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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돌교회
8/22/2021 열왕기상 20:1-43 본문
말씀: 왕상 20:1-43
제목: 이합에게 주신 승리- 나를 보고, 듣는 자의 복
북이스라엘은 당시 초강대국이었던 앗수르 또는 앗시리아 라고 하는 나라에 주전722년에 멸망을 당하고, 남 유다는 바벨론에 주전 587년에 멸망을 당한 다음에 주전 561-538년 사이에 예레미야가 기록한 열왕기서입니다. 그렇다면 오늘의 왕상20장의 말씀은 망하기 직전에 기록된 말씀이 아니라 망한 다음에 왜 북이스라엘이 망하게 되었는지를 말씀하는 내용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런 이스라엘의 역사를 통하여 무엇을 배울 수가 있겠습니까? 그러면 안 된다는 것을 배우게 될 것입니다. 어떻게 하면 망하게 되는지 알게 하는 말씀이기도 합니다.
성경은 성도들의 세상의 승리, 번영, 형통, 건강에 대한 말씀이 중심이 아니라 이스라엘이 왜 망했는지 그 사실을 정확하게 조목조목 밝혀서 지금 너희들은 그 망했던 이스라엘의 전철을 밟지 말라는 뜻에서의 말씀입니다. 성경이 하시는 말씀, 또는 신앙의 삶은 단 한 길입니다. 이런 저런 사랑 이야기, 전쟁 이야기, 말로 다 할 수 없는 부끄러운 이야기들과 기적과 기사의 이야기들로 기록되어 있고, 축복과 저주에 대한 말씀도 많지만, 결론은 창조주 하나님께 항복(降伏)하라, 순종(順從)하라! 찬송의 삶을 살라는 것입니다.
물론 여기에는 하나님의 강제적인 힘과 압박이 아닌 자유의지를 통한 항복과 순종과 찬송입니다. 그래서 이렇게 긴 이야기들이 수천 년에 걸쳐서 온갖 이야기들도 가릴 것이 없이 서슴없이 다 남기도록 하셨습니다. 즉 무엇이 복인지를 알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오늘도 보셔서 알고 있으시지만, 전쟁이야기입니다. 이 전쟁이야기를 왜 주셨을까요? 승리의 하나님을 통하여 이 세상에서 형통하라는 이야기가 결코 아닙니다. 우리는 이런 전쟁이야기가 단지 세상에서 강한 나라들만이 할 수 있는 전쟁이 아닌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인류 역사의 모든 크고 작은 전쟁 심지어 한 생명이 죽고 사는 문제까지도 다 하나님의 작정이요 계획이요 섭리입니다. 그 차원에서 오늘의 말씀도 이해를 하셔야 합니다. 지금 우리 주변에서 나타나고 있는 재앙들도 보면, 성경하고 상관이 없는 사건으로 보면 안 됩니다. 이미 주전1400년경의 쓰여진, 신명기 말씀을 통하여 경고하신 바 있습니다. 신28:15-29까지만 봅니다.
28:15 네가 만일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순종하지 아니하여 내가 오늘 네게 명령하는 그의 모든 명령과 규례를 지켜 행하지 아니하면 이 모든 저주가 네게 임하며 네게 이를 것이니
28:16 네가 성읍에서도 저주를 받으며 들에서도 저주를 받을 것이요
28:17 또 네 광주리와 떡 반죽 그릇이 저주를 받을 것이요
28:18 네 몸의 소생과 네 토지의 소산과 네 소와 양의 새끼가 저주를 받을 것이며
28:19 네가 들어와도 저주를 받고 나가도 저주를 받으리라
28:20 네가 악을 행하여 그를 잊으므로 네 손으로 하는 모든 일에 여호와께서 저주와 혼란과 책망을 내리사 망하며 속히 파멸하게 하실 것이며
28:21 여호와께서 네 몸에 염병이 들게 하사 네가 들어가 차지할 땅에서 마침내 너를 멸하실 것이며
28:22 여호와께서 폐병과 열병과 염증과 학질과 한재와 풍재와 썩는 재앙으로 너를 치시리니 이 재앙들이 너를 따라서 너를 진멸하게 할 것이라
28:23 네 머리 위의 하늘은 놋이 되고 네 아래의 땅은 철이 될 것이며
28:24 여호와께서 비 대신에 티끌과 모래를 네 땅에 내리시리니 그것들이 하늘에서 네 위에 내려 마침내 너를 멸하리라
28:25 여호와께서 네 적군 앞에서 너를 패하게 하시리니 네가 그들을 치러 한 길로 나가서 그들 앞에서 일곱 길로 도망할 것이며 네가 또 땅의 모든 나라 중에 흩어지고
28:26 네 시체가 공중의 모든 새와 땅의 짐승들의 밥이 될 것이나 그것들을 쫓아줄 자가 없을 것이며
28:27 여호와께서 애굽의 종기와 치질과 괴혈병과 피부병으로 너를 치시리니 네가 치유 받지 못할 것이며
28:28 여호와께서 또 너를 미치는 것과 눈 머는 것과 정신병으로 치시리니
28:29 맹인이 어두운 데에서 더듬는 것과 같이 네가 백주에도 더듬고 네 길이 형통하지 못하여 항상 압제와 노략을 당할 뿐이리니 너를 구원할 자가 없을 것이며
특히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마지막 때가 되면 이 세상이 어떤 증세가 되는지도 말씀하셨는데,
마24:1-14입니다.
24:1 예수께서 성전에서 나와서 가실 때에 제자들이 성전 건물들을 가리켜 보이려고 나아오니
24:2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가 이 모든 것을 보지 못하느냐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고 다 무너뜨려지리라
24:3 예수께서 감람 산 위에 앉으셨을 때에 제자들이 조용히 와서 이르되 우리에게 이르소서 어느 때에 이런 일이 있겠사오며 또 주의 임하심과 세상 끝에는 무슨 징조가 있사오리이까
24:4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가 사람의 미혹을 받지 않도록 주의하라
24:5 많은 사람이 내 이름으로 와서 이르되 나는 그리스도라 하여 많은 사람을 미혹하리라
24:6 난리와 난리 소문을 듣겠으나 너희는 삼가 두려워 말라 이런 일이 있어야 하되 아직 끝은 아니니라
24:7 민족이 민족을, 나라가 나라를 대적하여 일어나겠고 곳곳에 기근과 지진이 있으리니
24:8 이 모든 것은 재난의 시작이니라
24:9 그 때에 사람들이 너희를 환난에 넘겨 주겠으며 너희를 죽이리니 너희가 내 이름 때문에 모든 민족에게 미움을 받으리라
24:10 그 때에 많은 사람이 실족하게 되어 서로 잡아 주고 서로 미워하겠으며
24:11 거짓 선지자가 많이 일어나 많은 사람을 미혹하겠으며
24:12 불법이 성하므로 많은 사람의 사랑이 식어지리라
24:13 그러나 끝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24:14 이 천국 복음이 모든 민족에게 증언되기 위하여 온 세상에 전파되리니 그제야 끝이 오리라
신명기에서의 경고와 예수님의 마지막 때의 증세는 결국 인간의 타락이 그 이유입니다. 그런데 종말까지 가면서, 이 지구의 상태는 인간의 타락으로 점점 심각해지지만, 감사하게도 복음은 계속적으로 땅 끝까지 전파가 되게 하십니다. 특히 그 사이에서 하나님의 심판과 구원은 언제나 반복적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열왕기상의 말씀에서도 알 수 있었습니다. 나라가 나뉘기 전에는, 순종하므로 천하를 다스리게도 하시고, 타락으로 나라가 나뉜 열왕기에 들어와서는 북이스라엘은 금송아지와 바알, 아세라 신을 믿어 극심한 가뭄으로 절체절명의 위기에 빠지기도 합니다. 그런데도 회개가 없자, 하나님께서는 갈멜 산에서의 850:1로 싸워 하나님만이 진정한 신이 되심을 보여주시기까지 하셨습니다. 그러나 당시 아합 왕은 끝까지 바알만을 믿더라는 것입니다. 결국 아람 왕 벤하닷을 중심으로 연합군 왕 32명을 동원하여 사마리아를 완전하게 포위합니다. 수많은 적, 연합군이 사마리아를 둘러쌓은 것입니다. 그런데 보세요! 왕상20:13-21입니다.
20:13 한 선지자가 이스라엘의 아합 왕에게 나아가서 이르되 여호와의 말씀이 네가 이 큰 무리를 보느냐 내가 오늘 그들을 네 손에 넘기리니 너는 내가 여호와인 줄을 알리라 하셨나이다
20:14 아합이 이르되 누구를 통하여 그렇게 하시리이까 대답하되 여호와의 말씀이 각 지방 고관의 청년들로 하리라 하셨나이다 아합이 이르되 누가 싸움을 시작하리이까 대답하되 왕이니이다
20:15 아합이 이에 각 지방 고관의 청년들을 계수하니 이백삼십이 명이요 그 외에 모든 백성 곧 이스라엘의 모든 자손을 계수하니 칠 천 명이더라
20:16 그들이 정오에 나가니 벤하닷은 장막에서 돕는 왕 삼십이 명과 더불어 마시고 취한 중이라
20:17 각 지방의 고관의 청년들이 먼저 나갔더라 벤하닷이 정탐꾼을 보냈더니 그들이 보고하여 이르되 사마리아에서 사람들이 나오더이다 하매
20:18 그가 이르되 화친하러 나올지라도 사로잡고 싸우러 나올지라도 사로잡으라 하니라
20:19 각 지방 고관의 청년들과 그들을 따르는 군대가 성읍에서 나가서
20:20 각각 적군을 쳐죽이매 아람 사람이 도망하는지라 이스라엘이 쫓으니 아람 왕 벤하닷이 말을 타고 마병과 더불어 도망하여 피하니라
20:21 이스라엘 왕이 나가서 말과 병거를 치고 또 아람 사람을 쳐서 크게 이겼더라
엄청난 수의 적 연합군을 하나님께서는 적은 인원으로 승리케 하십니다. 그런데 패배한 적 연합군이 포기하지 않고 다시 산의 신과 평야의 신이라는 미련한 수작을 부려 재정비하여 북이스라엘을 공격을 하지만, 결국 보세요! 왕상20:26-30입니다.
20:26 해가 바뀌니 벤하닷이 아람 사람을 소집하고 아벡으로 올라와서 이스라엘과 싸우려 하매
20:27 이스라엘 자손도 소집되어 군량을 받고 마주 나가서 그들 앞에 진영을 치니 이스라엘 자손은 두 무리의 적은 염소 떼와 같고 아람 사람은 그 땅에 가득하였더라
20:28 그 때에 하나님의 사람이 이스라엘 왕에게 나아와 말하여 이르되 여호와의 말씀에 아람 사람이 말하기를 여호와는 산의 신이요 골짜기의 신은 아니라 하는도다 그러므로 내가 이 큰 군대를 다 네 손에 넘기리니 너희는 내가 여호와인 줄을 알리라 하셨나이다 하니라
20:29 진영이 서로 대치한 지 칠 일이라 일곱째 날에 접전하여 이스라엘 자손이 하루에 아람 보병 십만 명을 죽이매
20:30 그 남은 자는 아벡으로 도망하여 성읍으로 들어갔더니 그 성벽이 그 남은 자 이만 칠천 명 위에 무너지고 벤하닷은 도망하여 성읍에 이르러 골방으로 들어가니라
그날, 엄청난 수의 연합군이 적은 염소 떼에 불과한 북이스라엘에게 패배합니다. 하루에 보병 십만 명을 죽입니다. 그리고 도망하고 남은 자, 27,000명까지도 성벽이 무너져 다 죽고, 단지 벤하닷만 숨게 됩니다. 이 정도가 되면 이젠, 회개하고 하나님께로 돌아와야 되는 것이 아닌가요?
그러나 아무도 회개하지 않고 오히려 아합 왕은 자기 멋대로 아람 왕 벤하닷과 동맹을 맺더라는 것입니다. 이런 아합 왕을 보면서 무슨 생각을 할 수 있나요? 가뭄으로도 안 되고, 승리케 해 주셔도 안 되는 북이스라엘의 아합 왕입니다. 그런데 오늘 말씀과 너무나 똑같은 일이 지금 벌어지고 있다는 것을 느끼고 계십니까?
얼마 전의 아이티에서 또 일어난 지진 피해, 그리스와 미동북부의 화재 피해, 한꺼번에 쏟아진 홍수로 인한 일본과 중국의 피해, 버어마 군대와 아프카니스탄의 텔라반 점령으로 인한 인명피해, 특히 코로나19 전염병으로 인한 위기에 대하여 여러 channel을 통하여 듣고 보면서, 성도라면, 종말이구나! 예수님이 곧 재림하시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긴장하게 됩니다.
특히 이런 지경에서도 아합 왕처럼 지독하게 멋대로 사는 사람들을 보면서, 회개하고 종말을 준비하는 믿음의 자신과 이웃들을 보면, 이런 복된 자들이 있나? 라고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게 됩니다.
오늘도 지독하게 말을 듣지 않는 아합 왕을 보면서, 누가 복된 자인지를 또 다시, 확인하고 느끼면서 말씀을 준비하게 되었습니다. 특히 우리 한국의 경우를 봅니다. 전 세계가 코로나 19와 코로나 델타 변종으로 수십, 수백만 명이 세계 곳곳에서 죽어가고 있습니다. 정말 큰 위기입니다. 그래서 한국의 경우에도, 마스크를 쓰게 하고 사람의 간격을 두게 하면서 이젠, 교회는 물론 식당까지도 시간과 모임을 통제시키고 있습니다.
그랬더니 정부는 교회의 집회의 자유를 결코 막을 수 없다고 대대적으로 시위를 하고 있고, 식당에서는 업주가 비밀 룸까지 만들어 영업을 하는 자들과 와서 마시는 자들을 보면서, ‘와~ 아합 왕이 따로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되더라고요. 그들이 정말 제정신입니까? 말이 된다고 생각하나요?
돈을 벌려고 그리고 즐기려고 목숨까지도 포기하면서 술을 마시려는 사람들이 적지 않더라는 것을 보면서 기가 막힐 노릇이지만, 생명의 말씀을 붙들고 살아가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얼마나 감사한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말씀을 모르는 자들을 보면, 죄송하지만 거의가 다 미쳤다고 할 수 있는데, 아닌가요? 여러분들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제가 보건대 미친 것이 맞는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떤가요? 우리는 제 정신을 갖고 있나요? 그들이 그 와중에 숨어서 술을 팔고, 그 비밀 룸에서 술을 마시는 자들을 보면서, 혹시 나는 그들과 완전 다르다는 생각을 하지는 않았습니까? 아니면 그건 개인의 자유이기에 뭐라고 할 수 없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은 아닙니까? ~ 지금 이런 말씀을 제가 여러분에게 왜 하고 있을까요? 우리 중에도 미친 사람들과 다르지 않은, 아합 왕과 너무나 똑같은 분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 특히 요즘 젊은이들을 보세요!
아니 젊은이들만이 아니라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지금 어디에 빠져서 방황하고 있나요? computer, I-phone이 자기의 영혼을 잡아먹고 있는데,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병들게 하고 있기에, 그래서 주의하라고 그렇게 방송을 하고 교육을 하고 있지만, 스스로 통제하고 있고 절제하고 있나요? ~ 절제는커녕, craving하고 hook up이 되어 얼마나 큰 damage를 자신에게 주고 있고, 자기만이 아니라 주변까지도 병들게 하고 있는지, 모르고 있는 사람이 있나요?
지금처럼 computer, I-phone을 통제하지 못하여 끌려가면 결국 다 죽습니다. 다 망합니다. 사람은 만나 인격적인 소통을 해야 하는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특히 하나님하고의 만남은 절대적인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과 하나님과의 인격적인 만남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어떤가요?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들이 무엇이 힘이요 자랑입니까? 재물입니다. 돈이 최우선입니다. 돈이 힘이 되다가 보니깐, 결국 우리 주변이 아합 왕으로 채워지면서 이런 무서운 난리 난리가 곳곳에서 터지게 되는 것인데, ~
다들 정신을 못 차리고 있습니다. 사람 중심이 되지 못하고 돈이 중심이 되면, 회생과 회복이 되지 않으면서 망하는 것입니다. 바로 오늘 말씀에 등장하는 아합 왕과 벤하닷도 다 힘, 물질이 모든 것이라고 믿는 왕들입니다. 힘만을 원하는 자들의 특징은 자기하고 싶은 대로 하더라는 것입니다.
요즘 사람들과 무엇이 다릅니까? 다르지 않습니다. 망하는 자들은 언제든지 아합의 선택을 합니다. 하지 말라는 것을 합니다. 물론 그 기준은 하나님의 말씀이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면 다 살지만, 하나님의 말씀이 아닌 돈과 물질이 힘과 중심이 되면 망하기 때문입니다. 돈과 힘은 모든 사람들을 늘 착각하게 합니다. 자기의 죽음에 대한 준비를 전혀 못하게 합니다. 당장 오늘만 생각하게 합니다.
그래서 이런 미련하고 어리석은 질문을 하게 됩니다. 대답해 보세요! 하나님의 능력과 자기의 능력 중에서 어느 쪽이 더 강하고 지혜롭고 복되게 할까요? 또는 말씀에 순종하는 것과 멋대로 사는 것 중에 무엇이 잘하는 것일까요? 너무나 빤한 질문이라고 생각하실 것입니다.
그러나 빤한데, 다들 돈, 돈, 돈을 죽는 날까지 잊지 못하여 자기 영혼을 팔아먹고 있나요? 돈 만이 아니라, computer, I-phone, 또는 자기의 악한 어떤 습관도 어떤 해가 되는지 몰라서 십 수 년 간, 기회를 주시고 있지만, 끊어내지 못하고 있나요? 물론 하나님이 누구신지를 조금이라도 알고 있다면, 성경을 들고 주일마다 교회에 다니고 있는 사람이라면, 무엇이 우선순위인지를 모르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런데 무엇이 문제입니까? 아는 것이 문제입니까? 모르는 것이 문제입니까? 아니요! 몰라서 이겨내지 못하는 것이 아닙니다. 몰라서 잘못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다들, 알아도 자기 하고 싶은 대로 하더라는 것입니다.
빤한 질문을 하면, 다 우습게 여기면서도, 어떤가요? 결코 해서는 안 되는 짓을 얼마나 열심히 숨어서 하고 있나요? ~ 하라는 것은 하지 않고 있고, 하지 말라는 것은 꼭 하더라는 것입니다. 약 3,700년 전의 아합 왕도 보세요! 지금 우리들과 무엇이 다릅니까? 너무나 똑같기에 드리는 말씀입니다. 아합 왕이 아주 작은 인원으로 바다의 모래처럼 많은 연합된 적군들을 하나님의 도움으로 제압하여 대승하였다면, 어느 길을 따라가야 할까요? 당연히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해야 하는데, 어느 길을 선택합니까? 여전히 망하게 하는 바알과 아세라를 따르지 못하여 안달하더라는 것입니다. 몰라서 못가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이란 존재가 만물의 영장이란 말도 있듯이 사람은 원래 존귀하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만물의 영장(영묘한 힘을 가진 우두머리)이라고 하면 그만한 지혜와 분별을 가지고 있는 존재들인데, 보세요! 분별과 지혜가 있는지를 보세요! 만물의 영장이라면 그 어떤 최소한의 기준이 있어야 되는 것이 아닐까요?
그런데, 사람이 나고 돈이 났나요? 아니면, 돈이 나고 사람이 났나요? 라고 질문을 드리면, 말씀을 드린 대로 마땅하게 전자이어야 되는데 후자를 택하더라는 것입니다. 놀랍게도 누구에게든지, 사람이 우선인가요? 돈이 우선인가요? 라고 질문하면 대답은 당연히 사람이라고 하면서 실제로는 사람이 아니라 돈을 다수가 택하더라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무분별하고 무지하여 근본 없는 짓을 하는 것을 보면, 참으로 무섭습니다. 돈 때문에 사람을 죽이는 세상에서 무엇을 할 수 있을까요? 그런 세상에서 다 가질지라도 그것이 무슨 의미와 가치가 있을까요? 아니 어떻게 사람을 돈과 힘으로 평가합니까?
이런 무식과 이런 무경우는 저주요 재앙인데, 다들 어떤가요?~ 태연합니다. 놀랍게도 너무나 태연하다고요! 돈이 우선이 되어, 그래서 천지가 뒤집어지고 있는데, 아니 어떻게 다들 태연할 수 있을까요?~ 모든 것이 다 사람 중심이어야 합니다. 막2:27입니다. “또 이르시되 안식일이 사람을 위하여 있는 것이요 사람이 안식일을 위하여 있는 것이 아니니”
그런데 어떻게 돈이 중심일 수 있을까요? 우린 지금 회생과 회복의 근본과 기준이 없는 혼돈, 공허, 흑암 속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런 무지하고 무경우가 우선된, 정신 나간 세상 안에서 우린 어떻게 해야 할까요? 회생과 회복의 말씀을 떠나면 안 됩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초등학생만 되어도, 돈을 많이 주는 사람이 좋다는 것이 아닙니까? 이러다가보니, 진리의 말씀에 대하여 어떤 생각을 사람들이 할까요? 아합 왕처럼 개 짖는 소리정도로 여기지, 그 이상으로 여기지 않고 있더라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개, 고양이하고는 같이 살아도 진리의 말씀하고는 근처도 가지 않고 있는 것이 아닙니까?~
왜 만물의 영장이라고 극찬을 받는 존귀한 자들이 왜 우선순위에 대한 분별과 생각도 못하는 것입니까? 물론 지금의 문제가 아닙니다. 오늘 말씀에 등장하는 3000년 전의 인물들도, 다 마찬가지입니다. 아합 왕도, 아람의 벤하닷 왕도 무엇이 우선인지, 무엇을 선택해야 되는지를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다들 자기 하고 싶은 대로 하고 있습니다. 자기가 기준입니다. 심지어 하나님께서 친히 임재 하셔서 작은 군사로 큰 적군을 물리치게 해 주셔도 어떤 짓거리를 하던가요? 왕상21장을 보세요! 1-6절입니다.
21:1 그 후에 이 일이 있으니라 이스르엘 사람 나봇에게 이스르엘에 포도원이 있어 사마리아의 왕 아합의 왕궁에서 가깝더니
21:2 아합이 나봇에게 말하여 이르되 네 포도원이 내 왕궁 곁에 가까이 있으니 내게 주어 채소 밭을 삼게 하라 내가 그 대신에 그보다 더 아름다운 포도원을 네게 줄 것이요 만일 네가 좋게 여기면 그 값을 돈으로 네게 주리라
21:3 나봇이 아합에게 말하되 내 조상의 유산을 왕에게 주기를 여호와께서 금하실지로다 하니
21:4 이스르엘 사람 나봇이 아합에게 대답하여 이르기를 내 조상의 유산을 왕께 줄 수 없다 하므로 아합이 근심하고 답답하여 왕궁으로 돌아와 침상에 누워 얼굴을 돌리고 식사를 아니하니
21:5 그의 아내 이세벨이 그에게 나아와 이르되 왕의 마음에 무엇을 근심하여 식사를 아니하나이까
21:6 왕이 그에게 이르되 내가 이스르엘 사람 나봇에게 말하여 이르기를 네 포도원을 내게 주되 돈으로 바꾸거나 만일 네가 좋아하면 내가 그 대신에 포도원을 네게 주리라 한즉 그가 대답하기를 내가 내 포도원을 네게 주지 아니하겠노라 하기 때문이로다
왕이 더 갖지 못해 안달하여 근심하더라는 것입니다. 남의 포도밭이 좋아서 빼앗지 못하여 근심하는 아합 왕입니다. 결국 포도밭 주인인 나봇을 죽이고 빼앗고 맙니다. 물질, 재산, 땅, 밭이 사람의 목숨보다 소중하다는 이들의 특징은 지금, 물질에 빠져서 자기의 권리와 목숨까지도 포기하고 사는 정신 나간 사람들과 무엇이 다릅니까?
서로 다른 역사와 서로 다른 민족들과 서로 다른 나라들이 심지어 언어까지도 서로 다를지라도 죄만큼은 완전 동일하다는 성경의 고발을 보면, 성경이 진리라는 것을 제대로 알게 합니다. 죄가 동일하다가보니깐, 다들 나쁜 짓들은 서로가 얼마나 잘 따라서 하던가요? 그러나 자기와 이웃을 살리는 생명의 말씀인 성경은 남녀노소,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모든 각 나라와 전 역사를 보면, 한결같이 좋아하는 사람들이 없다는 것이 아닙니까?
그래서 성경이 세상의 물질과 힘에 점점 더 밀리면서 지금 우리 주변은 절망 그 자체입니다. 아람 왕 벤하닷이 힘 좀 있다고 하여 제멋대로 하고 있습니다. 아니 무슨 이스라엘이 자기의 것입니까? 그리고 전쟁에서 졌으면 진 것이지, 무슨 하늘의 신이 따로 있고 땅의 신이 따로 있고 산과 평지의 신이 다르다고 하는데, 웃기지 않나요?
게다가 아합은 어떤가요? 누가 자기의 형제이던가요? 비유를 맞추어주니까, 벤하닷이 형제가 되어 심판을 받아야 되는 자를 살려줍니다. 그리고 나서 근심하고 있습니다. 하나같이 기준이 없습니다. 자기가 기준입니다. 그러나 자기 기준은 기준이 아닙니다. 감정과 여건에 따라서 달라지는 것은 변덕이지 기준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회생과 회복의 기준은 영원히 요지부동한 것이어야 합니다.
영원히 변함이 없는 진리만이 전 역사와 모든 인생에서의 기준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그 기준을 가진 자들의 고백을 봅시다. 롬14:7-9입니다.
“우리 중에 누구든지 자기를 위하여 사는 자도 없고 자기를 위하여 죽는 자도 없도다,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다, 이를 위하여 그리스도께서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셨으니 곧 죽은 자와 산 자의 주가 되려 하심이라”
모든 인간들에게 있어서 진리는 사나 죽으나 하나님만이 기준이고 중심이 되어야 합니다. 그렇다면 어떤 선택이 능력이요 복일까요? 아직도 벤하닷의 선택, 아합의 선택처럼 기준이 없는 망하는 길을 성도가, 교회가 원할 수 있나요? 세상이 어두우면 어두울수록, 세상에 빠진 죽은 자들은 더 세상을 어둡게 하지 못해 안달하겠지만, 성도들은 흑암의 세력이 창궐하면 창궐할수록 말씀에 대한 갈급함은 더욱 간절해져야 맞는 것입니다.
사나 죽으나 하나님만을 의지하는 성도들은 권세를 가진 존재인데 어떤 권세인지 아나요? ~ 성도들은 흑암 혼돈 공허 속에서도 요동하지 않는 자들입니다. 죽지 않는 생명을 가진 자들입니다. 영원히 죽지 않습니다. 왜요? 생명의 떡이신 예수님을 믿는 자들이기 때문입니다. 요6:47-59입니다.
6:47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믿는 자는 영생을 가졌나니
6:48 내가 곧 생명의 떡이로다
6:49 너희 조상들은 광야에서 만나를 먹었어도 죽었거니와
6:50 이는 하늘에서 내려오는 떡이니 사람으로 하여금 먹고 죽지 아니하게 하는 것이니라
6:51 나는 하늘에서 내려온 살아 있는 떡이니 사람이 이 떡을 먹으면 영생하리라 내가 줄 떡은 곧 세상의 생명을 위한 내 살이니라 하시니라
6:52 그러므로 유대인들이 서로 다투어 이르되 이 사람이 어찌 능히 자기 살을 우리에게 주어 먹게 하겠느냐
6:53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인자의 살을 먹지 아니하고 인자의 피를 마시지 아니하면 너희 속에 생명이 없느니라
6:54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영생을 가졌고 마지막 날에 내가 그를 다시 살리리니
6:55 내 살은 참된 양식이요 내 피는 참된 음료로다
6:56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내 안에 거하고 나도 그의 안에 거하나니
6:57 살아 계신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시매 내가 아버지로 말미암아 사는 것 같이 나를 먹는 그 사람도 나로 말미암아 살리라
6:58 이것은 하늘에서 내려온 떡이니 조상들이 먹고도 죽은 그것과 같지 아니하여 이 떡을 먹는 자는 영원히 살리라
6:59 이 말씀은 예수께서 가버나움 회당에서 가르치실 때에 하셨느니라
죽지 않을진대, 다 가진 자들인데, 좀 더 가지려고 하십니까? 영원히 평안이 넘치는 하나님의 나라로 돌아갈 성도가 좀 더 편해 보자고 다투기까지 하십니까?
아니 어찌 보지 못하고 듣지 못하는 죽은 세상 사람들에게 조소와 조롱을 당할 수 있단 말입니까? 그렇다면 이건 아닙니다. 오늘 말씀에 등장하는 벤하닷과 아합을 보세요! 살길을 포기하고 죽음의 길만을 따라갑니다. 지금도 코로나 19로 죽어 가는데, 여행을 가겠다고 하는 자들, 돈을 벌어보겠다고 비밀 룸을 만들어 놓고 숨어서 부끄러운 영업을 하는 곳에서 쾌락의 시간을 가져보겠다고 하다가 현행범으로 체포된 자들을 보세요!
오늘 본문과 수천 년의 차이가 있지만, 무엇이 다릅니까? 성도라는 사람들이 computer, I-phone에 빠져서 시간을 낭비하여 죽은 자들로부터 조롱과 조소를 받고 있다면, 그것 또한 무엇이 다릅니까? 사망을 이긴 권세를 가진 자들이 어떻게 악의 세력에 속아 노예처럼 끌려가고 있다면 이보다 더 한심스러운 일이 어디 있을까요? 사망의 권세를 제압하여 영원한 승리자인 성도가 되었다면, 달라도 달라야 되는 것이 아닙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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