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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돌교회
08252019 여호수아 23:1-16 본문
제목: 여호수아의 마지막 설교
여호수아가 주의 뜻을 다 행한 후에, 늙었고, 죽음을 목전에 두고 했던, 마지막 신신당부인 설교, 유언이 무엇이던가요? 율법을 다 지켜 행하라는 말씀입니다. 율법을 떠나 좌로나 우로 치우치지 말라, 즉, 율법을 떠나서 자기의 생각, 습관, 가치관, 문화, 가족, 재산 등 세상의 문제 때문에 왔다 갔다 하지 말라, 요동하지 말라는 당부입니다. 지금까지 너희들이 확인하고 경험한, 살아계셔서 우주 만물을 창조하시고, 모든 자녀들과 인류의 역사까지도 주관하시고 인도해 가시는, 만군의 여호와 하나님만을 섬기고 의지하라는 것이 오늘 말씀의 중심 내용입니다.
그렇습니다. 주님의 뜻을 위하여 목숨을 다하고 최선을 다했던 여호수아의 마지막 그의 설교인, 오직 하나님만을 믿어라! 사랑하라는 이 말씀을 유언처럼 소중하게 여길 수밖에 없는 이유는, 전능하신 하나님의 뜻도 바로, “나는 너희들의 하나님이 되고 너희는 나의 백성이 되는 것” 이었기 때문입니다. 그 뜻은 하나님과 이스라엘이 유기체적인(organism) 연합, 나뉠 수 없는 필연 관계, 우리들이 하나님과 하나가 되시기를 원하시기에, 피조물로서 하나님의 택함을 받은 우리들에게 하나님과 연합은 영광이요 엄청난 복이기에, 그리고 피할 수 없는 거룩한 운명이기에 오직 율법만을 따르라, 하나님만이 모든 삶의 중심이 되라는 설교를 마지막 유언처럼 하지 않을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피조물로서의 순종은 최대의 승리요 최고의 복이라고 아니할 수가 없으니 당연히 여호수아로서는 마지막 설교도 오직 하나님만을 사랑하고 섬기라고 할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결국 여호수아의 간곡한 당부의 말씀이요 유언적 설교이었지만, 여호수아가 어떤 경고의 말씀을 하던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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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24:14-15, 19-22의 말씀으로 알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제는 여호와를 경외하며 성실과 진정으로 그를 섬길 것이라 너희의 열조가 강 저편과 애굽에서 섬기던 신들을 제하여 버리고 여호와만 섬기라-14, 만일 여호와를 섬기는 것이 너희에게 좋지 않게 보이거든 너희 열조가 강 저편에서 섬기던 신이든지 혹 너희의 거하는 땅 아모리 사람의 신이든지 너희 섬길 자를 오늘날 택하라 오직 나와 내 집은 여호와만을 섬기겠노라-15, 여호수아가 백성에게 이르되 너희가 여호와를 능히 섬기지 못할 것은 그는 거룩하신 하나님이시오 질투하는 하나님이시니 너희 허물과 죄를 사하지 아니하실 것임이라-19 만일 너희가 여호와를 버리고 이방신들을 섬기면 너희에게 복을 내리신 후에라도 돌이켜 너희에게 화를 내리시고 너희를 멸하시리라-20, 백성이 여호수아에게 말하되 아니니이다 우리가 정녕 여호와를 섬기겠나이다-21, 여호수아가 백성에게 이르되 너희가 여호와를 택하고 그를 섬기리라 하였으니 스스로 증인이 되었느니라 그들이 가로되 우리가 증인이 되었나이다-22”
특히 19절의 말씀의 뜻은, 너희들은 질투하시는 하나님만큼 하나님을 사랑할 수가 없고 결국 배반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결국 무슨 뜻입니까? 여호수아의 노파심 차원도 아니라, 얼마나 허물 많은 이스라엘 백성인지를 너무나 잘 알고 있었던 여호수아는, 재차 반복적인 신신당부를 합니다. 무엇보다도 이스라엘 그들이 여호수아의 당부에 대하여 진심이 아닌 순 감정적으로만 답하고 있었기에 이를 알고 있던, 여호수아는 ‘야! 너희들이 쉽게 감정적으로 대답할 일이 아니야! 제발 순종하라’ 하면서 결국 스스로의 증인이 되게 합니다. 그럼 하나님을 배반하게 될 줄을 알았으면서도 왜 이런 유언을 했을까요? 그것은 두 가지입니다.
(1) 하나님이 자녀들을 버리는 것이 아니라 너희가 하나님을 배반하는 불신앙 때문이라는 것을 알게 하고
(2) 하나님께서는 “너희는 나의 백성이 되고 나는 너희들의 하나님이라는 것”을 결코 오해하지 말라는 것 때문에 하는 유언적 설교입니다. 즉, 너희는 나의 백성이 되고 나는 너희들의 하나님이기에 어떤 고난과 고통을 받게 되더라도, 하나님에 대하여 불평하거나 원망하거나 낙심하여 끝까지 포기하지 말라는 뜻입니다. 이해가 되십니까? 그런데 여기서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는 것이 있습니다. 창49장의 야곱의 유언과 신33장의 모세의 유언을 보면 12 아들과 12지파에 대한 개별적인 유언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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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수23장의 여호수아의 유언적인 설교를 보면 이스라엘을 한 몸으로 놓고 유언을 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야곱과 모세의 유언과 여호수아의 유언이 그 점에서는 차이가 있습니다. 그 차이점을 보시면 창 49:28의 말씀입니다.
“이들은 이스라엘의 십 이 지파라 이와 같이 그 아비가 그들에게 말하고 그들에게 축복하였으되 곧 그들 각인의 분량대로 축복하였더라”
야곱의 유언이 12 아들에 대한 유언인데 12지파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야곱이 유언할 때에는 12 아들에 대한 유언이 당시 상황에서는 맞습니다. 그런데 12 지파를 향한 유언이라고 하고 있습니다. 다시 신 33:6-25의 모세의 유언을 보면, 12 아들의 이름이 나오지만 이미 그 때에는 이스라엘 백성의 수가 12 아들을 통하여 수백만 명이 되었기에, 각 개인의 이름이 아니라 각 지파에 대한 유언이라고 해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모세의 유언의 마지막 내용도 보시면 신33:26-29입니다.
“26여수룬이여 하나님 같은 자 없도다 그가 너를 도우시려고 하늘을 타시고 궁창에서 위엄을 나타내시는도다 27영원하신 하나님이 너의 처소가 되시니 그 영원하신 팔이 네 아래 있도다 그가 네 앞에서 대적을 쫓으시며 멸하라 하시도다 28이스라엘이 안전히 거하며 야곱의 샘은 곡식과 새 포도주의 땅에 홀로 있나니 곧 그의 하늘이 이슬을 내리는 곳에로다 29이스라엘이여 너는 행복자로다 여호와의 구원을 너 같이 얻은 백성이 누구뇨 그는 너를 돕는 방패시요 너의 영광의 칼이시로다 네 대적이 네게 복종하리니 네가 그들의 높은 곳을 밟으리로다”
12지파에 대하여 유언은 했지만 다시 이스라엘로 모아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여호수아는 어떤가요? 이스라엘 전체를 두고, 하나님만을 오직 사랑하고 섬기라는 유언을 하고 있습니다. 결국 모든 유언의 중심이 무엇입니까? 야곱과 모세와 여호수아의 유언의 중심은 단 한 가지, “나는 너희의 하나님이 되고 너희는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데에 있습니다. 즉, “오직 하나님만을 섬기라는 것”입니다. 야곱과 모세와 여호수아의 유언의 목적은 동일합니다. 동일하지만, 유언의 대상과 조건의 범위가 점점 확대되고 있습니다. 야곱과 모세는 하나님의 약속인 땅을 아직 받지 못한 상태에서의 유언이었기에 개인적이요 지파별로 유언을 했었다면, 여호수아는 약속의 땅을 다 받은 다음에의 유언이기에 이스라엘 전체가 한 몸이 되어 만군의 여호와 하나님만을 믿고 순종할 것을 중심으로 하여 유언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여호수아가 죽자 수24장에서 무엇이라고 말씀을 하시는가 하면, 수 24:29-31입니다.
“이일 후에 여호와의 눈의 아들 여호수아가 일백십 세에 죽으매-29, 무리가 그를 그의 기업의 경내 딤낫 세라에 장사하였으니 딤낫 세라는 에브라임 산지 가아스 산 북이었더라”
그런데 31절을 보세요!
“29이 일 후에 여호와의 종 눈의 아들 여호수아가 일백 십세에 죽으매 30무리가 그를 그의 기업의 경내 딤낫 세라에 장사하였으니 딤낫 세라는 에브라임 산지 가아스산 북이었더라 31이스라엘이 여호수아의 사는 날 동안과 여호수아 뒤에 생존한 장로들 곧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행하신 모든 일을 아는 자의 사는 날 동안 여호와를 섬겼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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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수아가 역시나 걱정했던 그 유언이 이루어지고 맙니다. 사사기만 보더라도 내내 하나님을 배반하고 우상숭배를 하고야 맙니다. 결국 북이스라엘은 BC 722년에 앗수르에 의해서 이미 망하고 유다지파까지도 우상숭배로 인하여 BC 586년 바벨론에 의하여 유다까지 망하면서 바벨론으로 노예 생활을 하게 됩니다. 그러다가 70년 후에 남은 자들을 통하여 이스라엘의 나라가 다시 회복이 됩니다. 그리고 신앙의 암흑기라고 불리는 400년의 중간기라는 긴 세월을 지나게 됩니다. 그러다가 드디어 예수님의 등장과 그분의 사역으로 이스라엘의 구원, 즉 교회가 세워집니다.
그런데 교회가 이스라엘, 예루살렘과 유대와 사마리아에 세워져 가지만 여전히 성전 중심에서 벗어나지 못하자, 어떤 대형 사고가 터지게 됩니까? 로마에 의하여 주후 70년에 이스라엘 나라가 완전 망하게 됩니다. 이 멸망이 그냥 역사적인 사건이 아니라 기독교 구원을 알게 하는 신묘막측한 사건이라고 저는 봅니다. 혈통적 이스라엘이, 이스라엘이 아니라 이스라엘은 은혜의 교회라는 것을 알게 하시는 사건이라는 것입니다. 기독교의 구원에 대한 사건인데 그런데 보세요!
성전의 뜻을 모르는 이스라엘이 성전 중심으로 유지되므로 결국 나라를 잃게 됩니다. 그 후에 온 세상으로 약 1900년간 나라 없는 수난을 겪습니다. 그러다가 1948년에 시온니즘이란 명분을 가지고 스위스 제네바에서의 유대인들의 모임을 갖게 되는데, 이를 통하여 다시 이스라엘이라는 나라가 거의 2000년 만에 기적으로 회복이 됩니다. 그리고 지금에 이르게 됩니다. 기막힌 불운의 이스라엘의 회복에 대하여 세계 역사가 증명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가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회복한 후,
이스라엘의 살길은 예수중심, 교회 중심이 되어야 했습니다. 성전 중심이 되어서는 안 되기에 이스라엘을 주후70년에 로마의 티투스 장군에 의하여 멸망시키신 것입니다. 그런데 2000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성전 중심으로 돌아가고 있다는 점입니다. 2000년이 지나 새로운 이스라엘이 되라고, 은혜의 이스라엘이 되라고, 교회 중심이 되라고 1948년에 다시 이스라엘을 정확하게 1878년 만에 회복을 시켜 주셨는데 놀랍게도 여전히 무너진 구약 성전 중심으로 다시 모이게 되면서, 전 세계를 골치 아프게 만들고 있더라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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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목적은 구약의 성전에서의 제사가 아니라 야곱과 모세와 여호수아의 유언을 통하여 확인했습니다. “너희는 나의 백성이 되고 나는 너희들의 하나님이 되는 것”입니다. 이젠, 건물이 아니라 성전이신 예수님 중심이 되어야 합니다. 교회가 중심이 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지금 어떤가요? 여전히 성전 중심입니다. 여전히 하나님의 뜻을 전혀 모르고 혈통, 사람의 뜻, 육정의 이스라엘로 끌고 가면서, 어떤 심각한 신앙의 문제가 생긴 것입니까?
이스라엘 민족이 단지 자신들은 특별하게 택함을 받은 유대인이라고 하면서 이방인들을 전혀 품지를 못하니까, 주변 국가들과 피 터지는 전쟁의 중심지가 되어버린 것입니다. 아브라함을 부르신 이유도 모르고 성전을 세워주신 이유도 모르고 이스라엘이라는 나라를 주신 이유도 모릅니다. 오직 자기들만이 택함을 받은 민족이라고 하여 이렇게 주변 국가들과 지금까지 죽기 살기로 싸우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중심은 야곱 한 개인이 12 아들에게 했던 유언, 12지파에 유언을 했던 모세 그리고 여호수아를 통한 이스라엘의 그 유언인 “오직 하나님만을 섬기라, 순종하라”가 이스라엘, 즉 교회의 중심 가치관이 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을 불러주셨고 성전을 세워주시고 그리고 이스라엘을 주신 것입니다. 그런데 이 사실을 누가 알고 있습니까? 이스라엘이 알고 있습니까? 지금 누가 알고 있습니까? 놀랍게도 이스라엘이 아니라 지금도 이스라엘이 무시하고 있는 이방인이었던 우리들이 알고 있다는 것입니다. 아니 어떻게 이럴 수가 있을까요? 어떻게 당사자 이스라엘은 모르고 이방인이었던 우리들이 알고 있는 것일까요? 기적이요 신비 중의 신비입니다.
지금으로부터 수천 년 전에 야곱이 12 아들에게 한 유언이 개인적이었지만 개인적인 그 유언이 결국 이루어졌는데, 그 사실을 당사자이었던 이스라엘은 아예 전혀 지금도 다수가 모르고 있습니다. 그런데 내가 우리들이 이 사실을 알고 있다는 것입니다. 비록 여호수아의 걱정스런 유언대로 이루어져, 이스라엘의 불행을 피할 수가 없었지만,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이 세상에서 살고 있는 버려져 있던 자녀들이 오직 하나님만을 바라보도록 놀라운 변화를 시켜버렸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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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너희의 하나님이 되게 하셨고 너희는 하나님의 백성이 되게 하신 것입니다. 얼마나 위대한 결과입니까? 수천 년 전에 하나님의 뜻을 같이했던 야곱과 모세와 여호수아의 유언들이 이제는 이스라엘을 넘어 온 세상에서 복음인, 하나님만을 믿고 사랑하라가 그 핵심이 되어버린 것을 생각해 보세요! 인간의 길이요, 생명이요, 진리인 이 복음을 위하여 하나님께서는 야곱이라는 작은 한 사람의 유언을 통하여 결국 전 세계에 퍼져 살고 있는 택함을 받은 모든 자녀들이 어떤 소원을 가지고 마지막 유언처럼 어떤 유언을 그들이 하고 있던가요?
야곱과 모세와 여호수아의 유언과 그 맥을 같이 하고 있습니다. 저도 동일합니다. 저의 유언도, 너희들은 부자가 되라가 아니라 착하게 살아라가 아니라 오직 “하나님만을 섬기라” 입니다. 무슨 느낌이 드십니까? 이름도 성도 모르고 완전히 음식부터 문화까지도 완전 다 다르지만, 지금 전 세계가 이렇게 복음 안에서 어느 사이에 하나가 되어 가고 있다는 것을 보면, 어떤 생각이 드십니까? 그런데 어떻게 하나님이 없다고 감히 말을 할 수 있고,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살아갈 수 있을까요?
단지 개념적이고 관념적인 하나님으로 여길 수 있습니까? 말도 안 됩니다. 수천 년 전에 시작한 작은 개인적, 개별적인 유언이 지금은 자라서 세계 곳곳에서 모든 자녀들의 유언이 되고 있는 것을 보면, 하나님의 그 사랑과 은혜가 얼마나 대단한지 실감이 나지 않습니까? 하나님의 그 능력이 눈으로는 보이지는 않고 귀로 들리지는 않고 있지만, 그러나 시간도 초월하여 세계 곳곳에서 구석구석 역사하면서 하나님의 거룩하신 뜻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이 사실이 증명이 되고 있는 것을 보면, 정말 살아 계셔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부인하고 싶어도 부인할 자가 있을까요? 없습니다. 그렇다면 그런 사실이 증명이 되고 있는 지금이야 말로, 전능하신 구원의 하나님을 믿지 않을 수가 없는 최고, 최대의 은혜요 기회라는 것을 확실하게 느끼게 됩니다. 언제까지 이 은혜를 이렇게 충만하게 허락하시려는지, 정확하게는 몰라도 제가 볼 때에는 조만간에 이 은혜의 시간이 역사적인 대단원의 막을 내리지 않을까?라는 생각도 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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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능력의 손길이 지금 대단히 빠른 엄청난 속력으로 땅 끝까지의 복음화가 이스라엘을 포함하여 이루어지고 있는 것을 보면 더욱 그렇습니다. 곳곳에서 신실한 주님의 수많은 종들을 통하여, “나는 너희의 하나님이 되게 하셨고 너희는 하나님의 백성이 되게 하시려고” 복음이 유언처럼 심각하게 선포되고 있기에 사단의 세력들은 더욱 악랄하게 날뛸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간교한 방법으로 상상도 할 수 없는 능력과 힘을 가지고 사람들을 뒤흔들어 놓고 있습니다. 수단과 방법을 전혀 가리지 않습니다.
무섭게 속여 수많은 사람이 곳곳에서 죽고 있습니다. 이런 기막힌 증세를 보더라도 이제 곧 주님이 오실 것이라는 짐작도 어렵지 않게 합니다. 물론 자녀들에게는 복의 날이지만 세상인들에게는 무서운 심판의 날입니다. 그러나 이 날을 위하여 아브라함을 불러내셨고 야곱과 모세와 여호수아에게 생명이 가득한 유언을 주셨던 것입니다. 유언대로 다 그렇게 되고 만 것을 이스라엘의 역사가 증명하고 우리의 현실이 증명이 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당사자들인 여호수아가 유언을 할 때에 어느 누가 마지막 설교가 마음에 깊이 팍! 꽂혀서 오직 하나님만을 바라보았을까요? 믿었을까요? 그러나 이스라엘의 역사에서 알 수 있듯이 그들이 유언의 말씀을 믿지 않았음을 그대로 증명하고 있습니다. 믿지 않아서 패망을 했었지만, 그래서 복음이 사라져야 했지만 사라진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는 결국 회복을 시키고 계십니다. 어떻게 알아요? 조금 전에 제가 유언처럼 복음이 곳곳에서 선포되고 있다는 말씀을 드렸지만 사실, 주의 종들의 설교 말씀들이 곳곳에서 유언처럼 아니, 유언 그 이상으로 복음이 선포되면서 회복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주일 설교는 장난이 아닙니다. 사업이 아닙니다. 언제나 마지막의 유언보다 더 심각하게 선포되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런데 듣는 이들이 그 유언의 말씀을 마음으로 받지 않는다면, 살아생전에 어떻게 될까요? 이스라엘이 여호수아의 유언을 귀담아듣지 않았기에 처참하게 망했듯이 같은 증세가 임할 것입니다. 때문에 주일 설교 말씀을 유언처럼 선포하지 못하거나 말씀을 유언으로 받지 않는 자들은 여지없이 망할 수밖에 없게 되는 것입니다. 구약에서도 보세요!
렘 22:21, 25:4, 사 28:23, 42:20입니다.
“21네가 평안할 때에 내가 네게 말하였으나 네 말이 나는 듣지 아니하리라 하였나니 네가 어려서부터 내 목소리를 청종치 아니함이 네 습관이라”
"4여호와께서 그 모든 종 선지자를 너희에게 보내시되 부지런히 보내셨으나 너희가 듣지 아니하였으며 귀를 기울여 들으려고도 아니하였도다"
"23너희는 귀를 기울여 내 목소리를 들으라 자세히 내 말을 들으라"
"20네가 많은 것을 볼찌라도 유의치 아니하며 귀는 밝을찌라도 듣지 아니하는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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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주시는 이 마지막 말씀 즉 살아서 역사하시는 하나님만을 믿고 순종하셔야 그것이 사는 길입니다. 말씀들을 뼈마디마디마다, 그것도 깊이 각인(刻印)하는데 수고를 아끼면 안 되는 것입니다. 주님도 생전에 많은 유언을 하셨지만, 부활하시고 40일간에 살아 계시면서 하신 유언이 있습니다. 어떤 유언을 하셨습니까?
행 1:3-11입니다.
“3해 받으신 후에 또한 저희에게 확실한 많은 증거로 친히 사심을 나타내사 사십 일 동안 저희에게 보이시며 하나님 나라의 일을 말씀하시니라 4사도와 같이 모이사 저희에게 분부하여 가라사대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게 들은바 아버지의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
5요한은 물로 세례를 베풀었으나 너희는 몇 날이 못되어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 하셨느니라 6저희가 모였을 때에 예수께 묻자와 가로되 주께서 이스라엘 나라를 회복하심이 이 때니이까 하니 7가라사대 때와 기한은 아버지께서 자기의 권한에 두셨으니 너희의 알바 아니요
8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9이 말씀을 마치시고 저희 보는데서 올리워 가시니 구름이 저를 가리워 보이지 않게 하더라 10올라가실 때에 제자들이 자세히 하늘을 쳐다 보고 있는데 흰옷 입은 두 사람이 저희 곁에 서서 11가로되 갈릴리 사람들아 어찌하여 서서 하늘을 쳐다 보느냐 너희 가운데서 하늘로 올리우신 이 예수는 하늘로 가심을 본 그대로 오시리라 하였느니라”
(1) 성령이 임하실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결국 오순절에 성취가 되었습니다.
(2) 성령을 받으면 내 증인이 되라고 하셨습니다.
(3) 다시 오실 것을 천사를 통하여 유언을 남기셨습니다.
그 날을 믿기에 모두가 종말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임하실 것이 확신하기에 계시록 내용 전체가 심판의 날에 대한 말씀으로 가득 채워 있지 않습니까? 계시록, 아니 성경 곳곳의 말씀을 보시면, 불의한 자들이 갈 지옥과 성도들이 머물 곳이 어떤 곳인지에 대하여 자세히 말씀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살아 계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살아계시면서 중생된 하나님의 자녀들이 더 이상 세상의 기준으로 살지 못하도록 끝없이 간섭하고 계십니다. 단지 교회에 다닌다고 하여 구원을 받을 것이라는 생각은 잘못된 거짓 원리입니다.이미 교회에 쭉정이까지도 허락하셨기 때문입니다.
마 13:24-30입니다. “24예수께서 그들 앞에 또 비유를 베풀어 가라사대 천국은 좋은 씨를 제 밭에 뿌린 사람과 같으니
25사람들이 잘 때에 그 원수가 와서 곡식 가운데 가라지를 덧뿌리고 갔더니 26싹이 나고 결실할 때에 가라지도 보이거늘 27집 주인의 종들이 와서 말하되 주여 밭에 좋은 씨를 심지 아니하였나이까 그러면 가라지가 어디서 생겼나이까 28주인이 가로되 원수가 이렇게 하였구나 종들이 말하되 그러면 우리가 가서 이것을 뽑기를 원하시나이까 29주인이 가로되 가만 두어라 가라지를 뽑다가 곡식까지 뽑을까 염려하노라 30둘 다 추수 때까지 함께 자라게 두어라 추수 때에 내가 추숫군들에게 말하기를 가라지는 먼저 거두어 불사르게 단으로 묶고 곡식은 모아 내 곳간에 넣으라 하리라”
복음은 예수님의 죽음으로 받은 선물이기에 유언과 전혀 다르지 않습니다. 부모님의 유언도 신중하고 심각하게 받아들여서 받들고 있듯이, 하나님의 말씀인 복음도 그대로 듣고 믿고 받들어 끝까지 순종해야 됩니다. 해도 되고 안 해도 되는 성질의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부모님의 유언은 자식들이 받들지 않아도 되지만, 하나님의 말씀인 복음은 그대로 받들어 믿고 따라야 됩니다. 듣기만 해서 되는 것이 아니요 들어서 아는 것이 다가 아닙니다. 주님을 닮아가는 삶의 변화만이 하나님의 말씀을 제대로 받든 증거가 되는 것입니다. 세상의 기준을 버리고 하나님의 기준으로 바뀌는 것이 말씀을 받은 증거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에 대한 고백은 드리면서, 좁은 길로 갈 생각을 하지 않고 있다면 가짜입니다. 지금 곳곳에 사단과 뜻을 같이한 교회들이 구약처럼 곳곳에 너무나 많습니다. 속으면 안 됩니다.
사 29:13-16, 사 30:9-14, 렘 5:30-31, 6:13-19, 7:8-34, 겔 22:23-31의 말씀을 보세요!
“13주께서 가라사대 이 백성이 입으로는 나를 가까이하며 입술로는 나를 존경하나 그 마음은 내게서 멀리 떠났나니 그들이 나를 경외함은 사람의 계명으로 가르침을 받았을 뿐이라 14그러므로 내가 이 백성 중에 기이한 일 곧 기이하고 가장 기이한 일을 다시 행하리니 그들 중의 지혜자의 지혜가 없어지고 명철자의 총명이 가리워지리라 15화 있을찐저 자기의 도모를 여호와께 깊이 숨기려하는 자여 그 일을 어두운데서 행하며 이르기를 누가 우리를 보랴 누가 우리를 알랴 하니 16너희의 패리함이 심하도다 토기장이를 어찌 진흙 같이 여기겠느냐 지음을 받은 물건이 어찌 자기를 지은 자에 대하여 이르기를 그가 나를 짓지 아니하였다 하겠으며 빚음을 받은 물건이 자기를 빚은 자에 대하여 이르기를 그가 총명이 없다 하겠느냐”
"9대저 이는 패역한 백성이요 거짓말 하는 자식이요 여호와의 법을 듣기 싫어하는 자식이라 10그들이 선견자에게 이르기를 선견하지 말라 선지자에게 이르기를 우리에게 정직한 것을 보이지 말라 부드러운 말을 하라 거짓된 것을 보이라 11너희는 정로를 버리며 첩경에서 돌이키라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자로 우리 앞에서 떠나시게 하라 하는도다 12이러므로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자가 말씀하시되 너희가 이 말을 업신여기고 압박과 허망을 믿어 그것에 의뢰하니 13이 죄악이 너희로 마치 무너지게 된 높은 담이 불쑥 나와 경각간에 홀연히 무너짐 같게 하리라 하셨은즉 14그가 이 나라를 훼파하시되 토기장이가 그릇을 훼파함 같이 아낌이 없이 파쇄하시리니 그 조각 중에서, 아궁이에서 불을 취하거나 물웅덩이에서 물을 뜰 것도 얻지 못하리라"
"30이 땅에 기괴하고 놀라운 일이 있도다 31선지자들은 거짓을 예언하며 제사장들은 자기 권력으로 다스리며 내 백성은 그것을 좋게 여기니 그 결국에는 너희가 어찌 하려느냐"
"13이는 그들이 가장 작은 자로부터 큰 자까지 다 탐남하며 선지자로부터 제사장까지 다 거짓을 행함이라 14그들이 내 백성의 상처를 심상히 고쳐주며 말하기를 평강하다 평강하다 하나 평강이 없도다 15그들이 가증한 일을 행할 때에 부끄러워하였느냐 아니라 조금도 부끄러워 아니할뿐 아니라 얼굴도 붉어지지 않았느니라 그러므로 그들이 엎드러지는 자와 함께 엎드러질 것이라 내가 그들을 벌하리니 그 때에 그들이 거꾸러지리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16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너희는 길에 서서 보며 옛적 길 곧 선한 길이 어디인지 알아보고 그리로 행하라 너희 심령이 평강을 얻으리라 하나 그들의 대답이 우리는 그리로 행치 않겠노라 하였으며 17내가 또 너희 위에 파숫군을 세웠으니 나팔소리를 들으라 하나 그들의 대답이 우리는 듣지 않겠노라 하였도다 18그러므로 너희 열방아 들으라 회중아 그들의 당할 일을 알라
19땅이여 들으라 내가 이 백성에게 재앙을 내리리니 이것이 그들의 생각의 결과라 그들이 내 말을 듣지 아니하며 내 법을 버렸음이니라"
"8너희가 무익한 거짓말을 의뢰하는도다 9너희가 도적질하며 살인하며 간음하며 거짓맹세하며 바알에게 분향하며 너희의 알지 못하는 다른 신들을 좇으면서 10내 이름으로 일컬음을 받는 이 집에 들어와서 내 앞에 서서 말하기를 우리가 구원을 얻었나이다 하느냐 이는 이 모든 가증한 일을 행하려 함이로다 11내 이름으로 일컬음을 받는 이 집이 너희 눈에는 도적의 굴혈로 보이느냐 보라 나 곧 내가 그것을 보았노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12너희는 내가 처음으로 내 이름을 둔 처소 실로에 가서 내 백성 이스라엘의 악을 인하여 내가 어떻게 행한 것을 보라 13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이제 너희가 그 모든 일을 행하였으며 내가 너희에게 말하되 새벽부터 부지런히 말하여도 듣지 아니하였고 너희를 불러도 대답지 아니하였느니라 14그러므로 내가 실로에 행함 같이 너희가 의뢰하는바 내 이름으로 일컬음을 받는 이 집 곧 너희와 너희 열조에게 준 이곳에 행하겠고 15내가 너희 모든 형제 곧 에브라임 온 자손을 쫓아냄 같이 내 앞에서 너희를 쫓아내리라 하셨다 할찌니라 16그런즉 너는 이 백성을 위하여 기도하지 말라 그들을 위하여 부르짖어 구하지 말라 내게 간구하지 말라 내가 너를 듣지 아니하리라 17너는 그들이 유다 성읍들과 예루살렘 거리에서 행하는 일을 보지 못하느냐 18자식들은 나무를 줍고 아비들은 불을 피우며 부녀들은 가루를 반죽하여 하늘 황후를 위하여 과자를 만들며 그들이 또 다른 신들에게 전제를 부음으로 나의 노를 격동하느니라 19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그들이 나를 격노케 함이냐 어찌 자기 얼굴에 수욕을 자취함이 아니냐 20그러므로 주 여호와 내가 이같이 말하노라 보라 나의 진노와 분한을 이곳에 붓되 사람과 짐승과 들나무와 땅의 소산에 부으리니 불 같이 살라지고 꺼지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21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이같이 말씀하시되 너희 희생에 번제물을 아울러 그 고기를 먹으라 22대저 내가 너희 열조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날에 번제나 희생에 대하여 말하지 아니하며 명하지 아니하고 23오직 내가 이것으로 그들에게 명하여 이르기를 너희는 내 목소리를 들으라 그리하면 나는 너희 하나님이 되겠고 너희는 내 백성이 되리라 너희는 나의 명한 모든 길로 행하라 그리하면 복을 받으리라 하였으나 24그들이 청종치 아니하며 귀를 기울이지도 아니하고 자기의 악한 마음의 꾀와 강퍅한 대로 행하여 그 등을 내게로 향하고 그 얼굴을 향치 아니하였으며 25너희 열조가 애굽 땅에서 나온 날부터 오늘까지 내가 내 종 선지자들을 너희에게 보내었으되 부지런히 보내었으나 26너희가 나를 청종치 아니하며 귀를 기울이지 아니하고 목을 굳게 하여 너희 열조보다 악을 더 행하였느니라 27네가 그들에게 이 모든 말을 할찌라도 그들이 너를 청종치 아니할 것이요 네가 그들을 불러도 그들이 네게 대답지 아니하리니 28너는 그들에게 말하기를 너희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목소리를 청종치 아니하며 교훈을 받지 아니하는 국민이라 진실이 없어져 너희 입에서 끊어졌다 할찌니라 29예루살렘아 너의 머리털을 베어 버리고 자산 위에서 호곡할찌어다 여호와께서 그 노하신바 이 세대를 끊어버리셨음이니라 30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유다 자손이 나의 목전에 악을 행하여 내 이름으로 일컬음을 받는 집에 그들의 가증한 것을 두어 집을 더럽혔으며 31힌놈의 아들 골짜기에 도벳 사당을 건축하고 그 자녀를 불에 살랐나니 내가 명하지 아니하였고 내 마음에 생각지도 아니한 일이니라 32그러므로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날이 이르면 이곳을 도벳이라 하거나 힌놈의 아들의 골짜기라 칭하지 아니하고 살륙의 골짜기라 칭하리니 매장할 자리가 없도록 도벳에 장사함을 인함이니라 33이 백성의 시체가 공중의 새와 땅 짐승의 밥이 될 것이나 그것을 쫓을 자가 없을 것이라 34그 때에 내가 유다 성읍들과 예루살렘 거리에 기뻐하는 소리, 즐기는 소리, 신랑의 소리, 신부의 소리가 끊쳐지게 하리니 땅이 황폐하리라"
"23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여 가라사대 24인자야 너는 그에게 이르기를 너는 정결함을 얻지 못한 땅이요 진노의 날에 비를 얻지 못한 땅이로다 하라 25그 가운데서 선지자들의 배역함이 우는 사자가 식물을 움킴 같았도다 그들이 사람의 영혼을 삼켰으며 전재와 보물을 탈취하며 과부로 그 가운데 많게 하였으며 26그 제사장들은 내 율법을 범하였으며 나의 성물을 더럽혔으며 거룩함과 속된 것을 분변치 아니하였으며 부정함과 정한 것을 사람으로 분변하게 하지 아니하였으며 그 눈을 가리워 나의 안식일을 보지 아니하였으므로 내가 그 가운데서 더럽힘을 받았느니라 27그 가운데 그 방백들은 식물을 삼키는 이리 같아서 불의의 이를 취하려고 피를 흘려 영혼을 멸하거늘 28그 선지자들이 그들을 위하여 회를 칠하고 스스로 허탄한 이상을 보며 거짓 복술을 행하며 여호와가 말하지 아니하였어도 주 여호와의 말씀이라 하였으며 29이 땅 백성은 강포하며 늑탈하여 가난하고 궁핍한 자를 압제하였으며 우거한 자를 불법하게 학대하였으므로 30이 땅을 위하여 성을 쌓으며 성 무너진 데를 막아서서 나로 멸하지 못하게 할 사람을 내가 그 가운데서 찾다가 얻지 못한고로 31내가 내 분으로 그 위에 쏟으며 내 진노의 불로 멸하여 그 행위대로 그 머리에 보응하였느니라 나 주 여호와의 말이니라"
-8-
믿음은 ‘적당히’라는 것이 없습니다. 믿음은 믿음이기에 구경꾼이 아닌 주인으로, 주인공으로, 선수로 뛰게 합니다. 주인이 머슴으로 머물 수 없듯이, 믿음을 흉내만 내는 것으로 만족할 수가 없습니다. 고통스러울 뿐입니다. 세상에서 사느냐고 누구든지 힘들고 고통스러울 바에야, 믿음 때문에 힘든 것이 복이요 지혜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세요! 따지지 말고 항복하세요! 절대로 망하지 않습니다. 따지고 자기 생각대로 하는 자가 망할 뿐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유언처럼 받들어 순종하면 30, 60, 100배의 넉넉한 결실을 주시지만, 받들지 않으면, 30, 60, 100배로 손해를 봅니다. 이스라엘이 100% 증명하고 있습니다. 불순종으로 망하는 것을 꼭 자신이 확인해 보려고 하지 마시고, 확인을 하고 싶으시면 순종으로 해 보시는 것이 나을 것입니다. 그럴 때에 하나님의 말씀에 대하여 더 깊이 알고 신앙이 자라게 될 것입니다. 여호수아 당시 가나안 7 족속을 진멸하지 않은 그 결과는 수23:13에서도 말씀하셨지만, 지금 진멸당하지 않고 남은 그들이 모슬램으로 둔갑하여 모두에게 어떤 고통을 주고 있습니까? 주님의 거룩하신 이름으로 당부를 드립니다. 교회 생활을 하다가 자신의 생명이 다하여 죽음을 눈앞에 두게 되었을 때에, 후회하는 일이 없어야 합니다. 성도가 이것이 아닌데 이렇게 살지 말았어야 되는데, 이렇게 나의 죽음이 눈앞으로 다가올지를 몰랐습니다! 이렇게 삶이 끝이 나면 안 됩니다. 따라가지 말라는 세상을 열심히 따르다가 갑자기 닥친 죽음 앞에서 당황되어 두려워 떨게 된다면, 이것이 마지막의 모습이 된다면, 정말 그것보다 심각한 처지는 없습니다. 죽어 가시면서 좀 더 살아보겠다고, 발버둥을 치는 것도 참으로 부끄러운 노릇입니다. 그러나 모든 이들이 눈물을 흘리며, 참으로 더 같이 있어야 되는 지체가 먼저 떠난다고, 심히 아쉬워하는 그런 떠남이 되어야 합니다. 이웃들로부터 박수와 존경을 받아야 합니다. 그것이 진정한 승리자입니다. 성도의 죽음은 과거급제를 하여 금의환향(錦衣還鄕)하여 당당하게 고향으로 돌아가는 것과 같아야 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 세상에서의 성도의 죽음은 끝이 아니고 영생의 시작이기 때문입니다. 지금 이곳에서의 삶이 말씀이었느냐 재물이었느냐 이것이 심판의 기준이 됩니다. 성도로서 부끄러운 세상의 재산 차원을 가지고 부끄러운 유언을 하지 마시고 하나님의 기쁨이 너의 기쁨, 하나님의 소망이 너의 소망이 되기 위하여, 좁은 길을 가라, 손해를 보라는 유언을 남기고 떠나는 증인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이를 위하여 항상 준비하는 거룩한 하루하루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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