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 설교 말씀

4/21/2024 스가랴14:1-21

PastorYK 2024. 4. 22. 14:26

말씀: 슥14:1-21                                               

제목: 마지막 때의 징조

 

 

오늘도 하나님께서는 이 모든 인류의 역사를 한 나라, 즉 이스라엘을 통하여 설명하고 계십니다. 단지 이스라엘만의 역사가 아니라는 뜻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너희들은 이스라엘을 통하여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하나님이 누구신지, 무엇을 준비해야 되는지, 무엇을 버려야 되는지 등 여러 가지 결정적인 것들을 가지고 내일을 준비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렇게 해 주시려고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던 자녀들에게 예수님을 보내주시면서 진리를 보게 하시고 듣게 하시고 그리고 하나님의 뜻을 따를 수 있게 하신 것입니다.

 

그러니깐 오늘도 슥14장의 말씀을 통하여 마지막 때가 되면 어떤 징조가 있는지를 알아서 결코 세상의 뜻을, 세상의 힘을 따르지 말라는 것입니다. 사실 예수님께서 오셨던 2000년 전부터 이 인간의 역사는 종말의 시기입니다. 그런데 그 종말의 흐름이 어떤가요? 하나님께서 주신 예언, 계시들이 그대로 나타나고 있던가요? 아니면 거짓말이던가요? 성경대로 흐르고 있음을 모를 수가 없을 것입니다. 인정을 한다면 결국 어떤 선택을 할까요? ~ 이 큰 전체의 내용의 틀을 갖고 슥14장의 마지막 말씀을 살펴보면서 은혜를 함께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타락한 이스라엘이 구약의 사사기에서 알 수 있듯이, 주변국의 식민지로 지배를 받았고, 북이스라엘은 멸망을 당했고, 남 유다도 타락하여 70년간의 바벨론 포로생활을 하다가 돌아오게 됩니다.

 

러나 슥14장에서 말씀하시는 심판은 70년간의 나라를 잃은 그런 정도의 심판이 아니라 더욱 큰 엄청난 심판의 날이 임할 것이라는 예언의 말씀입니다. 결국 이스라엘은 슥14장의 예언의 말씀 그대로 심판을 받게 됩니다. 그 이유는 구세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못하고 버린 대가였습니다. 그런데 이 심판의 예언의 말씀은 더 나아가서 마지막 때에 세상을 심판하신다는 상징의 말씀이기도 합니다.

 

여기서 우리는 무엇을 깨닫게 됩니까? 슥14:1-2의 말씀처럼 그날이 되면, 교회도 이스라엘처럼 당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신앙의 연단과 부패로 인하여 재물이 약탈되고, 이방세력으로부터 공격을 받게 되고, 그래서 성읍이 함락이 되었고, 가옥이 약탈되고 부녀가 욕을 당하고 성읍 백성 절반이 끌려가게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이 그렇게 예언대로 이루어졌고 그 뜻은 결국 교회도 교회의 연단과 타락으로 그렇게 환란을 받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남은 백성들, 즉 하나님의 자녀들은 환란 속에서도 보호를 받게 된다고 하십니다. 여기서도 알아야 되는 것은 종말 때에도 예수님을 외면한 자들은 역시나 예외 없이 이스라엘이 받았던 그 심판을 고스란히 받게 된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나 이 심판은 슥14:6-7의 말씀처럼 마지막 때에 여호와 하나님만이 아시는 한 날 즉 그날의 심판이 이스라엘처럼 기간적인 부분심판이 아니라 영원히 저주를 받게 된다는 것이 성경의 말씀입니다. 

 

결국 이스라엘의 2000년간의 나라를 잃었던 그 환란은 예수님을 믿지 않는 대가였듯이 그것은 우리들도 같습니다. 구세주이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을 믿지 않고, 세상의 힘에 빠지면 완전히 버림을 받게 됩니다. 그러나 그 반대로 택함을 받은 남은 자들은 그 반대가 된다고 슥14:2에서 남은 백성들은 끊어지지 않고슥14:3의 말씀은 “그 때에 여호와께서 나가사 그 이방 나라들을 치시되 이왕의 전쟁 날에 싸운 것 같이 하시리라” 예루살렘 또는 교회를 공격하는 세상세력들을 하나님께서 예전처럼 철저하게 막아 보호하여 주신다고 하십니다.

 

그리고 4-5절의 말씀을 보면, “그 날에 그의 발이 예루살렘 앞 곧 동쪽 감람산에 서실 것이요 감람산은 그 한 가운데가 동서로 갈라져 매우 큰 골짜기가 되어서 산 절반은 북으로, 절반은 남으로 옮기고, 그 산 골짜기는 아셀까지 이를지라 너희가 그 산 골짜기로 도망하되 유다 왕 웃시야 때에 지진을 피하여 도망하던 것 같이 하리라 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임하실 것이요 모든 거룩한 자들이 주와 함께 하리라 

 

감람산은 이스라엘이 피하는데 방해가 되어 많은 사람이 죽을 수 있을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감람산을 쪼개 주셔서 그 사이로 피하게 하여 사람들을 구원할 것이라는 말씀이 슥14:4-5의 말씀입니다. 비록 이스라엘이 타락하여 이방세력의 공격을 받게 되지만, 남은 하나님의 자녀들을 구원하기 위하여 이방세력들이 공격할 때, 그 공격을 피하여 도망가야 되는 자녀들을 위하여 방해가 되는 감람산을 지진으로 갈라 골짜기를 만들어 피할 수 있게 하시는 하나님을 보면, 얼마나 큰 권능과 영광을 지니신 하나님이신지를 알게 합니다. 모세 때, 홍해를 갈라 두려워하던 이스라엘을 구원하신 하나님을 연상케 하시는 말씀이기도 합니다. 

 

환란 속에서 남은 자들에게는 슥14:7-11입니다. “여호와의 아시는 한 날이 있으리니 낮도 아니요 밤도 아니라 어두워 갈 때에 빛이 있으리로다, 그 날에 생수가 예루살렘에서 솟아나서 절반은 동해로, 절반은 서해로 흐를 것이라 여름에도 겨울에도 그러하리라, 여호와께서 천하의 왕이 되시리니 그 날에는 여호와께서 홀로 한 분이실 것이요 그의 이름이 홀로 하나이실 것이라, 10-온 땅이 아라바 같이 되되 게바에서 예루살렘 남쪽 림몬까지 이를 것이며 예루살렘이 높이 들려 그 본처에 있으리니 베냐민 문에서부터 첫 문 자리와 성 모퉁이 문까지 또 하나넬 망대에서부터 왕의 포도주 짜는 곳까지라, 사람이 그 가운데에 살며 다시는 저주가 있지 아니하리니 예루살렘이 평안히 서리로다” 

 

7절에서는 남은 자들에게는 흑암 속에서도 빛이 있고 8절에서는 일 년 내내 생수가 흐를 것이고, 9절에서는 인간의 왕이 아닌 천하의 왕, 즉 만군의 하나님께서 통치하게 되고, 특히 10절의 말씀이 어려운데, ‘온 땅이 아라바 같이 된다’는 것은 예루살렘을 제외한 모든 땅이 낮아져서 평지가 될 것이라는 뜻입니다. 모든 곳이 다 평준화가 이루어지지만 예루살렘 즉 교회만은 영원히 높임을 평안히 받게 된다는 뜻입니다. 그 안에 내가 있지요 ~

 

그러나 구원을 받지 못한 자들을 보세요! 2-3절-“내가 이방 나라들을 모아 예루살렘과 싸우게 하리니 성읍이 함락되며 가옥이 약탈되며 부녀가 욕을 당하며 성읍 백성이 절반이나 사로잡혀 가려니와 남은 백성은 성읍에서 끊어지지 아니하리라, 그 때에 여호와께서 나가사 그 이방 나라들을 치시되 이왕의 전쟁 날에 싸운 것 같이 하시리라 

 

특히 6절-그 날에는 빛이 없겠고 광명한 것들이 떠날 것이라, 12, 13, 15절- “예루살렘을 친 모든 백성에게 여호와께서 내리실 재앙은 이러하니 곧 섰을 때에 그들의 살이 썩으며 그들의 눈동자가 눈구멍 속에서 썩으며 그들의 혀가 입 속에서 썩을 것이요, 그 날에 여호와께서 그들을 크게 요란하게 하시리니 피차 손으로 붙잡으며 피차 손을 들어 칠 것이며, 또 말과 노새와 약대와 나귀와 그 진에 있는 모든 가축에게 미칠 재앙도 그 재앙과 같으리라” 

 

남은 자들과는 아주 극심한 대조가 되는 말씀입니다. 왜 이런 극심한 대조의 예언을 주전 500년경에 스가랴 선지자에게 말씀하신 것일까요? 슥14:16-21에서 알 수 있습니다. 슥14:16-21의 말씀을 보시면서 어떤 생각을 하셨나요? 무슨 말씀을 하시려는 것입니까? 슥14:16-21의 말씀은 성령하나님이 임하셨을 때와 하나님의 나라가 완성될 때를 말씀하고 계십니다. 슥14장의 말씀은 주전500년경의 말씀입니다. 그때도 하나님의 심판의 날을 예언하셨다면, 이제 2500년이 지난 2024년도에 살고 있는 우리들은 그 마지막 심판의 날이 심히 가까이 왔음을 인식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지금은 아주 끝말중의 끝말인 세상에서 우리들이 살고 있습니다. 특히 요즘 돌아가는 세상의 추세를 보면 이제 거의 올 것이 왔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되는데, 그 보다 더 확실한 증거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확인이 됩니다. 2500년 전의 주신 예언의 말씀인 슥14:16에서 알 수 있습니다. “예루살렘을 치러 왔던 이방 나라들 중에 남은 자가 해마다 올라와서 그 왕 만군의 여호와께 경배하며 초막절을 지킬 것이라 끝 날이 되면 예루살렘을 공격하던 열방 즉 이방인들 중에 남은 자들이 해마다 초막절을 지킨다는 이 말씀입니다. 

 

그런데 무엇 때문에 왜, 이방의 힘의 나라들이 이스라엘을 공격하게 하는지를 알아야 합니다. 이스라엘의 타락이 그 이유요, 그 다음은 무수한 보물이 있다는 점과 그리고 지리적 여건 때문입니다. 이스라엘은 성전을 금으로 만들었고 얼마나 많은 보화가 창고가 가득했는지 히스기야 왕을 통하여 밝혀진바 있습니다. 결국 세상의 정복자들은 쳐들어와서 이스라엘의 모든 금과 은과 놋 등을 약탈해 갔었고 그 사실을 우리는 구약을 통하여 잘 알고 있습니다. 게다가 세계의 정복자들이 유럽과 애굽을 치려면 반드시 이스라엘을 통과해야 했습니다. 그래서 16절의 말씀처럼 전쟁이 끊이지 않았던 곳이 바로 이스라엘입니다. 그런데 그런 와중에서 이방인들이 구원을 받은 남은 자들이 매년 초막절을 지키게 된다고 슥14:16에서 예언하셨습니다. 

 

그럼, 슥14장 당시에 예언하셨던 이방인들이 초막절을 지키는 날이 성취가 되었는가? ~ 아니면 아닌가? 이 말씀은 이미 성취가 되었습니다. 언제요? 슥14:16에서도 예언하셨지만, 지금부터 2000년 전인, 행2장의 오순절 사건에서 알 수 있습니다. 결국 지금부터 2000년 전 오순절 때에 마가의 다락방에서 120문도에게 성령이 임하시면서 이방인들에게도 그때부터 복음이 전파되었고 그 후 남은 자들은 구원의 하나님을 경배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특히 유월절, 오순절도 있는데, 이렇게 초막절만을 언급하시는 이유가 무슨 뜻일까요? 유월절과 오순절이 다 초막절을 위한 절기이기 때문입니다. 초막절은 가나안 땅에서 이스라엘 민족이 출애굽하면서 실패한 40년간을 광야에서 살았던 날을 기념하는 날입니다. 출애굽 후, 광야 생활을 인도하여 주시고 보호해 주신 그 은혜를 기억하고 감사하며 기념하여서 영원히 잊지 않게 하시려고 초막절을 지키라고 하셨습니다. 

 

특히 너희들의 구원의 목적은 현실의 만족과 승리가 아니라 목적지인 가나안 땅에서 하나님만을 경외하는 것이 출애굽의 목표였기에 초막절을 언급하셨던 것입니다. 실은 유월절도 가나안 땅에 들어갔을 때, 지킬 수 있었던 것만 보아도 왜 가나안 땅에서의 초막절을 영원히 기억할 날이라고 말씀하시면서 지키지 않는 자들은 끊어진다는 무서운 조건과 함께 주신 절기임을 알아야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초막절을 이방인들도 지킨다는 그 날이 온다고 주전 500년경에 말씀을 하셨는데, 결국 말씀대로 이방인들이 초막절을 지키고 있다는 것을 생각해 보세요! ~  

 

초막절에 대하여 좀 더 살펴봅니다. 이방인들도 구원을 받았으면 이스라엘이 경험한 광야 인생을 모두가 다 경험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구원받은 자들은 누구든지 이 힘든 인생의 과정을 주님이 재림하실 때까지는 경험하지 않고서는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초막절이 주는 의미는 구원을 받은 자녀들은 쉽게 거저가 아니라, 험한 인생광야에서 하나님의 도움 없이는 신앙의 열매, 가나안 땅에서의 삶을 이룰 수 없다는 것이 초막절이 주는 교훈입니다. 인생광야에서 믿음으로 세상의 힘, 자랑을 버리므로 오는 그 놀라운 기쁨의 체험 없이는 진정한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없기에, 세상의 힘과 자신의 옛 본성을 제압하려면 하나님만을 전적으로, 100% 의지해야 된다는 것이 초막절이 주는 교훈입니다. 초막절은 거친 인생 광야에서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으로 이겨낼 수 있었기에 들어간 가나안 땅에서 살면서 매년 초막절에 7일간 모여 임시 장막 안에서 감사해야 되는 절기였던 것입니다.

 

그래서 성령 하나님께서 임하실 때까지 지키라고 하셨고, 지키기 위하여 모든 하나님의 자녀들은 이유여하를 막론하고 예루살렘으로 들어가야 했던 것입니다. 신약적으로 말씀을 드리면 구약의 절기가 다 합쳐진 즉 은혜를 입은 성도라면 창조주 하나님과 구원의 하나님을 경배하는 주일 예배를 주셨는데, 이 주일은 성도들에게는 신앙고백이요 보상이요 복이요 영광의 시간이 된 것입니다. 그래서 주일예배를 목숨을 걸고 지켰던 것입니다.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인생의 고난을 피하려고 하는 게으른 자들, 초막절, 예배를 진심으로 지키려고 하지 않는 자들에게는 슥14:17-19의 말씀을 보세요! “땅에 있는 족속들 중에 그 왕 만군의 여호와께 경배하러 예루살렘에 올라오지 아니하는 자들에게는 비를 내리지 아니하실 것인즉만일 애굽 족속이 올라오지 아니할 때에는 비 내림이 있지 아니하리니 여호와께서 초막절을 지키러 올라오지 아니하는 이방 나라들의 사람을 치시는 재앙을 그에게 내리실 것이라, 애굽 사람이나 이방 나라 사람이나 초막절을 지키러 올라오지 아니하는 자의 받을 벌이 그러하니라 

 

하나님의 도움 없이 살 수 있다는 자들에게는 비를 주시지 않으시겠다는 것입니다. 사실 누가 하나님의 도움 없이 살 수 있는 자가 있을까요? 없습니다. 죽을 때까지 하나님의 100% 도움 속에서만  살 수 있었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공기를 거두어 가보세요! 하나님께서 비를 한 달만 퍼 부어도, 아무도 살지 못합니다.

 

그런데 온 우주만물을 다스리시는 하나님께 감사하지 않는다면, 100% 헛고생 속에서 100% 방황하다가 미워하고 슬퍼하다가 잠시의 기쁨만을 느끼다가, 사망에 이르고 맙니다. 삶 자체가 비 없어 목말라 아우성을 치다가 죽게 되는 것처럼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모르는 힘의 사람들을 보면, 죽을 때까지 얼마나 쩔쩔매다가 죽던가요? 물론 힘으로 평생 잘사는 사람들도 있지만, 그러나 목숨이 끊어지는 순간, 그들의 절망은 비 한 방울 없어 목이 타 절규하는 곳으로 영원히 버려집니다. 

 

그러나 비록 거지 나사로처럼 살았을지라도 초막절을 지키며 하나님을 의지하던 성도들은 영원한 최고의 삶, 영원한 최고의 승리, 영원한 최고의 기쁨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이 말씀을 믿는다면, 우린 어느 쪽을 선택하셔야 합니까? 예수 없는 인생은 영원한 고욕이요 영원한 아우성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죽은 자들에게 은혜를 주시면서 초막절을 지키라, 예배를 드려라!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그래서 이런 극심한 대조의 예언을 주전 500년경에 스가랴 선지자에게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물론 구약에서는 매년 명하신 곳으로 가족들이 정해진 제물을 가지고 올라가야 했습니다그래서 하나님께 감사하고 하나님만을 의지하면서 살겠노라고 결심하고 식구들이 다시 집으로 돌아옵니다. 

 

그렇다면 우리 역시 그런 은혜의 행보를 항상 유지해야 되지 않을까요? ~ 하나님께서 우리들이 세상사는 동안에 끝까지 지켜주시고 보호 인도하여 주셨기에 매주에 한번 감사를 드리면, 충분할까요? ~ 그 은혜의 깊은 감사를 안다면 항상 주님과 동행해도 부족하다고 할 것입니다. 동행 정도가 아니라 100% 다 내려놓고 이웃의 종된 자로, 이웃의 승리를 위하여 목숨까지도 아끼지 않을 것입니다. 영원한 승리를 거머쥔 자로써 늘 충성할 것입니다. 결코 방심하지 않을 것입니다. 

 

끝까지 믿음의 선한 싸움을 할 것입니다. 그 결과 슥14:20-21입니다. 그 날에는 말방울에까지 여호와께 성결이라 기록될 것이라 여호와의 전에 있는 모든 솥이 제단 앞 주발과 다름이 없을 것이니, 예루살렘과 유다의 모든 솥이 만군의 여호와의 성물이 될 것인즉 제사 드리는 자가 와서 이 솥을 가져다가 그것으로 고기를 삶으리라 그 날에는 만군의 여호와의 전에 가나안 사람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종말의 그날이 되면 모두가 하나님께 성결을 이루기 위한 거룩한 삶이 된다는 것입니다. 

 

은혜를 입은 그들이 얼마나 거룩한 삶을 원했던지 하찮은 말방울에도 여호와께 성결이라 기록할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바로 “여호와께 성결” 이 점 때문에 슥14장에서 이런 극심한 대조의 예언을 주전 500년경에 스가랴 선지자에게 말씀하신 것입니다. 종말의 그날이 다가오면 초막절을, 즉 예배에 참여하던 그들에게 성결한 삶이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 말의 방울까지 거룩한 성물이 되기에 그날이 되면 거룩하지 않은 것이 없는 그날이 온다는 예언의 말씀을 그래서 극단적으로 하신 것입니다. 

 

다 모든 것들이 성결케 된다는 이 예언의 말씀은 성령하나님께서 임하시는 날부터 시작됩니다. 성령의 능력이 우리의 예배 뿐 만아니라 생활 전체에 풍성하게 넘쳐서 사소한 부분까지도 거룩하게 만든다는 사실입니다. 일초일전의 삶을 주십니다. 믿음으로 힘을 제압하게 하십니다. 아무리 힘들어도 끝까지 믿음의 선한 싸움을 하게 합니다.(딤후4:7) 특히 거룩함과 성결함 때문에 늘 고민하게 하십니다. 결국 다 감사하게 되고 슥14:20처럼 말방울까지도, 모든 솥이 제단 앞 주발과 다름이 없이 다 귀하게 여깁니다

 

왜냐하면 다 하나님의 거룩한 자녀들을 위한 것들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또 하나님의 자녀들이 제사장으로써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모든 것들을 사용하게 되었기 때문에 귀중하게 여기는 것입니다. 그리고 종말의 심판의 그날이 오면 구약의 이치대로 한정된 성전 안에서 고기를 삶아야 되는 제한도 없어진다는 말씀입니다. 왜요? 어디서나 죄사함을 받을 수 있고 하나님하고의 관계가 회복되었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바로 성령하나님을 모신 신약의 교회에서 나타나는 변화입니다. 

 

그런데 결국 슥14장의 예언된 말씀이 이미 2000년 전에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을 통하여 교회가 세워지면서 성취가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은 어떤가요? 그 새로운 변화에 얼마나 깊이 동참하고 계십니까? ~ 은혜를 입었다면 당연히 그때부터 예언된 말씀과 같이 모든 것이 거룩하게 될 것이고, 신약의 교회는 천국을 상징하는 곳이 되어야 합니다. 때문에 천국을 상징하는 교회는 당연히 성결해야 되는데, 어떤가요? 성결이 목표요 목적이기에 당연히 작은 죄라도 주의하고 경계를 하면서 미워하고 계십니까?~ 

 

그럴 때, 우상을 숭배하던 가나안의 타락한 세력들이 슥14:21의 말씀처럼 없어질 것입니다. 그것은 교회에 죄인들이 들어오지 못한다는 뜻이 아닙니다. 수많은 죄인들이 교회를 통하여 죄사함을 받고 회개하는 역사가 나타난다는 뜻입니다. 이젠 죄의 세력들이 눈을 씻고 보아도 자기들이 들어설 곳이 없어지고 있다는 뜻입니다. 그간 실패한 신앙들도 다시 시작할 수 있게 되고, 마음이 병든 자들이 치료받게 되고, 용서 못하는 자들이 용서하게 됩니다. 그런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이런 교회가 세워질 것을 하나님께서는 2500년 전에 예언하신 것입니다. 신약 교회 안에는 하나님의 이 약속이 들어 있음을 늘 기억하셔야 합니다

 

그것이 초막절, 주일예배를 지키고 있는 성도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흑암의 세상 안에서 진정한 승리, 거룩함을 위하여 세워 주신 곳이 교회이기에 개인 욕심과 이기심과 질투 시기까지도 깨끗하게 버리고, 서로 나누고 베풀고 사랑할 수 있는 교회가 되어 초막절을 기억하며 내일을 준비할 수 있게 하신 곳이 교회입니다. ‘여호와께 성결’ 바로 이점 때문에 죄와 싸우는 자들에게 복된 삶과 약속을 허락하신 것인데, 그렇다면 우리는 지금 하나님의 뜻에 합한 자들로 살기 위해서 어떤 수고를 하고 계십니까? ~ 

 

하나님께서는 여호와의 날이 이르면 반드시 세상의 힘을 버리고 거룩함을 위하여 사는 자들이 된다고 예언하기에 이 예언에 어긋나면 안 될 것입니다. 어긋나지 않게 하시려고 성령하나님을 보내주셨기에 그분께 의지하고 구한다면 역시 하나님의 약속대로 세상의 힘에 속지 않게 해 주시고, 하나님의 자녀답게 큰 기쁨으로 늘 예배에 참여하면서 날마다 승리하는 자들이 되게 하실 것입니다. 

 

더 이상 자기의 힘 때문에 머뭇거릴 사이가 없습니다. 의심할 이유도 전혀 없습니다. 은혜를 입은 성도들을 통하여 그 예언들이 다 이루어졌기 때문입니다. 내가 아니라고 하여 의심하면서 뒤돌아보았다가는 쥐도 새도 모르게 악의 세력이 독수리처럼 별안간 잡아채 갈 것입니다. 기회는 언제나 지금입니다. 이 기회를 놓치지 마시기를 바라며 말씀을 마칩니다.