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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돌교회
1/18/2026 예레미야 21:1-14 본문
말씀: 렘21:1-14
제목: 저주와 재앙을 부르는 기도
나라가 망하게 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나서, 왕으로써의 시드기야가 신하를 통하여 예레미야에게 기도를 부탁하는 것을 보면, 얼마나 신앙이 있어 보입니까? 다들 지금도 성도끼리 만나면 기도를 부탁하지 않던가요? 신앙이 있어 보이는 모습입니다. 물론 문제가 있을 때, 원망하고 불평하고 또는 ‘괴롭다’고 하여 술로 당장 잊어버리려고 하고, 당장 아픔과 괴로움을 덮어버리려고 하는 세상 사람들하고는 그 차원이 달라 보이게 합니다. 그런 힘의 사람들과 비교해 본다면 성도간의 자기 문제를 해결하려고 기도를 부탁하는 것에 대하여 누가 뭐라고 할 수 있을까요? 문제는 부탁하는 본인의 기도 내용입니다. 대부분 만나면 어떤 내용을 가지고 기도하고 기도를 부탁하던가요?
그래서 볼 말씀입니다. 잠28:9입니다. “사람이 귀를 돌려 율법을 듣지 아니하면 그의 기도도 가증하니라”
한 곳만 더 봅니다. 시66:18입니다. “내가 나의 마음에 죄악을 품었더라면 주께서 듣지 아니하시리라”
회개 없이 드리는 기도, 또는 말씀 없는 기도, 말씀 없이 단지 인간적인 차원에서의 기도와 기도 부탁은 하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왜요? 하나님은 인격이 없이, 단지 힘만을 추구하는 세상의 그런 신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뜻을 따르고 목표를 이루기 위하여 하나님에게 도움을 간절하게 구하는 자들을 기뻐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렇지 아니하고 시드기야처럼 말씀이 없는 기도, 회개 없는 기도, 오직 자기만을 위한 힘의 기도를 부탁하는 경우는 일언지하에 거절은 물론 이미 선포하신 유다의 멸망과 시드기야를 비롯한 유다인들 모두가 결국 포로로 끌려가게 되는데 전혀 도움이 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렘52:4-11입니다. “시드기야 제구년(9년)열째 달 열째 날에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이 그의 모든 군대를 거느리고 예루살렘을 치러 올라와서 그 성에 대하여 진을 치고 주위에 토성을 쌓으매, 그 성이 시드기야 왕 제십일년(11년)까지 포위되었더라, 그 해 넷째 달 구일에 성중에 기근이 심하여 그 땅 백성의 양식이 떨어졌더라, 그 성벽이 파괴되매 모든 군사가 밤중에 그 성에서 나가 두 성벽 사이 왕의 동산 곁문 길로 도망하여 갈대아인들이 그 성읍을 에워쌌으므로 그들이 아라바 길로 가더니, 갈대아 군대가 그 왕을 뒤쫓아가서 여리고 평지에서 시드기야를 따라 잡으매 왕의 모든 군대가 그를 떠나 흩어진지라, 그들이 왕을 사로잡아 그를 하맛땅 리블라에 있는 바벨론 왕에게로 끌고 가매 그가 시드기야를 심문하니라, 바벨론 왕이 시드기야의 아들들을 그의 눈 앞에서 죽이고 또 리블라에서 유다의 모든 고관을 죽이며, 시드기야의 두 눈을 빼고 놋사슬로 그를 결박하여 바벨론 왕이 그를 바벨론으로 끌고 가서 그가 죽는 날까지 옥에 가두었더라”
그런 말씀 없고, 회개 없이 드리는 그런 악의 기도로 말미암아 더욱 심한 심판을 받게 되기에 드리는 말씀입니다. 그렇다면 이런 구약의 사건들을 통하여 무엇을 배워야 합니까? 가증한 기도로 망한, 힘의 간구로 결국 두 눈이 뽑히고, 바벨론의 포로가 된 시드기야를 닮으면 되겠습니까? 은혜를 입어 말씀을 들을 수 있고 볼 수 있게 되었다면, 이런 시드기야만을 보더라도 하나님의 이 말씀을 주야로 묵상하는데 인색할 수 있을까요? 말씀 없이 기도를 드릴 수 있을까요? 물론 은혜를 입지 않았다면 시드기야처럼 그런 기도를 부탁하고 기도를 할 수밖에 없겠지만, 자기가 은혜를 입었다면 가난해도, 병들어 기운이 없어도, 아무리 바빠도, 정말 심각한 일이 생겨도, 말씀을 가장 소중하게 여기는 자로써, 더 가난해 질지라도, 더 몸이 나빠지더라도, 사업에 더 큰 손해를 볼지라도 말씀으로 하루를 시작하고 말씀으로 하루를 마감할 수 있어야 되는 것이 아닙니까?
시19편을 봅니다. 7-11절입니다. “여호와의 율법은 완전하여 영혼을 소성시키며 여호와의 증거는 확실하여 우둔한 자를 지혜롭게 하며, 여호와의 교훈은 정직하여 마음을 기쁘게 하고 여호와의 계명은 순결하여 눈을 밝게 하시도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도는 정결하여 영원까지 이르고 여호와의 법도 진실하여 다 의로우니, 금 곧 많은 순금보다 더 사모할 것이며 꿀과 송이꿀보다 더 달도다, 또 주의 종이 이것으로 경고를 받고 이것을 지킴으로 상이 크니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얼마나 사랑하며 철저하게 믿고 있던 다윗입니까? 그러니 당연히 말씀은 다윗의 삶의 중심이요 모든 판단과 선택의 기준이 되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다윗이 망했나요? 그래서 말씀에 순종하는 다윗은 어떤 칭찬을 받던가요?
행13:22입니다. “폐하시고 다윗을 왕으로 세우시고 증언하여 이르시되 내가 이새의 아들 다윗을 만나니 내 마음에 맞는 사람이라 내 뜻을 다 이루리라 하시더니” 내 마음에 합한 자, 내 뜻을 다 이루게 할 자라는 칭찬을 받는 영원한 성군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힘의 왕 사울은 어떤가요?
삼상15:10-28입니다. “여호와의 말씀이 사무엘에게 임하니라 이르시되, 내가 사울을 왕으로 세운 것을 후회하노니 그가 돌이켜서 나를 따르지 아니하며 내 명령을 행하지 아니하였음이니라 하신지라 사무엘이 근심하여 온 밤을 여호와께 부르짖으니라, 사무엘이 사울을 만나려고 아침에 일찍이 일어났더니 어떤 사람이 사무엘에게 말하여 이르되 사울이 갈멜에 이르러 자기를 위하여 기념비를 세우고 발길을 돌려 길갈로 내려갔다 하는지라, 사무엘이 사울에게 이른즉 사울이 그에게 이르되 원하건대 당신은 여호와께 복을 받으소서 내가 여호와의 명령을 행하였나이다 하니, 사무엘이 이르되 그러면 내 귀에 들려오는 이 양의 소리와 내게 들리는 소의 소리는 어찌 됨이니이까 하니라, 사울이 이르되 그것은 무리가 아말렉 사람에게서 끌어 온 것인데 백성이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께 제사하려 하여 양들과 소들 중에서 가장 좋은 것을 남김이요 그 외의 것은 우리가 진멸하였나이다 하는지라, 사무엘이 사울에게 이르되 가만히 계시옵소서 간밤에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신 것을 왕에게 말하리이다 하니 그가 이르되 말씀하소서, 사무엘이 이르되 왕이 스스로 작게 여길 그 때에 이스라엘 지파의 머리가 되지 아니하셨나이까 여호와께서 왕에게 기름을 부어 이스라엘 왕을 삼으시고, 또 여호와께서 왕을 길로 보내시며 이르시기를 가서 죄인 아말렉 사람을 진멸하되 다 없어지기까지 치라 하셨거늘, 어찌하여 왕이 여호와의 목소리를 청종하지 아니하고 탈취하기에만 급하여 여호와께서 악하게 여기시는 일을 행하였나이까, 사울이 사무엘에게 이르되 나는 실로 여호와의 목소리를 청종하여 여호와께서 보내신 길로 가서 아말렉 왕 아각을 끌어 왔고 아말렉 사람들을 진멸하였으나, 다만 백성이 그 마땅히 멸할 것 중에서 가장 좋은 것으로 길갈에서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께 제사하려고 양과 소를 끌어 왔나이다 하는지라, 사무엘이 이르되 여호와께서 번제와 다른 제사를 그의 목소리를 청종하는 것을 좋아하심 같이 좋아하시겠나이까 순종이 제사 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숫양의 기름보다 나으니, 이는 거역하는 것은 점치는 죄와 같고 완고한 것은 사신 우상에게 절하는 죄와 같음이라 왕이 여호와의 말씀을 버렸으므로 여호와께서도 왕을 버려 왕이 되지 못하게 하셨나이다 하니, 사울이 사무엘에게 이르되 내가 범죄하였나이다 내가 여호와의 명령과 당신의 말씀을 어긴 것은 내가 백성을 두려워하여 그들의 말을 청종하였음이니이다, 청하오니 지금 내 죄를 사하고 나와 함께 돌아가서 나로 하여금 여호와께 경배하게 하소서 하사, 사무엘이 사울에게 이르되 나는 왕과 함께 돌아가지 아니하리니 이는 왕이 여호와의 말씀을 버렸으므로 여호와께서 왕을 버려 이스라엘 왕이 되지 못하게 하셨음이니이다 하고, 사무엘이 가려고 돌아설 때에 사울이 그의 겉옷자락을 붙잡으매 찢어진지라, 사무엘이 그에게 이르되 여호와께서 오늘 이스라엘 나라를 왕에게서 떼어 왕보다 나은 왕의 이웃에게 주셨나이다”
결국 모든 것을 다 잃고 맙니다. 왕의 자리도, 심지어 3아들까지도 블레셋과 전쟁에서 목숨을 잃고 사울왕은 목이 잘리고 맙니다. 그런데 어떻게 은혜를 입은 성도들이 불순종으로 저주를 받았던 시드기야나, 사울 왕처럼 되지 못해 안달 할 수 있을까요? ~ 정말 성경을 믿고 있다고 할 수 있나요? ~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거룩한 제사장 나라가 되었지만, 그러나 놀랍게도 오히려 시드기야나 사울왕은 다 잃고 맙니다. 그들은 거룩함을 위하여 쩔쩔매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자기 하고 싶은 대로 다 했습니다. 다 잃고 망한 그들은 거룩함을 위하여 굴러서라도 기어서라도 따라가지 않았고, 하고 싶은 대로 자기 뜻대로 했습니다. 주신 말씀은 안중에도 없었고 자기가 중심이 되었기에, 지금도 그들은 부끄러운 자로 남았습니다.
그러나 칭찬을 받은 다윗은 순종하기 위하여 늘 쩔쩔매지 않았나요? 쫓기는 힘든 과정 속에서 죄인처럼 숨어서 살았습니다. 왕이 될 때까지는 사울 왕 때문에 거의 기었고, 굴러다녔다고 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결국 천하를 다스리는 최고의 성군이 되었습니다. 이해를 위하여 구약의 유명한 한 사건을 가지고 말씀을 드립니다.
민22-24장을 보세요! 발락과 발람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다름이 아니라 모압 왕 발락이 거대한 이스라엘 민족을 보고서는 두려워서 점술가 발람에게 자기 신하들을 보내서 이스라엘을 저주하여 무너뜨리면 큰 재물을 주겠다는 제안을 하는 내용입니다. 그런데 결국 나중에는 오히려 모압의 왕 발락의 요구가 아닌 발람이 이스라엘을 축복하더라는 것입니다. 그것도 세 번 씩이나 말입니다. 결국 모압 왕 발락은 자기 뜻대로 될 수 없음을 알고 포기하게 됩니다.
그래서 결국 민24:25를 보세요! “발람이 일어나 자기 곳으로 돌아가고 발락도 자기 길로 갔더라” 각각 돌아가는데, 여기서 발람은 어디로 갔는지 아세요! 자기 집, 브돌로 바로 돌아갔던 것이 아니라 모압 왕에게로 갑니다. 왜요? 발람이 모압 왕 발락이 자기에게 약속한 그 큰 재물에 대한 욕심 때문입니다. 그 재물을 포기하지 못하고 놀라운 꾀를 착안해 냅니다. 그는 정말 무서운 점술가였고 강력한 악의 세력이었습니다. 그가 어떤 꾀, 작전, 아니 궤사, 궤술을 쓰게 되는가 하면,
민31:16입니다. “보라 이들이 발람의 꾀를 따라 이스라엘 자손을 브올의 사건에서 여호와 앞에 범죄하게 하여 여호와의 회중 가운데에 염병이 일어나게 하였느니라” 이스라엘이라는 나라는 인간의 힘으론, 제거할 수 없는 하나님의 거룩한 민족, 택함을 받은 민족임을 악한 발람이 이번, 이 기회를 통하여 알게 되면서, 무너뜨릴 수 있는 놀라운 모략을 찾아서 행하는데, 다름이 아니라 이스라엘 백성 각자들을 타락하게 하면 된다는 것을 깨닫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저주로 무너뜨릴 수 없는 이스라엘 나라를 어떻게 해서라도 무너뜨리려고, 이스라엘 백성 각자에게로 다가가는 작전을 세웠던 것입니다. 가서 무슨 짓을 저지르는가 하면, 모압의 여인, 모압의 신을 섬기는, 모압의 신전에서 모압 신을 믿는 영적으로 더러운 여인들을 싯딤에서 머물고 있었던 이스라엘 백성 남성들에게 보낸 것입니다.
그래서 무슨 짓을 하게 합니까? 민25:1-9입니다. “이스라엘이 싯딤에 머물러 있더니 그 백성이 모압 여자들과 음행하기를 시작하니라, 그 여자들이 자기 신들에게 제사 할 때에 이스라엘 백성을 청하매 백성이 먹고 그들의 신들에게 절하므로, 이스라엘이 바알브올에게 가담한지라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에게 진노하시니라,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백성의 수령들을 잡아 태양을 향하여 여호와 앞에 목매어 달라 그리하면 여호와의 진노가 이스라엘에게서도 떠나리라, 모세가 이스라엘 재판관들에게 이르되 너희는 각각 바알브올에게 가담한 사람들을 죽이라 하니라,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이 회막 문에서 울 때에 이스라엘 자손 한 사람이 모세와 온 회중의 눈앞에 미디안의 한 여인을 데리고 그의 형제에게로 온지라, 제사장 아론의 손자 엘르아살의 아들 비느하스가 보고 회중 가운데에서 일어나 손에 창을 들고, 그 이스라엘 남자를 따라 그의 막사에 들어가 이스라엘 남자와 그 여인의 배를 꿰뚫어서 두 사람을 죽이니 염병이 이스라엘 자손에게서 그쳤더라, 그 염병으로 죽은 자가 이만 사천 명이었더라” 그간 발람이 발락의 부탁을 받고 이스라엘이라는 나라를 저주할 수 없었던 발람이, 음란한 모압 여인들을 통하여 바알 브올에게 가담하게 했던 것입니다. 그 죄로 말미암아 24명이 아니라, 240명이 아니라, 2,400명이 아니라 24,000명을 염병으로 죽게 했던 것입니다. 발람의 저주로는 이스라엘 나라를 무너뜨릴 수 없었지만 그러나 이스라엘을 크게 상처를 줄 수 있는 길이 있는데, 바로 바알브올에게 가담하게 한, 음란죄를 범하도록 남자들을 유인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만을 믿어야 되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발람에게 속아, 아니 말씀을 몰라서, 결국 24,000명이 염병으로 죽게 된 것입니다. 이 죽음이 누구 책임입니까? 하나님입니까? 모세입니까? 아니면 속은 이스라엘 백성 그들의 책임입니까? ~ 그러니 이 승리로 발람은 모압의 왕 발락으로부터 어떤 재물을 얻었을까요? 그 큰 승리를 준 발람에게 보답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여기서 끝이 아닙니다. 결국 이스라엘을 이런 식으로 미혹해서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들 24,000명을 죽게 한, 발람은 민31:1-7을 봅니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이스라엘 자손의 원수를 미디안에게 갚으라 그 후에 네가 네 조상에게로 돌아가리라, 모세가 백성에게 말하여 이르되 너와 함께 있는 사람들 가운데서 전쟁에 나갈 사람들을 무장시키고 미디안을 치러 보내어 여호와의 원수를 갚되, 이스라엘 모든 지파에게 각 지파에서 천 명씩을 전쟁에 보낼지니라 하매, 각 지파에서 천 명씩 이스라엘 백만 명 중에서 만 이천 명을 택하여 무장을 시킨지라, 모세가 각 지파에 천 명씩 싸움에 보내되 제사장 엘르아살의 아들 비느하스에게 성소의 기구와 신호 나팔을 들려서 그들과 함께 전쟁에 보내매, 그들이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령하신 대로 미디안을 쳐서 남자를 다 죽였고” 이스라엘 군사를 미디안에게 보냅니다. 왜요? 민25장에서 일어났던 싯딤에서의 사건, 발람이 만들어 놓은, 그 음모로 이스라엘 남자 24,000명을 죽게 했던 것에 대한 복수를 하게 하신 것입니다.
결국 민31:8을 보세요! “그 죽인 자 외에 미디안의 다섯 왕을 죽였으니 미디안의 왕들은 에위와 레겜과 수르와 후르와 레바이며 또 브올의 아들 발람을 칼로 죽였더라” 발람이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서 이스라엘의 칼에 죽습니다. 그 발람은 여기서만 언급이 되는 인물이 아닙니다.
수13:22를 보세요! “이스라엘 자손이 그들을 살육하는 중에 브올의 아들 점술가 발람도 칼날로 죽였더라”
계2:14입니다. “그러나 네게 두어 가지 책망할 것이 있나니 거기 네게 발람의 교훈을 지키는 자들이 있도다 발람이 발락을 가르쳐 이스라엘 자손 앞에 걸림돌을 놓아 우상의 제물을 먹게 하였고 또 행음하게 하였느니라”
신약에서도 조차 이 발람의 그 음모에 대하여 정확하게 밝히고 계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왜요? 믿는 자들이 말씀을 따르지 않으면 우리의 아버지가 되시는, 하나님께서도 타락한 자녀들을 죄로부터 임할 그 저주나 재앙을 막을 길이 없다는 것입니다. 스스로 선택한 타락이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자녀들의 각자의 인격을 존중하시는 하나님이심을 알아야 합니다. 자녀들을 기계적으로 대하지 않으신다는 뜻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의 나라 이스라엘을 악의 힘으로는 악의 저주로는 결코 무너뜨릴 수 없지만, 그러나 너희들이 타락하면, 스스로 하나님을 배신하게 되면, 망하고 만다, 무너지고 만다는 것을 이렇게까지 발람을 통하여 말씀을 하여 주시면서 이 점을 심각하게 고발, 고소, 경고를 하시고 계십니다. 하나님의 방위, 지키심과 보호 안에 있는 이스라엘 또는 교회는 그 누구도 감히 그 근처도 오지 못하게 하시지만, 오히려 점술가 발람을 통하여 이스라엘을 축복하게 하시지만, 그 악한 세력에 속아 무너지는 자녀들의 경우에는 그 실패에 대하여 막을 길과 방법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이 무너지는 것도 하나님의 실패가 아니라 백성들의 타락으로 나라도 망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남 유다만큼은 어떤가요? 다시 돌아옵니다. 왜요? 하나님의 나라는 망할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 이유는 언약입니다. 그 언약은 영원한 약속일 뿐 만이 아니라 그래서 그 어떤 악한 세력도 하나님의 나라를 무너뜨릴 세력은 없다는 것을 알게 하십니다.
그럼 왜 무너뜨리셨는가? 어찌 70년간의 포로로 끌려가게 놔두셨는가? 마치 직무유기처럼 보일 수 있으나, 그래서 거짓 선지자들은 어떤 반응을 보였나요?
렘28:1-4입니다. “그 해 곧 유다 왕 시드기야가 다스리기 시작한 지 사 년 다섯째 달 기브온앗술의 아들 선지자 하나냐가 여호와의 성전에서 제사장들과 모든 백성이 보는 앞에서 내게 말하여 이르되,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이같이 일러 말씀하시기를 내가 바벨론의 왕의 멍에를 꺾었느니라, 내가 바벨론의 왕 느부갓네살이 이 곳에서 빼앗아 바벨론으로 옮겨 간 여호와의 성전 모든 기구를 이 년 안에 다시 이 곳으로 되돌려 오리라, 내가 또 유다의 왕 여호야김의 아들 여고니야와 바벨론으로 간 유다 모든 포로를 다시 이 곳으로 돌아오게 하리니 이는 내가 바벨론의 왕의 멍에를 꺾을 것임이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하시니라”
그러나 그건 거짓말인데 거짓말인 것을 알 수 있는데, 그래서 어떤 말씀을 예레미야를 통하여 하십니까?
렘29:4-11입니다.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께서 예루살렘에서 바벨론으로 사로잡혀 가게 한 모든 포로에게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너희는 집을 짓고 거기에 살며 텃밭을 만들고 그 열매를 먹으라, 아내를 맞이하여 자녀를 낳으며 너희 아들이 아내를 맞이하며 너희 딸이 남편을 맞아 그들로 자녀를 낳게 하여 너희가 거기에서 번성하고 줄어들지 아니하게 하라, 너희는 내가 사로잡혀 가게 한 그 성읍의 평안을 구하고 그를 위하여 여호와께 기도하라 이는 그 성읍이 평안함으로 너희도 평안할 것임이라,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께서 이와 같이 말하노라 너희 중에 있는 선지자들에게와 점쟁이에게 미혹되지 말며 너희가 꾼 꿈도 곧이 듣고 믿지 말라, 내가 그들을 보내지 아니하였어도 그들이 내 이름으로 거짓을 예언함이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바벨론에서 칠십 년이 차면 내가 너희를 돌보고 나의 선한 말을 너희에게 성취하여 너희를 이 곳으로 돌아오게 하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을 내가 아나니 평안이요 재앙이 아니니라 너희에게 미래와 희망을 주는 것이니라”
그러니깐 말씀을 모르면 거짓 선지자가 하는 거짓이 참으로 들리게 되고, 참 선지자가 하는 하나님의 말씀이 오히려 거짓으로 들리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말씀을 매일 묵상하라고 하셨던 것입니다. 조금 전에 드렸던 말씀을 이어서 드리면, 특히 그 언약은 결국 예수님을 통하여 성취가 되면서 교회를 반석이신 예수 그리스도 위에 세워주셨던 것입니다. 그 은혜로 세워진 교회는 그 누구도 이제 흔들 자가 없는 것입니다. 이젠, 그 은혜 때문에 은혜를 입은 성도들은 그 누구도, 그 누구에게도, 속지 않게 된 것입니다. 발람의 발람이 와서 꾀를 부려도 이젠 속지 않도록 은혜를 주신 것입니다. 그 은혜를 입으면 이젠 말씀을 들을 수 있고 볼 수 있게 되면서 주님의 그 뜻을 따를 수 있게 하셨기 때문에 이 생명의 말씀이, 은혜를 입은 성도들의 삶의 원리가 되어 가면서, 갈수록 속일 수가 없게 되도록 각자가 말씀을 늘 강력하게 의지하셔야 되는 것입니다. 그것을 성도의 거룩한 책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구약에서는 말씀을 들을 수도 볼 수도 없어서 속을 수밖에 없었지만, 신약에서는 그 은혜로 빛이 들어오면서, 그리스도의 마음을 주셨기에, 말씀을 들을 수 있고 볼 수 있게 되었기에, 내 것이 되어가는 능력의 말씀을 가지고 악의 세력들과 늘 싸울 수 있는 만반의 준비를 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만약에 말씀을 주야로 묵상하지 않으면, 어떻게 될까요? 성도가 구경꾼이 되면, 관중정도로 머물게 되면, 늘 부끄러운 자로 살게 되겠지만, 전쟁터에서 총알이 없는 총만 들고 있는 쓸모없는 군사가 되고 말겠지만, 말씀을 마음 판에 새기고, 묵상하는 성도들은 악의 세력을 제압할 총알의 말씀, 그 은혜가 영원히 떨어지지 않으니, 원수인 악의 세력과 싸워도 전혀 문제가 될 수 없는 것입니다. 그 성도들은 져도 지는 것이 아닙니다. 자기가 하나님을, 말씀을 배반하지 않는 한, 영원히 실패할 수 없는 자가 된 것입니다. 이것이 은혜의 능력이요 말씀이 주는 복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은혜를 입었으면 말씀은 자기의 양식이 되어야 합니다. 말씀이 모사가 되고 기업이 되어서 말씀에 늘 순종을 해야지, 이스라엘처럼 말씀이 없으니 그 정욕을 참지 못하게 되고, 결국 발람의 꾀였던, 그 음녀들과 음행에 속아 염병으로 24,000명이 목숨을 잃었던 것입니다. 말씀이 없는 결과입니다. 그리고 말씀이 없었던 시드기야나, 사울 왕처럼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들을 통하여 그들의 종말이 어떻게 되는지에 대하여 고스란히 구약이란 성경으로 남겨 주셨기에 지금 우리들이 알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은혜를 입은 신약의 성도들이 말씀에 순종할 수 없었던 구약의 성도들의 그 결과에 대하여 몽땅 100% 다 확인할 수 있게 되었는데, 그리고 성경을 모르기에 그래서 말씀 없는 자들이 드리는 기도조차도 재앙으로 응답을 받았다는 것을 구약에서 완전 확인이 되고 있는데, 어떻게 신약의 성도들이 성경을 보지 않을 수 있고 말씀 없이 단지 자기 뜻대로 기도할 수 있단 말입니까? ~ 왜 은혜를 주셨고 복음을 주셨는지 이해가 되나요? 은혜를 단지 자기 마음대로 해도 된다는 차원의 은혜로 그렇게 이해를 하면 그건 재앙이요 저주입니다. 성경에서의 은혜는 순종 때문에 주신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중요한 점은 이스라엘 나라, 교회라는 공동체는 하나님이 영원히 지켜주시지만, 각 지체들은 주신 그 은혜로 자기가 자기를 말씀으로 지켜내야 됩니다. 그래서 말씀은 성도들에게 생명이 되고 길이 되고 진리가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말씀을 주야로 묵상하라고 하시는 것인데 말씀을 보지 않게 되면 어떻게 되나요? 전쟁터에서 총알이 없는 총만 들고 있는 군인이 된다고 했던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공동체 안에서 각 한 사람의 그 책임과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알아야 합니다. 한 사람이 아프면 다 아픈 것이고 한 사람이 기쁘면 다 함께 기쁜 것입니다. 이렇게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서로 하나로 묶여서 한 사람처럼 행동하고 연합이 되어 있어야 하는 것이 교회인데, 지금 어떤가요? 말씀 대신 돈과 용기와 세상지식이 차지하고 있습니다.
결론입니다. 1. 싯딤에서의 음행 사건으로 이스라엘의 남자들이 자그만치 24,000명이 죽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 죽음은 결국 하나님의 뜻을 다 이루는 죽음입니다. 이 죽음은 불순종했던 40년 전의 이스라엘 1세였던 603,048명을 채우는 마지막 심판이었습니다. 불순종으로 죽어야 되는 1세 603,048명이 끝으로 다 죽고 그리고 새로운 2세, 601,730명이 준비되어 이제 가나안 땅으로 들어갈 새 사람들이 마련된 것입니다.
그래서 민26장에서 두 번째 인구조사를 하게 했던 것입니다. 이제 새로운 2세, 601,730명이 준비되었다는 놀라운 선포를 민26장에서 하십니다. 이 분이 바로 우리의 하나님이십니다. 민25장에서 24,000명을 죽인 그 음행을 막지 못하신 하나님, 마치 뭔가 부족한 모습, 약하신 하나님을 보이시는 것 같았지만,
민26:63-65입니다. “이는 모세와 제사장 엘르아살이 계수한 자라 그들이 여리고 맞은편 요단 강 모압 평지에서 이스라엘 자손을 계수한 중에는, 모세와 제사장 아론이 시내 광야에서 계수한 이스라엘 자손은 한 사람도 들지 못하였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그들에게 대하여 말씀하시기를 그들이 반드시 광야에서 죽으리라 하셨음이라 이러므로 여분네의 아들 갈렙과 눈의 아들 여호수아 외에는 한 사람도 남지 아니하였더라”
그러나 거기엔 이런 이유도 감추어져 있었던 것입니다. 죄로 우리들이 무너지고 망하더라도 그러나 하나님의 뜻은 완벽하게 이루어진다! 그 뜻 안에 우리들이 살고 있기에 순종만 한다면 악의 세력이 지배하고 있는 여기서도 승리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결론 2- 하나님의 나라였던 이스라엘이 타락으로 나뉘고 바벨론의 포로로 끌려가는 모진 수모를 겪었어도 이스라엘이라는 하나님의 나라는 망한 것도 실패하신 것도 아닙니다. 죄를 지은 자녀들에게 내리신 심판차원에서의 징계요 교육인 것입니다. 그런 하나님의 사랑과 공의를 통하여 죄로 무너진 아담 이후부터 주님 다시 오실 때까지, 하나님께서는 택함을 받았던 자녀들을 단 한 영혼도 포기하지 아니하시고 택함을 받은 하나님의 자녀, 한 영혼 한 영혼들을 그때, 그때마다 보호하여 주시고 가르치면서 재창조하고 계셨던 것입니다.
물론 재창조된, 중생된 자녀들이 죽어 먼지가 되고 말지만, 예수님께서 재림의 주로 오실 땐, 먼저 죽은 자들이 신비한 몸으로 부활의 영광을 얻게 되면서 그리고 생존한 자녀들도 그때 새 몸으로 변화를 받아 주님과 하늘에서 혼인잔치에 참여하는 기쁨을 주십니다. 그때부터 하나님의 나라는 아담이후부터 택함을 받았던 모든 자녀들이 영원한 공동체, 오직 의와 사랑만이 가득한 하나님의 나라, 죽음도 없는 질병도 없는 오직 평화로운 나라, 천국에서 영생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시119:137-152를 보세요! “여호와여 주는 의로우시고 주의 판단은 옳으니이다, 주께서 명령하신 증거들은 의롭고 지극히 성실하니이다, 내 대적들이 주의 말씀을 잊어버렸으므로 내 열정이 나를 삼켰나이다, 주의 말씀이 심히 순수하므로 주의 종이 이를 사랑하나이다, 내가 미천하여 멸시를 당하나 주의 법도를 잊지 아니하였나이다, 주의 공의는 영원한 공의요 주의 율법은 진리로소이다, 환난과 우환이 내게 미쳤으나 주의 계명은 나의 즐거움이니이다, 주의 증거들은 영원히 의로우시니 나로 하여금 깨닫게 하사 살게 하소서, 여호와여 내가 전심으로 부르짖었사오니 내게 응답하소서 내가 주의 교훈들을 지키리이다, 내가 주께 부르짖었사오니 나를 구원하소서 내가 주의 증거들을 지키리이다, 내가 날이 밝기 전에 부르짖으며 주의 말씀을 바랐사오며, 주의 말씀을 조용히 읊조리려고 내가 새벽녘에 눈을 떴나이다, 주의 인자하심을 따라 내 소리를 들으소서 여호와여 주의 규례들을 따라 나를 살리소서, 악을 따르는 자들이 가까이 왔사오니 그들은 주의 법에서 머니이다, 여호와여 주께서 가까이 계시오니 주의 모든 계명들은 진리니이다, 내가 전부터 주의 증거들을 알고 있었으므로 주께서 영원히 세우신 것인 줄을 알았나이다”
시편기자가 어떤 놀라운 고백을 하던가요? 무슨 고백인지 어떤 차원의 기도인지를 아시겠습니까? 자녀들을 향하신 하나님의 의, 판단, 성실, 순수 그 사랑하심이 100% 완벽하시기 때문에 그 시작부터 영원이 다 진리라는 것입니다. 그 안에 존재하는 자녀들은 그 어떤 환란 우환 속에서 전혀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는 고백이요 찬송입니다. 지금 우리들이 그 과정 속에서 그날을 준비하게 된, 복되고 거룩한 인생이라는 것을 잊지 말라고 합니다. 그 존재 가치가 어마어마한 성도임을 알고 다 내려놓으라고 합니다.
그런데 단지 보이는 힘의 세상을 따라가겠다고요? 세상의 형통을 위하여 기도할 수 있다고요? 그런 무식이 또 어디에 있을까요? 그래서 하나님에 대하여 무지했던 시드기야 왕, 사울 왕이 어떻게 되었다고요? 회개를 하지 않았다면 무식했던 그들은 영원히 버려졌을 것입니다. 그래서 버려지면 안 되기에 무식하지 말라고 그 하나님을 만나게 하시려고 주신 것이 십자가의 그 은혜가 아닙니까? 하나님의 그 영광스러운 나라는 하나님만을 오직 경외하는 자, 그날을 철저히 준비하던 자들만이 입성할 수 있지, 멋대로 하고 싶은 대로 했던 자들은 지옥만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결론 3- 힘의 세상을 결코 따라가지 마라, 따라가면 너희들은 망하고 만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린 어떤 변명을 하고 있나요? 왜 다 아시면서 막아주시지 않던가요? 막아주시면 되잖아요! 하고 있지 않던가요? ~ 그러나 그런 스스로를 무엇으로 만들고 있는 것입니까? 자기가 자기를 인격이 없는, 의지가 없는 Robot, Ai로 만들고 있는 것입니다.
사람의 가치와 능력이 어디에 있던가요? 그건 인간의 의지와 인격이 아닙니까? 만약에 인간이 의지와 인격이 없으면 그건 죽은 자와 무엇이 다릅니까? 그런 인물들을 법적으로 무엇이라고 하시는지 아시나요? 그가 도장을 찍어도 소용이 없는 인정이 되지 않는, 다 무효가 되는 것인데 그를 과거에는 법적용어로 '금치산자'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런 자를 하나님께서 원하신다고요? 그래서 은혜를 입었으면 인격과 의지를 가지고 복된 길을 선택하라는 것이 아닙니까?
렘21:8입니다. “여호와께서 말씀하시기를 보라 내가 너희 앞에 생명의 길과 사망의 길을 두었노라 너는 이 백성에게 전하라 하셨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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