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돌교회

4/14/2024 스가랴 13:1-9 본문

주일 설교 말씀

4/14/2024 스가랴 13:1-9

PastorYK 2024. 4. 15. 12:08

말씀: 슥13:1-9                                               

제목: 죄와 더러움을 씻는 샘이 열리리라 - 왜? 영원한 승리와 영광과 참 사랑을 이룰 수 있기에

 

 

성경을 주신 이유가 무엇입니까? 다 무엇을 위한 그 긴 구약의 과정이었나요? 왜 하나님께서는 옛 언약, 새 언약을 주시면서 이스라엘이라는 나라를 통하여 하시려는 뜻이 무엇이었나요? 결국은 복을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어떤 복인가 하면, 성경을 통하여 정확하게 알 수 있습니다. 진정한 가치관, 진정한 승리, 진정한 화목을 가진 하나님만을 경외하는 공동체 안에서의 영생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나라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일까요? ~ 이 세상에서는 성공과 승리이기에, 다들 살길을 어디에서 찾고 있는가 하면, 모든 그간의 사람들은 자기가 죽는 줄도 모르면서 재물과 권세만 있으면 사는 데는 아무 문제가 없다고 하여 재물과 권세를 거머쥐려고 목숨을 걸고 있는 것이 인간의 역사요 현실입니다. 그래서 자기 목숨보다 재물과 힘을 더 중요시 여기고 있기에 이를 위하여 서로 인정사정없이 살아가면서 심지어 가족 간에도 죽고 죽이고 있습니다. 이것이 인간의 실체입니다. 사람들이 자기가 살기 위하여 재물에 목숨을 걸고 있는데, 그 선택이 말이 됩니까? 그래서 성경에서도 하시는 말씀이 있습니다.

 

눅12:16-21입니다. 또 비유로 그들에게 말하여 이르시되 한 부자가 그 밭에 소출이 풍성하매, 심중에 생각하여 이르되 내가 곡식 쌓아 둘 곳이 없으니 어찌할까 하고, 또 이르되 내가 이렇게 하리라 내 곳간을 헐고 더 크게 짓고 내 모든 곡식과 물건을 거기 쌓아 두리라, 또 내가 내 영혼에게 이르되 영혼아 여러 해 쓸 물건을 많이 쌓아 두었으니 평안히 쉬고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자 하리라 하되, 하나님은 이르시되 어리석은 자여 오늘 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네 준비한 것이 누구의 것이 되겠느냐 하셨으니, 자기를 위하여 재물을 쌓아 두고 하나님께 대하여 부요하지 못한 자가 이와 같으니라 목숨이 끊어지고 나면, 너의 그 많은 재산이 무슨 소용이 있느냐? 하십니다.

 

눅9:25의 말씀도 봅니다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자기를 잃든지 빼앗기든지 하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자기 목숨을 잃고 천하를 거머쥔들 무슨 상관이 있겠는가? 라고 말씀을 하십니다. 하지만, 지금도 교회까지도 여전히 살길이 재물의 힘만으로도 해결이 된다고도 가르치고 있고, 더 가지려고 재물을 위하여 자기 목숨을 걸고 있지만, 이런 어리석은 선택은 그 어디에도 없어야 합니다. 당연히 없어야 되는데, 이스라엘조차도 성전을 통하여 복된 길, 하나님만을 의지해야 되는데, 재물과 힘을 가지고 구약 내내 평가를 했던 것입니다. 힘의 하나님만을 원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불순종의 죄로 심판을 받을 수밖에 없었던 이스라엘의 회복을 위하여 모세를 통하여 모세 5경을 주셨습니다. 타락으로 에덴에서 세상으로 쫓겨나게 된 아담과 하와를 위한 창3:15의 약속을 시작으로 슥13장에서 1절의 말씀을 주신 것입니다. “그 날에 죄와 더러움을 씻는 샘이 다윗의 족속과 예루살렘 주민을 위하여 열리리라” 이스라엘이 살길이 재물과 힘이 아니기에, 진정한 복과 승리가 약속의 말씀 안에 있기에 그래서 주신 말씀이 죄와 더러움을 씻을 수 있는 샘이기에 샘을 주실 것이라고 재물과 힘으로만 해결하려는 무지하고 어리석은 이스라엘을 향하여 스가랴 선지자에게 계시하여 주셨던 것입니다.

 

그런데 그 샘이 정말 살길이요 영원한 승리의 길일까요? 여기서 샘은 생수가 끊임없이 나오는 곳을 의미합니다. 마실 수도 있고 씻을 수도 있는 그런 곳입니다. 그래서 어떤 말씀을 하시는가 하면, 요4:13-14입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이 물을 마시는 자마다 다시 목마르려니와,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내가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 

 

예수 그리스도가 생명수, 영생하도록 영원토록 솟아나는 샘물이라고 하십니다. 이 생명수는 결국 영적으로 어떤 물인가요? 영생을 줍니다. 영원한 승리를 주십니다. 변함이 없는 기쁨과 감사의 능력의 물입니다. 그래서 그 생명수를 다른 말로 복되고 기쁜 소식인 복음이라고 해도 됩니다. 샘의 생수와 같은 복음을 듣고 믿게 되면 어떤 반응을 하게 하는가 하면, 죄를 미워하게 되고 오직 주님의 뜻만을 따르도록 합니다.

 

그래서 주신 것이 슥13:1입니다. 이렇게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하는 그 샘은 무엇보다도 정결, 깨끗함 즉 회개의 기회, 회개의 복을 주시기에, 그래서 주신 말씀인데, 그렇습니다. 은혜로 말미암는 회개만이 살길이요 승리입니다. 복음으로 인한 회개는 그 시작으로 그리스도의 거룩함을 향하도록 인도하는 능력이요 권세요 영원한 자랑과 승리가 되기에 죄와 더러움을 씻어 정결케 하는 샘을 주전 500년경에 이렇게 약속을 하셨습니다. 결국 500년 후에 그 샘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다윗의 족속과 예루살렘을 위하여 오셔서 약속하신대로 모든 인간의 죄와 더러움을 다 씻겨 주신 것입니다. 그 결과 어떤가요? 

 

은혜를 입어 회개하는 자신들에게 어떤 기적이 일어나고 있던가요? 홍해가 갈라져 지금도 세상에서 가나안 땅인 하나님의 나라로 향하여 나아가고 있습니다. 목표가 세상 재물과 자랑에서 가난한 마음과 헌신하는 종 된 삶으로 달라지고 있습니다. 내일의 승리를 위하여 오늘 다 내려놓는 자로, 내일의 영광을 위하여 다 맡겨버리는 자로 성장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은혜요 복음이 주는 회개의 결과이기에 복음을 믿는 자들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고 롬1:16에서 말씀을 하셨습니다.

 

롬1:16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첫째는 유대인에게요 또한 헬라인에게로다

 

그런데 지금 우린 어떤가요? 그 샘에서 씻김을 받은 자로서 회개를 통하여 어디로 향하고 있나요? 무엇을 위하여 수고를 하고 계십니까? ~ 거짓 선지자처럼 여전히 자기의 자랑과 힘을 위하여 스스로 속이고 있고 속고 있는 것은 아닙니까? ~ 특히 복음으로 인한 슥13:2-6의 말씀을 보세요! 어떤 일이 장차 일어날 것을 계시하십니까? 

 

그때가 되면, 슥13:2입니다.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라 그 날에 내가 우상의 이름을 이 땅에서 끊어서 기억도 되지 못하게 할 것이며 거짓 선지자와 더러운 귀신을 이 땅에서 떠나게 할 것이라 하나님께서는 다른 신을 섬기던 자들, 모두를 다 떠나게 하십니다. 

 

이 말씀은 이미 신13:10-18에서도 알 수 있습니다. 신13:10-18의 말씀을 봅니다. “너는 그를 따르지 말며 듣지 말며 긍휼히 여기지 말며 애석히 여기지 말며 덮어 숨기지 말고, 너는 용서 없이 그를 죽이되 죽일 때에 네가 먼저 그에게 손을 대고 후에 뭇 백성이 손을 대라, 그는 애굽 땅 종 되었던 집에서 너를 인도하여 내신 네 하나님 여호와에게서 너를 꾀어 떠나게 하려 한 자이니 너는 돌로 쳐 죽이라, 그리하면 온 이스라엘이 듣고 두려워하여 이같은 악을 다시는 너희 중에서 행하지 못하리라,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주어 거주하게 하시는 한 성읍에 대하여 네게 소문이 들리기를, 너희 가운데서 어떤 불량배가 일어나서 그 성읍 주민을 유혹하여 이르기를 너희가 알지 못하던 다른 신들을 우리가 가서 섬기자 한다 하거든, 이런 가증한 일이 너희 가운데에 있다는 것이 확실한 사실로 드러나면, 너는 마땅히 그 성읍 주민을 칼날로 죽이고 그 성읍과 그 가운데에 거주하는 모든 것과 그 가축을 칼날로 진멸하고, 또 그 속에서 빼앗아 차지한 물건을 다 거리에 모아 놓고 그 성읍과 그 탈취물 전부를 불살라 네 하나님 여호와께 드릴지니 그 성읍은 영구히 폐허가 되어 다시는 건축되지 아니할 것이라, 너는 이 진멸할 물건을 조금도 네 손에 대지 말라 그리하면 여호와께서 그의 진노를 그치시고 너를 긍휼히 여기시고 자비를 더하사 네 조상들에게 맹세하심 같이 너를 번성하게 하실 것이라, 네가 만일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듣고 오늘 내가 네게 명하는 그 모든 명령을 지켜 네 하나님 여호와의 목전에서 정직하게 행하면 이같이 되리라” 이렇게 하나님의 뜻은 모세를 통하여 정직하여 번성하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물론 인간적인 힘의 눈으로 본다면, 사랑과 인자와 자비하신 하나님과는 전혀 맞지 않는 말씀 같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강력한 기준의 말씀은 성도가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를 유지하지 않으면 안 되기에 주신 말씀입니다. 특히 이 무서운 하나님의 심판인 저주의 말씀은 엄청난 하나님의 사랑이 감춰져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영원한 형벌에서 구원을 이루어 주시려고 하나님의 아들이신, 거룩하신, 죄가 하나도 없으신 예수 그리스도까지 우리들을 위하여 대신 죽도록 하셨습니다. 

 

의인이나 선인이 아니라 죄인인 나를 구원하시려고 자신의 거룩한 아들을 죽이신 것을 보면, 하나님의 사랑이 어떤가요? 상상 할 수 없는 사랑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상 숭배는 그 누구라도 용서하지 않겠다는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우상숭배는 죄 중에서 가장 악한 죄가 되기에 십계명에서도 첫 계명이 “나 이외에 다른 신을 섬기지 말라” 하셨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절대 법입니다. 왜요? 죄에 빠진 나, 그런 우리를 구원하기 위하여 온 우주만물 아니 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까지도 다 포기하셨는데, 어찌 구원을 받은 자녀들이 하나님 외의 우상 숭배가 가능할까요? ~ 

 

우상숭배를 하는 자들은 결단코 용서할 수 없다는 것이 하나님의 절대 의지요 뜻인데, 그런데 지금 어떤가요? 그 샘인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원의 복을 받고 회개의 복이 임했는데, 다들 무엇을 위하여 수고하고 있던가요? 외적인 도움을 받던 구약의 이스라엘과는 신약의 우리들은 달라도 완전 달라야 합니다. 왜요? 우린 우리의 속마음이 바뀌었기 때문입니다. 주님의 마음을 주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거짓 선지자들이 발을 붙일 수가 없고 더러운 귀신의 세력들이 떠날 수밖에 없게 된 것입니다. 

 

지금 그래서 우리의 마음이 얼마나 정결하시고 경건합니까? 세상과 악한 세력과 전혀 타협하지 않고 주님만 바라보고 계십니까? 시간이 갈수록 주님과 더욱 가까워지고 있나요? 아니면 여전히 머뭇거리고 있나요? ~ 게다가 슥13:3을 보세요! “사람이 아직도 예언할 것 같으면 그 낳은 부모가 그에게 이르기를 네가 여호와의 이름을 빙자하여 거짓말을 하니 살지 못하리라 하고 낳은 부모가 그가 예언할 때에 칼로 그를 찌르리라” 이 말씀도 이미 우린 신13장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신13:6-10의 말씀을 봅니다. “네 어머니의 아들 곧 네 형제나 네 자녀나 네 품의 아내나 너와 생명을 함께 하는 친구가 가만히 너를 꾀어 이르기를 너와 네 조상들이 알지 못하던 다른 신들, 곧 네 사방을 둘러싸고 있는 민족 혹 네게서 가깝든지 네게서 멀든지 땅 이 끝에서 저 끝까지에 있는 민족의 신들을 우리가 가서 섬기자 할지라도, 너는 그를 따르지 말며 듣지 말며 긍휼히 여기지 말며 애석히 여기지 말며 덮어 숨기지 말고, 너는 용서 없이 그를 죽이되 죽일 때에 네가 먼저 그에게 손을 대고 후에 뭇 백성이 손을 대라, 그는 애굽 땅 종 되었던 집에서 너를 인도하여 내신 네 하나님 여호와에게서 너를 꾀어 떠나게 하려 한 자이니 너는 돌로 쳐 죽이라” 이렇게 하나님의 뜻은 단호하십니다. 전혀 타협이 없으십니다. 부모형제자매라도 안 됩니다. 그래서 출애굽시, 광야에서 우상 숭배하던 미디안 여인들과 몸을 섞던 이스라엘 남자가 제사장 아론의 손자인 엘르아살의 아들 비느하스가 창을 들고 가서 찔러 죽이므로 우상숭배로 인한, 염병으로 죽어가게 하던 하나님의 진노, 저주의 문제를 해결하게 되면서, 어떤 말씀을 하십니까?

 

민25:10-13입니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제사장 아론의 손자 엘르아살의 아들 비느하스가 내 질투심으로 질투하여 이스라엘 자손 중에서 내 노를 돌이켜서 내 질투심으로 그들을 소멸하지 않게 하였도다, 그러므로 말하라 내가 그에게 내 평화의 언약을 주리니, 그와 그의 후손에게 영원한 제사장 직분의 언약이라 그가 그의 하나님을 위하여 질투하여 이스라엘 자손을 속죄하였음이니라 바로 지금이 비느하스와 같은 과감한 결단으로 모든 우상을 싹~ 다 몰라내고 100% 순종하려고 피 흘리는 경건의 수고와 훈련을 쉬지 않으시면서 내일을 준비해야 되는 현재가 됨을 잊지 말아야 하는데, 지금 우린 어떤 수고를 하고 계십니까? ~ 

 

정결하게 하시는 샘으로 생명의 빛이 임하게 되면서, 어떤 일이 생기는가 하면, 슥13:4-6의 말씀입니다. 그 날에 선지자들이 예언할 때에 그 환상을 각기 부끄러워할 것이며 사람을 속이려고 털옷도 입지 아니할 것이며, 말하기를 나는 선지자가 아니요 나는 농부라 내가 어려서부터 사람의 종이 되었노라 할 것이요, 어떤 사람이 그에게 묻기를 네 두 팔 사이에 있는 상처는 어찌 됨이냐 하면 대답하기를 이는 나의 친구의 집에서 받은 상처라 하리라” 

 

정결하게 하는 샘의 주님으로 인하여 성도들에게 생명의 빛이 들어오다가 보니깐, 모든 거짓 선지자들조차도 거짓된 자신의 부끄러움을 알고 선지자 행세를 못하게 되더라는 것입니다. 아니 자신이 거짓 선지지로 백성들을 미혹했던 때가 있었지만, 정결하게 하는 샘, 그 빛을 주시는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회개가 되자, 더 이상 그 거짓말이 전혀 통하지 아니함을 알고 자신이 선지자이었음을 완전히 부인하고 있고, 그리고 슥13:6에서는 우상 숭배할 때, 몸을 자해함으로 생긴 상처를 숨기고 뭐라고 한다고요? 자기 친구의 집에서 받은 상처라고 하게 될 것이라고 하십니다. 

 

진리의 빛이 임하니, 거짓 세력들이 자기의 실체를 숨기느라고 정신이 없습니다. 참이 드러나고 거짓이 사라집니다. 이렇게 예수님 때문에 새로운 생명의 문화, 새로운 거룩한 목표를 갖고 더러움이 없는 정결한 삶이 약속이 되었는데, 바로 지금이 아닌가요? 나의 그 거짓이 사라져야 되고 정결해야 하고 참되어서, 은혜를 입은 참 증인으로 살아가야 되는 것이 아닙니까? 그래서 주님은 온갖 모욕과 조롱과 조소를 받으셨습니다.

 

그것이 바로 슥13:7의 말씀입니다.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라 칼아 깨어서 내 목자, 내 짝 된 자를 치라 목자를 치면 양이 흩어지려니와 작은 자들 위에는 내가 내 손을 드리우리라” 99%가 아닌 100% 인간이기요, 100% 창조주 하나님이신 예수 그리스도는 생명을 잃는 최악의 고통을 받게 된다는 것이 7절의 말씀입니다. 여기서 내 목자, 내 짝된 자는 다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하는 말씀입니다. 그가 이제 그날에 고통을 받게 될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여기서 그가 누구인지 그는 바로 슥13:7의 내용을 영어번역으로 보세요! Niv에서 잘 나타납니다. “against my shepherd, against the man who is close to me!” 나의 목자와 나와 가까이 하는 자, 즉 나의 목자는 선한 목자이신 메시야 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뜻합니다. 요10:11의 말씀입니다. “나는 선한 목자라” 그런데 그가 또 ‘여호와의 짝된 자’라고 하십니다. 본문에서의 ‘내 짝된 자’는 히브리어 원어를 보면, “아미티”입니다. 이 ‘아미티’라는 뜻은 나와 하나로 연합된 자를 의미하는 단어입니다. 바로 요10:30에서 말씀하십니다. “나와 아버지는 하나이니라” 결국 슥13:7의 내 목자, 내 짝된 자는 예수 그리스도가 되심이 증명이 되었습니다. 

 

그날에 이분이 오셔서 수난을 받아서 죽게 될 것을 예언하셨던 그 말씀이 또 슥13:7의 말씀입니다. 결국 이 말씀 후 500년 후에 그대로 이루어졌습니다. 100% 인간이기요, 100% 창조주 하나님이신 예수 그리스도, 이 분은 슥12:10에서도 죽게 되실 것을 미리 예언하셨고, 슥11:12-13에서도 이미 그분이 어떻게 버림을 받게 될 것인지를 미리 예언된 분이시요, 그 예언은 일찍이 창3:15에서부터 여자의 후손으로 오실 분으로 예언된 분입니다. 그 후부터 그분은 구약 내내, 오실 메시야로 등장하고 계십니다. 

 

그래서 구약을 배우면 예수님이 누구신지 점점 더 진하게 나타납니다. 그런데 그분을 어디에서 만나게 되는가 하면, 바로 신약에서 육신으로 오셔서 말씀을 가르치실 때에, 사역을 하실 때에 구약에서 그려졌던 그분, 그대로, 스스로가 그가 자신이라고 증거하십니다. 그때에 완전하게 일치가 되기에, 그래서 자신은 요5장-18장까지 보냄을 받은 자라고 하십니다.

 

요6:29입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하나님이 보내신 자를 믿는 것이 하나님의 일이니라 하시니” 말씀하십니다.

 

요5:38-39를 보세요! “그 말씀이 너희 속에 거하지 아니하니 이는 그가 보내신 이를 믿지 아니함이라, 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줄 생각하고 성경을 연구하거니와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언하는 것이니라” 

 

구약이 예수 자신을 증거 하는 말씀이라는 것입니다. 구약은 쉽게 이야기 하면 예수님의 사진입니다. 구약을 통하여 오실 예수님의 사진을 확보하게 됩니다. 그러다가 신약을 보면 신약에서 예수님을 바로 알아보게 됩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이 누구신지를 구약에서 이미 찾아 놓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구약의 예수님을 신약에서 확보되는 그 순간에 무엇이 임하시는지 아십니까? 그때에 약속하신 성령 하나님이 임하시는 것입니다. 그때부터 어떤 기적이 생기던가요? 

 

세상에서 그렇게 아끼던 그 모든 것들을 버리게 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만을 의지하게 되면서 점차적으로 삶의 변화를 가져옵니다. 힘의 삶에서 믿음이 힘이 됩니다. 사나움에서 온유함으로, 거짓에서 정직함으로, 조급함에서 인내함으로, 무지에서 지혜로움으로, 불평과 원망에서 감사하는 자로 삶의 질적인 변화를 갖게 됩니다. 이런 놀라운 변화의 복을 주시려고 하나님께서는 슥13장에서 그날에 죄와 더러움을 씻는 샘이 다윗의 족속과 예루살렘 주민을 위하여 열릴 것이라는 말씀을 주셨습니다. 

 

마지막으로 드릴 말씀입니다. 복음으로 즉 은혜로 회개를 하면서 자기가 얼마나 악한지, 미련한 지, 어리석은지를 알게 되는데, 알게 되면 될수록 그 성도가 바보가 되고 실망하게 되고 좌절하게 되는 것 같지만 복음 안에서는 그렇지 않습니다. 오히려 자기의 악함, 미련함, 어리석음에 대하여 깊이 알면 알게 될수록 당연히 고통이 동반하게 되지만 그러나 자신의 신앙은 (1) 그의 영광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성령으로 말미암아 우리의 속사람을 능력으로 강건하게 되고 (2)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마음에 계시게 하시고 (3) 사랑 가운데서 믿음의 뿌리가 박히게 되면서 터가 굳어져 능히 모든 성도들과 함께 지식에 넘치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게 될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그 너비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가 어떠한 지를 깨달아 하나님의 모든 충만하심으로 회개하는 우리들도 충만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회개는 부끄러운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자랑이요 영광스러운 존재가 되게 하는 기회입니다. 성도에게 회개는 복이기에 회개를 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빛의 말씀을 언제나 기억하면서 자기의 행보를 말씀 위에 굳게 세워야 합니다. 그럴 때, 그 말씀이 자신의 죄들을 알게 되면서 점점 더 정결한 자로 달라지게 합니다. 그러나 말씀이 없는 감정적인 회개로는 결코 안전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회개의 기준이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말씀을 통한 회개가 되면, 결국 기적이 나타나게 되는데, 그 기적이 무엇인가 하면, 사랑의 열매를 맺게 되더라는 것입니다. 그 뜻은 회개만으로 만족하고 성장하지 않고 멈춘 잘못된 교인들이 많기 때문에 회개의 결과가 사랑이어야 한다는 말씀을 드리고 있습니다. 

 

물론 성경에서도 죄를 씻는 샘을 주신 것도 실은 그 목표가 사랑입니다. 그렇기에 죄를 감춘 자들은 결단코 사랑의 열매를 맺을 수 없습니다. 사랑은 회개를 시작으로 인내와 정결함과 희생과 헌신과 양보와 겸손과 절제 등의 조건에서만 맺을 수 있기에 그렇습니다. 그런데 그 조건을 만족시키지 않을 수가 없는 구원의 샘인데 특히 그 첫 조건이 바로 회개입니다. 인간의 죄와 더러움을 씻는 샘이 없이는 그 샘이 열리지 아니하고서는 그 목표인 사랑의 열매를 맺을 수 없습니다. 불가능합니다. 

 

그래서 슥13장에서도 알 수 있지만, 왜 예수 그리스도께서 성육신과 함께 상상도 못하는 십자가에서의 그 고난과 수난을 죄도 없으신 분이 받아야 했을까요? 사랑을 위한 죽음으로 그 사랑은 성도된 자녀들의 회개로 시작됩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도 복음 사역을 시작하려고 하셨을 때, 누구를 통하여 어떤 말씀을 첫 말씀으로 시작하도록 하셨나요? 마3:1-3입니다. “그 때에 세례 요한이 이르러 유대 광야에서 전파하여 말하되,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 하였으니, 저는 선지자 이사야를 통하여 말씀하신 자라 일렀으되 광야에 외치는 자의 소리가 있어 가로되 너희는 주의 길을 준비하라 그의 오실 길을 곧게 하라 하였느니라 그리고 세례 요한을 통하여 회개의 세례를 주시면서 오실 그분이 누구신지, 오실 그분을 맞이할 준비를 하게 하시다가 세례 요한의 역할이 거의 다 끝나고 헤롯 왕에 의하여 감옥에 잡히면서 어떤 말씀을 하시던가요?

 

마4:12-17입니다. “예수께서 요한이 잡혔음을 들으시고 갈릴리로 물러가셨다가, 나사렛을 떠나 스불론과 납달리 지경 해변에 있는 가버나움에 가서 사시니, 이는 선지자 이사야를 통하여 하신 말씀을 이루려 하심이라 일렀으되, 스불론 땅과 납달리 땅과 요단 강 저편 해변 길과 이방의 갈릴리여, 흑암에 앉은 백성이 큰 빛을 보았고 사망의 땅과 그늘에 앉은 자들에게 빛이 비취었도다 하였느니라, 이 때부터 예수께서 비로소 전파하여 이르시되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 하시더라” 그 시작이 ‘회개하라’였습니다. 그리고 그 후에도 주님께서는 죄를 지적하시면서 회개하라는 말씀을 하십니다.

 

마11:20-24입니다 “예수께서 권능을 가장 많이 베푸신 고을들이 회개하지 아니하므로 그 때에 책망하시되, 화 있을진저 고라신아 화 있을진저 벳새다야 너희에게서 행한 모든 권능을 두로와 시돈에서 행하였더라면 그들이 벌써 베옷을 입고 재에 앉아 회개하였으리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심판 날에 두로와 시돈이 너희보다 견디기 쉬우리라, 가버나움아 네가 하늘에까지 높아지겠느냐 음부에까지 낮아지리라 네게 행한 모든 권능을 소돔에서 행하였더라면 그 성이 오늘까지 있었으리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심판 날에 소돔 땅이 너보다 견디기 쉬우리라 하시니라 

 

그리고 제자들도 보면, 막6:7-13입니다. “열두 제자를 부르사 둘씩, 둘씩 보내시며 더러운 귀신을 제어하는 권능을 주시고, 명하시되 여행을 위하여 지팡이 외에는 양식이나 배낭이나 전대의 돈이나 아무 것도 가지지 말며, 신만 신고 두 벌 옷도 입지 말라 하시고, 또 이르시되 어디서든지 누구의 집에 들어가거든 그 곳을 떠나기까지 거기 유하라, 어느 곳에서든지 너희를 영접하지 아니하고 너희 말을 듣지도 아니하거든 거기서 나갈 때에 발 아래 먼지를 떨어버려 그들에게 증거를 삼으라 하시니, 제자들이 나가서 회개하라 전파하고, 많은 귀신을 쫓아내며 많은 병자에게 기름을 발라 고치더라” 구원은 은혜입니다. 

 

그리고 그 은혜로 인한 구원은 회개가 반드시 나타납니다. 그렇기 때문에 회개해야 구원이 되는 것이 아니라 회개는 구원을 받았다는 증거인데, 그 회개는 은혜를 입은 성도 모두에게 예외 없이 나타납니다. 그래서 회개하라고 하셨던 것이기에, 회개 없는 믿음도 없을 뿐만이 아니고 회개할 때, 자신이 구원을 받았다는 그 증거가 됩니다. 구원을 얻었기에 회개가 되는데 그 회개는 일회로, 단 한 번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살아있는 동안에는 항상 동반되어야 하는 것이 바로 회개입니다. 

 

그 이유는 언제나 죄의 세력이 동반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들의 본성은 죄 그 자체이었기에 죄의 뿌리가 얼마나 깊은지 측정이 안 됩니다. 잠시 한눈만 팔아도 죄는 이미 들어와서 계속하라고, 그럴 수 있다고 하면서, 속삭이더라는 것이 아닙니까? ~ 심지어 선한 일을 하고 있는 가운데서도 여차하면 죄의 세력이 들어와 어떤 공격을 하던가요? 자랑하게 합니다. 드러내어서 인정을 받으라고 합니다. 그래서 늘 깨어 있지 않으면, 속고 넘어갑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도 어떤 말씀을 합니까? 

 

고전10:12입니다. “그런즉 선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 우린 본질상 진노의 자녀였다는 것이 아닙니까? 늘 바둥바둥 없이는 안 됩니다. 힘겹게 따라가지 않으면 안 됩니다. 특히 그때, 그때 마다 자신을 말씀에 반영하면서 잘못 된 부분을 파악하여 주님에게로 향하게 하는 그 회개는 큰 자랑이요 기쁨일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때, 그때 파악하지 못하고 덮어버리거나 넘어가 버리게 되면, 무엇이 쌓인다고요? 악이 쌓여 악의 산이 되면서 악을 내뱉게 되기에 악은 모양이라도 하지 말라고 하셨던 것입니다. 

 

이 훈련이 되지 않았기에 우린, 늘 어떤가요? 세상에 끌려가, 조롱과 조소를 받기 일 수인데, 여기서 이겨내지 못하다가보니깐, 교회의 빛이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회개의 대한 감동과 감격이 없이는 약속된 승리, 그 영광은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아들까지도 성육신하셨고 그리고 십자가에서 고난을 피할 수 없으셨습니다. 그 이유는 결국 사랑인데 그 사랑을 위하여 회개의 기회를 주셨습니다

 

그래서 슥13장에서도 죄와 더러움을 씻는 샘에 대하여 즉 회개에 대하여 말씀을 하셨고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성취하여 주신 것입니다. 회개는 하나님이 누구신지를 알고, 그 앞에서 자신이 누구였던가를 알아 하나님께 범죄했던 모든 것을 애통해 하고 그 은혜를 입은 것을 감격하는 체험이기에 회개는 부끄러움이 아니라 자랑이요 복입니다. 더 이상 더러워 감추지 마시고 정결하여 하나님과 동행하는 남은 삶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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