님의 심판을 받게 됩니다. 심지어 최강국이었던 앗시리아까지도 그리고 바벨론까지도 순종하지 못하여 멸망을 당하고 만 것에 대하여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런데 슥9:1에서는 하나님의 말씀이 이방 나라에게도 임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들과 이스라엘의 모든 지파의 눈이 이를 보고 하나님을 우러러 볼 것이라고 하십니다. 그러시면서 하시는 말씀이 힘의 이방나라들을 특히 지혜롭고 부유했던 두로를 비롯하여 주변국들을 보면, 그 나라들을 정복케 하시는데 두로 나라는 그 나라의 권세를 바다에 쳐 넣어 불에 삼켜지도록 하시겠다고 하십니다. 그런데 이를 보고 이웃 이방나라 블레셋의 아스글론이 이를 보고 무서워하게 되고, 그리고 아스글론의 주민까지도 없애버리시겠다고 하십니다. 가사는 심히 아파할 것이고 나중에는 가사에 임금도 끊어지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블레셋의 에그론도 보면, 그 소망이 수치가 된다고 하시고 그리고 블레셋의 아스돗은 잡족이 거주하게 하시겠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을 늘 괴롭힌 블레셋의 4도시인 아스글론과 에그론과 가사 그리고 아스돗이 이런 심판을 받게 된 그 이유는 교만 때문인 것을 슥9:2, 6에서 알게 하십니다.

 

그런데 슥9:7을 보세요! 그의 입에서 그의 피를, 그의 잇사이에서 그 가증한 것을 제거하리니 그들도 남아서 우리 하나님께로 돌아와서 유다의 한 지도자 같이 되겠고 에그론은 여부스 사람 같이 되리라” 그들의 그의 입에서 그의 피를, 그의 잇사이에서 그 가증한 것을 제거하시면서 교만을 끊고 말겠다는 것인데, 그 뜻은 그들이 그들의 신에게 제물을 바칠 때, 흘린 핏물인데, 그 피를 제거하시겠다는 뜻은 우상 숭배 행위를 깨끗하게 근절시켜버리겠다는 뜻입니다. 그러시면서 하시는 다음의 말씀에서는 우상숭배에서 완전 벗어난 그들이 하나님에게로 돌아오게 하여 유다에 즉 하나님의 나라에 한 지도자가 되게 하시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에그론은 여부스 사람같이 되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그 뜻은 이스라엘 즉 하나님의 나라의 백성이 되게 하시겠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슥9:1의 말씀처럼 사람들과 12지파들이 하나님을 우러러 볼 수밖에 없는 날이 온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후 500년 후에 예수님을 통하여 어떤가요? 500년 전의 하신 이 예언들이 다 이루어졌습니다. 

 

물론 이 예언 중에서 단 한 가지인 이스라엘의 모든 지파가 하나님을 우러러 봐야 되는데, 아직 다 우러러 보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 이스라엘의 12지파가 하나님을 우러러 보게 될 때, 즉 계7:1-8입니다. “이 일 후에 내가 네 천사가 땅 네 모퉁이에 선 것을 보니 땅의 사방의 바람을 붙잡아 바람으로 하여금 땅에나 바다에나 각종 나무에 불지 못하게 하더라, 또 보매 다른 천사가 살아 계신 하나님의 인을 가지고 해 돋는 데로부터 올라와서 땅과 바다를 해롭게 할 권세를 받은 네 천사를 향하여 큰 소리로 외쳐, 이르되 우리가 우리 하나님의 종들의 이마에 인치기까지 땅이나 바다나 나무들을 해하지 말라 하더라, 내가 인침을 받은 자의 수를 들으니 이스라엘 자손의 각 지파 중에서 인침을 받은 자들이 십사만 사천이니, 유다 지파 중에 인침을 받은 자가 일만 이천이요 르우벤 지파 중에 일만 이천이요 갓 지파 중에 일만 이천이요, 아셀 지파 중에 일만 이천이요 납달리 지파 중에 일만 이천이요 므낫세 지파 중에 일만 이천이요, 시므온 지파 중에 일만 이천이요 레위 지파 중에 일만 이천이요 잇사갈 지파 중에 일만 이천이요, 스불론 지파 중에 일만 이천이요 요셉 지파 중에 일만 이천이요 베냐민 지파 중에 인침을 받은 자가 일만 이천이라” 12 각 지파에서 12,000명 식이 즉 144,000명이 구원을 얻어 하나님을 경외하게 될 때, 이 세상의 종말이 임할 것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그 외에는 예언 된 말씀 중에 의심할 말씀이 전혀 없기에, 시온의 딸이 된 우리들은 어떤 존재가 되어야 할까요? 정말 크게 놀라지 않을 수가 없고 특히 크게 기뻐하지 않을 수가 없는 날이 임할 것입니다. 왜요? 이런 기적이 없기 때문입니다. 무슨 기적입니까?  아니 어떻게 내가, 진리의 말씀을 듣지도 못하고 보지도 못하던 죽어 있던 내가, 이젠 하나님의 말씀을 믿을 수가 있게 되어 주님의 뜻을 따라가게 된 것을 보면, 무엇이 기적입니까? ~ 정말 장님이었던 나를 보게 하고 귀머거리였던 나를 듣게 하시는 하나님의 그 능력은 크게 기뻐하지 않을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성령께서 임재하셔서 성전이 되게 하신 이 사실은 놀라지 않을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당연히 크게 기뻐하지 않을 수가 없을 것입니다.

 

그래서 둘째로 드릴 말씀이 시온의 딸이 된 성도들의 이 기쁨인데, 그냥 기쁨이 아니라 그것도 크게 기뻐하라고 하십니다. 분명 그 대상은 시온의 딸입니다. 시온의 딸은 택함을 받은 자녀들이기에 우리들이 당연히 포함 되어 있습니다. 그렇다면 분명 크게 기뻐해야 되는데, 크게 기뻐하게 되는 그 이유는 다 알고 있듯이, 구원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씀을 드리면 죄 사함과 함께 회복이 되었기에 그래서 크게 기뻐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럼 구원을 받은 우리들은 그래서 어떤가요? 크게 기뻐하고 있나요? 

 

정말 시온의 딸이 되어 그래서 크게 기뻐하면서 후회 없는 매일의 삶을 살아내고 있나요? ~ 만약에 크게 기뻐함이 없다면, 누가 속고 있는 것일까요? 누가 속이고 있나요? 그러나 사도 바울도 이방인들의 사도로 쓰임을 받으면서 쓴, 그의 서신서인 빌4:4과 살전5:16에서도 보시면, 성도된 너희들은 항상 기뻐하라고 말씀합니다. 항상 기뻐할 수 있는 그 이유는 다름이 아니라 죄의 종에서 벗어나 자유인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네 그래서 기뻐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사망의 저주에서 영생의 복으로의 회복이니 어찌 기뻐하지 않을 수가 있을까요? ~ 

 

그런데 지금 성도들을 보세요! 아니 구원을 받았다고 하는 우리 자신들을 보세요! 어떤가요? 정말 항상 기뻐하고 계십니까? 아니 크게 기뻐하시고 계십니까? 구원 때문에 그래서 크게 기뻐한다면 무슨 문제가 될까요? 전혀 문제가 될 수가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믿는다고 하면서도 거의가 기뻐하지 못하고 있기에 그래서 드리는 말씀입니다. 그렇다면 누가 속고 있는 것일까요? 누가 속이고 있는 것일까요? ~ 왜 크게 기뻐하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까? 항상 기뻐하지 못하고 있는 자신 때문에 고민해 보신 적이 있나요? 이보다 심각한 문제는 없습니다. 왜요? 기뻐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자기는 지금 시온의 딸이 아니라는 증거가 되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이보다 큰일이 또 어디에 있나요? ~ 정말 큰일인데, 왜 고민도 두려움도 없나요? ~ 그건 여전히 죄의 종으로 눌려 살아가고 있다는 뜻입니다. 아닌가요? 의의 종이 아닌 죄의 종으로 살아가니깐, 교회가 그 책임을 전혀 못함으로 결국 동성혼인이 허락이 되었고 성전환이 현실이 되면서 혼돈, 혼란 그 자체가 되고 만 것입니다. 지금 미국에서도 수많은 교회들이 문을 닫고 있다고 합니다. 큰 기쁨을 잃었기 때문입니다. 이젠 교회가, 교회가 아닙니다. 

 

그러나 교회가 문을 닫고 있는 가운데서도, 역시나 어떤가요? 그런 혼돈 혼란 속에서도 무릎을 꿇지 않은 7000명의 큰 기쁨을 잃지 않은 시온의 딸인 성도들이 자기 자리를 굳건하게 지키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 안에 우리가 소속되어 있어야 합니다. 아멘! 하여튼 왜 조용히 그 자리를 지키고 있을까요? 왜요? 아직 그 끝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세상의 힘을 지배하는 무릎을 꿇지 않은 은혜를 입은 강력한 성도들, 시온의 딸들은 누가 뭐라고 해도, 아합의 아합이, 이세벨의 이세벨이 초강력으로 핍박을 할지라도 그들은 요동치 않고, 항상 크게 기뻐하면서 거룩함을 위하여 얼마나 열심히 자기 자리에서 준비하고 있는지 모릅니다. 그것이 시온의 딸의 현실이요 fact입니다.

 

다시 말씀을 드리지만, 자기의 그 옛 실체를 제대로 확인하게 되면, 자신이 얼마나 악하고 탐욕스럽고 더럽고 미련하고 어리석은지를 믿음의 눈으로 그 자신을 생생하게 확인하게 되면, 그 은혜가 그 십자가의 도가 낙심과 포기가 아니라 얼마나 큰 감동을 주고 감격하게 되면서 점점 더 새로워지게 하는지점점 더 주님하고의 관계가 깊어지게 하는지, 체험하고 있는 성도들만은 알 것입니다. 그건 속일 수 없는 시온의 딸로써 진실입니다. 중요한 점은 분명 시온의 딸인 성도들은 크게 기뻐하는 자가 된 것에 대하여 그 누구도 아니라고 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자녀로써 크게 기뻐하지 않을 수가 없는데, 그러나 실생활 속에서는 어떤가요? 기쁨은커녕 늘 피나는 싸움을 해야 합니다. 늘 인내해야 합니다. 양보해야 합니다. 그런데 어떻게 그것도 크게 기뻐할 수 있을까요?  특히 세상의 힘과 능력은 대단합니다. 이젠 돈 없이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습니다. 교회까지도 돈이 있어야 합니다. 그런 와중에 세상을 대적하면서 이겨내야 되는데 ~ 대책이 없어 보입니다. 절망 그 자체로 판단이 될 정도입니다. 그래서 크게 기뻐하기는커녕 작은 기쁨조차도 나눌 수가 없어 보입니다. 그러다가보니 슥9장의 이 말씀이 정말 진리일진대, 크게 기뻐해야 되는데 ~ 그 작은 기쁨조차 보이지 않으니, 이를 어찌해야 되는지? 참 난감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 그러나 시온의 딸, 세상의 힘에 무릎을 꿇지 않은 자녀들은 여기에 속으면 안 됩니다. 

 

그래서 의심하고 불안해 하면 안 됩니다. 왜요? 하나님이 지키고 계십니다. 두려워하는 그런 우리들을 품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겨내야 합니다. 그러나 참 어렵습니다. 왜 어렵던가요? 너무나 부하기 때문입니다. 세상의 힘을 너무나 의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세상의 힘을 너무나 쉽게 많이 생각 없이 함부로 쓰다가 이런 사단이 났다는 것입니다. 올무가 된 것입니다. 깊이 빠져버린 것입니다. 그러니 시온의 딸로서의 큰 기쁨은 현실적으로 불가한 약속이 되고 만 것입니다. 

 

여기서 주저 앉아버리면 그건 죽음이요 재앙입니다. 그 세상의 올무에서 벗어나야 하는데 해결이 불가능한가? 거의 불가능하지만, 이겨내시려면 남은 삶은 그 세상의 것으로 깊이 물든 그 자신을 제거하는 무서운 싸움을 시작해야 합니다. 정말 가난하게 살아가야 합니다. 아무리 넉넉해도 최소한의 세상의 능력과 힘을 가능한 적게 사용하셔야 합니다. 그간 즐기던 편하게 쓰던 세상의 그 힘에서 완전하게 벗어나려고 피나는 고민과 함께 결사각오로 싸워야 합니다. 

 

세상의 힘을 가볍게 본 대가요! 방심하고 즐겼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일반적인 여행까지도 제발! 삼가해 달라고 당부했던 것입니다. 세상의 그 능력들을 덜 사용하려고 각자가 지금 당장부터 노력하셔야 그 올무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정말 마지막에는 산으로 들어가야 될지도 모릅니다. 전기 없이 사는 그 길을 택해야 될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소수의 어떤 기독교인들은 전기 없는 곳으로, 도시를 떠난 그룹들도 있습니다. 대단한 결단인데, 결코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여기에서 세상의 힘과 싸워 이겨내시려면, 단지 최소한의 문화 혜택을 누리면서 주님과 동행하시면서 그 큰 기쁨을 회복하려면,  

 

1. 벧후1:10-11입니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더욱 힘써 너희 부르심과 택하심을 굳게 하라 너희가 이것을 행한즉 언제든지 실족하지 아니하리라, 이같이 하면 우리 주 곧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원한 나라에 들어감을 넉넉히 너희에게 주시리라” 부르심과 택하심에 대한 확신입니다. 그리고 부르심과 택하심이 자기의 삶의 모든 것의 foundation이 되어 있어야 합니다. 즉 예수 그리스도가 자기의 반석이셔야 합니다. 그럴 때, 시온의 딸인 우리들은 크게 기뻐하면서 살아 낼 것입니다. 이 기쁨은 돈의 힘과 세상의 승리에서 오는 기쁨하고는 전혀 다른 차원임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그렇기에 크게 기뻐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2. 벧후3:8-15입니다. “사랑하는 자들아 주께는 하루가 천 년 같고 천 년이 하루 같다는 이 한 가지를 잊지 말라, 주의 약속은 어떤 이들이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 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 오직 주께서는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하지 아니하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그러나 주의 날이 도둑 같이 오리니 그 날에는 하늘이 큰 소리로 떠나가고 물질이 뜨거운 불에 풀어지고 땅과 그 중에 있는 모든 일이 드러나리로다, 이 모든 것이 이렇게 풀어지리니 너희가 어떠한 사람이 되어야 마땅하냐 거룩한 행실과 경건함으로, 하나님의 날이 임하기를 바라보고 간절히 사모하라 그 날에 하늘이 불에 타서 풀어지고 물질이 뜨거운 불에 녹아지려니와, 우리는 그의 약속대로 의가 있는 곳인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도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이것을 바라보나니 주 앞에서 점도 없고 흠도 없이 평강 가운데서 나타나기를 힘쓰라, 또 우리 주의 오래 참으심이 구원이 될 줄로 여기라 우리가 사랑하는 형제 바울도 그 받은 지혜대로 너희에게 이같이 썼고” 

 

이 말씀을 요약을 하자면성도라면 현실의 힘과 능력의 그 실체가 무엇인지를 알아야 합니다.

(1) 현실의 힘과 능력의 그 실체는 다 사라지고 만다는 것을 알고 빠지지 말아야 합니다. 잠시만 존재할 세력이기에, 그러니깐 세상의 성공을 위한 수고는 더 이상하지 말아야 합니다

(2) 성도들은 오직 한 가지 길, 거룩한 행실과 경건함으로 영원한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면서 점과 흠이 없는 자가 되려고 늘 준비하셔야 합니다.

(3) 성도라면 아무리 힘들어도 포기하지 말고 낙심하지 말고 끝까지 인내하면서 주님을 전심으로 따라 가야 할 것입니다. 

 

3. 그때 주의 사항이 있습니다.

 

벧후3:16-18입니다“또 그 모든 편지에도 이런 일에 관하여 말하였으되 그 중에 알기 어려운 것이 더러 있으니 무식한 자들과 굳세지 못한 자들이 다른 성경과 같이 그것도 억지로 풀다가 스스로 멸망에 이르느니라, 그러므로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이것을 미리 알았은즉 무법한 자들의 미혹에 이끌려 너희가 굳센 데서 떨어질까 삼가라, 오직 우리 주 곧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그를 아는 지식에서 자라 가라 영광이 이제와 영원한 날까지 그에게 있을지어다” 다른 복음은 안 됩니다. 멸망합니다. 오직 복음으로 지금의 자기의 자리를 지켜내셔야 합니다

 

세 번째로 드릴 말씀은 크게 기뻐할 수 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이 모든 계획된 일들이, 즉 구원과 심판이 결국 오실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이루어지면서 크게 기뻐하게 된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로 인하여 교회가 어떤 존재와 쓰임이 되는 지를 우린 슥9:9-17을 통하여 알 수 있는데, 그 내용을 보면서 이 말씀이 거짓인지 아닌지, 실제인지 아닌지를 살펴보면서 이젠 크게 기뻐하는 남은 인생이 다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9절부터 봅니다. “시온의 딸아 크게 기뻐할지어다 예루살렘의 딸아 즐거이 부를지어다 보라 네 왕이 네게 임하시나니 그는 공의로우시며 구원을 베푸시며 겸손하여서 나귀를 타시나니 나귀의 작은 것 곧 나귀새끼니라” 이 내용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말씀인데, 이 말씀 그대로 이루어졌음을 우린 4복음서를 통하여 확인 할 수 있습니다마21:4-9, 막11:1-10, 눅19:32-37, 요12:12-15에서 알 수 있습니다.

 

(마 21:4) 이는 선지자를 통하여 하신 말씀을 이루려 하심이라 일렀으되
(마 21:5) 시온 딸에게 이르기를 네 왕이 네게 임하나니 그는 겸손하여 나귀, 곧 멍에 메는 짐승의 새끼를 탔도다 하라 하였느니라 
(마 21:6) 제자들이 가서 예수께서 명하신 대로 하여
(마 21:7) 나귀와 나귀 새끼를 끌고 와서 자기들의 겉옷을 그 위에 얹으매 예수께서 그 위에 타시니 
(마 21:8) 무리의 대다수는 그들의 겉옷을 길에 펴고 다른 이들은 나뭇가지를 베어 길에 펴고 
(마 21:9) 앞에서 가고 뒤에서 따르는 무리가 소리 높여 이르되 호산나 다윗의 자손이여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 가장 높은 곳에서 호산나 하더라

 

 

(막 11:1) 그들이 예루살렘에 가까이 와서 감람 산 벳바게와 베다니에 이르렀을 때에 예수께서 제자 중 둘을 보내시며
(막 11:2) 이르시되 너희는 맞은편 마을로 가라 그리로 들어가면 곧 아직 아무도 타 보지 않은 나귀 새끼가 매여 있는 것을 보리니 풀어 끌고 오라
(막 11:3) 만일 누가 너희에게 왜 이렇게 하느냐 묻거든 주가 쓰시겠다 하라 그리하면 즉시 이리로 보내리라 하시니 또는 즉시 돌려 보내리라 하라 하시니
(막 11:4) 제자들이 가서 본즉 나귀 새끼가 문 앞 거리에 매여 있는지라 그것을 푸니
(막 11:5) 거기 서 있는 사람 중 어떤 이들이 이르되 나귀 새끼를 풀어 무엇 하려느냐 하매
(막 11:6) 제자들이 예수께서 이르신 대로 말한대 이에 허락하는지라
(막 11:7) 나귀 새끼를 예수께로 끌고 와서 자기들의 겉옷을 그 위에 얹어 놓으매 예수께서 타시니 
(막 11:8) 많은 사람들은 자기들의 겉옷을, 또 다른 이들은 들에서 벤 나뭇가지를 길에 펴며 
(막 11:9) 앞에서 가고 뒤에서 따르는 자들이 소리 지르되 호산나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 
(막 11:10) 찬송하리로다 오는 우리 조상 다윗의 나라여 가장 높은 곳에서 호산나 하더라

 

 

(눅 19:32) 보내심을 받은 자들이 가서 그 말씀하신 대로 만난지라
(눅 19:33) 나귀 새끼를 풀 때에 그 임자들이 이르되 어찌하여 나귀 새끼를 푸느냐
(눅 19:34) 대답하되 주께서 쓰시겠다 하고
(눅 19:35) 그것을 예수께로 끌고 와서 자기들의 겉옷을 나귀 새끼 위에 걸쳐 놓고 예수를 태우니  
(눅 19:36) 가실 때에 그들이 자기의 겉옷을 길에 펴더라
(눅 19:37) 이미 감람 산 내리막길에 가까이 오시매 제자의 온 무리가 자기들이 본 바 모든 능한 일로 인하여 기뻐하며 큰 소리로 하나님을 찬양하여

 

 

(요 12:12) 그 이튿날에는 명절에 온 큰 무리가 예수께서 예루살렘으로 오신다는 것을 듣고
(요 12:13) 종려나무 가지를 가지고 맞으러 나가 외치되 호산나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 곧 이스라엘의 왕이시여 하더라 
(요 12:14) 예수는 한 어린 나귀를 보고 타시니  
(요 12:15) 이는 기록된 바 시온 딸아 두려워하지 말라 보라 너의 왕이 나귀 새끼를 타고 오신다 함과 같더라

 

 

그런데 어떤가요 예수님께서 슥9장의 말씀하신 대로 오셨고 그리고 다 이루어 주셨습니다. 무엇이 이루어진 것입니까? 자녀들의 삶 자체가 은혜로 180도로, 즉 힘의 사람에서 믿음의 사람으로, 새로운 존재로 재창조가 된 것입니다. 10절을 보세요! “내가 에브라임의 병거와 예루살렘의 말을 끊겠고 전쟁하는 활도 끊으리니 그가 이방 사람에게 화평을 전할 것이요 그의 통치는 바다에서 바다까지 이르고 유브라데 강에서 땅 끝까지 이르리라 그동안에 하나님의 자녀들이 믿던 병거와 말과 활을 끊겠고 즉 세상의 능력과 이론과 힘까지 다 포기하게 되었고 그리고 이방인들에게 화평을 전할 것이라는 예언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후 400년 후, 어떤가요? 주님의 12제자들을 포함한 마가의 다락방에서의 기도하던 120문도를 시작으로 어떤 일이 벌어졌던가요? 행2:40-47입니다. “또 여러 말로 확증하며 권하여 이르되 너희가 이 패역한 세대에서 구원을 받으라 하니, 그 말을 받은 사람들은 세례를 받으매 이 날에 신도의 수가 삼천이나 더하더라, 그들이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서로 교제하고 떡을 떼며 오로지 기도하기를 힘쓰니라, 사람마다 두려워하는데 사도들로 말미암아 기사와 표적이 많이 나타나니, 믿는 사람이 다 함께 있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또 재산과 소유를 팔아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 주며, 날마다 마음을 같이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 하나님을 찬미하며 또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으니 주께서 구원 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시니라” 

 

행4:1-4입니다. “사도들이 백성에게 말할 때에 제사장들과 성전 맡은 자와 사두개인들이 이르러, 예수 안에 죽은 자의 부활이 있다고 백성을 가르치고 전함을 싫어하여, 그들을 잡으매 날이 이미 저물었으므로 이튿날까지 가두었으나, 말씀을 들은 사람 중에 믿는 자가 많으니 남자의 수가 약 오천이나 되었더라” 

 

행4:13-21입니다. “그들이 베드로와 요한이 담대하게 말함을 보고 그들을 본래 학문 없는 범인으로 알았다가 이상히 여기며 또 전에 예수와 함께 있던 줄도 알고, 또 병 나은 사람이 그들과 함께 서 있는 것을 보고 비난할 말이 없는지라, 명하여 공회에서 나가라 하고 서로 의논하여 이르되, 이 사람들을 어떻게 할까 그들로 말미암아 유명한 표적 나타난 것이 예루살렘에 사는 모든 사람에게 알려졌으니 우리도 부인할 수 없는지라, 이것이 민간에 더 퍼지지 못하게 그들을 위협하여 이후에는 이 이름으로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게 하자 하고, 그들을 불러 경고하여 도무지 예수의 이름으로 말하지도 말고 가르치지도 말라 하니, 베드로와 요한이 대답하여 이르되 하나님 앞에서 너희의 말을 듣는 것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보다 옳은가 판단하라, 우리는 보고 들은 것을 말하지 아니할 수 없다 하니, 관리들이 백성들 때문에 그들을 어떻게 처벌할지 방법을 찾지 못하고 다시 위협하여 놓아 주었으니 이는 모든 사람이 그 된 일을 보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림이라” 

 

행4:32-35입니다. “믿는 무리가 한마음과 한 뜻이 되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자기 재물을 조금이라도 자기 것이라 하는 이가 하나도 없더라, 사도들이 큰 권능으로 주 예수의 부활을 증언하니 무리가 큰 은혜를 받아, 그 중에 가난한 사람이 없으니 이는 밭과 집 있는 자는 팔아 그 판 것의 값을 가져다가, 사도들의 발 앞에 두매 그들이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누어 줌이라” 

 

행5:40-42입니다. “그들이 옳게 여겨 사도들을 불러들여 채찍질하며 예수의 이름으로 말하는 것을 금하고 놓으니, 사도들은 그 이름을 위하여 능욕 받는 일에 합당한 자로 여기심을 기뻐하면서 공회 앞을 떠나니라, 그들이 날마다 성전에 있든지 집에 있든지 예수는 그리스도라고 가르치기와 전도하기를 그치지 아니하니라” 은혜를 입은 시온의 딸들은 이렇게 헛된 힘을 끊고 즉 세상의 힘을 제압하면서 전혀 세상의 힘을 두려워하지 않으면서, 온 열방을 향하여 하나님과 이웃들 간의 화평을 위하여 복음을 전합니다. 화평을 위한 그 과정이 지금도 진행 중으로 땅 끝까지 향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11절을 보세요! “또 너로 말할진대 네 언약의 피로 말미암아 내가 네 갇힌 자들을 물 없는 구덩이에서 놓았나니”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즉 약속되었던 그 언약의 피로 말미암아 소망 없는 세상의 원리에 완전하게 갇혀 살던 자녀들이 결국 놓임을 받게 된다는 것입니다. 어떤가요? 지금 이 말씀을 받고 있는 우리들은 세상에서 벗어나 자유로운 믿음의 삶을 누리고 있던가요? 그 자유를 위하여 지금 어떤 수고와 어떤 준비를 하고 있나요? ~ 스스로에게 진지하게 물어 보셔야 할 것입니다. 왜요? 자기 자신이 세상의 힘과 원리로부터 자유롭지 못하고 여전히 재물과 세상의 원리에 묶여 감사와 기쁨과 자유 없이 죄의 종으로 살고 있다면 이건 재앙이요 저주일 수 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크게 기뻐하시려면, 다 내려놓아야 하는데 다 내려놓았나요? ~ 만약에 내가 예수 그리스도의 언약의 피로 놓임을 받았다면, 그 거룩한 존재들은 세상의 일과 승리 때문에 더 이상 불평 원망 미움 근심 걱정에서 벗어나게 될 것입니다. 벗어나면서 그때부터 감사와 기쁨과 섬김과 인내로 새 목표인 그리스도만을 따르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살게 된 성도들은 12절의 말씀을 보세요! “갇혀 있으나 소망을 품은 자들아 너희는 요새로 돌아올지니라 내가 오늘도 이르노라 내가 네게 갑절이나 갚을 것이라” 

 

요새( fortress )가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에게로 언약의 피로 인하여 만세 전에 약속을 받았던 성도들이 돌아오게 되는데, 돌아오는 자녀들에게 갑절로 갚아 주신다고 하십니다. 무슨 뜻일까요? 갑절의 복이라는 뜻은 단지 두 배의 복이 아니라 차고 넘치는 뜻에서의 신령한 복입니다. 그러니 어찌 크게 기뻐하지 않을 수가 있을까요? 갑절의 신령한 복을 누리게 되는 시온의 딸들이 어떻게 쓰여 지던가요? 13-17절입니다. “내가 유다를 당긴 활로 삼고 에브라임을 끼운 화살로 삼았으니 시온아 내가 네 자식들을 일으켜 헬라 자식들을 치게 하며 너를 용사의 칼과 같게 하리라, 여호와께서 그들 위에 나타나서 그들의 화살을 번개 같이 쏘아 내실 것이며 주 여호와께서 나팔을 불게 하시며 남방 회오리바람을 타고 가실 것이라, 만군의 여호와께서 그들을 호위하시리니 그들이 원수를 삼키며 물맷돌을 밟을 것이며 그들이 피를 마시고 즐거이 부르기를 술 취한 것 같이 할 것인즉 피가 가득한 동이와도 같고 피 묻은 제단 모퉁이와도 같을 것이라, 이 날에 그들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들을 자기 백성의 양 떼 같이 구원하시리니 그들이 왕관의 보석 같이 여호와의 땅에 빛나리로다그의 형통함과 그의 아름다움이 어찌 그리 큰지 곡식은 청년을, 새 포도주는 처녀를 강건하게 하리라” 세상의 강력한 세력을 제압하여 영원한 승리자가 되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물론 이 승리는 힘의 승리인 정복자가 된다는 것이 아니라 영적인 승자를 뜻합니다.

 

시149:6-9입니다. “그들의 입에는 하나님에 대한 찬양이 있고 그들의 손에는 두 날 가진 칼이 있도다, 이것으로 뭇 나라에 보수하며 민족들을 벌하며, 그들의 왕들은 사슬로, 그들의 귀인은 철 고랑으로 결박하고, 기록한 판결대로 그들에게 시행할지로다 이런 영광은 그의 모든 성도에게 있도다 할렐루야”(엡6:10-17) 복음으로 세상의 힘을 따르던 그들을 돌이키게 할 것이라는 뜻입니다. 결국 그리스도 안에서 모두가 다 한 가족이 됩니다. 그러니 어찌 크게 기뻐하지 않을 수가 있을까요? 

 

시150편을 보세요! “할렐루야 그의 성소에서 하나님을 찬양하며 그의 권능의 궁창에서 그를 찬양할지어다, 그의 능하신 행동을 찬양하며 그의 지극히 위대하심을 따라 찬양할지어다, 나팔 소리로 찬양하며 비파와 수금으로 찬양할지어다, 소고 치며 춤추어 찬양하며 현악과 퉁소로 찬양할지어다, 큰 소리 나는 제금으로 찬양하며 높은 소리 나는 제금으로 찬양할 지어다, 호흡이 있는 자마다 여호와를 찬양할지어다 할렐루야” 

 

시온의 딸들은 하나같이 당장 힘들다고 하여 낙심하거나 포기할 수 없습니다. 왜요? 우리 모두의 내일의 승리는 지금의 모든 고난과 고통과 환란 속에서 이루는 결과이기 때문입니다. 설령 싸우다가 세상의 힘에 당할지라도 그 아픔은 잠시요 그 은총이 영원한 더 큰 기쁨과 평강으로 부어주어서 넘치도록 해 주실 것입니다. 우리 예수님을 보세요! 주님의 그 죽음이 잠시의 고통이었지만 그러나 그 고통은 결국 영원한 승자가 되게 하셨습니다

 

결론입니다. 시온의 딸들이 크게 기뻐하는 이유는 당장의 세상적인 승리와 부 때문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택함을 받은 모든 자녀들이 그리스도 안에서 한 지체가 되어 사랑하게 되었기에 그리고 거룩한 한 목표를 향하고 연합을 이루어가면서 내일을 준비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특히 고전15:57-58입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승리를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니, 그러므로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견실하며 흔들리지 말며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이는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을 앎이라” 시온의 딸들이 하는 모든 수고와 아니 고난과 환란까지도 결국 조금도 헛되지 아니하여, 그들은 슥9:11-15의 말씀처럼 하나님의 은혜로 시온의 딸들은 자유함을 얻고 하나님의 도움으로 승리자가 될 것입니다. 

 

슥9:16-17의 말씀처럼 시온의 딸들은 왕관의 보석같이 세상의 땅이 아니라 여호와의 땅에서 영원히 빛날 것이고, 시온의 딸들의 형통함과 아름다움이 얼마나 큰지, 한없는 풍성한 영적인 곡식과 새 포도주의 수확을 차고 넘치게 하여 남녀 모두를 영원히 강건케 해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이 하나님의 약속을 믿으십니까? 아멘~ 

 

그렇다면 이 세상의 힘이 아무리 강력한 능력을 가지고 있고 또한 이 세상의 삶이 아무리 즐겁고 행복하게 하는 것처럼 보일지라도 우린 속지 않을 것입니다. 속을 수가 없을 것입니다. 아니 이 세상의 세력이 오히려 시온의 딸인 우리 모두를 아무리 괴롭힐지라도, 아무리 아프게 핍박할지라도 이겨내고도 남을 것입니다

 

그래서 시온의 딸인 우리는 크게 기뻐할 수밖에 없기에 시온의 딸이 고백한 시4:7-8의 말씀을 봅니다. “주께서 내 마음에 두신 기쁨은 그들의 곡식과 새 포도주가 풍성할 때보다 더하니이다, 내가 평안히 눕고 자기도 하리니 나를 안전히 살게 하시는 이는 오직 여호와이시니이다” 우리들이 말씀을 듣고 볼 수 있다면 무슨 말이 더 필요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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