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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8/2022 에스더 6:1-14 본문

주일 설교 말씀

9/18/2022 에스더 6:1-14

PastorYK 2022. 9. 17. 13:27
                                  
말씀: 에6:1-14  
 
제목: 제발, 더 늦기 전에 
 
 
이해와 공감하기가 쉬운 말씀은 아니지만, 이런 말씀으로 설교를 열어 보려고 합니다. 혹시 오늘 본문을 묵상하시면서 깨어 있어야 된다는 음성을 또는 참담한 어떤 절규의 몸부림을 치는 소리를 듣지 못하셨나요? 다름이 아니라 그들이 그분이 주시는 그 기회를 놓치는 바람에 영원히 버려졌다고, 하는 그 절규 말입니다. 그것도 한 두 사람이 아니라, 엄청난 무리가 동일하게 한 목소리를 내고 있다는 것입니다. 특히 이들의 특징을 보면, 그렇게 밤낮으로 선지자들을 통하여 경고를 해 주셔도, 버려지기 전까지 자기가 버려질 것을 전혀 모르고 있었더라는 점입니다. 
 
그러나 동일한 시간이지만, 지금, 그리고 앞으로도 다른 쪽의 사람들은 창조주 하나님, 구원의 하나님에게 찬양 드리고 있는데, 그 복된 자녀들은 ‘늦어서 그 후회를 하지 않으려고 날마다 힘겨운 싸움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는 고백과 함께 감사와 기쁨의 찬양을 드리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것이 사실이라면, 지금 그 사이에 살고 있고 존재하고 있는 자로써, 경고의 말씀을 듣고 열심히 준비하고 있나요? 아니면 듣고서도 관심조차 없나요? 지금 나는 어느 쪽인가요? ~ 심각하게 질문을 드리면서 말씀을 시작하겠습니다. 
 
전에도 경험을 했었지만, 다 망하고 나서 가장 속상한 것은, 그렇게 그 사업을 하지 말라고 했어도 주위의 충고를 귀담아 듣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특히 대학 시험에서 떨어지면서, 공부 좀 열심히 할걸~ 그러나 다 끝난 후이기에 그런 후회는 아무 의미가 없다는 것이 아닙니까? 물론 그런 쓴 경험을 하면서 성장은 하겠지만, 문제는 그 쓴 경험을 통하여 좀 더 나아져야 하는데, 나아지던가요? 나아지는 사람들도 있기는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도 그렇게 생각대로 잘 안 되더라고요! 쓴 실패를 했으면서도, 하지 말라는 것을 여전히 하고 있더라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들은 성공을 하지 못합니다. 누가 성공해요? 그 쓴 경험을 다시는 겪지 않으려고 몸부림을 치는 준비를 아주 열심히 하는 자들이 성공합니다. 제가 볼 때, 신앙생활도 다르지 않기에 드리는 말씀입니다. 살아오시면서 남들처럼 그렇게 성공하지는 못했을지라도 그러나 우리들의 남은 신앙생활만큼은 실패하지 말자는 것입니다. 남은 삶만큼은 죽기 살기로 경건의 훈련을 하여 하나님 앞에 서는 그날에는 잘했다는 칭찬을 받는 자리가 되어 보자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부탁을 드리고 싶어서 말씀을 준비했습니다. 
 
다른 것들이 여러모로 나름 부족하여서, 특히 불공정하여 그래서 세상에서는 잘 할 수 없었지만, 주님을 본받는 이 일만큼은 뒤쳐지지 말자는 부탁입니다. 주시는 하루하루들을 유일한 기회로 여기고 하나님의 말씀에 우리의 남은 삶을 완전 맡겨보자는 것입니다. 당시 천하를 다스리던 바사국의 제 2인자로 섰던 하만이 하나님 아버지의 무시무시한 간섭으로 하만의 세상 영광과 자랑이 알다시피, 단 하루 만에 무너지는 것을 보았기 때문에 부탁을 드리려는 것입니다
 
인생이 얼마나 무상한지를 여지없이 보여준 하만을 통하여, 자기의 내일에 대한 보장만큼은 확실하게 하자는 것입니다. ‘오늘이 다야! 오늘 좋으면 그것으로 만족이야!’ 라고 하면서 그렇게 살아가고들 있지만, 그건 아니기 때문입니다. 물론 우리의 인생은 그렇게 만만하지 않습니다. 생각대로 되지 않습니다. 대부분 보면, 하던 일들이 거의 꼬여 얼마나 고생을 하게 되나요? ~ 성실하게 해도 안 됩니다. 열심히 땀을 흘려도 안 되는 사람은 안 됩니다. 
 
오히려 악인들이, 교만한 자들이 더 잘 되어 성실한 사람들보다 더 잘 살고 있는 것을 보면 얼마나 억울한지, 속상한지 모릅니다. 그러나 악의 그 결과는, 하나님을 믿지 못하고 힘으로 살던 자들은 그 종말이 다 좋게 끝나지 않더라는 것입니다.
 
시73편입니다. “하나님이 참으로 이스라엘 중 마음이 정결한 자에게 선을 행하시나, 나는 거의 넘어질 뻔하였고 나의 걸음이 미끄러질 뻔하였으니, 이는 내가 악인의 형통함을 보고 오만한 자를 질투하였음이로다, 그들은 죽을 때에도 고통이 없고 그 힘이 강건하며, 사람들이 당하는 고난이 그들에게는 없고 사람들이 당하는 재앙도 그들에게는 없나니, 그러므로 교만이 그들의 목걸이요 강포가 그들의 옷이며, 살찜으로 그들의 눈이 솟아나며 그들의 소득은 마음의 소원보다 많으며, 그들은 능욕하며 악하게 말하며 높은 데서 거만하게 말하며, 그들의 입은 하늘에 두고 그들의 혀는 땅에 두루 다니도다, 그러므로 그의 백성이 이리로 돌아와서 잔에 가득한 물을 다 마시며, 말하기를 하나님이 어찌 알랴 지존자에게 지식이 있으랴 하는 도다, 볼지어다 이들은 악인들이라도 항상 평안하고 재물은 더욱 불어나도다, 내가 내 마음을 깨끗하게 하며 내 손을 씻어 무죄하다 한 것이 실로 헛되도다, 14절-나는 종일 재난을 당하며 아침마다 징벌을 받았도다, 내가 만일 스스로 이르기를 내가 그들처럼 말하리라 하였더라면 나는 주의 아들들의 세대에 대하여 악행을 행하였으리이다, 내가 어쩌면 이를 알까 하여 생각한즉 그것이 내게 심한 고통이 되었더니, 17절- 하나님의 성소에 들어갈 때에야 그들의 종말을 내가 깨달았나이다, 주께서 참으로 그들을 미끄러운 곳에 두시며 파멸에 던지시니, 그들이 어찌하여 그리 갑자기 황폐되었는가 놀랄 정도로 그들은 전멸하였나이다, 주여 사람이 깬 후에는 꿈을 무시함 같이 주께서 깨신 후에는 그들의 형상을 멸시하시리이다, 내 마음이 산란하며 내 양심이 찔렸나이다, 내가 이같이 우매 무지함으로 주 앞에 짐승이오나, 23절-내가 항상 주와 함께 하니 주께서 내 오른손을 붙드셨나이다, 주의 교훈으로 나를 인도하시고 후에는 영광으로 나를 영접하시리니, 하늘에서는 주 외에 누가 내게 있으리요 땅에서는 주 밖에 내가 사모할 이 없나이다, 내 육체와 마음은 쇠약하나 하나님은 내 마음의 반석이시요 영원한 분깃이시라, 무릇 주를 멀리하는 자는 망하리니 음녀 같이 주를 떠난 자를 주께서 다 멸하셨나이다, 28절입니다. 하나님께 가까이 함이 내게 복이라 내가 주 여호와를 나의 피난처로 삼아 주의 모든 행적을 전파 하리이다” 
 
그 악인 중에 한 사람이 바로 하만입니다. 교만으로 인하여 쥐도 새도 모르게 단번에 무너뜨리고 마시는 하나님과 교만으로 무너져야 했던 하만을 보면, 믿음, 즉 성경 말씀이 모든 것들 중의 최우선이어야 완전한 승리를 이룰 수 있다는 것을 또 오늘 본문에서 확인시켜 주시고 계십니다. 자기 힘으로 살아가는 간교한 하만을 무너뜨리시려고, 하만의 교만으로 하나님의 백성들을 응징하고 진멸하려는 그 하만을 처벌하시려고, 왕 아하수에로의 잠자리까지 간섭하셔서 왕궁일지를 읽게 하시는 것을 보시면 알 수 있잖아요! 그래서 어떤 조치를 내리도록 명령하도록 하시던가요? 
 
에6:10-11입니다. “이에 왕이 하만에게 이르되 너는 네 말대로 속히 왕복과 말을 가져다가 대궐 문에 앉은 유다 사람 모르드개에게 행하되 무릇 네가 말한 것에서 조금도 빠짐이 없이 하라, 하만이 왕복과 말을 가져다가 모르드개에게 옷을 입히고 말을 태워 성 중 거리로 다니며 그 앞에서 반포하되 왕이 존귀하게 하시기를 원하시는 사람에게는 이같이 할 것이라 하니라” 
 
여호와는 죽이기도 하시고 살리기도 하시고 음부에 내리게도 하시고 올리기도 하시지요어떨 땐, 가난하게도 하시고 부하게도 하시고, 낮추기도 하시고 높이기도 하십니다. 가난한 자를 진토에서 일으켜 주시고, 빈핍한 자를 거름더미에서 세워 주셔서 귀족들과 함께 앉게 하시고, 영광의 위를 차지하게 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께서 땅의 기둥들을 세우시고 세계를 그 위에 세우신 것을 보면, 누가 힘으로는 하나님을 이길 사람이 있습니까?~ 
 
그렇기 때문에 여호와를 대적하는 자는 누구든지 산산이 깨어진다는 것이 아닙니까? ~ 하나님의 일하심은 늘 상상을 초월하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 외에는 없음을 알고 날마다 찬양과 존귀를 드리는 것으로 대만족할 수 있는 성도들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이미 말씀을 드렸지만, 힘이 작은 하만일 때는 큰 하만이 되고 싶었겠지만, 원하는 대로 큰 하만이 되자, 결국 자기가 자기를, 자기가 판 웅덩이에, 자기가,  자기가 세운, 그 장대에 묶여 죽고 맙니다. 하나님이 없는 성공, 하나님이 없는 권세, 하나님이 없는 계획은 다 스스로가 스스로를 무너지게 한다는 것입니다.
 
잠26:27입니다. “함정을 파는 자는 그것에 빠질 것이요 돌을 굴리는 자는 도리어 그것에 치이리라” 
 
잠29:6입니다. “악인이 범죄 하는 것은 스스로 올무가 되게 하는 것이나 의인은 노래하고 기뻐하느니라”
 
이것이 인간역사의 진리인데, 그 진리를, 하나님을 모르는 모든 죄인들이 믿으려고 하지 않습니다. 자기들이 믿지 않는다고 하여 진리가 가짜가 되지 않기에 드리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만 보더라도 상대가 되지 않음을 알 수 있지 않나요? 매사가 다 하나님을 믿는 자들을 위한 모든 역사임을 알라는 것입니다. 악인 하만은 아무리 해 보려고 해도, 결정적인 순간에는 하나님의 간섭으로 실패되기에, 하만의 가족과 친구들이 어떤 충고까지 하던가요? 
 
에6:13입니다. “자기가 당한 모든 일을 그의 아내 세레스와 모든 친구에게 말하매 그 중의 지혜로운 자와 그의 아내 세레스가 이르되 모르드개가 과연 유다 사람의 후손이면 당신이 그 앞에서 굴욕을 당하기 시작하였으니 능히 그를 이기지 못하고 분명히 그 앞에 엎드러지리이다”
 
이기기는커녕 틀림없이 망할 것이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모르드개의 일만으로도 승산이 없다는 정확한 판단을 하만 쪽의 사람들이 확실하게 알고 있는 것만을 보더라도, 지금 우리들은 결국 어느 편에 서야 된다는 것을 아직도 모를 수가 있나요? 그러나 잘 보세요! 이제, 하만은 돌이키고 싶어도 때가 늦은 것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그들의 무서운 경고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하만이 서둘러 잔치에 참여 하는 그 모습이 기쁨과 영광과 자랑이어야 하는데 그것이 아니라 오히려 사형수가 붙들려 가듯이, 아니 죽으러 가듯이 우리의 눈에는 그렇게 보지 않나요? 결국 인생의 마지막 날이 되고 맙니다. 그 기회를 놓친 것입니다. 하만의 이 마지막 날을 기억하셔야 합니다
 
남의 일이 아닙니다. ~ 모르드개를 하만 자기가 왕명으로 그렇게 높일 때, 바로 그 때가, 마지막 기회였음을 알게 합니다. 지금 우리들도 주신 이 은혜의 시기를 놓치면, 제 2의 하만이 되고 말 것입니다. 그럼 이런 하만의 꼴이 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지난 시간에도 말씀을 드렸지만, 육신의 자기 즐거움과 슬픔까지도 다 포기하고 오직 주님의 즐거움과 슬픔을 자기의 것으로 여길 수 있도록 모진 훈련을 하자고 했습니다. 
 
마찬가지로 그동안에 자고 일어나면서 무심코 내뱉던 그 첫 한 마디, 늘 자고 일어나면서 무심코 내딛었던 그 첫 걸음까지도 이젠, 벗어나, 주님을 위한 그 한 마디, 그 한 걸음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 시작이 되지 않으면 다 망치더라도 될 때까지, 그렇게 시작할 수 있을 때까지, 하던 모든 일들을 다 포기해서라도 시작해 보자는 것입니다. 왜 이런 훈련을 해야 합니까?
 
에6:6-9입니다. 하만이 들어오거늘 왕이 묻되 왕이 존귀하게 하기를 원하는 사람에게 어떻게 하여야 하겠느냐 하만이 심중에 이르되 왕이 존귀하게 하기를 원하시는 자는 나 외에 누구리요 하고, 왕께 아뢰되 왕께서 사람을 존귀하게 하시려면, 왕께서 입으시는 왕복과 왕께서 타시는 말과 머리에 쓰시는 왕관을 가져다가, 그 왕복과 말을 왕의 신하 중 가장 존귀한 자의 손에 맡겨서 왕이 존귀하게 하시기를 원하시는 사람에게 옷을 입히고 말을 태워서 성 중 거리로 다니며 그 앞에서 반포하여 이르기를 왕이 존귀하게 하기를 원하시는 사람에게는 이같이 할 것이라 하게 하소서 하니라 
 
세상 사람들이 원하고 바라는 것들은 다 일장춘몽이라는 것이기 때문입니다특히 다들 헛된 준비만을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모르기에 힘으로 살아가고 있는 자들의 가치와 바람은 늘 그때뿐이기에 여기서 벗어나려면, 대충 훈련해서는 안 됩니다. 교회만 다니고 기도로 해결되는 것이 아니라, 교회를 다니고 신앙고백을 매주 드리고 기도를 하고 말씀을 보는 그 이유가 그동안에 멋모르고 툭 내뱉던 그 한 마디와 늘 습관대로 내딛던 그 한 걸음까지도 주님을 위하여 시작하지 않으면, 그날, 하나님하고의 동행이 불가능합니다. 
 
하나님과의 동행이 아니 되면 속임을 당하게 되고 사단의 조롱에서 벗어나지 못합니다. 일장춘몽의 인생에서 벗어나지 못합니다. 인생이 아침 안개와 같고 나그네와 다르지 않고 들에 피는 꽃과 같기에 그래서 함부로 살아도 되는 것이 아닙니다. 다들 그러게 살아갈지라도, 성도들은 자기가 회복이 되고 이웃들을 살리는데 있습니다. 죽은 목숨들을 살리기 위하여 향기로운 생축과 제물이 되어야 합니다.
 
그렇습니다. 그 짧은 인생을 살아가면서 그 후에 누군가의 보람이 되고 은인이 되어야지, 아무도 기억하지 않는 자가 되거나 영원히 손가락질을 받는 그런 이름을 남기는, 우를 범하지 말자는 것입니다. (Don’t commit a folly) 이런 우를 범하지 않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학생의 예습이 심히 중요하듯이, 신앙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습을 하지 않으면 좋은 성적을 가질 수 없듯이, 신앙도 예습을 해야 하는데, 그럼 신앙의 예습이 무엇입니까? 문제가 되었을 때만, 해결의 하나님에게 나아가는 것이 아니라, 늘 하나님하고의 동행이 이루어져야 합니다. 
 
당연히 말씀을 매일 보는 것도 그리고 늘 기도로 자기의 약점을 보완하고 가르침을 받고 그 시간을 통하여 하나님을 닮아가려는 그 과정이 항상 유지 되어야 합니다. 그 경건의 시간을 통하여 자기 신앙의 성장을 볼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지만, 적시타를 때리고 홈런까지도 가능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늘 삼진 아웃으로 결국 벤치 신세를 져야 되는 후보 선수가 될 것입니다. 신앙의 예습을 하는 이유는 golden time을 놓치지 않으려는데 있습니다
 
신앙의 예습을 하는 성도들은 언제나 미루는 법이 없습니다. 나중에 하는 법이 없습니다. 보는 순간, 어떤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을 하면 그 즉시 수습하는 자들인데, 그 지체들은 언제나 후회가 훨씬 적은 내일을 맞게 되고 이웃의 기쁨, 자랑이 되게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늘 게으른 지체들을 보세요! 전혀 준비하지 않고 자기 식으로 자기 방법대로 하고 있는 지체들을 보세요! 어떤가요? 평시에 결코 하지 않습니다. 미리 준비하지 않고 급할 때만, 서둘러 해결하는데, 늘 그 결과는 어떤가요? 
 
후회만을 남기고 맙니다. 상처만을 남기도 맙니다. 당연히 연합과 화목을 전혀 기대할 수 없습니다. 한 예로 제가 살림에 관심이 있고 깔끔이 보통이 아닌 편이기에 그래서 이해를 위하여 말씀을 드리면, 식사 후 식탁 위에 떨어진 음식물을 당장 치울 것을 치우지 않으면 어떻게 되던가요? 요즘 같은 때에는 여지없이 개미 떼가 새까맣게 올라옵니다. 이 개미떼를 제압하지 못하면, 나중에는 바퀴벌레 천국이 되는데, 그런데 그럼에도 긴장하지 못하고 또 방심하면 그 다음에는 쥐새끼까지도 집 안으로 들어오는 법입니다. 왜 이렇게 됩니까
 
당연히 해야 되는 그 조치를 당장, on time에 하지 않고 내버려둔 결과입니다. 그 작은 시작을 우습게 여기면, 미리, 미리 정결하게 치우지 않으면, 그 꼴을 보게 되는데, 문제는 다시 깨끗했던 처음으로 돌아가기가 얼마나 힘든지 아십니까?~ 거의 불가능할 정도입니다. 미리 미리 해결하지 않으므로, 잠시 내버려두었다가, 온갖 것들이 들어오게 되면, 그 다음부터는 개미, 바퀴벌레, 심지어 쥐새끼하고 같이 더불어 살아가야 됩니다. 그래서 주신 것이 믿음입니다. 사전에 원천봉쇄를 하라고 주신 것이 믿음입니다. 믿음은 점점 나아지지 무한의 능력이기에 나빠지는 법이 없습니다. 
 
믿음은 자기의 세상 습관을 제압할 수 있는 유일한 능력입니다. 겨자씨만한 믿음이 있으면 산을 바다로 옮길 수 있습니다.
 
마17:20입니다. “이르시되 너희 믿음이 작은 까닭이라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만일 너희에게 믿음이 겨자씨 한 알 만큼만 있어도 이 산을 명하여 여기서 저기로 옮겨지라 하면 옮겨질 것이요 또 너희가 못할 것이 없으리라” 
 
믿으십니까? 당연히 아멘입니다. 그래서 부탁을 드립니다. 그 믿음으로 하루의 시작인 말 한마디까지도, 한 걸음까지도 주님을 위하여 시작하시는 훈련을 하게 되시기를 바랍니다.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시면서 여전히 그 시작을 못하고 있다면, 에스더가 하만을 따라가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특히 자기 주변을 평시에 항상 정결케 하지 못하고 있다면, 자신의 신앙을 의심해야 합니다. 보이는 주변을 정결케 하지 못하면서 보이지 않는 주님을 믿을 수 있다고요? 아닙니다. 할 수 없습니다. 믿음은 보이지 않는 자기마음까지도 통제하게 하는데, 어떻게 보이는 자기주변을 더럽게 할 수 있을까요
 
그렇다면 그 지체의 신앙은 거짓말입니다. 아주 작은 한 마디, 한 걸음까지도 통제를 못하면서 무슨 일을 잘 할 수 있을까요? 더 이상 속지 말아야 합니다. 원칙과 원리 없이는 더 큰 일도, 더 나은 일도 할 수 없는 것입니다. 모든 사람들은 정해진 시간 속에서 살고 있는 그런 존재들이기에 낭비할 시간이 없습니다. 그 시간 안에 해야 할 일을 하지 않고 또는 golden time를 놓치게 된다면, 그 사람은 그날 그 이후에, 통곡하면서 후회하는 그 무리 속에서 영원히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믿음은 자기의 옛 더러운 실체까지도 새로운 복된 승리의 길로 갈 수 있게 하기에 살아 생전에 핑계를 대는 법이 없습니다. 특히 신앙의 예습을 하지 않는 자들을 보면, 은혜라는 뜻을 착각하여 은혜 때문에 나는 훈련을 하지 않아도 잘 될 거야~ 하면서, 저절로 점과 흠이 없는 자가 되는 줄로 아는데, 아닙니다. 더 이상 속지 마시고 이 하루의 기회인 말 한 마디와 한 걸음의 시작을 놓치면 안 됩니다. 
 
이미 많은 시간이 지나지 않았나요? 갑절의 수고 아니 세 갑절의 수고를 하시더라고 밀린 부분을 죽도록 따라가야 합니다. 덜 먹고 덜 자고 덜 쉬면서, 반드시, 꼭~ 따라붙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냥 대충 다 받아주는 곳이 천국이 아닙니다. 성도로써의 책임을 다하는 자들만이 들어갈 수 있습니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구원을, 믿음을 거저 주셨기 때문입니다. 신앙생활이 어려운 이유는 옛 자신과 정반대인 거룩하신 주님을 따라가야 하기 때문입니다. 옛 나를 다 버리고 하나님을 본받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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