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돌교회

09022018 신명기 26:6-19 본문

주일 설교 말씀

09022018 신명기 26:6-19

PastorYK 2018. 9. 6. 13:02

제목: 순종하라, 지켜 행하라

기도: 신 17:14-20/ 말, 아내, 금과 은을 많이 두지 말라 오직 말씀


오늘 하시려는 하나님의 뜻이 어디에 있을까요?

단도직입으로 말씀을 드리면, 오늘 이 말씀은 특히 누구에게 하시려는 말씀인가를 알면 이해가 될 것입니다.

믿음으로 살면 이게 안된다고 하는 교회 안의 지체들에게 하시는 말씀입니다. 지금이나 당시나 믿음으로는 이 세상을 살아갈 수 없다는 사람들이 소수가 아니라 다수가 그랬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 뜻은 교회 안의 다수가 아말렉의 뿌리를 진멸 못하고 있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능력을 보이는 세상과 비교하면서 아무리 하나님의 능력이 대단할지라도 이 막강한 세상의 힘은 너무 커서 결코 이길 수 없다는 것이 그들의 죽은 믿음이었습니다. 그렇다는 것을 말씀으로 확인해 봅니다.

*노아 때부터도 다 안 믿었지! 그 후에도

먼저 하나님의 전능하심을 전혀 믿지 않고 있습니다.

(1) 창12:1-3의 약속을 봅니다.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케 하리니 너는 복의 근원이 될찌라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를 인하여 복을 얻을 것이니라 하신지라”

그런데 이 약속을 아브라함이 믿던가요? 믿지 않던가요? 믿게 하시려고 엄청난 기적을 주셔서 하나님만을 바라보게 하십니다.

창14:13 -20 입니다. “도망한 자가 와서 히브리 사람 아브람에게 고하니 때에 아브람이 아모리 족속 마므레의 상수리 수풀 근처에 거하였더라 마므레는 에스골의 형제요 또 아넬의 형제라 이들은 아브람과 동맹한 자더라 아브람이 그 조카의 사로잡혔음을 듣고 집에서 길리고 연습한 자 삼백 십 팔인을 거느리고 단까지 쫓아가서 그 가신을 나누어 밤을 타서 그들을 쳐서 파하고 다메섹 좌편 호바까지 쫓아가서 모든 빼앗겼던 재물과 자기 조카 롯과 그 재물과 또 부녀와 인민을 다 찾아 왔더라 아브람이 그돌라오멜과 그와 함께한 왕들을 파하고 돌아올 때에 소돔왕이 사웨 골짜기 곧 왕곡에 나와 그를 영접하였고 살렘왕 멜기세덱이 떡과 포도주를 가지고 나왔으니 그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제사장이었더라 그가 아브람에게 축복하여 가로되 천지의 주재시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이여 아브람에게 복을 주옵소서 너희 대적을 네 손에 붙이신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을 찬송할찌로다 하매 아브람이 그 얻은 것에서 십분 일을 멜기세덱에게 주었더라”

그런데 결국 그들의 보복을 시간이 흐르면서 두려워합니다.

창 15:1입니다. “이 후에 여호와의 말씀이 이상 중에 아브람에게 임하여 가라사대 아브람아 두려워 말라 나는 너의 방패요 너의 지극히 큰 상급이니라”

그리고 다시 말씀하십니다.

창15:2-6입니다. “아브람이 가로되 주 여호와여 무엇을 내게 주시려나이까 나는 무자하오니 나의 상속자는 이 다메섹 엘리에셀이니이다 아브람이 또 가로되 주께서 내게 씨를 아니주셨으니 내 집에서 길리운 자가 나의 후사가 될것이니이다 여호와의 말씀이 그에게 임하여 가라사대 그 사람은 너의 후사가 아니라 네 몸에서 날 자가 네 후사가 되리라 하시고 그를 이끌고 밖으로 나가 가라사대 하늘을 우러러 뭇별을 셀 수 있나 보라 또 그에게 이르시되 네 자손이 이와 같으리라 아브람이 여호와를 믿으니 여호와께서 이를 그의 의로 여기시고”

믿겠다고 해 놓고서는, 다시 시간이 지나자, 하나님의 전능하심과 약속을 또 의심합니다. 의심이 들자 남편 아브라함이 더 늙으면 안된다는 사라의 자기 판단을 가지고 사라가 사라의 여종 하갈의 몸을 이용하여 죄의 아들, 육신의 아들, 이스마엘을 낳게 됩니다.
창16:1-4 “아브람의 아내 사래는 생산치 못하였고 그에게 한 여종이 있으니 애굽 사람이요 이름은 하갈이라 사래가 아브람에게 이르되 여호와께서 나의 생산을 허락지 아니하셨으니 원컨대 나의 여종과 동침하라 내가 혹 그로 말미암아 자녀를 얻을까 하노라 하매 아브람이 사래의 말을 들으니라 아브람의 아내 사래가 그 여종 애굽 사람 하갈을 가져 그 남편 아브람에게 첩으로 준 때는 아브람이 가나안 땅에 거한지 십년 후이었더라 아브람이 하갈과 동침하였더니 하갈이 잉태하매 그가 자기의 잉태함을 깨닫고 그 여주인을 멸시한지라”

창16:15-16 입니다. “하갈이 아브람의 아들을 낳으매 아브람이 하갈의 낳은 그 아들을 이름하여 이스마엘이라 하였더라 하갈이 아브람에게 이스마엘을 낳을 때에 아브람이 팔십 륙세이었더라”

그러자 다시 하나님께서는 나타나셔서, 전능의 하나님을 믿지 못하는 아브라함과 사라에게 “나는 전능하신 하나님이라!”고 또 다시 말씀을 창17:1에서 해주십니다.

그리고 창 17:2-8에서 하시는 말씀을 보면 하나님의 약속은 꼭 이루어진다고 합니다. "내가 내 언약을 나와 너 사이에 세워 너로 심히 번성케 하리라 하시니 아브람이 엎드린대 하나님이 또 그에게 일러 가라사대 내가 너와 내 언약을 세우니 너는 열국의 아비가 될찌라 이제 후로는 네 이름을 아브람이라 하지 아니하고 아브라함이라 하리니 이는 내가 너로 열국의 아비가 되게 함이니라 내가 너로 심히 번성케 하리니 나라들이 네게로 좇아 일어나며 열왕이 네게로 좇아 나리라 내가 내 언약을 나와 너와 네 대대 후손의 사이에 세워서 영원한 언약을 삼고 너와 네 후손의 하나님이 되리라 내가 너와 네 후손에게 너의 우거하는 이 땅 곧 가나안 일경으로 주어 영원한 기업이 되게 하고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리라 하나님이 또 아브라함에게 이르시되 그런즉 너는 내 언약을 지키고 네 후손도 대대로 지키라”

그런데 또 잠시 후에, 그들은 하나님의 전능하심과 그 아들의 약속에 대하여 전혀 믿지 못합니다. 하나님의 전능함과 그 약속을 전혀 믿지 못함을 다음 말씀들에서 볼 수 있습니다.

창17:15-19 “하나님이 또 아브라함에게 이르시되 네 아내 사래는 이름을 사래라 하지 말고 그 이름을 사라라 하라 내가 그에게 복을 주어 그로 네게 아들을 낳아주게 하며 내가 그에게 복을 주어 그로 열국의 어미가 되게 하리니 민족의 열왕이 그에게서 나리라 아브라함이 엎드리어 웃으며 심중에 이르되 백세 된 사람이 어찌 자식을 낳을까 사라는 구십세니 어찌 생산하리요 하고 아브라함이 이에 하나님께 고하되 이스마엘이나 하나님 앞에 살기를 원하나이다 하나님이 가라사대 아니라 네 아내 사라가 정녕 네게 아들을 낳으리니 너는 그 이름을 이삭이라 하라 내가 그와 내 언약을 세우리니 그의 후손에게 영원한 언약이 되리라"

창17:22 “하나님이 아브라함과 말씀을 마치시고 그를 떠나 올라가셨더라”

창 18:9-15 “그들이 아브라함에게 이르되 네 아내 사라가 어디 있느냐 대답하되 장막에 있나이다 그가 가라사대 기한이 이를 때에 내가 정녕 네게로 돌아오리니 네 아내 사라에게 아들이 있으리라 하시니 사라가 그 뒤 장막 문에서 들었더라 아브라함과 사라가 나이 많아 늙었고 사라의 경수는 끊어졌는지라 사라가 속으로 웃고 이르되 내가 노쇠하였고 내 주인도 늙었으니 내게 어찌 낙이 있으리요 여호와께서 아브라함에게 이르시되 사라가 왜 웃으며 이르기를 내가 늙었거늘 어떻게 아들을 낳으리요 하느냐 여호와께 능치 못한 일이 있겠느냐 기한이 이를 때에 내가 네게로 돌아오리니 사라에게 아들이 있으리라 사라가 두려워서 승인치 아니하여 가로되 내가 웃지 아니하였나이다 가라사대 아니라 네가 웃었느니라”

너희들은 어찌 하나님의 전능하심. 능치 못함이 없다는 것을 어떻게 여전히 믿지 못하느냐! 책망을 하시고 그리고 창18:10의 말씀처럼, 일년 후에 능치 못함이 전혀 없으신 하나님께서 약속의 아들, 이삭을 주시겠다고 하셨는데 바로 약속 하신대로 일년 후에 아들, 이삭을 주십니다. 창21:1-7입니다. “여호와께서 그 말씀대로 사라를 권고하셨고 여호와께서 그 말씀대로 사라에게 행하셨으므로 사라가 잉태하고 하나님의 말씀하신 기한에 미쳐 늙은 아브라함에게 아들을 낳으니 아브라함이 그 낳은 아들 곧 사라가 자기에게 낳은 아들을 이름하여 이삭이라 하였고 그 아들 이삭이 난지 팔일만에 그가 하나님의 명대로 할례를 행하였더라 아브라함이 그 아들 이삭을 낳을 때에 백세라 사라가 가로되 하나님이 나로 웃게 하시니 듣는 자가 다 나와 함께 웃으리로다 또 가로되 사라가 자식들을 젖 먹이겠다고 누가 아브라함에게 말하였으리요 마는 아브라함 노경에 내가 아들을 낳았도다 하니라”

약속하신 대 로 이삭을 주셨습니다. 이 약속은 당시만 허용되는 것이 아니라 지금도 허용되고 있습니다. 우리들이 다 이삭처럼 말씀으로 태어나고 있기 때문입니다.

약 1:18 “그가 그 조물 중에 우리로 한 첫 열매가 되게 하시려고 자기의 뜻을 좇아 진리의 말씀으로 우리를 낳으셨느니라”

벧전 1:23 입니다. “너희가 거듭난 것이 썩어질 씨로 된 것이 아니요 썩지 아니할 씨로 된 것이니 하나님의 살아 있고 항상 있는 말씀으로 되었느니라”

만세 전에 약속된 우리들이 부모의 몸을 통하여 생산은 되었지만 그러나 중생은 말씀에 의한 재태생이기에 중생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말씀을 믿지 못하는 자들에게, 하나님의 전능하심이 이 세상의 기준과 원리에는 전혀 통하지 않는다고 하는 믿음 없는 자들에게 해 주시는 말씀이,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순종하라! 그러면 하늘의 복을 받아서 능력의 삶을 살게 되리라! 라고 하십니다. 우리의 믿음, 중생은 말씀에 의거한 열매이기에 자기 기준과 판단과 과학으로는 전혀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이해가 될 수 없기에 그래서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하여, 오직 순종으로는 이 세상을 살아갈 수 없다는 말로 자신의 믿음과 신앙을 포장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특히 순종만으로 살아갈 수 없다는 그런 다수의 죽은 교인들을 보면서 위로를 삼았다는 큰일이 나는 것입니다.

다시 다른 말씀으로 지독하게 하나님의 전능하심과 약속을 완전 믿지 못하여 작살이 난, 큰 사건 하나를 살펴보려고 합니다.

(2)민 13:30-14:10 입니다. 그 당시에도 이스라엘 백성이 정탐꾼의 보고를 듣고서는 완전 하나님의 전능함과 약속을 부인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늘 말씀을 해 주시는 것이, 너희 생각과 나의 생각이 같지 않다는 것입니다.

완전 다르다는 것일까요? 예! 전혀 다르다는 것입니다.

인간들의 기준은 죽이는 가치라면 하나님의 생각은 살리는 가치라는 것입니다. 그 차이를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사55:8-13 입니다. “여호와의 말씀에 내 생각은 너희 생각과 다르며 내 길은 너희 길과 달라서 하늘이 땅보다 높음 같이 내 길은 너희 길보다 높으며 내 생각은 너희 생각보다 높으니라 비와 눈이 하늘에서 내려서는 다시 그리로 가지 않고 토지를 적시어서 싹이 나게 하며 열매가 맺게 하여 파종하는 자에게 종자를 주며 먹는 자에게 양식을 줌과 같이 내 입에서 나가는 말도 헛되이 내게로 돌아오지 아니하고 나의 뜻을 이루며 나의 명하여 보낸 일에 형통하리라 너희는 기쁨으로 나아가며 평안히 인도함을 받을 것이요 산들과 작은 산들이 너희 앞에서 노래를 발하고 들의 모든 나무가 손바닥을 칠 것이며 잣나무는 가시나무를 대신하여 나며 화석류는 질려를 대신하여 날 것이라 이것이 여호와의 명예가 되며 영영한 표징이 되어 끊어지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세상의 힘을 믿는 너희는 가시나무의 가치라면 나를 믿는 너희들은 잣나무의 가치라는 것입니다.

돈이 우선인 너희는 질려, 엉겅퀴 - brier에 불과하다면, 나를 믿는 너희들은 화석류가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어느 쪽을 따라야 할까요?

그 해답이 사55:6-7입니다. “너희는 여호와를 만날만한 때에 찾으라 가까이 계실 때에 그를 부르라 악인은 그 길을, 불의한 자는 그 생각을 버리고 여호와께로 돌아오라 그리하면 그가 긍휼히 여기시리라 우리 하나님께로 나아오라 그가 널리 용서하시리라”

하나님을 찾고 하나님에게로 돌아오라는 것입니다. 그것이 살길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이를 어쩌지요? 요즘은 예전하고 완전 달라져서 이젠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할 수 없는 것이 현실인데 어떻게 하지요? 라고 합니다. 이젠 성경을 지키는 것은 미친짓이고 신앙과 현실은 이젠 공존할 수 없습니다! 라고 하는데, 누가 그렇게 말을 할 수 있을까요? 정말 요즘은 믿음으로 살 수 없는 세상일까요? 세상이 예전하고 달라서 말씀을 지켜 행하면 전혀 안 된다는 그들의 판단과 생각이 맞나요?

진정으로 하나님의 말씀이 지금 현실의 세력을 이겨낼 수 없습니까? 세상이 이젠 하나님보다 센 세력으로 달라졌기에 하나님의 말씀을 믿으면 안 되나요? 그래서 질문합니다. 아니 조금만 생각해 봅시다! 전능하신 하나님은 100세에도 아들을 낳게 하시는데, 지금 월경이 끊긴 여인에게 건강한 남자 아이를 낳게 할 수 있어요? 2000년 전에 예수님은 오셔서 오병이어의 기적으로 5000명이 먹고도 12 광주리가 남았습니다. 폭풍과 거친 파도를 단번에 잠재워 버리셨습니다.

죽은 자를 살리셨고, 앉은뱅이를 뛰게 하셨고 눈먼 장님을 뜨게 하신 그 능력이 지금 과학의 힘으로 돈으로 가능합니까? 돈으로 해결이 된다면, 아니 쏟아지는 그 장마비를 막아만 주어도, 아니 토네이도를 붙들어만 주어도, 아니 산불의 불을 사전에 막아서 인명 피해가 나지 않게만 한다면, 아니 지진으로 더 이상 사람이 죽어나가지 않는다면, 아니 인간의 생명을 단 5분만이라도 연장할 수 있게 한다면, 아니 지금 바다의 깊이를 제대로만 재어서 그 깊이를 나에게 말해 줄 수만 있더라도, 아니 홍해 바다의 길을 내어서 걸어서 건너게만 해도, 해를 뒤로 단 10초만이라도 돌릴 수만 있다면, 이젠 나도 예수님을 믿지 않고 과학을 따라 가겠습니다. 이제 목회를 하지 않고 돈을 벌겠습니다. 과학이 하나님의 능력보다 강한데 돈이 하나님 보다 더 가치가 있는데, 왜 하나님을 믿어요?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갈 필요가 당연히 없지요! 지금 세상은 하도 살기가 힘들어서 아니 세상의 힘이 너무나 강력하기에 믿음으로 살 수 없다면, 교회에 왜 나오시나요? 나오지 마세요! 오늘부로 모든 교회들은 문을 닫고 다들 열심히 돈을 많이 벌어들이는 것이 맞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아니잖아요? 우리 하나님께서 2700년 전에 이사야 선지자를 통하여 무슨 말씀을 하시던가요?

사41:21-23 “나 여호와가 말하노니 너희 우상들은 소송을 일으키라 야곱의 왕이 말하노니 너희는 확실한 증거를 보이라 장차 당할 일을 우리에게 진술하라 또 이전 일의 어떠한 것도 고하라 우리가 연구하여 그 결국을 알리라 혹 장래사를 보이며 후래사를 진술하라 너희의 신 됨을 우리가 알리라 또 복을 내리든지 화를 내리라 우리가 함께 보고 놀라리라”

사42:5-9 “하늘을 창조하여 펴시고 땅과 그 소산을 베푸시며 땅 위의 백성에게 호흡을 주시며 땅에 행하는 자에게 신을 주시는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나 여호와가 의로 너를 불렀은즉 내가 네 손을 잡아 너를 보호하며 너를 세워 백성의 언약과 이방의 빛이 되게 하리니 네가 소경의 눈을 밝히며 갇힌 자를 옥에서 이끌어 내며 흑암에 처한 자를 간에서 나오게 하리라 나는 여호와니 이는 내 이름이라 나는 내 영광을 다른 자에게, 내 찬송을 우상에게 주지 아니하리라 보라 전에 예언한 일이 이미 이루었느니라 이제 내가 새 일을 고하노라 그 일이 시작되기 전이라도 너희에게 이르노라”

사44:6-8 “이스라엘의 왕인 여호와, 이스라엘의 구속자인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나는 처음이요 나는 마지막이라 나 외에 다른 신이 없느니라 내가 옛날 백성을 세운 이후로 나처럼 외치며 고하며 진술할 자가 누구뇨 있거든 될 일과 장차 올 일을 고할찌어다 너희는 두려워 말며 겁내지 말라 내가 예로부터 너희에게 들리지 아니하였느냐 고하지 아니하였느냐 너희는 나의 증인이라 나 외에 신이 있겠느냐 과연 반석이 없나니 다른 신이 있음을 알지 못하노라”

사45:5-8입니다. “나는 여호와라 나 외에 다른이가 없나니 나 밖에 신이 없느니라 너는 나를 알지 못하였을찌라도 나는 네 띠를 동일 것이요 해 뜨는 곳에서든지 지는 곳에서든지 나 밖에 다른이가 없는줄을 무리로 알게 하리라 나는 여호와라 다른이가 없느니라 나는 빛도 짓고 어두움도 창조하며 나는 평안도 짓고 환난도 창조하나니 나는 여호와라 이 모든 일을 행하는 자니라 하였노라 너 하늘이여 위에서부터 의로움을 비 같이 듣게 할찌어다 궁창이여 의를 부어 내릴찌어다 땅이여 열려서 구원을 내고 의도 함께 움돋게 할찌어다 나 여호와가 이 일을 창조하였느니라”

지금 누가, 무엇이 이런 기적을 행할 수 있단 말입니까? 지금 하나님의 종들이 세상의 힘에 눌려서 교회가 완전 다 사라졌다고 믿고 있는 것은 아닙니까? 여러분의 교회 산돌교회를 보세요! 20년간을 어떻게 여기까지 지켜낼 수 있었는지 아세요? 여러분이 생각할 때, 그냥 쉽게 유지된 그런 세상의 죽은 교회로 생각하세요? 어느 누가 이렇게 20년을 겨우 힘겹게 그러나 당당하게 지키면서 생명의 복음을 전하면서 버틸 수 있단 말입니까?

단지 인간의 생각으로 '내가 아니라고 하여 아니라고 하면 그건 안 됩니다. 세상적인 자기 생각과 판단으로, 나는 아니야! 어떻게 믿음으로 이 세상을 살아가? 라고 의심을 할 수 있겠지만, 아니라는 그곳에 적지 않은 어떤 주님의 7천 가족들은 참으로 상상할 수 없는 감사와 사랑의 삶으로 서로가 감동하면서 기뻐하면서 정말 멋지게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그런 가정이 자기의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세상식으로 판단하면 정말 손해 보는 것입니다. 큰 후회를 하게 될 것입니다. 믿음이 없어서 말씀을 믿지 않았던 자들이 왜 후회를 하게 되는가 하면, 시119:144입니다. “주의 증거는 영원히 의로우시니 나로 깨닫게 하사 살게 하소서”

하나님의 말씀은 일시적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영원의 말씀이요 진리이기 때문입니다. '시대에 따라서 맞다, 틀리다 할 수 없는 생명의 말씀이기에 그래서 오늘 말씀 신26:16-19도 여전히 효과를 100% 갖는 능력의 말씀이기에 이 더럽고 치사한 돈만이 최고인 썩어버린 세상에서 조금도 굴하지 않고 여전히 아니 영원히 당당할 수 있습니다.

질문합니다. 한 번도 늘 세상의 힘과 능력으로 묶이고 매여서 이겨낸 적이 없습니까?

정말 능치 못함이 없는 전능하신 하나님을 만나서 역시 믿음이야 하면서 깊은 찬송을 드려본 경험이 없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은 영원무궁토록 죽은 자를 살리는 진리요, 능력입니다. 그 누구도 그 무엇도 하나님의 말씀처럼 영원히 진리가 되는 것은 없습니다. 하나님의 말씀 외에는 절대로 영원히 존재할 수 있는 것은 없습니다. 우린 하나님의 말씀을 꼭 기억하셔야 합니다.

롬8:13 입니다. “너희가 육신대로 살면 반드시 죽을 것이로되 영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리니”

믿으세요? 당연히 아멘이지요! 만약에 여러분이 여러 분의 생각으로 말씀을 부인하면 영원히 불 속에서의 삶만이 남을 것입니다. 당장은 아니더라도 누구든지 죽으면, 무엇이 강력한 능력이요 영원한 진리인지를 두 눈으로 똑똑히 보게 되고 확인하게 될 것입니다. 늘 말씀을 드리잖아요! 과학자들이 그렇게 놀라운 것들을 만들지만, 다 웃기는 노릇이라고요! 당장의 재앙, 불볕더위를 막지 못하잖아요!

그런데 단지 돈! 돈이면 만사형통이라고요? 누가 그러던가요? 돈에 미친 씩은 세상 세력들만이 그럴 뿐입니다. 돈이 없으면 감사함으로 살아 갈 수 있어도, 돈이 많으면 서로 싸우면서 죽어가는 법입니다. 그래서 어떤 교훈의 말이 있던가요? 노쇠 했을 때의 입장으로 지금의 젊은 시절을 바라보아야 다투어 경쟁하는 마음을 제거 할 수 있고, 영락(榮落)했을 때의 입장으로 지금의 영화로움을 바라보아야 사치스럽게 부귀를 추구하는 생각을 끊을 수 있다.

인생은 돈이 아니라 누가 하나님의 말씀을 제대로 믿고 있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동의하세요! 아멘이지요! 미쳤다고 하지 마세요! 아니 말씀에 미쳐야 합니다. 예수에 미쳐야 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미친것이 아닙니다. 진짜로 미친자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믿지 않고 돈의 힘을 믿고 사는 자들이 완전 미친것입니다. 오늘과 같은 이런 설교가 마음 판에 팍팍 깊이, 아주 깊이 박혀서 신앙을 방해하는 돈으로 혼들리지 말고 자족하여 돈을 부릴 수 있어야 하는데, 참으로 안타깝습니다.

우리 하나님께서는 결코 시시한 하나님이 아닙니다! 우리 하나님은 전 인생의 모든 생각까지도 다 기억하고 계십니다. 감히 상상도 안 되는 능력의 하나님이십니다. 그분을 믿지 못하여 세상의 재물로 요동하는 그들은 조만간에 얼마나 세상의 재물이 헛된 것이었는지 알게 해 주실 것입니다. 그래서 늘 말씀해 주십니다. 시 52:5-9, 62:5-12, 73:26-28, 92:5-15, 146:1-10 입니다. 영원한 살길과 승리는 돈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만을 바라보고 따라가라는데 있다고 합니다.


특히 하나님이 누구신가요? 거짓말을 못하시는 분이십니다. 그 신실하심은 독생자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죽여서 약속을 이루어 주신 분입니다. 그런데 그분이 무엇이라고 말씀하시던가요? 신26:16-19입니다. 오늘날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 규례와 법도를 행하라고 네게 명하시나니 그런즉 너는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여 지켜 행하라 네가 오늘날 여호와를 네 하나님으로 인정하고 또 그 도를 행하고 그 규례와 명령과 법도를 지키며 그 소리를 들으리라 확언하였고 여호와께서도 네게 말씀하신 대로 오늘날 너를 자기의 보배로운 백성으로 인정하시고 또 그 모든 명령을 지키게 하리라 확언하셨은즉 여호와께서 너의 칭찬과 명예와 영광으로 그 지으신 모든 민족 위에 뛰어나게 하시고 그 말씀하신대로 너로 네 하나님 여호와의 성민이 되게 하시리라

나의 법도와 규례를 지켜 행하기만 하면 모든 민족 위에 뛰어난 최고의 민족이 되게 하시고 너희들의 명예와 위상과 존엄함은 두말이 필요 없다고 하습니다. 구체적으로 약속하신 말씀을 봅니다.

신 28:1-14 입니다. 천지를 지으신 분이 하신 이 약속을 거짓 약속으로 믿으십니까? 오히려 믿지 못하면 그들이 바로 하나님을 믿지 못하고 있는 사람입니다.

기억하세요! 천사의 모양을 한 악의 세력은 늘 기막히게 속입니다. 먹음직스럽고 보암직스럽고 탐스럽기까지 한 그 선악과를 따서 먹으라고 말입니다. 누가 속았던 가요? 하나님을 믿지 않았던 하와가 속아서 아담을 쓰러뜨렸고 인류는 죄의 세력, 사망의 저주를 벗어날 수 없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죽음이 언제나 우리를 기다리고 있게 된 것을 모르세요? 우리를 죽음으로 몰고 간, 악의 세력은 언제나 돈과 힘과 능력인 약육강식의 원리를 심어 놓고 파탄(破經)에 이르게 합니다.

그런데 미련한 인간은 여기에 늘 속았기에 그래서 방황했고 미워했고, 의심했고 얼마나 부끄럽게 겨우 살아가야 했던가요? 그러나 은혜로 인하여 성도된 우린 더 이상 악의 세력에 속으면 안되는 것이 아닙니까? 어떻게 믿음으로 살아갈 수 없는 그런 세상이 되었다고 할 수 있단 말입니까? 이젠 돈이 있어야지만 된다는 악의 세력에 동조하면서, 돈 돈 돈하고 있을 수 있던 말입니까?

자! 신 26:16-19의 말씀을 다시 보세요! 돈으로 우리의 삶이 칭찬과 명예와 영광으로 뒤덮게 되는 것이 아닙니다. 돈만 있으면, 돈을 우선으로 두는 민족은 모든 민족 위에 일등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이 규례와 법도를 행하면 마음을 다하여 지켜 행하면, 보배로운 백성으로 일등 국민으로 세워주시겠다는 것입니다. 믿으시면 아멘! 당연히 아멘이지요! 그런데 동의할 수 없어서 아멘이 안 되는 분들은, 지금, 이 세상은 믿음 만으로 살 수 없다고 하는 자들만이 아멘이 안 될 것입니다. 온갖 짐승과 나무와 풀과 사람을 놀랍게 창조하신 그래서 아직도 과학자들이 여전히 그 무엇하나도 만들지 못하고 있는 것을 보면, 그 하나님께서 하신 약속은 믿을 수밖에 없어야 되는 것이 당연한 것이 아닙니까? 태양을 만들어 주시고 온갖 별을 하늘에 빽빽하게 달아놓으신 능력의 하나님께서 하신 약속은 다 사실입니다. 그런데 그분의 약속을 믿는 믿음보다 돈이 있어야 살아갈 수 있는 세상이 되었다고 할 수 있을까요? 자기 기준과 자기 판단이 말씀보다 더 강하고 낫습니까? 단지 들을 수 있 는 자들만이 듣는 것입니다. 마음과 귀의 할례를 받아야지만 하나님의 말씀이 믿어 지는 것입니다.


누구든지 이런 설교로 항복하지 않습니다. 오직 택함을 받은 자녀들만이 항복하고 이 규례, 법도, 율례를 진리의 말씀으로 받아서 주님과 힘겨운 동행을 할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주님하고 동행하는 자녀들의 삶이 의심하는 못난 자들에게 진정한 깨달음과 도전을 줄 수 있을 것입니다. 흔들리지 마시고 함께 끝까지 나아가야 할 것 입니다. 아무리 힘들고 고통스럽더라도 포기하지 않고 뒤돌아보지 않고 나아가야 할 것입니다. 한 말씀을 더 드리면, 이 세상의 힘이 얼마나 없으면 그렇게 불평하게 하고 원망하게 하고 돈으로 만족하다고 할 수 있을까요?

그래서 약한 자들은 늘 당해야 합니까? 그것이 무엇을 뜻하는 것일까요? 돈은 별 볼이 없다는 것을 의미하고 있는 것입니다. 만약에 돈이 하나님보다 강하다면 늘 감사하고 기뻐하고 자족하고 자기의 것을 넉넉하게 나누어주어도 전혀 아까워하지 않아야, 돈도 하나님만큼 강하고 능력이 된다고 할 수 있는 것이 않을까요? 그러나 아니잖아요! 돈을 좋아하는 자들의 삶이 어떤가요? 나눌 줄을 알던가요? 더 가지려고 갑질의 짓을 참 심하게 하는 것을 모르세요? 아니 어떻게 자기의 생각이 하나님의 생각보다 더 맞다고 할 수 있을까요? 그런 생각이 드는 것이 제 정신입니까? 내 기준과 내 생각이 하나님의 생각과 기준보다 더 맞다면, 더 훌륭해야 하고 지혜로워서 약한 자들의 보호자로도 전혀 부족하지 않아야 되는 것이 아닙니까? 감기 하나 막을 수 없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미련한 자신을 보면서, 어떻게 하나님을 과소평가를 할 수 있단 말입니까? 참으로 미련이요, 교만입니다.


가시나무에 불과한 자신이 어떻게 잣나무와 비교가 됩니까? 질려에 불과한 자가 어떻게 화석류와 비교가 됩니까? 늘 불평하고 미워하고 다투는 자가 어찌 늘 감사하게 하고 기뻐하게 하고 자족하게 하시는 하나님하고 감히 비교하려고 합니까?

그래서 하시는 말씀이

사10:12-15 “이러므로 주 내가 나의 일을 시온산과 예루살렘에 다 행한 후에 앗수르 왕의 완악한 마음의 열매와 높은 눈의 자랑을 벌하리라 그의 말에 나는 내 손의 힘과 내 지혜로 이 일을 행하였나니 나는 총명한 자라 열국의 경계를 옮겼고 그 재물을 약탈하였으며 또 용감한 자 같이 위에 거한 자를 낮추었으며 나의 손으로 열국의 재물을 얻은 것은 새의 보금자리를 얻음 같고 온 세계를 얻은 것은 내어버린 알을 주움 같았으나 날개를 치거나 입을 벌리거나 지저귀는 것이 하나도 없었다 하는도다 도끼가 어찌 찍는 자에게 스스로 자랑하겠으며 톱이 어찌 켜는 자에게 스스로 큰체 하겠느냐 이는 막대기가 자기를 드는 자를 움직이려 하며 몽둥이가 나무 아닌 사람을 들려 함과 일반이로다”

사45:5-13 “나는 여호와라 나 외에 다른이가 없나니 나 밖에 신이 없느니라 너는 나를 알지 못하였을찌라도 나는 네 띠를 동일 것이요 해 뜨는 곳에서든지 지는 곳에서든지 나 밖에 다른이가 없는줄을 무리로 알게 하리라 나는 여호와라 다른이가 없느니라 나는 빛도 짓고 어두움도 창조하며 나는 평안도 짓고 환난도 창조하나니 나는 여호와라 이 모든 일을 행하는 자니라 하였노라 너 하늘이여 위에서부터 의로움을 비 같이 듣게 할찌어다 궁창이여 의를 부어 내릴찌어다 땅이여 열려서 구원을 내고 의도 함께 움돋게 할찌어다 나 여호와가 이 일을 창조하였느니라 질그릇 조각 중 한 조각 같은 자가 자기를 지으신 자로 더불어 다툴찐대 화 있을찐저 진흙이 토기장이를 대하여 너는 무엇을 만드느뇨 할 수 있겠으며 너의 만든 것이 너를 가리켜 그는 손이 없다 할 수 있겠느뇨 아비에게 묻기를 네가 무엇을 났느냐 어미에게 묻기를 네가 무엇을 낳으려고 구로하느냐 하는 자에게 화 있을찐저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자 곧 이스라엘을 지으신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장래 일을 내게 물으라 또 내 아들들의 일과 내 손으로 한 일에 대하여 내게 부탁하라 내가 땅을 만들고 그 위에 사람을 창조하였으며 내가 친수로 하늘을 펴고 그 만상을 명하였노라 내가 의로 그를 일으킨지라 그의 모든 길을 곧게 하리니 그가 나의 성읍을 건축할 것이며 나의 사로잡힌 자들을 값이나 갚음 없이 놓으리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하셨느니라”

사45:18-25 “여호와는 하늘을 창조하신 하나님이시며 땅도 조성하시고 견고케 하시되 헛되이 창조치 아니하시고 사람으로 거하게 지으신 자시니라 그 말씀에 나는 여호와라 나 외에 다른이가 없느니라 나는 흑암한 곳에서 은밀히 말하지 아니하였으며 야곱 자손에게 너희가 나를 헛되이 찾으라 이르지 아니하였노라 나 여호와는 의를 말하고 정직을 고하느니라 열방 중에서 피난한 자들아 너희는 모여 오라 한가지로 가까이 나아 오라 나무 우상을 가지고 다니며 능히 구원치 못하는 신에게 기도하는 자들은 무지한 자니라 너희는 고하며 진술하고 또 피차 상의하여 보라 이 일을 이전부터 보인 자가 누구냐 예로부터 고한 자가 누구냐 나 여호와가 아니냐 나 외에 다른 신이 없나니 나는 공의를 행하며 구원을 베푸는 하나님이라 나 외에 다른이가 없느니라 땅 끝의 모든 백성아 나를 앙망하라 그리하면 구원을 얻으리라 나는 하나님이라 다른 이가 없음이니라 내가 나를 두고 맹세하기를 나의 입에서 의로운 말이 나갔은즉 돌아오지 아니 하나니 내게 모든 무릎이 꿇겠고 모든 혀가 맹약하리라 하였노라 어떤 자의 내게 대한 말에 의와 힘은 여호와께만 있나니 사람들은 그에게로 나아갈 것이라 무릇 그를 노하는 자는 부끄러움을 당하리라마는 이스라엘 자손은 다 여호와로 의롭다 함을 얻고 자랑하리라 하느니라 하셨느니라”

사46:1-7입니다. “벨은 엎드러졌고 느보는 구부러졌도다 그들의 우상들은 짐승과 가축에게 실리웠으니 너희가 떠메고 다니던 그것은 피곤한 짐승의 무거운 짐이 되었도다 그들은 구부러졌고 그들은 일제히 엎드러졌으므로 그 짐을 구하여 내지 못하고 자기도 잡혀 갔느니라 야곱 집이여 이스라엘 집의 남은 모든 자여 나를 들을찌어다 배에서 남으로부터 내게 안겼고 태에서 남으로부터 내게 품기운 너희여 너희가 노년에 이르기까지 내가 그리하겠고 백발이 되기까지 내가 너희를 품을 것이라 내가 지었은즉 안을 것이요 품을 것이요 구하여 내리라 너희가 나를 누구에 비기며 누구와 짝하며 누구와 비교하여 서로 같다 하겠느냐 사람들이 주머니에서 금을 쏟아 내며 은을 저울에 달아 장색에게 주고 그것으로 신을 만들게 하고 그것에게 엎드려 경배하고 그것을 들어 어깨에 메어다가 그의 처소에 두면 그것이 서서 있고 거기서 능히 움직이지 못하며 그에게 부르짖어도 능히 응답지 못하며 고난에서 구하여 내지도 못하느니라”

이들의 종말이 어떻게 된다고 하시던가요?

사10:16-19입니다. “그러므로 주 만군의 여호와께서 살찐 자로 파리하게 하시며 그 영화의 아래에 불이 붙는 것 같이 맹렬히 타게 하실 것이라 이스라엘의 빛은 불이요 그 거룩한 자는 불꽃이라 하루 사이에 그의 형극과 질려가 소멸되며 그 삼림과 기름진 밭의 영광이 전부 소멸되리니 병인이 점점 쇠약하여 감 같을 것이라 그 삼림에 남은 나무의 수가 희소하여 아이라도 능히 계산할 수 있으리라”

맹렬한 불 속에서 타듯이 타버릴 것이라고 합니다.잘라져서 버려진 나무처럼 장작이 되어 완전 타버리듯이 버려질 것이라고 합니다. 그들은 바로 하나님을 대적했던 앗수르와 같이 돈과 힘을 하나님보다 우선으로 인정했던 썩은 세력입니다. 결국 그 세력은 망했습니다. 망할 수밖에 없었던 그 이유는 그들이 가진 가치관, 돈이 세상이 말씀보다 강하다고 하는 자들로 그들은 다 우상숭배자들로 몰아서 결국 어떻게 평가하시던가요? 롬1:18-23에서 말씀을 하십니다. 하나님보다 물질, 돈을 사랑하는 우상숭배자들은 짐승, 금수보다 못한 자들이라고 합니다.

그러니 법이시요 진리이시요. 의와 공평의 하나님이신 당신께서는 하나님보다 다른 것을 더 믿는 더러운 우상숭배자들을 불로 제거해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된 우린 돈이 많아도 성경 말씀 없으면 살 수 없는 자들이고, 돈이 전혀 없어도 하나님의 말씀만으로 대만족하려는 특별한 자들 입니다.

그래서 시119:50-51 “이 말씀은 나의 곤란 중에 위로라 주의 말씀이 나를 살리셨음이니이다 교만한 자가 나를 심히 조롱하였어도 나는 주의 법을 떠나지 아니하였나이다”

시119:61-62 “악인의 줄이 내게 두루 얽혔을지라도 나는 주의 법을 잊지 아니하였나이다 내가 주의 의로운 규례를 인하여 밤중에 일어나 주께 감사하리이다”

시119:71-72 “고난 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인하여 내가 주의 율례를 배우게 되었나이다 주의 입의 법이 내게는 천천 금은보다 승하니이다”

시119:81-83 “나의 영혼이 주의 구원을 사모하기에 피곤하오나 나는 오히려 주의 말씀을 바라나이다 나의 말이 주께서 언제나 나를 안위하시겠나이까 하면서 내 눈이 주의 말씀을 바라기에 피곤하니이다 내가 연기 중의 가죽병 같이 되었으나 오히려 주의 율례를 잊지 아니하나이다”

시119:97-105 “내가 주의 법을 어찌 그리 사랑하는지요 내가 그것을 종일 묵상하나이다 주의 계명이 항상 나와 함께하므로 그것이 나로 원수보다 지혜롭게 하나이다 내가 주의 증거를 묵상하므로 나의 명철함이 나의 모든 스승보다 승하며 주의 법도를 지키므로 나의 명철함이 노인보다 승하니이다 내가 주의 말씀을 지키려고 발을 금하여 모든 악한 길로 가지 아니하였사오며 주께서 나를 가르치셨으므로 내가 주의 규례에서 떠나지 아니하였나이다 주의 말씀의 맛이 내게 어찌 그리 단지요 내 입에 꿀보다 더하니이다 주의 법도로 인하여 내가 명철케 되었으므로 모든 거짓 행위를 미워하나이다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

시119:127 “그러므로 내가 주의 계명을 금 곧 정금보다 더 사랑하나이다”

시119:129-131 “주의 증거가 기이하므로 내 영혼이 이를 지키나이다 주의 말씀을 열므로 우둔한 자에게 비취어 깨닫게 하나이다 내가 주의 계명을 사모하므로 입을 열고 헐떡였나이다”

시119:164-165 “주의 의로운 규례를 인하여 내가 하루 일곱번씩 주를 찬양하나이다 주의 법을 사랑하는 자에게는 큰 평안이 있으니 저희에게 장애물이 없으리이다”

을 읽어 드립니다.


우리 자신들이 돈 때문에 자신만이 아니라 남까지도 죽이고 있는 망령된 자들인지를 아십니까?

자신의 썩은 실체, 그래서 자신의 말과 생각과 판단은 전혀 믿어서는 안된다는 점을 바로 우린 성경 안에서 찾을 수 있는데, 신9장 모세의 설교에서 확인이 됩니다.

신 4장 - 8장까지 내내 순종하라, 법도와 규례를 지켜라 그리하면 살리라! 재앙이 없으리라, 복된 삶을 누리리라! 말씀을 그렇게 해 주셨지만 결국 신9장을 보세요! 모세가 하나님으로부터 말씀을 받으러 간 사이에 어떤 짓거리를 했다. 과거의 사건을 가지고 무슨 설교를 합니까? 신9:9-16입니다.

모세가 시내 산으로 말씀을 받으러 올라간 40일도 되지 못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은 금송아지를 만들어 놓고 금송아지가 자신들을 구원한 신이라고 하더라! 라는 것입 니다. 그 며칠을 인내하지 못하고 하나님의 은혜를 배반하더라는 것입니다. 이해력이 전혀 없는 이런 자들을 밴댕이 소갈딱지라고 해야 되나요? 이런 이스라엘 백성이 밴댕이 소갈딱지이지, 모세가 화를 냈다고 하여 모세에게 밴댕이 소갈딱지라고 하면 됩니까?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은 모세를 향하여 계속적으로 반기를 들고 있습니다. '너만 맞냐? 나도 맞다!, 너만 은혜를 입었냐? 나도 입었다!” 하면서말입니다. 결국 그러다가 갈렙과 여호수아를 제외한 그 백성들은 다 죽고 맙니다. 이스라엘의 백성이 며칠도 참지 못하고 배반하는 밴댕이 소갈딱지와 같은 이스라엘 백성은 결국 금송아지를 만들고 그리고 내내 반기를 들면서 다 죽어갔는데, 지금도 그런 이스라엘 백성들이 교회 안에 가득 차 있다는 것을 모르세요? 다수가 무엇이 라고 하던가요? 이젠 말씀대로 살면 죽는다고 하고, 적당하게 해야지 완전 순종은 결코 안 된다고 합니다. 이젠 그때하고 다른 세상이 되었다고 하면서 타협을 하자는 건지, 손을 잡고 악의 세력과 같이 가는 것이 믿음이라고 하는 것인지! 하여튼 구약 이스라엘의 그 상태를 지금 거의 모든 교회가 그대로 이스라엘을 따라가면서 교회를 썩게하고 무너뜨리고 있는데, 어쩌면 그럴 수 있는지 비통할 뿐입니다. 택함을 받았다면 무조건 말씀만을 믿고 따르라고 하시지, 만군의 여호와 하나님 인 내가 다 정답이라는 것을, 과학적으로 하나씩, 하나씩, 설명을 해 주시면서, 따르라고 하시던가요? 아닙니다. 택함을 받은 너희들은 무조건 순종하라! 일 뿐입니다.

고전 2:1-5입니다. “형제들아 내가 너희에게 나아가 하나님의 증거를 전할 때에 말과 지혜의 아름다운 것으로 아니하였나니 내가 너희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 외에는 아무 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작정하였음이라 내가 너희 가운데 거할 때에 약하며 두려워하며 심히 떨었노라 내 말과 내 전도함이 지혜의 권하는 말로 하지 아니하고 다만 성령의 나타남과 능력으로 하여 너희 믿음이 사람의 지혜에 있지 아니하고 다만 하나님의 능력에 있게 하려 하였노라”

말씀, 복음의 전부를 인간의 과학과 어떤 방법으로 설득을 시키면서 따르라고 하시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지금의 교회들을 보세요! 말씀의 순종이 아니라 시대를 따라가야지 된다고 합니다. 그래서 농구대도 만들어 주고, 수영장도 만들어 주고, 노래방도 만들어 주고, 그렇게 해야 복음이 전달이 되던가요? 아닙니다. 오직 순종해야 맞습니다. 다 부인해야 됩니다. 순종해야 삽니다.

은혜의 복을 받았기에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자녀로 거룩하게 당당하게 지혜롭게 하여, 죽은 영혼을 살리는 복음의 아름다운 발로 살아가야 합니다. 구약 때와 30년전까지는 말씀에 순종해야 살 수 있었고, 지금은 순종하면 살 수 없다는 논리가 가당하다고 생각합니까? 30년 전, 당시에도 어떤 윈리가 교회 안에 들어와 있는지 아세요? 지금처럼 똑같이 예수에 미치면 망한다고 했습니다.

예수를 믿어도 적당히 믿으라고 했다는 것이 아닙니까? 지금만이 아니라 악의 세력 은 늘 그런 식으로 적당주의자를 만들고 있습니다. 아담 때부터 오실 때까지 '적당하게 믿으라고 그런 식으로 교회를 무너뜨리고 있지, 지금은 예전하고 다르기에 전적으로 순종하면 안 된다, 지금은 그러면 안 된다고, 하지 않았습니다. 더 이상 속지 마시고! 예수만을 따르세요! 자기 부인을 하세요!

그리고 골방으로 기어서라도 날마다 들어가세요! 그리고 말씀을 죽도록 마음 판에 새기세요! 그것이 승리의 첫 걸음입니다. 신앙의 첫걸음입니다. 중생한 자들만이 제 대로 주님을 따를 수 있는 길입니다. 그 시작 없이는 다 속고 맙니다. 대충 믿게 되고, 적당주의, 작당주의로 타락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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