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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돌교회
11/26/2023 학개 1:1-15 본문
말씀: 학1:1-15
제목: 망하게 하는 성전을 건축하라 - 신앙이 쉽고 가볍게 여길 수 있는 길인가?
주전 520년경에 학개 선지자를 통하여 성전을 건축하라고 하신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성전을 세우시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깊이 생각해 보세요! 인간적으로 따지고 보면, 결국 이스라엘은 하나님 때문에 또는 하나님께서 성전을 세우라고 하셔서 세웠는데 그 성전 때문에 나라가 망했다는 것이 아닙니까? 아닌가요? ~ 아니 이스라엘 백성이라면 모두가 부러워하던 자랑으로 여기던 그 최고의 솔로몬 성전까지도 다윗의 피와 백성의 땀으로 세워진 성전이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북으로 나뉘어졌던 이스라엘은 결국 망했다는 것이 아닙니까? ~
그런데 또 무슨 성전을 세우라고 하시는 것일까요? 여기서 우린 알아야 합니다. 결코 쉽지 않은 문제이지만, 성전을 세웠다고 하여, 쉽게 이스라엘이 자기들의 뜻이 이루어지거나 자랑이 된다고 하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렇기 때문에 다시 학개서에서 솔로몬 성전 다음으로 스룹바벨 성전을 2차로 지으라고 하여 우여곡절 가운데 주전 516년경에 세워지게 됩니다. 그러나 스룹바벨 성전이 작아 다시 큰 성전을 주전 19년에 시작하여 주후 63년경에 헤롯 왕을 통하여 80여년에 걸쳐서 웅장하게 세워지지만 그러나 로마에 의하여 AD 70년에 완전 파괴됩니다. 이렇게 2개의 성전이 파괴되는데 왜 하나님께서는 다 아시면서 성전을 또 세우라고 하셨을까요? 그 이유가 어디에 있을까요? 오늘은 이 점에 대하여 살펴보면서 은혜를 나누어 보려고 합니다.
무엇보다도 성전을 세워야 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왜 성전을 세우라고 하신 것입니까? 바로 이 문제부터 짚고 넘어가고 싶습니다. 성전의 목적은 분명 성전을 통하여 너희들은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가야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즉 왕 같은 제사장 나라로써의 삶, 거룩함을 위하여 하나님의 성전을 예루살렘에 세우라고 하셨던 것입니다. 그래서 성전을 세운 것인데, 그런데 어떤가요? 그 성전 때문에 다들 어디로 향하여 가던가요? ~ 쉽게 갑니다. 하던 대로 합니다. 물론 성전이 있다고 하여 기뻐하면서 자부심을 가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어렵게 가야 되는 그 여정을, 어려울 수밖에 없는 신앙의 과정을 멋대로,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하면서, 선민된 자로써 이방인들까지도 무시했습니다. 이방인들에게 신앙의 본이 되는 좁은 길로 가라고 했는데, 이스라엘은 하던 대로, 힘으로만 행한 것입니다. 그래서 결국 솔로몬 성전도 바벨론을 통하여 주전587년경에 완전 파괴가 되고 맙니다. 그런데 70년 만에 다시 돌아와서 성전을 세우라고 하십니다. 그때, 이스라엘은 성전 때문에 망할 수 있었음을 알았을까요? 몰랐을까요? 알았어야 했는데 아무도 몰랐던 것 같습니다. 은혜를 입은 우리 생각에는 망한 그 후에는 성전을 가진 자로써 그 놀라운 책임에 대한 가치를 알았어야 했고 그래서 다음 준비를 철저하게 해서 다음은 귀감이 되어야 했겠지만, 그러나 그건 은혜를 입은 우리들의 생각이었고, 이스라엘 그들은 모두가 또 너무나 쉽게 성전에 대한 그 책임을 제대로 갖출 수가 없어서 결국 또 망할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망하기 전에 주신 모든 당시의 말씀들을 깊이 돌아보면서 어디에서 이 멸망이 비롯되었는지, 그 문제를 파헤쳤다면, 어떠했을까요? 그러나 그건 은혜를 입은 자들의 입장에서의 생각이고, 구약의 마지막 말라기의 말씀만을 보더라도 그런 뼈가 깨어지는 나라 잃은 아픔을 온 백성들이 다 경험했었지만 그러나 결국 다시 또 그 후에 망하고 마는 것을 보면, 신앙생활을 가볍게 쉽게 생각할 수 없다는 것을 알게 합니다. 그러나 그런 생각조차도 못했기에 준비가 없이 다시 성전을 세우게 되었지만, 기막히게도 망했던 그 길을 다시 또 밟고 말더라는 것입니다. 망하기 전의 상태와 전혀 달라지지 않았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도 남 왕국이 망하기 전에 예레미야 선지자를 통하여 어떤 말씀까지도 해 주셨던가요? 망하지 않을 것이라는 거짓된 선지자들의 말에 속지 말라고 하셨지만, 하나님의 말씀대로 듣지 않았고, 그럴리가 없다는 자기 생각으로 쉽게 가볍게 행하다가 결국 죽게 되거나 포로로 인생을 마감했던 것입니다. 렘26장부터 29장까지를 보면, 진실된 예레미야의 예언은 전혀 듣지 못했고 다들 거짓된 선지자들의 거짓말만을 믿었음을 알게 합니다.
여기서 우린 생각 해 봐야 되는 점이, 왜 그들이 거짓 예언을 했어야 했고 그리고 다수가 거짓된 그 예언을 왜 믿고 따랐을까요? 그 이유는 그간 세상에서 살던 식으로, 생각하던 식으로, 살려는 우리의 죄된 본성 때문이 아닐까요? 순종하라는 그 말씀 때문에 그 어떤 고민도 하고 싶지 않다는 죄성이 결국 하나님의 뜻을 외면했다고 저는 봅니다. 그만큼 하나님의 길을 따른다는 것이 자기의 지식이나 힘이나 재물로 갈 수 없는 좁은 길인데, 눈물 골짜기인데, 단지 내가 너희들을 사랑하여 베푼 구원이라고 하시면서 순종하라고 하시니깐, 그 말씀을 너무 쉽게 생각했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지금도 그렇지 않던가요? 교회에만 나오면 되고, 열심히 따라가기만 가면 그것이 신앙이라고 가르치는 바람에 지금 교회가 이 모양이 된 것이 아닐까요? 단지 수십 년 전에도 보면, 한국 교회들이 사랑의 교회에서 제자 교육으로 크게 부흥했다고 하니깐, 너도나도 따라 제자교육을 해서 숫자가 교회당안에 가득 찼는지는 몰라도 수준은 달라지지 않았다는 것이 저의 소견입니다. 아니 어떻게 몇 달간의 제자 교육이 주님의 제자가 될 수 있단 말입니까? 이런 허위는 허위사실 유포로 고발을 당해야 마땅할 것입니다.
그러나 저는 미련해서 그런지는 몰라도 30년이 걸려도 여전히 쩔쩔매고 있습니다. 아니 갈수록 더 어려워지고 있습니다. 특히 힘으로 살던 아니 힘의 본성을 가진 자들이 은혜로 자기를 부인해야 되는데, 다 맡겨야 되고, 그리스도의 외에는 배설물로 여겨야 되는데, 6개월 정도로 된다고요? 그건 사기가 아닙니까? ~ 하나님께서도 구약에서 알 수 있습니다. 성전이 몇 개가 파괴되었던가요? 자그마치 솔로몬 성전, 스룹바벨 성전이 즉 헤롯 왕이 스룹바벨 성전이 작다고 하여 유대인의 환심을 사려고 주전 16부터 주후 63년까지 거의 80년 걸쳐서 세운 엄청난 성전까지도 다 파괴가 되고 맙니다. 그것만 보더라도 바른 신앙을 갖는 것이 결코 쉬울 수 없고 가볍게 여길 수 없음을 알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 한 사람의 구원을 위하여 어떤 구약의 역사와 처참한 사건들이 필요했던가요? 아니 어떻게 아무리 은혜의 시대라고 하지만, 짧은 기간의 교육만 받으면 누구든지 예수의 제자가 된다고 하는데, 그 교회는 하나님보다 더 막강한 능력과 실력을 가지고 있었기에 가능했을까요? ~ 아니기에 지금 한국의 교회를 보면, 아니지 않습니까? ~
주님의 제자가 되는 길은 솔로몬 성전과 스룹바벨 성전이 망하는 고통 속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시작되는 신앙의 여정은 철저한 준비가 필요한 것입니다. 그 준비는 지체 간에 서로 밀어주고 끌어주면서 평생을 서로 인내하면서 어렵게 따라가야 되는 좁은 길, 자기를 부인하면서 가야 되는 데, 심지어 순종하더라도 수많은 시행착오 속에서 따라가려면, 눈물을 얼마나 흘려야 했던가요? 헤아릴 수 없는 고통스러운 가시밭길을 따라가야 하는 과정인데, 교회들이 빨리 성공하기 위하여 가볍게 쉽게 신앙생활을 하게 했던 것입니다.
목회자들이 약아빠지다 보니깐, 평생 훈련해도 쉽지 않은 그 좁은 길을 다들 바쁘고, 시간이 없다는 이유로, 정식으로 제대로 신앙교육 시키면 교회가 유지, 부흥할 수 없다는 이유를 대면서 너무나 쉽게, 가볍게, 그리고 세상의 형통과 복을 중심으로 끌고 가면서, 지금 어떤가요? 다들 주님만을 바라보고 있던가요? ~ 망하고 있습니다. 저는 오늘 스룹바벨 성전을 세우라고 하시는 학개서의 말씀을 통하여 처절한 마음, 슬픈 마음, 안타까운 마음을 가지고 설교를 준비했습니다.
그러나 지금 교회의 이 어두운 현실은 이미 구약의 망한 이스라엘을 통하여 이렇게 보여주시고 계십니다. 너희들이, 이스라엘처럼 그렇게 힘으로 하면 망할 수밖에 없는 이스라엘임을 알게 하시려고 스룹바벨 성전을 선지자 학개를 통하여 또 세우라고 하셨던 것입니다. 성전을 세웠다고 하여 그것이 다가 아니라는 것을 알게 하시려는 것이 하나님의 1차적인 뜻이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성전을 세웠다고 하여 그 성전이 이스라엘을 교만하게 했던 것입니다. 너무나 쉽게 가볍게 여긴 것입니다.
성전을 세워 거룩한 하나님의 나라가 되었다는 것을 1차적인 증거로 보여주었다면, 그 다음 단계는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살아내야 되는데, 힘으로 말고, 믿음으로 세상을 향하여 신앙의 본이 되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했고 할 수도 없었기에 바로 그 점을 드러내 주시려고 너희들은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자들임을 깨워주시려고 망할 수밖에 없는 성전을 또 세우라고 하셨던 것입니다. 우리는 구약 내내, 성전을 통하여 오히려 하나님하고 멀어지는 이스라엘을 보면서, 이스라엘의 그 잘못된 신앙관이, 지금 은혜를 입었다고 하여 멋대로 하는 교회와 완전히 똑같다는 것을 느끼고 있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망한 이스라엘하고 지금 타락한 교회들하고 무엇이 다릅니까? ~ 단지 성전을 세웠다고 하여 만족하다가 망한 그 길을 가지 말아야 하는데, 그런데 지금까지 보면, 은혜를 입었다고 하여 순종할 필요가 없다고 하고,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마치 심판이 없는 냥, 쉽게 가볍게 교회를 출입하고 있는데 그건 아닌 것입니다. 성전을 세워 주셨고, 은혜를 입혀 주셨으면, 오히려 오직 더 순종하므로 하나님의 자랑이요 기쁨이 되어야 합당한 것입니다.
그런데 철저하게 율법에 순종해야 한다고 하면, 예레미야처럼 감옥에 쳐 넣어 버리고, 지금은 율법을 지켜야 한다고 하면 은혜를 모르는 교인들이 뭐라고 하던가요? 율법주의자라고 하는데, 율법의 요구를 이루어주시려고 주신 은혜임을 알아야 합니다. 율법을 지키려고 하는 자들을 율법주의자라고 하는 그들은 어떤 평가를 받던가요? 은혜지상주의자로 평가 되고 있음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율법이 필요 없다고 하는 은혜 지상주의자, 그들은 결국 예배만으로 만족했고, 예배만으로 만족만하므로 어떻게 될까요?
이스라엘이 성전 때문에 망했듯이, 마찬가지로 그런 예배 때문에 거룩함의 길을 가지 못하게 됩니다. 순종 없이 은혜만을 주장하면 하나님의 부끄러움이요 슬픔이 되고 맙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솔로몬 성전 때문에 이스라엘이 망했는데, 망하고 나서 돌아온 후에 다시 성전을 세우라고 하십니다. 왜요? 그 약점을 알고 회개할 때까지 ~ 너희들이 망한 그 이유를 알 때까지, 또 무너뜨려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이해가 되세요? 그러니 그 덕분에 지금 우리들이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함께 예배를 드리며 내일의 거룩함을 위하여 함께 어렵고, 좁은 길을 서로가 밀어주고 끌어 주면서 위로하면서 본향을 향하여 나아갈 수 있게 된 것입니다. 그 성전들이 깨어지고 깨어질 그 처절한 아픔이 있었기에 지금 우리가 담대하게 은혜의 보좌로 나아갈 수 있었고, 거룩한 성령께서 계시는 성전이 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스룹바벨 성전의 재건축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을 바라보게 합니다. 쉽게 가볍게 신앙의 여정을 여기지 않게 됩니다. 그런데 아니 어떻게 지금까지도 이런 구약의 말씀을 보도 듣고 있으면서도 건물 성전을 세워 복을 받으라고 거짓말을 할 수 있고 그리고 복을 받으려고 열심히 성전을 세우는데 동참할 수 있단 말입니까? ~ 그래서 학개서에서 무너질 망할 스룹바벨 성전을 세우라는 말씀은 중요합니다. 신앙은 성전이 있기에 다 된 것이 아니고, 예배만으로 다 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만을 경외하고 순종하는데, 있다는 것을 성전과 예배를 통하여 알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그런데, 아직도 성전건물을 세우자는 것을 보면, 성경에 대한 바른 이해가 쉽지 않음을 알게 하십니다.
그래서 성전에 대하여 잘못 알고 있는 이스라엘을 보면서, 결국 두 번씩이나 무너뜨리기까지 하셨는데 그 무너짐으로 무엇이 바른 신앙인지를 강조 또 강조해 주셨던 것입니다. 결국 구약의 건물 성전으로 이스라엘이 망하기에, 결국 누구를 보내주십니까? 진짜 성전이신 예수님을 보내주십니다. 그런데 그 성전이신 예수님을 죽여 버리더라는 것입니다. 결국 이스라엘은 예수님을 죽이고 나서 조금 있으면 AD 70년에 멸망을 당하면서 헤롯 성전은 물론 나라까지도 없어질 형편에 놓이게 되었지만, 그런데 그 사이에, 이스라엘이 망하기 전에, 놀라운 일이 벌어지기 시작합니다.
진짜 성전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죽임을 당하고 부활하신 후, 승천하신 그 후에, 마가의 다락방에서 기다리던 120문도를 시작으로 오순절에 성령의 역사하심으로 회개와 더불어 중생을 하면서 순종하는 기적이 일어납니다. 그 기적인 성령의 역사가 그 다음에는 그 당시 예루살렘에 머물고 있던 유대인들에게 방언으로 나타나 보여주시더니, 다시 유대와 사마리아를 통하여 이방까지도 중생과 회개와 함께 순종하는 성령의 역사가 일어나게 하시더라는 것입니다. 그 순서는 누가 이미 예언하셨던가요?
행1:3-8을 보세요! “그가 고난 받으신 후에 또한 그들에게 확실한 많은 증거로 친히 살아 계심을 나타내사 사십 일 동안 그들에게 보이시며 하나님 나라의 일을 말씀하시니라, 사도와 함께 모이사 그들에게 분부하여 이르시되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게서 들은 바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 요한은 물로 세례를 베풀었으나 너희는 몇 날이 못 되어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 하셨느니라, 그들이 모였을 때에 예수께 여쭈어 이르되 주께서 이스라엘 나라를 회복하심이 이 때니이까 하니, 이르시되 때와 시기는 아버지께서 자기의 권한에 두셨으니 너희가 알 바 아니요,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불가능을 가능으로 만들어 버리는 중생이라는 창조인 성령의 역사가 각 자녀들에게 예수께서 말씀을 하신 순서대로 나타나게 하시더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성령을 받더니 단지 그것으로 만족하지 아니하고, 은혜를 입은 성도들이 가난한 심령이 되어 힘에서 벗어나 좁은 길, 순종의 길, 즉 주님의 뜻을 따라가면서 땅 끝을 향하여 살아내더라는 것입니다. 무너진 솔로몬 성전, 무너질 스룹바벨 성전 그리고 성전이신 예수님까지 3번이나 무너지게 하시더니, 결국 중생과 함께 순종하는 기적인 성령의 역사하심이 현실이 되어 지금까지 우리 모두가 이렇게 모여 2023년 11월의 마지막 예배를 드릴 수 가 있게 된 것입니다. 놀랍지 않습니까? ~ 이제 곧 땅 끝까지 복음이 이르게 되면, 오실 주님을 맞아 혼인잔치에 참여하는 복된 자리로 나아가는 그 날을 우린 보게 될 것입니다.
바로 학개서의 성전을 세워 복을 받으라는 이 말씀은 결국 이를 위한 과정에서의 말씀이지, 세상의 헛된 그런 복을 위한 말씀이 아닙니다. 다시 말씀을 드리지만, 여기서 놓치면 안 되는 말씀은 ‘자신의 신앙을 단지 예배에만 참석하려는 것과 성경을 열심히 읽고 배운다고 하여 다 되었다는 것과 기도의 삶을 열심히 하므로 그래서 나는 참된 신앙인이 되었다’라고 하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그건 성전을 갖고, 각종 제사에 열심히 참여했으면서도 망한 이스라엘과 다르지 않은 것입니다.
참된 신앙은 자기의 몸을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산제사로 드려야 합니다. 주님께서 가라하신 그 어렵고 고통스러운 좁은 길을 죽을 때까지 따라가는데 있음을 다시 학개서를 통하여 전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쉽게 가볍게 따라갈 수 없는 길입니다. 그런데 어떤가요? 놀랍게도 지금도 어떤 목사는 성전을 세우는데 많은 헌금을 하여 복을 받으라고 합니다. 아니 지금이 구약입니까? 이런 엉터리 설교가 어디에 또 있을까요? 성전을 지어서 망했는데 그 망한 성전을 또 지어 복을 받으라고 하니, 이런 저주 설교, 재앙의 설교가 또 어디에 있단 말입니까? 돈으로 해결하려는 설교입니다.
신앙의 그 좁은 과정을 쉽게 가볍게 여기고 있습니다. 잘못된 설교입니다. 성전을 세우라고 하신 구약에서의 하나님의 뜻은 그 성전은 그림자이기에, 구약의 성전만으로는 거룩함을 이룰 수 없기에 그래서 무너졌고, 결국 구약의 끝에 가서는 거룩함을 이루어 주시려고 참 성전이신 예수까지 보내주셔서 결국 새 창조, 중생, 성령의 역사로 믿는 자녀들이 성전이 되게 하셨습니다. 결코 가벼울 수 없고 쉽지 않은 신앙의 길을 통하여 거룩한 자로 살아갈 수 있게 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이렇게 우리들도 그 은혜로 지금, 점과 흠이 없는 자가 되고자,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를 드리게 되었는데, 아니 어떻게 다시 건물 성전을 세워 복을 받으라고 할 수 있던가요? 그런데 놀랍게도, 예화: 제가 아는 어떤 집사 부부도 자기가 다니는 교회에서 주일에 학개서의 설교를 듣고 나서는, 그 부부가 하는 말이 오늘 설교에서 은혜를 입었다고 하기에 가만히 들어 봤는데, 그 다음이 참 안타까운데, 우리들이 이렇게 힘든 이민 생활을 하는 이유가, 사업이 되지 않았던 그 이유가 성전을 세우지 않아서 그랬다고, 저한테 그러더라고요! 물론 그 부부의 세상수준을 보면, 국졸이 아닙니다. 까막눈이 아니라 한국에서 대학을 다 졸업했고 미국 유학까지도 한 부부이었는데, 그 가짜 설교를 듣고 그러더라는 것입니다. 얼마나 무섭습니까? 내가 아니기에 큰 다행이었습니다. 이런 사기는 없는데, 다들 학개서를 통하여 이렇게 거짓된 설교로 영혼들을 죽이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뜻이 아닙니다. 분명 아닌데, 다들 가짜 설교를 듣고 열심히 헌금하여 교회 건물이 아닌 성전을 세워서 복을 받으려고 하는데 정말 무섭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해서 세워진 교회건물들은 역시나 다 무너지고 맙니다. 참 신앙은 성전 된 내가 죽어 이웃을 성전되게 하는데 있습니다. 건물이 아닙니다. 그래서 세워진 유럽의 교회건물들은 어떤가요? 그 건물들이 교회로 남아 있던가요? 아니요 거의가 술집 건물이 아니면 다른 용도로 쓰여지고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렘 7장에서도 말씀을 하십니다. 렘7:1-7입니다. “여호와께로부터 예레미야에게 말씀이 임하니라 이르시되, 너는 여호와의 집 문에 서서 이 말을 선포하여 이르기를 여호와께 예배하러 이 문으로 들어가는 유다 사람들아 여호와의 말씀을 들으라,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너희 길과 행위를 바르게 하라 그리하면 내가 너희로 이 곳에 살게 하리라, 너희는 이것이 여호와의 성전이라, 여호와의 성전이라, 여호와의 성전이라 하는 거짓말을 믿지 말라, 너희가 만일 길과 행위를 참으로 바르게 하여 이웃들 사이에 정의를 행하며, 이방인과 고아와 과부를 압제하지 아니하며 무죄한 자의 피를 이 곳에서 흘리지 아니하며 다른 신들 뒤를 따라 화를 자초하지 아니하면, 내가 너희를 이 곳에 살게 하리니 곧 너희 조상에게 영원무궁토록 준 땅에니라”
그런데 문제는 이렇게 살 길과 망하는 길을 말씀하여 주시는데, 다들, 어디로 가던가요? 하지 말라는 망하는 길로 가더라는 것입니다. 단지 성전만 있으면 망할 수가 없다는 신앙은 무너집니다. 신앙의 목적은 거룩함입니다. 그 거룩함은 호6:6에서도 알 수 있듯이, “나는 인애를 원하고 제사를 원하지 아니하며 번제보다 하나님을 아는 것을 원하노라” 그렇습니다. 하나님을 알아야 합니다. 그 앎은 이스라엘처럼 성전만을 믿고 순종하지 않으면 하나님을 만날 수도 알게 될 수도 없습니다. 하나님은 오직 성전이신 예수님을 통하여 알 수 있습니다.
골1:15입니다. “그는 보이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의 형상이요 모든 창조물보다 먼저 나신 자니” 예수님은 하나님이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바로 그분이 3년 반 동안에 보여주시고 하신 말씀을 통하여 하나님이 누구신지를 똑바로 알 수 있어야 합니다. 인격의 하나님을 만나서 그분과 동행할 수 있는 길은 예수님을 통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런데 우린 망한 이스라엘을 지금도 따라가고 있습니다. 성전만 있으면 된다는 식으로 그래서 기도를 열심히 드리고, 성경을 열심히 읽고, 예배를 열심히 참여하지만, 결국 어떤 결과를 가져왔던가요? 점점 망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신앙의 약점은 구약 때부터 주님께서 심판의 주로 오실 때까지도 여전히 해결이 되지 않을 것입니다. 여전히 속이고 속으면서, 수많은 사람들이 교회를 열심히 다니지만 결국 수많은 사람들이 구원에 이르지 못하고 말 것입니다. 그래서 마7:19-23에서의 말씀인 “아름다운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혀 불에 던져지느니라, 이러므로 그들의 열매로 그들을 알리라,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 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하지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그 때에 내가 저희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
나는 열심히 했다는 너를 하나님께서 모르겠다!고 하시는 이 무서운 말씀 그대로 버려지고 말 것입니다. 그러나 진정한 행복과 기쁨을 원하신다면, 주님의 길을 전심으로 따라가지 않으면 불가합니다. 그런데 그 불가한 길, 가서는 안 되는 망하는 길을 다들 열심히 따라가고 있습니다. 성전을 세운 목적은 경건이요 순종이요 힘을 제압하고 믿음이 힘이 되어 그리고 이웃 간의 화목과 화평을 이루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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