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 | 월 | 화 | 수 | 목 | 금 | 토 |
---|---|---|---|---|---|---|
1 | 2 | 3 | ||||
4 | 5 | 6 | 7 | 8 | 9 | 10 |
11 | 12 | 13 | 14 | 15 | 16 | 17 |
18 | 19 | 20 | 21 | 22 | 23 | 24 |
25 | 26 | 27 | 28 | 29 | 30 | 31 |
- 자기 옳은 대로 행하였더라
- 홉니와 비느하스
- They Did Which Was Right In Their Eyes
- Naomi
- 룻
- 사사기
- 1 Samuel
- 룻기 1
- 사무엘
- 1 Samuel 2
- David
- Living Stone Korean Church
- Judges
- Eli
- 산돌한인교회
- 사울
- Samuel
- Samson
- 다윗
- Ruth 2
- Philistines
- 보아스
- Ruth 1
- 삼손
- Hophni and Phinehas
- 엘리
- 사무엘상 2
- Ruth
- 나오미
- saul
- Today
- Total
산돌교회
6/6/2021 열왕기상 8:1-66 본문
말씀: 왕상 8:1-66
제목: 솔로몬의 성전 낙성식
우리가 속았을 때, 누구든지 마음에 상처를 받을 것입니다. 그럼 자기가 자기를 속이는 것은 어떤가요? 자기가 자기를 속이고 있다는 것을 아셨나요? 오늘 말씀을 통하여 우린 더 이상 스스로를 속이지 말아야 합니다. 오늘 말씀을 보면서 드는 생각이 몇 가지가 있습니다. 첫째로는 이스라엘 백성 모두가 성전봉헌식을 거행하면서 모두가 7일도 부족하여 14일간 잔치를 하면서 즐거워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왕상8:62-66입니다
62 이에 왕과 및 왕과 함께 한 이스라엘이 다 여호와 앞에 희생제물을 드리니라
63 솔로몬이 화목제의 희생제물을 드렸으니 곧 여호와께 드린 소가 이만 이천 마리요 양이 십이만 마리라 이와 같이 왕과 모든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의 성전의 봉헌식을 행하였는데
64 그 날에 왕이 여호와의 성전 앞뜰 가운데를 거룩히 구별하고 거기서 번제와 소제와 감사제물의 기름을 드렸으니 이는 여호와의 앞 놋 제단이 작으므로 번제물과 소제물과 화목제의 기름을 다 용납할 수 없음이라
65 그 때에 솔로몬이 칠 일과 칠 일 도합 십사 일간을 우리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절기로 지켰는데 하맛 어귀에서부터 애굽 강까지의 온 이스라엘의 큰 회중이 모여 그와 함께 하였더니
66 여덟째 날에 솔로몬이 백성을 돌려보내매 백성이 왕을 위하여 축복하고 자기 장막으로 돌아가는데 여호와께서 그의 종 다윗과 그의 백성 이스라엘에게 베푸신 모든 은혜로 말미암아 기뻐하며 마음에 즐거워하였더라
그러나 즐거운 날일까요? 아닙니다. 이날의 즐거움은 사라질 가짜 즐거움입니다. 왜, 가짜 즐거움일까요? 이제 지옥을 방불케 하는 고된 훈련의 날이 기다리고 있다는 점을 놓치고 있기 때문입니다. 왜 지옥의 시간이 기다리는 것일까요? 지옥의 시간을 지나야지 그렇지 않으면 참 즐거움의 시간은 불가능합니다. 여기에 속으면 안 됩니다.
지옥을 방불케 하는 고된 훈련의 시간을 누구든지 지나야지만 비로써 참 즐거움을 얻게 되기 때문입니다. 무슨 뜻인가 하면, 자기의 악함과 추함과 미련함과 이기심과 더러움 등 자기의 죄악으로 인한 사건 사고들이 터지면서 수습이 불가능할 때, 하나님의 은혜로 해결이 되면서 깨끗하게 용서를 받아가면서 점점 하나님의 자녀로 성장할 때, 비로소, 참 즐거움을 느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아기가 태어나면 모두가 즐거워하겠지만, 그러나 그 즐거움은 잠시 뿐입니다. 그 아이가 자라면서 자연스럽게 부딪치는 예측 못할 아픔과 고난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앞으로 서로 감당해야 할 일이 허다하기 때문입니다. 혼인도 마찬가지입니다. 남녀가 처음에 만나 사랑한다고 하여 기쁜 마음으로 축하하면서 일반적으로 혼인을 하게 되지만, 실은 어떤가요? 그 즐거움이 얼마나 가던가요? 살다가보면, 서로가 어떤 생각을 하게 되는 지, 혼인을 해 본 사람들은 무슨 말인지 알 것입니다. 솔로몬 성전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사랑하여 주신 성막, 성전이라 즐겁게 성전봉헌식을 거행할 수 있겠지만, 그 성막, 성전으로 인한 이스라엘의 역사를 보세요! 성막, 성전 중심의 신앙이 이루어지지 않기 때문에, 아니 성전, 성막 중심이 이루어지려면 고된 훈련을 지나야 했었기에 그 과정은 지옥을 방불합니다. 자기중심에서 벗어나 하나님의 중심으로 바뀐다는 것이 그렇게 간단한 문제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출애굽한 다음에 율법을 시내산에서 받고, 성전이 세워지지만, 하나님 중심이 되지 않아 603,550에서 단지 2명만 살아남고 그 외에는 603,548명은 죽습니다. 그리고 다시 광야에서 태어난 601,730명이 가나안 땅으로 들어갑니다. 가나안 땅으로 들어간 후에도, 구약 내내 어떤가요?
자기중심이던가요? 하나님이 중심이던가요? 한 예로 믿음의 왕 다윗도 보세요! 특히 삼하24:1-25입니다.
1 여호와께서 다시 이스라엘을 향하여 진노하사 그들을 치시려고 다윗을 격동시키사 가서 이스라엘과 유다의 인구를 조사하라 하신지라
2 이에 왕이 그 곁에 있는 군사령관 요압에게 이르되 너는 이스라엘 모든 지파 가운데로 다니며 이제 단에서부터 브엘세바까지 인구를 조사하여 백성의 수를 내게 보고하라 하니
3 요압이 왕께 아뢰되 이 백성이 얼마든지 왕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백 배나 더하게 하사 내 주 왕의 눈으로 보게 하시기를 원하나이다 그런데 내 주 왕은 어찌하여 이런 일을 기뻐하시나이까 하되
4 왕의 명령이 요압과 군대 사령관들을 재촉한지라 요압과 사령관들이 이스라엘 인구를 조사하려고 왕 앞에서 물러나
5 요단을 건너 갓 골짜기 가운데 성읍 아로엘 오른쪽 곧 야셀 맞은쪽에 이르러 장막을 치고
6 길르앗에 이르고 닷딤홋시 땅에 이르고 또 다냐안에 이르러서는 시돈으로 돌아
7 두로 견고한 성에 이르고 히위 사람과 가나안 사람의 모든 성읍에 이르고 유다 남쪽으로 나와 브엘세바에 이르니라
8 그들 무리가 국내를 두루 돌아 아홉 달 스무 날 만에 예루살렘에 이르러
9 요압이 백성의 수를 왕께 보고하니 곧 이스라엘에서 칼을 빼는 담대한 자가 팔십만 명이요 유다 사람이 오십만 명이었더라
10 다윗이 백성을 조사한 후에 그의 마음에 자책하고 다윗이 여호와께 아뢰되 내가 이 일을 행함으로 큰 죄를 범하였나이다 여호와여 이제 간구하옵나니 종의 죄를 사하여 주옵소서 내가 심히 미련하게 행하였나이다 하니라
11 다윗이 아침에 일어날 때에 여호와의 말씀이 다윗의 선견자 된 선지자 갓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12 가서 다윗에게 말하기를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기를 내가 네게 세 가지를 보이노니 너를 위하여 너는 그 중에서 하나를 택하라 내가 그것을 네게 행하리라 하셨다 하라 하시니
13 갓이 다윗에게 이르러 아뢰어 이르되 왕의 땅에 칠 년 기근이 있을 것이니이까 혹은 왕이 왕의 원수에게 쫓겨 석 달 동안 그들 앞에서 도망하실 것이니이까 혹은 왕의 땅에 사흘 동안 전염병이 있을 것이니이까 왕은 생각하여 보고 나를 보내신 이에게 무엇을 대답하게 하소서 하는지라
14 다윗이 갓에게 이르되 내가 고통 중에 있도다 청하건대 여호와께서는 긍휼이 크시니 우리가 여호와의 손에 빠지고 내가 사람의 손에 빠지지 아니하기를 원하노라 하는지라
15 이에 여호와께서 그 아침부터 정하신 때까지 전염병을 이스라엘에게 내리시니 단에서부터 브엘세바까지 백성의 죽은 자가 칠만 명이라
16 천사가 예루살렘을 향하여 그의 손을 들어 멸하려 하더니 여호와께서 이 재앙 내리심을 뉘우치사 백성을 멸하는 천사에게 이르시되 족하다 이제는 네 손을 거두라 하시니 여호와의 사자가 여부스 사람 아라우나의 타작 마당 곁에 있는지라
17 다윗이 백성을 치는 천사를 보고 곧 여호와께 아뢰어 이르되 나는 범죄하였고 악을 행하였거니와 이 양 무리는 무엇을 행하였나이까 청하건대 주의 손으로 나와 내 아버지의 집을 치소서 하니라
18 이 날에 갓이 다윗에게 이르러 그에게 아뢰되 올라가서 여부스 사람 아라우나의 타작 마당에서 여호와를 위하여 제단을 쌓으소서 하매
19 다윗이 여호와께서 명령하신 바 갓의 말대로 올라가니라
20 아라우나가 바라보다가 왕과 그의 부하들이 자기를 향하여 건너옴을 보고 나가서 왕 앞에서 얼굴을 땅에 대고 절하며
21 이르되 어찌하여 내 주 왕께서 종에게 임하시나이까 하니 다윗이 이르되 네게서 타작 마당을 사서 여호와께 제단을 쌓아 백성에게 내리는 재앙을 그치게 하려 함이라 하는지라
22 아라우나가 다윗에게 아뢰되 원하건대 내 주 왕은 좋게 여기시는 대로 취하여 드리소서 번제에 대하여는 소가 있고 땔 나무에 대하여는 마당질 하는 도구와 소의 멍에가 있나이다
23 왕이여 아라우나가 이것을 다 왕께 드리나이다 하고 또 왕께 아뢰되 왕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왕을 기쁘게 받으시기를 원하나이다
24 왕이 아라우나에게 이르되 그렇지 아니하다 내가 값을 주고 네게서 사리라 값 없이는 내 하나님 여호와께 번제를 드리지 아니하리라 하고 다윗이 은 오십 세겔로 타작 마당과 소를 사고
25 그 곳에서 여호와를 위하여 제단을 쌓고 번제와 화목제를 드렸더니 이에 여호와께서 그 땅을 위한 기도를 들으시매 이스라엘에게 내리는 재앙이 그쳤더라
다윗의 교만으로 인한 인구조사로 내린 하나님의 벌, 온역으로 백성 칠만이 죽게 됩니다. 그러나 다윗이 회개하여 아라우나 마당에서 번제와 화목제를 드리면서 재앙이 그칩니다. 이 사건에서도 가장 중요한 말씀의 중심은 하나님께서는 언제나 일을 하시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늘 자녀들을 위하여 일을 하고 계시기에, 자기의 교만을 알게 하시고 그래서 회개하게 하시고 회개하여 하나님하고의 관계를 더욱 확보해 나아가게 하신다는 것을 이 사건에서 알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이 사건에서 또 깨닫게 하시는 것은, 하나님 나라의 왕으로써 다윗 자신의 그 힘과 세력이 막강하여 그래서 만족하고 즐거워하는 것만큼 위험한 일은 없는 이유가 바로 거짓된 힘이기 때문입니다. 세상의 힘과 능력으로 갖는 만족과 즐거움은 하나님께서 가장 미워하는 죄악이기에 그래서 그 만족은 재앙을 불러오는 만족이기에 만족할 수 없는 사라지는 헛된 만족에서 벗어나라는 것입니다. 부탁합니다. 그 헛된 만족 때문에 평생 방황하다가 통곡하지 마세요!
진정한 만족과 즐거움은 하나님의 도움으로 자기의 교만을 깨닫고 하나님으로부터 용서를 받아 하나님의 참 도구가 될 때에, 참 만족과 즐거움을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다윗의 인구조사까지도 허락하시면서 그리고 진노하신다는 이해하기 힘든 말씀을 하십니다. 다윗의 그 교만으로 다윗을 더욱 믿음의 다윗이 되게 한다는 뜻입니다. 우리들의 모든 죄악의 대가로 심판을 받아서 버리고 죽이는 것이 아니라 회개케 하여 점점 믿음의 사람으로 자라게 하시면서 자기중심이 아닌 하나님 중심으로 하나님하고의 관계를 점점 더 확보케 하십니다. 이해가 되세요?
그렇기 때문에 솔로몬의 성전 봉헌식에서의 즐거움은 즐거움이 아닙니다. 아직 고통의 시간을 지나지 않았는데 다들 즐거워하는 그 즐거움은 오히려 신앙을 방해하더라는 것입니다. 어떤 방해를 합니까? 자기중심으로 인하여 지옥을 방불케 하는 고난이 왔을 때, 그 즐거움이 어디 갔느냐? 우리들을 미워하는 것이 아니냐? 하면서 오해를 하기 때문입니다. 그들의 그 즐거움은 시기상조입니다. 왜 성전을 세워주셨는지를 이해하고 긴 경험 속에서 하나님의 깊은 뜻을 깨달아 확인이 될 때, 비로소, 성전 때문에 즐거워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한 가지 더 부연을 하자면, 성전봉헌식은 무엇을 의미하던가요? 이스라엘 너희들은 이젠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라는 것인데 즐거울 수 있다고요? 자신의 모든 옛 것들을 다 버리고 주님의 것으로 채워야 하고 이젠 주님과 동행해야 하는데 즐거울 수 있다고요? 죄악으로 인한 그 고통을 지나고, 회개하므로 하나님하고 그 관계가 회복이 되므로 오는 그 즐거움이, 참 즐거움이라는 것입니다.
참 즐거움을 위하여 먼저 알아야 되는 것은 우린 지성소 안에 언약궤가 무엇인지를 먼저 알아야 합니다. 얼마나 중요한 언약궤인지 언약궤가 지성소 안에 들어가자 하나님의 영광이 가득하게 됩니다. 왜 하나님의 구름인 영광이 가득했을까요? 그 이유를 아시나요? 지성소 안에 있는 언약궤 안에 있는 3가지를 이해를 못하면 가짜 즐거움을 즐거움으로 오해를 하게 됩니다. 그 3가지는 십계명이 기록된 두 돌판(출32장)과 아론의 싹 난 지팡이(민16장-17장)와 만나(출16장)입니다. 이 3가지에는 특징이 있는데, 하나님께 대한 불평과 원망과 의심입니다.
하나님에게 순종해야 할 이스라엘 백성들이 자기 생각과 기준으로 인하여 불평하고 원망하고 의심하게 되면서 다수가 심판으로 죽게 되는 고난을 이스라엘 백성들이 받게 됩니다. 그런데 기억하기 싫은 아픈 역사를 가진 이 3가지를 언약궤 안에 영원히 넣어두라고 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언약궤의 뚜껑인 속죄소를 덮어 버리도록 하십니다. 그것이 왕상8:6-7입니다.
6 제사장들이 여호와의 언약궤를 그 처소로 메어 들였으니 곧 성전의 내소인 지성소 그룹들의 날개 아래라
7 그룹들이 그 궤 처소 위에서 날개를 펴서 궤와 그 채를 덮었는데
이스라엘 백성의 그 가증함, 그 타락함을 상징하고 있는 3가지를 넣은 이 언약궤 위에 어떤 뚜껑이 덮인 것입니다. 그것이 무엇인가 하면, 바로 두 천사가 두 날개를 편 모습으로 만든 금 덮개인데 이것을 속죄소 또는 시은좌라고 합니다. 자세한 내용은 출25:17-22입니다.
17 순금으로 속죄소를 만들되 길이는 두 규빗 반, 너비는 한 규빗 반이 되게 하고
18 금으로 그룹 둘을 속죄소 두 끝에 쳐서 만들되
19 한 그룹은 이 끝에, 또 한 그룹은 저 끝에 곧 속죄소 두 끝에 속죄소와 한 덩이로 연결할지며
20 그룹들은 그 날개를 높이 펴서 그 날개로 속죄소를 덮으며 그 얼굴을 서로 대하여 속죄소를 향하게 하고
21 속죄소를 궤 위에 얹고 내가 네게 줄 증거판을 궤 속에 넣으라
22 거기서 내가 너와 만나고 속죄소 위 곧 증거궤 위에 있는 두 그룹 사이에서 내가 이스라엘 자손을 위하여 네게 명령할 모든 일을 네게 이르리라
그럼 속죄소는 무슨 뜻을 가진 덮개인가? 속죄소는 히브리어로 ‘카포레트’로써 ‘덮는다’라는 원어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카포레트’는 ‘화해하다’라는 동사 ‘키페르’에서 파생된 단어입니다. 그러니까 ‘카포레트’는 화해의 수단, 화해의 장소라는 뜻의 단어입니다. 지은 죄로 하나님과의 관계가 깨어졌던 사람들이 하나님의 은혜로 다시 연합이 되게 하는 화해의 장소라는 뜻이 속죄소입니다. 영어로는 atonement cover 또는 mercy seat입니다. 그러니까 부연 드리면 인간의 타락함을 상징하는 그 3 가지를 담은 언약궤 또는 법궤라고 하는 금 상자를 덮고 있다는 속죄소는 하나님의 공의와 거룩하심으로 인하여 마땅히 저주와 심판을 받아야 할 인간의 죄악을 덮어주시는 그리스도의 구속의 은총에 대한 예표인 것입니다.
그래서 킹제임스 성경에서는 a mercy seat, 자비석이라고 합니다. 어려운 말로 번역을 하면 베풀 시施, 은혜 은恩, 자리 좌座인 시은좌라고 합니다. mercy seat라는 덮개를 가진 이 작은 금 상자인 언약궤가 그렇게 가치가 있기에 중요하기가 끝이 없는 것이기에 은밀하고 깊은 지성소에 두도록 하신 것입니다. 그것이 왜 그렇게 가치가 있는 것입니까? 인간의 죄를 덮어서 지옥 갈 버려진 존재들을 천국백성으로 삼으시겠다는 하나님의 구원의 뜻, 예정의 뜻을 가진 상자였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아들을 죽여서라도 너희들의 구원을 이루고 말겠다는 강력하고 강력한 하나님의 의지요 뜻을 가진 상자이었기에 그렇게 지성소에 보관하도록 하신 것입니다. 그런 상징적인 구원의 계획을 가진 언약궤이었기에 그래서 성소에는 아무도 접근할 수 없는 예수님이 오실 때까지는 철저하게 비밀로 보관이 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니까 언약궤 안에 들어 있는 인간의 타락함을 담은 그 상자의 덮개는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하는 것입니다. 죄를 덮어주시는 예수 그리스도 때문에 너희들의 그 모든 더럽고 더러운 죄가 다 눈 녹듯이 사라지게 됐다는 것입니다.
영원한 정결함을 상징하게 된, 그 언약궤와 덮개인 속죄소가 지성소로 들어오자 하나님의 영광의 구름이 성소 안에 가득하게 된 것입니다. 이렇게 구약의 성막, 성전은 전 인류의 모든 운명이 달린 곳이었습니다. 죄 용서와 하나님하고의 화해를 이루는 성전이 아니면 100% 모든 사람들이 지옥불로 버려질 판이었기 때문입니다.
이제 전체적으로 생각해 보세요? 왜 이날 솔로몬의 성전봉헌식에 모인 모든 사람들의 즐거움이 가짜 즐거움이라고 할 수 있는지 감이 잡히시나요? 자기가 얼마나 악하고 추하고 못 낫고 더럽고 미련하고 이기적이며 사람짐승에 불과 한지를 알고 그런 자기를 위하여 하나님께서 그 어떤 희생과 수고를 하셨는지를 정확하게 알기 전까지는, 그 사람에게 진정한 즐거움은 불가능하다는 것입니다. 자기가 어떤 은혜를 입었는지를 확실하게 알기 전까지는 전부 가짜 즐거움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자기의 그 악함과 미련함과 이기심과 사람짐승이라는 것을 알려면, 젊은 시절을 지나지 않고서는 불가능하다는 것이 아닙니까?
평생 훈련을 거쳐야 한다는 뜻입니다. 그 훈련 속에서 늙어 노인이 되었을 때, 비로소 은혜가 무엇인지를 약간 알게 될 것입니다. 그 전까지는 축구를 하라고 하면 공을 차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차더라는 것입니다. 게임은 못하고 상대 선수에게 상처만 주더라는 것입니다. 은혜를 알기 전까지는 축구게임을 하고 싶어도 못하더라는 것입니다. 이해가 되세요? 그래서 성경 말씀을 보면 다 무슨 내용이던가요? 자기의 못난 점만 기록되어 있더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놀라운 점은 결국 항복케 하시더라는 것입니다. 진정한 즐거움을 주시더라는 것입니다. 무엇이 참 즐거움을 준다고요? 하나님의 손길과 작업인 고난이라는 시간이 결국 거짓 즐거움을 참 즐거움이 되게 하시더라는 것입니다. 우린 바로 그 하나님의 일하심과 작업에 대하여 기절초풍하게 되면서 진정한 길, 합당한 길, 좁은 길, 승리의 길을 택하게 되더라는 것입니다. 결론(結論)입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큰 복은 성공도, 건강도, 금메달의 승리도 아닙니다. 죄 사함만이 진정한 복이요 선물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죄 사함을 상징하는 구약의 성전이 무한대의 가치가 있는 것입니다. 바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죄를 사하여 주셨기에 무한대의 가치가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성도들도 죄 사함을 받았기에 무한대의 가치를 거저 갖게 된 것입니다. 복음은 먼저 지은 죄, 감추어진 죄를 밝혀 줍니다. 그리고 밝혀진 죄를 시인하게 하고, 시인과 함께 용서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믿게 합니다. 그리고 용서받은 그 은혜와 사랑의 힘으로 자신의 원수를 용서하면서 사랑하면서 살아가도록 하는 능력입니다.
이것이 성전의 목적입니다. 그 복음이 바로 지성소의 언약궤에서 정확하게 이해될 수 있습니다. 언약궤는 이 세상의 금 은 보화가 가득하게 담겨진 보물 상자가 아니라 그 이상의 가치인 용서하시겠다는 복음이 담긴 상자입니다. 언약궤를 덮고 있는 속죄소는 돌아가실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합니다. 이것이 이 세상의 보물보다 가치가 있고 더욱 소중한 약속이기에 깊고 깊은 지성소에, 제사장 외에는 그 누구도 감히 만지지도, 볼 수도 없는 아주 깊고 깊은 곳에 두도록 하신 것입니다.
그 약속은 세상의 금, 은, 보화보다 더 가치가 있기에 지성소와 언약궤가 금으로 만들어진 것입니다. 결국 지성소와 성소사이를 막았던 휘장도 예수 그리스도께서 죽으셨을 때에 위에서부터 아래까지 다 찢겨지면서 구원을 얻는 자녀들은 언제나 거룩하신 하나님과의 만남이 가능해 진 것입니다. 마27:50-53입니다.
50 예수께서 다시 크게 소리 지르시고 영혼이 떠나시니라
51 이에 성소 휘장이 위로부터 아래까지 찢어져 둘이 되고 땅이 진동하며 바위가 터지고
52 무덤들이 열리며 자던 성도의 몸이 많이 일어나되
53 예수의 부활 후에 그들이 무덤에서 나와서 거룩한 성에 들어가 많은 사람에게 보이니라
이 말씀은 창3:24에서 이미 계시하고 있습니다.
24 이같이 하나님이 그 사람을 쫓아내시고 에덴 동산 동쪽에 그룹들과 두루 도는 불 칼을 두어 생명 나무의 길을 지키게 하시니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죽기 전까지는 누구든지 죄인이기에 죄인인 몸으로 천국에서 영생할 수 없습니다. 만약에 들어오면 그 누구도 하나님의 거룩함으로 죽게 되기에, 예수님이 죽을 때까지는 아무도 천국으로 들어올 수가 없도록 천사인 그룹을 통하여 구원의 길을 지키도록 하셨습니다. 그 지킴이 예수님의 죽으심으로 풀려서 이제는 본향으로 자녀들은 돌아갈 수가 있게 된 것입니다. 예수님이 죽어 죄의 문제가 풀릴 때까지는 하나님께서는 아무도 복음을 들을 수도 이해할 수도 없게 하셨기에 사6:9-10의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가서 이 백성에게 이르기를 너희가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할 것이요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리라 하여, 이 백성의 마음으로 둔하게 하며 그 귀가 막히고 눈이 감기게 하라 염려컨대 그들이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마음으로 깨닫고 다시 돌아와서 고침을 받을까 하노라”
예수님께서 죽어 죄의 문제를 해결하여 주실 때까지는 그 누구도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깨달을 수 없는 것입니다. 구약의 모든 선지자들을 통하여 알 수 있는 것은 죄의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새로워질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제는 복음을 들을 수가 있게 된 것입니다. 새로워진 것입니다. 그래서 복음을 들을 수 있게 된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세상의 즐거움에 속지 않게 된 것입니다.
듣고 순종하게 된다는 것이 어떤 복과 능력인지 잊지 말아야 합니다. 특히 죽음까지도 도망합니다. 고전15:55-58입니다. “사망아 너의 이기는 것이 어디 있느냐 사망아 너의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 사망의 쏘는 것이 죄요 죄의 권능은 율법이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이김을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라”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못해서 그래서 이스라엘이 어떻게 멸망을 당했는지를 생각해 보면, 올바른 복음을 듣고 항복하므로 어떤 참 즐거움을 갖게 되는 지를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구약 때를 보세요! 사42:20, 렘22:21, 25:3, 32:33의 말씀입니다.
사42:20 네가 많은 것을 볼지라도 유의하지 아니하며 귀가 열려 있을지라도 듣지 아니하는도다
렘22:21 네가 평안할 때에 내가 네게 말하였으나 네 말이 나는 듣지 아니하리라 하였나니 네가 어려서부터 내 목소리를 청종하지 아니함이 네 습관이라
렘25:3 유다의 왕 아몬의 아들 요시야 왕 열셋째 해부터 오늘까지 이십삼 년 동안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기로 내가 너희에게 꾸준히 일렀으나 너희가 순종하지 아니하였느니라
렘32:33 그들이 등을 내게로 돌리고 얼굴을 내게로 향하지 아니하며 내가 그들을 가르치되 끊임없이 가르쳤는데도 그들이 교훈을 듣지 아니하며 받지 아니하고
근본적으로 들을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누구든지 바른 복음을 끝까지 듣는 자녀들은 결국 들어가도 나아가도 복을 받게 되더라는 것입니다. 복음은 능력이기 때문입니다. 진짜 복음이냐 가짜 복음이냐, 어느 쪽의 말씀을 듣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을 듣다가보면, 자신이 어떻게 달라지고 있는지를 확인하게 되기에 알 수 있습니다.
그 변화야말로 진정한 행복과 즐거움을 주는 것이지, 믿음의 성장과 인격의 변화 없이 단지 성전봉헌식만으로는 그 누구도 그 즐거움을 누릴 수 없다는 것입니다. 왕상8장의 즐거움은 예수님의 십자가만으로 완성됩니다. 그 완성을 위하여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수천 년 동안에 어떤 수고를 하셨을까요? 상상해 보셨나요? 다른 복음은 결코 듣지 마세요! 오직 나를 살려주시려고 괴롭히시려는 복음만을 들을 때, 약속하신 대로 진정한 승리와 함께 즐거움과 기쁨과 평안이 임할 것입니다.
'주일 설교 말씀' 카테고리의 다른 글
6/20/2021 열왕기상 9장 : 1-28 (8) | 2021.06.21 |
---|---|
6/13/2021 열왕기상 8:1-66 (11) | 2021.06.14 |
5/30/2021 - 열왕기상 6 장-7장 (10) | 2021.05.31 |
5/24/2021 열왕기상 5:1-18 (10) | 2021.05.24 |
5/16/2021 열왕기상 4 : 1-34 (9) | 2021.05.1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