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힘인 하만의 세력에 의하여 진멸을 당할 유대인들이 하나님의 도움으로 완전하게 하만 세력을 제압하게 됩니다.그리고 아하수에로 왕으로부터 조서를 받고 하만 세력을 심판할 수 있게 된 유대인들은 잔치를 베풀고 축제일로 삼게 됩니다. 심지어 17절에서 알 수 있듯이, 이 사건으로 그 당시의 주변 이방 사람들이 유대인을 두려워하여 스스로 유대인이 될 정도였습니다.그리고 그해 아달 월 곧 12째 달 13일이 되면서, 왕의 조서대로 전국에서 유대인들에 의하여 하만 세력들이 진멸을 당하고 맙니다.
유대인으로써는 원수인 하만과 그의 모든 세력을 완전 제압하면서 승리한 그날을 부림절로 정하여자손대대로 잊지 않고 지금까지도 유대인의 명절로 지키고 있습니다. 그런데 어떤가요? 그 후의 이스라엘은 대 승리를 주신 하나님만을 경외하던가요? 아닙니다.결국 멸망을 당하고 맙니다. 망하게 된 그 이유에 대하여 말라기 말씀을 통하여 잘 알 수 있습니다.
말1:6-14입니다.
“내 이름을 멸시하는 제사장들아 나 만군의 여호와가 너희에게 이르기를 아들은 그 아버지를, 종은 그 주인을 공경하나니 내가 아버지일진대 나를 공경함이 어디 있느냐 내가 주인일진대 나를 두려워함이 어디 있느냐 하나 너희는 이르기를 우리가 어떻게 주의 이름을 멸시하였나이까 하는 도다,너희가 더러운 떡을 나의 제단에 드리고도 말하기를 우리가 어떻게 주를 더럽게 하였나이까 하는 도다이는 너희가 여호와의 식탁은 경멸히 여길 것이라 말하기 때문이라,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가 눈 먼 희생제물을 바치는 것이 어찌 악하지 아니하며저는 것, 병든 것을 드리는 것이 어찌 악하지 아니하냐 이제 그것을 너희 총독에게 드려 보라 그가 너를 기뻐하겠으며 너를 받아 주겠느냐,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는 나 하나님께 은혜를 구하면서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여 보라 너희가 이같이 행하였으니 내가 너희 중 하나인들 받겠느냐,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가 내 제단 위에 헛되이 불사르지 못하게 하기 위하여 너희 중에 성전 문을 닫을 자가 있었으면 좋겠도다내가 너희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너희가 손으로 드리는 것을 받지도 아니하리라,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해 뜨는 곳에서부터 해 지는 곳까지의 이방 민족 중에서 내 이름이 크게 될 것이라 각처에서 내 이름을 위하여 분향하며 깨끗한 제물을 드리리니 이는 내 이름이 이방 민족 중에서 크게 될 것임이니라,그러나 너희는 말하기를 여호와의 식탁은 더러워졌고 그 위에 있는 과일 곧 먹을 것은 경멸히 여길 것이라하여 내 이름을 더럽히는 도다,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너희가 또 말하기를 이 일이 얼마나 번거로운고 하며 코웃음치고 훔친 물건과 저는 것, 병든 것을 가져왔느니라 너희가 이같이 봉헌물을 가져오니 내가 그것을 너희 손에서 받겠느냐이는 여호와의 말이니라, 짐승 떼 가운데에 수컷이 있거늘그 서원하는 일에 흠 있는 것으로 속여 내게 드리는 자는 저주를 받으리니 나는 큰 임금이요내 이름은 이방 민족 중에서 두려워하는 것이 됨이니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하만 세력으로부터 지켜주셔서 승리케 하신 하나님만을 경외하겠다고 하던 유대인들,승리의 그날인 부림절을 영원히 기억하면서 하나님만을 경외하겠다던, 이스라엘은 그 후, 타락하면서 결국 AD 70년 로마의 티투스 장군에 의하여 멸망을 당합니다. 완전히 망하여 전 세계로 퍼져 살게 됩니다. 그리고 이스라엘이라는 나라는 1948년에 회복이 되어 지금에 이르고 있지만,성경에서의 그 이스라엘이 아닙니다. 지금의 이스라엘은 육신의 이스라엘, 힘의 이스라엘입니다. 하나님을 모르는 세상 나라와 다르지 않은 나라입니다. 왜요? 아직까지도 다수가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을 구세주로 믿지 못하고 기다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여튼지금 무슨 말씀을 드리려고 하는가 하면, 하만에 의하여 진멸을 당할 이스라엘이 하나님이 도와주셔서 악한 하만 세력을 완전 제압하여 주시므로 하나님을 영원히 경외하겠다고 하여 정한 즐거운 부림절이었지만,그러나 부림절 행사의 본질을 떠나 최고가 되겠다는 욕심으로 우상까지 섬기면서 망했던 것입니다. 승리케 하신 하나님만을 높이면서 하나님의 나라로서의 귀감이 되어야 했었지만,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나라로써의 가치보다는 힘의 나라를 원했었기에 망하게 된 것입니다. 신앙은 부림절을 명절로 지키면서 즐거워하는데 있는 것이 아닙니다. 신앙은 천하를 다스리는데 그 목적이 있으면 안 됩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자신들이 선민으로써 항상 세상을 지배하는 나라로 인정받으려고 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망했습니다. 그런데 이 어리석은 선택을 지금 누가 하고 있어요?이 이스라엘의 멸망이 이스라엘에서만 국한된 것이 아니지 않습니까?~ 지금도 보면, 망한 이스라엘과 마찬가지로 구원의 은혜를 우리 모두에게 주셨지만,어떤가요? 어디로 행하고 있습니까?~ 다들 최고가 되려고 예수님을 믿고 있습니다. 그래서 드리는 말씀입니다. 그렇습니다. 결국 이스라엘이 힘의 나라가 되려고 하나님만을 경외하지 못하고 우상까지도 동원하여 최고가 되려고 하다가 망했듯이, 그 망하는 길을 다수가 가고 있기에, 그래서 어떻게 하면 그 귀한 부림절을 끝까지 지켜서 함께 승리를 이루어낼 수 있는지에 대하여말씀을 드리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특히 이 이스라엘의 이 약점이 우리들의 맹점이기에 그렇습니다. 다시 말씀을 드리지만,신앙은 세상에서의 최고가 되는데 있지 않습니다. 힘으로 가면 망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부림절을 명절로 즐겁게 지키더라도 그 목적이 섬김이요 양보요 신앙의 회복이 아니면, 그건 가짜 신앙이 될 뿐입니다.
그런데 망하는 가짜 신앙에서 다들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주신 말씀이라고 믿습니다.힘의 신앙은 머리 차원이라면 은혜의 신앙은 가슴 차원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힘의 신앙은 나타나는 자랑이 모든 것이라면 은혜는 내면의 신앙으로 더 깊이, 더 깊은 준비를 하게 합니다. 그래서 은혜의 주님께서 어떤 말씀을 내내 하시던가요?
먼저 마5:20의 말씀을 봅니다.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의가 서기관과 바리새인보다 더 낫지 못하면 결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무슨 뜻일까요? 이스라엘보다 나아야 하는데, 무엇이 나아야 한다는 뜻일까요?율법을 더 잘 지켜야지만 합격이 된다는 뜻입니까? 그러나 그건 불가능한 길입니다. 왜요?
롬3:20입니다. “그러므로 율법의 행위로 그의 앞에 외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나니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음이니라”
갈2:16 후반부 말씀입니다. “율법의 행위로서는 의롭다 함을 얻을 육체가 없느니라”
그래서 롬3:9-18입니다.
“그러면 어떠하냐 우리는 나으냐 결코 아니라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다 죄 아래에 있다고 우리가 이미 선언하였느니라, 기록 된 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고,다 치우쳐 함께 무익하게 되고 선을 행하는 자는 없나니 하나도 없도다, 그들의 목구멍은 열린 무덤이요 그 혀로는 속임을 일삼으며그 입술에는 독사의 독이 있고, 그 입에는 저주와 악독이 가득하고, 그 발은 피 흘리는 데 빠른지라, 파멸과 고생이 그 길에 있어, 평강의 길을 알지 못하였고, 그들의 눈앞에 하나님을 두려워함이 없느니라 함과 같으니라”
100% 다 죄인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죄인이 은혜로 의인이 되었기에 거저 받은 신앙은 세상 자랑과 승리와 즐거움이 목적이 되면 망하는 것입니다. 자격이 전혀 없었기에 그래서 버려져야 되는 죄인이었는데, 그 죄인들이 구원을 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기에,남은 인생을 오직 하나님만을 경외하고 이웃하고의 화평을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어가라는 것입니다. 좁은 길을 가라는 것입니다. 말씀만을 따라가야지만 됩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이 순종이 아니라 세상에서의 최고가 되려고 했기에, 최강의 힘의 나라가 되려고 했기에 망한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마5:20에서 바리새인, 서기관들보다 그 의가 낫지 않으면 안 된다는 그 말씀의 뜻은율법을 이스라엘보다 더 잘 지켜야 된다는 그런 뜻이 아니라,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살아가라는 뜻입니다.구약 식으로 말씀을 드리면 악한 하만 세력을 이기는 길은 힘이 아니라 믿음입니다.즉 ‘힘의 죽으면 죽으리라’가 아니라, ‘믿음에서의 죽으면 죽으리라’ 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믿음에서의 죽으면 죽으리라’ 되어야 하는데, 갈수록 그 반대인 ‘힘에서의 죽으면 죽으리라’가 되면서 망했던 것입니다.
다시 마5:38-42의 말씀으로 확인 해 봅니다.
“또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갚으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악한 자를 대적하지 말라누구든지 네 오른편 뺨을 치거든 왼편도 돌려 대며, 또 너를 고발하여 속옷을 가지고자 하는 자에게 겉옷까지도 가지게 하며, 또 누구든지 너로 억지로 오 리를 가게 하거든 그 사람과 십 리를 동행하고, 네게 구하는 자에게 주며 네게 꾸고자 하는 자에게 거절하지 말라, 또 네 이웃을 사랑하고 네 원수를 미워하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박해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이같이 한즉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아들이 되리니 이는 하나님이 그 해를 악인과 선인에게 비추시며 비를 의로운 자와 불의한 자에게 내려주심이라, 너희가 너희를 사랑하는 자를 사랑하면 무슨 상이 있으리요 세리도 이같이 아니하느냐, 또 너희가 너희 형제에게만 문안하면 남보다 더하는 것이 무엇이냐 이방인들도 이같이 아니하느냐,그러므로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온전하심과 같이 너희도 온전하라”
구약의 힘의 신앙인 율법은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갚으라고 하지만, 은혜는 그 반대입니다.다 져주라는 식입니다. 다 양보하라는 것입니다. 즉 그 뜻은 힘의 신앙은 은혜의 힘을 이길 수 없다는 것입니다. 차원이 다르다는 말씀입니다. 힘의 신앙인 하만이 믿음의 신앙인 에스더를 이길 수 없듯이 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마6:16-18도 보세요. “금식할 때에 너희는 외식하는 자들과 같이 슬픈 기색을 보이지 말라 그들은 금식하는 것을 사람에게 보이려고 얼굴을 흉하게 하느니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들은 자기상을 이미 받았느니라, 너는 금식할 때에 머리에 기름을 바르고 얼굴을 씻으라,이는 금식하는 자로 사람에게 보이지 않고 오직 은밀한 중에 계신 네 아버지께 보이게 하려 함이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갚으시리라”
힘의 신앙은, 금식하면서도그 금식이 하나님 경외인 순종이 아니라 자기 자랑으로 나타나더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은혜의 신앙은 다 보이지 않게 하라고 합니다. 숨기라고 하시는 것입니다.힘의 신앙은 보이는 것이 모든 것이기에 마6:33-34에서 결론을 내려 주십니다.
이해를 위하여 먼저 마6:25-32의 말씀을 봅니다.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목숨을 위하여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몸을 위하여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 목숨이 음식보다 중하지 아니하며 몸이 의복보다 중하지 아니하냐, 공중의 새를 보라 심지도 않고 거두지도 않고 창고에 모아들이지도 아니하되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기르시나니 너희는 이것들보다 귀하지 아니하냐, 너희 중에 누가 염려함으로 그 키를 한 자라도 더할 수 있겠느냐, 또 너희가 어찌 의복을 위하여 염려하느냐 들의 백합화가 어떻게 자라는가 생각하여 보라 수고도 아니 하고 길쌈도 아니 하느니라,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솔로몬의 모든 영광으로도 입은 것이 이 꽃 하나만 같지 못하였느니라, 오늘 있다가 내일 아궁이에 던져지는 들풀도 하나님이 이렇게 입히시거든 하물며 너희일까 보냐 믿음이 작은 자들아,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
무슨 뜻입니까?힘은 보이는 세상의 것들 때문에 고민하고 자랑하면서 다투고 싸우고 미워하고 걱정을 할 수밖에 없겠지만, 그러나 거저 주신 구원인 은혜의 신앙을 가지고 하나님만을 믿고 오직 다 맡겨버리고 자신의 내면에 정결함과 감사함과 자족함을 위하여 수고를 한다면, 그것이 바로 마6:33-34입니다.
“그런즉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그러므로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 내일 일은 내일이 염려할 것이요 한 날의 괴로움은 그 날로 족하니라”
산상수훈의 모든 말씀이 다 그 내용입니다.
마7:12도 보세요!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이것이 율법이요 선지자니라”
하나님의 뜻은 이웃에게 대접을 받는 힘의 율법이 아니라 믿음을 가진 자들은 이웃을 대접하라고 하시는 그 말씀에서 알 수 있게 하십니다. 율법의 1차적인 목적이 다 죄인이라는 그 제한을 두고 있는 힘의 신앙 같지만 율법의 궁극적인 목적은한없이 크고 깊고 넓으신 지혜와 사랑의 하나님에게로 더 나아가는데 있는 것이기에이것이 율법이요 선지자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마11:5입니다.
“맹인이 보며 못 걷는 사람이 걸으며 나병환자가 깨끗함을 받으며 못 듣는 자가 들으며 죽은 자가 살아나며 가난한 자에게 복음이 전파된다 하라”
힘의 신앙은 소경이고 힘의 신앙은 앉은뱅이고, 힘의 신앙은 문둥병자고, 귀머거리며, 죽은 자지만, 힘의 신앙을 품고 연합을 이룰 수 있는 은혜인 복음은 이를 다 해결 해 버리고 만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소경이 보게 되고 앉은뱅이가 걷게 되고 문둥이가 정결하게 되고 귀머거리가 듣게 되고 죽은 자가 살아나게 되는 것입니다. 구약의 사건 중에 한 가지를 더 봅니다.
아론의 싹 난 지팡이 사건입니다. 무슨 뜻일까요?죽은 나무, 바짝 말라버린 지팡이에서 싹이 나왔다? 와~ 이런 능력이 나타나다니! 라고 생각하십니까?그렇게 생각하면 죽고 망했던 것입니다.
너희들의 구원과 지도자로써의 선택은 잘나서가 아니라능력과 지혜가 있어서가 아니라 아주 작아서, 별 볼일이 없는 민족이라서 내가 특별하게 택한 것이니, 착각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여기서 가만히 보세요! 힘으로 이 사건을 보고 구원을 잘 먹고 잘 사는 것으로 제한해 버리면, 하나님이 세운 모세, 아론의 지도자에 대한 반란 사건이 나오겠지만,구원을 오직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로 생각하게 되면, 항상 감사하게 되고 순종하게 되지, 감히 이런 사건은 일어날 수 없는 것입니다.
그 차원에서의 싹 난 지팡이가 되게 하신 것입니다. 항상 힘의 신앙은 깨어 있을 수가 없습니다. 왜요? 소경이기 때문입니다. 보지 못하니 사고만 치게 되는 것입니다.힘의 신앙은 감사, 기쁨, 평안이 없어요! 왜요? 영적으로 죽어 있는 존재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가진 것이 없다고 판단하고 특히 만족하지 못하고 더 가져야 되기에, 늘 다투게 됩니다. 그러나 은혜의 신앙은 불평도, 원망도, 미움과 시기도 질투도, 하지 않습니다. 왜요? 다 가진 자라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그런데 보세요! 은혜를 주셨는데도 어디 쪽에 가 있던가요?
여전히 다수가 힘의 신앙으로 열심을 내고 있습니다. 다수가 넓은 길로 가고 있더라는 것입니다. 구약 때에도 그랬지만 지금도 보면 다르지 않습니다.힘의 신앙에서 벗어나 은혜가 힘이 되라고 하지만, 안 되고 있다는 것이 아닙니까? 이 문제를 해결하라고 주신 것이 은혜요 예수 그리스도이신데, 여전히 힘의 신앙을 포기하지 못하고 있습니다.왜요? 다들, 여전히 왕이 되고 싶은 것입니다. 에스더의 믿음의 ‘죽으면 죽으리라’가 아니라 힘의 ‘죽으면 죽으리라’를 택하고 있습니다.
특히 예수님께서 성도는 섬김을 받는 자가 아니라 섬기는 자라는 그 가르침이 죽기보다 싫은 것입니다. 왼손이 하는 것을 오른 손이 모르게 하라고 하니깐 그러시려면 자기를 죽이라는 것입니다. 억울하다는 것입니다.그래서 은혜로 자기의 성도됨을 감당하고 지켜내면서 세상세력인 하만 세력을 제압해야 되는데, 어떤가요? 은혜로 제압하려고 합니까? 힘으로 제압하려고 합니까? 힘으로 하기에 늘 실패하고 있습니다.
롬9:31-32입니다.
“의의 법을 따라간 이스라엘은 율법에 이르지 못하였으니,어찌 그러하냐 이는 그들이 믿음을 의지하지 않고 행위를 의지함이라 부딪칠 돌에 부딪쳤느니라”
구약의 이스라엘도 결국 힘으로 신앙을 지키려다가 망한 것인데,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신앙을 은혜로 지켜내라고 하시지만, 여전히 힘으로 해결하려고 합니다.그러니 지금 우리 처지가 어떤가요? 회복이 되지 않고 있습니다. 결론은 좁은 길은 싫다는 것입니다.내가 힘을 가져 해결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겠다는 심사인데, 그건 아니지요! 하만의 신앙인 힘을 가지고 하나님에게 인정을 받으려고 합니다.
특히 성경 전체가 실은 다 은혜에 대한 말씀입니다. 성경의 시작인 천지창조도 결국 그 목적이 무엇입니까? 자녀들을 위한 모든 것들이었기에 다 창조해 두신 후에 마지막 날에 아담과 하와를 창조하신 것만 보아도 알 수 있습니다.그리고 신약의 모든 말씀도 보세요!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해 주신 후에 죄악으로 무너진 하나님과의 관계를 예수님을 통하여 회복시켜 주신 다음에성육신 하신 예수님께서 우리들이 거할 집을 마련하시겠다고 하시면서 승천하셨고, 그리고 하나님의 나라를 세워 놓으신 후에 죽어 돌아오기까지 자녀들이 어떤 인생을 살아가야 하는지, 지옥을 방불하는 세상 안에서 살아가면서 어떤 아픔과 과정 속에서 훈련을 시키시다가여호와의 날에 심판과 함께 죄인들은 지옥으로, 순종하여 세상에서 당하던 자녀들은 하나님의 나라에서 영생하게 된다는 계시록 마지막 말씀을 보면, 다 누구 때문입니까? 그 창조 시작부터 여호와의 날의 심판까지 다 약속의 자녀들을 위한 것임을 알게 하십니다.
그래서 드리지 않을 수 없는 말씀이 이렇게 은혜로 시작하셨다가 중간 중간에 계속해서 율법이 쑥 들어오게 하시는 그 이유가 있습니다. 은혜의 가치와 능력을 모르고 있기 때문입니다. 아담만 보더라도 은혜가 넘치는 에덴에서 율법인 선악과를 제시 했지만,결국 먹어 에덴에서 쫓김을 당하여 어떤 인생을 살아야 했는지 보면, 무엇을 알 수 있게 하십니까?율법 없는 은혜는 건물 없는 인생과 같다는 것을 알게 하십니다.창조된 아담과 하와나, 타락한 모든 사람들에게 은혜만으로는 영생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율법이 없으면 하나님하고의 인격적인 관계, 그 뜻이 하나가 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특히 율법 없는 은혜가 되면, 모든 사람들이 원하는 그 자유가 결국 권리와 책임을 갖지 않게 되면서 무질서만이 남게 될 것이 빤할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결국 자멸하고 말 것입니다.그러나 힘의 율법이 있으므로 보호막이 되면서 준비를 할 수 있게 된다는 것입니다. 빛의 가치는 어두움에서 나타나듯이, 한 끼의 소중한 음식은 지독한 배고픔에서 알 수 있듯이, 자유도 실은 완전하게 막힌 감옥 안에서 요구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감사와 기쁨도 결국 은혜만으론 얻어내기가 불가하고 그래서 율법을 주시면서 은혜의 소중함을 알게 되면서, 하나님에게 인격적으로 항복하게 하시면서, 순종케 하시고, 그리스도 안에서 연합을 이루어 한 목표로 향하면서 진정한 부림절을 지켜낼 수 있는 것입니다. 성도가 되면 세상이 점점 더 악하고 험해지고 있기에 어떻게 행할 것인지 자세히 주의하여 지혜 없는 자가 아니라 지혜 있는 자로 행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세상 성공과 즐거움을 위하여 시간을 아끼지 않고 있습니다.에스더의 승리를 위한, 믿음의 ‘죽으면 죽으리라’로 날마다 살아가야 되는데, 어떤가요? 점점 놓쳐서 안 되는 golden time을 놓치고 있습니다.
결론입니다. 지금이라도 수습 즉, 회개를 해야 하는데, 너무 멀리 와 버렸다는 생각이 들고 있습니다.지금 우리들이 주신 부림의 이 승리를 확보하시려면, 제가 볼 땐, 단 한 길입니다. 다 버려야 합니다. 다 내려놓아야 합니다. 무슨 뜻입니까? 지금 살 길은 전기 없는 차원으로까지 돌아가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불가합니까? 불가하다면, 최소한 30년 전으로까지는 돌아가야 할 것입니다.
computer and I-phone을 전적으로 의지하지 않아도 되는 방식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그래야 됩니다. 그런데 지금 이 제안을 누가 동의를 할 수 있을까요? 경제가 강한 나라일수록 이 제안에 동의를 한다는 것이 완전 불가능할 것입니다.그러나 아직도 가난한 곳의 사람들은 어떤가요? 그들은 그것들이 없어도 되는데,왜 부한 나라의 사람들은 기겁을 하면서 미친 제안이라고 할까요? 이미 하만의 사람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특히 선을 넘었다고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computer and I-phone이 구원을 주고 나의 내일의 보장이 된다면, 무슨 문제가 되겠습니까? 그러나 아니지 않습니까?갈수록 힘을 따라가야 된다는 과학은 사람들을 더 옥죄이듯이 조이고 있기에 드리는 말씀입니다. 점점 더 우리 가정과 사회는 복음하고는 멀어지고 있습니다. 지금도 복음을 따르기가 거의 불가할 정도가 된 것만을 보더라도, 심히 두려운데, 지금보다 더 막강한 어떤 computer and I-phone같은 것이 출시된다면,우리의 장래는 어떻게 될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