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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5/2024 스가랴 6:1-15 본문

주일 설교 말씀

2/25/2024 스가랴 6:1-15

PastorYK 2024. 2. 26. 09:42

말씀: 슥6:1-15                                                

제목: 네 병거 환상과 금 면류관

 

 

지금까지 나온 7가지 환상이 약간의 강조점의 차이는 있지만, 모든 현실적인 어려움에 실망하지 말고 자신들에게 주어진 당면 과제인 성전 건축에 매진할 때, 성전이 완성됨은 물론 더 나아가서는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질 것을 계시하시면서 끝까지 인내하라는 권고를 하십니다. 그리고 그 반대로 누구든지 하나님의 뜻을 거역하고 범죄 할 땐, 엄정한 징계를 받게 된다는 무서운 경고도 같이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슥6장의 환상인 네 병거는 경고보다는 악의 세력들을 진멸하실 것을 기정사실화한 환상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 내용은 공의로우신 하나님이 온 우주만물을 통치하시는 왕이시고, 주인으로서 결국에는 하나님을 대항하는 세상 세력들을 척결하시는 분으로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그것은 결국 그리스도의 재림 이후에 있을 최후의 심판입니다. 악의 세력이 완전히 멸망을 당하게 되고 그리고 하나님의 나라가 완성된다는 내용입니다. 그래서 저는 이런 하나님의 심판에 대하여 예전부터 재림 전까지의 죄악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을 부분 심판으로 그리고 주님의 재림으로 이루어질 하나님의 심판을 완전 심판으로 구분하여 말씀을 드리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여호와의 날까지는 부분 심판으로 경고하시면서 완전 심판을 준비하는 것인데, 그 준비가 바로 지혜라고 생각합니다그런데 하나님의 구원은 하나님의 섭리와 경륜 가운데 이미 구약 내내 이루고 계셨습니다. 그러다가 구체적으로 가시화된 사건이 바로, 마리아 몸을 통하여 성육신하신 예수님의 초림사건입니다. 바로 이 예수님의 초림에 대한 내용이 슥6:9-15입니다. 그런데 그 당시 이 슥6장의 말씀이 얼마나 중요한 말씀인지 감히 잡히십니까? ~ 절체절명가운데 있던 이스라엘에게 당시 4 병거와 금 면류관은 큰 힘과 위로가 되었던 것입니다. 왜요? 승리와 함께 하나님의 나라가 세워질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 하나님의 나라의 완성을 위하여 가시화된 성육신의 사건의 가치는 두 말이 필요 없었던 것입니다. 

 

이제 이 중요한 말씀들을 한절한절 함께 살펴보시면서, 그리스도만이 자기의 빛이 되고 생명의 능력이 되어 늘 승리하시게 되시기를 바랍니다. 이미 보여 주신 6,7번째 환상인 ‘날아가는 두루마리와 에바 속의 여인’을 통하여 죄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이 불가피하다는 것을 지난 시간에 살펴보았습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의 네 병거의 환상은 죄에 대한 엄격한 심판을 하나님께서 명하셨습니다. 슥6:1-5의 내용을 함께 살펴보시면서 우리 모두가 회복과 함께 승리하게 되시기를 바랍니다. 

 

먼저 1절의 말씀부터 봅니다. 4라는 숫자는 온 세상 동서남북을 상징하는 숫자입니다. 병거는 고대인들에게 있어서 병거는 가장 강력한 무기 중 하나였습니다. 지금으로 따지면 핵폭탄을 무장한 폭격기들을 실은 미국의 포드 항공모함과 같다고 보시면 됩니다. 만드는데 쓴 비용이 무려 70조(500억 달러) 크기가 약 340m x 70m x 75m, 승선인원이 4600명이 넘으니깐, 상상이 갑니까? 이 항공모함에서 공격만 해도 웬만한 나라는 끝장이 난다고 합니다. 그러니깐 이 항공모함이 오면 어느 나라든지 두려워하게 마련입니다

 

바로 이런 힘의 병거를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안전과 보호를 위하여 세상 곳곳에 보낸 것입니다. 그러니 이스라엘 너희들은 세상을 두려워 할 이유가 있다 없다? 전혀 없다는 것입니다. 슥6장의 4병거의 환상이 무슨 뜻인지 이해가 됩니까? 항공모함과 같은 이러한 병거의 이미지에 따라, 하나님의 심판이 어떨 것인지, 이를 5절에서 하늘의 네 바람 즉 심판할 천사라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결국 4병거가 주는 뜻은 온 세상에 하나님의 무시무시한 강력한 심판이 임할 것을 말씀하시는 내용입니다. 그리고 두 산 사이가 주는 의미를 봅니다. 여기서 두 산은 잘 알려진 시온산과 감람산을 가리킵니다. 

 

그리고 ‘사이’는 요엘3:2에서 알 수 있는데, 여호사밧의 골짜기에 해당하는 것으로 요엘3:14에서도 심판골짜기라고 말씀하십니다. 그곳에서 심판의 도구로 표현되는 항공모함과 같은 큰 위력을 가진 네 병거가 나왔다는 점은 하나님께서 타락한 열국에 대하여 행하실 심판이 얼마나 철저하게 진행 될 것인지를 시사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놋 산’은 종종 단10:6, 계1:15에서는 견고함과 영원함을 상징하는 단어입니다. 신28:23에서의 놋은 하나님의 심판을 상징하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4 병거가 나온 골짜기의 양쪽에 있는 산들이 놋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것은 하나님의 심판이 너무나 강력하고 준엄하기에 그 어느 누구도 피할 수 없다는 것을 나타내고 있는 말씀입니다.

 

여기서 성도라면, 어떤가요? 어떤 생각을 할 수 있을까요? ~ 협박정도로 여기고 계십니까? 결코 협박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심판은 반드시 임합니다. 정녕 임합니다. 이 심판이 있기에 하나님께서는 슥6:12의 싹이라 이름 하는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주신 것입니다

 

여호와의 날에 무서운 심판이 있기에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구약의 희생양이 실제로 몸을 입고 구원을 위하여 오셨던 것입니다. 만약에 심판과 지옥이 없다면 예수께서 오실 이유가 없지요! 예수께서 오셨다는 것은 하나님의 심판을 면하고 영생을 주시려고 오신 것입니다. 이 말씀을 믿으시기에 지금 우리는 어떤 준비를 하셔야 할까요? 날마다 자신의 행보를 점검하고 계십니까? 하나님을 믿기에 자기가 자기를 판단하면서 또는 하나님의 판단을 받으면서 자기의 뜻과 마음을 단련하고 계십니까? ~ 

 

그 하나님의 심판이 얼마나 심각한지 2-3절의 4병거를 끄는 4말들을 통하여 알 수 있게 하십니다. 여기서 4 병거를 끄는 4 말들도 역시 하나님의 심판에 대한 말씀으로 심판 때의 신속성과 강력함을 뜻하는 내용입니다. 그리고 홍마의 홍색은 핏빛으로 전쟁과 피 흘림을 상징하고 있습니다.(계6:4) 흑마의 흑색은 슬픔과 죽음을 (렘4:28, 계6:5), 백마의 흰색은 승리와 기쁨을 상징(계6:2, 19:11)하고 있고, 어룽지고 건장한 말의 얼룩달룩한 색은 신학자 카일(keil)은 기근과 질병으로, 무어(moore)는 전쟁과 죽음, 슬픔과 피 흘림 등이 혼재해 있는 것으로 해석을 합니다

 

그리고 이 4말들이 ‘건장하다’는 것은 힘이 세고 보기에도 늠름할 뿐 아니라 언제라도 명령이 떨어지면 박차고 날아갈 것같이 뛰어나갈 완벽한 준비 태세를 의미합니다. 현대식으로 설명을 바꾼다면, 한 나라를 사라지게 할, 핵폭탄을 단 수십대 폭격기를 실은 항공모함으로 보시면 됩니다. 그런 무시무시한 힘을 가진 2-3절의 각 말들을 통하여 하나님께서는 자연적인 온갖 재난과 질병으로, 그리고 피 흘림 즉 전쟁이란 인위적인 것들을 사용하여 사악한 자들을 엄히 심판하시겠다는 것을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다시 말씀을 드립니다. 

 

이제 곧 무지막지한 심판 날이 옵니다. 마치 갑자기 도둑놈이 무장하여 집안으로 몰래 갑자기 들어오듯이, 심판 하시려고 주님은 천사들과 함께 곧 임하실 것입니다. 그간의 재난처럼 갑자기 아무도 모르게 하나님의 심판도 예수님의 재림과 함께 닥칠 것입니다. 

 

눅21:34-36입니다. “너희는 스스로 조심하라 그렇지 않으면 방탕함과 술취함과 생활의 염려로 마음이 둔하여지고 뜻밖에 그날이 덫과 같이 너희에게 임하리라, 이날은 온 지구상에 가하는 모든 사람에게 임하리라, 이러므로 너희는 장차 올 이 모든 일을 능히 피하고 인자 앞에 서도록 항상 기도하며 깨어 있으라 하시니라” 그날을 누구든지 다 준비하셔야 합니다. 대충 준비한다고 하여 해결이 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재림의 심판주로 오실 때에는 누구든지 이 심판에 대하여 분명하고 확실하게 준비해야 합니다. 요즘에 쏟아지는 비와 화재로 인하여 화려하게 지은 멋진 고가의 집들이 무너지고 타서 재가 되어버린 것을 보지 않았습니까? 큰 재앙 앞에서는 하나도 남아나지 않겠지만, 일반적인 재난 앞에서 견디시려면 모양이 아니라 기초가 튼튼해야 합니다. 기초가 튼튼해야 웬만한 재난도 견디어 낼 것입니다.

 

그 견딤은 시27:1-4입니다. “여호와는 나의 빛이요 나의 구원이시니 내가 누구를 두려워 하리요 여호와는 내 생명의 능력이시니 내가 누구를 무서워 하리요, 악인들이 내 살을 먹으려고 내게로 왔으나 나의 대적들, 나의 원수들인 그들은 실족하여 넘어졌도다, 군대가 나를 대적하여 진 칠지라도 내 마음이 두렵지 아니하며 전쟁이 일어나 나를 치려 할지라도 나는 여전히 태연하리로다내가 여호와께 바라는 한 가지 일 그것을 구하리니 곧 내가 내 평생에 여호와의 집에 살면서 여호와의 아름다움을 바라보며 그의 성전에서 사모하는 그것이라” 우리가 빛이시오 생명의 능력이신 하나님만을 바라본다면, 군대가 쳐 들어올지라도 전쟁이 터질지라도 태연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도 어떤 말씀을 하셨나요? 마7:24-27입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는 그 집을 반석 위에 지은 지혜로운 사람 같으리니,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히되 무너지지 아니하고 이는 주초를 반석 위에 놓은 연고요, 나의 날을 듣고도 행치 아니하는 자는 그 집을 모래 위에 지은 어리석은 사람 같으리니,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히매 무너져 그 무너짐이 심하니라” 누구든지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는 그 집을 반석 위에 지은 지혜로운 사람이라고 하십니다. 그 반석은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위에 세우지 않으면 누구든지 무너집니다. 아무리 화려하게 대단히 튼튼하게 잘 지은 집 같지만,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 위에 세우지 않으면 그것은 모래 위에 지은 집에 불과하다고 말씀을 하십니다. 

 

구체적으로 말씀을 드리면 나의 이 말을 듣고 행치 않는 자들 즉 세상의 방법으로 사는 이들이 바로 모래 위에 집을 짓는 자와 같다는 것입니다. 절대로 무너지지 않는 집이 되시려면, 돈으로, 권력으로, 능력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행하는 자만이 어떤 폭풍, 해일, 사태 가운데서도 절대로 쓰러지지 않는다는 말씀입니다. 결국 이 말씀은 하나님의 심판을 말씀하시면서 준비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심판은 엄청난 심판이기에 오직 한 가지 길만이 그 심판에서 모면할 수 있다고 하십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행하는 자만이 하나님의 심판에서 면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럼 누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목숨을 걸고 순종할까요? 아니 주의 아주 작은 일이라도 몸과 시간과 물질과 정성을 드릴까요? 하나님을 만난 자녀들만이 가능할 것입니다. 시늉만 내는 것이 아니라, 하는 척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자기를 얼마나 사랑하시는지를 깨닫게 된 성도들만이 아주 작은 주의 일이라도 놓치지 않고 최선을 다하게 될 것입니다. 특히 자기를 위한, 자기를 살리시려고 주신 말씀에 대한 묵상과 거룩함을 위하여 그래서 드려야 되는 기도의 삶이 그 시작인데, 그 시작까지도 놓치고 있다면 즉 귀한 작은 시작도 못하고 있으면서, 두려움도 없이 세상의 썩어질 일에는 자기 하고 싶은 대로 다하고 있다면, 그건 아직도 하나님을 만나지 못한 상태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말씀해 주십니다. 요17:3입니다.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가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 알아야 한다, 즉 인격적인 만남이 요구됩니다. 

 

요6:40입니다. 내 아버지의 뜻은 아들을 보고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는 이것이니 마지막 날에 내가 이를 다시 살리리라 하시니라” 보내주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야 합니다. 한 곳만 더 봅니다. 

 

요20:31입니다. “오직 이것을 기록함은 너희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 또 너희로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 영생은, 진정한 영원한 승리는 돈과 권력과 어떤 능력이 아니라 하나님의 아들 예수그리스도를 믿어야지만 됩니다. 

 

그럼 문제는 어떻게 하면 믿을 수 있을까요? 자식이 부모를 알려면 자신이 자신과 똑같은 아이를 낳고 평생 길러보지 않고서는 어렵지요! 부부간에도 반 백 년을 살아도 원수라고 하지 않던가요? 그러니 유한한 우리들이 무한하신 하나님을 만나려면, 은혜라는 기적이 필요한 것입니다. 물론 그 은혜도 자신이 은혜를 입었는지, 확신하기가 어렵습니다. 왜요? 그 은혜도 저절로 확인이 되지 않습니다. 그 확인이 되시려면, 첫째는 바른 복음을 받아야 하고 둘째는 그 말씀을 주야로 계속해서 묵상하면서 거룩함을 위한 기도도 날마다 병행하는 경건의 훈련을 끝까지 감당해야 되는데, 문제는 여기서부터 안 되고 있다가 보니깐, 이 모양이 되고 맙니다. 

 

어떤 모양일까요? “꼭 그렇게 해야 되나요?”~ 이 한심한 수준에서 벗어나려면 도살장으로 끌려가는 소처럼 자신이 자신을 기도의 방으로 밀어 쳐 넣고, 이 자리와 이 시간을 기쁘게 들어와 기도를 드릴 수 있도록, 처절한 도움을 될 때까지 쉬지 말고 목숨을 걸고 구하지 않으면 안 될 것입니다. 미련하고 더럽고 어리석어서 주님과 동행하고 싶지 않고 나를 살리고 회복시켜 영원한 기쁨을 주시려는 그분과의 만남을 죽도록 싫어하는 자기 자신과 무섭게 싸워 이겨가야 되는데, 어떤가요?~ 

 

바로 그 처절한 영적인 싸움도 힘들지만 유지가 되려면, 인간의 힘으로 안 되고, 오직 은혜로만 되기에 은혜를 주신 것이 아닙니까?~ 은혜가 아니면 불가능하기에 은혜를 주셨는데, 왜 그 은혜를 외면할 수가 있단 말입니까? 주신 은혜는 자기가 붙잡아야지만 됩니다. 끝까지 붙잡을 때, 자기가 은혜를 입은 자인지 아닌지, 확인이 되면서, 어떤 영적인 체험을 하게 되는지 스스로 경험을 해야 합니다.

 

각자의 믿음의 분량에 따라서 놀라운 경험을 하게 됩니다. 그 경험은 육체적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하시는 그 말씀이 무슨 뜻인지 점점 깊게 알게 됩니다. 세상적인 자기가 성령의 뜻대로 서서히 바뀌어 가는 것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자기의 행보를 말씀 위에 굳게 세워 주님과 동행하려고 몸부림을 치게 되고, 말씀이 살아서 나의 약점을 강점으로 만들게 하고, 나의 단점을 장점으로 만들 수 있게 합니다. 물론 점점 더 고민하게 합니다. 왜냐하면 목표가 거룩함이요, 점과 흠이 없는 자로 돌아가야 하기 때문에 정해진 그 틀 안에서, 그 원리 안에서, 그 보호 안에서 철저한 준비를 하게 도와주시더라는 것입니다. 예전의 자신하고는 전혀 다른 자신을 보게 됩니다. 이것이 바로 은혜가 주는 선물입니다. 

 

이 은혜야 말로 세상에서는 없는 특별한 능력임을 알게 됩니다. 그래서 누구를 보내주신 것이라고요? 하나님께서는 이미 창3:15에서 약속하셨고 그 약속이신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 주신 것입니다. 그 약속은 구약 내내 말씀으로 드러내 주셨는데, 그 약속이 바로 슥6장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슥6:12를 보시면, 싹이 나오는데 그 싹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뜻하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대제사장 여호수아도 만왕의 왕이시고 대제사장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하는 구약의 인물입니다. 

 

그 놀라운 비밀의 구원을 미리 계시하는 내용이 슥3:8, 슥6:11-15의 말씀입니다. 이 말씀만 보더라도 하나님께서는 약속의 말씀 없이 세상을 심판하시는 무자비한 하나님이 아닌 것을 알게 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구원의 그 은혜를 이미 약속하셨고, 약속하신 후에, 하나님의 경륜과 섭리 가운데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주시면서, 그가 십자가에서 대속이 되게 하시고 그 대속을 통하여 각 자녀들에게 은혜가 임하면서 새로운 삶을, 새로운 역할로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게 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이제 남은 약속, 재림의 주로 오시면서 심판하시겠다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그날, 별안간 오셔서 심판하시는 그날을 항상 준비하셔야 되는데, 지금 여러분들은 무슨 준비를 하고 있나요?~ 지금 우리의 이 자리가 어디까지 와 있는 곳인지, 정말 잘 알고 있기에, 그래서 매일 주님만 바라보면서 그날을 준비하고 있나요?~ 이미 슥3:8과 6:12-15에서 예언된, 싹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이미 오셨고, 오셔서 약속하신대로 여호와의 성전인 건물이 아닌 교회까지도 세워진 상태가 아닙니까?

 

특히 15절을 보세요! ‘먼 데 사람들이 와서 즉 이방인들이 구원을 받아서 하나님의 전을 건축하리라’의 말씀처럼 그 하나님의 성전이 이미 세워지지 않았나요?

 

마16:18입니다. “또 내가 네게 이르노니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예수님을 믿는 자들의 모임이 바로 교회인데, 이 교회를 사도 바울이 어떻게 설명하고 있던가요? 

 

엡2:20-22입니다. “너희는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터 위에 세우심을 입은 자라 그리스도 예수께서 친히 모퉁이 돌이 되셨느니라, 그의 안에서 건물마다 서로 연결하여 주 안에서 성전이 되어가고, 너희도 성령 안에서 하나님의 거하실 처소가 되기 위하여 예수 안에서 함께 지워져 가느니라” 

 

이것이 슥6:15의 말씀과 같은 뜻입니다. 이렇게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재림의 주가 오실 때까지 하나님의 성전인 건물이 아닌 교회를 세워 가십니다. 그러나 세상에 빠져서 세상의 것으로 시간과 마음을 빼앗겼다면, 그들이 아무리 멋지고 멋진, 든든하고 강력한 집에서 넉넉하고 화려한 삶을 살았다고 해도 그것은 하나님의 심판 앞에서 불타는 종이와 같은 것입니다. 하나님의 심판은 무섭습니다. 

 

죄 때문에 당시 최강의 애굽도, 앗시리아도, 바벨론도, 페르시아도, 로마제국도, 다 망했습니다. 최근에는 인간의 죄악으로 인한 코로나-19부터 시작하여 그간 세계 곳곳에서 일어난 여러 재난들을 생각해 보세요! 특히 전쟁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순식간에 목숨을 잃어버렸습니다. 말할 수 없는 고통을 받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심판은 그 정도가 아닙니다. 지금의 고통의 수억 배를 받아야 합니다. 은혜를 입은 지혜로운 자라면, 지금의 재난과 재앙을 통하여 내일을 준비할 것입니다. 

 

아니 지금까지 한 개인만이 아니라 최강의 나라까지도 망하는 역사와 최근의 최악의 사태를 보면서, 어느 누가 당장의 성공을 위하여 어리석은 수고를 하려고 할까요? ~결코 하지 않을 것입니다. 특히 슥6장의 예언된 말씀이 성취되는 것을 보시면서, 더 이상 자기의 썩어질 육체를 위하여 수고하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당장 힘들고 어렵더라도 하나님이 자기의 빛이시고 생명의 능력이 되심을 믿는다면, 결코 두려워할 이유도 무서워할 이유도 없을 것입니다. 오히려 안연히 거하면서 무엇이 은혜인지를 은혜가 얼마나 큰 능력이고 복인지를 드러내는 기회가 되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그래서 슥6장을 통하여 막강한 네 병거를 보내 주셨고 금 면류관을 만들도록 하셨던 것입니다. 

 

결론입니다. 왜 이 막강한 네 병거와 금 면류관을 만들어 보관케 하셨다고요? 다 사실이기 때문입니다. 다 이루어졌다는 것을 너희들은 잊지 말라는 것입니다. 특히 이제 남은 심판만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이 엄청난 심판을 모면케 하시려고 약속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주셨고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게 하시려고 성경 66권과 시간을 이렇게 주셨습니다. 

 

슥6:15의 후반부 말씀을 보세요! 너희가 만일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들을진대 이같이 되리라” 

 

보내주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이방인 너희들이 하나님의 거룩한 나라의 지체들이 된다는 말씀인데, 어떻게 하면 그렇게 된다고요?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면, 이같이 된다고 하셨는데, 결국 이같이 되게 하셨습니다. 여기서 우린 이 약속의 말씀이 이방인들만이 아니라 유대인들에게 하고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왜 유대인들에게 하시는 말씀일까요? 유대인들이 비록 선민일지라도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지 않으면 이같이 될 수 없다는 것을 역설적으로 경고 하셨던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까지도 유대인들은 싹이신 금 면류관을 쓰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고 있습니다. 그 결과 이같이 되지 않으므로 어떤가요? ~ 재앙입니다. 전쟁 속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주변국들이 피눈물을 흘리고 있습니다.

 

슥6:13을 보세요! “그가 여호와의 전을 건축하고 영광도 얻고 그 자리에 앉아서 다스릴 것이요 또 제사장이 자기 자리에 있으니리(그가 자기 보좌에서 제사장이 되리니)이 둘 사이에 평화의 의논이 있으리라 하셨다 하고” 성전이신 예수만이 다스리실 때, 거기에는 영광과 평화가 임합니다. 예수를 믿을 때, 최고의 영광을 얻게 되고 평화를 누리는 선물을 받을 것입니다. 왜 엉뚱한 곳에서 기쁨을 누리려고 합니까? 예수님 없이는 최고의 영광과 선물을 가질 수 없습니다. 그렇다는 것을 은혜를 입은 너희가 알아야 할 것이라고 하십니다. 예수 없이는 영광도 선물의 기쁨도 없습니다. 이같이 될 수 없습니다. 얼마나 대단한 약속입니까? 진정 가정을 사랑하십니까? 부모, 배우자, 자식을 사랑하십니까? 그러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말씀을 열심히 배워야 합니다. 이 선택만이 사는 길이요 내일을 100% 보증할 수 있는 길이 됩니다. 지금 구원의 이 기회는 영원하지 않습니다. 이 은혜의 기회는 지금입니다. 

 

지금이 구원의 날이기에 놀고 싶어도 놀지 마세요! 썩어질 그런 약속들은 하지 마세요! 시간을 낭비하면 안 됩니다. 왜냐하면 이제부터 죽을 때까지 열심히 자신의 마음을 정결케 하기란 결코 쉽지 않기 때문입니다. 우리들의 상태가 얼마나 더럽고 미련하고 어리석은지를 아신다면 남은 삶은 이젠 all in 하셔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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