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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돌교회
11182018 신명기 31:9-29 본문
제목: 면제년의 초막절과 배반의 노래
오늘은 추수감사주일입니다.
올해는 어떤 수확을 풍성하게 하셨습니까? 복의 열매인 인내의 열매, 감사의 열매, 감동의 열매, 평강의 열매를 풍성하게 거두셨나요? 아니면 버림의 열매, 거두면 안 되는 세상의 열매, 썩어질 육신의 열매인 불평, 근심, 시기질투, 미움, 거짓, 변명과 핑계로 온 이 자리는 아닌지요? 그 결과는 지금 여러분들이 하나님 때문에 얼마나 감사하고 있는지 아니면 여전히 근심 걱정하고 있는 지로 파악이 되고도 남습니다.
그러나 인내하시고, 자비하신 하나님께서는 오늘도 여전히 또 회개의 기회를 주십니다. 내년에는 복의 열매를 거두라고 기회를 오늘도 또 주십니다. 그렇습니다. 올해에는, 신앙의 농사를 실패하셨다면 내년에는 넉넉하게 성령의 열매로 하나님에게 칭찬을 받는 추수감사절이 되시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말씀을 또 간절하게 드립니다. 억지로 자리를 지키지 마시고 전심으로 농부가 농사를 짓듯이, 진심과 힘을 다하여 주신 말씀을 듣고자 간절한 경청을 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실패의 원인이 돈과 실력이 없어서가 아니라 듣지 않기 때문이라는 것도 아시기를 바랍니다.
이제 시작합니다.
이스라엘 백성의 삶은 먹고 사는 것도 사는 것이지만, 일 년 내내 안식일, 매월, 유월절, 맥추절, 초막절, 칠월의 대 속죄일, 매 7년 마다 안식년, 희년까지, 늘 모이고, 드리고, 쉬다가 인생을 마감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특히 오늘 말씀에서도, 매 칠 년 끝 해, 면제년인 초막절에 율법을 낭독하게 합니다. 그러니까 안식년의 초막절입니다. 조금 후에 안식년과 초막절에 대하여 자세한 말씀을 드리겠지만, 잠시 설명을 드리면, 완전 회복된 너희들은 그 결과가 너희들의 실력과 노력에 의한 것이 아니라 다 하나님으로부터 거저 왔다는, 즉 은혜라는 사실을 결코 영원히 잊지 말라는 차원에서의 안식년의 면제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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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신앙의 현실은 순종과 감사의 삶이 아니라 하나님을 배반하고야 만다는 사실입니다. 무슨 뜻일까요? 신앙인들이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지 못하고 불평하고 원망하고 근심하고 늘 갈대와 같이 변덕스런 그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을 하십니까?
1. 많이 배웠지만 무식하고, 안다고 하지만 무지하고, 게다가 헛고생을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2. 전혀 쓸모없는 그런 자기가 자신의 삶의 주인이요 중심이기 때문입니다.
3. 자기가 아주 괜찮은 사람으로 대단한 착각을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어떤 평가를 내리시던가요?
롬1:18-23입니다. “하나님의 진노가 불의로 진리를 막는 사람들의 모든 경건치 않음과 불의에 대하여 하늘로 좇아 나타나나니, 이는 하나님을 알 만한 것이 저희 속에 보임이라 하나님께서 이를 저희에게 보이셨느니라, 창세기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게 되나니 그러므로 저희가 핑계치 못할찌니라, 하나님을 알되 하나님으로 영화롭게도 아니하며 감사치도 아니하고 오히려 그 생각이 허망하여지며 미련한 마음이 어두워졌나니, 스스로 지혜 있다 하나 우준(愚蠢)하게 되어, 썩어지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영광을 썩어질 사람과 금수와 버러지 형상의 우상으로 바꾸었느니라”
지난 금요일에는 bible study를 off 하였기에, 시간을 내서 늘 다니던 이발소를 가게 되었습니다. 조용히 머리를 깎고 있는데, 주변에서 사람들이 별안간 죽었다는 이야기를 하면서 서로가 안타깝다는 식으로 말을 하더라고요! 그리고 하는 소리들이 참으로 한치 앞도 내다보지 못하는 것이 인생이라고 하기에, 그래서 그들이 어떤 결론을 내릴지 기다리고 있었는데, 아무 소리가 없어서 할 수 없이 ‘기회다 하여!’ 한 마디를 했지요! 특히 한 마디를 한 이유가, 내 곁에서 머리를 깎던 내 나이 정도가 된 어떤 사람이 그 이발소에서 면도를 하는 50대인 미스 김이라는 분에게 이상한 농담도 하기에, 그래서 더욱 정신을 차리라는 뜻에서 던진 한 마디가! 그래, 그렇게 별안간 주변의 사람들이 죽어 간다면, 그러면 죽음을 준비해야 되잖아요! 왜 죽음은 준비하지 않고 있다가 죽어가는 것을 보면서 단지 입으로 안타깝다고 합니까? 아니! 어떻게 죽음 앞에서 돈 벌기에만 전심을 다할 수가 있냐고요!
-2-
그래서 세상이 망하고 있는데 성경에서 무엇이라고 하던가요? “빈손으로 왔고 빈손으로 돌아간다고 하시면서 사는 동안에는 입을 것과 먹을 것만으로도 족하라”고 하셨는데 지금 얼마나 욕심을 부리고 있냐고요? 게다가 다수의 교회들이 하는 설교가 예수를 믿으면 부자가 된다는 식으로 호도(糊塗)를 하고 있는데, 정말 심각하다고 그 한 마디를 했는데, 별안간 주변이 조용해지더니, 싸~ 하더라고요! 근데, 그때 내 머리를 깎던 전도사님이 나에게 귓속 말로, ‘목사님! {저 여자와 농담하던, 바로 옆에 있던} 저 사람도 목사입니다!’ 라고 하더라고요. 면도하는 여인과 농담하는 그 사람이 목사인지를 그때 알았고, 그래서 농담 따먹기를 하던 그 목사 때문에 주변 사람들에게 얼마나 민망했는지 모릅니다. 목사라는 자가 그러고 있었으니 같은 목사로서 창피하여 아무 소리도 못하고 바늘방석에 앉아 있는 꼴이 된 것입니다. 그래서 그냥 목사라는 그 사람이 머리를 다 깎고 곧 돌아가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는데, 내 머리를 깎던 전도사님이 하는 소리가, ‘목사님! 누가 성경처럼 그렇게 살 수 있어요! 참, 어렵지요!’ 또 변명, 핑계를 대기에 ‘그래서 신앙생활은 대단히 어려운 것입니다.’ 라고 하고 더 이상 말을 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우리끼리 좀 더 깊이 생각해 보자고요! 아니 신앙생활이 어렵다고 순종을 하지 않겠다는 말인데, 그럼 사는 것은 쉬워요? 공부는 쉬워요? 아니 노는 것은 쉬워요? 아니 하루 종일 누워 있는 것은 쉬워요? 다 어려운데, 왜 꼭 말씀을 지키라는 하나님의 말씀은 어렵다면서, 그럴듯한 핑계를 대면서 도망치고, 피하면서 화를 내고 있는데, 참! 한심합니다. 한심하지 않아요? 물론 사는 것이 어렵습니다.
당연히 순종도 얼마나 어려운지 오늘 본문에서도 구원의 하나님을 배반하고야 마는 너희들이라고 기막힌 예언의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결국 이렇게 자기가 중심인 신앙인들은 어떻습니까? 조금만 문제가 생겨도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여차하면 변명과 핑계를 만들어서 약삭빠르게 의기투합하여 진실한 주의 자녀들을 공격하면서 빠져나가려고만 합니다. 늘 이런 식으로 살기에 그들의 삶 자체가 깊이가 없을 뿐만 아니라 나이가 먹어가면서도 철이 나지 않습니다.
-3-
그러니 그런 자신의 인생을 통해 인내와 절제와 사랑을 기대하기란 하늘의 별따기일 뿐입니다. 그러니 배반할 수밖에 없습니다. 특히 애당초 순종하려고 하지 않기에 배반하게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순종하려고 하는 성도들은 배반이 아니라 살려달라는 고백을 간절하게 하게 될 것입니다. 이해를 하세요? 심각한 문제점은 성도된 자신들이 단지 순종이 어렵다는 이유만으로 아예 순종하려고 하지 않기에 아니, 순종을 하고 싶은 마음이 전혀 없기에 문제가 되고 만다는 뜻입니다.
우린 바로 순종할 수 없다는 부정적인 그 마음에서 벗어나야 하는데, 벗어나려면, 방법이 있어야 하는데 있습니까? 네! 있습니다. 순종이 정말 지독하게 안 되는 것을 알고, 그러나 끝까지 포기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순종을 하려고 해도 지독하게 안 되고 있지만, 그래도 끝까지 자리를 지켜내자는 것입니다. 그러면 배반이 아닌 순종이 된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영원히 배반하게 됩니다. 이제 무슨 뜻인지 이해가 되세요? 표정이 그런데, 다시 합니다.
순종(順從)할 생각도 할 마음도 없기에 그래서 기도의 삶, 말씀 묵상에 대하여 전혀 애를 쓰지 않고 있다면, 이해가 전혀 안 될 것입니다. 그렇게 하고 있지 않고 있다면, 그것보다 안타까운 일은 없기에, 목사된 저로서는 참 답답하지요! 답답한 이유가, 거룩한 절망을 모르면 절망이 올 수밖에 없지만, 거룩한 절망을 하면서 끝까지 인내하면 놀라운 기쁨과 승리의 맛을 보게 되는데 그 맛을 만들지 못하니까 답답하다는 것입니다. 순종하고자, 거룩한 몸부림을 쳐야 되는데, 거룩한 몸부림을 칠 때, 그때 믿음이 자란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특히 몸부림을 치고 있는 그때, 그 안타까운 마음을 완전하게 다 읽고 보고 계신 전능하신 만군의 하나님께, 도망치지 말고 하루도 거르지 말고 늘 다가가서 살려달라고 도움을 구하면, 하나님을 만나는 기회가 되고, 변화되어가는 자신을 만나게 되는데, 확인하고 싶으면 직접 날마다 해 보세요! 마치 보기 싫어도 늘 가족을 봐야 되듯이, 서로 피할 수가 없어서 계속적으로 만나고 있듯이, 바로 그렇게, 해 보세요! 왜 가족끼리는 해 나가면서 하나님에게는 하지 않으려고 합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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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단지 어렵다는 이유만으로 도망치는데, 이런 자기중심적인 삶이 얼마나 무서운 결과를 초래하는지, 결국 오늘 말씀처럼 하나님을 배반하게 되면서 들어가도 나아가도 복이 아니라 재앙만을 부르게 됩니다. 성도된 자들이 이 싸움, 이 거룩한 몸부림을 치지 않는 한, 스스로 주신 그 은혜를 깊이 인식하지 못하게 되고, 피곤한 삶을 피할 수도 없게 되고, 주변까지도 피곤하게 하면서, 잘못하면 아니 실제로 완전 위선자로서 살아가게 됩니다.
위선의 삶은 암보다 억만 배로 더 무서운 영적인 질병입니다. 문제는 자신의 위선이 괜찮을 것이라고 오판하고 있지만, 절대로 괜찮게 되는 일이 없기에 드리는 말씀입니다. 성도들은 반드시 그 대가를 받습니다. 그럼 그런 한심스런 자기중심의 삶에서, 하나도 필요 없는 죽은 자를 방불케 하여 썩은 냄새가 진동하는 자기중심의 삶에서 벗어나는 방법에 대하여 말씀을 드렸는데, 이젠, 그 해결방안을 오늘 신31장의 말씀 안에서 찾아보겠습니다. 제가 드린 방법과 다 같은 방법입니다.
먼저 신31:1-8의 말씀을 봅니다. “모세가 가서 온 이스라엘에게 이 말씀을 베푸니라 곧 그들에게 이르되 내가 오늘날 일백 이십세라 내가 더는 출입하기 능치 못하고 여호와께서도 내게 이르시기를 너는 이 요단을 건너지 못하리라 하셨느니라 여호와께서 이미 말씀하신 것과 같이 여호수아가 너를 거느리고 건널 것이요 네 하나님 여호와 그가 네 앞서 건너가사 이 민족들을 네 앞에서 멸하시고 너로 그 땅을 얻게 하실 것이며 여호와께서 이미 멸하신 아모리 왕 시혼과 옥과 및 그 땅에 행하신 것과 같이 그들에게도 행하실 것이라 여호와께서 그들을 너희 앞에 붙이시리니 너희는 내가 너희에게 명한 모든 명령대로 그들에게 행할 것이라 너는 마음을 강하게 하고 담대히 하라 그들을 두려워 말라 그들 앞에서 떨지 말라 이는 네 하나님 여호와 그가 너와 함께 행하실 것임이라 반드시 너를 떠나지 아니하시며 버리지 아니하시리라 하고 7모세가 여호수아를 불러 온 이스라엘 목전에서 그에게 이르되 너는 마음을 강하게 하고 담대히 하라 너는 이 백성을 거느리고 여호와께서 그들의 열조에게 주리라고 맹세하신 땅에 들어가서 그들로 그 땅을 얻게 하라 여호와 그가 네 앞서 행하시며 너와 함께하사 너를 떠나지 아니하시며 버리지 아니하시리니 너는 두려워 말라 놀라지 말라”
가나안 땅에서 영원히 함께하실 능력의 하나님만을 의지하고 타락한 자기중심에 완전히 빠져서 더럽기가 한량없는 가나안 7족속을 몰아내는데 조금도 두려워하지 아니하고 강하고 담대히 하여 몰아내라는 말씀을 하시고 나서, 9-13절의 말씀을 보세요! “모세가 이 율법을 써서 여호와의 언약궤를 메는 레위 자손 제사장들과 이스라엘 모든 장로에게 주고 그들에게 명하여 이르기를 매 칠년 끝 해 곧 정기 면제년의 초막절에 온 이스라엘이 네 하나님 여호와 앞 그 택하신 곳에 모일 때에 이 율법을 낭독하여 온 이스라엘로 듣게 할찌니 곧 백성의 남녀와 유치와 네 성안에 우거하는 타국인을 모으고 그들로 듣고 배우고 네 하나님 여호와를 경외하며 이 율법의 모든 말씀을 지켜 행하게 하고 또 너희가 요단을 건너가서 얻을 땅에 거할 동안에 이 말씀을 알지 못하는 그들의 자녀로 듣고 네 하나님 여호와 경외하기를 배우게 할찌니라”
매 칠년 끝 해 곧 정기 면제년의 초막절에 온 이스라엘 지경에 머물고 있는 모든 백성을 모아서 낭독하라 하십니다. 이 말씀이 해결책입니다.
그것은 첫째로, 매 칠년 끝 해 곧 정기 면제년의 초막절에 낭독하라는 말씀에서 그 힌트를 얻을 수 있습니다. 매 칠년 끝 해 곧 정기 면제년은 이스라엘의 절기인 안식년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안식년에 대하여 알지 못하면 이해가 안 됩니다.
레25:1-7을 봅니다. “여호와께서 시내산에서 모세에게 일러 가라사대 이스라엘 자손에게 고하여 이르라 너희는 내가 너희에게 주는 땅에 들어간 후에 그 땅으로 여호와 앞에 안식하게 하라 너는 육년 동안 그 밭에 파종하며 육년 동안 그 포도원을 다스려 그 열매를 거둘 것이나 제 칠년에는 땅으로 쉬어 안식하게 할찌니 여호와께 대한 안식이라 너는 그 밭에 파종하거나 포도원을 다스리지 말며 너의 곡물의 스스로 난 것을 거두지 말고 다스리지 아니한 포도나무의 맺은 열매를 거두지 말라 이는 땅의 안식년임이니라 안식년의 소출은 너희의 먹을 것이니 너와 네 남종과 네 여종과 네 품군과 너와 함께 거하는 객과 네 육축과 네 땅에 있는 들짐승들이 다 그 소산으로 식물을 삼을찌니라”
안식년으로써 매 7년이 되는 해가 되면 무조건 경작하지 못합니다. 그러니까 6년간은 경작하고 재배(栽培)하던 땅이 7년째가 되면 쉬어야 합니다. 즉 그 의미는 회복을 위한 휴식의 시간입니다. 회복을 위한 휴식의 시간은 다음과 같은 영적인 뜻을 갖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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땀 흘려 일하던 6년간의 피곤한 몸과 마음을 쉬면서, 지금까지 보호하여 주심과 사랑하심과 인도하심에 대하여 감사하는 시간을 가지라는 말씀입니다. 삶 자체를 하나님 중심으로 살게 하시려고 사람에게 안식년을 주셨고, 땅은 일 년간 쉬었다가 다시 열매를 풍성하게 낳을 수 있는 땅으로 준비하는 기간을 주신 것입니다. 그런데 인간의 미련함과 욕심 때문에 이런 자연의 숨겨진 영적인 원리를 무시하고, 땅을 쉴 새 없이 이용하다가 결국 지금 어떤 재앙을 부르게 되었습니까?
쉬어야 하는데, 인간의 욕심 때문에 쉼 없이 무리하게 사용함으로 이제는 땅들도 땅의 역할을 하지 못하게 됩니다. 땅의 양분을 다 빼앗아버리는 통에 결국 제대로 된 열매를 공급할 수 없는 지경까지 온 것을 생각해 보세요! 물론 농사 뿐 만이 아니라 숨을 쉬어야 되는 땅을 다 콘크리트로 다 덮어버리면서 땅이 주는 유익을 전혀 받지 못하게 됩니다. 인간이란 존재들이 대단히 똑똑한 것 같았지만, 그러나 얼마나 무식하고 무지하고 미련한 존재였는지를 새삼 느끼게 할 뿐입니다.
자신이 연구, 개발한 일에 대한 그 결과가 온 인류에 어떤 영향을 끼칠지 당시에는 전혀 몰랐지만, 결국 우리들이 긴 시간이 지난 후에, 부작용을 통하여 그 실체를 다 알게 되었듯이, 지구가 이 모양이 된 것입니다. 결국 엄청난 연구비를 들여서 내 놓은 결과는 거의가 재앙입니다. 한치 앞도 내다보지 못했던 인간의 미련함이 그대로 노출된 것입니다. 물론 처음에는 땅을 통하여 많은 돈도 벌었겠지요! 세상을 다 가질 것만 같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당장은 벌었기에 버는 것 같아서 좋았는지는 모르지만, 점점 도가 지나치게 되면서 인간의 그 욕심이, 그 미련함이, 말씀에 대한 무지와 불순종함이 이제 생명을 잉태하고 삶의 많은 유익을 주는 땅이 아니라 그 능력을 거의 잃고 생명이 없는 땅이 된 것입니다. 물론 인간의 미련한 눈으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을 하여 경작하던 땅을 일 년간을 놀리고, 또 피땀을 흘려서 번 수입의 십일조를 하나님께 바치고 주일에는 가게 문을 닫는 그런 신앙의 삶을 보면 처음에는 미친 짓을 하는 것 같고, 정신이 나간 자들 같지만,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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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방식대로 사는 그것이 살길이지, AI(인간 로보트)를 만들고 있는 과학자들이 인간의 복지, 행복, 건강을 제시하면서 살길을 제공한다고 하는 말은 완전 거짓말입니다. 인간으로부터 나오는 모든 것은 다 죽는 길이기 때문에 율법을 낭독케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만을 바라보고 의지하여 세상의 모든 풍습과 가치관을 싹! 제거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모두들 이런 하나님의 말씀의 원리들을 외면하고, 돈을 벌기 위하여 주일도 없이 심지어 하루 10시간 이상 죽어라! 일을 한 그 결과는 가정은 가정대로 깨어져야 했고, 건강한 물도 마실 수 없는 세상이 되게 했고, 모든 작물들은 재배와 가공의 과정을 거치면서, 오히려 사용된 화공약품들로 인하여 먹어도 효능이 없는 독이 되고 있습니다. 돈이 아무리 많아도, 돈을 쌓아 놓고 있어도 먹거리가 없어서 굶어 죽는 그런 무서운 세상이 오고 있습니다. 지구의 멸망을 눈앞에 두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지구가 멸망을 하는데, 무엇이 우선이 되어야 할까요? 다 잊더라도 종말이 오고 있다는 이 경고의 말씀은 절대로 잊지 마셔야 할 것입니다. 요즘 일어나는 곳곳에서의 태풍, 쓰나미, 대지진, 폭풍, 산불, 가뭄, 해일, 폭우 등의 이런 모든 증상들도 교회들이 율법대로 살려고 하지 아니하고 교회에서 세상을 따라가고 있기 때문인데, 그것은 다 미련한 인간의 욕심, 자랑의 결과입니다. 과학자들이 하면 다 될 줄로 알고 연구하고 시험을 하여 그리고 시행을 했지만, 그 결과는 재앙입니다. 그러나 스스로 아무 것도 할 수 없어서 하나님을 바라볼 때에 서로에게 기회와 회복이 임하지만, 자신이 할 수 있다고 하여 하나님을 바라보지 않으면 않을수록 더 망하게 되는 것입니다.
한심스런 자기중심의 삶에서, 하나도 필요 없는 자기중심의 삶, 죽은 자를 방불케 하여 썩은 냄새가 진동하는 자기중심의 삶에서 벗어나야 되는데, 그 포기를 못하고 있습니다. 우린 롬1:18-23의 말씀을 늘 기억하고 있어야 합니다. 다시 봅니다. 자기의 실체를 모르면 망하는 것입니다. 결국 이스라엘도 보시면, 안식년에 땅을 쉬게 하지 않고 무리하게 사용하다가 결국 어떤 심판을 받게 되었습니까? 대하36:15-21입니다. “그 열조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 백성과 그 거하시는 곳을 아끼사 부지런히 그 사자들을 그 백성에게 보내어 이르셨으나 그 백성이 하나님의 사자를 비웃고 말씀을 멸시하며 그 선지자를 욕하여 여호와의 진노로 그 백성에게 미쳐서 만회할 수 없게 하였으므로 하나님이 갈대아 왕의 손에 저희를 다 붙이시매 저가 와서 그 성전에서 칼로 청년을 죽이며 청년 남녀와 노인과 백발노옹을 긍휼히 여기지 아니하였으며 또 하나님의 전의 대소 기명들과 여호와의 전의 보물과 왕과 방백들의 보물을 다 바벨론으로 가져가고 또 하나님의 전을 불사르며 예루살렘 성을 헐며 그 모든 궁실을 불사르며 그 모든 귀한 기명을 훼파하고 무릇 칼에서 벗어난 자를 저가 바벨론으로 사로잡아가매 무리가 거기서 갈대아 왕과 그 자손의 노예가 되어 바사국이 주재할 때까지 이르니라 이에 토지가 황무하여 안식년을 누림 같이 안식하여 칠십년을 지내었으니 여호와께서 예레미야의 입으로 하신 말씀이 응하였더라 “
인간의 욕심은 하나님의 원리에 대하여 관심을 조금도 갖지 못하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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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불순종에 대한 그 결과는 인간의 상상을 초월합니다. 때문에 가나안 땅에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그 복된 안식년의 원리인 율법을 낭독하게 하셨던 것입니다. 인간의 힘으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방법만이 살길이라는 뜻입니다. 때문에 하나님만 믿고 타락한 가나안 7족속을 완전 제거하라, 즉 세상의 헛된 것들인 우상을 비롯하여 가나안 족속들의 풍습, 전통, 원리에서 완전하게 벗어나라고 명하셨던 것입니다. 특히 안식년인 면제년에는 희년(禧年)이라는 귀한 날도 포함하고 있습니다.
희년은 안식년 7년째인 그 7년째가 7번이 된 49년 그 다음 해인 50년이 희년입니다. 희년이 되면 모든 것이 다 원위치로 돌아오는 해입니다. 회복입니다. 완전한 회복을 주시는 완성의 해입니다.
레25:10-13에서 말씀하십니다. "제 오십년을 거룩하게 하여 전국 거민에게 자유를 공포하라 이 해는 너희에게 희년이니 너희는 각각 그 기업으로 돌아가며 각각 그 가족에게로 돌아갈찌며 그 오십년은 너희의 희년이니 너희는 파종하지 말며 스스로 난 것을 거두지 말며 다스리지 아니한 포도를 거두지 말라 이는 희년이니 너희에게 거룩함이니라 너희가 밭의 소산을 먹으리라 이 희년에는 너희가 각기 기업으로 돌아갈찌라"
노예는 원래 신분으로, 빼앗기거나 팔았거나 하여튼 모든 땅은 원 주인에게로 돌아오게 하는 회복의 해가 바로 희년(禧年)입니다. 이 희년 때에 그 율법을 낭독하라는 것은, 너희들은 회복 된,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것을 일깨워 주셔서 다시는 세상의 목표와 방법으로 살지 못하게 하시려는 하나님의 뜻을 알게 하시고, 그런 날이 다가오고 있다는 차원에서의 희년을 위하여 준비하라는 입장에서 율법을 낭독케 하셨던 것입니다. 역시나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면 회복은 결코 기대할 수 없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물론 희년 때에도 농사를 짓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그간의 은혜와 사랑과 자비하심으로 이젠 하나님 중심의 삶을 원칙으로 하는 불변의 놀라운 복을 너희들이 받았다는 것입니다.
레25:18-22을 보세요! "너희는 내 법도를 행하며 내 규례를 지켜 행하라 그리하면 너희가 그 땅에 안전히 거할 것이라 땅은 그 산물을 내리니 너희가 배불리 먹고 거기 안전히 거하리라 혹 너희 말이 우리가 만일 제 칠년에 심지도 못하고 그 산물을 거두지도 못하면 무엇을 먹으리요 하겠으나 내가 명하여 제 육년에 내 복을 너희에게 내려 그 소출이 삼년 쓰기에 족하게 할찌라 너희가 제 팔년에는 파종하려니와 묵은 곡식을 먹을 것이며 제 구년 곧 추수하기까지 묵은 곡식을 먹으리라"
하나님의 방법만이 모든 인간들이 살 수 있는 길임을 가르치시려고 주신 진리의 말씀입니다.
다시 본문으로 갑니다. 둘째로 신31:10에서 왜 하나님께서는 굳이 초막절에 영원히 함께하실 능력의 하나님만을 의지하고 타락한 자기중심에 완전히 빠져서 더럽기가 한량없는 가나안 7족속을 몰아내는데, 조금도 두려워하지 아니하고 강하고 담대히 하여 몰아내라는 그 율법을 낭독하게 하셨는가? 여기에도 이유가 있는데 그 이유를 아시려면, 이스라엘의 초막절에 대하여 알지 못하면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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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16:13-15, 레23:39-44의 말씀을 봅니다.
“너희 타작 마당과 포도주 틀의 소출을 수장한 후에 칠일 동안 초막절을 지킬 것이요 절기를 지킬 때에는 너와 네 자녀와 노비와 네 성중에 거하는 레위인과 객과 고아와 과부가 함께 연락하되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택하신 곳에서 너는 칠일 동안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절기를 지키고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 모든 물산과 네 손을 댄 모든 일에 복 주실 것을 인하여 너는 온전히 즐거워할찌니라”
“너희가 토지 소산 거두기를 마치거든 칠월 십오일부터 칠일 동안 여호와의 절기를 지키되 첫날에도 안식하고 제 팔일에도 안식할 것이요 첫날에는 너희가 아름다운 나무 실과와 종려 가지와 무성한 가지와 시내 버들을 취하여 너희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칠일 동안 즐거워할 것이라 너희는 매년에 칠일 동안 여호와께 이 절기를 지킬찌니 너희 대대로의 영원한 규례라 너희는 칠월에 이를 지킬찌니라 너희는 칠일 동안 초막에 거하되 이스라엘에서 난 자는 다 초막에 거할찌니 이는 내가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던 때에 초막에 거하게 한줄을 너희 대대로 알게 함이니라 나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니라 모세가 여호와의 절기를 이스라엘 자손에게 공포하였더라”
초막절은 이스라엘이 출애굽한 후에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서 자신이 직접 농사를 하여 얻은 풍성한 농산물을 자신의 창고에 가득 채우고 난 후, 자신이 살던 집에서 나와 7일 동안에 천막을 짓고 마당에서 머물게 하는 절기입니다. 여기서
(1)7일간 이스라엘 백성들은 천막 안에서 무엇을 생각하게 하시려는가 하면, 40년간 광야에서 천막에 치고 살 때에 우리 모두가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으로 살았듯이 그 때를 생각하면서 절대로 인간의 미련한 방법으로 살지 못하게 하시려고 주신 7일간의 천막생활입니다.
(2)그리고 천막 안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깊이 생각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은 자신들의 풍성한 수확이 다 하나님의 은혜요 자비요 긍휼하심으로 인한 결과임을 기억하면서 하나님께 깊이 감사케 하시려는 뜻에서 7일간 천막에서의 생활을 명하셨던 것입니다. 사람들은 지난 은혜와 사랑을 기억하지 않으면 기억하지 못하게 되면서 심지어 은혜를 원수로 여기는 배신행위를 하게 되는 일이 다반사이기에 초막절을 지키게 하셨던 것입니다.
(3)게다가 이런 절기를 연중행사로 지키지 않게 된다면 이스라엘의 후손들은 세월이 지나면 지날수록 나중에는 이런 출애굽 후의 광야 40년의 생활을 잊게 되면서 하나님의 중심의 삶을 버리게 되기 때문에 절기들을 주셨던 것입니다. 이런 절기를 이스라엘 백성이면 누구든지 신약의 우리들처럼 주일을 지키듯이 지키게 하셨던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하나님께서 이렇게 하라고 율법을 주신 그 근본적인 이유는 미련하고 무지하고, 그 무엇도 제대로 할 수 없는 그런 인간의 방법으로, 살아서는 안 되기에 주신 절기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을 살리시고 복되게 하시려고 주신 율법입니다. 그런데 어떻습니까? 말을 들어먹지를 않았습니다. 이제 마지막으로 말씀을 전하는 모세에게 어떤 예언의 말씀을 하셨습니까? 신31:16-21입니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열조와 함께 자려니와 이 백성은 들어가 거할 그 땅에서 일어나서 이방 신들을 음란히 좇아 나를 버리며 내가 그들과 세운 언약을 어길 것이라 그 때에 내가 그들에게 진노하여 그들을 버리며 내 얼굴을 숨겨 그들에게 보이지 않게 할것인즉 그들이 삼킴을 당하여 허다한 재앙과 환난이 그들에게 임할 그 때에 그들이 말하기를 이 재앙이 우리에게 임함은 우리 하나님이 우리 중에 계시지 않은 까닭이 아니뇨 할 것이라 그들이 돌이켜 다른 신을 좇는 모든 악행을 인하여 내가 그 때에 반드시 내 얼굴을 숨기리라 그러므로 이제 너희는 이 노래를 써서 이스라엘 자손에게 가르쳐서 그 입으로 부르게 하여 이 노래로 나를 위하여 이스라엘 자손에게 증거가 되게 하라 내가 그들의 열조에게 맹세한바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그들을 인도하여 들인 후에 그들이 먹어 배부르고 살찌면 돌이켜 다른 신들을 섬기며 나를 멸시하여 내 언약을 어기리니 그들이 재앙과 환난을 당할 때에 그들의 자손이 부르기를 잊지 아니한 이 노래가 그들 앞에 증인처럼 되리라 나는 내가 맹세한 땅으로 그들을 인도하여 들이기 전 오늘날에 나는 그들의 상상하는 바를 아노라”
결국,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배반할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역시나 배반했습니다. 이것이 제가 드리려는 오늘의 세 번째의 말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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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의 배반은 바로 우리들의 신앙의 실제 모습이기도 합니다. 구원을 받았을지라도 이스라엘처럼 여차하면, 특히 넉넉해지면 하나님의 그 크신 상상할 수 없는 사랑과 은혜를 잊고서는 세상 일과 재물 때문에 배반하기를 밥 먹듯이 합니다. 결국 너희들은 불순종하여 재앙을 피하지 못할 것이라는 그런 예언의 말씀을 천지를 불러 증거를 삼는 그 이유는 하늘과 땅의 변함없는 순종과 그 견고함을 기준으로 삼아서 이스라엘 백성의 불성실함, 곧 있을 배반을 꾸짖고 하나님께서 이 백성에게 어떻게 성실하셨는가를 거듭 강조하시려는 데 그 이유가 있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때가 되면 배반할 것이라는 이 예언의 성취를 통하여
(1)하나님의 말씀은 진리가 됨을 알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의심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2) 말씀을 믿지 못하고 저지른 자신의 죄에 대하여 깊은 아픔과 함께 거룩한 백성으로서의 그 책임을 지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같이 동행하자는 것입니다. 그런데 천지를 증인으로 세워서 하신 모든 예언들이 완전하게 다 이루어졌습니다. 하나님이 맞았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되고 만 것입니다. 그러면 항복해야 되는 것이 아닙니까?
자신이 저지른 죄에 대하여 아파하면서 성도로서의 책임을 져야 되는 것이 아닙니까? 책임을 지기 위하여 지은 죄, 미련함을 인정하고 그리고 회개하면서, 성도의 역할을 감당해야 되는 것이 아닙니까? 이렇게까지 한없는 은혜를 베풀어주셨으면, 이젠, 당연히 항복하고 주 안에서의 삶을 이루어가야 되는 것이 인지상정(人之常情)이 아닙니까? 그런데 어떻게 여전히 항복도 아니 하고, 변명과 핑계로 겨우 모면하려고만 합니까? 해와 달과 별들이 비웃고 있음을 모르세요?
사1:2-3의 말씀을 봅니다. “하늘이여 들으라 땅이여 귀를 기울이라 여호와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자식을 양육하였거늘 그들이 나를 거역하였도다 소는 그 임자를 알고 나귀는 주인의 구유를 알건마는 이스라엘은 알지 못하고 나의 백성은 깨닫지 못하는도다 하셨도다”
이 말씀을 보시면서 어떤 느낌이 듭니까? “하늘이여 들으라 땅이여 귀를 기울이라” 여기서 하나님이 배신하는 이스라엘에 대하여 얼마나 깊은 탄식과 슬픔을 드러내시고 있으신 지를 느끼게 합니다. 신실하시고 은혜로우시고 복 주시기를 기뻐하시는 하나님 앞에 인간이 얼마나 더럽고 범죄하고, 얼마나 못났는가를 ‘증거를 세운 그 천지를 통하여’ 고발(告發)하고 있는 것입니다. 너무나 슬프다는 뜻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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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하나님이 슬퍼하신다는 것은 우리가 하나님을 배반하고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저버리는 행위가 어느 정도로 고약한 것인지를 밝히고 계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 없이는 누구든지 한시도 살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은 모든 사람에게 살아 있는 물고기들의 물과 같은 역할을 합니다. 하나님의 측량할 수 없는 그 크신 은혜와 사랑이 끊임없이 우리 모두에게 공급되고 있기에 이렇게 살고 있다는 것을 아셔야 합니다. 그러나 이 은혜를 잊는 순간에 재앙을 부르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한 순간에 이곳의 산소를 거두어 가시면 아무도 살아낼 자가 없는 것입니다.
곧 완전하게 진멸 당합니다. 하나님께서 한 순간에 하늘을 닫아버리시면 아무도 살지 못합니다. 하나님께서 땅을 무너뜨리면 아무도 살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른 비, 늦은 비를 내려주시지 않으시면 아무도 살 수가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생명을 거두어 가시면 한순간에 죽고 마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들의 한계요 실체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이 없이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존재들인데 마치 자신이 다 할 수 있는 냥, 하나님이 없이도 상관없다는 식의 삶을 살고 있습니다. 기막힌 노릇입니다. 교만하면 안 됩니다. 교만할 수 없습니다.
자랑할 것도 없고 그래서 늘 자기를 부인하지 않으면 재앙의 지구가 될 뿐입니다. 이 시간 이후로 우리들이 자랑할 것은 무엇입니까? 렘9:23-24입니다.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지혜로운 자는 그 지혜를 자랑치 말라 용사는 그 용맹을 자랑치 말라 부자는 그 부함을 자랑치 말라, 자랑하는 자는 이것으로 자랑할찌니 곧 명철하여 나를 아는 것과 나 여호와는 인애와 공평과 정직을 땅에 행하는 자인 줄 깨닫는 것이라 나는 이 일을 기뻐하노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돈이 아닙니다. 권세가 아닙니다. 기술, 박사가 아닙니다. 외모가 아닙니다. 오직 하나님을 알고 말씀대로 순종하는 삶만이 복된 길이요, 승리의 삶입니다. 말씀 중심의 삶이란 회복으로 아름답고 향기로운 주님의 삶입니다. 자신이 얼마나 형편없는 존재인지를 알면 하나님의 은혜를 외면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나도 할 수 있다고 큰 소리를 쳐 봤자, 비웃음거리도 안 될 것입니다. 우주를 망가뜨릴 뿐입니다.
교만하여 하나님 중심으로 살 생각을 원하지 않기에 우리들은 변화되지 않습니다. 세상이 너무나 좋기에 하나님 중심의 삶을 원하지 않습니다. 이런 우리들의 약점을 이미 아셨던 하나님이십니다. 그래서 한없이 오늘도 이렇게 기다려 주시고 계시니 얼마나 감사합니까? 더 이상 한심스런 옛 자신과 죽이는 세상의 힘을 믿지 마시고 말씀 중심의 삶을 살기 위하여 몸부림을 치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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