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돌교회

03032019 신명기 33:20-21 본문

주일 설교 말씀

03032019 신명기 33:20-21

PastorYK 2019. 3. 5. 04:10

제목: 갓 지파의 축복



첫째로, 먼저 모세가 갓 지파에게 하는 축복부터 살펴보려고 합니다. 그 축복은 우리들의 생각하는 축복하고는 역시나 다릅니다. 

20절의 내용을 다시 봅니다. “갓에 대하여 일렀으되 을 광대케 하시는 자에게 찬송을 부를찌어다, 갓이 암사자같이 엎드리고 팔과 정수리를 찢는도다, 그가 자기를 위하여 먼저 기업을 택하였으니 곧 법 세운 자의 분깃으로 예비 된 것이로다 그가 백성의 두령들과 함께 와서 여호와의 공의와 이스라엘과 세운 법도를 행하도다” 갓이 받은 축복의 내용을 보면, (1) 암사자같이 엎드리고 팔과 정수리를 찢고 즉 막강한 힘을 가진 지파라는 것과 

(2) 그가 자기를 위하여 먼저 기업을 택하였으니 곧 법 세운 자의 분깃으로 예비 된 것인데 그가 백성의 두령들과 함께 와서 여호와의 공의와 이스라엘과 세운 법도를 행하였다는 축복입니다. 아주 평범한 축복입니다. 달라 보이지 않습니다. 그런데 왜 제가 다르다고 했을까요? 

우린 먼저 갓 지파가 다른 지파와는 다르게 먼저 요단강 동쪽 지역을 르우벤과 갓 지파가 먼저 확보했던 것을 신3:12-17에서 알 수 있습니다. 

12 그 때에 우리가 이 땅을 얻으매 아르논 골짜기 곁에 아로엘에서부터 길르앗 산지 절반과 그 성읍들을 내가 르우벤 자손과 갓 자손에게 주었고 13길르앗의 남은 땅과 옥의 나라이었던 아르곱 온 지방 곧 온 바산으로는 내가 므낫세 반 지파에게 주었노라 (바산을 옛적에는 르바임의 땅이라 칭하더니 14므낫세의 아들 야일이 그술 족속과 마아갓 족속의 경계까지의 아르곱 온 지방을 취하고 자기의 이름으로 이 바산을 하봇야일이라 칭하여 오늘까지 이르느니라) 15내가 마길에게 길르앗을 주었고 16르우벤 자손과 갓 자손에게는 길르앗에서부터 아르논 골짜기까지 주었으되 그 골짜기의 중앙으로 지경을 정하였으니 곧 암몬 자손의 지경 얍복강까지며 17또는 아라바와 요단과 그 가요 긴네렛에서 아라바 바다 곧 염해와 비스가 산록에 이르기까지의 동편 지경이니라” 

그런데 아주 평범해 보이는 이 두 축복이, 다름이 아니라 갓을 광대케 하신 하나님 때문이라는 것과 그것이 예비 된 것이라는 것 오늘 본문에서 알게 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갓 지파는 막강한 힘의 지파가 되어서 요단 동편 땅을 얻게 되었다는 것이 다 예비 된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여기까지는 은혜요 예비 된 것이라서 일반적인 복으로 이해가 됩니다. 그러나 예비 된 복을 이루기 위하여 갓 지파가 끝까지 싸웠다는 것이 사실 복이라고 할 수 없기에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있는 복하고는 다르다는 말씀을 드렸던 것입니다. 우리의 복은 가만히 있어도 하늘에서 원하는 것들이 뚝! 떨어지는 것으로 생각하는데, 오늘 갓 지파가 받은 복을 보면, 암사자처럼 싸워 얻은 고기처럼, 기업, 땅을 싸워 얻은 것이 복이라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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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이라면 간절한 기도만으로 이루어져야 되는 것이 복이 아닙니까? 그런데, 갓의 기업이 예비(豫備)된 것이 되었고, 거저 받았기에 복이라고 해도 전혀 어색하지 않겠지만 그러나 그 예비 된 것을 거저 받은 것이 아니라 자기가 싸워서 얻어야 된다면 그것이 어떻게 복이 될 수 있을까요? 그러나 그것을 성경은 복이라고 합니다. 왜요? 내가 한 것이 아니라 그 결과가 어디로부터 왔다고 합니까? 하나님께서 갓 지파를 광대케 하셨다고 하지 않습니까? 갓이 자기의 힘과 능력으로 이루어 놓은 과업이 아니라 광대케 하시는 하나님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우린 오늘 말씀에서 올바른 신앙관을 알게 됩니다. 기복신앙의 특징을 보면, 능력의 신에게 자기의 필요를 단지 기도로 얻으려고 합니다. 마치 음료수를 파는 자판기처럼 말입니다. 당장 필요한 것을 동전으로 쉽게 얻듯이, 자기의 필요를 단지 기도로 얻으려는 것이 기복신앙입니다. 

그러나 기독교 신앙은 완전 다릅니다. 능력의 하나님, 천지를 창조하시고 죽은 자를 살리시는 신비한 기적과 기사를 늘 행하시는 하나님을 믿고 단지 기도로 해결하는 것이 기독교 신앙이 아닙니다. 

기독교 신앙이란 물론 처음에는 구원도 거저, 자신도 전혀 모르게 얻게 됩니다. 정말 복중의 큰 복입니다. 구원 때문에 기도도 하지 않았고 원한 적도 없었는데 거저 공짜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기에 진짜 복입니다. 그래서 그 복을 은혜라고 합니다. 그런데, 그 구원의 복이 어떤 복인가 하면, 세상 차원의 복이 아닙니다. 다 버려야 되는 복입니다. 가지고 있던 세상의 모든 재물, 권세, 명예, 관계, 아니 목숨까지도 다 내려놓아야지만 되는 복입니다. 거저 구원을 받은 자녀들, 성도들에게 자신의 세상적인 목표와 목적이 허락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목표와 목적인 거룩함을 이루어가야 되는 신앙의 책임이 주어진 것이 구원의 복입니다. 거룩함을 위하여 자기의 고집과 욕심과 이기심과 잘못된 습관까지 다 버리고 오직 그리스도의 푯대를 향하여 나아가야 되는 복이기에 그래서 좁은 길, 가시밭길이 성도의 현실이 됩니다. 그렇습니다. 세상에서의 그런 복과는 갓의 축복이 달랐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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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3:18-22의 말씀을 봅니다. "18 그 때에 내가 이 땅을 받은 너희에게 명하여 이르기를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 땅을 너희에게 주어 기업이 되게 하셨은즉 너희 군인들은 무장하고 너희의 형제 이스라엘 자손의 선봉이 되어 건너가되 19너희에게 육축이 많은줄 내가 아노니 너희의 처자와 육축은 내가 너희에게 준 성읍에 머무르라 20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주신것 같이 너희 형제에게도 안식을 주시리니 그들도 요단 저편에서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주시는 땅을 얻어 기업을 삼기에 이르거든 너희는 각기 내가 준 기업으로 돌아갈 것이니라 하고 21그 때에 내가 여호수아에게 명하여 이르기를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 두 왕에게 행하신 모든 일을 네가 목도하였거니와 네가 가는 모든 나라에도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행하시리니 22

너희는 그들을 두려워하지 말라 너희 하나님 여호와 그가 너희를 위하여 싸우시리라 하였노라 

바로 갓 지파가 이미 요단 동편 땅을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함께 싸워 얻은 요단강 동편이 두지파의 반의 땅이 되었지만, 그것으로 다 된 것이 아니라 남은 9지파 반에게도 주시겠다는 요단강의 서쪽 가나안 땅을 얻기 위하여 무장하고 선봉이 되어서 가족과 가진 모든 것들을 요단 동편에 두고 끝까지 그 싸움에 동참하게 됩니다. 결국 광대케 하시는 하나님의 도우심을 믿고, 믿음의 싸움을 하여 승리한 후에 요단강 동편과 서쪽 땅을 다 얻고 나서, 자기가 받은 요단 동편 땅으로, 가족이 살고 있는 자기의 집으로 돌아오게 되면서, 갓 지파는 하나님의 뜻을 이루게 되고 이것을 복이라고 축복하고 있습니다. 

그것에 대하여 모세가 갓을 축복한 말씀이 신33:20-21입니다. 여기서 놓치면 안 되는 축복의 내용이 무엇이라고요? 갓 지파를 광대케 하시는 하나님입니다. 내가 한 것 같지만, 아니라는 것입니다. 물론 흘린 땀과 노력에 대하여 그 공로를 인정해 주시고 칭찬을 해 주십니다. 공로를 인정하여 칭찬을 해 주시지만, 그러나 그 승리와 수확 중심에는 다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이룬 승리라는 것을 신3:22에서 확인이 됩니다. 

“너희는 그들을 두려워하지 말라 너희 하나님 여호와 그가 너희를 위하여 싸우시리라 하였노라” 

그런데 이것이 왜 축복이 될까요? 하나님께서 도와 주셔서 얻은 기업, 땅은 순종만 하면, 영원한 복의 땅이 된다고 하셨기 때문입니다. 성도가 믿음으로 얻은 복은 먼지 털 하나도 사라지거나 썩지 않는 법이기 때문입니다. 벧전1:25입니다. “오직 주의 말씀은 세세토록 있도다” 약속하신 말씀, 즉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복은 영원히 영원합니다. 그러나 믿음이 아닌 자력으로 얻어낸 복은 아무리 노력을 한 결과일지라도 결국 다 사라지고 맙니다. 

벧전1:24입니다. “그러므로 모든 육체는 풀과 같고 그 모든 영광이 풀의 꽃과 같으니 풀은 마르고 꽃은 떨어지되” 

시144:4입니다. “사람은 헛것 같고 그의 날은 지나가는 그림자 같으니이다” 

한 곳만 더 봅니다. 시39:4-6입니다. “여호와여 나의 종말과 연한의 어떠함을 알게 하사 나로 나의 연약함을 알게 하소서"

하나님의 말씀을 모르면, 안 된다는 것을 아는 것이 이렇게 중요합니다. "주께서 나의 날을 손 넓이만큼 되게 하시매 나의 일생이 주의 앞에는 없는 것 같사오니 사람마다 그 든든히 선 때도 진실로 허사뿐이니이다, 진실로 각 사람은 그림자같이 다니고 헛된 일에 분요하며 재물을 쌓으나 누가 취할는지 알지 못하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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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힘으로 얻은 것은 그림자처럼 완전하게 사라집니다. 먼지 털 하나도 남지 않고 완전하게 사라질 것입니다. 그래서 시39:7에서 무엇이라고 고백하던가요? “주여 내가 무엇을 바라리요 나의 소망은 주께 있나이다” 

시편기자가 바보입니까? 바보라서 실력과 능력이 없어서 마마보이처럼 사는 자이었던가요? 아닙니다. 

진리를 깨달은 자였기에 모든 소망을 하나님에게 다 맡기고 기쁨과 자유를 누리며 살던 자였습니다. 게다가 더욱 심각한 점은 자력으로 얻은 모든 수확은 결국 자기의 영혼도 죽이고 가족과 이웃까지도 죽이는 맹독이 된다는 사실도 알아야 됩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광대하심으로 얻은 나의 모든 승리와 기업은 복이 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신신당부를 드립니다. 그림자와 같은 헛된 자기를 믿지 마세요! 다 죽습니다, 죽어요! 정말, 믿지 못하겠어요? 

끝까지 마지막까지 가서 꼭 확인해 보고 나서 어떻게 하시려고 하십니까? 그런 미련한 짓을 왜 하려고 합니까? 오직 하나님 말씀만을 믿어야 합니다. 그 누구의 말도 믿지 마세요! 그런데 왜 우린 하나님만을 믿지 못하고 있을까요? 보이는 세상의 것에 완전 묶이고 빠져서 아무 생각 없이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무서운 백보좌 심판이 있다는 말씀을 믿지 않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만을 바라보지 못하고 사는 사람들만큼 답답한 삶은 없습니다. 

사도 바울의 고백을 봅니다. 딤전1:12입니다. “나를 능하게 하신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께 내가 감사함은 나를 충성 되이 여겨 내게 직분을 맡기심이니” 바울도 보세요! 나를 능하게 하신, 즉 거저 받은 복음 때문에, 믿음 때문에, 구원 때문에 거저 승리를 했던가요? 아니면 어떤 고난을 당했고 세상의 악한 세력으로부터 어떤 고난을 당했던가요? 복음 때문에 먹지 못하고, 자지 못하고, 쉬지 못하고, 매 맞고, 갇히고, 요란하고, 강과 동족의 극도로 위험한 상황 속에서도 승리자의 삶을 지켜 낸 것을 모르는 분이 계십니까? 사도바울이 이런 험악한 과정을 버틴 그 이유는 죄인 중의 괴수인 바울 자신을 포기하지 아니하시고 주신 구원, 거저 받은 구원 때문에 즉 나를 능하게 하신 하나님 때문에 모진 고통을 끝까지 감당했고 그리고 바울은 하늘의 별처럼 영원히 빛나는 자가 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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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당하고 당하는 현실 속에서도 자기를 능하게 해 주신 하나님에게 바울은 어떤 찬송을 드리고 있던가요? 

딤전1:13-17입니다. “내가 전에는 훼방자요 핍박자요 포행자이었으나 도리어 긍휼을 입은 것은 내가 믿지 아니할 때에 알지 못하고 행하였음이라, 우리 주의 은혜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과 사랑과 함께 넘치도록 풍성하였도다, 미쁘다 모든 사람이 받을 만한 이 말이여 그리스도 예수께서 죄인을 구원하시려고 세상에 임하셨도다 하였도다 죄인 중에 내가 괴수니라, 그러나 내가 긍휼을 입은 까닭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내게 먼저 일절 오래 참으심을 보이사 후에 주를 믿어 영생 얻는 자들에게 본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만세의 왕 곧 썩지 아니하고 보이지 아니하고 홀로 하나이신 하나님께 존귀와 영광이 세세토록 있을지이다 아멘

만세의 왕 곧 썩지 아니하고 보이지 아니하고 홀로 하나이신 그 하나님이 나를 능하게 하여 주셨기에 바울은 all in 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둘째로, 창49:19입니다. “갓은 군대의 박격을 받으나 도리어 그 뒤를 추격하리로다”  

야곱이 한 갓의 축복에 대하여 말씀을 드립니다. 요즘 젊은이들에게 너무나 부족한 점을 찾아서 꼽으라면 저는 무엇보다도 저력(底力)입니다. 성도라면, 넘어져서 실패 했을지라도 다시 일어나는 아니 7번씩 넘어졌을지라도 다시 시작하는 그 용기와 힘을 가져야 합니다. 사실은 힘과 지혜와 물질과 배움이 부족하여 흙수저로 태어났기에 늘 당하고 그래서 실패하는 자가 못난 것이 아닙니다. 성도된 자들이 다시 시작하지 않는 것, 포기하고 시작하지 못하는 자들이 실패자요 못난 자들이 되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갓 지파의 축복의 말씀에서 아주 중요한 원리를 가져야 할 것입니다. 

창49:19를 보세요! “갓은 군대의 박격을 받으나 도리어 그 뒤를 추격하리로다” 

저력을 가진 지파입니다. 포기하지 않는 지파라는 말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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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축복의 말씀을 보면, 모세는 하나님의 선택된 지파로 축복하고 믿음으로 싸워 이긴 성공한 지파로 축복을 하고 있습니다. 물론 갓 지파는 오늘의 신33:21의 말씀처럼 먼저 기업을 요단강 동편에 르으벤과 므낫세 반 지파와 갓 지파가 얻게 되고 이스라엘의 12지파와 함께 싸워서 가나안 땅을 찾지 하는데 혁혁(奕奕)한 공을 세우는 지파가 됩니다. 이것을 우리는 여호수아서에서 확인이 됩니다. 

수22:1-6입니다. “1그 때에 여호수아가 르우벤 사람과 갓 사람과 므낫세 반 지파를 불러서 2그들에게 이르되 여호와의 종 모세가 너희에게 명한 것을 너희가 다 지키며 또 내가 너희에게 명한 모든 일에 내 말을 너희가 청종하여 3오늘날까지 날이 오래도록 너희가 너희 형제를 떠나지 아니하고 오직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명하신 그 책임을 지키도다 4이제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미 말씀하신대로 너희 형제에게 안식을 주셨으니 그런즉 이제 너희는 여호와의 종 모세가 요단 저편에서 너희에게 준 소유지로 가서 너희의 장막으로 돌아가되 5크게 삼가 여호와의 종 모세가 너희에게 명한 명령과 율법을 행하여 너희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고 그 모든 길로 행하며 그 계명을 지켜 그에게 친근히 하고 너희의 마음을 다하며 성품을 다하여 그를 섬길찌니라 하고 6여호수아가 그들에게 축복하여 보내매 그들이 자기 장막으로 갔더라

 

오늘 신33:20에서도 갓 지파는 암사자처럼 강하고 힘이 있는 용맹스런 지파라고 축복합니다. 물론 처음에는 공격을 받아 쫓기는 신세였을지라도 결국 반격하여 승리하는 갓 지파가 됩니다. 우리 인생에서 가장 멋진 승리는 물러서다가 반격하여 거머쥔 승리입니다. 역전은 운과 재수가 아닙니다. 역전의 승리는 그들의 실력이요 능력이요 수고의 대가입니다. 그래서 제 기억으로는 지금부터 45년 전에 있었던 당시 고등학교 봉황기인가 청룡기 야구대회에서 마지막 9회 말 공격에서 역전하여 우승을 한 군상상고는 아직도 제 기억뿐 만이 아니라 야구를 좋아했던 그들 모두에게 생생한 추억으로 남아 있습니다. 


요즘처럼 누구든지 단번에 성공하려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막 살아가는 그들을 볼 때에 얼마나 애처롭고 불쌍하고 아슬아슬한지 모릅니다. 왜냐하면 단번에 거머쥐려는 자들이 넘어지면 거의가 좌절하여 망가지는 삶을 쉽게 볼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실패할 때마다 실패한 그 이유를 찾아내어서 다시 수정하고 다시 시도하면서 물론 그 반복이 거듭되면서 주변의 어려움을 심하게 줍니다. 그러나 고통을 줄지라도, 올바른 뜻이 성취가 되면, 그 성공은 의미와 가치가 있는 것입니다. 

실패해도 끝까지 하나씩 하나씩 수정하여 보완하면서 땀을 흘리는 이것은 실은 아름다움이요 지혜요 능력입니다. 모두에게 본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다가 안 된다고 하여, 쉽게 절망하고 포기를 한다면, 그것이 바로 실패요 못난 자가 됩니다. 우리가 사도행전과 고린도전후서에서 바울의 사역을 알 수 있는데, 얼마나 많은  실패를 하던가요? 바울은 거의 다 실패한 사역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아니 세상의 안목으로는 실패한 사역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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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냐하면 그것도 동족으로부터 늘 쫓겨 죽음을 눈앞에 두는 처지였지만,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다는 사실입니다. 

고후11:23-27의 말씀을 봅니다. 23저희가 그리스도의 일군이냐 정신 없는 말을 하거니와 나도 더욱 그러하도다 내가 수고를 넘치도록 하고 옥에 갇히기도 더 많이 하고 매도 수없이 맞고 여러번 죽을뻔 하였으니 24유대인들에게 사십에 하나 감한 매를 다섯번 맞았으며 25세번 태장으로 맞고 한번 돌로 맞고 세번 파선하는데 일주야를 깊음에서 지냈으며 26여러번 여행에 강의 위험과 강도의 위험과 동족의 위험과 이방인의 위험과 시내의 위험과 광야의 위험과 바다의 위험과 거짓 형제 중의 위험을 당하고 27또 수고하며 애쓰고 여러번 자지 못하고 주리며 목마르고 여러번 굶고 춥고 헐벗었노라

바울의 사역은 완전 실패작입니다. 그러나 끝까지 복음을 위하여 목숨을 걸고 자기의 책임을 다한 바울은 지금 예수님의 제자로서 어떤 인물로 평가를 받고 있습니까? 신약 성경 27권 중에서 13권을 기록하여 하나님의 뜻을 온 만방에 알리는 상상할 수 없는 너무나 귀한 사명을 감당한 바울은 여전히 최고입니다. 

인생은 부분을 보지 않는 것입니다. 인생은 전체를 보아야 바른 평가를 내릴 수 있습니다. 부분적으로는 실패한 바울이지만 그의 인생 전체를 보면 그는 최고로 복된 자가 된 것입니다. 이런 믿음의 인물이 되고 싶지 않으십니까? 실패로 보이지만 낙망하지 않고 끝까지 믿음으로 해냄으로 얻은 바울의 그 승리가 그래서 값어치가 있습니다. 물론 사도 바울의 이야기입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에만 국한된 복일까요? 그것은 아닙니다. 우리에게도 허락된 복의 말씀입니다. 

예화: 모니카가 19살 때, 일입니다. 그때가 모니카 19세 생일이었습니다. 생일이었기에 그래서 기대하면서 기쁨을 가지고 엄마와 외출은 했습니다. 외출을 한 이유는 자신은 머리를 cut하고 엄마는 Lisa 자매님에게 skin care하려고 나갔습니다. 아침 8:30분경에 나갔는데 10:50분경에 전화가 말씀을 준비하고 있는 저에게 왔습니다. 아빠! 하는 모니카 목소리가 다운되어 있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물었지요! 모니카야! 머리를 예쁘게 잘랐니? 하고 물으니까 아니, 그럼 엄마는 아직도 나오지 않았어? 하니까. 응! 아직도 나오지 않았어! 그럼, 너 오늘 볼 말씀을 가지고 나갔니? 아니. 그래서 제가 모니카에게, ‘모니카야! 너는 그 두 시간을 생자로 버리고 있구나!’ 한 마디 해 놓고서는, 이 세상에서 얻을 수 없는 너무나 중요한 잔소리를 생일 선물로 주었습니다. 그것이 무엇인가 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모니카야! 물론 이해를 한다! 그러나 너의 견딤과 인내 때문에 엄마가 예뻐지고 건강해 진다면, 얼마나 감사한 인내의 시간이니? 비록 생일날이지만, 네가 엄마를 충분히 이해를 하고 skin care 하고 나오는 엄마에게 짜증 내지 않고, 엄마! 참 예뻐졌네? 하여 칭찬을 하면, 엄마가 얼마나 미안해하고 기뻐하겠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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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좋은 시간이 된다면, 너는 어떤 선물을 받은 것인지 아니? 너는 하나님으로부터 선물을 받게 된 거야! 왜냐하면 모니카의 인내와 희생으로 엄마가 기뻐하고 행복해 한다면 그것이 네가 남에게 받는 선물보다 더 큰 선물을 받은 것이 되는 것이야!  한 사람의 수고로 누군가가 행복해 한다면 그것은 어떤 세상의 선물보다 소중한 선물이야! 

바로 예수님의 삶이 그런 삶이셨지, 예수님께서는 자신의 수고와 희생으로 죄인들을 구원하셨고 평강과 자유와 기쁨을 주시지 않았니?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부활, 승천 하신 후, 예수님을 지극히 높여 주셨고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셨어! 그때 모니카의 목소리가 회복이 된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그때는 아빠의 말을 은혜가 곧 잘 듣고 참 조용한 학생이었는데, 지금은 달라졌습니다. 자기도 이젠 어른이라는 것입니다. 더 이상 간섭하지 말라고 하는데, 하여튼 그 당시 아빠의 말 한 마디에 회복, 반전(反轉)이 되곤 했습니다. 물론 아무 것도 아닌 작은 사건에 불과하다고 생각을 할 수 있지만, 그러나 자기의 것을 포기하고 인내한다는 것이 그렇게 쉬운 이야기는 아닙니다. 

모니카가 아빠의 그런 듣기 싫을 수 있는 한 마디를 듣고, 회복과 반전이 되는 것은 갓난아기 때부터 19세가 된 그날까지, 긴 시간 속에서 엄마 아빠를 항시 보고 느끼고 배우면서 받은 경험과 특히 순종 속에서 온 결과입니다. 그렇습니다. 주님의 가르침을 따라서 바울처럼, 모니카처럼, 그 누구라도 자기가 자기의 죄와 잘못을 인정하지 못하면 반전은 없습니다. 자기희생 없이 남에게 줄 행복은 없습니다. 

때문에 누구든지 모진 훈련과 어려운 긴 인내의 시간을 통하여 깨닫지 않으면 갓 지파처럼, 바울과 모니카처럼, 그 누구에게도 반전은, 역전의 승리는 허용되지 않습니다. 축복은 우연과 운명이 아닙니다. 스스로 믿음 안에서 갓 지파처럼, 바울처럼 만들어져 가는 것입니다. 나에게 허락된 이 시간 속의 하루, 하루는 생명처럼 아껴야 합니다. 아끼지 않으면 누구에게도 반전과 역전의 기회는 없습니다. 낭비하는 물질과 시간이 없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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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비하는 시간이 없이 늘 훈련과 준비하는 삶을 유지할 때에, 암사자가 되어 악한 상대의 팔과 정수리를 찢어 자신과 가정과 교회를 보호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요즘 세상은 다 한탕주의로 가고 있습니다. 한탕주의의 삶은 복된 인내가 없습니다. 쓸모없는 인내를 할 뿐입니다. 쓸모없는 인내는 더욱 그 사람을 피폐(疲斃)케 합니다. 똑같은 시간이요 똑같은 하루입니다. 


그러나 자신이 어떤 목표를 가지고 어떤 수고와 훈련을 인내하면서 사는 가에 성공과 실패가 달려 있습니다. 지금 어떤 역경에 빠져 있습니까? 역전하고 반전할 힘이 없습니까? 그 기회가 보이지 않습니까? 그것은 자기중심의 삶을 살아온 결과입니다. 그러나 기회의 하나님, 사랑의 하나님께 그간에 잘못 살아온 못나고 어리석은 자신을 고백하고, 작은 것부터 믿음으로 시작을 계속해서 해 보세요! 

반드시 갓 지파에게 약속하신 그 반전과 역전의 승리를 당장은 아니지만, 꼭 주신다는 사실입니다. 다시 말씀을 드리지만, 끝까지 인내하면서 믿음으로 작은 시작이라고 하게 된다면, 100% 반전할 수 있는 기회와 승리의 축배까지도 드는 그날을 허락 하실 것입니다. 그 증거, 사실을 시편에서 찾아 보여 드리겠습니다. 

첫째로 시30:1-12입니다.1여호와여 내가 주를 높일 것은 주께서 나를 끌어 내사 내 대적으로 나를 인하여 기뻐하지 못하게 하심이니이다 2여호와 내 하나님이여 내가 주께 부르짖으매 나를 고치셨나이다 3여호와여 주께서 내 영혼을 음부에서 끌어내어 나를 살리사 무덤으로 내려가지 않게 하셨나이다 4주의 성도들아 여호와를 찬송하며 그 거룩한 이름에 감사할찌어다 5그 노염은 잠간이요 그 은총은 평생이로다 저녁에는 울음이 기숙할찌라도 아침에는 기쁨이 오리로다 6내가 형통할 때에 말하기를 영영히 요동치 아니하리라 하였도다

7여호와께서 주의 은혜로 내 산을 굳게 세우셨더니 주의 얼굴을 가리우시매 내가 근심하였나이다 8여호와여 내가 주께 부르짖고 여호와께 간구하기를 9내가 무덤에 내려갈 때에 나의 피가 무슨 유익이 있으리요 어찌 진토가 주를 찬송하며 주의 진리를 선포하리이까 10여호와여 들으시고 나를 긍휼히 여기소서 여호와여 나의 돕는 자가 되소서 하였나이다 11주께서 나의 슬픔을 변하여 춤이 되게 하시며 나의 베옷을 벗기고 기쁨으로 띠 띠우셨나이다 12이는 잠잠치 아니하고 내 영광으로 주를 찬송케 하심이니 여호와 나의 하나님이여 내가 주께 영영히 감사하리이다” 

하나님께서는 지금도 살아계셔서 우리 각자를 주무시지도 아니하시고 졸지도 아니하시면서 우리 기도의 한 마디, 한 생각, 한 호흡, 한 걸음까지도 잊지 않고 계십니다. 우리의 머리털까지도 헤아리고 계십니다. 결코 잊은 적이 없습니다. 그리고 영원히 늘 함께 하시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믿음을 가지고 내딛는 아주 미약한 그 시작의 발걸음일지라도 반전과 회복의 걸음과 승리의 걸음으로 역사케 하시지만, 헛되고 부질없는 세상의 일에 인내하고 수고를 하거나, 게으르고 핑계를 일삼고 책임을 다하지 않는다면 하나님의 자녀일지라도, 그리고 최고의 권세를 가지고 당당한 삶을 누리고 있을지라도 결국은 망하게 합니다. 그러나 다시 또 말씀을 드리지만, 믿음 때문에 힘든 결정과 함께 좁은 길을 가려는 자녀들에게는 하나님께서 상상할 수 없는 엄청난 값으로 갚아 주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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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광대케 하시는 하나님을 믿는 믿음이 있다면, 노염은 잠간이고 은총은 평생입니다. 결국 나의 슬픔이 변하여 춤이 되게 하시고 나의 베옷을 벗기고 기쁨으로 띠 띠우시게 할 것입니다. 아멘- 하나님의 말씀을 끝까지 의심하지 아니하고 아주 작은 책임까지도 아낌없는 수고를 다한다면, 그 노염은 잠간으로 마칠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그 노염은 죽는 순간까지 피하지 못할 것입니다.

둘째로, 시31:9-14 여호와여 내 고통을 인하여 나를 긍휼히 여기소서 내가 근심으로 눈과 혼과 몸이 쇠하였나이다 내 생명은 슬픔으로 보내며 나의 해는 탄식으로 보냄이여 내 기력이 나의 죄악으로 약하며 나의 뼈가 쇠하도소이다 내가 모든 대적으로 말미암아 욕을 당하고 내 이웃에게서는 심히 당하니 내 친구가 놀라고 길에서 보는 자가 나를 피하였나이다 내가 잊어버린바 됨이 사망한 자를 마음에 두지 아니함 같고 파기와 같으니이다 내가 무리의 비방을 들으오며 사방에 두려움이 있나이다 저희가 나를 치려 의논할 때에 내 생명을 빼앗기로 꾀하였나이다 여호와여 그러하여도 나는 주께 의지하고 말하기를 주는 내 하나님이시라 하였나이다” 

다시 14절을 보세요! “여호와여 그러하여도 나는 주께 의지하고 말하기를 주는 내 하나님이시라 하였나이다! 9-13절의 말씀처럼 그렇게 기막힌 처지에서도 끝까지 하나님을 믿고 순종하는 자만이 암사자가 되어 그들의 팔과 정수리를 깨부수고 승자로 나오게 하는 그날을 허락하여 주실 것입니다. 역시 우리를 광대케 하시는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다시 19절의 말씀을 보세요! “주를 두려워하는 자를 위하여 쌓아두신 은혜 곧 인생 앞에서 주께 피하는 자를 위하여 베푸신 은혜가 어찌 그리 큰지요” 

어떤 은혜를 베풀어 주시는지 볼까요? 20절입니다. “주께서 저희를 주의 은밀한 곳에 숨기사 사람의 꾀에서 벗어나게 하시고 비밀히 장막에 감추사 구설의 다툼에서 면하게 하시리이다” 

얼마나 좋으시고, 믿어야만 되는 절대적인 하나님이십니까? 역시 우리를 광대케 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결국 어떤 고백을 하게 될까요? 21절에서 24절의 말씀을 봅니다. 여호와를 찬송할찌어다 견고한 성에서 그 기이한 인자를 내게 보이셨음이로다, 내가 경겁 중에 말하기를 주의 목전에서 끊어졌다 하였사오나 내가 주께 부르짖을 때에 주께서 나의 간구하는 소리를 들으셨나이다, 너희 모든 성도들아 여호와를 사랑하라 여호와께서 성실한 자를 보호하시고 교만히 행하는 자에게 엄중히 갚으시느니라, 강하고 담대하라 여화와를 바라는 너희들아”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들입니다. 믿음으로 살면 우리가 세상을 두려워하거나 무서워할 이유가 전혀 없는 대단히 특별한 존재들입니다. 어떤 문제로 힘들어 하고 있습니까? 우리를 광대케 하시는 하나님만을 의지하시고 책임을 다하여 보세요! 특히 무엇을 버려야 합니까? 담대하게 버릴 것은 버리세요. 우리를 광대케 하시는 하나님께서 꼭 도와주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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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만을 의지하시면 해결이 되지만, 아직도 내가 살아서 버릴 것을 버리지 못하고, 해야 될 마땅한 시작을 하지 못하면, 거룩하신 하나님께서도 아무리 도와주시고 싶어도 돕지를 못할 것입니다. 왜요? 광대케 하시는 하나님의 역사하심이 감추어지고 자기를 죽이고 가족을 죽이는 자기의 더러운 힘만이 남기 때문입니다. 


다시 셋째로, 시32:5-11의 말씀을 보세요! 내가 이르기를 내 허물을 여호와께 자복하리라 하고 주께 내 죄를 아뢰고 내 죄악을 숨기지 아니하였더니 곧 주께서 내 죄의 악을 사하셨나이다(셀라) 이로 인하여 무릇 경건한 자는 주를 만날 기회를 타서 주께 기도할찌라 진실로 홍수가 범람할찌라도 저에게 미치지 못하리이다 주는 나의 은신처이오니 환난에서 나를 보호하시고 구원의 노래로 나를 에우시리이다(셀라) 내가 너의 갈 길을 가르쳐 보이고 너를 주목하여 훈계하리로다 너희는 무지한 말이나 노새 같이 되지 말찌어다 그것들은 자갈과 굴레로 단속하지 아니하면 너희에게 가까이 오지 아니하리로다 악인에게는 많은 슬픔이 있으나 여호와를 신뢰하는 자에게는 인자하심이 두르리로다 너희 의인들아 여호와를 기뻐하며 즐거워할찌어다 마음이 정직한 너희들아 다 즐거이 외칠찌어다

삶의 기쁨과 승리와 평강이 없는 이유는 회개를 하지 않아서입니다. 나의 고난은 하나님의 심술로 인한 문제가 아닙니다. 우리들의 문제는 우리 자신에게 있습니다. 

사59:1-3입니다. “여호와의 손이 짧아 구원치 못하심도 아니요 귀가 둔하여 듣지 못하심도 아니요, 오직 너희 죄악이 너희와 너희 하나님 사이를 내었고 너희 죄가 그 얼굴을 가리워서 너희를 듣지 않으시게 함이니, 이는 너희 손이 피에 너희 손가락이 죄악에 더러웠으며 너희 입술은 거짓을 말하며 너희 혀는 악독을 발함이라 

갓 지파의 승리는 말씀을 믿었고, 죄악이 주장하지 못하도록 피 흘려서 싸웠기 때문입니다. 어려운 상황에서 무장을 하고 앞장을 서서 형제를 도왔기 때문입니다. 

수1:12-18의 말씀을 봅니다. 여호수아가 또 르우벤 지파와 갓 지파와 므낫세 반 지파에게 일러 가로되 여호와의 종 모세가 너희에게 명하여 이르기를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안식을 주시며 이 땅을 너희에게 주시리라 하였나니 너희는 그 말을 기억하라 너희 처자와 가축은 모세가 너희에게 준 요단 이편 땅에 머무르려니와 너희 용사들은 무장하고 너희의 형제보다 앞서 건너가서 그들을 돕고 여호와께서 너희로 안식하게 하신 것 같이 너희 형제도 안식하게 되며 그들도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주시는 땅을 얻게 되거든 너희는 너희 소유지 곧 여호와의 종 모세가 너희에게 준 요단 이편 해 돋는 편으로 돌아와서 그것을 차지할찌니라 그들이 여호수아에게 대답하여 가로되 당신이 우리에게 명하신 것은 우리가 다 행할 것이요 당신이 우리를 보내시는 곳에는 우리가 가리이다 우리는 범사에 모세를 청종한것 같이 당신을 청종하려니와 오직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모세와 함께 계시던 것 같이 당신과 함께 계시기를 원하나이다 누구든지 당신의 명령을 거역하며 무릇 당신의 시키시는 말씀을 청종치 아니하는 자 그는 죽임을 당하리니 오직 당신은 마음을 강하게 하시며 담대히 하소서” 

그리고 그들은 나중에 그 맡은 책임을 다 완수하고 주신 땅으로 돌아가는데 그 말씀이 수22:1-6에서 나옵니다. “그때에 여호수아가 르우벤 사람과 갓 사람과 므낫세 반 지파를 불러서, 그들에게 이르되 여호와 종 모세가 너희에게 명한 것을 너희가 다 지키며 또 내가 너희에게 명한 모든 일에 내 말을 너희가 청종하여, 오늘날까지 날이 오래도록 너희가 너희 형제를 떠나지 아니하고 오직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명하신 그 책임을 지키도다, 이제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미 말씀하신 대로 너희 형제에게 안식을 주셨으니 그런즉 이제는 너희는 여호와의 종 모세가 요단 저편에서 너희에게 준 소유지로 가서 너희 장막으로 돌아가되, 크게 삼가 여호와의 종 모세가 너희에게 명한 명령과 율법을 행하여 너희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고 그 모든 길로 행하며 그 계명을 지켜 그에게 친근히 하고 너희의 마음을 다하며 성품을 다하여 그를 섬길찌니라 하고, 여호수아가 그들에게 축복하여 보내매 그들이 자기 장막으로 갔더라” 

남의 승리와 자유는 쉽게 보이지만, 그 승리와 자유는 믿음을 가지고 보이지 않는 가운데 뼈를 깎는 고된 훈련과 희생과 인내의 삶으로 얻게 되는 결과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를 광대케 하시는 하나님을 만나고 싶어도 만날 수가 없고, 결국 늘 불안과 근심과 초조함에서 한발자국도 벗어나지 못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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