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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7/2024 이사야 26:1-21 본문
말씀: 사26:1-21
제목: 하나님의 계획과 목표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다들 자신의 목표가 있을 것입니다. 꼬마는 꼬마대로, 학생은 학생대로, 직장인은 직장인대로, 사업가는 사업가대로, 정치인은 정치인대로, 그리고 주부는 주부대로, 남편은 남편대로 자신의 목표와 계획을 가지고 있을 것입니다. 또는 남자는 남자대로, 여자는 여자대로 성차원에서의 목표와 계획도 있을 것입니다. 물론 자신이 노인이 되면 또 노인으로서의 목표와 계획을 하게 됩니다. 그런데 문제는 자신의 인생 계획과 목표가 한결같지 않다는 것입니다. 상황과 처지에 따라서 늘 달라지기 마련입니다. 상황에 따라서 달라질 수밖에 없는 우리의 계획과 목표인데, 자신의 그 계획과 목표가 누구를 위한 무엇을 위한 것인지, 꼼꼼히 깊게 멀리 진지하게 무겁게 생각해 보셨나요? ~
그러나 다들 어떤가요? 자기 한 몸, 살기도 심히 바쁘다 보니, 지치게 되고, 나아지면 모르는데, 갈수록 나아지기는커녕, 오히려 더 힘들어 지다보니깐, 당장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늘 쩔쩔매는 경우가 다반사가 아니던가요? 심지어 성도들조차도 보면, 말이 신앙이지 자신의 신앙이 자신의 삶에서 어떤 능력과 의미를 갖고 있는지 조차도, 제대로 알지 못하고 사는 경우도 너무나 쉽게 보게 됩니다. 그러다가보니깐, 내일이 없습니다. 소망 없는, 무 계획자들이 되면서, 그때, 그때 후회하면서 낙심하면서, 어떤 사람들은 자기 팔자 타령하면서 술 한 잔으로 상황을 덮고 말더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렇게 한심스럽게 소망 없는 자들처럼 힘겹게 겨우 살다가 죽음을 맞이하라고 주신 하나님의 은혜일까요? 그렇기 않기에 오늘 말씀은 또 부족하고 현실에 빠져서 쩔쩔매는 자녀들에게 삶의 목표와 계획을 갖게 합니다. 그 계획과 목표가 무엇일까요?
사43:21에서도 알 수 있는데,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를 찬송하게 하려 함이니라” 이것이 하나님의 목표요 뜻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도라면 하나님을 찬양하는데 있어야 합니다. 그 뜻은 성도로써 하나님만을 경외하고 앙망하는데 있음과 다르지 않습니다. 그래서 오직 하나님만을 100% 의지하라는 것입니다. 100% 하나님만을 믿고 의지하라는 뜻은 하나님의 이 성경 말씀이, 너희들의 삶의 목표요 기준이요 내용이 되라는 뜻이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그 점에 대하여 즉 성도된 너희들이 어떠해야 되는지에 대하여 바로 사26장에서 아주 쉽게 알 수 있게 합니다. 사26장에서 무엇이 하나님의 계획과 목표인지를 알게 하시더라는 것입니다. 오늘은 사26장의 말씀을 한절, 한절 살펴보면서 하나님의 뜻과 계획을 확인하시므로 우리들의 남은 삶을 자기도 살리고 이웃도 살리면서 승리자가 되는 기회의 말씀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1절입니다. “그날에 유다 땅에서 이 노래를 부르리라 우리에게 견고한 성읍이 있음이여 여호와께서 구원을 성벽과 외벽으로 삼으시리로다” 왜 유다 땅에서 그날에 이 노래를 부르게 될 것이라는 것입니까? 그 이유는 남 유다가 곧 바벨론의 침략으로 망하면서 포로로 끌려가게 될 것이기에 그래서 주신 예언의 말씀입니다. 남 유다가 순종하지 못하고 부패하면서 하나님의 심판으로 아니 더 정확하게는 남 유다 자신들의 저지른 죄로 인하여 망하게 되는데, 그 망함을 하나님께서 회복을 시켜 주시겠다고 하시니, 사26장의 이 노래를 부르게 될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를 알게 하십니다. 스스로 타락하여 다 망가진 자녀들을 하나님께서 그날 완전하게 회복을 시켜서 영원히 보호하여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비록 남 유다의 타락으로 바벨론에서 70년간의 포로로 살다가 하나님의 도움으로 돌아오게 되는데, 돌아오게 하는 것만이 아니라, 그들이 그날 예루살렘으로 돌아오면 하나님께서 그들을 완벽하게 보호해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노예, 포로에서 100% 자유인이 되고 게다가 이젠 그날이 되면, 완전한 구원 속에서 영원히 보장해 주시겠다고 하시는데, 어찌 기쁨의 노래가 없을 수 있겠는지요? 그날에 유다 땅에서 이 노래를 부르는 것이 은혜를 입은 성도로서 당연할 것입니다.
그런데 회복 정도만이 아닙니다. 돌아오면, 하나님께서 어떤 성읍을 세워주시겠다는 것입니까? 견고한 성읍입니다. 구원을 성벽과 외벽으로 삼으시겠다고 합니다. 그 뜻은 완벽한 성읍이라는 것입니다. 영적으로 말씀을 드린다면 완전한 보호가 된 구원을 이루어주시겠다는 것입니다. 이해를 위하여 비교를 한다면, 주실 그 성읍이 막강한 성벽으로 둘러, 쌓여 그 안에서 살게 된 주민과 단지 허술한 나무 fence로 대충 둘러서 쉽게 무너질 수 있는 그런 집에서 사는 자들과 비교해 보시면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어느 쪽이 안전할까요? 당연히 전자입니다.
이에 대한 구약에서의 사건이 있습니다. 왕하6:13-20입니다. “왕이 이르되 너희는 가서 엘리사가 어디 있나 보라 내가 사람을 보내어 그를 잡으리라 왕에게 아뢰기를 이르되 보라 그가 도단에 있도다, 왕이 이에 말과 병거와 많은 군사를 보내매 그들이 밤에 가서 그 성읍을 에워쌌더라, 하나님의 사람의 사환이 일찍이 일어나서 나가보니 군사와 말과 병거가 성읍을 에워쌌는지라 그의 사환이 엘리사에게 말하되 아아, 내 주여 우리가 어찌하리이까 하니, 대답하되 두려워하지 말라 우리와 함께 한 자가 그들과 함께 한 자가 그들과 함께 한 자보다 많으니라 하니, 기도하여 이르되 여호와여 원하건대 그의 눈을 열어서 보게 하옵소서 하니 여호와께서 그 청년의 눈을 여시매 그가 보니 불말과 불병거가 산에 가득하여 엘리사를 둘렀더라, 아람 사람이 엘리사에게 내려오매 엘리사가 여호와께 기도하여 이르되 원하건대 저 무리의 눈을 어둡게 하옵소서 하매 엘리사의 말대로 그들의 눈을 어둡게 하신지라, 엘리사가 그들에게 이르되 이는 그 길이 아니요 이는 그 성읍도 아니니 나를 따라 오라 내가 너희를 인도하여 너희가 찾는 사람에게로 나아가리라 하고 그들을 인도하여 사마리아에 이르니라, 사마리아에 들어갈 때에 엘리사가 이르되 여호와여 이 무리의 눈을 열어서 보게 하옵소서 하니 여호와께서 그들의 눈을 여시매 그들이 보니 자기들이 사마리아 가운데에 있더라”
이런 보호가, 이런 구원이 단지 자기의 두 눈으로는 보이지 않았지만, 그러나 믿음의 눈으로 보니깐, 어떤 보호하심인지 설명이 전혀 필요 없는, 하나님 나라의 천사들의 동원된 그래서 적군 모두를 다 이스라엘의 수도 사마리아 성 안으로 잡아들일 수 있게 하시더라는 것입니다. 그러니 어느 세력이 어떤 힘이 이 예루살렘 성읍을, 구원을 받은 성도들이 살게 된 이 성읍을 무너뜨릴 수 있을까요? 모든 핵폭탄으로 공격을 해도 무너질 수 없는 성읍이라는 것입니다. 그런 성읍을 누가 허락하신 것입니까? 네, 하나님이십니다. 그래서 성도들에게 하나님은 방패시오 구원이시오 피난처시오 요새시오 산성이라고 시편기자들이 곳곳에서 고백하고 있는 것입니다.
물론 사26장은 약 150년 이후의 있을 예언의 말씀입니다. 더 정확하게는 700년 후의 있을 구원이기도 합니다. 사26장 당시로는 단지 예언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왜 그 후이어야 합니까? 왜 앗수르와 바벨론의 침략으로 두 나라 북이스라엘과 남 유다의 성을 공격했을 때, 막아주시면 되었는데 왜 막아주시지 않았을까요? 막아주시지 않아서 북이스라엘도 망했고 남 유다도 망할 것인데, 왜 이런 예언을 하시는 것일까요? 거기에는 중대한 이유가 있습니다.
왕하6장에서의 산에 가득했던 불병거와 불말, 그리고 왕하19장에서의 앗수르 군사 185,000명이 전멸한 사건이 있었습니다. 분명히 하나님께서 완벽한 보호 즉 성벽이 되어 주셨습니다. 완전하게 막아주셨기에 그 당시 두 나라는 망하지 않았습니다. 그 어떤 외세의 침략과 공격에도 100% 다 막아주실 수 있는 하나님이셨지만, 결국 북이스라엘도, 남 유다도 망하게 하신 것입니다. 왜요? 그땐 능력이 없었나요? 잠시 외출하셨던가요? ~
그건 아니지요! 그럴 리가 없습니다. 오히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망하게 하신 것입니다. 사26장의 노래 때문에 망하게 하신 것입니다. 그것이 무슨 뜻인가 하면, 왕하6장에서의 불병거와 불말로 보호해 주시고 왕하19장에서의 앗수르 군사 185,000명을 전멸로 승리케 해 주셨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망하게 된 이유가 하나님의 배신이요 능력이 없어서가 아니라 이스라엘 백성 모두가 능력의 하나님, 사랑의 하나님을 전혀 믿지 않았기에 그래서 망하고 만 것입니다. 그러니까 죄의 문제가 근본적으로 해결이 될 때만, 사26장의 그 놀라운 약속하신 예언이 성취가 되면서 안전한 삶이 유지 될 수 있음을 알라는 것입니다. 죄의 문제가 해결이 되지 않으면 왕하6장에서의 불병거와 불말 그리고 왕하19장에서의 앗수르 군사 185,000명이 다 죽어 승리했던 그 놀라운 기적의 사건보다, 억만배로 더 큰 능력으로 모든 문제점들을 완벽하게 해결하여 주실지라도 너희들의 죄가 해결되지 않고서는 그 누구도 막강한 성읍이요 구원이 되시는 하나님의 도움을 받을 수가 없기에 두 나라는 결국 망했던 것입니다. 죄의 문제로 두 나라는 하나님의 도움을 늘 받았지만, 그러나 근본적인 죄의 문제가 해결이 되지 않으면서 하나님하고의 동행도 불가능하게 되면서 결국 북이스라엘이 망했고 남 유다도 망하여 바벨론의 포로가 되고 만 것입니다.
그러나 사26:1의 그날이 되면, 어떤 기적이 일어난다고요? 그 막강하신 하나님, 아무도, 그 누구도, 최신 최고의 무기를 모아서, 예루살렘, 즉 교회를 공격할지라도 무너뜨릴 수 없다는 것입니다. 세상의 모든 힘과 능력을 동원하여 공격해도 주님의 교회를 이길 수 없는 이유가 그 막강하신 하나님의 보호가운데 있기에, 주님과 동행하는 관계이기에 이길 수 없게 되니, 당연히 그래서 늘 영원토록 찬송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사26장의 그날이 실은 지금입니다. 아니 이미 2000년 전에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으로 십자가에서 우리들의 모든 죄의 문제가 해결이 되었기에, 우린 완벽한 하나님의 보호하심 가운데 놓여 있게 된 것입니다.
이젠, 불병거와 불말을 동원하신 그 하나님, 하룻밤 사이에 적군 185,000명을 죽이신 그 하나님께서 불꽃같은 눈동자로 졸지도 아니하시면서 주님을 믿는 자녀들을, 우리들의 교회를 지키고 계십니다. 믿으십니까? 아니 정말 믿고 있나요? 믿고 있기에 날마다 승리의 축배를 드리고 있나요? 화목과 화평의 관계가 되었나요?
좀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2-3절입니다. “너희는 문들을 열고 신의를 지키는 의로운 나라가 들어오게 할지어다, 주께서 심지가 견고한 자를 평강하고 평강하도록 지키시리니 이는 그가 주를 신뢰함이니이다” 하나님의 나라는 신의, 믿음의 나라로써 하나님의 의만이 오직 통하는 믿음의 나라입니다. 오직 신뢰와 믿음으로 만들어진 이 하나님의 나라는 불신과 거짓이 없기에 평화로운 나라, 평강의 나라임을 말씀하십니다.
그러나 사실 어떤가요? 우리들이 이 거짓되고 이기적이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힘의 세상에서 살다가보니깐, 이 세상 안에 있는 자기 가정만큼은 평화롭기를 얼마나 원하고 바라던가요? 다툼이 없는 가정, 서로 신뢰하여 기쁨이 있는 가정, 사실 넉넉하기 위하여 바쁘게 살아가는 것보다는 좀 가난할지라도 서로 믿어주고 신뢰하므로 요동하지 않는 가정이 더 낫지 않던가요?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그럴 것입니다.
그런데 그 이상의 평화, 기쁨, 평강이 가득한 나라를 약속하신 것입니다. 진정한 평화와 사랑을 원하는 사람이라면, 사26장에서의 이런 약속에 대하여 어떤 반응을 할까요? 이 말씀이 사실이라면 나는 그런 나라를 만들어 주신다는 하나님만을 바라보면서 나의 삶을 그분의 나라를 위하여 all in하고도 남을 거야! 아니 그 이상의 어떤 요구가 있을지라도 나는 반드시 순종할 거야! 라고 하지 않을까요? 아니 자기와 가족의 행복과 안전을 50%만이라도 보장이 된다고 하더라도 누구든지 순종할 것입니다. 그러나 기쁨과 평화의 나라를 세워주시겠다고 100% 약속하신 그 하나님이 누구입니까? ~
완전한 보호와 완전한 행복을 약속하신 하나님을 모르고서는, 믿지 않고서는 그 놀라운 복을 거머쥘 수 없습니다. 말씀을 믿지 않으시고, 힘으로 살아가려고 하면, 망한 북이스라엘처럼 불병거와 불말로 그렇게 큰 능력으로 도와주실지라도 불가능하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니깐 북이스라엘과 남 유다의 망함은 하나님의 약함과 외면함 때문이 아니라, 자신들의 불신앙,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불신 때문인 것을 확인할 수 있었는데, 왜 여전히 그날이 되었는데도 예수님만을 바라보지 않으면서 망한 북이스라엘과 남 유다처럼, 힘의 승리자가 되기만을 원하고 자기와 자기 가정만의 안전과 행복을 바랄 수가 있단 말입니까? 구세주인 예수님과 하나님 아버지를 믿기 전에는, 누구든지 아니 교회까지도 자기를 부인하지 않고서는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그 행복과 안전은 그림의 떡에 불과할 것입니다.
특히 사26장의 이 말씀에서도 알 수 있지만, 이 약속을 하신 그 당시는 남 유다로써의 상황은 최악이었습니다. 위기요 늘 불안한 상태에서의 하신 사26장의 약속이었는데, 그런데 그 약속이, 약속하신 그대로 그 날, 다 이루어졌다면, 그리고 더 큰 약속이 예수님을 통하여 그대로 다 이루어졌다면, 여러분들은 그 약속을 하시고 그 약속을 이루어주신 하나님을 믿지 않을 수 있을까요? 특히 은혜를 입은 성도라면 100% 믿고도 남을 것입니다. all in을 위한 계획과 목표가 세워질 것입니다.
왜요? 100% 안전과 행복이 보장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 복을 주시려고 주신 것이 성경입니다. 하나님께서 하나님을 믿게 하시려고 하나님의 약속들이 어떻게 이루고 있음을 이루어질 것을 자세하게 기록하고 있는 것이 이 성경입니다. 그래서 성경을 통하여 하나님을 만나면 성경을 통하여 하나님이 누구신지를 알게 되면, 놀랍게도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아십니까? 그 기적을 초대교회 사도들이 주의 제자들이 보여주고 있습니다. 어떤 기적이던가요?
먼저 요18:25-27입니다. “시몬 베드로가 서서 불을 쬐더니 사람들이 묻되 너도 그 제자 중 하나가 아니냐 베드로가 부인하여 이르되 나는 아니라 하니, 대제사장의 종 하나는 베드로에게 귀를 잘린 사람의 친척이라 이르되 네가 그 사람과 함께 동산에 있던 것을 내가 보지 아니하였느냐, 이에 베드로가 또 부인하니 곧 닭이 울더라”
요20:19입니다. “이 날 곧 안식 후 첫날 저녁 때에 제자들이 유대인들을 두려워하여 모인 곳의 문들을 닫았더니 예수께서 오사 가운데 서서 이르시되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그런데 보세요! 행 4:12-21입니다. “다른 이로써는 구원을 받을 수 없나니 천하사람 중에 구원을 받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라 하였더라, 그들이 베드로와 요한이 담대하게 말함을 보고 그들을 본래 학문 없는 범인으로 알았다가 이상히 여기며 또 전에 예수와 함께 있던 줄도 알고, 또 병 나은 사람이 그들과 함께 서 있는 것을 보고 비난할 말이 없는지라, 명하여 공회에서 나가라 하고 서로 의논하여 이르되, 이 사람들을 어떻게 할까 그들로 말미암아 유명한 표적 나타난 것이 예루살렘에 사는 모든 사람에게 알려졌으니 우리도 부인할 수 없는지라, 이것이 민간에 더 퍼지지 못하게 그들을 위협하여 이후에는 이 이름으로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게 하자 하고, 그들을 불러 경고하여 도무지 예수의 이름으로 말하지도 말고 가르치지도 말라 하니, 베드로와 요한이 대답하여 이르되 하나님 앞에서 너희의 말을 듣는 것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보다 옳은가 판단하라, 우리는 보고 들은 것을 말하지 아니할 수 없다 하니, 관리들이 백성들 때문에 그들을 어떻게 처벌할지 방법을 찾지 못하고 다시 위협하여 놓아 주었으니 이는 모든 사람이 그 된 일을 보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림이라“
행 5:32-42입니다. “우리는 이 일에 증인이요 하나님이 자기에게 순종하는 사람들에게 주신 성령도 그러하니라 하더라, 그들이 듣고 크게 노하여 사도들을 없이하고자 할새, 바리새인 가말리엘은 율법교사로 모든 백성에게 존경을 받는 자라 공회 중에 일어나 명하여 사도들을 잠깐 밖에 나가게 하고, 말하되 이스라엘 사람들아 너희가 이 사람들에 대하여 어떻게 하려는지 조심하라, 이전에 드다가 일어나 스스로 선전하매 사람이 약 사백 명이나 따르더니 그가 죽임을 당하매 따르던 모든 사람들이 흩어져 없어졌고, 그 후 호적할 때에 갈릴리의 유다가 일어나 백성을 꾀어 따르게 하다가 그도 망한즉 따르던 모든 사람들이 흩어졌느니라, 이제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이 사람들을 상관하지 말고 버려 두라 이 사상과 이 소행이 사람으로부터 났으면 무너질 것이요, 만일 하나님께로부터 났으면 너희가 그들을 무너뜨릴 수 없겠고 도리어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가 될까 하노라 하니, 그들이 옳게 여겨 사도들을 불러들여 채찍질하며 예수의 이름으로 말하는 것을 금하고 놓으니, 사도들은 그 이름을 위하여 능욕 받는 일에 합당한 자로 여기심을 기뻐하면서 공회 앞을 떠나니라, 그들이 날마다 성전에 있든지 집에 있든지 예수는 그리스도라고 가르치기와 전도하기를 그치지 아니하니라”
하나님을 만난 제자들이, 평강의 나라를 약속하신 그 하나님을 위하여 목숨을 걸고 있습니다. 지금 우린 어떤가요? 무엇을 위한 수고입니까? 다들 들어서 다 아는 내용이지만 그 하나님을 안다고 하면서도 단지 인정만하고 있지, 삶에서는 외면하고 있기에 드리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을 위하여 살아내야 한다는 것입니다. 지금 교회의 문제가 여기에 있습니다. 말씀을 다 들어서 알고는 있는데, 알기만 하지 살아낼 결단과 행함이 없다는 것입니다. 왜요? 힘이 좋은 것입니다. 보이는 세상의 헛된 것을 포기할 수 없다는 것인데, 그건 하나님께서 자기의 산성이 되고 피난처가 되고 바위가 되고 선한 목자가 되시므로 인한 완전하고 영원한 안전과 평강은 없어도 된다는 것인데, 참 불쌍할 뿐입니다. 오직 당장의 성공만이 그들의 목표와 계획이기에 완벽하신 보호와 행복을 주시는 하나님께 항복하지 않겠다는 것을 보면, 얼마나 슬픈 일입니까? 부탁합니다.
영원한 구원과 평강을 주시는 믿음의 그 나라는 오직 살아 있을 때 외에는 그 나라에 들어갈 준비를 할 다른 시간이 전혀 없음을 아시기를 바랍니다. 그렇기에 이젠, 늘 울면 되는 줄 알고 있고, 은혜 한 번 입으면 그것으로 다 된 줄로 알고 있었다면, 그건 스스로 속고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신앙의 목표는 그 정도에서 완성이 되지 않습니다. 하나님 때문에 하나님을 믿게 되었으면, 자기가 완전 부인이 되어야 합니다. 쉽게 가볍게 갈 수 없는 길입니다.
그래서 사26:4을 보세요! “너희는 여호와를 영원히 신뢰하라 주 여호와는 영원한 반석이심이로다” 무엇을 어떻게 믿어야 합니까? 하나님만 영원히 믿어야 하기에 그렇다면 우린 어떤 계획과 목표를 갖고 살아가야 할까요?
사26:8-9입니다. “여호와여 주의 심판하시는 길에서 우리가 주를 기다렸사오며 주의 이름을 위하여 또 주를 기억하려고 우리 영혼이 사모하나이다, 밤에 내 영혼이 주를 사모하였사온즉 내 중심이 주를 간절히 구하오리니 이는 주께서 땅에서 심판하시는 때에 세계의 거민이 의를 배움이니이다” 오실 그날을 위하여 은혜를 입은 성도들은 주님만을 기다려야 합니다. 기다리는데 어떻게 기다린다고 합니까? 심판하실 주의 이름을 위하여, 심판하실 주를 기억하려고, 자기 영혼이 주를 사모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왜요? 그 기다림, 그 사모함으로 하나님의 의를 보여주고 그 의를 배우도록 하시겠다는 것입니다. 지금 우린 그날의 하나님을 기다리면서 무엇을 배우고 있고 배우게 하십니까? 하나님의 의를 위한 삶이 되지 않으면, 어떻게 되는지 아시나요? 한국의 타락한 기독교의 한 교단의 예를 조금 후에 들어보겠습니다. 우리에게 구원 즉 믿음을 주시는 이유는 상상도 못하는 엄청나게 큰 나라를 세우시겠다는 뜻입니다.
바로 사26장에서의 성도들이 사는 나라, 하나님이 통치하시는 하나님의 의가 가득 찬 나라입니다. 평화의 나라요, 사랑의 나라요 그래서 기쁨이 넘치는 나라입니다. 그 뜻은 정결하다는 뜻입니다. 힘의 사람들이 없는 나라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의가 넘치는 나라는 물론 단번에 이루어지지 않기에, 은혜를 입은 자녀들을 바로 하나님의 나라로 데려가지 않으시고, 지금의 여기, 더럽고 악하고 이기적인 세상 안에서 철저한 훈련을 받게 하십니다.
그런데 거짓된 이단 교회들은 어떤가요? 특히 다락방 교회 류 광수 목사에 대하여 MBC 에서 보도를 했는데 다음과 같았습니다. 다수의 다락방에 속한 목사들이 술은 물정도로 여기고 심지어 룸싸롱에 가서 세상 사람들처럼 똑같이 놀면서 즐기고 있었고, 게다가 다락방에 속한 자매들을 성 농락을 하는 목사들을 보호하고 있더라는 것을 MBC의 PD 수첩이란 프로에서 고발을 했습니다. 특히 다락방 창시자 류 광수 목사라는 자는 다락방에 속한 자매들을 농락한 음란한 목사들을 용서하는 것이 복음이라고 가르치고 있더라고요! 그러면서 류 목사가 당한 여 자매에게 전화를 걸어 그녀를 성취행한 목사를 용서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하는데, ~ 지나가는 강아지도 웃을 노릇이었습니다. 그러면서 자기도 주님의 뜻에 따라 아무리 어떤 악한 놈일지라도 자기는 그래서 다 용서 해 준다고 하더라고요! 이게 지금 한국 다락방이란 교회의 실태인데, 그 정도가 아니었습니다. 다락방에서 은혜에 대하여 어떻게 가르치고 있는가 하면, 은혜를 받았다면 모든 죄를 다 씻긴 복이기에 자기 멋대로 해도 된다고 가르치고 있었습니다. 게다가 어떤 자매에게 어떤 다락방 목사가 자기와 동침하면서 기쁨을 준다면 그건 성령의 기쁨이라고 하는데, 참 어이가 없었습니다. 동침하면서 오는 기쁨도 다 복음이라고 다락방 목사가 그러더라고요. 지금 다락방 교회의 수는 전 세계적으로 200개가 넘고 교인 수도 20만 명이나 된다고 합니다. 그리고 광명한 천사의 모습을 한, 사단의 앞잡이 류 광수 목사는 거의 신이라고 여기고 있는데, 미국에서 목회하는 다락방의 어떤 목사는 류 광수 목사가 강의하면서 내뿜는 숨까지도 다 들이마셔야 된다고 할 정도입니다.
그런데 그런 이단이 버젓이 판을 치고 있는 것을 보면, 악의 세력이 참 더럽고 무섭다는 생각이 들게 합니다. 의를 주셔도 의를 배워도 모르기에 하나님의 심판을 전혀 준비하지 못하고 있다가 영원히 버려진다는 것인데, 그래서 사26:10-11을 보세요! “악인은 은총을 입을지라도 의를 배우지 아니하며 정직한 땅에서 불의를 행하고 여호와의 위엄을 돌보지 아니하는도다, 여호와여 주의 손이 높이 들릴지라도 그들이 보지 아니하나이다마는 백성을 위하시는 주의 열성을 보면 부끄러워할 것이니라 불이 주의 대적을 사르리이다”
하나님의 위엄인 그 의를 듣고도 배우지 못하기에, 불의를 행하다가 영원한 지옥형벌의 심판을 면하지 못할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의를 모르는 거짓된 그들은 자기가 왕이요 구세주라는 것입니다. 그러니 이런 악한 세력을 볼 때, 주님만을 바라보면서 찬양의 삶을 살고 주님의 의를 자랑하며 그래서 순종한다면 이보다 큰 승리와 기쁨과 영광이 또 어디에 있을까요?
지금 힘을 따르다가 적지 않은 사람들이 이단에 속고 있습니다. 다시 부탁합니다. 분별하시고 순종하여 의에 이르셔야 합니다. 그러시려면 하나님의 말씀을 똑바로 배워야 합니다. 말씀을 모르면 꼭 당합니다. 왜요? 악의 세력, 사단의 세력이 살아 있기 때문입니다. 만만하게 보시지 마세요! 그래서 말씀을 주야로 묵상하면서 늘 깨어 있어야 합니다. 이보다 멋진 삶은 없습니다. 이를 계획과 목표를 가지시고 내일의 승리를 준비하시는 남은 시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결론입니다. 시119:119입니다. “주께서 세상의 모든 악인들을 찌꺼기같이 버리시니 그러므로 내가 주의 증거들을 사랑하나이다” 그러나 우린 찌꺼기같이 버려지는 그 악인의 속에 포함되지 않게 되었으니 얼마나 큰 복이요 그래서 감사 찬양을 어떻게 드리지 않을 수가 있을까요?
아니 아무리 힘들어도 아무리 고난 가운데 놓였을지라도 사26:16을 보세요! “여호와여 그들이 환난 중에 주를 앙모하였사오며 주의 징벌이 그들에게 임할 때에 그들이 간절히 주께 기도하였나이다” 요동할 것이 없습니다, 불평, 불만 할 것이 없습니다. 다 만족할 것입니다. 이 복을 살아생전에 함께 나누자는 것입니다. 이 복된 삶 때문에 주신 그날인 것을 증거 하는 자가 되셔야 합니다.
그들이 누구라고요? 사26:19입니다. “주의 죽은 자들은 살아나고 그들의 시체들은 일어나리이다 티끌에 누운 자들아 너희는 깨어 노래하라 주의 이슬은 빛난 이슬이니 땅이 죽은 자를 내어 놓으리로다” 더 이상 무슨 말씀이 필요할까요? 이 정도로도 하나님에게 항복하기에 충분하지 않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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