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백골이 진토가 되도록 - 그 세력을 이기는 길은 오직 믿음이지 힘이 아니다! 그런데 왜 힘으로 싸우려고 하는가?
오늘은 히스기야 왕보다는 막강한 힘을 가진 앗수르에 대하여 말씀을 드립니다.왜냐하면 언제나 믿는 자들의 문제점, 약점, 허점 등을 힘과 능력을 가진 세상 세력인 앗수르를 통하여 알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잘한 점에 대하여 살펴보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우리들부터도 보면 어떤가요?선한 것과 악한 것을 비교하면 어떤가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악합니다. 그래서 우리들의 악함으로 인한 그 부족한 것들과 못난 점들을 찾고 찾아서 보수와 숙정을 하지 않으면 나아지지 않기에 그래서 오늘은 잘한 믿음의 왕 히스기야 왕보다는 우리의 부족함으로 성도들을 괴롭히고 있기에 그리고 우리의 문제점들을 수습하고 해결하기 위하여 앗수르에 대하여 말씀을 드리려고 합니다.
오늘 말씀을 보면, 남유다의 왕, 히스기야가 믿음의 왕이었기에 왕하18:1-8에서 칭찬이 자자하였지만, 왕하18:13-17 말씀을 보면
또 그 때에유다왕히스기야가 여호와의 성전 문의 금과 자기가 모든 기둥에 입힌 금을 벗겨 모두앗수르왕에게 주었더라
(왕하 18:17)
앗수르 왕이다르단과랍사리스와랍사게로 하여금 대군을 거느리고라기스에서부터예루살렘으로 가서히스기야왕을 치게 하매 그들이예루살렘으로 올라가니라 그들이 올라가서 윗못 수도 곁 곧 세탁자의 밭에 있는 큰 길에 이르러 서니라
항상 잘 하였다고는 볼 수 없습니다. 그러나 결론적으로앗수르가 결국 북이스라엘을 주전 722년에 무너뜨리고 그리고 남유다를 다시 공격하였지만,왕하19장에서는 히스기야가 항복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만을 의지하면서 하나님께서 승리를 가져다가 주십니다.
그러나 그 후에도 보면, 왕하20:13, 17입니다.
(왕하 20:13)
히스기야가 사자들의 말을 듣고 자기 보물고의 금은과 향품과 보배로운 기름과 그의 군기고와 창고의 모든 것을 다 사자들에게 보였는데 왕궁과 그의 나라 안에 있는 모든 것 중에서히스기야가 그에게 보이지 아니한 것이 없더라
(왕하 20:17)
여호와의 말씀이 날이 이르리니 왕궁의 모든 것과 왕의 조상들이 오늘까지 쌓아 두었던 것이바벨론으로 옮긴 바 되고 하나도 남지 아니할 것이요
히스기야의 교만으로 무서운 책망을 받으면서 이에 대한 경고와 함께 남 유다의 멸망에 대한 예언을 하시고계시지만, 대체적으로 히스기야는 남유다의 믿음의 왕으로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그런데히스기야가 믿음의 왕으로 인정을 받는 것들 중의 한 가지가 앗수르의 침공이 한 몫을 하게 되는 것도 사실이지만, 그러나 북이스라엘을 무너뜨리고 나서 그리고 왕하18:13의 말씀에서 알 수 있는데, 남유다를 주전 701년경에 1차로 공격을 했을 때, 역사학자들에 의하면 유다의 46개의 성읍이 점령을 당하면서 200,150명의 포로와 많은 가축들이 끌려갔다고 합니다.결국 히스기야 왕은 믿음으로 싸우지 못하고 앗수르의 힘에 눌려 산헤립이 요구하는 대로은 삼백 달란트와 금 삼십 달란트를 보냅니다.
그러나 어떤가요? 왕하18:17입니다.
“앗수르 왕이 다르단과 랍사리스와 랍사게로 하여금 대군을 거느리고 라기스에서부터 예루살렘으로 가서히스기야 왕을 치게 하매 그들이 예루살렘으로 올라 가니라그들이 올라가서 윗못 수도 곁 곧 세탁자의 밭에 있는 큰 길에 이르러 서니라”
히스기야 생각처럼 금과 은을 보냈지만 그 전쟁은 쉽게 끝나지 않게 됩니다.히스기야가 끝까지 믿음으로 싸우지 않고, 쉽게 금과 은으로 해결하려고 하다가 결국에는 심한 조롱을 받게 되면서옷을 찢게 되고 굵은 베를 두르게 됩니다.물론 그 전에 앗수르가 다시 침공을 하는 것을 보고서는 어느 정도로 예측을 했고그리고 이에 대한 나름대로 왕으로서의 명을 내립니다. 왕하18:36입니다. “그러나 백성이 잠잠하고 한 마디도 그에게 대답하지 아니하니 이는 왕이 명령하여 대답하지 말라 하였음이라” 앗수르의 이런 위협과 조롱에 대하여 이미 알고 있었던 히스기야는 아무런 대꾸도 하지 못하게 침묵하라는 왕의 명을 내립니다. 그리고 울분과 함께 베옷을 두르고 성전으로 들어갑니다.이 굴욕을 이젠 힘으로 대하지 않고 기도로 해결합니다. 그것이 다음 시간에 살펴볼 내용인데 잠시 봅니다.
왕하19:1입니다. “히스기야 왕이 듣고 그 옷을 찢고 굵은 베를 두르고 여호와의 전에 들어가서”오늘은 조금 전에도 말씀을 드렸지만, 잘 한 히스기야 왕보다는 하나님의 나라와 백성들을 괴롭히는 앗수르에 대하여 살펴보면서, 신앙면에서 잘하는 것보다는 부족하고 못난 점들이 더 많은 우리들이기에그래서 우리의 신앙을 보수하고 숙정을 위하여, 멸망을 당한 북이스라엘과 북이스라엘을 무너뜨린 앗수르에 대하여 다시 한번 더 살펴보려고 합니다.
그래서 질문을 합니다.우린 이런 멸망을 당한 북이스라엘과 멸망케 한 앗수르를 보면서 결코 놓치지 말아야 되는 것이 무엇이라고 나름대로 생각합니까?~ 이미 그 전에도 이 점에 대하여 말씀을 몇 번이나 드렸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해결하지도 벗어나지 못하고 있기에, 다시 말씀을 전하려는 것입니다. 남유다의 히스기야는 침공한 앗수르를 상대로 대승을 거두지만, 북이스라엘은 완전 멸망을 당합니다.그래서 오늘도 다시 말씀을 드리고 싶은 말씀은 멸망을 당한 북이스라엘을 통하여 우리 스스로가 결코 남의 일로 여기지 말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왜요? 망하는 이유가 지금까지도 다 동일하기 때문입니다. 지금까지도 보면,다들 믿는다고 하지만 그러면서도, 계속해서 잘하는 쪽이 아니라망하는 길만을 얼마나 열심히 따라가고 있는 것을 보지 않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망하지 못하여 안달을 하고 있더라는 것입니다.그래서 ‘간곡하게 신중하게 돌이키라고 해도’ 그러면 구약의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거의가 받아들이지 않더라는 것입니다. 받지 않으니 신앙이 당연히 자랄 수 없습니다. 그래서 지난 시간에도 말씀을 드렸지만 저지른 죄가 쌓이고 쌓여서 이젠 지구가 어떤 몸살을 앓고 있는지 살펴보았습니다. 특히 이런 상황에서 주의하고 주의해야 할 점이 있는데,‘나는 망한 너희들과 늘 다르다고 큰 착각을 너무나 자연스럽게 하고 있더라’는 점입니다.
그러다보니깐, 서로 어떤가요?한 교회 안에서 늘 만나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웃에 대한 이해나 관심이나 관계까지도 어떤 반응을 보이고 있던가요? ~서로 눈인사만 할 뿐, 실은 거의가 전혀 모르는, 안면식도 없는 것과 같은 그 정도의 관계이기에,같은 교회 안의 한 지체라고 할지라도, 한 지체라는 말이 민망할 정도라는 것이 아닙니까?이것이 지금 교회의 현실입니다.
심지어 자기 가족까지도 보면 어떤가요?, 동상이몽입니다. 서로 거의 몰라요! 같이 살지만 가족끼리도 어떤 문제가 있는지 잘 몰라요! 어떻게 보면, 오히려 가족보다는 남이 더 낫다고 까지 하는데, 참 기막힌 노릇이 아닐 수 없습니다. 말이 안 되는데 말이 안 되는 그 처지가 지금의 가족의 현실입니다. 앞으로 더 그럴 것입니다.가족이나 가족일 수 없는 그런 일들이 갈수록 더 심해 질 것입니다. 우린 그런 경우를 며칠 전에도 보았습니다. 우리들이 잘 알고 있던 Joe 목사님께서도, 실은 죽는 날까지 자기 남편과 아빠와 교회 지체들도 그분이 얼마나 아파했는지 얼마나 위험한 지경으로까지 갔었는지, 완전하게 모르고 있다가 그날 목요일에 병원에 갔다 온, 그 다음 날 금요일 새벽에, 급작스럽게, 임종하셨다는 슬픈 소리를 들었습니다. 돌아가신 후에 알고 보니, 몸 곳곳에 암이 퍼지게 되셨는데, 특히 결정적인 이유가 위암 4기였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런 사건은 이 가족만의 처지가 아닐 것입니다. 오늘 우린 자기 스스로에게 솔직해 보시기 바랍니다. 같이 살면서도 부모님이나 배우자나 자녀들이 아파할 때, 같이 아파한 적이 얼마나 되던가요? 그러니 가족이라도 떨어져 살게 되면, 말만 가족이지, 가족이라고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같이 살아도, 같이 살면서도 가족이 아파할 때, 얼마나 아파하고 있는지도 거의 모르고 지낸 적이 어디 한두 번 정도 밖에 안 될까요?~ 혼자서만 쩔쩔매고 아파하다가, 혼자 털어버린 적이 헤아릴 수도 없을 정도로 많았을 것입니다.이런 우리들의 믿음 부족으로 인한 약점, 허물로 인하여, 언제 깊은 고민을 하시면서 같이 사는 가족에게라도 제대로 관심을 가져본 적이 있나요?~
저를 비롯해서 여러분 자신들에게 묻고 싶습니다. 그러니 성경의 사건이 자기 사건으로 느껴질 수 있을까요?~ 그러니 성경을 들고만, 다니지, 자신의 회복과 진정한 화평을 위한 차원에서 하나님의 이 말씀을 깊이 이해를 해 보려고, 그리고 끝까지 내 것이 되고자, 힘겨운 고민까지도 해 보셔야 하는데, 어떤가요?~이런 말씀을 들을 때만, 조금 느낄 뿐이지, 역시나 교회 문턱만 나가면, 언제 그랬냐는 식으로 곧바로 예전의 그 악하고 못난 말과 행동을 자연스럽게 하고 맙니다.
그리고도 전혀 고민하지 않으니, 신앙이 자랄까요?~ 하나님과의 인격적인 만남이 이루어질 수 있을까요?~ 그러니 성경이 그런 악한 미련한 자기에게 승리의 길과 흑암의 등불과 자유의 진리로 그리고 자신의 힘과 능력으로 여겨질까요?~그래서 다시 질문합니다.하나님이 세워주신 나라 북이스라엘이 앗수르에 의하여 무너집니다. 왜 앗수르에게 북이스라엘이 무너지는 것일까요?왜 이렇게 세상 세력이 강력할 수 있는 것일까요? 세상 세력의 그 힘이 어디에서 나오는 것일까요? 여러 가지 질문이 생길 수 있습니다.
특히 왜 앗수르에게 북이스라엘이 무너지는 것일까요?여러 이유가 있지만, 그 중에 한 가지를 말씀을 드린다면, 이런 경우를 우리 모두는 학창시절에 경험을 하지 않았을까요?분명히 공부를 했는데 막상 시험지를 받아보니깐, 손을 대지 못하더라는 것입니다. 분명히 공부를 하기는 했는데, 어제 저녁에 분명히 풀어본 문제인데 그러나 정확한 생각이 나지 않아서 쩔쩔매다가 결국 풀지 못하고 만 경우입니다.왜 풀지 못했나요? 충분히 준비를 하지 못한 결과입니다.북이스라엘이 앗수르에게 멸망을 당하게 되는 것도 저는 마찬가지 원리라고 봅니다.
분명히 하나님을 믿기는 믿었는데 실은 믿는 것이 아니었던 것을, 멸망을 당한 뒤에 자신이 하나님만을 믿는 것이 아니었다는 것을 알게 되는데, 이런 뒤늦은 후회는 아무 의미가 없기에, 이런 전철을 밟아서는 안 되기에, 오늘도 우린 북이스라엘의 흑역사를 통하여 부족하고 모자라는 부분들을 말씀으로 보수하고 숙정하는 기회가 되자는 것입니다.모든 것이 그렇듯이, 신앙생활은 대충이 아니라 내 것으로 만들어 버리는 수고를 100년이 걸리더라도 1000년이 걸리더라도 백골이 진토가 되는 한이 있어도 끝까지 감당하셔야 합니다.
그래서 오늘 말씀을 통하여 자신에 대하여 더 이상 감추지 마시고, 더 깊이 자신을 점검하셔서 대충이 아니라 뼈를 깎는, 뼈가 부러지는큰 아픔을 느끼시는 경건의 훈련을 하시면서,동일한 과오를 다시는 반복하지 말자는 것입니다.망한 북이스라엘과 앗수르의 과오가 우리의 내일을 철저하게 준비를 할 수 있어야 됩니다.그래서오늘 말씀의 제목을, ‘백골이 진토가 되도록’ 즉 말씀을 깊이 새기자는 뜻으로 이렇게 정했던 것입니다. 이것이 첫번째로 드릴 부탁이요 드리고 싶은 말씀입니다.
두번째로 드릴 말씀은 왜 이렇게 세상 세력인 앗수르가 강력할 수 있는가? 세상 세력의 그 힘이 어디에서 나오는 것일까요? 다윗과 솔로몬 그리고 이스라엘의 믿음의 왕들의 힘과 능력은 하나님으로부터 나왔기에 충분히 이해를 하겠지만,고대 당시의 애굽, 앗수르, 바벨론, 메대바사, 그리고 로마의 그 힘과 능력은 어디에서 나오는 것일까요?역시나 하나님께서 주시지 않으면 세상을 정벌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세상의 힘이 이렇게 막강한 이유는 창조주 하나님께서 구원의 차원으로 말미암아 이 세상을 악의 세력에게 넘겨주셨기 때문입니다.그래서 예수님께서도 사단의 요구에 대하여 부인하지 아니하시고 무엇이라고 말씀을 하시던가요?
마4:8-9입니다.
(마 4:8)
마귀가 또 그를 데리고 지극히 높은 산으로 가서 천하 만국과 그 영광을 보여
(마 4:9)
이르되 만일 내게 엎드려 경배하면 이 모든 것을 네게 주리라
이 말씀을 통하여, 그렇구나! 이 세상의 지배권을 악의 세력에게 구속의 차원에서 당분간 맡겼다 또는 허락하셨다는 것을 알 수 있어야 합니다.그렇기 때문에 예수님께서도 예수님을 시험하는 그 사단의 요구에 대하여 인정하시면서 결국 하시는 명령의 말씀이 무엇입니까?
마4:10절입니다.
“이에 예수께서 말씀하시되 사단아 물러가라 기록되었으되 주 너의 하나님께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기라 하였느니라”그렇습니다. 사단아! 물러가라고 하시면서 하나님만을 경배하고 섬기라고 하시는 그 말씀 안에는사단의 시험에 대하여 무엇이 더 강하고 진정한 능력인지를 말씀하시고 있다는 것입니다. 사단의 공격, 시험을 힘이 아니라 하나님만을 경배하라는 이 믿음의 선언으로 간단하게 제압하신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렇다면 무엇을 알 수 있나요?
(1) 힘으로 악의 세력을 제압할 수 없다는 것을 우선적으로 알지 못하면, 결국 망한 북이스라엘처럼 되고, 히스기야가 금과 은으로 앗수르의 침공을 해결하려고 했다가 어떤 조롱과 피눈물을 흘리게 되는지를 놓치면서 다시 그 전철을 겪게 될 것입니다.그런데 역시나,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세상의 모든 문제점들을 힘으로 해결하려고 하던가요? 그러다가 어디까지 가고 말던가요?가정이 깨지게 되고 심하면 자살까지도 갑니다. 나중에는 나라까지도 망하게 되면서, 이젠 이 지구까지도 몸살을 앓고 있는데, 그 결과 어떤 고통과 손실이 왔던가요?
다 이렇게 된 이유는 힘이 모든 것이라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백골이 진토가 되도록 말씀을 따르지 않은 결과입니다.그런데 보세요! 힘 때문에 망했다고 여러분들은 지금까지 몇 번이나 들었나요? 수없이 평생을 들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래서 지금은 오직 말씀이 중심이 되었나요?백골이 진토가 되어 가도록 말씀을 전심으로 따르고 있나요? ~ 아닙니다. 지금도 세상의 힘이 더 우선입니다. ~ 다시 말씀을 드리지만 이 세상의 그 세력은 영원하지 않습니다.
단지 구원을 위한 하나님의 진노의 몽둥이일 뿐입니다.그런데 하나님의 진노의 몽둥이가 자신의 승리를 주는 줄로 알고 죽어라~ 지금까지도 따라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나라가 망했고 지구가 몸살을 앓고 있는데도, 여전히 죽어라~ 세상의 힘을 따라가다가 백골이 진토가 되고 말더라는 것입니다.누가 세상의 힘을 죽도록 따라가고 있다고요? ‘자기가 아니라 남이 죽도록 세상을 따라가고 있다’라고 하는데~
입술에 침이나 바르고 거짓말을 하세요!세상의 힘과 능력을 보고 따라가면 망합니다. 얼마나 더 듣고 들어야지만 하나님만을 백골이 진토가 되도록 따라갈까요? 단지 하나님의 진노의 도구에 불과한 힘의 세상을 따라가면 망하는데, 망하고 나서 후회하면 이런 절망은 없기에, 나중에 돌아보면서 가슴을 치면서 통탄하는 일은 막아야 되기에, 오늘 이 말씀을 전하고 있습니다.
오늘의 이 경고의 말씀이 여러분들의 마지막이 되시고 우리의 남은 시간과 삶은 오직 성전 보수와 숙정을 위한 날만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더 이상 성경을 짐짝처럼 여기지 마시고, 백골이 진토가 되도록 마음 판에 말씀을 새기셔야 합니다.그래서 하나님의 귀한 은혜와 생명을 나누는 일에 쓰임 받는 일꾼들이 다 되시기를 바랍니다. 나는 괜찮겠지 하면서 방심하다가 갑자기 버려지는 자신이 되지 않아야 합니다.
(2) 사단의 시험을 하나님만을 경배하라는 예수님의 그 선언으로 간단하게 제압하시는 것을 통하여, 강력한 이 사단의 세력까지도 다 하나님께서 지배, 통제하시고 계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렇게 사단과 하나님이 연관이 있다고 하여 질서와 원리와 도덕과 윤리까지도 무시하시는 하나님으로 이해를 하시면 안 됩니다.
하나님께서 악의 세력을 인정하고 이 세상을 당분간 맡기신 이유는 오직 한 가지 때문입니다. 택함을 받은 자녀들이 타락하여 부패하게 되면 이에 대한 체벌과 징계 차원에서의 몽둥이가 필요하셨기 때문입니다.
수23:11-13입니다.
(수 23:11)
그러므로 스스로 조심하여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
(수 23:12)
너희가 만일 돌아서서 너희 중에 남아 있는 이 민족들을 가까이 하여 더불어 혼인하며 서로 왕래하면
(수 23:13)
확실히 알라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 민족들을 너희 목전에서 다시는 쫓아내지 아니하시리니 그들이 너희에게 올무가 되며 덫이 되며 너희의 옆구리에 채찍이 되며 너희의 눈에 가시가 되어서 너희가 마침내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주신 이 아름다운 땅에서 멸하리라
한 곳만 더 봅니다. 삿2:1-5입니다.
(삿 2:1)
여호와의 사자가길갈에서부터보김으로 올라와 말하되 내가 너희를 애굽에서 올라오게 하여 내가 너희의 조상들에게 맹세한 땅으로 들어가게 하였으며 또 내가 이르기를 내가 너희와 함께 한 언약을 영원히 어기지 아니하리니
(삿 2:2)
너희는 이 땅의 주민과 언약을 맺지 말며 그들의 제단들을 헐라 하였거늘 너희가 내 목소리를 듣지 아니하였으니 어찌하여 그리하였느냐
(삿 2:3)
그러므로 내가 또 말하기를 내가 그들을 너희 앞에서 쫓아내지 아니하리니 그들이 너희 옆구리에 가시가 될 것이며 그들의 신들이 너희에게 올무가 되리라 하였노라
너희들의 옆구리 가시와 올무가 되게 하신다고 하십니다. 그렇습니다. 이스라엘, 교회를 괴롭히는 것은 막강한 세상의 세력들인데 그러나 그 세상 나라의 세력이 막강해지는 이유는 그들의 실력과 능력이 아니라 이스라엘과 교회가 타락했기 때문이라는 것을 늘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그래서 로마서에서 이렇게 말씀을 하십니다.
롬2:1-9입니다.
(롬 2:1)
그러므로 남을 판단하는 사람아, 누구를 막론하고 네가 핑계하지 못할 것은 남을 판단하는 것으로 네가 너를 정죄함이니 판단하는 네가 같은 일을 행함이니라
(롬 2:2)
이런 일을 행하는 자에게 하나님의 심판이 진리대로 되는 줄 우리가 아노라
(롬 2:3)
이런 일을 행하는 자를 판단하고도 같은 일을 행하는 사람아, 네가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줄로 생각하느냐
(롬 2:4)
혹 네가 하나님의 인자하심이 너를 인도하여 회개하게 하심을 알지 못하여 그의 인자하심과 용납하심과 길이 참으심이 풍성함을 멸시하느냐
(롬 2:5)
다만 네 고집과 회개하지 아니한 마음을 따라 진노의 날 곧 하나님의 의로우신 심판이 나타나는 그 날에 임할 진노를 네게 쌓는도다
하나님의 인자하심과 용납하심과 길이 참으심의 풍요함을 멸시하는, 진리를 좇지 아니하고 불의를 좇는 자에게 노와 분으로 하신다고 하십니다.그러나 이스라엘과 교회가 끝까지 하나님만을 경외한다면, 어떤 현실이 되었을까요?
솔로몬 때처럼 넉넉하고 평화로운 삶을, 전쟁과 재앙이 없는 코로나 19가 없는 태평천하가 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불순종하므로 우리의 삶은 위기와 불안과 공포 속에서 살게 된 것입니다.하지만, 감사하게도 그 위기 속에서의 이스라엘과 교회를 끝까지 포기하시지 아니하시고아브라함과 다윗의 약속을 기억하셨고, 기억하시사, 늘 은혜를 조용하게 항상 베풀어 주시다가 결국 우리 예수님을 통하여 구원을 이루십니다. 그 구원을 이루시려고 오신 주님께서 무엇이라고 말씀을 하십니까?
요15:18-20, 요17:14입니다.
(요 15:18)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면 너희보다 먼저 나를 미워한 줄을 알라
(요 15:19)
너희가 세상에 속하였으면 세상이 자기의 것을 사랑할 것이나 너희는 세상에 속한 자가 아니요 도리어 내가 너희를 세상에서 택하였기 때문에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느니라
(요 15:20)
내가 너희에게 종이 주인보다 더 크지 못하다 한 말을 기억하라 사람들이 나를 박해하였은즉 너희도 박해할 것이요 내 말을 지켰은즉 너희 말도 지킬 것이라
(요 17:14)
내가 아버지의 말씀을 그들에게 주었사오매 세상이 그들을 미워하였사오니 이는 내가 세상에 속하지 아니함 같이 그들도 세상에 속하지 아니함으로 인함이니이다
악의 세력의 공격과 핍박을 피할 수 없게 된다. 미움을 받게 된다.그 이유는 이스라엘과 교회는 세상에 속하지 않은 하나님의 나라 백성들이기에 그리고 이스라엘과 교회의 신앙을 위하여 허락된 몽둥이에 불과하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누구도 실족하는 경우는 한명도 없다는 것을 요17:12에서 말씀합니다.그렇기 때문에 앗수르처럼 착각을 하여 감히 하나님의 나라를 함부로 허락 없이 제압하려고 했다가는멸망을 당하게 되는 것입니다.
세상의 세력이 막강하기에 그리고 늘 공격을 받아야 되는 성도된 우리로써는 오직 믿음만으로 싸워가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물론 오직 믿음으로 싸워야 한다는 이 조건이 성도로써는 쉬워 보일 수 있겠지만 그 반대가 아닐까요?왜냐하면 우린 이미 힘으로만 싸워왔던 습관이 아주 뿌리 깊이 박혀 있기 때문입니다.
이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서는 믿음으로 싸울 수가 없을텐데,그럼 어떻게 하면 힘의 습관에서 벗어나 믿음으로 싸워 그 승리를 끝까지 유지할 수 있을까요?은혜가 힘이 될 때입니다. 그럼 은혜가 나의 힘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무엇보다도 은혜가 힘이 되려면,자기 자신이 얼마나 형편없는 존재인지를 깊이 정확하게 알고 뼈가 부서지는 그 아픔을 유지하지 않고서는믿음으로 세상 세력과 싸워 이길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내가 싸우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싸워 주시는 전쟁 현실이기 때문입니다. 만약에 내가 괜찮은 자로 인정을 하게 되면 누가 하나님에게 부탁을 할 수 있을까요?그래서 사도 바울이 어떤 고백을 합니까?
고후11:30, 12:10입니다.
(고후 11:30)
내가 부득불 자랑할진대 내가 약한 것을 자랑하리라
(고후 12:10)
그러므로 내가그리스도를 위하여 약한 것들과 능욕과 궁핍과 박해와 곤고를 기뻐하노니 이는 내가 약한 그 때에 강함이라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누구의 기도를 응답하시던가요?
눅18:9-14입니다.
(눅 18:9)
또 자기를 의롭다고 믿고 다른 사람을 멸시하는 자들에게 이 비유로 말씀하시되
(눅 18:10)
두 사람이 기도하러 성전에 올라가니 하나는 바리새인이요 하나는 세리라
(눅 18:11)
바리새인은 서서 따로 기도하여 이르되 하나님이여 나는 다른 사람들 곧 토색, 불의, 간음을 하는 자들과 같지 아니하고 이 세리와도 같지 아니함을 감사하나이다
(눅 18:12)
나는 이레에 두 번씩 금식하고 또 소득의 십일조를 드리나이다 하고
(눅 18:13)
세리는 멀리 서서 감히 눈을 들어 하늘을 쳐다보지도 못하고 다만 가슴을 치며 이르되 하나님이여 불쌍히 여기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하였느니라
(눅 18:14)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에 저 바리새인이 아니고 이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받고 그의 집으로 내려갔느니라 무릇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 하시니라
자기를 낮춘 세리의 기도입니다. 그러나 힘이 있는 자기를 높인 바리새인에 대하여서는 어떤 책망을 하시던가요?
마23:1-12입니다.
(마 23:1)
이에 예수께서 무리와 제자들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마 23:2)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모세의 자리에 앉았으니
(마 23:3)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그들이 말하는 바는 행하고 지키되 그들이 하는 행위는 본받지 말라 그들은 말만 하고 행하지 아니하며
(마 23:4)
또 무거운 짐을 묶어 사람의 어깨에 지우되 자기는 이것을 한 손가락으로도 움직이려 하지 아니하며
(마 23:5)
그들의 모든 행위를 사람에게 보이고자 하나니 곧 그 경문 띠를 넓게 하며 옷술을 길게 하고
(마 23:6)
잔치의 윗자리와 회당의 높은 자리와
(마 23:7)
시장에서 문안 받는 것과 사람에게 랍비라 칭함을 받는 것을 좋아하느니라
(마 23:8)
그러나 너희는 랍비라 칭함을 받지 말라 너희 선생은 하나요 너희는 다 형제니라
(마 23:9)
땅에 있는 자를 아버지라 하지 말라 너희의 아버지는 한 분이시니 곧 하늘에 계신 이시니라
(마 23:10)
또한 지도자라 칭함을 받지 말라 너희의 지도자는 한 분이시니 곧 그리스도시니라
(마 23:11)
너희 중에 큰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하리라
(마 23:12)
누구든지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누구든지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
이 책망에서 벗어나 칭찬을 받기 위해서는 오직 한 길입니다. 들어도, 들어도, 망하는 길로 가지 못해 안달하는 자기를 믿지 말고, 아주 작은 것부터라도 내려놓으시면 됩니다.큰 결심이 아닙니다. 일초일전을 가장 소중하게 여기시면 됩니다. 그것이 칭찬을 받는 비법입니다. 일초일전에서 무너지는 법이지, 한꺼번에 별안간 무너지는 법은 없습니다. 더 이상 속지 마시고 철저하게 준비하시는 남은 시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