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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돌교회
10/25/2020 사무엘하 1:1-27 본문
말씀: 삼하1:1-27
제목: 자기 선택의 결과-복 받은 자와 복 받으려는 자
오늘 말씀에서 우리는 빛과 어두움의 뚜렷한 두 길을 봅니다. 아말렉 인은 강자의 죽음과 약자의 약점을 가지고 출세를 하려고 합니다. 그러나 성도라는 존재는 세상 사람들이 전혀 이해할 수 없는 선택과 행동을 한다는 것입니다. 지금 우린 어떤가요? 나의 친구와 동료를 누구라고 생각합니까? 자기편을 들어주고 자기를 도와주면 무조건 감사하다고 하고, 아주 좋은 이웃이라고 여겨버립니다. 무서운 약점입니다. 이 약점 때문에 서로간의 연합과 화목을 이루어 가지 못하고 특히 사기꾼들이 판을 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오늘은 그 점에 대하여 말씀을 드리려고 합니다. 삼하1장의 말씀을 아무 관심이 없이 읽다가 보면, 무심코 넘어가겠지만,
그렇지 않고 우리 자신이 다윗의 처지로 자리를 바꾸어서 생각해 본다면, 나를 죽이려고 혈안이 되었던 그 원수 사울 왕을 죽였다고 하는 아멜렉 인에 대하여 어떤 반응을 보였을까요? 그리고 철천지원수, 사울 왕이 죽었다는 전갈을 받은 우리는 어떠했을까요? 수년간을 한시도 이스라엘 땅에서는 숨을 수도 없고 쉴 수도 없어서 원수 나라인 블레셋으로까지 목숨을 걸고 망명하여, 거짓된 삶으로 수백 명이 겨우 살아야 했고, 부모도 이웃 나라 모압으로까지도 피신하지 않으면 안 되었고, 심지어 다윗을 도왔다는 누명을 씌워서 제사장 아히멜렉이 살던 놉의 모든 제사장 85명과 놉의 모든 남녀노소를 다 죽여 버리므로, 받은 상처 역시 다윗으로서는 잊을 수가 없을 것입니다. 특히 다윗을 도운 아히멜렉 제사장의 아들 아비아달이 겨우 목숨을 건져서 다윗에게 피하여 살고 있는 그를 볼 때마다 얼마나 고통스러워 했을까요? 상상도 할 수 없는 수모와 모욕과 조소를 받아야 했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 원수 사울 왕을 죽였다는 인물을 만난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 사람에게 감사하다고 하지 않을까요? 그리고 잔치를 베풀고 노래를 부르면서 춤을 추기도 모자라서, 기쁨이 넘쳐서 하늘을 훨훨 날고 싶은 심정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다윗은 우리 생각하고는 전혀 달랐습니다. 삼하1:10-16입니다.
10 그가 엎드러진 후에는 살 수 없는 줄을 내가 알고 그의 곁에 서서 죽이고 그의 머리에 있는 왕관과 팔에 있는 고리를 벗겨서 내 주께로 가져왔나이다 하니라
11 이에 다윗이 자기 옷을 잡아 찢으매 함께 있는 모든 사람도 그리하고
12 사울과 그의 아들 요나단과 여호와의 백성과 이스라엘 족속이 칼에 죽음으로 말미암아 저녁 때까지 슬퍼하여 울며 금식하니라 13 다윗이 그 소식을 전한 청년에게 묻되 너는 어디 사람이냐 대답하되 나는 아말렉 사람 곧 외국인의 아들이니이다 하니 14 다윗이 그에게 이르되 네가 어찌하여 손을 들어 여호와의 기름 부음 받은 자 죽이기를 두려워하지 아니하였느냐 하고 15 다윗이 청년 중 한 사람을 불러 이르되 가까이 가서 그를 죽이라 하매 그가 치매 곧 죽으니라
16 다윗이 그에게 이르기를 네 피가 네 머리로 돌아갈지어다 네 입이 네게 대하여 증언하기를 내가 여호와의 기름 부음 받은 자를 죽였노라 함이니라 하였더라
존귀하신 하나님으로부터 기름부음을 받은 사울 왕을 감히 죽였다는 아멜렉 인을 오히려 쳐 죽이고 맙니다. 만약에 우리 생각대로 그 기쁜 소식을 전한 아멜렉 인을 죽이지 않으면 어떻게 되는지 아십니까? 존귀하신 하나님 아버지를 무시하는 죄를 다윗도 짓게 되는 것입니다. 때문에 다윗은 자신의 거짓말을 통하여 출세하려고 온, 그 아멜렉 사람을 가차 없이 쳐 죽였던 것입니다.
신앙은 내 생각과 내 기준하고는 전혀 상관이 없습니다. 잘 알고 계시듯이 자기의 선택은 스스로의 지옥을 만드는 것입니다. 때문에 성도된 삶과 신앙의 기준은 언제나 말씀이 기준이 되어야 합니다. 말씀을 모르는 신앙은 신앙일 수가 없습니다. 아말렉 인이 말씀을 알았다면 다윗에게 와서 자신이 죽였다는 거짓말을 만들어서까지 전할 수가 있었을까요? 없습니다. 민3:10, 38 민4:15, 19의 말씀입니다.
민3:10 너는 아론과 그 아들들을 세워 제사장 직분을 행하게 하라 외인이 가까이 하면 죽임을 당할 것이니라
민3:38 장막 앞 동편 곧 회막 앞 해 돋는 편에는 모세와 아론과 아론의 아들들이 진을 치고 이스라엘 자손의 직무를 대신하여 성소의 직무를 지킬 것이며 외인이 가까이 하면 죽일찌니라
민4:15 행진할 때에 아론과 그 아들들이 성소와 성소의 모든 기구 덮기를 필하거든 고핫 자손이 와서 멜 것이니라 그러나 성물은 만지지 말찌니 죽을까 하노라 회막 물건 중에서 이것들은 고핫 자손이 멜 것이며
민4:19 그들이 지성물에 접근할 때에 그 생명을 보존하고 죽지 않게 하기 위하여 너희는 이같이 하여 아론과 그 아들들이 들어가서 각 사람에게 그 할 일과 그 멜 것을 지휘할찌니라
아말렉인이 말씀을 알았더라면, 전하더라도 있는 그대로, 본대로 전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아말렉 인은, 자기 생각에 다윗의 원수가 사울 왕이었기에, 자신이 사울 왕을 죽였다고 하면 출세의 기회가 될 줄을 알고, 자신 있게 찾아왔었지만, 그 큰 기대가 오히려 죽음의 재앙으로 돌변했던 것입니다. 바로 이점을 지금 우리들이 주의하지 않으면 결국 아말렉의 그 심판을 받게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모르고 단지 나의 출세와 형통을 위하여 아말렉 인처럼 자기 기준과 방법으로 하나님에게 나가면, 그것이 악하므로 심판을 피할 수 없다는 것을 알게 하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원리와 뜻을 전혀 모르는 자가 자신의 출세와 성공을 위하여 감히 거룩하신 하나님의 이름을 자기의 더러운 입에 오르내리는 것도 아멜렉 인과 다르지 않다는 말씀입니다. 세상의 출세와 형통 때문에 하나님의 성호를 언급하는 것은 십계명의 제 3계명인 하나님의 성호를 망령되이 부르는 죄를 범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아버지의 성호는 아무나 함부로 감히 부를 수가 없습니다. 부모님의 존함(尊銜)도 어떻습니까? 자식일지라도 함부로 입에 오르지 않습니다. 꼭 뒤에 자를 붙여서 부모님의 성함(姓銜)을 부릅니다.
그런데 자신이 얼마나 악인인지도 모르고 악을 위하여 더러운 수고를 거리낌 없이 하는, 끔직한 그런 자들이, 감히 죄에 대해서만큼은 죽기까지 하셔서 해결케 하시는 거룩하신 하나님의 성호를 함부로 담는 경우가 있는데, 죽기를 작정한 정신 나간 자들이나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죄를 모르는 죄인들은 하나님의 성호를 감히 부를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기름부음을 받은 이스라엘의 초대 왕을 죄 속에 살던, 아멜렉 인이 자신의 출세를 위하여 사울 왕을 죽였다고 하였으니, 당연히 그 죄 값을 받을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사울 그 사람자체가 아니라, 사울이 하나님으로부터 이스라엘의 초대 왕으로 기름부음을 받은 거룩한 신분을 가진 왕이 되었기에 그래서 아멜렉 인은 피 값을 치루지 않을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여기서는 왕만이 아니라 목사와 성도 직분도 같은 것입니다. 성도된 우린 보통 세상 사람들이 아닙니다. 그래서 우리들을 괴롭히는 자에 대하여 무엇이라고 말씀하시던가요? 하나님의 눈을 찌르는 악한 자들이라고까지 말씀하신 것을 기억하세요?
슥2:8입니다. “만군의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너희를 노략한 열국으로 영광을 위하여 나를 보내셨나니 무릇 너희를 범하는 자는 그의 눈동자를 범하는 것이라” 하나님의 자녀로 부르심과 기름부음을 받았다는 것은 표현할 수 없는 특권이요 복입니다. 존귀 그 자체가 된 것입니다. 그런데 미국에 사는 한인들이 멋모르고 oh, my god!이라는 문장을 함부로 사용하는데, 아니 이젠 세계의 공용어가 되어서 한국에서도 여차하면 함부로 사용하고 있는데, 아말렉 인처럼 천벌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오직 하나님의 자녀들만이 구하고 부르고 찾을 수 있지, 아무에게나 허락된 성호가 아닙니다.
고전11:17-30입니다.
17 내가 명하는 이 일에 너희를 칭찬하지 아니하나니 이는 저희의 모임이 유익이 못되고 도리어 해로움이라
18 첫째는 너희가 교회에 모일 때에 너희 중에 분쟁이 있다 함을 듣고 대강 믿노니 19 너희 중에 편당이 있어야 너희 중에 옳다 인정함을 받은 자들이 나타나게 되리라 20 그런즉 너희가 함께 모여서 주의 만찬을 먹을 수 없으니 21 이는 먹을 때에 각각 자기의 만찬을 먼저 갖다 먹으므로 어떤이는 시장하고 어떤이는 취함이라 22 너희가 먹고 마실 집이 없느냐 너희가 하나님의 교회를 업신여기고 빈궁한 자들을 부끄럽게 하느냐 내가 너희에게 무슨 말을 하랴 너희를 칭찬하랴 이것으로 칭찬하지 않노라 23 내가 너희에게 전한 것은 주께 받은 것이니 곧 주 예수께서 잡히시던 밤에 떡을 가지사 24 축사하시고 떼어 가라사대 이것은 너희를 위하는 내 몸이니 이것을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 하시고 25 식후에 또한 이와 같이 잔을 가지시고 가라사대 이 잔은 내 피로 세운 새 언약이니 이것을 행하여 마실 때마다 나를 기념하라 하셨으니 26 너희가 이 떡을 먹으며 이 잔을 마실 때마다 주의 죽으심을 오실 때까지 전하는 것이니라 27 그러므로 누구든지 주의 떡이나 잔을 합당치 않게 먹고 마시는 자는 주의 몸과 피를 범하는 죄가 있느니라 28 사람이 자기를 살피고 그 후에야 이 떡을 먹고 이 잔을 마실찌니 29 주의 몸을 분변치 못하고 먹고 마시는 자는 자기의 죄를 먹고 마시는 것이니라 30 이러므로 너희 중에 약한 자와 병든 자가 많고 잠자는 자도 적지 아니하니
잘못된 성찬식 때문에 사도 바울을 통하여 주신 말씀입니다. 함부로 아무나 성찬식에 참여 하여 예수님의 몸과 피를 상징하는 떡과 잔을 받을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함부로 성찬식에 참여하여 떡과 잔을 받으면 어떻게 된다고 합니까? 29-30절에서 말씀합니다. “주의 몸을 분별치 못하고 마시는 자는 자기의 죄를 먹고 마시는 것이니라, 이러므로 너희 중에 약한 자와 병든 자가 많고 잠자는 자도 적지 아니하니”
때문에 오늘의 말씀을 좀 더 연결을 시켜보면, 함부로 헌금도, 봉사도 전도도 할 수가 없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여 다 내려놓으려는 그래서 고민하는 자들만이 동참할 수가 있습니다. 아무나 허락된 헌금, 전도, 봉사가 아닙니다.
말1:6-14입니다.
6 내 이름을 멸시하는 제사장들아 나 만군의 여호와가 너희에게 이르기를 아들은 그 아비를, 종은 그 주인을 공경하나니 내가 아비일찐대 나를 공경함이 어디 있느냐 내가 주인일찐대 나를 두려워함이 어디 있느냐 하나 너희는 이르기를 우리가 어떻게 주의 이름을 멸시하였나이까 하는도다 7 너희가 더러운 떡을 나의 단에 드리고도 말하기를 우리가 어떻게 주를 더럽게 하였나이까 하는도다 이는 너희가 주의 상은 경멸히 여길 것이라 말함을 인함이니라 8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가 눈 먼 희생으로 드리는 것이 어찌 악하지 아니하며 저는 것, 병든 것으로 드리는 것이 어찌 악하지 아니하냐 이제 그것을 너희 총독에게 드려보라 그가 너를 기뻐하겠느냐 너를 가납하겠느냐 9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는 나 하나님께 은혜를 구하기를 우리를 긍휼히 여기소서 하여 보라 너희가 이같이 행하였으니 내가 너희 중 하나인들 받겠느냐 10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가 내 단 위에 헛되이 불 사르지 못하게 하기 위하여 너희 중에 성전 문을 닫을 자가 있었으면 좋겠도다 내가 너희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너희 손으로 드리는 것을 받지도 아니하리라 11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해 뜨는 곳에서부터 해 지는 곳까지의 이방 민족 중에서 내 이름이 크게 될 것이라 각처에서 내 이름을 위하여 분향하며 깨끗한 제물을 드리리니 이는 내 이름이 이방 민족 중에서 크게 될 것임이니라 12 그러나 너희는 말하기를 여호와의 상은 더러웠고 그 위에 있는 실과 곧 식물은 경멸히 여길 것이라 하여 내 이름을 더럽히는도다
13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가 또 말하기를 이 일이 얼마나 번폐스러운고 하며 코웃음하고 토색한 물건과 저는 것, 병든 것을 가져왔느니라 너희가 이같이 헌물을 가져오니 내가 그것을 너희 손에서 받겠느냐 여호와의 말이니라
14 떼 가운데 수컷이 있거늘 그 서원하는 일에 흠 있는 것으로 사기하여 내게 드리는 자는 저주를 받으리니 나는 큰 임금이요 내 이름은 열방 중에서 두려워하는 것이 됨이니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심지어 잠28:9입니다. “사람이 귀를 돌이키고 율법을 듣지 아니하면 그의 기도는 가증하니라” 말씀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여 드리는 기도가 하나님의 뜻하고 빗나갈 수밖에 없기에 그래서 가증하다고 하십니다.
성경에서 죄는 히브리어로 ‘하타’ 라고 하는데 그 뜻은 도덕적, 윤리적인 차원에서의 죄가 아니라 ‘표적을 빗나가다’, 즉 말씀에서 벗어난 것을 죄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때문에 성경은 성도들에게 자신의 생명보다 더 소중한 것입니다. 성도라면 자신의 목숨을 버리면 버렸지, 하나님의 말씀을 버리면 그것은 미련하고 어리석은 자가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의 교회 현실은 어떻습니까? 모두가 다 출세를 위하여 다윗에게 찾아간, 아말렉 인과 무엇이 다르던가요?
하나님의 기름부음을 받은 이스라엘의 거룩한 직분을 가진 왕을 죽였다고 거짓말을 해서라도 출세하려던 아말렉 인과 무엇이 다르던가요? 다시 말씀을 드리지만, 세상의 성공을 위하여 하나님을 찾아가서는 안 됩니다. 죽음과 재앙을 자초할 뿐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교회를 세워 주시고 거룩한 하나님의 말씀을 주신 이유는 단 한 가지입니다. 죄와 싸워라! 즉 자기 기준과 생각을 믿지 말고 오직 하나님만 믿어라! 그래서 교회를 세워주셨고 생명의 말씀을 주신 것입니다.
(1)행8:9-24의 말씀을 봅니다.
9 그 성에 시몬이라 하는 사람이 전부터 있어 마술을 행하여 사마리아 백성을 놀라게 하며 자칭 큰 자라 하니 10 낮은 사람부터 높은 사람까지 다 청종하여 가로되 이 사람은 크다 일컫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하더라 11 오래 동안 그 마술에 놀랐으므로 저희가 청종하더니 12 빌립이 하나님 나라와 및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에 관하여 전도함을 저희가 믿고 남녀가 다 세례를 받으니 13 시몬도 믿고 세례를 받은 후에 전심으로 빌립을 따라 다니며 그 나타나는 표적과 큰 능력을 보고 놀라니라 14 예루살렘에 있는 사도들이 사마리아도 하나님의 말씀을 받았다 함을 듣고 베드로와 요한을 보내매 15 그들이 내려가서 저희를 위하여 성령 받기를 기도하니 16 이는 아직 한 사람에게도 성령 내리신 일이 없고 오직 주 예수의 이름으로 세례만 받을 뿐이러라 17 이에 두 사도가 저희에게 안수하매 성령을 받는지라 18 시몬이 사도들의 안수함으로 성령 받는 것을 보고 돈을 드려 19 가로되 이 권능을 내게도 주어 누구든지 내가 안수하는 사람은 성령을 받게 하여 주소서 하니 20 베드로가 가로되 네가 하나님의 선물을 돈 주고 살 줄로 생각하였으니 네 은과 네가 함께 망할찌어다
21 하나님 앞에서 네 마음이 바르지 못하니 이 도에는 네가 관계도 없고 분깃 될 것도 없느니라 22 그러므로 너의 이 악함을 회개하고 주께 기도하라 혹 마음에 품은 것을 사하여 주시리라 23 내가 보니 너는 악독이 가득하며 불의에 매인바 되었도다 24 시몬이 대답하여 가로되 나를 위하여 주께 기도하여 말한 것이 하나도 내게 임하지 말게 하소서 하니라
마술 시몬이 돈으로 하나님의 은사를 받으려다가 사도로부터 저주를 받습니다.
(2)행19:12-16입니다.
12 심지어 사람들이 바울의 몸에서 손수건이나 앞치마를 가져다가 병든 사람에게 얹으면 그 병이 떠나고 악귀도 나가더라 13 이에 돌아다니며 마술하는 어떤 유대인들이 시험적으로 악귀 들린 자들에게 대하여 주 예수의 이름을 불러 말하되 내가 바울의 전파하는 예수를 빙자하여 너희를 명하노라 하더라
14 유대의 한 제사장 스게와의 일곱 아들도 이 일을 행하더니 15 악귀가 대답하여 가로되 예수도 내가 알고 바울도 내가 알거니와 너희는 누구냐 하며 16 악귀 들린 사람이 그 두 사람에게 뛰어올라 억제하여 이기니 저희가 상하여 벗은 몸으로 그 집에서 도망하는지라
함부로 아무나 하나님의 성호를 사용할 수가 없습니다.
특히 (3)행5:1-11입니다.
1 아나니아라 하는 사람이 그 아내 삽비라로 더불어 소유를 팔아 2 그 값에서 얼마를 감추매 그 아내도 알더라 얼마를 가져다가 사도들의 발 앞에 두니 3 베드로가 가로되 아나니아야 어찌하여 사단이 네 마음에 가득하여 네가 성령을 속이고 땅값 얼마를 감추었느냐 4 땅이 그대로 있을 때에는 네 땅이 아니며 판 후에도 네 임의로 할 수가 없더냐 어찌하여 이 일을 네 마음에 두었느냐 사람에게 거짓말 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께로다 5 아나니아가 이 말을 듣고 엎드러져 혼이 떠나니 이 일을 듣는 사람이 다 크게 두려워하더라 6 젊은 사람들이 일어나 시신을 싸서 메고 나가 장사하니라 7 세 시간쯤 지나 그 아내가 그 생긴 일을 알지 못하고 들어 오니 8 베드로가 가로되 그 땅 판 값이 이것 뿐이냐 내게 말하라 하니 가로되 예 이뿐이로라 9 베드로가 가로되 너희가 어찌 함께 꾀하여 주의 영을 시험하려 하느냐 보라 네 남편을 장사하고 오는 사람들의 발이 문앞에 이르렀으니 또 너를 메어 내가리라 한대 10 곧 베드로의 발 앞에 엎드러져 혼이 떠나는지라 젊은 사람들이 들어와 죽은 것을 보고 메어다가 그 남편 곁에 장사하니 11 온 교회와 이 일을 듣는 사람들이 다 크게 두려워하니라
자신의 재산까지 팔아서 드렸지만, 약속한 헌금을 부부가 욕심이 생겨서 드리지 않으므로 즉사했던 사건입니다. 거룩하신 성령 하나님을 속인 죄, 감히 거룩하신 하나님을 시험한 죄로 받은 심판인 것을 행5:3, 9에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진실함이 없는 헌신과 수고는 오히려 하지 말아야 됩니다.
그런데 지금의 교회들은 하나님의 말씀하고는 전혀 상관없는 종교행위를 요구하고 있고 그리고 복을 받는다는 거짓 설교에 속아서 열심히 순종 아닌 순종을 하고 있습니다. 속이 터질 노릇입니다. 이렇게 성경은 정확하게 말씀을 하시고 계시지만, 교인들이 다들 복을 받으려는 세상의 욕심 때문에 스스로 드리고도, 받치고도, 수고를 하고도 결국 버림을 받게 되는데, 특히 코로나19가 그 증거입니다. 이 질병은 교회의 타락으로 인한 저주입니다. 그런데 무슨 새로운 문화로까지 표현을 목사들이 있는데, 아닙니다. 지금 대형, 중형 교회들과 또는 대형과 중형 교회를 원하던 목회자들은 성전이 성도가 아닌 교회건물이었음에 대한 회개를 해야 하고 이젠, 더 이상 교회 건물 중심에서 벗어나서, 다수가 모일 수 없음을 알고, 가능한 한, 한 목회자가 작은 무리를 섬겨야 된다는 것을 이번 기회에 새롭게 인식하고 다 내려놓아야지만 더 이상 나빠지지 않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젠 새 문화를 받아 들여야 한다는 엉뚱한 이야기들만을 하고 있으니 답답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도 더러운 마음으로 바치는 모든 것에 대하여 무엇이라고 책망을 하시던가요? 말1:6-14에서 확인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제물(祭物) 그 자체가 아닙니다. 구원에 감사하는 마음과 죄를 미워하는 마음으로 드려야 합니다.
그래서 사1:10-17입니다.
1 유다 왕 웃시야와 요담과 아하스와 히스기야 시대에 아모스의 아들 이사야가 유다와 예루살렘에 대하여 본 이상이라
2 하늘이여 들으라 땅이여 귀를 기울이라 여호와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자식을 양육하였거늘 그들이 나를 거역하였도다 3 소는 그 임자를 알고 나귀는 주인의 구유를 알건마는 이스라엘은 알지 못하고 나의 백성은 깨닫지 못하는도다 하셨도다 4 슬프다 범죄한 나라요 허물 진 백성이요 행악의 종자요 행위가 부패한 자식이로다 그들이 여호와를 버리며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를 만홀히 여겨 멀리하고 물러갔도다 5 너희가 어찌하여 매를 더 맞으려고 더욱 더욱 패역하느냐 온 머리는 병 들었고 온 마음은 피곤하였으며 6 발바닥에서 머리까지 성한 곳이 없이 상한 것과 터진 것과 새로 맞은 흔적 뿐이어늘 그것을 짜며 싸매며 기름으로 유하게 함을 받지 못하였도다 7 너희 땅은 황무하였고 너희 성읍들은 불에 탔고 너희 토지는 너희 목전에 이방인에게 삼키웠으며 이방인에게 파괴됨 같이 황무하였고 8 딸 시온은 포도원의 망대 같이, 원두밭의 상직막 같이, 에워싸인 성읍 같이 겨우 남았도다 9 만군의 여호와께서 우리를 위하여 조금 남겨 두지 아니하셨더면 우리가 소돔 같고 고모라 같았었으리로다 10 너희 소돔의 관원들아 여호와의 말씀을 들을찌어다 너희 고모라의 백성아 우리 하나님의 법에 귀를 기울일찌어다 11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너희의 무수한 제물이 내게 무엇이 유익하뇨 나는 수양의 번제와 살진 짐승의 기름에 배불렀고 나는 수송아지나 어린 양이나 수염소의 피를 기뻐하지 아니하노라 12 너희가 내 앞에 보이러 오니 그것을 누가 너희에게 요구하였느뇨 내 마당만 밟을 뿐이니라 13 헛된 제물을 다시 가져오지 말라 분향은 나의 가증히 여기는바요 월삭과 안식일과 대회로 모이는 것도 그러하니 성회와 아울러 악을 행하는 것을 내가 견디지 못하겠노라 14 내 마음이 너희의 월삭과 정한 절기를 싫어하나니 그것이 내게 무거운 짐이라 내가 지기에 곤비하였느니라 15 너희가 손을 펼 때에 내가 눈을 가리우고 너희가 많이 기도할찌라도 내가 듣지 아니하리니 이는 너희의 손에 피가 가득함이니라 16 너희는 스스로 씻으며 스스로 깨끗케 하여 내 목전에서 너희 악업을 버리며 악행을 그치고
17 선행을 배우며 공의를 구하며 학대 받는 자를 도와주며 고아를 위하여 신원하며 과부를 위하여 변호하라 하셨느니라
그래서 시40:6-8에서 무엇이라고 말씀하시던가요?
6 주께서 나의 귀를 통하여 들리시기를 제사와 예물을 기뻐 아니하시며 번제와 속죄제를 요구치 아니하신다 하신지라
7 그때에 내가 말하기를 내가 왔나이다 나를 가리켜 기록한 것이 두루마리 책에 있나이다 8 나의 하나님이여 내가 주의 뜻 행하기를 즐기오니 주의 법이 나의 심중에 있나이다 하였나이다
거창한 형식적인 제사와 예물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그 뜻대로 행하는 것을 기뻐하신다는 것입니다.
시51:16-19의 말씀도 보세요!
16 주는 제사를 즐겨 아니하시나니 그렇지 않으면 내가 드렸을 것이라 주는 번제를 기뻐 아니하시나이다 17 하나님의 구하시는 제사는 상한 심령이라 하나님이여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을 주께서 멸시치 아니하시리이다 18 주의 은택으로 시온에 선을 행하시고 예루살렘성을 쌓으소서 19 그 때에 주께서 의로운 제사와 번제와 온전한 번제를 기뻐하시리니 저희가 수소로 주의 단에 드리리이다
주께서 의로운 제사, 번제와 온전한 번제를 기뻐하신다고 합니다. 그냥 자기가 자기의 뜻을 위하여 드리는, 하나님의 말씀과 거리가 먼, 그런 제물과 제사가 아니라 의로운 제사, 온전한 번제, 하나님의 뜻에 합당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이런 하나님의 말씀을 몰라서 아멜렉 인이 나름대로 복된 소식이라 여기고 열심히 가져왔었으나 오히려 봉변을 당하여 그 자리에서 맞아 죽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몇 번이나 맞아죽어야 했던가요? 아직도 살아계십니까? 하나님의 한없는 은혜입니다. 오늘도 또 기회를 주셨습니다. 기회를 주셨으니 지금까지 지은 죄들 중에서 우상과 특히 교회 건물과 교인수로 평가하던 교회들은 회개를 하셔야 합니다. 회개를 하시고 이제는 의로운 제사, 온전한 번제,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드림과 수고를 위하여, 말씀을 제대로 배우고 감사함으로 전심과 정성을 다하여 드리고 수고를 하지 않으면 안 될 것입니다. 하나님 아버지는 죽으신 분이 아닙니다. 그리고 물론 거지도 아니십니다. 우주의 주인이시고 우상 죄라면 치를 떨고 계시는 분입니다.
때문에 성도라면 아무리 작은 죄라도 방심하면 안 됩니다. 죄가 작다고 우습게 생각하여 선택하게 되면, 아말렉 인처럼 버림을 받게 될 뿐입니다. 작은 죄를 죄로 여기지 않기에 지금 교회들이 이렇게 타락하게 된 것입니다. 성도는 언제든지 자신의 죄 때문에 힘들어 하지 않을 수가 없어야 합니다.
성도의 길은 세상의 길과 전혀 다릅니다. 세상의 성공은 밟고 눌러야 하지만, 성도의 성공은 밟히고 당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구원을 끝까지 또는 두려움으로 구원을 이루라는 것입니다. 성공과 출세가 신앙의 원리가 아닙니다. 거룩함을 위하여 죄와 싸우는 것이 신앙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아말렉 인이 될 뿐입니다.
둘째로 다윗을 보세요! 원수 사울이 죽는데 어떤 노래를 지어 부르게 하던가요?
삼하1:19-25입니다.
19 이스라엘아 너의 영광이 산 위에서 죽임을 당하였도다 오호라 두 용사가 엎드러졌도다 20 이 일을 가드에도 고하지 말며 아스글론 거리에도 전파하지 말찌어다 블레셋 사람의 딸들이 즐거워할까, 할례 받지 못한 자의 딸들이 개가를 부를까 염려로다 21 길보아산들아 너희 위에 우로가 내리지 아니하며 제물 낼 밭도 없을찌어다 거기서 두 용사의 방패가 버린바 됨이라 곧 사울의 방패가 기름 부음을 받지 않음 같이 됨이로다 22 죽은 자의 피에서, 용사의 기름에서 요나단의 활이 물러가지 아니하였으며 사울의 칼이 헛되이 돌아오지 아니하였도다 23 사울과 요나단이 생전에 사랑스럽고 아름다운 자러니 죽을 때에도 서로 떠나지 아니하였도다 저희는 독수리보다 빠르고 사자보다 강하였도다 24 이스라엘 딸들아 사울을 슬퍼하여 울찌어다 저가 붉은 옷으로 너희에게 화려하게 입혔고 금 노리개를 너희 옷에 채웠도다 25 오호라 두 용사가 전쟁 중에 엎드러졌도다 요나단이 너의 산 위에서 죽임을 당하였도다
비록 원수였지만, 원수 이전에 거룩하신 하나님으로부터 기름부음을 받은 하나님의 나라 이스라엘의 왕이기에 그래서 그의 죽음을 대우하는 다윗의 신앙은 그 반대인 우리 모두에게 도전과 큰 깨달음을 주고 있습니다. 원수 이전에 하나님의 기름부음을 받았기에 원수가 아닌 하나님의 종으로 인정하는 다윗의 신앙은 우리들과 얼마나 차이가 나는지 모릅니다. 그래서 다윗은 악을 선으로 갚았습니다. 이것이 가능했던 이유는 다윗 자신을 위한 모든 이웃들이었기에, 하나님께서 다윗 자신을 위하여 세운 하나님의 도구가 사울 왕이었다는 것을 알았기에, 이런 찬양을 지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사실 다윗이 성군이 된 것도 하나님께서 세운 사울 왕 때문인 것을 누가 부인하겠습니까? 사울 왕이 늘 선대했었더라면 다윗은 성군으로,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자로 남아 있지 못했을 것입니다.
다윗의 이 슬픈 노래가 인간의 기준과 판단으로는 말도 안 되겠지만, 그러나 원수 사울 왕을 다윗이 이렇게 인정하고 지켜 세워 줌으로서 다윗은 더욱 백성으로부터 신뢰와 인정을 받게 되었고 이스라엘 민족을 하나 되게 하면서 하나님에게도 영원토록 칭찬을 받게 된 것이 아닙니까? 그런데, 다윗하고는 반대로 여전히 아말렉 인처럼 출세를 위한 자기 방향으로만 정신없이 달려가고 있으니, 심히 걱정이 되고 답답할 뿐입니다. ‘악을 선으로 갚으라’고 그래서 구원을 받은 우리들인데도, 여전히 나의 생각과 기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입술로는 신앙인일 뿐, 행동과 결정은 늘 자기 boundary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대적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성도는 자신이 살아 있으면 안 됩니다. 자신이 우선이 되면 안 됩니다. 나를 전적으로 부인해야 합니다. 그래야 다윗의 선택이 우리들의 선택이 됩니다. 우리들의 기준과 뜻대로의 삶은 불평과 깨짐과 슬픔과 좌절만이 남습니다.
그러나 십자가의 거친 길은 결국 기쁨과 연합과 승리만이 이루어집니다. 누가 부인할 수 있습니까? 당장, 힘들다고 하여 진리와 생명과 거룩의 삶을 외면하는 어리석은 선택을 사는 날 동안에 서서히 제거하기 위하여 조금씩, 주님의 모습으로 돌아가는 수고를 아끼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거룩한 수고를 아끼지 않을 때에 하나님의 놀라운 기적과 능력을 날마다 맛볼 것입니다.
천천만만의 적군이 억만 겹으로 나를 둘러쌓을지라도 두려워하지 않을 것입니다. 보이는 최고의 그 어떤 것으로 유혹을 할지라도 결코 흔들지 않을 것입니다. 보이는 세상의 성공과 즐거움에 미혹되어 어리석은 판단과 계획을 하면, 처참한 심판을 받은 아말렉 인의 종말을 면할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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